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은 모든 죄악의 통로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13일 금새

 

본문 : 마 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샤람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아니하고 다른 그 어떤 중심으로 사는 그것을 인해서 영원한 사망을 받은  것입니다.

 원죄가 어떤 것이 원죄인고 하니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의 중심이라도  그것이 다 원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뭣 때문에 죽게 되었는가? 죽게 된 원인은,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영생을 가지고 참 존귀한 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인데  배암이 와서 꾀울 때에 그만 해와가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자기중심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지 저 좋으면 된다  하는 그 자기중심으로 바꾼 그것이 멸망케 된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그후부터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마음의 눈이 지혜의 눈 이  어두워서 자꾸 죽을 것만 취하고 죽는 일은 사는 것인 줄 알고 사는 일은 죽는  것인 줄 알고, 좋은 것은 나쁘게 여기고 나쁜 것은 좋게 여기고 이렇게 정반대로  사람들이 꺼꾸로 됐는가? 그건 중심이 바꾸어지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중심하든지 중심하면, 무엇을 중심하든지 중심하면  중심하는 그것을 기준해서 그것을 위주로 삼아서 모든 사고 방식이나 가치  평가나 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온 것은 세상에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렇게 화평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세상이 하나님 버리고 다른 어떤 피조물로 중심을 삼아  가지고 한덩어리 되어 있기 때문에 이 한덩어리 되어 있는 이것을 깨트릴라고  왔다, 내가 불화하러 왔다 화평을 줄라고 온 거 아니라 내가 서로 불화해서  싸우고 다투고 이래 가지고 벌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누구하고  벌어지도록? 가장 자기가 가깝게 여기는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사람과  벌어지게, 가깝게 여기는 자기라면 자기와 벌어지게, 가깝게 여기는 돈이나  직장이나 권세나 명예라면 그거와 좀 사이가 이래 벌어지게 불화되게 그라기  위해서 왔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불화되게? 하나님하고 딱 들어붙어야 사람이 영생하는 것인데 하나님  대신에 딴 것을 사람이 붙여 가지고 삽니다. 사람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하고 딱 들어붙어야 모든 것이 다 영생이 되고 자기를 통해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 가지고 영생하게 되는데, 사람이  하나님과 들어붙지 안하고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이든지 다른 것과 들어붙어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것과 들어붙은 그것은 돈이든지 자기 가족이든지 또  자기든지 무엇이든 그것은 완전자가 아니고 그거는 창조주가 아니고 시은자가  아니고 절대자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아주 거지고 텅비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붙을데 붙지 아니하고 엉뚱하게 붙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멸망을 받는 것이니  엉뚱한데 붙어 가지고 있는 그것을 잡아 떼기 위해서 왔다, 떼 가지고 어떻게  할라고? 하나님한테 붙여서 바로 되어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사람이 대개 보면 하나님  대신으로 한 것이 그 적이 뭐이냐 하면은 자기 집안 식구들입니다. 자기 집안  식구를 하나님 대신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이 어북 진리를 좋아하고 주님을  어떻게 뭐 좋아하는 것 같아도 저거 식구와, 하나님과 진리와 맞서면 뭐  사정없이 하나님 진리 그만 집어 던져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걸 잘 좀  판단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주님과 진리를 존귀히 여기고 하는 것같지마는 자기에게  무슨 물질 관계가 있으면 그만 하나님을 내던지고 진리도 내던지고 물질 그거  중심으로 위주로 그만 거게 따라서 사는 자들 많습니다. 또 하나님 그런 뭐  형제도 부모도 자매도 재물도 지위도 권세도 그런 것은 어떻게 된다 해도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을 더 위주로 중심으로 살아 나가지마는 자기와  무슨 관련이 되어 있을 때에는 그만 자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고  하나님보다는, 자기와 둘이 견제될 때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붙어 가지고서 죽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붙어 가지고 죽는 사람, 자기가 가족에게 붙어 가지고 죽는 사람  이러기 때문에 대개 보면 원수가 제 집안 식구다, 사람이 어디 붙어 가지고서  죽느냐 무엇을 뭐 주님보다 귀중히 여겨서 죽느냐? 주님보다 제 가족을 식구를  귀중히 여겨서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니까? 그저 예수님을 믿도록 이래 하지마는 건설구원 성화구원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동안은 건설구원 준비만 하는  것이지 건설 구원은 절대 안 됩니다. 주님보다 크게 사랑하는 그것이 있고  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마지막 최종은 그것이 끄는 대로 갈 터이니까?  주님에게 속한 것입니까? 구원이 안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경히 여기든지 이를 사랑하면 저를 미워하든지 하는데 그 하나는  뭐인가? 그 하나는 재물이라 이랬습니다. 사람이, 물질과 하나님 이래 비교할  때에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겨서 물질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  쉽다 물질 중심을 거게서는 말했고, 여기에는 가족 중심을 가르쳐서 말했고, 고  다음에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안하면' 하는 그것은 생명 중심 자기 목숨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 사람도 목숨을 귀중히 여기지마는서도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제 아침에도 증거했지마는서도. 그 사울 왕이, 자기가 전쟁하다가 아무래도  패전되는 것을 보고 자기가 그때에 그 사람들한테 항복을 하면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상의 강도도 보면  마지막에 예수님이나 욕을 하고 이렇게 하면은 살려 줄까 해 가지고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것은 생명에 대해서는 꼼짝을 못하는 것인데 6·25 때 보면  사람을 죽일 사람인데 분명히, 야전, 야전 그, 야전 전화, 전화줄로 가지고 볼끈  묶어 놓으니까? 가지는 못하고 묶어 놓고 앞에 걸려 가면서 뒤에 따바리 총 딱  들고 인민군이 뒤에 따라가는 것은 의례히 죽일라고 하는 것인데, 죽는 줄  압니다. 그라면서 가서 구덩이를 파기를 말이지, 손은 다 끌러서, 다른 데는 딱  묶어 놓고 총을 딱 들고 있으니까? 도망쳐도 딱 처리할 수 있다 그 말이요. 손을  끌러 놓고, 너거가 이 구덩이를 파라, 이래도 행여나 거기에서 구덩이를 좀 잘  파면, 좀 잘 보이면 거기에서 살까 해 가지고서 구덩이를 파는데 서로 열심히  팝니다. 그 총 든 사람에게 잘 보일라고.

 사람에게는 마지막까지 자기 생명을 구원해 볼라고 아부하고 아첨하는 것이  인생인데, 십자가의 강도가 거기에서도, 모두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을 제일 모두 대적하고 이러니까? 예수님만 미워하면 저는 좀 긍휼 베풀어  줄까 해서 예수님을 욕을 진떡 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쪽 강도는 거기에서도,  주님은 뭐 잘못된 거 있느냐 주님 편이 되고 자기가 그렇게 주님을 버리지  안했기 때문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오늘 너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그렇게 죽을 지경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생명을 구원할라  하는 것이 인생인데, 그러면 항복을 하고 잡아 죽이든지 이럴 건데 자기가,  전쟁에 패전해서 원수에게 아무래도 죽임을 받을까 하는 이런 염려가 있을 때에  말하기를-자기 부하에게 말하기를- 아나 네가 나를 죽이라 내가 할례받지 않는  그런 자들에게 죽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욕을 돌릴까 싶어 두려우니 차라리 내가  네 손에 죽는 것이 낫지 할례 받지 않는 그런 이방인에게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모욕이 된다 나를 죽이라 이러니까? 그 부하가 있다가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내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다급하니까? 이제 자기  손으로 자기를 죽여서 자살을 했다 말이요. 자살은 한 그것은 하나님에게 욕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면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따라  있는 부하도 있다가, 아이구 사울 왕이 할례받지 않는 자에게 죽는 것은  하나님께 모욕되는 것인 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나도 이제 자살하겠다,  그도 따라 자살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사울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이 있었지마는서도, 열심이  있었지마는서도 자기중심이라는 그놈을 뽑지를 못했다 그 말이요. 자기가 아말렉  족속으로 더불어 전쟁했을 때에 그때에 자기가 아주 잘해서 승리를 하고 그런  것이 나타났을 때에 그만 자기를 위한 그 기념비를, 승리의 기념비를 세우고,  그때에 '아 주님이 이렇게 해주셨으니' 하고서 주님을 위해서 그 사은의  기념비를 세우든지 했으면 다를 터인데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뭐이든지  자기가 잘했을 때에 그만 자기가 나타나고 그게 뭐이냐? 무엇이든지 잘했을  때에는 자기가 한 것처럼 자기가 나타나고 또 자기가 못했을 때에는. 못했을  때에는 사람에게나 무슨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켜서 원망하고 그러니까? 그럴  때에 자기가 중심이라는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견하면 그것을  살려둘 것이 아니라 그럴 때에 놓지 아니하고 붙들고 죽이도록 애를 써야  됩니다.

 이 얘기도 하면 이 얘기하는 가운데에 은연중 그만 자기도 모르게 이 얘기  하다가 보면 자기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는 그 뭐 자기도 그런  생각도 가지지 안했는데도 그만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위주로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또 무슨 이해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기 이해 관계를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자기에게 무슨 아주 어려움이 오면 그때에 아주 어려움이  와서 장기간의 무슨 어려움이 온다든지 오면은 그만 그럴 때에 자기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불만 불평 원망하기 쉽습니다.

 이래서, 참 이 중심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하나님 믿는 자기가 이방인에게 모욕당하는 그런 것을 자기 죽음보다도  더 어렵게 여겼지마는서도 자기중심이라는 것은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뭐이 따라왔는고 하니, 위급해서 다윗을 청해 가지고서  다윗이 그 전쟁을 이기고 구출해 주니까? 좋아서 다윗을 그만 단번에 자기 그  막내딸의 사위를 삼고 아주 그렇게 대우하고 좋아했지마는서도 백성들이 다윗의  그 인기가 사울 왕의 인기보담 조금 올라간다 이렇게 보일 때에는 그만 사울  왕이 거기에 시기심이 나와 가지고 견디지를 못해서 마지막에 다윗을 죽일라고  그런 일을 하게 했다 말이요.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중심이라는 그것을 회개하지 안하면 언제 무슨 죄악에  걸리고 마귀라는 놈이 그 자기중심 그거를 이용해 가지고서 자기를 어떻게  만들런지 모릅니다. 이런 죄를 보태고 저런 죄를 보태면 뭐 하나님을 현저히  저주하고 배반할 수도 있을 만침 그렇게 자기는 변해져 갑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중심을 바꾸어야 된다 하는 이것을 기억하고 자기가 평소에  살 때에, 아 이거 보니까? 이거 내 중심이라는 내로구나 내가 요번에 이 일을  닥쳐 보니까? 이거 뭐 번연히 이거는 하나님에게 영광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고 복음을 위하는 일이 아닌데도 왜 내가 지금 이와같이 이  일을 미워하거나 또 이런 나쁜 마음을 가지거나 이렇게 훼방하거나 이렇게  하는가 이것은 분명히 내속에 내가 내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로구나 하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 생활에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나오면 자기중심이라는 것을 평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뭐 얼마든지 주를 위해서 사는 걸로 하지마는 가다가 어떤  사건을 닥치면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그때에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그러면  그때에, 자기중심이라는 것 나오면은 자기가 그만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나올  때에 자기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이와같이 자꾸 이 일을 진행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백에 백입니다. 그럴 때에 '아! 보니까? 아 이거 지금 내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내 중심으로구나 이놈이 속에 들어 가지고 이랬구나' 그럴 때에  고 죄악의 정반대로 자기중심이라는 고놈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고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그 사람이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이라는 것은 자주  보이치 않습니다. 그 놈이 어떻게 감추고 딱 민첩하게 활발하게 날뛰는지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중심이라는 그 중심을 바꾸기 전에는 우리의 승리는 가져오지  못합니다. 꼭 승리할 때가 되면은. 유익이 될 때가 되면은, 구원이 될 때가  되면, 주님이 이제는 합격이라고 인을 치실라고 할 때가 되면 고놈이 다른 어떤  걸 가지고 와 가지고 자기중심과 연결시켜 가지고 딱 붙여 버립니다.

 사울 왕도 백성들이, 고 백성을 딱 시켜 가지고사, 아 요새 모두다 공기가  어떠노 이래 물으니까?, 아 요새는 다윗에 대해 가지고서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생각하지, 예 아주 다윗을 사울왕이 청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등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전쟁을 이긴다고서 참 우리 사울 왕이 지혜 있다고 이렇게 모두 백성들이  다 압니다. 그래 놨으면 사울 왕이 좋아서 다윗을 더 거석할 건데 딱 마귀라는  놈이 그래 말하지 아니하고서 아 다윗에게 지금 백성들이 더 마음이 기울어지고  다윗을 더 사울 왕보담 크게 여기고 낫게 여기고 마음들이 모두 그리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그 사울 왕이 마음이 달라졌다 말이요. 마음이  달라졌어.

 와 꼭두각시라던가 뭐인가 사람 서이 요래 조그마한 것 요래 만들어 놓은 것  있지요? 하나는 뭐 시기하는 것, 하나는 삐꾸는 것 하나는 뭐이더라? 예? 뭐?  울고 있는 것. 옳지. 그 세 개 만들어 놨는데 그거 누가 잘 만들었어요. 어제  나는 어데 갔는데 어떤 아이가 그 어머니한테 뭘, 뭐 하나 사줘, 이러니까?  어머니가 그래, 사달라 하면서 간구하는 그 모양을 하고 또 그라니까? 어머니가  있다가서 금방 먹었는데 또 그란다고 안돼 안 돼 하면서 또 그만 눈이 휙  돌아가면서 그라는 것하고 그러니까? 또 인제 슬픈 마음을 가지고 또 그라는  것하고 그 흉내를 내는데 어떻게 거석 한지.

 그거 모양으로 아 그만 그 사람이 그러니까? 사울 왕의, 그 사울 왕에게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썩 나와 가지고 그만 분개해서 속에 그만 시기심을 가졌다  말이요. '그래'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이 딱 들어붙었어. 그래 가지고 사울 왕이  자기 사위를 그렇게, 참 은인을 죽일라고 몇번이나 도모하는 그런 망령을  부리다가 결국은 그 자기중심 그걸로 발동돼 가지고서 시기해서 죄없는 사람을  죽일라고 하던 그 살해는 뉘게로 갔느냐 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자기  죽이는 것으로 가고 말았지 딴데 가지를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없는 자를 다른 사람이 해하지를 절대 못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자를 다른 사람이 죽일라고 하면은 자꾸 죄없는 그 사람은 자꾸  존귀해집니다. 또 그 사람을 욕을 하면 어찌 됩니까? 죄없는 사람을 자꾸 욕을  하면 어찌되요? 욕을 하면은, 자 손해가 갑니까? 유익이 옵니까? 유익이 옵니다.

거짓 걸로 핍박하거든, 네게 죄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자꾸 널 미워하고  욕하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 상급이 크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축복 아닌 축복이 있습니다. 축복 아닌 축복이.

 제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 그 뒷집이 술집이라, 술집인데, 모여앉으면 저 욕을  해요. 어짜든지 그 사람이 요새 환장을 해서 예수를 믿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망했는데 그인 망할라고 자꾸 그란 다고서. 그렇게 욕을 해요. 욕할 할  때에 그 때에 그 깨달음이 이상해 내가 깨달음은 뭐라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니까? 들으시겠지 욕을 자꾸 해야 하나님이 듣겠는데 욕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욕을 할 수록이 그거는 축복이 아닌 것같은데 실은 축복이라.

축복 아닌 것같은 축복이라. '아 저 사람들이 또 모여 앉아 가지고 날 축복  하는구나 모여 앉아 축복하는구나' 자꾸 그래 여겨져요. 그랬는데 참 그 말대로  예수 믿기 전에 술도가 한 재물 전부다 해버리고 빈손쥐고 나섰는데 그 뒤에 뭐  축복을 해서 부자가 큰 부자가 됐습니다. 큰 부자가 돼 가지고서. 또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나올 때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나올 때에 그 하나도  안 남구고 싹 없애 버리고 그래 나왔습니다. 하나도. 없앨 때에 모가치를 갈라  가지고서 자 나는 하나님께 다 바친다 내 모가치는 바친다 하니까? 전부 다  바쳐요. 그런데 한 사람만 안 바치고 있다가 그거 나중에 그거는 죄악에  쓰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개별, 그 개별 개별의 것을 주권 능력 가지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뭐 실수가 없고 그분이 또 그 무지한 일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없는 사람에게 원수가 해한다고서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고 우리는 어짜든지 이 중심을 바꾸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그것을  기억하고 중심을 바꾸도록 기회 기회가 있는 대로 노력을 해야 되지 이 중심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기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차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목숨을  위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요것을 잘  알고 오늘 아침에 기도하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 중심인가. 하나님 위주인가  내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다른데 들어붙어 있는, 하나님 대신 다른 무슨  위주하는 그런 것이 내게 없는가 그것을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오늘 아침에,  고것을 깨닫고 또 거짓 걸로 핍박하면 그것이 죄없으면 복받는 핍박하거들랑  네가 나 핍박하니 내가 너 핍박해야 되겠다. 네가 나 욕하니 내가 욕해야  되겠다. 이것을 하는 것이 방비책입니까? 핍박하면 자기에게 있는 죄를 살펴  가지고서 잘못됨이 있는가 해서 그것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옳은 방편입니까?  뭐이요? 예? 그것이 옳은 방편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살펴서 그런 것이 있는가  자꾸 살퍼 가지고서 그런 것이 있으면 빨리 회개를 하면은 이제는 그 사람이  그렇게 욕을 하고 핍박을 해도 자기에게는 해가 오지 안하고 도리어 상이  옵니다.

 그러나 저러나 자기가 그걸 살피지 안하고 그럴 때에 그 사람을 도리어  대항하고 미워하면은 자기에게는 잘못됨이 있기 때문에,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온다고 그 주검이 있으니까? 독수리가 뜯어 먹으려고 오는 것처럼  자기에게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올 수밖에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꼭 바로 알고 무엇을 해야 되는데 자기에게 핍박오는 것, 또 돈과  비교해서 돈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 가족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 자기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 이런 것 하나님 대신으로 네기에 와 있어 가지고서 미혹뭍이  되어지는 그것이 뭐인가 하는 그것을 몇 가지를 살펴서 그걸 대적할라고 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말할 때마다 보면 그놈이 썩 나와 가지고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중심이 된 그것이 회개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그생명의  역사는 자기에게 있지 안합니다. 있으면 자기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멀리 피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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