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생각할 때와 맡겨야할 때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21일 토새

 

본문 : 출 20:3-6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것은, 원어라는 것은 그것이 아주 옛날 미개어입니다. 아주  미개어요 아주 고전어이기 때문에 그 표시가 분명치를 안하고 그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석을 이렇게 저렇게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 하나님 존전에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두지 말아라 하는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 순위로, 순위로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순위로 하나님 앞에라는, 순위라는 그런 뜻을 가집니다.

 이것이 지난밤에도 말한 거와같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그 위치에 모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존자로 또 지극히 크신  분으로 또 하나님이 홀로 자존하신 분으로 또 그분이 모든 면에 그 이상이 없는  그분이 모든 면에 크고 능하고 두렵기도 제일 두렵고 크기도 제일 크고 순위로  말하면 그런데, 두려운 것도 그분이 제일 두렵고 모든 두려움은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모든지혜는 그분에게서 나왔고 모든 능력도 그분에게서 나왔고 모든  미움도 그분에게서 나왔고 모든 건설도 그분에게서 멸망도 그분에게서 축복도  그분에게서 저주도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분에게서 나오지 안한 그런 것은  그것이 순위대로 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다 착오된 것입니다. 그게 삐뚤어졌기  때문에 지금 이 과도기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런 것이 작용할 수도  있지마는 결국은 이 순서대로 가고 맙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이것이 혼돈됐습니다. 이것이 혼돈된 것인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모시지 안하고 하나님 아닌 것들이 다 하나님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그것 때문에 세상은 혼돈이 됐습니다. 혼돈되고 혼잡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것을 바로 잡아서 근본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근본대로 이루시는데 인간이 약해서 가다가 실수하고 넘어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속하셔서 앞으로는 영원히 넘어지고 실수해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그 공심판에 걸리지  안하도록 공심판 문제를 완전히 주님이 다 부담하셔서 해결 공로를 설정하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그것이, 뭐 우리가 물론  간절하고 이런 것도 있지마는 '저가 나를 안즉' 하는 것은 주님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원인으로 또 주권자로 자주 자존자로 또 창조주로 이렇게 알고 그분을  상대해서 살고 또 이분을 모시고 이분 아래에서 살아 모든 존재를 그 순위를  바로 알아서, 입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실상도 알고 두려워함도 알고 의지함도  알고 바라봄도 알고 믿는 것도 알고 가까이 하는 것도 알고 필요성으로도 알고  이 순위를 바로 알면 그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되니까?, 바로 되니까? 하나님과 자기와의 거리끼리 안하니까? 하나님의 충만이  그이에게 얼마든지 자유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자유로 올 수가 있습니다.

 지존자로 거처를 삼는다. 그 지존이라 말은 그 이상이 없다 말인데, 그 이상이  없단 말이요. 그 이상 그 이상 자꾸, 철학의 이데아주의는 그 이상 그 이상  말하는데 그 이상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으로 알고 그분 슬하에  있는 것이, 그분을 그렇게 모시고 이 순위를 바로 찾아 가지고 자기 지위를 바로  찾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이인 진리, 그 다음에 자기, 그래 있으면 그것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활할 때에는, 생활할 때에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신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모두 다  현실들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무엇을 창조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당신의  뜻이 나오면 그 뜻대로 그만 모든 것이 창조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오면  뜻대로 창조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말하고 영감을, 영감이 나온 그 모든 외형적인 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거듭났다 그 말은, 성령은 바로 직접  하나님을 말씀하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 뜻을 가리켜서 진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이요 진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의 제일 대목이 뭐이냐,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또 영감이 나왔을 때에,  영감이 나타났을 때에 진리라 또 진리가 그 형체화 되어 나타났을 때에 성경  말씀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그러면, 요 '나 외에',  하는 것은 요것은 좀 막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할 때에 좀 억세게 좀  강하게 이렇게 말을 하면은 힘이 있는 것같지마는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지나친 강한 것이나 또 무시하는 것이나 꼭 같습니다. 위로 치우쳐도 안 되고  아래로 치우쳐도 안 되고 안 됩니다.

 그러기에, 다른 신을 우리가 접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요 순위로, 하나님이  부리시는 신이라, 천군 천사도 그는 영물이기 때문에 신이요, 또 악령도 그것도  산이요. 다른 신이라는 이것은 조금 영물보다는 이제 그것을 무슨 좀 주권자로  또 그것을 어떠한 하나님과 비슷한 그런 존재로 이렇게 인식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신이라 이랬는데 신이라는 말이나 영이라는 말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밤에 우리가 공부한 대로 이 순위를 기억하고 잊지  아니해야됩니다. 이 순위가 이게 뭐 예사롭게 뭐 그러나 저러나 한가지 아닌가  하지마는 이것을 명심하고 요대로 할라고 애를 써도 자꾸만 현실에 따라서  피동하기가 쉽습니다. 어떤 현실에서는 제법 하나님을 위하고 뭐 하나님을  찬양도 하고 하나님을 높이지마는 어떤 현실에서는 하나님이고 뭐이고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만 자기도 안 보입니다. 자기도 안 보이고  현실만 보입니다. 현실만 보여서 이 현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할꼬 이 현실에  대해서 내가 대항을 한번 해 볼까 이 현실을 어떻게, 현실을 두고서 논평하지  안하고 평가하지 안하고 비판하지 안하고 그만 현실에게, 어떻게 내가 이 현실에  복종을 하며 이 현실에 잘 보이며 이 현실의 종이 될까 어떻게 이 현실을 좋게  할까 현실에 어떻게 하면 아부하며 어떻게 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여기에 간교하게 하든지 어짜든지 이 현실에게 내가 도움을 입을까, 현실에게  도움을 입을까 이 현실에게 혜택을 입을까 이 현실에게 긍휼을 입을까 그렇게  되어지는 현실이 아주 그 성격이나 권위나 종류가 아주 판이하게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아무 그런 일이 없을 때에 요 순위를 잘 정해놓고 자꾸  연습을 해놔야 되지 나중에 가서 우리가 신앙생활 해 보면요 순위를 요렇게  인식해 놓은 것이 요것이 뒤에 후회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요 요런 인식을 안 해  놨으면 그만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요 인식을 해 놨기 때문에 그 순위를 버릴  수는 없고 그 순위를 찾을라 하니까? 기가 막히는, 사람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죽음이 제일 어려운 건데 그만 제일 어려운 죽음이 자기에게 당면하게 되는 그런  일이 될 때에는 자기가 평소에 익혀 놓지 안한 그것을 그때 익힐라 하면은 그때  집어 내던져 버립니다. 뭐 그런 것을 어디 이런 것을 다 용납 시키냐고서, 용납  안 시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자기가 교인을 기르든지 무엇을 할 때에도, 그란다고 해서 다 되는 거는 아니고  안 되는 것은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그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무슨 온전하고 구비한. 그 방편을 다  썼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그것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평소에 이런 순위를 잘 가르쳐서 해 놓으면 자기에게  관계없는 그 현실과 마찰이 없는, 현실에게 거슬리지 않는 그런 현실은 (내가  보는 중간반 반사 하나 없는 것 같다) 아무 거리끼지 안할 때에 이 순위를 잘  가르쳐 놓으면 제가 익힙니다. 순위를 외워라 익혀라, 자꾸 익혀서 그것이 속에  들어오면 차차 차차 자기에게 처음에는 객관 지식이 됐다가 나중에는 주관  지식이 됐다가 나중에는 주관이 되고 그것이 나중에는 본능이 돼 버립니다.

본능이 돼 버리면 이제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 네가 이 여기에 대해서는 순위를  어떻게 생각하노 하면 자기가 환하이 익혀 놓은 것이기 때문에 순위는 첫째  주님, 자존하신 주님, 자존하신 하나님, '주님' 해도 하나님이요 '하나님' 해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라 말은 자존자라 말이요. 주님이라 말은 자존자로서  나를 책임지신 구원의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표시해서 주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해도 되고 '성령님' 해도 되고 또  '예수님' 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요 그 본체는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그 삼위라 삼위라는  것은, 위라는 것은 무슨 높고 낮은 위가 아니라, 성부는 제일 높고 성자는 그  다음이고 성령은 그 다음이고 그런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위가 한 위요,  지위도 꼭 동등이요, 본체가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인데 이런 직책을 맡아서  행하실 때에는 이런 하나님이라 성부라 또 저런 직책을 맡아서 할 때에는 성자라  또 그런 직책을 하실 때에는 성령이라 이렇게 한 하나님이 이 직책을 맡을 때에  그래 나타났지 그때 그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삼위' 하는 요것을 다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삼위.'  또 창세기 1장에 '우리' 하는 것이니까? 그거는 복수(復數)가. 그것은 벌써  하나님께서, 한 한 분이신 하나님이 역사가 벌써 세번째 나타났다 이랬소.

이러기 때문에, 거기에서 하나님이 이런 직책면으로 저런 직책면으로 저런  직책면으로 크게 말하면 셋 직책면인데, 셋 직책면인데 셋 직책면에 한 군데도  모순되지 안하도록 이 인간을 창조를 할라고 하면은 이 셋 직책면에서 어떻게  창조해야 되겠느냐 하는 그 의논한 의논자가 '우리'입니다.

 거기는 복수의 그 삼위의 일체를 말한 것인데, 이래서 많은 이단자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그 존재적 순위로 하는 그런 그 순서가 있다 하는 그것은,  아주 그거는 뭐 그거는 엉터리 아주 이단이고 존재적으로는 동시에 했지마는서도  좀 논리적으로라도 그렇게, 논리적으로라도 순서가 있다 또 그 모든 권세나  지능이나 영광이나 그런 것이 또 차이가 있다, 또 권위도 차이가 있다, 이렇게  그 본질과 본성도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자꾸 뻐드러져 나가는 것이 그것이  이단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그 본체는 하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바로 한 분  하나님 그분이나 말이요. 한 하나님, 한분 하나님 그분어지마는서도 그분은 전지  전능의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대속하시는 이 일을 할라고 사람되어  오셨을 때에는, 그 직책이 다르기 때문에 근본 하나님의 본체, 바로 본체,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나님 따로 있고 하나님 본체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주체고 본체가 아니라 본체나 주체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이요. 또  완전자기 때문에 거기에는 아무런 순위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는 인성을 입고 왔을 때에는 반드시 고  약속 대로, 계약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약하셨고 하나님이, 삼위 일체  하나님이 다 예정하시고 그렇게 계획하셨는데 계획하신 그대로 한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지마는 이 일 하실 때에는 또 이렇게 이런 위에서 다른 두 위에  대해서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그것이 다 하나님 한 분 당신이  작정하신 그 작정에서 그와같이 되어 나온 것이지, 딴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그 기본구원에 속한 영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니고, 영은 벌써. 우리 자체가 영이 주격인데 다 죽어 있기 때문에,  다 죽어 있으니까? 죽은 자가 뭘 하겠습니까? 죽은 자는 아무것도 활동 하지  못합니다. 죽은 자를 그것을 암만 심판해봤자 뭐 죽은 것이 죽은 것뿐이지 별것  없고 또 죽은 자에게 아무리 명령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사람이라는 이 사람이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그 죽어 있는 것 중에  주체가 되어 있는 영을 하나님이 살렸습니다. 영은, 그것은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살려야 되지. 살리고 난 다음부터는 그 주격이 되어 있는  그 영을 통해서 모든 그 마음 몸 이것을 구원하시기를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속하신 일을 가리켜서  성자라고 말하고 또 대속 하신 것을 우리에게 효력있게 적용 역사를 하는 분을  가르쳐서 성령님이라고 하는데 성령님은 대속을 우리에게 대해서 적용시켜서  완성하시는 역사하실 때에 성령님이라, 내나 성령님이 성부요 성부가 성자요  성자가 내나 성령님입니다.

 그러기에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어. 달리 생각하면 안 되요. 뭐 오늘까지  유전적으로 자꾸 이와 같이 해 놓은 그거는 사람들이 말한 그것만이 아니요.

성경이 제일 권위라. 그러니까? 어짜든지 성경에서 연구해야 됩니다. 그라고 또  연구도 사람이 자꾸 요렇게 보면 요리 치우치고 저리도 치우치기 때문에 모두가  다 치우쳐서 무익하게 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영은 이미 구원얻었는데 구원얻은 영은 무엇을 지금  하고 있는가? 영은 구원얻었는데 구원얻은 영이 자기에게 하나님이 유일로 주신  선물이 있으니 그 선물이 그게 뭐인가? 마음을 주셨고 몸을 주셨고 육을 주신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우주가 넓고 영계가 넓고  이렇지마는서도,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이 많지마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진리 다음에는 자기의 육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육을 살릴라고  지금 하는 것이 지금입니다. 그러니까? 영은 이 육을, 이 영이 주격 노릇을,  육에 대해서 주격 노릇을 어느 정도 하느냐 주격의 그 권위가 어느 정도 지금  성실해 있느냐, 또 이 심신이라는 심신은 중생된 영을 주격으로 그렇게 모신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이래서 이 심신은 중생된 영을 주격으로 삼을 때에 살고 또  중생된 영은 이 심신을 주격이 되어서 통치하고 지배하고 이용하고 이것을 또 잘  안보하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심신은 마치 사람이, 주인이 있으면 주인이 집도 주인의  소유요 집이 주인은 아닙니다. 집도 주인의 소유요 또 다닐 때에는 차를 타고  다니는 그 차도 주인의 소유요 또 공중에 타고 다닐 때에는 비행기 비행기도  주인의 소유요 또 바다에 타고 다닐 때에는 배요 배도 주인의 소유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영되는 것 아닙니다. 또 마음의 기능이 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몸의 기능이 영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데 요새는 마귀라는 놈들이 뭐라고 하느냐, 전부 합동수의입니다. 합해서,  뭐이든지 나누면 그만 절단나. 나누면 절단나고 절단적으로 어짜든지 자꾸  합해서 하나 또 뭉칠라고 애를 씁니다. 뭐이든지, 왜 사람을 이렇게 나누느냐,  또 나누느냐, 또 이렇게 무슨 구원을 나누느냐, 나누는 것을 반대합니다.

필요없는 나누는 것도 그것도 은밀히 말하면 이단, 또 나눠야 될 것을 뭉치는  것도 은밀히 말하면 이단, 그러기 때문에, 이리 치우쳐도 안 되고 저리 치우쳐도  안 되니까? 이 바로 아는 데에는 성령님이 와야 바로 알지 성령님이 아니면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중생된 영은 자기의 소유를 지금 마련하는 것이고 자기  소유를 빼앗기지 안할라고 정리하고 정돈하고 편리하도록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은 원하지마는서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순종 해 봐야, 영감에  순종해 봐야-무궁 세계는 영감 순종 또 하나님의 뜻이인 그법칙대로의 사는 것  그게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전부 영감 순종 또 그 진리 법칙인데-세상에서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세상에서 안 해 봤으니까? 할  수 없으니까? 세상에서 그것을 연습시켜 가지고서 연성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르쳐 놓고 또 시작하게 해 놓고 또 그것을 연습을 시키고 또 연습을  시키고 난 다음에 이게 얼마나 이제 견고해졌는가 똑똑해 졌는가 연단을 하고 또  연단을 해 가지고서 이것을 바로 이제는 불변의 것으로 됐느냐 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연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또 그것을 순종할  때에 시험하시고 시험하셔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이제 환경으로 불을 태워서,  잡것을 태워서 연단하시고 연단하셔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연성을 해서 완성을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영이 자기 것을 마련하는 것  자기 것을 마련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안한 것은 하늘나라에서는 순종을  못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제일로 높여 보지 못한 자는 그 나라에 가서 높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높일 줄도 모르지 의지할 줄도 모르지 바라볼  줄도 모르지 순종할 줄도 모르지 알지도 못하지 하는 그런 마음과 몸뚱이를  부활시켜 가지고서 가 놓으니까?, 이거는 그게 덩어리만 뚱뚱하니까? 그저  생명이 있어서 움직이는 그 제한된 생명. 움직이고 활용은 하지마는서도 마치  집동 묶어 놓은 거와같이 다른면으로서는 생명없는 죽은 거와 같다 말이요.

기능적으로는 아무 무능하니까?,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 가지고 그것이 영광의  차이요 실력의 차이입니다.

 지금도 누가 등용할 때에 그 사람의 고기덩어리가 중량이 많으냐 가벼우냐 해  가지고서 등용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 자기가 등용하는데 필요한 대로 이 사람은  계산을 잘 하나, 이 사람은 어학을 잘 하나, 이 사람은 또 무슨 비판을 잘 하나,  이 사람은 그 모든 활동성이 빠르나, 그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그 사람을  채용하는데 아무리 고기덩어리가 크다 할지라도 그건 필요없어. 고기덩어리가 큰  것은 그 사람은 이 사람은 고기덩어리가 큰데 나는 지혜도 뭣도 아무것도  필요없고 힘센 사람이라야 되는 것이니까? 이 사람은 고기덩어리가 크니까? 이제  채용 하겠다 하고서 시험해 보니까? 그게 덩어리만 크지 힘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또 힘이 없어 그것도 채용 못 한다 이거요.

 그래 가지고서 여기에도 등용할 수 있고 저기에도 등용할 수가 있고 여기에도  감당할 수 있고 저기에도 감당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취직 자리가 많고 그  사람의 실력이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인제 다른 사람 못 하는 것 아무도 못  하는 것 하면 가치가 있다 그 말이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아마 그럴 것이요. 나는 뭐 이치로 말하는 것인데, 그  사람을 한 달에 수십억을 줄라고 해도 그 사람이, 한달에 오면 수십억을 줄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을 그 초빙하지 못할 것이요. 그 사람을 그 암만  우리나라에 그렇게 필요해서 오라고 해도 초대를 못 할 것이 그 초청을 해도 그  사람들이 올 수가 없을 것이라. 그런 사람도 지금 있을 거라 이거요. 우리가 잘  모르는 세상에서 시비하고 다투는 것은 한 가지 두 가지 지식에서 다투는데 한  가지 두 가지 지식에서 다투는데 그 저 나라에서 모르는 지식을 여기에서 알면  그 나라는 그만 그 지식 앞에 벌벌 떱니다.

 그래 가지고 얼마 지나고 나면은 그 간첩들을 보내고 이리 저리 해 가지고서 그  지식을 딱 그 사람들이 도용해 버리면 그만 뭐 너나 내나 한 가지 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게 참말인지는 모르지마는 소련이 미국에 있는 모든 지식을 다  도용을 해 가지고서 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잘 활용을 하고 배짱이  있으니까? 제일 위에 가 있어. 그래도 소련의 것은 저 사람들이 배울 것  없지마는 미국의 것은 지금도 소련에서 배울게 많아. 밥 먹고 고요히 앉아  가지고 그런 것만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연구는 앞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거요.

 그런고로, 그게 뭐이냐 그것이 영의 실력입니다. 그 영의 실력, 심신의 기능이  영의 실력이요 영의 지위요. 이 사람은 손을 가졌는데 손을 가졌지 마는서도  이거는 아무것도 못해. 기역자 쓰라 하니까? 벌벌벌 떨면서 이 얄궂게  뻐드러집니다. 처음에 우리 기역자 배울 때에 잘 안 됩니다. 이래 가지고 이래  쓸라 하니까? 그게 잘 안 되어서 삑 돌아가고 이런데 그게 여러번 써 가지고  기역자도 딱 요래 구십도 각으로 요래 딱 쓸 수가 있다 이거요 그런데 그 손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데 아 그 사람은 아주 기능이 있어서 손으로 가지고서 먹을  뭉쳐 가지고 종이에다가 휘적 휘적 이거 그림 하나 그리니까? 그림 한 장에 그  몇십만 원 아니 몇백만 원, 그림 한 장에 몇백 만 원 해도 못 가진다 말이요. 그  잘 그려지지 안하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이 세계 제일인, 역사에 제일인 그런  묵화 치는 사람의 그 사람의 그림이 한장 와 있으면, 그거는 아주 골동품으로  굉장하겠는데 그거 하나 받을라 해도 잘 안 준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뭐 그것을 이 세계에 한 여 나므 장 그려 내놓던지 한 댓 장 그려 내  놓으면 아주 강대한 그 부국에서나 그라지 그리 안하면 못 가진다 말이요.

그러면, 다 같은 손이지마는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기능이라.

 시험을 치는데 이 사람은 손으로 이라는데 아주, 백 명을, 천 명을 시험을  치는데 한 사람이 합격이 돼. 그 뭐이냐 하면 그 손에 글씨쓰는 기능일 것이요.

또 다 같이 시험을 치는데 동시에 보니까? 계산을 빨리 퍼뜩 해 가지고서 억만  명이 쳤는데 한 사람 합격도 수도 있다 이거요. 이것을 지금 자, 모두 핵 시대가  되어 가지고서 이 소련 뭐 미국 중공 모두 이래 가지고서 야단을 지기는데 지금  핵이 말만 그렇지 암만 핵이니 뭐이니 현재에 신무기 신발명의 그 모든 전술을  그것을 완전히 무효로 하는, 해봤자 있거나 그까짓거 무효로 하는 그런 지혜를  어떤 사람이 가졌으면 이 세계는 그 사람 세계입니다. 그 사람 세계요. 그라면  그 하나도 없고 자 이 사람이 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막을 수가 없어. 지금 뭐  무엇이 무엇이 레이다니 뭐이니 뭐 뭐 별게 다 있지마는 소용이 없어. 이거는  쏘면 그만 소련도 막지 못하고 미국도 막지 못하고 아무도 막지 못하고 이거 딱  하나 가지고 그들 하는 것은 다 방어할 수 있고 무효가 되고서 여기에서 하는  것은 그들이 방어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이거 하나 가지면 세계 제일이 안  되겠소? 큰 소리 할거라 말이요. 소련 너거 암만 쏴라 자 이래 가만 있을 테니  한번 쏴 봐라 암만 쏴야 다 헛일이지. 또 여기에서 하나 쏘면, 조그만한 것 하나  가지고 시험해 볼테니까? 한번 해 봐라 하니까? 그거는 방위할 수 없지. 그라면  그만 당장 복종이요 뭐. 말할 것 없어. 포프도 그만 와서 무릎 꿇어요. 그라면  너거 그만 소련 쏵 없애 버린다. 꿇을 것이요. 이렇게 기능은 귀하다 그 말이요.

기능은 귀한데.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자기의 마음의 기능과 자기의 몸의 기능을 지금  마련할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 마련하는 것은 현실에서만 마련하고 그  마련하는 유일한 법칙은 성경이 가르쳐 놨고 성경보다도 세밀히 성경을 초월한,  인간의 문서로 표시할 수 없는 그 고상하고 세밀한 것은 문서 가지고 표시 못  합니다. 말로 하는 것도 그 문서로 표시다 못 하요. 그러나, 우리 마음으로 하는  것은 그 문서 그까짓 거야 다 표현 못합니다. 그 뭐 그게 얼마나 둔합니까?  문서라는 것은 둔하요. 말이라는 것도 둔합니다. 속에 자기 마음에 백 가지 있는  것을 말로 열 가지로 표현 못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그런 기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영의 것이요. 또 심신은 지금  영에게 복종을 당해야, 주인에게 필요해야 그것이 명이 길지 주인에게  필요없으면 죽어 버리요. 그 집에라도 보면 그 주인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 그  집안에 모셔 놓습니다. 아무리 필요해도 필요하다가서 지금 필요 없으면 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요. 필요없으면 그 없어져 버리고 누가 가져 가도 가져  갔는가 말도 안 합니다.

 이러니까?, 이 심신은, 이 몸이라는 것은 마음에 필요해야 되겠고 마음은 영에  필요해야 되겠고 또 영은 또 어데 필요해야 됩니까? 영은 어디 필요해야 되지요?  우리 이 ○ 집사가 일등이구만. 하나님에게 필요해야 돼. 잘못하면 잊어 버리기  쉬워요. 그런데, ○ 집사님 기도하는 거, 기도를 안해. ○집사님 기도 안하고  항상 그 재독하고 설교 하고 자기 혼자 그렇게 새김질하는데 그 새김질하는 것  좋습니다. 새김질하는 것 좋지마는서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어오 그 입으로  말하고. 자기가 자꾸 입으로 설교하면서 귀로 들으니까? 재미가 있거든.

이렇지만 옆의 사람에게, 기도할 시간에 기도해야 되지 그런 것 하면 안 된다  이거요. 알겠습니까? 뭐 자기대로 깨달은 대로는 자꾸 설교 하듯이 합니다. 뭐  돈이 있어도 믿음 없으면 안 됩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권세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믿음이 제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꾸 그래 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재독이  되고 또 새김질이 되기 때문에 좋아요. 그 지식을 얻는 것이지 기도는 아니라  그거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자꾸 그게 귀로 들어오니까? 기도를 못 한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말을 내지 안하고 웅얼 웅얼하는 것은 뭐 웅얼소리 하나 뿐이지,  하나 웅얼거리니까? 하나 웅얼 거린다 그거 하나만 인식해 버리고 나면은 그  뒤에 다시 인식할게 없어. 이렇지만 자꾸 다른 말하면 사람의 이 감각이라 하는  데는 자꾸 기들어와서 자꾸 비추어지기 때문에 딴 걸 자기가 생각할 수가 없다  말이요.

 내가 가만히 보니까? 어떤 사람 옆에서 ○집사님이 그라니까? 그거 그만 그것을  물리치고 자기가 이래 할라고 애를 써도 그만 자꾸 그거는 아는 걸 이래 말하고  자기는 좀 묵상할라 하니까? 그게 좀 이 발견하기가 어렵고 자기의 감각에  떠오르기가 어렵다 말이요. 떠오르기가 어려운데 이 자꾸만 직감적으로  직각적으로 그만 이래 자꾸 외쳐 되니까? 그 소리에 여기 딴 것이 들어오지  못하니까? 애를 써서 이 쌓다가서 만다 말이요. 내가 보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아 저 집사님은 왜 저렇게 기도하는데 방해하고 저라고 있는고 그럴라면 자기  혼자 가서 하든지 옆에 같이 기도하는데 그라는가, 그럴 거요. 그건 기도가  아니라. 그거는 말하자면 새김질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좀 외우고 자기가  지식할라고 노력하는 것이라. 그거 필요합니다. 혼자 가, 산에 가서는 그래 할  수 있어요. 아무도 없는데 가서하루 종일, 신구약 성경을 다 그랬으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해서 그거는 말씀을 새김질하는 것이요 읽는  것이지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심신의 기능을 자꾸, 이 죽은 것을 살려서, 죽은 것을 살리는데  우리가, 영이 뭘로 살았지요? 영이 뭘로 살았습니까? 영이 뭘로 살았습니까?  ○○○. 영이 물과 피로 살았습니까? 어디 성경에 그래 되어 있어요? 아무나따나  대면 되는게 아니라 그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하는 그런 짓을 말아야 되요. 그저 이래 말하니까? 뭐 아 성경  말씀은 이래도 붙이고 저래도 붙이고 그 성경 말씀이 자기가 한 말이 전부  나중에 가서 다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그러니까?, 그러기 때문에 제일 정죄 심판  많이 받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삐뚤어진 말 해 놓은 그 사람이 받을 심판이 크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많이 스승되고저 하지 말아라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 그 말은 삐뚤어진 말 했으면 심판이 크고 또 옳은 말 해도 심판이  큰데 심판 끝에 상이 클 사람 있고 벌이 클 사람 있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하면 안돼.

 물과 성신인데 물을 다른 또 그 성경에 한 것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 놨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성령과 진리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성령과 진리로 어떻게 살아나느냐? 살아나는 그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예수님의 피공로를 통해서 영감이 우리에게 왔고 진리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를 힘입으면 벌써 주님의 대속의  공로는 자기가 입고 있고 대속의 공로 안에서 진리와 영감의 은총을 받지 그  밖에서는 못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안에 있지 안하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영도 영감과 진리로 살았고 또 마음의 기능은 뭘로 삽니까?  ○○○조사님, 녜, 어쨌든지 그만 맞은 대답을 하기는 했소. 속에 아는지  모르는지 그거는 내가 모르겠소. 그라고 우리 ○○○ 조사님, 울뚝 하는 것 그거  떡 그래 놓고 영웅적으로 딱하는 그거 무슨 영웅같이 하지마는 거기에서 가치는  다 깎아집니다. 이번에 목사 안수를 받을 터인데 단단히 그걸 따질 것이요. 그래  가지고서 뭐 각서를 받을 만침 따질 거라. 말로 아무나따나 틀린 말이라도 그만  확 해 놓고 잘못했다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 목사가 되면 그런 위선 가지면  안 됩니다. 그 철두 철미하게 그걸 회개를 해야 됩니다. 옳으면 뒤에 항복할  말을 자꾸 한다 그 말이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만용이라 어리석은 용기라 그  말이요.

 마음의 기능도 영감과 진리 외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또 몸의 기능도 영감과  진리 외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자기의 말이라는 것도 자기의 말의 능력 말의  능력도 영감과 진리로만 살지 딴 걸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또 자기의 가진 일은  뭘로 삽니까? 일은 뭘로 살지요? ○선생. 말도 영감과 진리 말의 기능도 영감과  진리, 또 자기, 그라면 일도 영감과 진리로 살아납니다. 딴 걸로는 살아나지  못해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온  영감과 진리로만 살아나요. 또 자기 물건은 또 뭘로 살아납니까? 물건은 뭘로  살아나지요? 물건도 영감과 진리로 살아납니다. 영감과 진리로 살아나는데  물건이 죽기는 뭘로 죽었습니까? 마귀의 감화와 불법으로 죽었습니다. 마귀의  감화 불법으로 죽은 것이 이제 그 진리대로 해 가지고서 그것이 영감에게  연결되면 그만 살아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 말해요. 아이구 거기에는 암만 가야 항상 설교하는데  뭐 거기에는 영감 진리가 다라 영감 진리가, 그 사람이 영감 진리를 말을  하지마는 영감 진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 말이요. 하나도 모르는  사람. 물어 보면 하나도 몰라.

 이러니까? 우리가 이거 작은 것같지마는서도 모든 것은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  중보자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았는데, 영도 우리를 살릴 때에는  예수님의 공로로 공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충만과 연결을 시켜서  우리를 살리는데 그 살릴 때에는 언제든지 진리로 외부를 살려 가지고 그 속에  알맹이는 영감으로 살려서 다 살립니다. 이러니까?, 영감 진리를 자꾸 말하니까?  영감 진리 영감 진리 그라지마는서도 우리가 요 지식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자기가 돈 이것도, 돈 이것도, 가지고 있는 돈도 이것이 외부적으로는 진리대로  되고, 진리대로 되어도 산 것 아닙니다. 영감대로 이 돈이 한번, 진리의 돈  영감의 돈이 돼 버렸으면 이 돈은 하늘나라에 쌓여집니다. 이돈은 이 물질이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은 아니고 이 물질 그것도 기능이요 그 사용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이용할 수 있는, 활용할 수 있는 활용권.

 저 뒤에 누가 저 봐 저 뒤에 쳐다보라 말이요. 저 뒤에 쳐다 봐. 저 아 그  무엇이 또 인제 작용한다 불을 껐다. 여기 지금 나쁜 자들이 자꾸 돌아 다녀요.

여기 지금 도적이 많아요. 도적이 많고 도적이 많고 아주 강간하는 자들이,  강간자들이 많아. 겁탈자들이 많아. 그러기 때문에 여자들 조심해야 돼요. 지금  우리 교회에 그런 것이 많애 지금. 지금도 보니 자꾸 그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그것이 내나 그놈이라 말이요. 저거 당장 가서 내가, 나 같으면 쫓아가서 잡아  가지고서 지금 한대 때려야 되겠는데 그 뭐 모두 다 성자가 되어 놓으니까? 그래  안한다 그 말이요. 성자가 되어 안 그런데, 그걸 할 줄 알아야 돼.

 내가 언제 말들었는데 여기에 청년이 보니까? 여반 그 기도실에 와 가지고서 이  몇 부랑자들이 와 있으니까? 어떤 집사님이 내려가서 이 남반들이 있는가 싶어  내려가 가지고서 이러니까? 여기 ○○○ 선생이 있더래요. 그래 ○ 선생이 가  가지고서, 지혜가 있어. 딱 가서 코에 맡아 보디마는서도, 그 술을 먹었어. 이리  내려오너라 그래 그만 대번 내려와서 그래 가지고 그만 한대 안기더라고. 그래  가지고 그분이 통쾌해서, 아 그분이 아 그 호리호리하이 그래도 아주 억세고  강하더라고서. 그때 한대 안길 때에는 그거, 성경에 그래 놨어. 채찍을 애끼면  음부의 자식을 만든다 했어. 구원하는게 채찍인데 그 매라고 나쁜 것 아니요.

해석을 잘못해 그렇지. 그럴 때는, 때릴 때는 말이요, 때릴 때는 병신 안 되도록  때리되 그 한 번 때리면 '아이구야, 그놈 손때 맵다' 손때 맵다 그 말이요. 한번  그러니까? 뭘로, 칼로 꽉 찌르는 것같이 그만 이래서 '아이구 그놈 손때 맵다  칼로 찌르나 그 뭘로 찌르노' 이렇게 되도록 해야 되지 슬그머니 투딱 투딱  그까짓 거야 때려봤자 뭐, 그라면 그만 깔보입니다. 때릴 때는 어짜든지, 그것도  해야 돼. 해 가지고서 딱 때리거들랑 칼로 콕 찌르는 것같이 그만 며칠 가도  거석하고 '그놈이 칼로 찔렀나 그때 뭘로 했나' 이렇게 해야 그때 딱  휘어집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힘으로 하는 놈은 힘으로 우겨야 되지 그 힘으로 주장하는 걸  도덕으로 암만 휘봤자 사랑으로 암만, 진리로 암만 휘봤자 영감 안 오면 암만  휘봤자 휘어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할 수 있어야 돼. 저 뒤에 무엇이  하나 어릉 어릉 것는다. 저놈이 저랬네. 봐 저 나가네 지금. 갔다가 두드려  맞을라. 그것도 좀 힘 있어야 돼.

 그래 여게 뭐 ○○○장로님이 이리 썩, 그때 자꾸 이집에 학생 때 다니니까?  깡패들이 만나 가지고서 덤비는데 또 그 두번째 와서 덤벼 가지고서 달라들기  때문에, 서이 와서 돈 털라고 덤비기 때문에 그만 셋을 한구디다. 다 뚱쳐서  그만 다 재어 놓고 그만 이래 놓으니까? 이 뭐 어떻게 겁을 내는지. 그래 가지고  다시는 안 달라들더라고서.

 여기 그 말해. 순찰들이 저녁으로는 돌아요. 저녁으로는 꼭 이 주변에 돕니다.

도니까? 어떤 자 밤중에 거석하면서 '아이구야 저 서부교회 순찰 온다 맞아  죽는다' 맞아 죽는다 이러면서 그래 그만 저리 그만 도망을 쳐 버리더래요. 그  좋은 거라.

 전쟁을 하는 데에는 살며시 숨어 가지고서 잡아 죽이는 것도 있고 또 이  겉으머리 나타나 가지고서 날려 보내는 것도 있고 인제 도적을 꼭 잡는 것도  있지마는 날려 보내는 것도 있어요. 그 날려 보내는 것이 쉽고 좋아요. 전쟁하는  데에 횃불을 잡는데 서이 횃불 한 개를 잡고 가는 그 전쟁이 있고 혼자 열십자  횃불을 지어 가지고 혼자 횃불 서이를 지고 가는 것 그거는 무슨 전쟁입니까?  그거는 무슨 전쟁이지요? 혼자 횃불 세개 들고 가는 그거는 무슨 전쟁입니까?  잡는 전쟁이요 날려 보내는 전쟁이요? 그 날려 보내는 전쟁이라 그거야. 날려  보내는 전쟁. 그것도 필요해요. 그래 가지고 위협을 줘서 그 한번씩 몇 그래  놓으면 거석한데 여기 청년들이 모두 바보 똥덩어리가 됐어. 그 성자가 아니라.

앞으로 환난 오면 다 꺼꾸러지고 다 뭐 힘 못 써요. 주일학교 만 명 올리라 해  놓고도 그만 추우니까? 그만 퍼드러지고 바쁘그까 뻐드러지고 하는 그런 의지와  그런 뭐 용기 가지고서 뭘 하겠소 하기를. 앞으로 환난 오면 이기겠소? 못 이겨.

안돼. 지금부텀 강철같이 자꾸 연단을 시켜야 되지 그리하면 안돼. 그만 뭐  있으면 뭐 피해서 도망치는 그거 가지고는 안 되요.

 우리 ○○○ 목사님, 여게 사찰로 있을 때에 이 집에서, 요 집에서 마구 그  똥물 예배당에 퍼부고 이라다고만 막 엉크리고 세게 오니 그만 그만 방에  들어가서 딱 문닫고 딱 숨어 버리요 그만. 그것이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안한다는  그것도 있지마는 그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깎은 그것도 또 필요가 있다 그  말이요.

 그래도 안 되요. 그런 거는 좀 이렇게 하고 성자가 되어야지, 되도 안하고  성자가 되어 가지고서 그라면 안돼. 그거는 겁이 나 가지고서 피하는 것이니까?  그런 것도 겁이나 피하는 것은, 겁나는 것과 그 두려워하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천성에 들어가요? 뭐라 했어요? 계시록 21장 끝에, 두려워하는 자, 개들 그런  자들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 했어요 못 들어간다고 했어요? 예? 뭐라 했소? 못  들어간다고 했소. 못 들어간다고. 그 비겁을 그 겁나 가지고서 죄짓지 안한다는  그거는 벌써 그 죄에게 복종당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거  해 가지고서 주님을 힘입으므로 주를 믿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담대해지고 자기  실력도 그것도 또 담대해져야 돼. 그것도 없으면 안돼. 그런 것 오면 하나 딱  잡아 가지고서 그저 그래 놓으면 다시 거석이 없지.

 이러니까? 여기 와 가지고 자꾸 부랑을 지겨 쌓는데. 여기 ○○○ 집사 가 여기  있으면서 그 부랑자 두 번 만났데요. 두 번 만나 가지고서 말도 안 하고 그만 딱  거석하니까? '아이구야 이거 보니까?' 그러니까? 같이 왔던 사람이 그만 그  보고서 '어라 어라 어라 가자 가자 가자' 아마 그 도장에 다니는 걸 봤던지  모르겠소. '가자 가자 두드려 맞을라'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술먹고 여기  오지를, 다시 안 해요. 어제 우리 여기 집짓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여자가,  우리, 돈 다줬는데 어떻게 부랑을 지기고 자꾸 이래 뭐 욕을 하고 이러니까?  감당할 도리가 없어. 오면 그만 욕을 퍼붓고 이래 쌓아서. 그래 이랬는데-저  서이 나가는데 시간되어 나갔나 저 어떤 부랑한 놈이 나가나 지금 저 나간다  어떤 사람이 한번 만나서 한번 야단을 쳐놓고나니까? 얼마나 겁이 났든지 그  사람에게 돈 준 것이 그 삼만 원인가 얼마인가 좀 덜 준게 있어서 그것 줄라고  삼 년을 찾아도 못 찾겠어. 얼마나 깊이 숨었는지. '아이구야 그 나타났다가는  그만 평상 징역살이 할런지 모른다' 얼마나 홍금을 집어 먹었든지 그 사 년  만인가 오 년 만인가 내가 찾아 가지고서 그걸 줬습니다. 어떻게 뭐 꼬리를  감추어 버렸는지.

 그런 것은, 힘은, 힘으로 거석한 것은 힘을 겁을 내고 이라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면, 그것도 좀 연습을 해 가지고서 가져야 돼요. 여기 청년들 모두 해리  해리하이 그것만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자꾸, 그런게 와요. 하나님 의지할 것이  아니라 이것도 가지고 주먹으로 때릴 수도 있는데 안 때리야지. 얕보이면 안돼.

모두 뭐 우리 청년들 보면 어떻게 약하든지. 그런 사람 일 못 해요. 좀 몸뚱이  좀 강철같이 좀 연단을 시켜요. 저 우리 ○○조사님은 조그만해도 어북  강합니다. 보면.

 우리 지금 심신의 이 기능을 지금 구속시키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  생활에 대해서는 성신의 감화도 달라요. 성경을 기록한 성경을 기록하는 기록  영감도 있고 또 우리에게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화의 영감도 있고 또 역사의  영감도 있고 여러 가지 영감이 있으니까?, 우리 이 구원은 현실을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데, 언제든지 이 현실을 통해서 구원 주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에  대해서 바로 알고 취급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그 지난밤에, 제일 처음이 뭐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중요 합니다.

이 연습을 자꾸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여기 대해서 무식해서  구체적으로 이거 몰라요. 몰라도 이래 뭘 툭탁거리니까? '주여,' 또 이래 뭘 이  그릇을 이래 만지다가 그릇이 와장창거리니까? '오 주여' 그게 자꾸 주님이  나와. 그것도 연습을 여간해 가지고 그런 것 아니요. 그것도 연습으로 됩니다.

연습을 여간해 되는게 아니라. 되니까? 되니까? '주여' 어데 밤에 기도하는데 뭐  와닥닥 거리니까? '주여' 그것도 좋은 연습이요. 그래 가지고서 어짜든지 주님을  첫째로. 나는 그것 좀 연습을 지금 하고 있는데 그 공산주의자들이나 뭐 와  가지고서 몽둥이로 때리면 아야, 아야 소리는 안 하기로, 아야 소리 안 하기로  그것은 내가 어디 가 배웠느냐 하면 개한테서 배웠소. 그거는 개한테서 배웠어.

이 개싸움을 시킨다 하는데 개싸움에 뭐 있는고 한번 보자 해 가지고서 운동장에  꼭 한번 가 봤는데 보니까? 아 이 큰 개가 있고 조그만한 개가 있는데  저까짓거야 대번 작은 것 저건 죽일 거다 이랬는데 좀 있다 보니까? 큰 개가  졌다고 그만 큰 개 가지고서 작은 개가 이겼다고서 야단이라. 그 나는 암만 봐야  지고 이기는 걸 못 봤다 그 말이요. 못 봤는데 '어째 그렇소?' 이러니까? '아 뭐  깽소리 안 합니까? 깽소리' 그래 깽소리 한. '큰 개가 깽 그랬습니다.' 깽 거린  그게 그만 진거라. 거기에서. 아! 이제 내가 이럴 때에 내가 입술로 말 한 마디  딱 잘못하면 그것으로 져 버렸으니까? 그만 판결 다 났으니까? 그 뒤에 뭐 내가  이긴 척해도 소용없다 8·15 지나고 난 다음에 신사참배에 대해서 큰소리 암만  해봤자 소용없어. 8·15 가기 전에 신사참배를 이겨야 되지 소용없다 이  모양으로. 그 깽하면 그만 져 버리는 거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요 현실을 만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일을  하는데. 그 일호에 하나님, 일호에 하나님이 첫째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겠는데  하나님 두고 그만 딴 것 말했으면, 발람이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데 처음에 그가  갈라고 마음을 딱 돌이키니 하나님께서 '가 봐라' 그라고 하나님이 그 다음에는  작용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말 안 했지마는서도 그 나귀를 통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지금 금했지마는 갔으니까?, 제가 뭐 말은 '아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걸 내가 죽은들 내가 어길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 말씀 어기면 안  된다' 아주 발람이 하나님 말씀 잘 지키고 엄격하게 지키고 뭐 죽어도 지키는  사람같이 그렇게 말했지마는 자기가 속에 알맹이는 완전히 뺏겼다 그말이요.

뺏겼어 이러니까?, 그 다음에는 생명을 내놓고 생명을 내놓고 그 계명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명령을 지켰소. 그래도 발람은 범죄자로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발람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어떻게 그가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어떻게 강하게 했으며 어떻게 입술로 잘 했으며 어떻게  철두철미하며 하나님께 물어서 거기에 피동되는, 어떻게 철두철미했는데 그것이  외식이요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주장이 돼 가지고서  첫째가 제라. 그것이 첫째가 제입니다.

 또 사울 왕이 왜, 왕 노릇을 했는데 왕되지 못하게 했다 하는가, 그러면 왕되지  못하게 한 것, 그러니까?, 왕 노릇하지마는 왕이 되지 못했어. 뭣때문에 왕이  되지 못했는가? 이러기 때문에, 그 왕되지 못하게 한 그때부텀 사울 왕은 사람  보기에는 왕이지마는서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왕되지 못했기 때문에, 왕이기  때문에 사울은, 사울 왕은 자살했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자살했소. 왕이기  때문에 근심, 왕이기 때문에 고통 왕이기 때문에 불행했소. 왕이기 때문에  수치스러웠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봐야 되겠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첫째, 주님 하나님 다 한 가지요. 이래 뭐라  하니까?, 어제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그릇을 아래 놓는데 어떤 집사님이 우리  집에 왔어요. 이 그릇에다 뭘 덮으니까? 탈칵 거러니까? 그릇이 탈칵하니까?  '아, 뭐이 깨졌나' 이럴 건데, 탈칵거리니 '주여' 턱거리니 '주여' 이란다  말이요. 그래 내가 있다가 '아 이 사람이 연습을 좀 했구나.'  또 여기 저 우리 ○○○집사님, 아주 일자무식인데, 시골 할머니이니까? 이런데  오면 참 아주 저 꼬랭이가 될 줄 알았는데 지금 십팔 등인가, 백 구십 몇 명에  십 팔 등인가 십칠 등인가 하고 있어 가만히 보면 성령의 권능이 같이 해요.

그런 사람이 안 들을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척척 나오고 뭘 지배를 하고  이러는데 저 양반이 저거 뭘로 저라는고 이래 보니, 혹 저한테 옵니다. 오면  꺼떡하면 '주여' '주여', 말끝마다 '주여', 입에 연습이 되어서 그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주여 하는 것인지, 사람이 거석하면 습관이 되어서 아야 아야  하는 것 모양으로 그라는 것인지 몰라도 '주여 주여' 뭐 거석하면 뭐 말도 하면  '주여' '주여' 이 연습을 해 놓으니까?, 아 저거 연습을 바로 했으면 저거 참 큰  권능 얻었겠다 이랬는데 말하는 것 보면 아주 뭐 유식한 사람들이 다 뚝뚝  떨어질 만침 진리의 말합니다. 뭐 판단이 어떻게 정확한지. 이러니까? 우리가  무슨. 우리는 자꾸 만나는 것은 현실인데, 만났던 것이 지나가는 것도 현실이  지나가서 과거가 되고 또 만나는 것도 미래가 현실로 가고 전부, 수많은 미래가  현실을 통과해서 현실로만 나와 관계합니다. 그 수많은 나와의 관계있는 미래가,  수많은, 나와의 관계 있었던 과거가 다 현실을 통해 가지고서 다 결정되었다  말이요. 현실을 통해서 결정을 지웠는데 요 현실이 자기에게 올 때에, 그 현실이  올 때에 잘못하면 현실이 척 닥치면 그만 제일 말단에 못 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못 쓸사람은 현실이 턱 닥치니까?, 아 이 현실을 어떻게 할꼬, 그  사람이, 그 사람 못 쓸 사람인데 그 사람보다 더 못 쓸 사람은 어떤 사람이요?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인데 그 사람은 무슨 현실을 떡 만나면, 무슨 현실이든지  떡 만 나면 '아 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돈 수입이 되겠느냐' 이거는 돈에  완전히 화인을 맞았기 때문에 돈밖에 모르는 자라. 이 현실도 만나면 '아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면 돈벌이가 되겠노' 저 현실도 만나면, 사람을 만나도  일을 만나도 물건을 만나도 '어짜면 손해가 안 가겠노' 항상 물질  이해(利害)뿐입니다. 그게 제일 그거는 못 쓸 사람. 물질 이해. 또 그리안하면  자기 명예 이해. 무엇이든지 그런 어떤 하나에게 딱 귀속이 된 사람을 가리켜서  양심이 화인 맞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자는 떡 뭐이든지 만나면  소설가는 뭐이든지 만나면 여기서 무슨 소설을 쓸까 어떻게 쓰면 될까, 이  소설가는 뭐이든지 만나면 소설이요. 그것도 다 죽은 것.

 그러면 그 현실을 만날 때에 자기의 주관에 무엇이 하나 욕심이 하나 있어  가지고서 그 현실을 전부 욕심에다 귀속시켜 가지고서 욕심이 주장해 가지고  현실 해석하는 그자도 있고, 또 이런 현실 저런 현실 바뀌어지니까? 그 현실을  따라가는 자도 있습니다. 현실에게 끌려 가 가지고 이 현실 닥치니까? 그 현실에  따라가 가지고서 그 현실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고 또 저 현실로 따라가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라 하고. 현실에 따라가는 자 있고 그자보다 나은 자는  그래도 무슨 현실 닥치면 이 현실을 내가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하겠노, 저를  세우는 자. 이래 가지고서, 그러면, 내가 지금 몇 가지 말했소? 예? 몇 가지,  양심에 화인 맞은 자. 또 꺼꾸로인데 그 다음에는 둘째는 뭐이요? 현실에  따라가는 자, 현실이 대는 대로 이 현실 닥치면 이 현실 연구하고 저 현실  닥치면 저 현실 연구하고, 현실에게 끌려 가는 자, 또 꺼꾸로 셋째는 자기, 이  현실을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이용할까, 어떻게  관계를 가질까, 내가 어떻게 할까 그 자기, 그래 가지고서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이계명을 어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보다 나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현실을 턱 닥치니까?, 현실을 척  닥치니 그 현실을 척 닥칠 때에 대번에 시작을 어데서 합니까? 시작을 어디서  하지요? 그 현실을 몇호로 삼습니까? 저 ○○○ 조사님. 삼호, 그런데 삼호인데  일호는 뭐이요? 하나님. 주님. 아 주님이, 이호는? 예? 내게 주님이 내게 현실을  주셨다 요라면 벌써 요동을 잘 못 해요. 그 다음에 넷째가 뭐입니까? 넷째가?  여기에 ○○○씨가 그때, ○○○씨 손 들어 봐. ○○○씨. 안 나왔네. ○○○씨,  가. 죽어서 안 나왔는지 회개하러 산에 갔는지 모르니까? 가 보라고. 그날  사호에 현실을 주셨으니 현실은 뭐하라고 주셨느냐 이래 물으니까?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고 주셨습니다. 그만 그 초절이 됐다 그거요. 틀렸다  이랬더니마는서도 이제 기도하러 갔는지 기도하는 것보다 이거 좀 배우는게  낫지. 기도하는 것 보다 배워야 제가 알지. 아 이 현실을 주셨으니 이 현실은 내  구원을 위해서 주셨다 이라면 벌써 넘어졌습니다. 벌써 어지러워져 가지고서  힘을 다 잃어 버리요. 힘을 잃어 버려. 그만 거기에서 어두워진다 말이요.

어두워져.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현실을 주셨는데 이 현실은, 사호가  뭐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주신 것이니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함이 되겠느냐,  인제 그 것을 연구해야 그 다음에 구원이 돼지는 것이지, 주님위하는 것이 내  구원 되는 것이지 내 구원이, 나 위하는 것은 내 구원 안 됩니다. 구원을 자기  주를 위하는 것이 자기 구원이요. 영원히 주를 위하고 주만 알고 주님만 위하고  주님에게만 피동되고 주로 자기의 전부를 삼은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독침 앞에 있을 때에, 그 뭐 평소에는 그렇지마는 독침  앞에 있을 때에, 아주 억울한 꼴이 있을 때에, 분한 일이 있을 때에, 그 감옥에  갇혔을 때에, 사형을 받았을 때에, 만일 갑자기 가다 가서 큰 맹수를 만났을  때에 그때에 인제, 그때는 그게 그때 그거 맹수 만났으면 그게 몇호입니까?  ○○○ 권찰님, 삼호, 맹수 만난 그것도 삼호라 그 말이요. 그렇지 안해요? 살인  강도 만났으면 그거는 뭐이요? 삼호. 또 사형을 만났으면 그거 뭐이요? 그것도  삼호라. 또 이제 재산에 대해서 그만 낭파를 만난 그것도 뭐이요? 삼호.

자기에게 아주 억울하고 참 자기를 매장시키는 아주 매장을 만났습니다. 그건  뭐이요? 그거 삼호라 말이요. 다 삼호라. 그런데, 이 삼호를 누가 줬느냐?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것이라, 선물이라. 그라면. 어떻게 하라고?  주를 위하라고. 그 사호가 주를 위하라고.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만 거기에서 그것을 하는게 아니고 내 구원을 위해서 하는 날이면  꼭 사람이라 하는 것이 무지하기 때문에 거게서, 하나로 되어야 되는데 하나가  아니고 자기 구원이라 하면은 벌써 원 근본을 떠났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몇  갈래 길이라도 나갈 수 있습니다. 몇 갈래 길이라도 나갈수 있어요.

 이러니까?, 자, 이 큰 맹수를 만났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이 맹수를 주님이  나에게 보내 줬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겠느냐, 그러면 그  맹수를 만났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겠습니까? 거게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지요? 주님을 위하는 그거 하나로만 가져야 지혜가  나오지 그리 안하면 지혜가 안 나오요. 그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뭐이라야 될꼬? 이거는 어려우니까?, 거게서 주님을 위하면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겠지? 저 우리 ○○○ 목사님 예? 뭐라 하노? 예? 예수 만났는데, 뭐  호랑이 만났는데 뭐 구속을 어째 입는고? 내가 맹수 만났다 안 했나? 맹수  만났다 했다 죽음 만났다 했나? 예? 예수 만났다 맹수 만났는데 뭐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뭘 거기서 뭘 어떻게 입겠소? 맹수를 만났는데 주를 위함이 뭐이라?  예? 거기에서 주를 위함은, 주님이 지극히 크신 분 주권자이신 주님, 개별 주권  섭리자이신 주님. 나의 피난처이신 주님. 나의 안보자이신 주님 이제 그 주님을  모시는 것이 주님을 위함이라, 그 주님을 모시고. 이러니까?, 거기에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며 그 명령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하는 걸 보여 줄 것뿐이다. 명령 지켰지마는 거게는 맹수  왔으니까? 거게서 명령 지키고 주님 사랑하는게 뭐이냐 하면 주님을 아는 것이요  주님을 모시는 것이요 주님을 믿는 것이요 주님 약속을 의지하는 것이지. 그거  아니겠소? 내 대답이 어때? ○○○목사님 어때 틀렸어? 예? ○○○ 목사님 어때?  이 해석 틀렸는 가? 예? 뭐라 하노?  어짜든지 이 사호를 우리가 잘 해야 됩니다. 사호 거기에서 중요합니다. 자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서 이놈 당장 이 독침으로 찔러 죽인다 독침을 자꾸  이래 내가지고서 이렇게 뭐 위협을 하고 있을 때에 그때가 그 뭐입니까? 그 몇  호입니까? 예? 삼호, 삼호인데 그러면 거기에서 우리가 할 사호는 뭐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주님을 위할까? 주님을 위해 그러면  이제 죽인다고 하면, 예수 내놓으라 해도 죽어도 예수 안 내놔야지. 또 계명을  어기라 해도 안 어기야지. 불의를 하라 해도 안 해야지. 그건 내 행동이고 그  안에 주님 위하는 것, 그게 그것 가지고 안 되요. 주님 위하는 것이 있어야 그게  되어져요. 안에, 주님. 그 안에 주님 위하는 것은 뭐이지? 내부적으로 주님  위하는 것은 뭐이요? 그거는 외부적으로 행동으로 주님 위하는 것이고 그 속에  심령으로 주님 위하는 것은 어떻게 주님 위하는 것이겠습니까? ○ 목사님 대답해  봐? 주님의 지극히 크심 지극히 크심, 주재자이신 주권자이시고 개별 섭리자이신  주님을 내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 내나 자기 심령 작용. 그라면  그 행동이야 저절로 나오지.

 이러니까?, 이제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에는 그라면 주를, 위하면 어떻게  위해야 되느냐 이제 또 성경에서 배워야 돼. 성경 가지고서, 오호에 성경 가지고  이래 나비 봐야 된다 말이요. 나비 보면 그 다음에 주를 위하는 것은, 주를  위하는 것이 뭘로 나오느냐 하면은 그 사죄 칭의 화친으로 나옵니다. 그라면  그것이 자기 구원 이루는 것.

 그러니까?, 주님을 위하는 것인데. 성경 보니까?, 아 이 주를 위하는 것은  주님이 대속하신 대속을 내가 입은 것이 주님 위하는 거라. 주님의 대속을 주님  위하는 것은 내가 주를 위하는 것 주님에게. 받는, 위한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드린다는 말은 받는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는 드릴 수가 없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전부 받는 것이라. 섬기는 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라.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뭘 드릴 수가 없어요.

 이러니까?, 주님을 위하는 것은 주님이 나를 위하시는 그 위하심을 내가 받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 나를 위하심을 받는 것이 어떤 것 하는 것이  받는 것인가? 그것이 내나 삼대 대속을 받는 것이요. 대속을 내가 빼앗기지  안하고 대속을 내가 받아서 입는 그것이 이제 받는 것이요 주를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렇게 요 순서를 자꾸 평소에 연구를 해 가지고서 평소에 자꾸 말로  연습하고 생각으로 연습하고 조그만한 사건에서 연습하고 이래서 벼락같은, 산  벼락같은 문제가 턱 닥쳐도 그때에 요 연습해 놓은 그 순서를 빼앗기지 안하고  요 순서대로 딱 잡고서 요렇게 있으면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흔들지 안하고. 또  흔들지 안합니다. 요 순서만 혼돈 되면은 그만 그놈이 우리를 멸시하고서 발로  짓밟아 버리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기도회에 참가해 가지고서 기도하도록 합시다. 지금 한 사천 오백 여  명 밖에는 등록이 안 됐는데 모두다 다 등록하고서 하도록, 그 주일학교가 천  이백 이십 명이 여기 등록하고 있고 중간반이 천 오백 이십 삼 명 등록하고  있고. 장년반이 천 칠백 육십 사 명이 등록하고서 하고 있습니다. 십분 기도  후에 삼층에서 권찰회 모입니다.

 사데 교회가 되면 안 되요 사데 교회. 어떻게 받았는지 어떻게 들었는지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지켜야 됩니다. 생각하고 지키면 다 되요. 뭐 공짜배기로 다 줘  놓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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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6토새 선지자 2015.12.17
566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30수새 선지자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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