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연구해서 믿음에 화합

 

1986. 11. 2. 주일오전

 

본문:히브리서 4장 1절∼2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3장 15절로부터 한번 더 봅니다. 이제 본 거기서 몇 절 안으로 들여서.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습니다. 「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사로이 듣고 강퍅케 하다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업신여기고 예사로 듣고 그렇게 하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거 참 모태로부터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되는지 모릅니다. 믿지 않는 부모 속에서 배어 가지고, 자라 가지고 또 나와서 이 세상에 이렇게 저렇게 죄 가운데 파묻혀 살다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깨닫기는 모태로부터 믿는 사람보다도 더 잘 깨닫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들은 세상에 들어가서 보니까 너무 세상이 허무한 것을 봤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을 때에 놀라고 깨어나지마는 모태로부터 믿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듣는 말씀이기 때문에, 도리이기 때문에 예사롭게 생각을 하는고로 대개 큰 부흥사는 안 믿는 사람에게서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뚜렷한 그런 아주 뿌리 깊은 신자들과 또 권능 있는 그런 착실한 아주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 모태에서부터 믿는 사람들이요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서부터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 속에 한 문견의 행동으로, 듣고 보고 행동하는 것으로 그대로의 사람이 자꾸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듣고 보고 행동한 그것을 저는 버린다 하지마는 버리지 못합니다. 사람이 꿈을 꾸는데 꿈은 하나님이 주는 영몽이 있고, 악령이 주는 악몽이 있고, 자기가 듣고 보고 접한 것들이 속에 파묻혀 있다가 그것이 튀어나오는 그런 꿈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생 생각지도 안한 꿈을 꿨다 하지마는 그 사람이 언젠가 그렇게 제가 한번 생각했든지 들었든지 보았든지 그 비슷한 그런 것을 과거에 가졌던 그런 것이 그렇게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사람은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을 자기는 고의적으로 하면서 ‘내가 이런 행동하지마는, 이렇게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마는 내게는 안 하겠다, 원수에게는 하지마는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지 않겠다, 또 남의 일 할 때는 이렇게 하지마는 내 일 할 때 하지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남의 일 하면서 한 행동이 전부 그것이 꼭 자기가 됩니다. 자기 일하면서 하는 행동도 자기가 됩니다. 원수에게 가진 마음이나 언행심사가 그것이 꼭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게도 그와같이 하도록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보고 듣고 접하고 말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한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뭐 행동하고 버리면 안 되는가?’ 절대 버리지 못합니다. 그대로의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그와 비슷한 거 있는 것은 사진기에다가 필림을 넣어 가지고 이렇게 찍으면 그대로 찍혀지지 않습니까? 또 녹음기 테이프에다가 녹음을 하면 말하고 한 그 모든 것이 다 그대로 찍혀지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일생 동안 언행심사의 전생애, 남이 아는 거 모르는 거, 또 자기 생각에서 자기만 아는 거, 오히려 자기도 모르는 거 많이 있습니다.

자기도 하고 나서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퍼뜩 생각에 지나왔던 그만 잊어버리고 없습니다.

그것도 그대로, 생각한 거 뜻한 거 마음한 것, 또 말한 것 행동한 것 모든 온갖 성질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이 자기 일생이라 하는 그것이 그대로 녹음되고 그대로 필림에 딱 사진 박힌 것이 그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 하나로서 그 속에 전부 다 박혀 있습니다. 박혀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또 심판을 받고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사람들이라는 것이 자기가 평생을 한 행동을 자기 전기를 쓸라고 할 때에 그런 행동은 뺏으면 좋겠다 이래 싶어서 과거 정치가들은 자기 행동한 것이 역사책에 기록이 되면은 그 역사에 남은 그런 수치가 되기 때문에 역사가들에게 돈을 많이 줘서 그런 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그렇게 돈을 주고 매수해서 부탁한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돈 받고 고거 숨긴 자의 그의 역사가는 역사가가 아닙니다. 그런 거는 가치 없어서 다 없어져 버리고, 역사가들이 그런 것을 바로 기록을 할라 할 때에 많은 뇌물을 줘도 요동치 안했고 그라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역사를 기록하다가 그 토막을 기록을 못 하고 사형을 당한 그것이 없어진 줄 알아도 또 그 다음에 그런 사람 이어 가지고 이 세상에는 정확한 역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역사가들이 뭐 십중 이십중 삼십중으로 이렇게 하는 그 썩은 역사가들도 있지마는 그렇게 하면서도 그 속에는 절대 틀림없이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려 하는 것이 자기 속 은밀 가운데는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보존이 되고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이 사람들은 애굽에서 벌써 사백 년 동안이나 여러 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애굽에 물이 들어 가지고 그것을 뽑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뭐 이적과 기사를 보여 가지고 애굽 종노릇하고 그렇게 큰 참 말할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 구출해 냄을 받아서 하나님이 계신 걸 그들이 그래 환하게 봤지마는 애굽에서 모든 범신론 국가에서 배워 가지고 만들어진 그 사람을 갑자기 홀딱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들을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지 아니해 가지고 자기들도 멸망받고 자기들의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아주 어린 사람들, 애굽에서 어릴 때 나온 사람들, 또 광야에서 낳은 사람들, 광야에서 양육을 받은 그런 사람들은 다 애굽의 그 양육을 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양육을 받았는고로 그들은 그 양육 받는 대로 사람이 됐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들 모든 부모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지 못하고 패역한 걸 보고서 그 자손들은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기 행동을 버리지 못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다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냐? 애굽에서 나온 뭐 어린 사람들은, 거기서 아무 교육을 받지 못하고 나와서 받은 사람들은 받았기 때문에 했지마는 애굽 교육을 다 받고 나온 사람 가운데서는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렇게 자기가 보고 듣고 하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보고 들은 그것이 자기라는 사람이 되어지고, 볼 때에 ‘저거는 틀렸다’ 이렇게 생각한 그 사람은 그대로의 사람이 되기 때문에, 제일 의인은 어데 있느냐?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죄악의 세상을 거스려서, 거스려 사는 그런 사람들은 굉장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오늘 이십세기에 이렇게 과학 만능이라고 하는 이 음행의 포도주가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런 것을 봄으로 거게 물들어서 그 사람 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속에 격분해서 견디지 못하는, 그런 것을 마구 힘만 있으면 불을 당장에 바싹 태워서 빠숴 버리고 없애 버리면 싶은 그런 격노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그런 가운데서 굉장한 또 의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 의인들이 많아도 말세지 말에 성숙한 죄악이 최고로 관영한 가운데에서 그렇게 성화된 그 사람들에게 비교할 그런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 세계인 이 현상 세계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다 불타고 마칠 터인데 이 말세지 말에 된 의인에 비교할 그런 의인은 과거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지 말에 의인된 의인이 제일 최고의 의인이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하나님이 누구에게 사십 년 동안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복종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노했고 노한 그들은 마지막에 광야에서 다 시체가 돼서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절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당신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순종 안 한 사람들에게 다 맹세해서 당신의 안식 세계에 들어오지 못할 것을 말씀하신 대로 다 못 들어오고 멸망받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4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왜 두려워해? 안식에 들어갈 이 약속을 받았지마는 믿지 아니함으로 전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이 약속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도 그와 같이 돼 가지고 멸망받을까 두렵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그 약속은 남아 있지마는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거게 합격이 돼야 되는데, 합격이 돼야 되는데 애를 써서 준비한다는 것이 합격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그만 중단돼 버리든지 이렇게 해서 이 합격되지 못할 자가 있을까 우리는 서로서로 두려워해야 되겠다 그거요.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우리가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이 도리를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우리가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음을, 이 진리를 듣기는 들었으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들은바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왜 유익되지 못했느냐?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이 복음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들이 들은 그것이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뭣 때문에 유익되지 못했더냐? 못한 그것은 「듣는 자가」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믿음을 화합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믿음을 거게다가 합류시키지를 안했습니다.

믿음을 거기다가 종합을 해야 되는데, 믿음 종합을 해야 되는데 믿음을 거기다가 종합하지 안하니까 말씀뿐이고, 말씀뿐이고 저희들과는,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말씀을 듣고 들은 그 말씀을 자기가 믿음과 종합을 해야 말씀대로의 자기가 되고 말씀대로의 지식이 되고 말씀대로의 행위가 돼야 이 구원이 되는 것인데 말씀을 암만 들었지마는 믿음과 화합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저는 저대로 있기 때문에 소용이 없이 다, 들었지마는, 구원 얻을 걸 들었지마는 멸망을 받았다 하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듣기만 들어도 됩니다. 갈라디아 4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4장 1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었다 그말은 모세의 율법 아래 있었다 그말입니다.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그때는 율법에 속해 가지고 살았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0절에,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를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령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으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게 “믿음을 화합지 못했다” 하는 말씀과 또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하는 요 두 말씀오늘 생각하려고 생각합니다. 이거는 아주 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딱 마음을 차려 가지고서 듣지 안하면 깨닫지를 못할 것입니다.

믿음을 화합지 못해서 멸망을 받았다. 그러면 믿음이 뭐이 믿음인가? 믿음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지금 믿는 이 구원을 이 시간에 증거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신 이유는 우리 사람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 없는 사람만 만들면 될 터인데 하나님이 뭐할라고 자체가 사람이 돼 가지고, 피조물이 돼 가지고 와야 할 이유가 뭐인가? 그 이유는 죄를 지은 그 죄는 값을 내서 죄의 형을 받아야 죄가 없어지지 죄는 그냥은 없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도 그 죄는 없애지 못하고 죄는 형을 받음으로 죄가 없어집니다. 사람이 범한 죄는 사람이 대신 형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죄의 형을 대신 받을 사람이 있어야 그 죄의 형을 없앨 수 있고 죄에서 자유할 수가 있기 때문에 죄의 형을, 사람이 범죄한 죄의 형을 대신 받기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면, 죄 없는 사람이 왔으면 됐지 하나님이 사람될 필요가 뭐 있느냐? 녜, 죄 없는 사람이 왔으나 죄 없는 사람이 왔으면 한 사람이 한 사람 죄를 대신할 수는 있지마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죄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범했으면 그 범죄값으로는 사망하는 것이 그 죄의 값인데 한 사람이 범죄한 그 값을 형으로 받아서 그 죄를 없앨라고 하면은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야 감당할 수 있지 한 사람 이상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와야 되지 천 사람이 와 가지고 천 사람이 대신 죽음으로 이제 천 사람이 그렇게 형을 받게 되면은 내나 한가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대신 형벌을 받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죄에서 구출할라고 하니까 한 사람과 무한한, 수많은, 무한한 존재인 무수한 사람을 대신해서 무한하신 하나님이 그 형을 대신 받게 되면은 수많은 숫자의 사람의 형을 대신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이제 죄 없는 한 사람으로 와서 형을 받았고, 또 하나님이 와서 형을 받을라 하면은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람 범죄한 것을 하나님이 그 형을 받을 수가 없는고로 한 사람과 하나님이 그 신인양성일위가 돼서, 이는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신데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인 이 둘이 한 격위를 이루어야만 그 한 사람 한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의 대속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이게 뭐 아는 사람은 알 거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고, 또 여러분들이 들어 놓으면 눼 것은 눈 한 개라야 맞지 두 개면 맞지 않는다 요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절대 사랑과 절대 능력과 절대 지혜 요것을 믿고 바라는 요 사람이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 표준에 따라가면 못 써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제일 처음에는 몇 가지요? 세 가지, 또 둘째로는 몇 가지요? 두 가지, 마지막에는 뭐이요? 한 가지. 이런데 첫째 세 가지와 두번째 두 가지와 마지막에 한 가지 이 셋이 합해야 성공하지 이 세 가지가 합하지 안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요새 모든 사람들이 다 구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찾기도 하고, 또 이렇게 믿음을 가질라고 애들도 쓰고 자꾸,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만침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하신다 이걸 믿음을 가질라고 애를 쓰는데 사람들이 어데서 모든 사람들이 실패하느냐 하면 일호에서 실패입니까 이호에서 실패입니까 삼호에서 실패입니까 뭣이 없어서 실패지요? 자, 일호가 없어서, 구하지 안해서, 이 세 가지가 없어서 실패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호가 없어서 실패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삼호가 없어서 실패라고 거석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삼호가 없어서 실패라요, 삼호.

알겠습니까? 이거 중요한 것입니다. 삼호.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 어째 보겠느냐? 다른 사람이 나를 어째 보겠느냐 이게 삼호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째 보겠느냐? 다른 사람이 ‘저 사람은 복을 줘야 되겠다, 저 사람은 잘 살아야 되겠다, 어떠하다, 저 사람 참 어떤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돼도 하나님의 평가에는 좋게 평가가 됩니까 나쁘게 평가됩니까? 사람이 좋게 백점이라고 평가돼도 하나님이 평가할 때는 오십점이 될까 말까 그래요.

이러니까, 먼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겠느냐? 다른 사람이 나를, 나에게 일을 맡기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나와 같이 손을 잡고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나하고 같이 살기 원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요래 몇 가지로 따져보면 환하게 압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저와 꼭 같은 사람 말이오제가 모배기가 이 세모배기로 생겼으면은 세모배기로 생긴 사람을 딱 대면서 ‘너 이 사람 어떠노?’ ‘아이고' 이랍니다. 그게 더 하요.

또 다른 거는 아무것도 없고 그 사람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만 강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그거 뭐입니까? 악. 악인데 저는 악 빼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소. 악 빼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다른 사람 악을 보고서 ‘이 사람이 어떠노?’ ‘에히이' `왜?' `에그그그. 에그그그.' 어림도 없소. `왜? 어떤데?' 그뭐 저만 알고 저 중심 저 위주뿐이라고. ‘너는?’ 이래서,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나 하는 데서 자기를 연구해 가지고, 자기를 연구해서 바로 아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나를 어찌 보겠느냐 하는 것을 연구해서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연구해서 숙달돼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어찌 보겠느냐 하는 숙달되고, 사람이 나를 잘 볼 수 있고 아주 복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복있다 할 수 있을 때에는 구하는 것 찾는 것 이거 다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자기를 연구해서 사람들이 어찌 보는가 요 연구하는 방편을 말했기 때문에 자기를 연구해서 바로 아는 사람이면 나쁜 거 고칠 거 아니겠습니까? 봐서 사람이 ‘저 사람이 그런 사람 돼 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대로 네가 그런 사람 돼져라. 그라면 하나님도 좋은 사람으로 봅니다. 그라면 뭐 우리 소원한 거 다 이루어져요.

오늘 아침에는 요것을 단단히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꾸 버리지 말고 새김질을 해요.

나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은 참 쓸모 있다,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 귀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복을 받아야 되겠다, 잘 살아야 되겠다, 그놈은 망해야 되겠다, 그거는 안 됐다.’ 이런 사람이, 제가 볼 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안 되겠다고, 못쓸 사람이라, 그 사람 복 받으면 안 되겠다, 소원 성취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싶으면 그 사람을 고쳐야 되지 모든 사람이 저를 볼 때에 ‘저 사람 소원 성취되면 안 되겠다’ 하는 그 사람이 돼 가지고 하나님에게 암만 구한다고 하나님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먼저 다른 사람이 ‘저 사람은 소원 성취가 돼서 복을 받으면 참 좋겠다, 그 사람 복받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지면 하나님께 구하는 게 된다 하는 요걸 여기 말했습니다.

첫째 셋, 둘째는 둘, 마지막은 하나인데 이 셋이 똘똘 뭉쳐 하나가 돼야 되는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런 사람이 돼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대로 네가 그런 사람이 되라 하는 그말이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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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자기를 연구하라/ 마태복음 18장 7절-9절/ 851028월새 선지자 2015.12.17
» 자기를 연구해서 믿음에 화합/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2주전 선지자 2015.12.17
593 자기를 위한 호신 직책 3가지/ 에베소서 6장 10절-20절/ 880612주후 선지자 2015.12.17
592 자기를 정결케 만들자/ 요한계시록 22장 1절-16절/ 810510주전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