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구원을 생각하라

 

1987. 3. 10. 새벽 <화>

 

본문:마태복음 24장 34절∼43절 상반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37절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인자의 임함이라 말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도 노아 홍수 때와 같으리라.

무엇이 같은가? 사람들이 그때에 선지자는 노아가 선지자인데 노아가 하나님의 그 경고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했고 또 자기도 그와같이 생활했읍니다. 노아의 전생활은 방주 예비하는 생활했고 그가 증거하는 것은 일백이십 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시니 모두 방주 예비하라 하는 것을 말했읍니다. 입으로는 홍수 심판을 말했고 또 자기가 친히 홍수에 대한 예비를 했읍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모두 다, 38절에 “홍수 전에” 홍수가 나기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바로 멸망이 오는 직전까지, 멸망 직전까지 사람들이 무슨 일하고 있느냐? 아무리 선지자가 이 세상 홍수 멸망을 말하지마는 이 말을 듣지 안하고 항상 세상 준비만 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관심없고 세상에 대한 준비만 하는 그것이 노아 때나 예수님 재림 때나 꼭 같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그러면 사람들이 뭐 했느냐?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은 의식주,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관심은 없고 모두 의식주에만 전심 전력됐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가만히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참으로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이 우주는 일단 한번 불에 타 가지고 원소로 돌아가는 그 무서운 일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너무 하나님 말씀을 바로 보지를 못합니다.

어누리를 너무 많이 합니다. 만일 이 지구 땅덩어리 이것만 하나 불이 탄다고 해도, 전부가 불 탄다고 하면은 그때 어찌 되겠읍니까? 거게 대한 실감을 우리가 가진다는 것이 너무도 거리 멉니다. 뭐 몇 억억만분의 일의 실감도 가지지를 안합니다.

거게 대해서는 실감을 가지지 안하고 어짜든지 땅에서 살 의식주 여기에만 전심 전력 기울여 있으면, 그런 사람들은 노아 때에 하나도 구원 이루지 못하고 다 멸망을 받았읍니다.

그때와 같으니 하나님의 이 불심판, 여게 대한 관심은 없고 의식주에만 전심 전력 되어 있는 자는 홍수 때 멸망한 거와 같이 멸망한다 요것을 단정지워 놓은 말입니다.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그말은 이것은 가정 생활 말합니다, 가정. 전부 전심 전력은 가정 생활에 다 매였지 예수님의 재림, 불심판에 대한 관심은 없는 자는 다 망한다 그말입니다, 뭐 간단하게.

자기 가정 관심보다 예수님의 재림 불심판에 관심이 크고, 의식주에 관심보다 예수님의 재림 불심판에 관심이 크고, 또 사고 팔고라고 다른 데는 말했는데 이 세상에 이런 사업 저런 사업, 뭐 장사만 사고 파는 게 아니라 모든 이 정권 그런 것들도 다 사고 파는 것입니다. 다 그것을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모두 다 그거 해석을 하면 전부 그거 다 사고 파는 데 다 들어갔읍니다. 그런 관심이 예수님의 재림 불심판 관심보다 큰 자는 다 망한다 그걸 여기서 맞보기로 말해 놨읍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여게 우리가 어누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의식주, 또 가정 문제, 자기 모든 사업 문제 거기에 대한 관심보다 예수님의 불심판에 대한 관심이 커야 합니다. 그자가 구원에 이르지 불심판에 대한 관심보다 이 땅에 생활 이런 것들에게 관심이 더 큰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멸망받는다 하는 그것을 이렇게 단정을 지워서 말씀해 놨읍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의 영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심신의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인데,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 쳐 놓고 영구원만 얻고 심신의 구원, 하늘나라의 권세라든지 지위라든지 실력이라든지 영광이라든지 존귀라든지 모든 부강이라든지 모든 존재에게 환영을 받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벌거벗은 자,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벌거벗은 자 이런 자로 가서 있을 자들이 많고 그 영광 가진 자들은 많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는 비유로 “집을 집는 사람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 짓는 사람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사람도 있는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공력을 시험할 때에 다 불타버리고 타지 아니할 걸로 지은 사람은 남아 있다. 하나님이 모든 공력을 심판하실 터인데 불타지 안한 그 공력을 가진 자는 상을 받고, 모든 공력이 다 불탄 자들은 다 해를 본다. 그러나 저도 구원은 얻는다. 구원은 얻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거게는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하늘나라 가지마는 그에게 그 수치의 뜨거움, 후회의 뜨거움, 부끄러움의 뜨거움이 심히 많은 것을 말씀했고, 또고린도후서 5장에는 보면은 바울이 일생 동안 노력하는 것은 그때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탄식하면서,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짐은 지면은 갈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꾸 더 무거워지는 것이 짐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깨닫고 믿기 시작한 지 후로부터 하루 지나가면 더 무겁고 이틀 지나가면 더 무겁고 자꾸 깨달음이 더 많아지고 또 사람이 변해져 가니까 자꾸 더 마음이 더 눌린다. 하늘나라, 영원한 하늘나라 가서 벌거벗은 자, 영광도 없으니 영광도 벗었지, 지위도 벗었지, 권세도 벗었지, 모든 실력도 벗었지, 모든 존재들이 환영하는 환영도 벗었지, 부도 벗었지, 모든 거 다 벗었고 다만 그저 기본구원 영만 구원 얻어서 가는 것을 그것을 탄식해서 일생 동안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그렇게 지냈다 그렇게 말했읍니다.

40절에, 제가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 하는 것은 요 40절입니다. 40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이것은 영을 가리켜 말한 게 아니라 심신의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심신.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심신이 살고 있읍니다. 영은 죽어서 시체돼 있고 전부 심신의 사람이 살고 있읍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영은 하늘나라 가지마는 심신의 사람,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심신의 사람은 두 사람이 밭에서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심신의 사람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고 영육이 다 하늘나라로 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영은 가지마는 심신의 그 사람은 다 버려둬서 둘째 사망 유황불 구렁텅이로 간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든지 세상 떠나든지, 자기로서는 세상 떠나는 것이 마지막 날이요 우주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재림이 우주의 마지막입니다. 그때에 한 밭에 둘이 일한다 그거는 모든 활동계를 다 말합니다. 이런 활동이나 저런 활동이나, 뭐 공부하는 것도 여게 다 들었고, 출세하는 것도, 사업하는 것도, 이런 저런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 모든 전부 활동 분야 전부를 다 가리켜서 여게 밭이라 그렇게 하나를 표준해서 들어서 말씀했읍니다.

이런 저런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껍데기는 꼭 같다. 활동하고 있는 껍데기는 꼭 같은데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합니다. 하나는 심신이 영생을 얻어서 다 천국으로 가고, 하나는 그 심신들이 다 데려감을 당하지 못하고 버려둠을 당하니까 그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 심판의 둘째 사망을 받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이것은 꼭 외형은 같은 것을 지금 말하고 있읍니다.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팔레스틴 그 지방에는 모두 다 전곡을 하기 때문에 이 잡곡을 가지고 삽니다. 이러면 그 잡곡으로 살기 때문에 지금같이 그래 문화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미개한 때이니까 집집마다 이 맷돌이 있읍니다.

맷돌이 있어 가지고 맷돌에다가 잡곡을 넣어 가지고 이렇게 갈면, 이 식구 많은 사람은 혼자 갈라 하니 힘이 드니까 언제든지 보면은 여인이 둘이 가는 것은 이 둘이 손으로 거머쥐고 같이 돌아가요, 같이. 같이 갈아. 이거는 뭐 찰나도 순간도 떠나지 안하고 둘이 같이 매를 갈고 있어.

매를 갈고 있는데 그래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외형은 꼭 같은 행동하지마는 하나는 그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고, 하나는 심신의 기능이 멸망받는다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 밭으로 이렇게 상징한 것은 누가복음에 보면은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왔다” 그런 말을 했읍니다. 또 “밭을 삼과 같다” 그런 말도 말씀을 했읍니다. 그러면 이것은 모든 분야에 활무대, 활동하는 무대를 말하기 때문에 이것은 목회를 하든지, 신학자 노릇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공업을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무슨 학자 노릇을 하든지, 가정에 주부 노릇하든지 모든 활동한 전부를 다 말해서 “밭에서 둘이 일하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다” 이렇게 말하고, 또 여게 매로 말하는 것은 여인이 매 간다 하는 이것은 교회를 상징해서 말한 것입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어떤 게 교회냐? 모두 다 오곡을 넣어 놓고 갈아서 가루 만드는 것이 맷돌인 거와 마찬가지로 교회라 하는 것은 여러 수많은 그 족속, 방언, 나라의 사람들이 다 모인 그것을, 전부 옛사람을 다 빠사 가지고, 옛사람을 다 빠사 가지고 이제 너 나가 없어. 전부 요거는 무슨 족속이라 그런 게 없이 완전히 다 옛사람 자기는 완전히 깨어지고 예수님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떡덩어리, “떡덩어리도 하나라” “한 덩어리 떡을 너희들이 먹는다” “예수님의 몸도 하나요 떡도 하나라” 말은 그것은 우리의 구속주가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의 복음 운동을 하는 것, 교회 복음 운동을 해서 그 사람이 아무리 사람들을, 옛사람을 부인하게 되고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이런 성화 운동을 한다 할지라도 성화 운동과 자기 구원과는 다릅니다.

매를 갈았는데 이렇게 껍데기는 꼭 같고 또 복음 운동도 꼭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사람도 보니까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저 사람도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그 사람도 목회를 잘하고 저 사람도 목회를 잘하고 다 잘하는데 하나는 가 보니까 그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 가고 하나는 가 보니까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얻지 못해서 버림을 당했다 그것을 여기서 말씀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교회의 이 복음 운동하는 이 사람들도 일과 자기 구원이 다릅니다. 일과 자기 구원이 다릅니다. 일이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이 자기의 구원되는 데에 도움이 되고 많이 유익을 주는 것뿐이지 일한 그것이 구원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도구는 자기 되는 것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명필이, 일생 동안 글 쓰는 걸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뭐 이 붓을 제일 중하게 간수합니다. 이 붓이 제일 모든 기업이기 때문에, 붓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붓을 제일 소중히 간수하지마는, 붓으로 많은 일 해 가지고 돈벌이를 하지마는 자기라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 붓과 자기와는 다르요. 붓이 자기 손도 아니요, 자기 살도 아니요, 뼈도 아니요, 자기 피부도 아니요 이거는 하나의 소지품이요 하나의 도구입니다.

이러기에, 믿는 사람이 이렇게 같이 여러 일을 하지마는 하나님이 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있는 자도 있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 있는 자도 있읍니다. 하나님의 지체와 하나님의 몸이 돼야 이것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지 하나님 몸과 지체가 되지 안하는 도구 그런 것은 필요있게 쓸 때는 쓰지마는 다 버립니다. 다 버리고 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는 알지 못함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데려감을 당하고 어떻게 하면 버려둠을 당할 것인가? 그걸 간단하게 말해서 동기와 방편과 목적을 말한다면, 동기와 방편과 목적을 말한다면 동기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으로 인한 것, 그러면 주님으로 피동된 그게 동기가 돼야 됩니다. 주님으로 피동되지 안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자기 주장으로 자기 계획 가지고 얼마든지 일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으로 피동된 거,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해서 하나님이 나를 주관해서 나는 그분에게 주관을 당해 가지고 하는 그것만 요것이 동기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또 목적은 뭐이냐? 목적은 에베소 1장에 말씀해 놓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은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랬읍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우리를 부른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그렇게 똑똑히 말했읍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말은 예수님의 그 신성, 인격성, 또 예수님의 속성 그와 꼭 같은,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돼야 된다. 예수님의 요소로 돼야 된다. 그리스도의 요소로 돼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 영광의 찬미,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뭐이냐? 에베소서에 말씀하시기를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어, 영광의 찬미.

영광의 찬미라 말은 우리가 무슨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게 아니고 모든 만물 가운데에 곧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를 보아서, 우리를 보아서 우리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해서 모든 피조물이 다 영광을 돌리고 감탄할 수 있도록, 우리 만들어진 걸 봐서, 우리 만들어진 걸 봐서.

우리 만들어진 이 자체가 하나님은 어떠한 성결이시며 어떠한 사랑이시며 어떠한 완전이시며 어떠한 진실이시며 우리를 보아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되어지는 이것을 우리를 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예수님이 똑똑히 보여 줬고, 예수님은 누가 보여 줍니까? 우리가 똑똑히 보여 줘야 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또 영광의 찬미라.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창세 전에 택해 가지고, 우리 택한 우리들을 목적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시고, 모든 걸 창조하시고, 이렇게 보존 섭리하시고,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이 사활의 대속으로 이루시고, 지금도 신인양성일위를 벗지 못하시고 신인양성일위를 영원히 입고 이렇게 힘쓰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 이래서 “너희들이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나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이것 못 한다는 그말입니다. 순전히 성령의 권능으로만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동기가 뭐이냐?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분에게 피동된, 그분에게 피동되니까 그분이 능동이요 우리는 피동이니까 그 능동대로 피동되는 건 되는 것입니다. 이 종)이 제가, 내가 거머쥐고 내가 흔드니까 나는 능동이고 이거는 내게 피동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두루면 이게 둘려지고, 이라면 이리되고, 이래 놓으면 놔지고, 내게 따라서 이거 움직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내 손에 피동되는 종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동하고 정하는 거, 이래 가지고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의 형상. 지금 예수님이 보입니까? 예수님이 안 보입니다. 벌써 부활 승천하셔 가지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예수님으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지금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볼 수 없게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그러면 지금 볼 수 없는 예수님을 보여 줄 자가 누구냐? “땅 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은 나를 보여 주리라 말입니다.

“너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려 함이라” 이러니까 목적은 그게 목적입니다.

그러면 동기 있고 목적 있으니까 방편은 뭣이 방편인가? “너는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다, 완전 성취된다 말은 예수님하고 우리하고 하나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열한 가지인데, 구속하신 것이 열한 가지인데, 택함을 입은 거, 또, 순서는 틀려도, 역사 시공 순서는 다르지마는 알기 쉽게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자녀된 거,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한 거, 또 죄에서 해방돼 자유하는 거, 또 사망에서 해방돼 자유하는 거, 마귀에게서 해방돼 자유하는 거, 또 하나님을 향하여서 진리대로 영생하는 거,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대로 영생하는 거, 또 제사장 연습, 또 선지 연습, 또 왕 연습. 이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방편이 이것이라. 이 외에 딴걸로써는 이루어지지 못해요.

이래서, 어제 양성원에 가 가지고도 증거를 했지마는 ‘내 몸뚱이다. 내 입이다.

내 말이다. 내다.’ 그것은, 그자는 죽었읍니다. 내 눈을 가진 자는 죽었소. 내 손을 가진 자는 죽었소. 뭣만 가졌느냐? 열한 가지만 가진 자가 산 자입니다.

내것은 다른 거는 없어. ‘나는 택함 입은 자다. 택함은 내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 그것만 새사람이지. ‘나는 누구의 아들이다’ “애비는 하나뿐인 줄 알아라” 말했읍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한 의인 내다. 나는 사망에 대해서 자유하는 내다. 죄에 대해서 자유하는 내다. 마귀에 대해서 자유하는 내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대로 영생하는 내다. 진리로 영생하는 내다. 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다. 하나님의 왕이다.’ 이 자기만 자기입니다. 알겠읍니까? 이 자기만 자기입니다.

이 자기만 자기지 ‘지금 내 가정, 내 몸, 나는 아무것이다, 나는 백영희다.’ 이것은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이요 옛사람이요? 이건 옛사람이오.

옛사람인데 ‘나는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입은 백영희 내다’ 이거는 새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예 안 믿는 사람과 같은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열한 가지 이 구속만이 자기 것이니까, 이 구속만이 자기 것이오, 구속으로만 사요. 구속의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의 것된 내라. 주님의 종된 내라. 주님의 성전된 내라. 주님의 지체된 내라. 주님의 몸된 내라. 주님의 나라가 된 내라. 주님의 백성된 내라. 주님의 제사장된 내라. 선지자된 내라. 왕된 내라.’ 이자로만 살고 이자로만 움직이는 이것이 하늘나라 가는 방편입니다.

동기는 “나를 인하여 살리라” 그분에게 피동돼야 되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곧 영광의 찬미, 모든 존재들이 볼 때 ‘아, 과연 저 만들어진 저거 교회 보니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로구나. 그분을 믿을 만하고 따를 만하고 바라볼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그분으로 향하여서 소망 가진 자는 저렇게 다 영광됐다.’ 하는 것을 영원히 보여 주는 것이 하늘나라요, 지옥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귀 그놈에게 끌려서 제 주장대로 제 욕심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한 그 결과가 지옥이로구나.’ 지옥은 하나님의 반대하는 게 이렇다는 것을 영원히 증거하는 게 지옥이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어떻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힘을 써야 됩니다.

얼음판에 가 가지고 스케이트를 배우는 사람이 처음에는 구불려지고 뭐 그거 안 되지마는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해 줄라 했어. 이러니까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계시면 이런 것이 다 돼요. 다 되는데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안하면 안 돼. 주님을 내 안에 그라면 모시기가 힘 드는가? 모시기 힘들지 안해.

주님은 내 안에 오시기를 원하셔서 얼마나 원했느냐? 원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늘나라의 모든 부요를 내놓으시고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또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영원히 피조물의 형상으로 부활하시기까지 이렇게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들어오시기를 원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이 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생명이 속에 있으면은 온 전체가 만신이 다 움직이지마는 생명 떠나면 그 시간부터 썩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우리 속에 떠나면 잊어버리면 그시간부터 썩습니다. 별수 없읍니다. 주님 잊어버린 시간은 다 썩는 시간입니다.

이러니까 두 사람이 사는데 껍데기 생활은 꼭 같은데 동기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방편이 다릅니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 동기 목적 방편이 아니면 안 돼.

그러니까 사람들이 건설구원이 될까 해서 하나님도 기다리시고 마지막 숨 떨어질 때까지 애를 쓰고 계시고, 그러면 지금 됐다는 것 아니오. 될까 싶어 그를 소망 가지고 그래 하시고, 또 믿는 사람, 믿는 도리를 아는 사람도 교인들을 자꾸 그래도 ‘나는 술 먹는데’ `술 먹고 예수 믿어라. 괜찮다. 술 먹고 예수 믿어라.’ 또 ‘나는 노름하는데.' `노름하고 예수 믿어라' 또 `나는 이 모든 우상을 섬기는데’ ‘우상 섬기고 예수 믿어라' 하는 것은 그래도 그래 가지고 그게 차차 차차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배우고 하는 이 진리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또 한 가지 능력은 뭐입니까? 피의 능력.

“성령과 물과 피니 이 셋은 하나라. 증거하는 이는 성령과 물과 피니라.” 이랬는데 피를 뒤에 말했는데 실은 피가 먼저요 성령이 다음이요 또 진리가 다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은 진리를 말한 것인데 진리와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했고, 예수님의 증거로 인해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가 왔읍니다.

그러니까 이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보다 앞서서, 이 두 가지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접선시켰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접선됨으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 역사 성령과 역사 진리가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셋은 하나라” 이렇게 말씀했읍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야 될 터인데 너무 쉽게 여기기 때문에, 넉넉히 이 어려운 줄 알고 달라들면 이룰 수 있는 사람인데도 너무 이것을 ‘이렇게 마구 믿어도 다 구원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뭐라 했읍니까? 영생을 얻는 데는 주님이 뭐라고 말했읍니까? 영생하는 데에는 뭘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또 목숨 다하고, 또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이러면 남은 거 뭐 있읍니까? “이걸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해야 된다” 요렇게 요라면 영생된다 말하지 안했읍니까? 주님이 요라면 영생된다 했는데, 영생된 거는 구원인데, 요래야 구원된다 했는데 우리가 얼마나 어누리해 가지고, 그저 예수 믿는 택명만 가지고 일주일 내내 제 욕심대로 실컷 하고 싶은 대로 다 살고 심지어 주일날 예배 보러 오는 것도 돈벌이 하러 가는 데는 ‘내일 힘들 터이니까 좀 일찍 자자’ 또 돈벌이하러 가는 데에는 ‘이 머리도 빗고 옷도 갈아 입고 빤들빤들해 가지고 가자. 내일이야 뭐 주일 가는데, 주일 가니까 내일은 놀 터이니까.’ 이 논다는 것 이 안식일이라 하는 뜻을 몰라서 그 안식일에 대한 것은 아주 인식이 틀렸읍니다. 이러니까 주일날은 뭐 토요일날이니까 토요일날 죄 지을 대로 실컷 죄 짓읍니다. 죄 지을 대로 실컷 죄 짓고 있는 진액 다 뽑고 눈구멍이 뻐끔뻐끔하이 송장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와 가지고 여기 와서는 졸아 재낍니다.

그런 찌기를 하나님이 받습니까?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신데 오만 거 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머지 찌끼, 찌끄러기.

찌끄러기 그거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그자는 하나님이 참고 계시지마는 재림하시면 다 저주해서 불로 태워 버립니다.

우리의 피와 살 뼈와 우리의 마음의 정신 이 모든 감각 이성 이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는 것을 자기가 하늘나라 가서 봅니다. 영이 보요.

자기 이 심신의 기능 다 불에 태워버리고 영만 갔으니까 하늘나라 가서 무슨 활동을 합니까? 아무, 가기는 가서 죽지는 안합니다. 영생합니다. 그거는 아무리 지옥에 좋은 곳보다는 낫기는 낫소. 낫지만 하늘나라의 그 영광에 비해서 비교할 게 없어. 그러니까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 같애.

이래서 지난 주일에는 요한계시 14장에 대해서 이 구원 얻는 데 대해서 말씀을 했어. 그 시온 산에 가 있는데, 시온 산은 옛날 시내 산에서 계명받은 그 시온 산이라 말했읍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건설구원 얻는 데에는 아주 완전한 것만 갑니다.

하늘나라는 완전한 것만 가지, 하늘나라는 완전하신 분이 계신데, 빛되신 분이, 완전한 빛이신 분이 계시는데, 비유컨데 빛이신 분이 계시는데 어두운 죄악이 어떻게, 백촉 전등 앞에 어두움이 견뎌 배길 수 있읍니까? 못 배겨.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왜 주님이 우리에게 빨리 떠나시느냐 하면은 우리 속에 당신이 멸할 수 있는, 내 심신을, 멸할 수 있는 심신, 멸할 수 있는 심신은 악령 악성의 심신이 되면은 멸해져. 내가 구속을 잊어버리고 ‘내다. 내 눈은 내 눈, 내 몸은 내 몸, 나는 나.’ 구속의 것이 안 되고 제것이 됐을 때에는 이거는 멸해질 것입니까 안 멸해질 것입니까? 멸해질 것이요 안 멸해질 것이요? 멸해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들어와 계시면 이거 구원도 못 시키고 멸망시킬 거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재빨리 피합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완전한 것만 갑니다. 이래서 사데 교회에도 “너의 행위에 온전한 것을 내가 찾지 못했다” 온전한 것만이 살지 온전치 안하면 못 살아나는 데 온전치 안하니까 살아날 수 없고 다 죽었다 말이오. “살았다 이름은 가졌으나 너는 실상은 죽었다” 그거는 온전한 행위가 있어야 그만치라도 사는데 온전한 행위 하나 있으면 하나 살고 둘 있으면 둘 살고 서이 있으면 서이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저 껍데기로 하지 맙시다. 양성원에 오는 사람들, 양성원이나 신학이나 다 지금, 우리는 목회자 양성원이라 하는 것은 너무 신학이 거짓부리로 이래 많아서 이름을 그래 지었어.

이랬는데, 양성원에 공부하는 사람들 자기가 무슨 학을 배워 가지고 무슨 일을 하리라 하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일할 것 생각지 말고, 일할 것 생각지 말고, 일할 것 생각지 말고 뭘 생각해야 됩니까? 자기 구원 생각해야 돼. 일꾼 될라고 생각지 말고 자기 구원 생각해야 돼.

자기 구원은 뭐인데? 자기 구원은 동기와 목적과 방편이 바로 된 그것이 자기 구원입니다. 그라면 그 사람은 모든 것 당신이, 여게 쓸 때에면 여게 들어다 쓰고, 저게 쓸 데 있으면 저게 들어다 쓰고 어데든지 들어다 쓸 수가 있어.

하루 삼십 분 기도 빠지지 말고, 어짜든지 여러분들, 골방을 차지하십시요, 골방.

골방에 문을 닫고, 문을 닫으라 말은 주님,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님 만나고 이 세상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님만이 보여지는 그 시간이 자주 있어야 되고 그 시간이 계속돼야 되고 그 시간이 끊쳐질 시간이 없는 그 안 끊치는 그때만이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구하라 그러면 아버지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리라” 말씀했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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