절로되는 15가지 사랑 열매


선지자선교회 1982년 4월 26일 월새

 

본문 :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는다 말은 옳은 행실이 계속되는 걸 말합니다.

옳은 행실이 계속되는 것.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어떤 일을 닥쳐도 마음에 당황이나 조 급이 없는  유유한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따뜻한 그런 것 말한 것이 아니고 유유하다는  말이오.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미움이 생겨지지 아니하며, 미워하는 것.

행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것. 행위 미워하는 것과 사람 미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을 사랑하면서 행위는 미워합니다. 나쁜 행위는 미워합니다.

그러나 행위를 미워하지 않고 사람을 미워하는 미움이 있고 행위를 미워하는  미움이 있습니다. 투기는 내게 말하는 것은 사람을 미워하지 아니하며 사람을  사랑할수록 그 사람에게 나쁜 행실이 있을 때에는 그 행실은 극히 밉습니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사랑은 상대방을  위하여 상대방을 유익되게 하려는 자기 소개지 자기를 유익되도록 하기 위한  자기 소개가 없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상대방에게 자기를 나타내어 자기를 높이게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구원을 위하여, 바울이 '내가 나의 높은 것을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이 마치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이지 마는 너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이  말을 하게 된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여러가지로 말한 아주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아름다운 행위인데, 이  아름다운 행위를 사람들은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아름다운 행위를 자기가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아름다운 행위 몇 가지인고 한번 헤아려 볼까요.

 자, 4절에서부터 손꼽아 헤아려 보이소. 「사랑은 오래 참고」하나,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니라」 몇 가지입니까 열다섯 가지입니다.

 아주 좋은 미덕의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것을 행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을 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이것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속에는 안 그래도  사람들 보기에 이것을 하려고, 그렇게 껍데기라도 이걸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이런 것을  범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가치를 인정치 않을 것이 기 때문에 이것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니까 이 행위가 기독자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있지마는 하나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늘나라에 들려 올라가고 하나는 마귀에게 속해서  하늘나라에 들려 올라가지 못하고 버림을 당합니다.

 꼭 같이 이 열다섯 가지의 종류를, 열다섯 가치를 다 하든지 하나를 하든지  하는 그것을,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은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가고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은 땅에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 하는 것은 이것을 하려고 애를 쓰면 안됩니다. 속에 사랑이 있으면  사랑 그 자체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산 버러지가 있으면, 산 버러지가 있으면 그 버러지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생명이 있으면 제 힘껏 움직이게 됩니다. 물에 떠있는 고기가  생명이 붙어 있으면 그 생명이 의례히 날개도 치고 꼬리도 치고 이렇게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다섯 가지를 억지로 하려고 애를 씀으로 되는 그것은 가짜배기고  그것은 조짜라 멸망을 받고,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가짜배기가 아니고 그 속에 사랑이 생겨졌으면 생겨진 그 사랑의 본능으로 이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들은 이것을 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인본이요 또 가짜배기입니다.

이것은 하려고 애를 쓰지 않고 자기가 사랑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사랑이 자기  속에 이루어졌을 때에 그때에 이루어진 것 만침 이 사랑은 이 행동을 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떤 것인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인간사랑 있는데, 인간  사랑은 언제 그것을 한번 말씀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 사랑인데  곧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이오.

 또 하나님의 사랑이 움직이는 움직임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움직였는가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 화친, 신인 화친으로서 이 사랑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곧  우리의 구주요, 우리의 구주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사랑의 역사를 했으니 곧 세  가지 대속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대속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으니 이  사랑이 또 신구약 66권의 도리대로 행하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고 보니 이 사랑이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었소. 십자가의 대속을 이룬, 이래서 우리를 구속하사 우리를 중생시킨 이  사랑이 또 우리를 진리와 영감대로 이렇게 살게 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루어져 있으면 이루어진  것만치 이 사랑의 행동이 이렇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행동이 이렇다는 말이오.

사랑은 받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가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있도록 이렇게 하려고는 하지 않고, 사랑의  그 행동이 이러하다 하여 사랑의 행동이 아름다우니까 이 행동만 만들어  가지려고 하는 이것이 뭐이냐. 외식입니다. 이것을 하려고 해서 되느냐 하면  안됩니다.

 참 그거 어렵습니다. 이 열다섯 가지를 하는데, 이 열 다섯 가지를,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 없으면서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쓰는 그것이 외식이요, 또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첫째 아담의 사랑 인간사랑 그것이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은 사망의 독소가 있는 이 열다섯 가지의 의로운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이것을 아름답게 보니까 열다섯 가지 이것을  만들려고, 뭐 하려고 만들어. 그래야 자기 가치가 올라가지, 자기가 인정이  되어지지, 자기 욕심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지지.

 이러니까 순전히 열다섯 가지 이 행위가 아름답기 때문에 이것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이기주의요 자기중심 자기 위주가 들어서 이것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양의 껍질을 입었으나 실상은 이리라.

 아주 껍데기,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려는 것보다도 자기를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방편 공작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도 우리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땅에 있는 인간의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이 사랑으로 이 일을 하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뭐  그런 것 때문에 또 이렇게 이 열다섯 가지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열다섯 가지 하는 그것은 뭐이 들어서 하느냐. 제일 처음에 말하는 것은 자기가  들어서 하고 또 자기 사욕이라는 주관이라는 원죄가 들어서 하고, 또 둘째로  하는 것은 원죄가 자기의 친구를 마련 해가지고 자기 친구를 얻기 위해서 자기  상대방을 자기 것 만들기 위해서 하는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둘 다 기독자는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열다섯 가지를 하는데 처음에 말한 것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  이것이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써서 이 열다섯 가지를 만들지 마는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그것이 들어서 열다섯 가지를 만드는 것이 있고, 또 이제는 처음에 것은 자기를  위해서 열다섯 가지를 만들고 둘째는 자기가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을 하나  점령해서 필요한 사람을 하나 얻기 위해서 또 이 열다섯 가지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에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 이 열다섯 가지를 애를 씁니까, 남반에. 자기 위해서,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씁니다. 또 둘째로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무엇 때문에 애를 씁니까. 뭐라 하노. 상대방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원죄 그놈이 지금 그렇게 하고 둘째는 원죄 그놈이  이제 자기 상대 원죄자를 하나 얻기 위해서 점령하기 위해서 지금 이와같이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실은 기독자가, 이 열다섯 가지 아주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열다섯 가지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열다섯 가지는 저절로 돼야  됩니다. 이 열다섯 가지가 저절로 돼야 그것이 참 진짜지, 이 열다섯 가지  이것을 만들려고 애를 쓰다 보면 원죄 하는 것이 되기 쉽고 원죄가 원죄자인 그  상대방을 얻기 위해서 하는 순전히 참 흉측한 사망이 이런 것을 만들기 쉽기  때문에 이것은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말하기를 사랑은 이러하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 자체는 온유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사랑이 있으면 사랑이 의례히 있는 것만침 온유하게 하는  것인데 사랑은 없으면서 온유만 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된다 이거요. 그것이  되면 그걸 하려고, 온유를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결국은 첫째 가짜 둘째 가짜  그것이 되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러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 우리를 사죄 칭의  새생명 이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우리에게 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함으로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화친을 주셨으니 이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이 사랑을 내가 배반치 않고 이 사랑을 받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사죄를 받는 것이요 칭의를 받는 것이요 화친을 받는 것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물리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 간직하는 것이  무엇이냐. 간직하는 것이, 사죄를 보존하고 보수하고 칭의를 보수하고 신인  화친을 보수하는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간직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 사죄 받은 자로 사는 것이, 칭의 받은  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사랑으로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을 가지고 또 형제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이 사랑을 가지고 또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형제에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자 한번 대답해 봐요. 이 세 가지로 형제에게 상대하는  것이, 이 세 가지로 형제에게 행하는 것이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로 형제를 대해서 사랑하는 것이 이 세 가지를 내가 형제에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요.

 첫째 아담의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아담 하와끼리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기 때문에 사랑했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랬는데 이 사랑이 하나님의 법칙을 쓰다가 하나님의 법칙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암을 청하는 데에서 이 인간 사랑이 생겨 졌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 것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가, 「내게 준 자는 내가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내게 준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이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 사죄와 칭의와 화친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있으면 이를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이웃을 사랑치 않으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아버지를 사랑하기는 사랑하는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공중이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할 때에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할 때에는 아버지 사랑하는 것이 되어져 버렸고 아버지가 사랑을  받는다 그것이오.

 그러면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을 베풉니다. 이웃을.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 말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 말이오.

작은 자는 큰 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는 그말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 말이오.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은 것이 이 세 가지 구속을 받은 것이 주의 사랑을 받은  것이요 주님을 사랑함으로, 요걸 연결이 안 되는데 주님을, 내나 같은 말이오.

딴말 할 수 없어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사랑함으로 인해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들어서 이웃을 사랑해야 되지 주님은 주님대로 사랑하고 또 계명에 그렇기  때문에 이웃은 또 이웃대로 사랑한다 그것이 아니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이 필연적으로, 이것은 필연적으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은 하나님 사랑을  받는다 말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이 본능적으로 필연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다니.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뭐인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 세 가지로 사랑합니다. 이웃을 이 세  가지로 사랑합니다. 그러면 이웃을 이 세 가지로 사랑하면, 그 이웃에게 내가 이  세 가지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이웃을 사랑할 때에 이 세 가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랑이 나타날 때에 몇 가지로 나타납니까. 열다섯 가지로  나타납니다. 이러니까, 열다섯 가지로 나타나.

 그러면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에게서 내게 온 사랑 이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를 쓰고 이웃을 사랑하니까, 사랑하려고 애를 쓰다니, 그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자기 주장으로 사는 그걸 죽여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하나님에게  소속된 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가 하나님하고 화친케 하려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열다섯 가지 이것은 저절로 되더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것을 하려고 하니까 열다섯 가지 이것은 본능적으로 필연적으로, 그거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사랑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 열다섯  가지가 저절로 생겨져,  여기에 금덩이가 있으면 금덩이가 빛을 내려고 뻔쩍거리는 것이 아니라  금덩이가 있으면 금덩이 그것이 빛을 가릴래야 가릴 수가 없고 본능적으로  필연적으로 번쩍거리는 광채가 나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열다섯 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있으면 이 사랑의 광채로,  사랑의 빛깔로, 사랑의 색깔, 색깔. 사랑의 색깔로 필연적으로 열다섯이 되는  것이 이것이 하늘나라에 들려 올라가는 것이지, 이 속에 알맹이 사랑은 없이  사랑의 껍데기만 하려고 애를 쓰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 없는데  껍데기만 그렇게 만들면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 그말이오. 속이는 것.

이것은 가짜입니다. 사랑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 대신 누가 속에  있습니까. 원죄. 자기 원죄가 있습니다. 원죄.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 왔으면 이 사랑은 그것이 무슨 중심입니까.

자기를 세우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오면 이 사랑은 자기를 세우는  것입니까 자기를 꺾는 것입니까 자기를 비우는 것이오 자기를 세우는 것이오,  옆에 모든 것을 복종을 시키는 것입니까 당신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그에게  복종을 하는 것입니까.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것이  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까,  남반에.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받는 것이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주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주님  앞에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무조건 주님만 세우고 주님 앞에 나를 비우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라 그말이오.

 어디까지 주님 앞에 자기를 낮출 것인가. 창조주가 피조물 되기까지 낮추신  것같이 주님 앞에 나를 낮추는 것은 내가 만든 것과 같이 내가 천해지기까지,  낮아진다고 하는 것은 내가 막대기와 같이, 내가 무슨 작지와 같이, 내가 무슨  물건 같이 그렇게 내가 낮추어지는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 사랑이 자기에게 와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으로 이루어지니  내가 그분에게 비워진 것이요, 그분이 나에게 주가 되고 왕이 된 것이요, 나는  그에게 소속한 것이 되어 가지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된 것,  그분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음으로 이웃을 이 세 가지 대속으로 사랑하려고  하는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거라 말이오.

 그러면 주님에게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이 세 가지 구속을 내가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요, 이 세 가지 구속이 내 속에 와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 내 속에 와서 결실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오. 이 사랑이, 이 세 가지 구속을 받은 이 사랑이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 세 가지 구속을 이것으로 사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 가지 구속으로 사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세 가지 구속을  하려 하니까 하나님에게 대고 해야 되겠소 인간에게 대고 해야 되겠소. 인간에게  대고 밖에는 할 수 없다 그말이오. 인간에게 대고 이 세 가지 구속을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이 세 가지 구속의 이 사랑을 내가  받음으로 이제 이 사랑의 행위를 하려고, 이 세 가지 구속으로 사람을 지금  구속하려고 이 세 가지를 베푸는 것이 이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인간을 사랑해.

 인간을 사랑하면 이 세 가지를,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를 쓰다가 보니까 이 가지 사랑하려고 이 세 가지로만 애를  쓰다 보니까 이루어지는 것은 몇 가지가 이루어집니까 열다섯 가지는 저절로  이루어져. 열다섯 가지 그거는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고 이 세 가지 지금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애를 쓰다가 보니까 다른 사람이 보고 이 열다섯  가지로 그 사람이 나타나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열다섯 가지에 힘을 쓰는 것은 마귀가 시키는 것이요, 이거  외식이요, 다른 사람을 삼키려고 도적질하는 절도요 강도의 행위요, 이것은  하려고 하지 않고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이 열다섯 가지 빛깔이 나더라, 사람이 거기에 갔는데 자기는 사람  눈에 안 뛸려고 숨어서 갔지마는 사람 눈에 뜨인다 말이오.

 이남에서 지금 저 김일성한테 가서, 어떤 사람 그럴 거라. 김일성이 저것한테  가 가지고, 눈에 안 보이도록 갈 수 있으면 가 가지고 그놈의 새끼 없애버리면  이 남한이 좀 조용할 것인데 하고서 없애려 하는 사람 많이 있지마는 아무리  모르게 가도 가면 이거 그만 드러나서 잡혀 죽을까 싶어서 못 갈 것이라  그말이오.

 이남에서 그로 말미암아 지금 고생을 당하고 자녀도 잃고 이 고생 당하는  사람들이, 저거 눈에 안 보이도록 내가 갈 수 있으면, 안 보이도록 가 가지고  없애 버리겠다 이래 싶으지마는 안 보이도록 갈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숨어서  이래 가도 들리는데, 뜨이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가면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있으면 열다섯 가지는 자연히 열다섯 가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이놈  만드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외식이오.

 그 첫째는 원죄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뭐이 한다고 했소. 남반에, 여반에.

둘째는 이제 저와 같은 상대방을 하나 지금 점령하려고 지금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도는 이렇게 정확하고 세밀합니다. 정확하고 세밀한데 껍데기를  가지고 사는 것, 사람을 접촉해 보면, 이거는 참 얼마나 껍데기 중에 껍데기다.

껍데기니까 접촉할 때에 껍데기를 보고 나무래니까 어떤 사람이 있다가, 과연  내가 껍데기였다, 뭐 나무랄 때마다 기절할 만침 감사를 하고 이런 사람 있고,  나무랄 때에 듣기를 싫어하는 그것을 뒤에 반성해 가지고 내가 그때 듣기  싫어했지마는 과연 이것이 생명의 도다, 과연 이게 사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외식을 고치려 하면 힘이 듭니다.

 그럴 때는 내가 던져 버립니다. 던져버려요. 던지면 제대로 가 가지고 이것이  이제 제가 그와같이 하는 거 일이 안 되고 고통을 당하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인제 자각하고 반성하면 그 다음에 다시 붙들어서 구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오.

 이러니까 열다섯 가지 이것은 성경에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런 색깔로 나타난다,  이런 광채로 나타난다,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다, 사랑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인데, 사랑을 자기가 보존하려고 이 사랑을 간직하려고,  자기가 이 사랑으로 살려고 애를 쓰지는 않고 사랑의 빛깔이 난다 하는데 빛깔  만드려고만 애를 쓰는 이런 외식하는 자가 되기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외식하면 안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또 무슨 말인지, 지난밤에 녹음을 들은 사람들은 좀 알  것입니다. 지난밤에 가서 내가 잠깐 그걸 좀 지나가면서, 내려가며 들어봤는데  얼마나 보배인지 모릅니다. 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는 주위가 산만하기 때문에  잘 알아듣기가 힘들지마는 그 녹음기에서 다시 재독하는 것은 그렇게 간편하고  간단하고 알아듣기가 쉽데요.

 참 이거 여러분들 위해서 미친 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가 합니다. 내게 대해서는  미친 소리와 같은 소리요 내게 대해서는 유익이 없소. 없는 말인데 참  진주입니다. 이 설교는 진주요 진주.

 어떤 여기에 자꾸 운동하는 것, 내게 운동 가르쳐 주는, 어제 주일에  건강요법에 대한 감사를 내가 감사헌금을 5천원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걸 가르쳐  준 그분이, 그분에게 내가 직접 안 배웠는데 그분에게 전달 전달해 가지고 내게  왔어.

 이런데 저 먼저 그 선생님이 여기 왔어 와서 만나기 전에 그전에 날 알고  있더래요. 날 알고 있는데 또 종종 온답니다. 이러면서 말하기를 그분의 입에서  나온 대로 말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는 참 껍데기고 이 백목사 설교는 참 진짜  알맹이다, 그 사람이 그러더래요. 그 외식하는 말 아니라. 진정 지성인들이  들었고 참 안 믿는 사람이 들으면 압니다.

 이런데 여러분들이 백목사가 무식하기 때문에, 백목사는 국민학교도 졸업을 안  했소. 가정 파탄이 일어나 가지고 5학년 때에 일본을 가 가지고 일본 가서 뭐  공부한다고 이렇다 저렇다 해도 졸업장은 내게는 신학교 졸업장 한 장밖에는  없습니다. 공부한다고 이래 했지마는. 내가 그때 공부를 좀 많이 했더라면  큰일날 뻔했어, 지금 요새 생각하니까,  이러니까 간판이 없지, 이러니 모두 무식하다, 아이구, 그 무식해서, 무식은  저거가 무식해서 이 설교를 못 알아듣지 내가 무식해서 저거 설교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야.

 이렇게 사는 길을 똑똑히 가르쳐 주는, 왜 이거 미친 소리 한다 말이오. 제  자랑해 제 자랑하는 것이 여러분들 때문에, 이 설교를 여러분들이 들어야 변화가  되어지지, 이 말씀으로 변화되지. 청년의 행실을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고는 변화 못 시킵니다. 어떻게 그 행실을 고칩니까. 이런데 이것을 듣지도  않고,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철야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새벽에 많이  나왔네요.

 어제 내가 보니까 여반에는 사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철야하는 사람이.

남반에는 조금 불었고, 이런데 실은 자기네들이 와 가지고 기도를 못하면, 오면  조그매 할 것 아니오. 집에 자는 것보다 낫지. 낫고, 와 가지고 그저 조금  기도하다가 설교 나오거들랑, 재독 나오거든 자세히 듣고 다 듣고 나면 그 자리  누워 자요. 이래도 이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면 일이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공연히 철야한다고 자기 힘에 벅차게 안 되는 걸 억지로 그래  하려고 하지 말고 와 가지고 다른 사람이야 하든지 말든지 와 가지고 거석하거든  조금 기도하고 누워 자면서 나중에 설교 할 때에 나 깨우라고 그러고 누워 자라  그말이오. 누워 자다가 이제 설교 재독합니다. 하고 시작하거들랑 깨우거든 퍼득  일어나 가지고 자세히 듣고, 이 도를 듣고 나면 그때에 참 필연적인 자연스러운  그런 기도가 나을 거라, 듣다 보니까.

 그만 들을 때에 주여, 이거 내가 회개케 해 주십시오. 내게 유익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게 해주옵소서, 이것이 필연적으로 자기가 기도가 될 것이라 말이오.

설교 듣고 나면 자기가 또 기도가 되어 질거라 그말이오.

 기도하고, 힘나는 대로 해요. 억지로 하지 말고. 기도하고 또 누워 자요.

보니까 좀 있다가 또 하데. 또 깨워 주십시오. 함부레 잘 안 자는 사람 깨는  사람 그런 사람한테 가 자요.

 이래 가지고 자면 실컷 자고 하나님 말씀 가지고 속에 영이 살이 찌니까, 영이  살이 찌니 힘이 생겨 실컷 잤으니 손해 갈 것 없어. 그래도 다소라도 기도를,  집에 자는 것보다는 낫게 했으니 또 유익이 됐어 집에 자면 쓸데없는 이야기  수군거리고 이런 소용없는 일 할 것인데 소위 말해 이것은 만가지 유익이지 손해  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저도 5층에서 그것을 듣습니다. 5층에 스피커에 다 나옵니다. 나오면 보고 너무  소리가 크다 하면 조절도 하고 이렇게 또 보고 저도 설교를 재독합니다. 저도  설교를 재독을 해.

 예배 드릴 때에 은혜를 받으면 예배 드리고 난 다음에. 얼굴이 서기가 나는데,  얼굴이 광채가 나서 아주 서기를 하는데, 예배드릴 때에 잠이 와서 못 견뎌서  억지로 다리를 뜯고 이래 애를 먹으면서 억지로 참고 견뎌서 예배 한 시간보고  나면 큰 중병 치른 것처럼 눈이 쑥 들어가 버립니다. 여러분들 그 경험  없습니까. 나는 그렇습디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영도 살찌고 육도 살찌고 이래서 이 성경 말씀을 몸을  장수케 하는 아주 좋은 약이라 이랬습니다. 몸의 양약이라. 이 고기덩어리에도  양약이라.

 이 다음에는 철야기도 하는 사람은 자기만 하지 말고, 가 가지고 데리고 와서,  야, 곤한데 그만 자거라, 좀 기도하다가 그만 자거라, 재워 놓고, 또 설교에  재독하거든 또 깨워서 들리고, 또 누워 자거라 이래 가지고는 잠은 잠대로 자고  기도는 기도대로, 제 정도로 말이오. 제 정도로 기도는 기도대로 하고 잠은  잠대로 자고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대로 받아서 간직하고 이러니까 얼마나  유익입니까. 또 집에서 쓸데없는 그 쓸데없는 일 않고. 이러니까 와서 보면 모든  것이 유익인데 무엇 때문에 안 오고 그러는지.

 어제 보니까 아이 낳아서 빽빽 하는 것, 조그만한 것, 빨간 그것도 데리고  철야기도를 한다고 왔어. 그것도 또 남편은 철야기도 한다고 또 요 갖다 준다고  왔고. 이래서 내가 보관해 가지고 있다가 내가 주면서 어떻게 사랑스럽게  귀한지, 그러면 살아나는 거라.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해요. 우리 잘되는 것을 그래. 하나님에게는 우리 잘되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고 그 외에는 기쁨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철야기도를 많이 하도록 하십시오. 어쨌든지 데리고 와요. 데리고 와서 말씀을  들어서 말씀이 그 속에 역사하면 됩니다. 중간반 반사들도 빠짐없이 와서 누워  자요. 누워 자고 재독할 때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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