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대로 기쁨으로 드려라

 

1981. 2. 4. 밤 (수)

 

본문:고린도후서 9장 7절∼15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광고 하나 합니다.

 이제 그 동안에 이 설교한 것을 모두 이 청년들이 수고를 해 가지고 녹음을  해서 그걸 또 베껴 쓰기도 하고 타자로도 치고 이래서 이제까지 한 것을 그  중간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계속해서 정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  그것을 여러번 대조하면서 그래 정리해서 대충 정리가 됐습니다. 또 그전에  칠십사년도던가 그때부터 된 것도 재고돼 있는 것을 거의 했습니다.

 지금은 이걸 타자를 쳐야 되겠는데 어데 타자 잘 칠 수 있는 그런 분으로 우리  교회에 이 일을 좀 해 줄 그런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니까 혹 그런 분이  있으면 각 구역장에게 말을 해서 말해 주면 그저 다른 데 가서 일하는 것보다는  좀 박봉은 박봉이지마는 하나님이 또 축복을 하시니까 그 대신 축복 받으면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분은 또 연보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이 일을 해 달라고  구백만 원 연보를 한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돈을 가지고도 하고 또  연보한 돈을 가지고 이래 해서 지금 해 나오고 있는데 외국에 간 분들도 책을  만들어 가지고 보내 주기를 지금 목사님들도 원하고 또 가서 있는 장로님들도  원하고 이러는데 그걸 못 보내고 있습니다.

 타자를 좀 잘 치고 또 이 일을 와서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있거들랑은 자기  구역장에게 말을 해서 신청을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하는 일을 좀 도와 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이 봉독한 말씀은 우리가 그 본문을 보고 잘 깨달아서 우리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설교한 것과 같이 이제까지는 물질에 대한 그런  필요가 별로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대로 자꾸 이래 해 나가고 했는데 인물이 자꾸  양성이 되고 이제는 복음 운동이 차차 차차 제대로 돼 나가니까 물질도 이것  축복을 받아서 인재 축복받은 것과 같이 물질 축복도 받아야 되겠다는 그런  필요성을 느껴서 지난주에 연보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도 오늘밤에도 또  여게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이 구원에 보조를 맞춰서 우리 경제가  나가려고 하면 금년에 이미 있는 이 예배당만치 이만치 지금 배나 증축이 돼야  감당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수용하기가 곤란할 겁니다. 그러는 데에는 상당한  액수가 있어야 할 터인데 우리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그런 액수가 되리라고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하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데에는 하나님께서 공중에서 그런 것을 내려 주지 아니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계약하신 이 계약을 믿고 계약을 믿음으로 우리들이 성심 성의를  기울일 때에 믿는, 이 계약을 참되게 인정하는 이 믿음의 성심 성의를 기울일  때에 하나님께서 그 성심 성의를 기울이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셔서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금년에는 우리 서부교회에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고 또 물질에 축복이 올 수 있는 그 방편인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은 주실 수가 없는  것이 또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그런고로 말씀을 본문대로 여러분들이 잘 보고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했나 안  했나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보고 성경에 말씀한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가감도 안 하고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제가 읽어 내려가면서 해석을  하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되어서 한자리에 있어도 아주 안 믿는 사람도 되기 쉽겠고, 또 반  믿는 사람도 되기 쉽겠고, 온 믿는 사람도 될 수 있겠고 이러니까 조금 믿으면  그만치, 많이 믿으면 그만치, 하나님의 약속 지키시는 일이 우리가 지키는 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지켜서 상대하실 것입니다. 온 교인이 다 지키도록 하면  이 가속도로 이루어집니다.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자기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나는 아무래도 이 십일조는 드려야 되겠다.’ 또 주일 연보도 ‘나는 주일  연보를 금년에는 얼마씩은 작정해 가지고드려야 되겠다.’ 또 여전도회나  남전도회나 주일학교나 ‘이 연보는 우리 집에 아이는 얼마씩은 아마 정해서  지금 해야 되겠다.’ 그것을 공연히 자기 분수에 넘게 그렇게 연보를 하면 좋은  줄 알아도 그 연보하면 좋은 게 아닙니다. 분수에 넘게 하면 안 됩니다.

분수에 넘게 하면 좋은 줄 알아도 그 분수에 넘은 것은 그것이 삐뚤어진 것이지  잘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기 대해서 기뻐하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연보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거기 대해서 기뻐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도 계약을 지켜 주셔야 될 터인데 지켜 주지 안하면 연보하고 난 다음에  뒤에 무엇이 하나님의 도움이 오지 안하면 ‘공연히 설교가 헛말이다. 성경이  헛말이다.’ 별별 마귀가 시험을 줄 때에 그 사람이 시험에 들어 가지고서 도리어  역효과를 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사람은 자기 분수에 넘은 연보를  해 놓고 나중에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 이것 너무 지나치게 했다.’ 이래 가지고  연보를 속여서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베드로를 통해 가지고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속여서 이래 하느냐? 네가 하나님을 속였고 사람 속인 게 아니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 앞에 상당한 보응을 받으리라.’ 할 때에 그 자리서 즉시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습니다.

 아내가 들어옵니다. 아내가 들어올 때에 ‘네가 왜 너거 남편으로 더불어 그래  했느냐? 이게 바른 것이냐?’ ‘예,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바릅니다.’ ‘너도  하나님을 속여서 이렇게 하니 하나님을 어떤 분인 줄 알고’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만드신 것인데 하나님이 그 물질 탐내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엇 때문에 그것 하라 하는지 요다음에 보면 나옵니다.

 우리 성심 성의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주신 것 가지고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라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이렇게 자기 헛된 허영이나 허욕 가지고서 일시  자기 기분적으로 움직여 가지고서 자기 깊은 양심에 확고한 확정 없이  기분적으로 움직여 가지고 뒤에 가서 ‘아깝다. 후회된다.’ 이러다가,  베드로가 ‘너거 남편이 성령을 속여서 죽어서 지금 장사하러 갔는데 그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이 문 안에 들어오면 네가 죽으리라.’ 문 안에 들어올 때  그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메어다가 장례를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에 정한 것이 없이 옆에 사람의 충격으로 또 자기  기분으로 이렇게 연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자기가  기도해 보고 또 양심을 써보고 또 기도해 보고 양심을 써보고 이렇게 마음에  다지고 다져서 ‘아무래도 나는 연보는 요렇게 해야 되겠다.’ 자기 양심적으로  마음에 연구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심사숙고 해 가지고 이렇게 작정한 그  연보를 하라 이랬습니다.

 자기가 아주 깊이 깊이 자기가 여러모로 상고도 하고 또 연구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해야 됩니다. 심사숙고를 해 가지고서 해야 되는 걸 말합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에 연보는 한번 하지마는 자기 마음에 작정은 벌써 여러 날을  밤낮 그걸 생각합니다. ‘금년에부터, 이제까지는 십일조를 내지 못했지마는  십일조를 내는 것이 이게 성경 말씀이니까 내야 되나 안 내야 되나?’  ‘여기는 내자’ 훅 내어놓고 그다음에 또 마음이 변동이 돼 가지고서 ‘십일조  내니까 이것 십분지 일을 내니까 이것 생활에 곤란하다. 또 무엇이 아깝다.’  이래 돼지면 그 연보가 다 헛 연보입니다.

 그것을 깊이 깊이 생각해 가지고서 ‘아무래도 이것은 십일조를 안 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온 가정이 다 믿는 가정이라면 온 가정이 의논하고 의논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해 가지고 확정된 그 연보를 하라는 말입니다. “마음에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요 말씀을 어기면 안 됩니다.

연보는 돈이 중한 것 아니오. 우리 마음이 우리가 유물주의를 아직 벗지 못했기  때 문에 물질이 움직일 때 우리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과 물질이  하나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연보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래  금년에는 ‘이것 오일 연보는 얼마를 할까?’ 오랫 동안 연구해 가지고서, 저는  뭐 교회 돈이 교회 돈이니까 그 돈이니까 연보를 많이는 안 합니다. 오일 예배는  작년에는 삼천 원씩 하다가 올해는 ‘아무래도 이것 오천 원 해야 이  적당하겠다.’ 해서 오천 원으로, 당장 정하는 게 아니고 오랫 동안 기도하고  기도하고 ‘내가 이래야, 어떻게 해야 내가 요 분수에 내가 맞도록 하겠느냐?’  그렇게 연보를 오일 연보는 오천 원으로 정했는데 주일 연보는 아직까지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해서 종전대로 이만 원씩을 하고 지금 ‘어찌 해야  되나?’ 이걸 아직까지 허락을 못 받아서 작정 안  했습니다. 작정하지 안했어.

 이렇게, 이제 십일조는 ‘내가 십일조를 바칠 게 아니라 십의 이조를 바쳐야  되겠다’ 해서 그래 십의 이조를 벌써 십일조 회계가 떼서 바칩니다.

 뭣이든지, 주일학생이라도 ‘야, 네가 작년에는 월정을 십 원을 했는데 보자  우리로서는’ 경제면도 생각하고 이 아이의 신앙도 자라가고 이러니까 ‘이것  어째야 되노? 이십 원을 해야 되나? 아니다. 우리 경제가 작년에는 십 원을  했지마는 금년 경제로서는 그 십 원이 많다. 오 원을 하자.’  어쨌든지 자기 신앙 양심으로, 경제도 생각하고, 분수도 생각하고, 또 믿음도  생각하고, 자기 마음에 연보는 힘이 쥐어야 그게 성의가 기울어지지 그것 암만  자기가, 연보는 자기 힘에 힘들게 하는 연보가 그게 성의가 기울어집니다. 힘이  쥐여져.

아주 적게 하면서 ‘뭐 적은 연보라도 성의만 기울이면 되지. 주여, 성심 성의.’  암만 성의를 기울이려 해 봤자 자기에게 힘 안 드는 돈에는 성의가 기울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여러면을 생각해서 ‘이 아이에게는 금년에는 아무래도 주일  연보를 십 원을 하던 것을 이제는 뭐 과자 사 먹으라 하면서도 척척 십 원 이십  원 이래 주면서 연보하는 돈을 하루 과자 사 먹으라고 일용 돈 주는 요래 액수만  준다면 이 아이가, 연보는 한번 하루 과자 사 먹는 그것만 하면 된다 이러니까 이  심령이 어떻게 되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성의가 어떻게 되겠느냐? 아무래도 내가  하루 아이에게 일용 돈 쓸 것을 십 원을 주니까 이것은 안 됐다. 이것 십 원을  준다면’ 그래도 제 마음에 이 아이가 ‘어이쿠, 연보를 그렇게 한다.’ 그 연보  마음에 자기 마음에 아버지가 주는, 부모가 주는 것이니까 하기가 처음에는 ‘이  돈 과자 사 먹으면 많이 먹겠는데’ 이래 아깝든지 어쨌든지 자기의 마음의 힘이  쥐여지도록 해서, ‘뭐 이까짓 돈이야’ 마음에 성의 기울어지지 안하게 연보를  하지 안하고 자기 마음에 ‘연보가 좀 많다.’

이래서 하루 십 원 주는 그 아이면 그 아이에게 다문 일 주일 동안에 한 육십  원을 준다면은 육십 원 연보를 줍니다. ‘나 과자 사 먹는 데는 십 원밖에 안  주면서 육십 원을 준다. 하나님 앞에 이래 좀 많이 바치는구나. 육십 원이라, 요것  십 원 떼먹고 오십 원만 바칠까? 이것 십 원이 많다. 많다.’ 이래도 그것도  그다음에는 ‘아무래도 내가 이것 속여서는 안 되겠지.’ 어쨌든지 아이들에게  연보 주는 것이라면은 그 아이의 성심 성의가 하나님에게 기울어지는 것과  하나님 섬기는 일에 힘을 써서 힘들여 섬기도록 모든 면을 생각하면 그게 결정이  딱 됩니다.

 십일조도 자기가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서,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위해서, 참  예수를 믿어도 어떤 집은 어려운 집 있습니다. 이러니까 가족들이 한목 십일조  내도록 하기 위해서 십 년을 기도해도 그 십 년 만에 비로소 가족들이  ‘십일조를 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되도록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뭣이냐? 하나님은 십일조 내는 것보다도 가족이 십일조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십일조 내니까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십 년 동안 십일조 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간구로 이래 기도한  그것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신다 그말이오.

 또 이 무슨 건축 헌금이나 또 자기가 주일 연보 정하는 것도 자기도 ‘올해  얼마를  내가 정해야 되겠다. 내가 이러면 이것은 내가 공연히 이 분수에 넘는 일이  아니냐? 또 내가 연보할 때 성의 없이 내가 이래 하지 않느냐? 또 이것 주일  연보 이래 내는 건 내게 좀 주일 연보로 힘이 쥐이는 연보가? 이거는 어데  구석에 이래 내버린 돈같이 그까짓 돈이야 돈으로 여겨지지 안하고 힘이 쥐이지  않는 그런 연보를 하는 게 아니냐?’ 이래 돼지면 안 되니까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요것부터 여러분들이 지켜야 됩니다.

 마음에 정한 것, 자기 마음에 양심도 쓰고, 이러면 하나님이 어떻겠느냐? 자기 또  신앙의 분수에 어찌 되느냐? 자기 정도에 어찌 되느냐? 자기 인격으로, 자기  위신으로, 자기 직책으로, 모든 면으로, 자기가 다른 데는 돈을 쓰는 모든 면과  모든 면을 저울질 해 가지고 모든 면을 비판하고 평가한다 그말이오.

 자기 경제면에 대해서 모든 면을 비판하고 평가하면 ‘요것은 해야 되겠다’ 딱  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으면 그것이 명중입니다. 거게 축복이  옵니다. 그것을 먼저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제 연보 ‘아, 연보 잊어버렸다.’ 이 주머니 보니까 돈이 있으니까 얼마인지  모르지만, 또 그리 안 하면 그만 잊어버리고 그만 그냥 들어와 버리고. 이것이  하나님 섬기는 법이 아닙니다.

 첫째 말하기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마음에 정해져 가지고  할 일이지 그냥 임시 생각나니까 훅 하는 그런 것은 연보가 아닙니다.

 ‘내가 오일 예배는 연보를 얼마를 해야 되겠다.’ 오랫 동안 기도하고 마음에  작정할 것, ‘내가 주일 연보는 얼마를 해야 되겠다.’ 마음에 작정하고 기도할  것, 기도하고 작정할 것.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이런 돈 저런 돈 다  쓰는데 어쨌든지, 돈을 여게도 저게도 쓰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합디다,  작정하기를. ‘내가 뭉텅이 돈을 쓰는데 뭉텅이 돈으로서는’ 뭉텅이 돈을 쓸  데가 있지 않습니까? ‘뭉텅이 돈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드린 뭉텅이가 제일 큰  뭉텅이를 드려야 되지 하나님 앞에 드린 뭉텅이는 둘째 뭉텅이고 딴데 학비나  뭣이나 딴데 들이는 뭉텅이를 첫째 뭉텅이가 되면 안 되지. 첫째 뭉텅이 제일 큰  뭉텅이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지.’ 그 뭉텅이 다액수로도 그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가 일생 생활하면서도 ‘자, 아이들의 학비는 이래 드는데’ 그것도 주를  위해서 물론 하는 것이지요. `이래 드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연보는 이렇게  했으니’ 계산을 댑니다. ‘내가 자녀에게 들인 돈은 얼마고 하나님 앞에 드린  돈은 얼마라’ 이 계산할 때에 하나님 앞에 드린 돈이 액수가 적으면 기가 찬다  그거요.

 ‘주여, 내가 이것이 이것들이 자라 가지고 하나님께 몸과 생명을 바쳐 드리면  이것이 부끄럽지 않겠지마는 이것 이래 가지고서 그대로 커서 평신도 노릇  한다면 내가 경제면에 대해서는 주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말없는  가운데에 자기 혼자 따지고 따지고 계산해 가지고서 이렇게 마음을 들여  가지고서 이렇게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이러니까 ‘아이구, 안 됐다. 이것 하려 하니까 그만 나로서는 미치지 못한다.

이러니 최소한도의 연보하는 법을 내가 시행하겠다.’ 이 십분지 일 연보하는  것은 제일 최소의 연보입니다. 제일 작은 연보요.

 이래 가지고 ‘그저 나는 십일조 하나밖에는 못 하겠다.’ 이러니까 십분지 일을,  자기 수입의 십분지 일, 자기가 하루 만일 육천 원 벌었으면 육백 원, 육천 원  벌어서 육천 원 현금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왔으면은 이다음에 계산해도 안  됩니다. 그것 십일조, 육천 원이면 육백 원이니까 딱 떼서 종이에 돌돌 말아  놨다가 그 이튿날 새벽에 오든지 뭐 언제 오면 연보 주머니에 넣어버려야 되지,  궤 안에 넣어버려야 되지 가지고 있으면 이것 가지고 주 모아 놨다가 나중에  보니까 다른 돈은 써서 간 곳이 없고 십일조 모은 것은 모여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 보이요. 공연히 나중에 인색한 마음이 듭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 넣기는 넣으면서도 아까움으로 넣으니까 그  연보가 헛 연보라 그말이오.

 또 이걸 십일조 거석 안 하고 돈이 재여 가지고 있으니까 아직까지 연보 넣지  안하고 제게 있으니까 ‘이걸 가지고서 뭐 내가 써도 되지 않겠느냐?’ 제가  사정으로서 ‘요 사람이 어렵다 하니까 요 돈 가지고 좀 구제도 해도 되지  않겠느냐? 조래도 되지 않겠느냐?’ 그것을 내기는 내 가지고 사용할 때는 제  사사로운 사정대로, 사정대로, 사사로운 사심대로 쓰게 되다 보니까 이것도 그만  온전한 십일조 연보가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걸 즉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십일조 이래 하고 난 다음에 다른 연보는 자기가 빈약하면 ‘아이고, 나는  십일조만 하고 딴것은 못 하겠다.’ 이러니까 부득이 가족들이 모여 가지고  ‘우리는 십일조만 내고 다른 연보는 부득이 낼 힘이 없으니까 주일은 우리 그만  백 원이든지 이것은 아예 그만 우리가 모자라니까 여게 대해서는 연보답게  연보를 못 하고 십일조 연보만 하고 이것은 성의 없이 이래 하자.’ 이래 하는  사람,  요거는 요대로라도 요 가운데 마음에 정해 가지고서 얼마로, 우리로서는 그러면  십 원이면 십 원, 오 원이면 오 원 우리 분수에 맞도록 하면 되는 것이니까 요래  해서,  주일 연보 감사 연보 요렇게 하는 것, 또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 요것은  십일조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래서 성경에 보면 십일조가 있고 십일조가  아닌 십일조의 삼분지 일이 있습니다. 십일조의 삼분지 일. 그러면 삼 년 만에  십일조 낸다 말이오. 삼 년 만에 십일조 내도록 해 가지고 그것 가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도 하고 또 교역자, 하나님의 종들 대접도 하고, 또 그것 가지고  오는 손님 대접도 하고 요렇게 하는 요것이 성경에 딱 정해 가지고 있습니다.

십일조 가지고 그것 못 합니다.

 또 자기가 집회 갈 때에, 집회 갈 때에 어떻게 하느냐? 그것도 십일조 삼분지  일입니다. 십일조의 삼분지 일, 그러면 삼 년 만에 십일조 떼는 택이지요?  십일조의 삼분지 일 택을 떼 가지고 그것은 딱 모아 놨다가 하나님께서 일 년에  너는 금년에 아무 데 가거라. 너거 가족들이 아무 데 가 가지고 며칠 동안 거게서  요것 가지고 차비하고, 요것 가지고 먹고, 요것 가지고 쓰고, 요것 가지고서 며칠  동안 하나님이 정한 장소에 정한 날짜에 온 가족이 가 가지고서 하나님 섬기면서  은혜 받는 일을 꼬빡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왜 그렇게 하느냐? 십일조는 지난주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기 위해서, 그걸 하면 도적 안 하는 게 되고 그것 안  하면 도적하는 게 됩니다.

 그것은 왜 도적하는 게 되느냐? 하나님의 것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노력해 번 것도 생명을 나에게 줬지, 값받고 생명 줬습니까? 생명 줬지, 힘 줬지,  지혜 총명 줬지, 또 그 분위기를 줬지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나는 주신 그걸  활동해 가지고 이래 했으니까 이것 전부 하나님이 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요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법칙에 십분지 일을 내고 십분지 구는 나에게 쓰라고  하셨기 때문에 십분지 일을 낼 때에 하나님의 것에 십분지 구를 받는 그것이  되어지고 십분지 일은 하나님에게 약속대로 했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그 나머지기는 쓸 수 있도록 속했다 이래, 속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신 것을 속했다. 이 십일조로 속해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리 최소의 연보라도 십일조는 내야 됩니다. 내고 그 나머지기는  또 자기의 마음의 원대로 해서 이래 하고, 그게 뭣이냐?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렇게 드려서 하나님이 하늘문을 열고 네 창고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시험해 보라” 했어.

 딴데는 하나님을 시험하면 벌받습니다. 시험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연보에  대해서는 이게 제일 일학년이기 때문에,  일학년이기 때문에 물질 문제가 제일 저급이요 쉬운 것이오. 제일 일학년이오.

이러기 때문에 물질면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시험해 보라 이래.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되는가 안 되는가.

 그러기에 이 십일조에 대해서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면 절대로 경제에  대해서 궁핍은 없습니다. 자기는 십일조를 냈다고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이 볼 때는  엉망진창이고 더러워서 볼 수 없는 그러니까 그렇지 온전히 십일조를 낸  자에게는 절대로 경제에 대해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 그것이 모든 교회  통계입니다.

 신앙을 보면은 이북에서 있는 그 신앙가들이 물질의 은혜를 받았고 이남에 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은혜를 받았고, 또 대구에 있는 그 신앙들은 그들은 성경을 읽는  성경의 은혜를 받았고 이 경남에 있는 기도의 은혜를 받았고 다 은혜가 모두  각각 달라. 그러니까 그것 모두 말하자면 이리저리 치우쳐 기형적이지요.

 이런데 이북에 있는 그 사람들은 으례히 십일조를 냅니다. 또 연보 내는 데  대해서는 아예 인색하지 안하고 으례히 내야 될 줄로 알고 그럽니다. 이러니까  경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을 따라 못 갑니다. 이남 사람이 따라 못 가요.

 가만히 지방으로 생각하면은 저 남해나 그런 데는 아주 물질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물질에 대해서는 참 인색해서 물질에 대한 것은 성경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교회는 항상 곤란하고 그 교인들도 항상  가난합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월남한 사람들이 물질면에서는 다 풍성하게  삽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연보에 대해서 하나님 법대로 하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주실 수가 없어. -이제 이것 말하다 보면  지금 딴데 걸 못 하겠는데. 그만 하나만 말하고.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정한 대로 할 것, 요것이 첫째  중요합니다. 그다음에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자기가 마음에  정했지마는 인색하면 그것은 마음에 정한 그것이 잘못 정했다 그말이오. 마음에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인제 확정 안 됐으면 것은 그다음에  이런 것들이 다 나옵니다. 인색함이 나오요. 또 억지도 나오요. 억지 나오는 그걸  누가 하라 합니까?  이 공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개인에 ‘너는 연보 이래 해라. 저래 해라.’  자기에게 참 아주 그런 것을 초월할 만한 그런 밀접한 친밀한 관련이 있으면은  권면할 수 있지마는 그렇지 안하면 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정해야  되지요. 공적으로 이렇게 진리를 가르쳐만 주지 ‘네가 어떻게 해라 얼마 해라’  그렇게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확정된 것이면 인색함이 없도록 확정이 돼야 되고 또 억지가 안 되도록  확정이 돼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자기가 즐거워 낼 수 있도록 돼야 그게 마음에 확정이라 말이오. 마음에 정함이라  말이오.

그러면 마음에 확정을 가지고 내는데 확정해 가지고 내는 그것이 확정이 됐나 안  됐나, 참 자기 마음을 써 가지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가지고 모든 면을  비판해서 ‘요것은 해야 되겠다’ 요렇게 된 그것은 인색함이 안 나와야 되는  것이고, 그리 바로 됐으면 인색함이 안 나옵니다. 또 억지로 된 그게 안 나옵니다.

또 즐거움으로 내게 된다 말이오.

 자기가 오랫 동안 이래 가지고 ‘요렇게 해야 된다’ 하면 그 연보에 대해서는  즐거움, 요것이 있어서 내야 하나님이 그걸 받으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이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 우리 인격을 받는  것이 당신이 문제라 말이오.

 이런데 연보하는 데에 마음에 정함 없이 하는 그것도 하나님을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는 것, 또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그것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 또 부득이해서 억지로 하는 그것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  인색도 없고 억지도 없고 마음에 작정해 가지고 내는데 마음에 즐거워 내는 것,  ‘기쁘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니, 하나님 대접하는 것이니 기쁘고, 자기가  도리를 깨달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서 물질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할 일을 바로  하게  되니까 기쁘고, 요 모든 면에 깨달음 가지고서 기쁨으로,  요렇게 요 기쁨은 뭣이냐? 요 기쁨은 자기의 인격이 그 물질에 다 들었다  그말이오. 요 기쁨은 모든 자기의 인격의 모든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모든 면을  깊이 깊이 널리 널리 생각해 가지고서 자기가 참 요 확정이 돼 가지고서 원하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대접할 때에 그것이 연보라,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연보를 즐겨 받으신다 요랬습니다. 요것이 있어야 돼요.

 우리 사람도 말이요, 어데 가서 대접할 때에 그 사람이 없는 개떡지비라도  자기로서는 성심 성의를 다 기울여 가지고서 이렇게 대접할 때에 인격 있고  부자는, 인격 있고 부자는 그걸 받겠습니까, 그걸 받겠습니까 개떡지비를 끓어  주는 그걸 받겠습니까, 어떤 부자가,  ‘에, 공연히 와서 푸대접 하잠도 안 됐고 이러니까 그래도 뭐 대접을 허무하게  해서도 안 될 것이고 이러니까 저 고등 요리집에 올라가서 한 돈 십만 원어치  상을 사 가지고 대접을 하자. 하지마는 아깝다.’ 자, 그러면 그것을 만일 그  손님이 안다고 하면 개떡지비를 받겠습니까 십만 원짜리 상을 받겠습니까? 그  사람이 거지 같으면 그렇지마는 아주 부자고 권세 있고 그까짓 것 백만 원 하는  것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은 십만 원짜리 상을 받겠소  개떡지비를 받겠소?  자, 십만 원짜리 상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개떡지비 그걸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손 들고, 개떡지비를 받겠다고?  여러분들은 어때요? 나는 개떡지비를 받겠소. 내가 암만 배가 고파도 개떡지비  그것 받지 십만 원짜리 그것 침을 뱉아 버릴, ‘나는 배 불러 안 먹어.’ 하도 그  사람이 거석하고, 나중에 그것 알아챘다 말이오. 눈치를 알아채고서 ‘이것  아무래도 이것 좀 인색한 마음 알았는갑다.’ 알아 차리고 하도 그래 쌓아면  ‘예.’ 하나 들어 가지고서 그 사람 위해서 요걸 들고서, 입에다가 그저 조그매  반 따개서 요래 딱, 과자 같으면 반 딱 거석해 가지고 입에 씹어서 먹고 종이 내  가지고 똘똘똘 싸 가지고 보겟트 넣고 ‘이렇게 많이 크게 차려서 이것 너무  이것 과비를 했습니다. 뭐하려고 이렇게 했습니까?’ 인사는 해 주지만 속으로  ‘네 인색한 그런 대접, 억지 대접은 나는 받지 않는다.’  그 마음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돌아가면서 ‘그 사람 오늘 돈을 십만 원이나  썼는데’ 그러겠습니까? ‘십만 원이나 나 때문에 썼으니까 내가 무언중에 어느  모퉁이로 갚아도 이십만 원을 내가 갚아 주지. 십만 원 썼으니까 이십만 원을  내가 어느 모퉁이라도 이십만 원 갚고 만다. 내가 절대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억지로 십만 원 쓴 걸 내가 그냥 두지 않는다.’ 그 빚을 꼭 갚고 말지 무언중에  갚고 말지 그냥 말지를 안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소. 하나님은 더욱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또 이 사람이 ‘뭐 내 성의만 들이면 되지.’ 그 사람이 그래도 자기 성의껏  들이면은 명태국이나 끓이고 쌀밥은 한그릇 하고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는 그만한  정도인데 ‘뭐 어데 많이 먹어 좋은가? 좋은 것 해 좋은가? 성의지.’ 개떡지비를  이래 끓이면서 ‘성의, 성의면 되지, 성의면 되지. 성의면 되지.’ 하면서  개떡지비를 내놓습니다. 그러면 거기 성의가 들었습니까 개떡지비 안 들었습니까?  개떡지비가 성의 들었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보이소. 성의가 들었습니까?  개떡지비에 성의가 들었습니까? 성의가 안 들었지요? 성의가 안 들었습니다. 진정  그 손님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고 간절한 성의가 들었으면은 명태 한마리  사오고 쌀밥 한그릇 하지. 그렇지 않겠소?  그러기에 액수라는 것은 이것도 우리의 성의를 기울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오.

 그러기 때문에 연보할 때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정한  대로 할 것이요” 그러면 다 됐습니다. 정한 대로 할 것인데 이게 잘못됨이  뭣이냐? 마음에 정해 가지고서 마음에 깊이 그 마음에 새기고 새기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해서 ‘요래 내가 해야 되겠다.’ 확정을 지워 가지고서 요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 참 거게 대해서는 인색한 마음이 없을 것이고, 억지의 마음이 없을  것이고, 즐거워 냄이 될 것인데 마음에 확정이 안 된 것을 내기 때문에 인색한  것이 거게 따라붙고 억지가 따라붙고 또 즐겨내지 안하고 마음에 즐거움이 없이  내는 그것이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생각합시다.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래 해야 주님이 그 연보를 받으신다.

그러면 엿새 동안에 모든 걸 만드신 분이 뭐 없어 그렇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우리 인격이 같이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요렇게 마음에 확정을 지워 가지고서 즐겨내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를  사랑하시는데 그러면 이 하나님은 뭣이냐? 공연히 거지 대접을 했다가 대접만  했지 밥값도 못 받는 것처럼 그런 하나님이십니까?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어떤 하나님이냐?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부자도  만드시고, 저 천한 자를 존귀케도 만드시고, 존귀한 자를 팍 끌어내루기도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면 모든 일이 술술 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를  멸시했다가는 자기가 당장 매맞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자를 제가 자꾸  돕는다고 이랬다가는 또 매 맞습니다. 하나님이 세밀하신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보고 믿는 자는 복이 적고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이 많다  이랬습니다. 이 말씀이, 그 말씀이 뭣이냐? 알고 믿는 자는 복이 적고 모르고  믿는 자는 더 복이 있다 하는 요런 말과 같은 말이 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말이지요.

 어떤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지나가다가 참 인가가 없어 시장기가 딱 드는데 아주  배가 고픕니다. 아주 시장기가 들어서 ‘아무래도 이것 좀 욕을 보겠는데’  싶은데, 그래 가니까 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에 가서 말하니까 ‘먹을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만 박대를 해서 보냅니다.

 그 밑에 내려오니까 또 집이 하나 있는데 거게서, 오니까 ‘아이구, 그렇습니까?  예, 여기 뭐 있습니다.’ 하면서 흰죽을 한그릇을 주는데, 흰죽을 갖다 주는데  먹으면서 가만히 먹고 나 들어보니까 안에서 아이들이 그 흰죽 그걸 그래 가지고  온 식구 한 그릇 가지고 둘러 마시고 지금 갈라 마시려고,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  말이오. 이랬는데 식구들이 지금 여럿이 한 모금씩 마시려 하는 그걸 이 손님을  대접했다 말이오. 이 손님이 그걸 알았다 그거요. 감사하다고 했는데 이분이 큰  부자라. 아주 대거부라.

 가 가지고서 ‘내가 참 그때 그이가 아니더면 내가 먼 길에 오다가 엎어져  죽을런지도 모르겠는데 이것 생명을 구원한 사람이다.’ 이래 놓으니까 당장에 큰  재산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그 근방에 좋은 논을 전부 사서 당장 그만 몇백  석짜리를 딱 사 가지고 떡 갖다 앉혀놓는다 말이오.

 이러면 자, 그 사람이 ‘저 사람이 부자니까 배고픈데 저렇게 지금 저런 때 요때  한번 대접을 하면 참 요거는 요긴하게 지금 값을 비싸게 줄 것이다.’ 요렇게  알고  그 사람이 대접한 것보다 모르고 대접하는 것이 더 좋다 말이오.

 ‘배고픈 사람을 이것을 대접해야지. 이 시장하다 하니까 우리가 여기 뭐 하다  못해 나물 뿌리를 먹어도 이분이 시장한 손님이니까 대접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면 더 그게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말이오.

 믿는 사람도 ‘내가 하나님을 섬기니 그저 어쩌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내가 살아야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뭣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가지고 어떻게 살라고 한 것 그것을 그 아래 보면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넘치게 하시나니” 뭐 조그매 들였는데 그 몇십  배나 이렇게 넘치게 줍니다. 성경에 제일 많이 말한 게 몇 배 말했소? 백 배  말했지요?  “하시나니 이는” “이는” 이는 왜 이러냐?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너희로 하여금 점점 넉넉해져서, 처음에 조금 있는 게 또 좀  넉넉하고 더 넉넉하고 더 넉넉하고 점점 넉넉해져서,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래 가지고서 조그만한 것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것은 너만 위해 살 것이 아니라 네게 있는 것을,  심으는 씨 양식 두 가지처럼. 이제 너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은 너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도록 이렇게 주신 것인데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은  씨라고 말했고 자기 위해 쓸 것은 양식이라고 말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요렇게 요 마음을 하나 주시니까 옆에 사람 배가 고파도 자기만 딱  먹고 모른 척합니다. 하나 주니까 요게 저 먹을 줄 모르고 다른 이만 준다면  하나님이 더 감동을 받지마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 소리 안 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랬습니다. 자기와 동등으로. 요게 똑 성경입니다.

 주니까, 나쁜 사람에게 줬으면은 그것 가지고서 그만 저 먹고 남는 것 있으면  노름을 하든지, 그리 안 하면 무슨 자기 무슨 사치를 하든지, 그리 안 하면 무슨  관광을 가든지, 그리 안 하면 못되게 쓰든지 이럴 터인데 요것은 주니까 저와  다른 사람에게 다 그것을 유익되게 딱 쓰니 하나님께서 나쁜 자에게 주는  것보다도 ‘요걸 누구한테 맡길꼬? 요것한테 맡겨야 되겠다.’ 맡기니까 또  그렇게 합니다. 하니까 또 그다음에 또 맡기고 맡기고 이러니까, 어찌 되느냐?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착한 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이렇게 해서 조그만 것 했는데 좀 그다음에는 더 주니까 더 잘하고  하니까 자꾸 많이 줄 수 있다 말이지요.

 이러다가, 주니까 착 홀쳐버리고 그다음에는 그만 딱 입 씻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이놈아, 네가 그렇게 할 때 내가 줬더니마는 네가 이번에는 그만  홀쳐버리고 다시는 그 짓 안 하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 그만입니다.

 그것 하나만 차지하지 그 다음에는 못 차지하요.

 이래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 가지고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착한 일이 넘치도록 하니까 또 주고 넘치게 하고 또 더 주니까  더 많이 하니까  또 더 많이 해서 넘치고 이렇게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요것 때문에 우리에게 연보하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하게 하시는 방법이 뭣이냐  하면은 연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하게 하시는 방법이 연보요.

 또 자기가 있는 것 가지고 착한 일 하고 나니까 또 그다음에 또 착한 일 더  하게 되고 더 하게 되고 착한 일을 넘치게 자꾸 이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연보 제도입니다.

 이것이 그러면 연보가 하나님이 가져가느냐? 그것 아니오. 여게 보십시오.

“하시나니 기록한바 저가” 9절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서  없는 자와 같이 쓰라고 했는데 그것 안 쓰면은 저는 도적질했습니다. 없는 사람은  뒤에 ‘내 모가치를 네게 줘 놨는데 왜 네가 내 모가치 안 냈느냐?’ 시비할 수  있습니다. 이다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오.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어떤 사람은 벌써 몇 사람 모가치를 자기에게 지금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몇  사람 모가치 받았으니까, 내가 열 집이 같이 살고 있는데 아홉 집은 거지요  내게는 아홉 집을 도울 만한 것이 내게 있어. 그러면 내게 있는 것이, 내게 있는  것이 그 아홉 집 사람의 것을 나에게 뭉쳐서, 내가 제일 신임하겠다 싶으니까  하나님께서 뭉쳐서 나에게 맡겨놓은 것이오. 보관해 놓은 것이오. 내게 있는 것은  아홉 사람의 모가치가 내게 와서 보관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내것인 줄  알고 나 혼자 써버리면 그 사람들에게는 빚을 진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떼먹은  도적질한 것이 된다 말이오.

 그것을 주니까 이게 신실히 하지 안하고서 그만 저만 사복을 채워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동리에서는 이 사람한테 줘서는 안 되겠다.’ 주인을  갑니다. ‘어느 놈이 좀 나을꼬?' 약한 놈 한 놈 봐 가지고 거게 갖다 줍니다.

주니까 그게 작아도 힘대로 그 힘껏 성의껏 그래 가지고서 자기와 다른 사람과  같이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요것이 요런 정신을 가지고 합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또 좀 줘 보니까 또 그렇게 하고 하니까 ‘신통하다’ 또 주니까 또 보니까 그래  하니까 `신통하다.' 얼마 안 가서 그 사람이 그 동리에 제일 큰 부자되고, 제일  거석한 것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모르니까 이 시골에 가면 부자의 자식이 망하고 그 가난한  자식이 부자되고,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기를 ‘적선을 한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 악을 쌓은 이에게는 반드시 남은 근심이 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런 것을 다  지키고 계십니다.

 제가 이런 말 들었습니다. 경주 최가들이 재산이 지금도 계속해서 경제가  유지되고 있답니다. 경주 최부자라 하는 그 성받이가 있는데 그 최가들이 있는데  그 경주 최부는 흉년이 되면은 논을 안 사요. 흉년에는 논을 안 사요. 흉년에 논  산 일이 없었어.

 악한 부자는 딱 재어 놨다가 ‘흉년이 안 드나? 흉년이 안 드나? 곳간에 하나  착 몇해 양식을 모아 놨다가 흉년이 되면은 ‘이때는 얘들아, 쌀 한 되면 논 한  마지기도 될 수 있다. 한 가마니면 뭐 한 마지기야 으례히 된다.’ 이래 가지고  딱 조아 붙여놓고 사람이 굶어 죽을 지경이니까, 죽을 지경 되니까 ‘그러면 뭐  사람이 굶어 죽겠으면 논이라도 팔아먹어야 되지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팔려  해도 살 데가 있습니까?' ‘좀 다니며 팔아보지.' `아무데도 살 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부자댁이 좀 사 주십시오.’ ‘허허, 그것 참. 우리는 그것 뭐 필요  없고 살 마음이 없는데.’  ‘죽을 지경이니 어쩝니까? 사십시오.’ 이러면 ‘아나, 광 문 끌러 가지고서  이분에게 쌀 한 가마니 줘라. 이것 참 하기 싫은데 억지로 지금 하도 곤란하다  하니까 지금 하는구만. 우리도 양식이 없는데.’ 이러면서, 똑 그게 놀부야. 이제  쌀 한 가마니 가지고 논 한 마지기 삽니다. 이래 가지고 그만 그때 흉년 들 때에  발칵 오르는 부자가 있어. 그 부자는 얼마 안 가서 망하고 비참하게 망해.

 그래 번 돈 가지고서 아들들이 시비하고 재판하고 나중에 서로 죽이고 영감  죽을 때 가 가지고는 막 돈 내놓으라고 자녀들이 논 문서 내놓으라고 다 죽어 숨  넘어가는 송장을 막 서로 흔들어서 나한테 허락해 달라고 이래 가지고서 죽음도  옳게 못 죽소.

 그러나 경주 최부들은 흉년 든 해는 논 사는 일이 없어. ‘안 된다. 이렇게 모두  다 곤란당하고 있으니까 이럴 때는 어쩌든지 양식을 흩어 같이 먹고 살아야지.’  그때는 이웃의 가난한 사람에게 전부 양식을 다 기미를 먹이요. 다 기증해서 다  이래 공으로 줘서 이렇게 먹이고, ‘흉년에 경주 최부들은 논 사는 일이 없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또 말하기를, 이래 거석하면 옷을 말이요, 내가 그런 말 들었어. 옷을 뭐  두덕두덕 집어서 이뭐 헌 걸 또 집고 또 집고 이러니까, 말하기를, 많이 집었으면  ‘이것 경주  최부의 며늘네 옷 같다. 경주 최부의 며늘네의 옷 같다.’ 또 인제 옷을 삶으면서  좀 솥이 작고 옷이 많아서 넘는다 말이오. ‘이것 경주 최부 며느리의 옷  아니가?’ 이런 말 내가 들었다 말이오.

 그것 뭣이냐? 원청 두덕두덕 집어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옷을 집어 놓으니까  속옷이 어떻게 커놨는지, 자꾸 두더기를 집어 이어 놓으니까. 그렇게 살면서 다른  사람 구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부자를 주지 안 주겠어? 이러니까 그  재산이 끝이 안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하시는 것은 자기만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돈이 있고, 돈이 있으면 모든 사람의 모가치를 자기에게 줬소. 이 돈을 준  것은 돈 없는 사람을 내가 나도 내 역량 있는 대로 나도 살고 같이 동등으로  살도록 이래 구제하도록 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나는 권세가 있고 권세  없습니다. 권세 준 건 이 권세는 ‘이 권세는 권세 없는 사람들과 나와 이 권세를  같이 쓰라고 줬다.’ 자기는 지식이 있으면 지식 그걸 가지고서 ‘이 지식을  줬으니 나는 이 지식을 나만 쓸 게 아니라 모든 사람 같이 써야 되겠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시골에 사는데 그 동리가 모두 무식해요. 무식하고 한 사람이  유식해요. 이러니까 그 사람이 ‘글을 다 각각 배울 수가 있는가? 그런데 나에게  글을 준 것은 이 동리에 모든 글 없는 사람을 위해서 살게 한 것이니까 내가 글  있다고 나만 할 수가 있느냐?’ 이러니까 그 사람이 밤잠을 못 자도 편지 써  달라 하면은 그 편지 다 써 주고, 또 자기 눈이 어두운 것 그 사람들이 가져오면  그것 다 머리 짜매 다 보고, 안 믿는 사람도 그래 하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위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특별히 주의  피로 값주고 사 가지고, 이 타락해서 어두운 세상에 우리를 빛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 모르는 그걸 우리로 하여금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빛이  오면 우리가 다 환하게 모든 걸 다 알지 않습니까? 빛이 없으면 깜깜해 모른다  그말이오. 깜깜한데 우리의 생활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이 표본으로 세웠다는 것이 세상에 너희들이 빛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제 우리가 한 가지는 했습니다. 이 전도하는 것, 그 말이 ‘서울에  어떤 교회는 사업으로 교인을 모으고, 어떤 교회는 그 교회는 정치를 가지고서  사람을 모으고, 서부교회는 호별 방문해 가지고 개인 전도 가지고 사람을  모은다.’ 그러는데, 이름은 좋은 이름이오. 어쨌든지 이것 지금 바로 됐습니다.

 학생들이 가 가지고 아무 이득 없이 새벽에 가 가지고서 한번 가서 욕하면은 또  나와 가지고 또, 무슨 정금덩이 얻으러 가는 것처럼 이래 가지고서 오만 모욕 다  당하고 오만 굴욕 다 당하고 오만 속 다 썩히면서 이러면서 구원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구원받았으니 이들을 이래 구원하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면에 은혜를 준다 말이오.

 이랬는데 아마 우리에게 지금, 벌써 우리가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연보에 대해서,  지금 시간이 없어 그 다음에 그치겠는데 그것 여러분들이 가서 보고 요대로 모든  것을, 권세든지, 지식이든지, 평안이든지, 나는 건강해 평안하다. 병신이 있습니다.

건강 준 것은 그 병신과 내 건강을 같이 나눠서 하라 그말이오.

 그래서 여게 말씀하신 끝에 요것만 말합니다. 12절에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섬기는” 우리가 이것 이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것은 뭣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해라. 이웃이나 네나 같이 사랑해서 네가 이웃 사랑  네 몸같이 해서 네게 있는 것은 없는 사람에게 줘서 같이 모든 사람으로 같이 잘  살도록 이렇게 봉사,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 이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킵니다. 하나님이 이것 시키지 당신이 가져가는 것 아니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주시는 걸 당신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대로 참  그에게 복을 줄 수 있고 맡길 수 있을 만치 그에게 주니까 모든 것 가지고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을 이렇게 봉사하고 섬겨서 모든 사람이 다  복되도록 이렇게 하니 하나님이 그것 기뻐하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하시는 대로  쓰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니까 하나님 섬기는 것이 된다 말이오.

하나님 섬기는 것이 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되고, 그것 가지고 이웃을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니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제 우리 믿는  사람을 인해서 감사하게 되고, ‘저 반사가 이 추운데 돈이 되나 뭣이 되나?  이런데  이것들을 가자고 이래 가지고서 토큰까지 들여 가지고 데리고 간다. 어린아이  그런 건 어려서 너무 말썽부려서 안 된다고 이러니까 이것 업고 간다. 이래  가지고 예배당에 데리고 가 예배보고 나서 또  업어다 준다. 그것 참 아무래도 참  그것 참 너무 고마운 일이고 그것 참 무슨 일인가?’ 암만 봐도 돈벌이나 돼  그런가 하니까 돈벌이도 안 되고 이러니까 그들이 감사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감사해서 ‘이게 참 아주 사람 사는 노릇이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자신은 그리 함으로 인생 기쁨을 누리고, 인생 기쁨을 받습니다. 본인이  인생 기쁨을 받소. 본인이 인생 기쁨 받아,  하나님 보시니까 기뻐하셔, 만족이 돼, 하나님 법도대로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참  그에게 얼마든지 줄 수가 있어, 모든 사람이 감사해,  이러니까 “모든 일에”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꾸 줘서 넘치게 넘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땅위에 두신 것인 것을 우리가 알고 요 법을 지키면 아마 우리  서부교회 이제, 인간 전도에 우리가 부요해서 전국에서 서부교회 이렇다고 해  가지고서 뭐 시찰 오는 사람들이 많이 왔고 큰 교회들은 다 왔다 갔고 또 가서  뭐 삼배 사배 부흥이 됐답니다. 이러니까 물질에 대해서도 이제 주실 것입니다.

 그때 그분들이 와 가지고 ‘우리 교회 같으면 이 서부교회 이것 뭐 사분지 일도  수용 못 할 것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그분이 하기를 ‘여기는  장소가 너무 협착하니까 이걸 좀 넓게 할 수 없습니까? 만일 물질이 꼭 부족해서  그러면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갔어요. ‘제가 도와서라도 그걸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와서 시찰하러 온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하나 말해서,  그 사람이 그뭐 참 도울 수 있으면 이래 저래 돕겠습니다. 그렇지마는 돕는 것은  이 서부교회 모욕 주는 것이기 때문에 말만 그래 하고 갔다 말이오.

 그랬는데 앞으 하나님께서 이 넉넉하게 해서 사람이 자꾸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불러서 우리의 사랑을 가지고서 이렇게 노고를 해 가지고 부르니까 하나님이 또  여게 물질도 줘서 넉넉히 예배볼 장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 구원도 잘 되고, 또 우리 부자도 되고, 또 교회도 넉넉해지고 이것이  금년에는 있으리라 제가 생각이 됩니다.

 이거는 제가 먹은 마음이 아니고 저도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내 마음이  아니라 무엇이 나올 때 그대로 합니다. 뭣이 나올 때 그대로 하요. 그대로 하는데  금년에는 그만 주일학교 반사를 지금 칠백오십 명을 내게 생각이 나고 내,  하나님의 소원을 내 소원으로 줘 가지고 우리에게 그렇게 한다고 안 했소?  “하나님의 기쁘신 소원을 우리 속에 두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그래 되고, 중간반은 사십 명 반사를 말했는데 지금 이십칠 명은  됐습니다. 십삽 명이 지금 아직 부족합니다. 또 남녀 권찰님은 제가 여반 백육십,  남반 열, 백칠십 말했는데 아마 백칠십은 넘어갔을 겁니다, 넘어갔습니다.

 자, 다 같이 한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도 여기서 결심하고 모든 일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능히 모든  것을 넘치게 해 주실 수 있는 이 하나님, 이분의 계약을 상대해서 우리가 요대로  지켜 모든 일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 이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받아 모두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는 서부교인들이 되어 모든 일에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인격적으로 사랑으로 모두 넘치게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도록  이 시간 깨닫고 작정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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