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신앙생활


선지자선교회 1988년 2월 12일 금새

 

본문 : 벧후 1:12-21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수교에는 신비한 계시들도 있고 또 신비한 환상들도 있고 또 신비한 꿈도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는 이런 유의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또 여러  가지 이적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있는데.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 내용과 사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행사를  해서 될 그런 것들도 있지마는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주신  말씀입니다. 구원의 도리. 구원의 이치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의 이치로 주신 것을 구원의 이치로 우리가 받아야 하지 구원의  이치로 받지 안하고 하나의 역사적 어떤 그 형식이 있는 그 형식을 내가 그와  같은 형식을 할라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탈선하기 쉽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모든 이런 문서 외에 다른 것들이 있는 그 모든 역사적인 그  형식 사실들도 성경에 기록한 것은 그것을 그와 같은 형식 사실을 우리에게  본받으라고, 우리로 하여금 행하라고 그렇게 하신것보다도 구원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침이 주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무슨 표적들도 있고 이적들도 있고 이렇게 있는데  그런 것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런 역사를 안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에게 일반적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 아닙니다.

 예를 들면은, 무슨 꿈으로 역사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때도  꿈으로 역사했습니다. 또 사도들에게도 그렇게 환상으로 역사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가서 전할라고 할 때에도 환상 가운데서 보자기가 내려왔고 그  가운데 모든 동물들이 담겨 있는 그런 일로써 나타났습니다.

 또, 각종의 병든 자의 그 병이 나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또 음성이 들린 일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에도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이  같이 만나서 앞으로 있을 십자가에 대해서 의논한 그 환상을 봤고 또 공중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그들이 들었고 이렇게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로 깨닫게 한 것이오. 성경에 기록한 것은  이 성경에 기록한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라, 구원의 도, 도리.

도라 말은 우리가 걸어갈 길이라 말이요, 리라 말은 이치라 말이요,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구원 도리로 줬습니다.

 이 구원의 도는 천지의 그 중량보다 이 구원의 도리의 한 획의 중량이 큰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는 우리가 구원의 이치를 깨닫고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깨달아 내 구원에 도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신앙생활하는 그 이치로 길로 이래 받아야 되지 그것을 자기도 그와같이 행하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 되면 안 됩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있는데 이런  일들이 있는 그런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성경에 기록된 그 역사적인 사실 같은  그런 일들이 있는 것은 목적이 우리가 그 형식에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서  그대로 행할라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요 또 우리가 그 구원의 도리를  바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줄 때에 그런 형식으로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도 있고 또 문서로 가르쳐 주신 것도 있고 이렇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그 방편 쓴 것이 문서도 있고 형식도 있고 그렇게 여러 가지  방식을 썼습니다.

 그런 것은 다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하는 믿는 이치를 가르친 그  도리인데 어떤 개인이 성경에 기록한 이것은 우리들이 다 이와 같은 형식을,  이와 같은 역사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 이렇게 착각하면 안 됩니다.

 각종 병자를 낫게 하는, 병자가 나은 것이 많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뭐, 상여  매고 나가다가 살아난 것, 또 썩은 가운데서 살아난 것. 이런 일들이 있는  그것은 그것으로써 예수 믿는 도리를 깨달으라는 그 깊은 속에 믿는 이치를  말씀해 놨는데 그것을 이 도로 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가 그와같이  행동할 것으로 준 것으로 생각을 하면 대단히 오해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도로 준 이 도는 태초부터 있는 도요 또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하나님의 목적과 그 예정하시기 전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진리인데 하나님과 진리와 함께 계셨으니 곧 이 진리는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시고 처음에 역사하신 것이 뭣을 역사하셨는가? 예정을  역사하셨고 그 다음에는 창조할때에 이 하나님과 이 진리가 함께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명령했고 이 이치는 창조의 시공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격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구원 도리를 알려 주기 위해서  나타난 이 계시의 형식인데, 계시를 나타내는 형식인데 그형식을 피조물이  그대로 할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이 아주 큰 착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이 꿈을 꾸어 가지고, 자기도 꼼 꿔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현몽해 준 거와 같은 그런 꿈을 자기도 꿀라고, 또 변화산에서 환상을 보여 준  그 환상을 그런 것을 자기도 볼라고, 또 죽은 자를살리는 그것을 성경에 있기  때문에 나도 살릴 수 있다 이래서 그런 것을자기가 살려 볼라고 하는 그런 것은  사람이 하나님 될라고 하는 그런 망령된 쟁각입니다.

 다만 거기에서 구원 도리를 깨닫고 자기가 신앙생활할 때에 하나님은 이러하신  능력이 계신다는 것, 그 역사하시고 그런 능력이 계신다는 것을 자기가 믿고  신앙생활하면 혹 하나님께서 그렇게 꿈으로 꿈꾸게해 주시는 것도 있고, 또  환상을 보여 주는 것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참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일도  있습니다. 또 온갖 병이 낫는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할 패에 그런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지 제 욕심에  따라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합당하게  하나님이 조절해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일을 삼습니다. 병 낫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필요할 때에 이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적은, 뭐 어떤 병 낫는 그런 일이라도 이적은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 표적이 나타난다  그렇게 말한 것이 성경입니다.

 사도 시대에 그렇게 많은 이적이 나타났지마는 이적은 이미 믿는 사람에게 그  믿음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고, 믿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어서 나타나는 게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그 순종에 결과로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저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당신의 주권의 뜻대로  이렇게 되는 것이지 우리가 그 욕심 품은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집회 때에 육백여 명이 병이 나은 긋것을 만일 성경적으로 심사할  때에 그때에 병 나은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나았나, 또  자기가 회개하고 바로 믿을라고 할 때에 나았나? 이라면 그것이 정상적으로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것을 깨달아 회개를 할 태쉐 위반된그 원인의  결과로서 나온 모든 것은 회개하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모든 병에 걸리는 그런 병은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죄값으로 또 우리가 무슨, 어떤 것은 죄값으로 잘못으로 그렇게 일어나는 것, 또  우리가 어리석어서 위생적으로 잘못해 가지고서 일어난 것 그런 모든 그 병은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이랬습니다.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이라기 때문에 그런  병은 성도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죄값으로 오는 병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아야 됩니다. 착각하면 안 돼요.

죄값으로 오는 병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자기가 어리석어서. 무엇을 잘못해서  오는 병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오는 모든 병은 뭐인가? 이는 예수님의 구속으로서 성도를  회개시켜서 성화시켜 구원하기 위해서 그것이 오는 것이지그게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병이 걸렸든지 걸렸거든 내가 이런 무슨 죄값으로 이렇게  왔으니까 이 죄를 회개해야 되겠다 그렇게 말합니다. 네, 그러합니다.

 그사람이 그 병이라야 그 사람이 회개를 하고 또 그 실패라야 그 사람이  조심해서 실패할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고 이래서 전체는 신체적이나 경제적이나  어떤 일이라도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작업이지 그 잘못됨에 결과의 멸망  작업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모든 실패나 모든 질병이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시는 구원 작업이지 멸망 작업이 아니라. 이거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습니까? 이거 못 알아 들으면 안 돼요.

 그러기에, 구원 작업이니 그 사람에게 잘못됐으니까 벌로 그것을 주어서 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그런 실상이 되어 있는 그 사람에게는 그  실패라야 구원이 되고 그 병이라야 구원이 되기 때문에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지 멸망시키는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요라면 조금 알아 들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회개하면 병이 낫는다 하는 그 말은 맞습니다. 맞으나 깊이 알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러면, 이 질병은 회개하면 낫는 것이니까 회개 안 하면 멸망시키기 위해서  있는 병인가? 그게 아니고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병을 허락하시고 주신  것이지 멸망시키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는 죄를 회개하면  병이 낫는다 하는 그 말은 알아 듣기 쉽구로 그렇게 말한 것이지 속에 진담을  말할 때에는 네가 하나님이 욕구하시는 성화가 되면, 욕구하시는 사람이 되면  네가, 고쳐지면 그 말입니다. 고쳐지면, 그 죄 잘못된 걸, 죄를 후회를 하면  아니고 네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그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데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 다 있는 모든 징계기 때문에  그 징계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만치 그 징계는 없어진다. 구원이 다됐으면  징계는 필요 없다. 벌로 주는 게 아니라 징계로 해 가지고 이와같이 역사하신다.

뭐 그런 건 좀 어려운 말인데.

 이래서, 오늘에는 폐단되는 일들이, 이 계시 기관으로, 하나님의 도리를 계시해  주는 계시 기관으로 성경에 기록한 것을 자기가 그와같이 행할라고 하는  여기에서 탈선이 됩니다. 마귀란 놈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된다 하는  그런 주장을 오해시켜 가지고서 사람들이 성경대로 할라고 하는 데에서 많은  오해와 착각들이 생겨가지고서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우리가 그거 할라고 할 때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적을 행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를 바로 가르치고그 사람이 도리를  깨닫고 고대로 믿을라고 할 때에 믿는 분량만치 거기에 표적이 나타납니다.

 표적이 나타나나 나탓나는 것이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이렇게 표적이  나타나는 그런 것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 표적이 있는  것이고 이미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없고 그 사람이 성화되는 데 따라서  서서히 고쳐집니다.

 성화됨에 따라서 그 성화를 위해서 있는 그 모든 공작들은 다 성화가되니까  필요 없는 공작이니까 성화됨에 따라서 성화를 위한 공작들은 차차차차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적이 덜컥덜컥 닥치는데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게 없다' 너는 이미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도리를 믿기 때문에 너를 고치기 위한 모든 공작들이기 때문에 집을 짓기 위해서  아시바를 때 놓은 거니까 집을 지어야 아시바를 뜯는다. 집 지으면 아시바는  자연히 철거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너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그 요구대로의 그것이 돼 가는 거기에만  힘쓰는 것이 네 할일이지, 네가 네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이 공작하시는 그  공작을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그것은 네가 암만 해 봤자 안 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사람이 돼지면. 그것이 차차차차 철거된다.

 그러기 때문에, 병낫기 위해서 자기가 자꾸 회개를 해서 고치는 사람, 그  사람은 헛된 생각 가집니다. 암만 그래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자기가 그 생각  가지나 안 가지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그 성화인 것을 깨닫고, 안타깝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사람되기를 목적하고 그거 회개해서  하나님이 욕구하시는 사람이 되면 그것은자기가 그 병이 평생 있기를 원해도 그  사람됨을 위해서 있는 것은 사람이 되면 그것은 자꾸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거는 우리가 구할 것이 아니고,

 여기에 18절 끝에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뭐  뭣보다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그 음성은 그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고 또  감동도 많이 됐고 이랬으니까 이보다 더 큰 음성이 없고 또 변화산에서 본  것보다도 더 큰 환상이 없고 또 감동이 그들이 우리가 장막 셋을 지어 가지고서  여기 있자 했으니까 그보다도 더 큰 강한 감동이 없었습니다.

 왜? 그 밑에 산 밑에는 여러 수천 명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와 가지고  그만 가족들이고 뭐이고 완전히 밑에 있는 사람들이고 가정이고 모든 것 세상 일  다 잊어버려 버리고 그 고고 태산에 거기에서 그만 초막 서이 짓고 거기에서  살자고 앞뒤도 아무것도 생각지도 안하고 할 그만치 뜨거운 감동은 없습니다.

 그러나, 19절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그런 것도 중요하지마는 통틀어서 이런 저런 모든 별별일들이 하나님께서 참  하신 것, 하나님께서 꿈도 영몽으로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영몽도 있고 또  하나님이 그 환상을 나타내신 일도 있고 하나님이 음성을 나타낸 일도 있고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 성경에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하신 것이요 그 중량은  얼마나 크냐 하면은 그 내용을 기록한 그 문서에 한 획이 이 우주보다 중량이  큽니다. 사람들은, 원문 성경이 아니고 원본 성경은 한권인데 원본 성경에 획  하나는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을 못합니다. 그만치 중량이 큽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이 제가 해 볼라 하는 그런 것은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적을 행하니까 된다고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고  그저 해서 한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다 실패하고 망하고 맙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지금 뭐 서울에 기도원 가운데 할렐루야 기도원이 제일  권능이 있다 하지마는 그 결과는 틀림없이 망합니다. 그러니까 벌써 저짓말 참말  주 넣어 대 가지고 사람들을 그렇게 끄는 것이지 그거는 내용을 조사하면은  참보다 거짓부리가 많이 됩니다.

 ○○○씨가 어떻게 해서 저렇게 실패를 했느냐 하면은 그분이 서울에  ○○○교회 있을 때에 ○○○목사님이 거기에 목사님이었습니다. 거기에 장로로  있었는데 어떻게 그 아픈 사람을 위해서 한번 기도하니까 확실히 병이  나았습니다.

 나으니까 '나는 이 병 낫을 수 있다' 이래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잘못  깨닫고 '믿음이 없어 그렇지 믿기만 하면 된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그 믿음이라  하는 그 해석을 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믿으면 된다. 확실히 의심없이 믿으면  된다 이러니까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그래 보니,  병이 처음에는 하나 그거 확실히 나았습니다. 나은 그 사람이 좀 그때 장관  뭣인가 그래서,  그래 가지고 이제는 낫는다 그걸 가지고 주장하고 나서니까 안 나으니 낫는다는  그 뭣을 해야 되기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해 가지고서 나는 무슨 병 나았다 무슨  병 나았다 이래 가지고 그때 돈을 크게 모은 그 착취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그것으로 나서고 난 다음에 나는 병 낫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그 작업으로 나서고 난 그 이후에는 병 나은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나중에 억지가 나가 가지고서 결국은 그 사람이 기합술하는 그  기합술 가지고서 사람을 이래 아프게 만드는 그거 가지고서 하나님의 성령이라  해 가지고서 얼마 동안 팔아 먹었지마는 그것이 완전히 망해 버려. 그래 큰 것이  다 망해 버렸고 그 사람에게 대한 모든 것이 다 비참하게 다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고, 기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오.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우리할 일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믿는 것이오. 우리가 믿을 때에 믿음이 없을 때에는 믿음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여 주시면 그 표적을 보여 주신 목적이 뭐이냐? 이 표적을 봤으니나는 이  표적이 내 사업이라 생각하고 할 것이 아니고 그 표적을 주신 목적이 어데  있는가? 우리가 이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지 그런 표적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닌데 그것이 지금 착각이 돼  가지고서 어리석은 교인들을 유혹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여기 ○○○ 그 사람도 내가 오지 말고 가 버리라고 하고, 또 ○○○이도 오지  말고 가 버리라고 하는 그것은 그 사람들이 벌써 그걸 원하니까 귀신에게 들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런 역사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보냈습니다.

 이러니까, 여기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더 확실하다, 더  확실하다, 더 확실하다 말은 뭣보다 더 확실하다 말입니까? 뭣보다 더 확살하다  말이요? 공중에서, 하늘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증거하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이니까 너희들은  장막이니 뭐이니 그런 허튼소리 하지 말고 저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에게 대해서  증거한 그 음성입니다. 또 그 환상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확고한 환상이요 더  큰 음성이 어데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 확실한 예언' 하는 것은 그런 음성 환상 그런 것보다 우리에게  육십 육 권 도리로 끝을 맺어서 기록해 주신 이 성경은 그보다 더 권위가 있고  우리에게 확실하고 더 튼튼하고 털끝만치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하나님의 완전자의 완전 계약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변화산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게 나타나셔서  음성을 들렸다. 그러면 그 음성과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과 중량을  어데 둘랍니까? 그 음성에 두지 말고 이 말씀에 두라 말입니다.

 그러면, 음성이 암만 나타나도 그러면 그 음성에 두는 것이 아니고그 사실을 이  성경에 구원 도리로 우리에게 문서로 기록해 주셨기 때문에 음성 난 거기에  가치보다도 이 성경 문서로 기록채 증기 때문에 이 문서의, 권위성을 더 견고히  두는 것이 믿는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하는 요 도리가 얼마나 깊고 참 깨닫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선생더러 가 보라 했더니만 가 봤는데 역연 제가  말한 대로 거기에는 그 주석이 근방에만 가지 깊이는 가지 안했습니다.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어두운 데 비취는 이거는 물질적으로 이거  밤이 되니까 어둡고 벗아이 들어오지 안하니까 어둡고 하는 그런 어두움이  아니오.

 '어두움에 비취는' 그 말은 이 도덕적으로 어두워졌고, 세상이 어두워졌고  사상적으로 어두워졌고 모든 지식적으로 어두워졌다. 인생관도 어두워졌고,  만물관도 어두워졌고, 생사관도 어두워졌고, 구원관도 어두워졌고, 멸망관도  행복관도 전부 어두워졌다 그 말이요.

 '어두운데 그러면, 세상이 깜깜 어둡다 그 말이오. 세상이 깜깜해서 암만  대낮이라도 어둡다 그 말이오. 이 어두움은 물질의 어두움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인간들이 어두워져서 자꾸 멸망으로 간다 그 말이오.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어두움에 비취는 발에 등불 같으니' 이게 또  다른 데는 발에 등불 같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나 그 말이오.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어떻게 그 일보 일보를  걸어 나갈 것이냐? 걸어 나가는 데에는 이 성경에 비취지는 그 빛을 받아  가지고야 옳은 자국을 떼놓지 그렇지 안하면 옳은 자국을 떼놓지 못한다.

 만일 변화산에서 어떻게 그런 변화가 됐으니까 그 변화 보끄 따라가도 안 되고  음성 듣고 따라가도 안 된다. 고 신구약 성경에 문서계시로 된 그 문서 계시를  보고 문서 계시가 너에게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걸어가야 네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날이 새어 하는 것이 이 물질의 태양이 돌아와서  이 공간이 환하게 밝아지는 그 날이 새는 걸 가리킨 게 아니고 위에 어두운 걸  말한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날이 새어' 하는 말은 우리의 심령에 이제는 어두움이 물러가고  차차차차 심령이 밝아지는 걸 말해. 심령이 밝아진다. 우리의 심령이 밝아지고  지식이 밝아지고 사상이 밝아지고 이제 소망도 밝아지고 평가도 밝아지고 비판도  밝아지고 우리의 모든 정신도 밝아지고 모두가 다, 밝은 것은 하나님,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러면 하나님 차차 조금씩 닮아가게 된다 그 말이오.

 '날이 새어 샛별이'. 샛별 이것도 새벽별인데 새벽별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성령을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 떠오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해돋지  않습니까? 해는 주님을 가리켜서 해라고 그렇게 상징해 말한 것 입니다.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제가 이 설교를 할라고 나온 것은 그 해석을 그전에  많이 여러날 아침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할라고 한 게 아니고 결론을  말할라고 한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뭐이 신앙생활인가? 감사 없으면 신앙생활  아닙니다. 감사, 기쁨, 또 이 소망의 욕심, 또 용단, 자기 할일에 대한 용기와  단행하는 그 힘, 용단. 이 네 가지가 우리에게 있어야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아무리 그 사람이 성자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감사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감사는 무슨 우주를 얻었다 할지라도, 어떤 뭐 자기가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어떤 큰 재벌을 어떻게 취했다할지라도, 그런 것도  감사하지만 그런 감사는 다 없어질 감사요 땅에 속한 감사요 죽을 감사입니다.

그 감사 있는 것은 신자들이 혹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것을 감사하나 진짜  감사는 아니야. 그거는 껍데기 감사. 마치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그림자 감사지 그 실상의 감사는 아닌 것입니다.

 실상의 감사라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된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인해서 감사함이 있는 그것이 자기를 살릴 감사요 우주를  점령할 감사요 그거는 참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입니다. 이 감사가  있어야 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깨닫고 보니 이거 뭐 아무것도 없어도  좋습니다. 이 감사는 사형장에서 사형이 조그만치라도 이 감사를 흔들거나 이  감사를 변동시킬 수 없는 그런 감사요. 세상이 없앨 수 없는 감사요.

 이 감사로 인해서 그 속에 기쁨이 충만해지는 그 기쁨도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러니까 이 감사하는 이 대속에 대한 소망이 자기에게 넘쳐서 아주이 욕망, 이  소망에 욕심이 있습니다. 다른 데 아무것도 없고 소망에 밖에는 욕심이 없어.

 바울이 말하기를 과거에는 학벌, 문벌, 또 자기 모든 로마의 시민권이 세상  것으로 나타난 그런 것으로써 소망을 가졌지마는 이제는 모든 걸 이거 다  배설물로 여겼다 이랬어. 이제는 왜?  그러면, 과거에 그래 가지고 애를 써서 그때 현 시대에 로마의 시민권을  유대인으로는 받지 못합니다. 유대인으로는 받지 못하는데 로마 시민권을  받았지, 웅변으로서 뭐 세계에 참 최고의 웅변을 가졌지, 또 그 사람이 학벌로서  최고의 학을 가졌지, 그 사람이 머리를 그런 머리를가졌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지,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지 이런 사람인데 그것을 다  똥오줌과 같이 다 여겼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이라야 되지 그것은 다 헛된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으려 함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하면은 이  욕망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 대속을 자꾸 깨달아서 감사함이  자기 속에 충만해서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샤형을 받아도 사형받는  거기에서 사형받아도 이 대속의 은혜가 더 커서 감사함이 넘치는 이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크든지 작든지 대속으로 말미암은, 대속에 속한 뿌스러기 감사라도 그  감사가 우리에게 우리를 살리고 크지, 그 감사와 그 기쁨그로 인하니까 나중에  소망의 욕심의 욕망, 그 다음에는 용단이 생겼다 그 말이오. 죽어도 이 구원  이루는 데에 아낌없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투자할, 수 있는 이것이 생겨지는  이것이 신앙생활에, 이 네 가지가 신앙생활인데,  그러기 때문에, 기쁨 이런 건 다, 이 감사도 세상이, 세상에 뭐 물질이나  사망이나 뭐 어떤 게 와도 요동 못 할 그런 감사, 그런 기쁨, 그런 욕망, 그런  용단 이것이 신앙생활인데 이 신앙생활은 어데서 나오느냐? 이 신앙생활은  어데서 나옵니까? 이 신앙생활은 어데서 나옵니까?  환상 봄에서 나옵니까 뭐 꿈보는 데서 나옵니까 무슨 음성 듣는 데서 나옵니까  무슨 지시받는 데서 나옵니까 어데서 나옵니까? 어데서 이거 나옵니까? '더  확실한 예언' 아주 환상치고는 그 이상 더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된 것? 그보다도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 이 예언을 네가 자꾸,  이 주의하라 했는데 다른 번역에는 보면은 여기에 대해서 네가 살피라  이랬습니다. 살피라. 살피는 것이 가하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살피는 것이  가하니라. 또 다른 데는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렇게 번역을 하는데 그러면  이 더 확실한 예언이 있기 때문에 이 예언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 예언이  가르쳐 주고 있는 걸 생각해.

 예언은 뭘 가르쳐요? 전 신구약 육십 육 권의 예언은 뭣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 보십시요? 예수 그려스도의 구속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전체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러니까,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라니까, 이래서 거기에서 감사와 기쁨과  욕망과 용단이 나오니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인데, 이것으로서 나가는 것이  기독자들이 바로 나가는데 이것이 바로 되지 않기 때문에 다 기독교가 탈선돼  가지고서 그만 이단으로 삐끌어지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다른 기이한 것을 생각지 마십시오. 이래서 그런  사람들은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분이 그래 말해요, 그분이 말하기를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서부교회는, 내가 다른 교회가면 아주 제일 일을 권위  있게 잘하고 많이 했는데 이 서부교회 와가지고는 할 일이 없다. 암만 해야 일이  안 된다. 그 사람이 그래 말해요 그거 누가 좀 가까이 한 사람 말 들었어요? 그  사람 입으로 나오는 말이 그 말이오. 주님의 일을 하러 가야 되겠는데 이  서부교회는 아무 소용없는 나는 사람이라. 아무리 서부교회서 일을 할라 해도  일이 안된다고서  반사를 아주 유력한 일하다 온 사람이기 때문에 중간반 반사를 맡겨도 안 돼.

그래 또 인제 안 되니까 '이 주일학교는 내가 할 수 있는데 주일학교를 그라면  한번 주일학교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라면 주일학교 해 봐라' 주일학교. 또  반사를 맡겼어. 또 안 돼.' 그러면 구역장을'  '구역장을 해라' 구역장해도 또 안 돼.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안 됩니다. 다른  데 가면 뭐이 되지마는 여기에서는 안 됩니다. 왜? 여기에서는 잡것은 와  가지고서, 귀신이 여기에 와서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것을 잘 잡고, 어짜든지 신앙생활은 신구약성경이 예수님의 대속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성경을 보면 그거 가르치니까 성경이 가르친 대로 신구약 성경에 가르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공부하고 배움으로 인해서,  샛별이 떠오른 건 뭐입니가? 샛별이 떠오른 건 뭐입니까? 성령님이 오시는  것인데 그러면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성령님이 네모잽이로옵니까, 동글동글하게  옵니까, 길쭉하게 옵니까, 뜨끈뜨끈하게 옵니까, 어떻게 옵니까? 저 ○조사,  어떻게 오지? 확신으로? 그게 가짜배기라. 틀렸어.

 뭘로 온다 했어? 감사로 와! 이렇게 자꾸 이 구속의 도리를 자기가 깨닫고  연구를 하면은 속에 남의 일로 알고 그랬는데 차차차차 자꾸하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함이 나와요. 감사함이 나오면 고게 바로  성령님입니다.

 감사함이 나오고 나니까 차차 기쁨이 나와요. 고게 성령님이오. 성령님의  감동인데 감동과 성령님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있습니다. 감동이  성령님이요 성령님이 오면 역사하는 건 감동입니다.

 또, 자꾸 더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소망에 대한 욕심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활에서만, 돈 욕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대한 욕심이 나와,  욕심이 나오는데 자꾸 이 세 가지를 자꾸 성령이 오니까 세 가지가 더  강해지니까 네째로는 뭘 나옵니까? 저 ○ 조사님, 용단이 나와요. 죽어도 나도  이제 한번 해 보겠다!  왜 내가 새벽기도 못 가며 나도 지금 이제 순간도 믿음이 아닌 생활을 내가  하지 안하고서 믿음으로 주님에게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당신에게  피동으로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대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해 보겠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용기가 나온다 그거요.

 이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인데 이렇게 하지 안하고 삐뚤어지게 했기 때문에 저  마산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그런 길을 자꾸 가고서 이렇게 탈선되기  때문에 그 교회에서 사면을 시켰습니다.

 사면을 시켜서 이제 자기를 따르는 그 교인들만, 다른 교인들 죽이는 그게  아깝기 때문에 따르는 교인들만 데리고 나가서 교회를 그라면 새로해 봐라. 또  수에 따라서 그라면 재산을 갈라 줄 터이니까 그래 가지고 그 하라고, 반분을  갈라 주든지 뭐 삼분지 일을 주든지 그렇게 네가 가고난 다음에 이뤄 놓은  재산은 그걸 갈라서 그래 해 봐라. 이렇게 하고서 결의를 했습니다.

 말세에 지금, 뭐 서울에는 지금 불파, 지시파, 또 방언파, 또 신유파, 뭐  예언파 그게 전부 귀신 역사고 성령의 역사는 아닙니다. 성경이 요렇게 가르쳐  놨소,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 있으면 그런 사람을 잘 지적해서 그걸  깨우치게 못 할상 바르면 구역장에게 말하고 구역장이 못하면 제게 데리고 와서  그걸 바로 깨닫게 해 가지고서 그 하나가, 작은 쓴뿌리가 많은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 하나가 들어서 많은 사람을 버리게 되기 때문에 예수를 바로  믿어야 되지.

 그러니까, 이 서부교회는 그런 것이 오면은 견뎌 배기지를 못하고, 제가 암만  활동해 봤자 활동이 안 됩니다. 활동을 암만 해 봐야 활동의 효력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암만 오래 가도, 전도를 암만 해도 한사람도 전도 못 하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말세에 이 유혹을 잘 깨닫고 바로 믿어야 되지  잘못하면 택함은 받았지마는 벌거벗은 거와같이, 불가운데 구원 얻는 거와 같다.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것 같다 했으니까 자기가 화재 났으니까 뭐 가지고 갈  것입니까?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한다 그 말이오. 자기 몸뚱이만 가지 뭣 가지고  가겠어? 이러니까 심판에서 발가벗겨 버리고 아무것도 없고 다 잘못됐으니까  부끄러운 구원 얻지 않습니까?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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