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선지자선교회 1980년 7월 29일 화새 

 

본문: 야고보서 1장 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들여다 보고 있다는 이 말을 무엇 때문에  이리 붙였느냐  그 위에 23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는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이 거울 보는 이 말을 비유로 했기 때문에 이 비유로 한 이것을  다시 인용해서 들어다 본다 거울을 들여다 본다 보는 것 같이 들여다 본다 그  말만 해놓은 것입니다.

그 말은 얼굴 생긴 것은 거울을 보면 아는 것과 같이 자기라는 자기가 어떠한  자인지는 온전한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만 알 수 있다. 그 말씀입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율법을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떤 것이 들여다 보는 것이냐 율법을 들여서 자기가 기억하고 아는 거이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실행하는 그것이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자기가 어떠한 자인지 그것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취급을  하는 데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이 한 방편으로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는 몇인데 안 믿는 사람은 자기는 하나 뿐입니다. 자기는 안 믿을 때는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은 참 자기는 원죄와 본죄로 인해서 죽어 버렸고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끊겨져서 그것은 있지만 아무 작용은 못합니다.

마치 이 전구가 새 전구라 할지라도 전선이 끊어지면 저것은 아무 작용  못합니다. 깜깜하게 그대로 있지. 전선이 연결되면 빛을 내는 것처럼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하나님 다음으로 명철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놓으면 그것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기능  작용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가기 안 믿을 때는 하나지만 믿을 때에는  둘이 됐습니다.

안 믿을 때는 참 자기는 이 자기 아닌 것이 자기처럼 과장을 해가지고 나온 이  자가 들어서 깨워 가지고 자기를 죽어 버렸어. 참 자기를 죽었소. 아담 하와가  이 꼬임을 받아 가지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돼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죽었는데 아담이 그와 같이 한 것은 아담 단독이 아니고 모든  인류를 대표한 인류시조로서 하나님과 이렇게 계약한 선악과 먹으면 죽으리라  하는 선포된 이 계약을 어겨서 아담이 어긴 것은 아담의 허리 속에 들어 있던  사람들은 다 이 정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랬습니다.

아담의 허리 속에 들어 있다 그 말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부정모혈로 난 이  자연인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은 곧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성령으로 잉태했고 부정이 없이 잉태 되었기 때문에 그는  아담이 그 혈통은 혈통이지만 아담의 그 자손이 사람은 아닙니다.

왜 부정모혈로 된 그 아담 같은 사람은 아니고 부정이 없는 성령을 성령이  부정되신 모혈로만 된 사람이기 때문에 아담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 뿐 이였고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또 하난  뿐이었고 그러면 죽은 영이 자기에게 없으니까 아무 작용이 없으니 있어도  한가지고 영은 죽인 자가 있으니 그 자가 누구냐 하면 악령, 악성, 악습 이 셋이  단합해 가지고서 사람들의 영을 죽이고 또 몸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원죄는  영을 죽이는 일을 했고. 본죄라는 것은 제가 범하는 죄인데 이 본죄는 마음과 그  몸을 죽이는 이 일을 합니다. 마음과 몸의 기능을 죽이고 난 다음에 차차 모든  것을 죽입니다. 안 믿을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 뿐인데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자기가 뭐 하고 싶다. 무엇이 먹고 싶다. 가고 싶다. 또 이것을 밉다 이것은  사랑스럽다 하는 그것이 자기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유익될 그것을 하지 않고  자기 마음과 몸을 망칠 그 소원, 그 즐거움, 그 기쁨, 그 소망, 그 성질, 그 말,  그 행동, 자기 마음과 몸을 죽이는 멸망시키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  자기입니다.

우리의 안 믿을 때의 자기입니다. 왜 그러냐 안 믿을 때의 자기는 그 언행심사  전부가 마귀적이요 마귀가 시킨다는 겁니다. 마귀적이요, 또 자기중심적입니다.

조물주가 계시는데 조물주 중심버리고 제가 자존자처럼 제가 스스로 있는 자처럼  자기중심이 되겠습니까? 자기중심적이요 또 그것이 자기 습성적입니다. 습관 습성적으로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도 섞인 것이 없이 전부가 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수지만 그 원수를 바로 보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학문을 많이 읽고 뭘  연구를 많이 해서 석가모니 겉은 글너 사람은 많은 절제 생활을 한 사람인데  그렇지만 석가모니라는 자기 자체가 되었고 악성이 자기 자체가 되었고 악습이  자기 자체가 되어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기 때문에 그 생활한 것이 전부  하나님앞에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하나도 죄됮지 안 한 것이 없습니다.

최기주 집사 그 집에 자기 아마 자기 지금 생질이 와서 있을 것인데 집사인데  생질인 줄 알고 있는데 그 분이 불교에서는 그 대가리입니다. 대가리는 갔다가  그 회장 노릇한다는 것 아니고 그것은 다 거짓 뿌리요. 그 이후락이 갔다가서  대가리 아니었소. 그 이후락이는 그 불교 금방에도 안 간 사람입니다. 그  대가리는 다 이 기독교나 뭐나 대가리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갔다가서 다  신앙자들이 그 사람이 불교에 참 신자인데 평양에 제일 갑부에 아들로서 다  포기하고 그것을 불교에 다 바치고 들어가서 중된 사람으로 독신 생활을 한 50년  해온 사람인데 그 사람 만나서 대체 불교가 뭐이냐 그 물어도 불교가 자기가  말하는데 말하는 이것은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죄가 된다. 생각해봐라 죄가 안  되는가 이것 생각해봐라. 몰라 그렇지 말만 하면 죄가 되는 줄 안다 말이요. 몇  번 말했는데 그 다음에 가니까 말을 안 할라 캐요 아구 나는 말 안하겠습니다.

왜 말 안하는가 갔다가 우리가 논리해야 될 수 있지 않는가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믿는 사람도 성경에 기록하기를 자기 아닌 자기를 죽인 참 자기에  원수인 그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이 있다는 것을 많이 가르쳐도 그건 구별하지  못합니다. 또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없습니다.

그리 예수 믿으면 안 믿을 때나 예수 믿을 때나 자기가 자기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도 자기가 믿고 자기를 위해 믿습니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  자기를 조금 칭찬하면 좋아하고 자기를 조금만 욕하면 싫어하고 그 옛사람인데  그렇게 하는 그 옛사람 자기로 자라가지고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목사도 되고  총회장도 노회장도 되고 대개 총회장이 무엇이냐 하면 옛사람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요 그 인본주의 입니다.

이것을 말도 해주기 안 하지 말해 줘도 들어도 모릅니다. 그것도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 이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을 때 자기 영입니다. 자기 영이라는 그 자기  영, 영은 주격이요. 심신은 영의 소유물입니다. 인데 그 영이 죽었던 것이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 났다 이렇게 성경에 말합니다.

중생된 영이 참 자기인데 이 자기는 하나님과 꼭 같은 자로서 양적으로 다르지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요, 같은 자인데 이 영이  영계에 활동하려고 하면 영계에 있는 영에 지체가 있어야 되겠고 물질계에서  활동하려고 하면 물질의 지체가 있어야 되는데 물질에 지체는 이 몸이요. 영계의  지체는 우리의 이성의 마음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있어서 이것이 도구처럼  이것이 비행기 처럼 이것 타고 다녀야 되는데 영이 이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심신의 기능을 마련을 잘 한 사람은 이 우주에서도 얼마든지 여기저기  하나님의 사명을 다 감당할 수 가 있고 영계에서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지만 이 심신의 기능을 자기 현실에서 다 죽인 사람은 부활은 하기는 했지만  부활체만 있지 속에 기능은 쏵 뽑아 버렸기 때문에 없으니까 그것은  하늘나라에도 하나님에게도 필요가 없는 물건이요 또 모든 만물에게도 필요가  없는 물건이요. 이 우주라는 물질계가 필요없는 물건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부활한 무능자로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  가운데 구원 얻은 자와 같다 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 지은 사람은 비유컨대 불로 시험하면 타지 안하니까 그  영광이 남아 있지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이것은 불로 시험하면 다  타버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자와 같다.

구원을 얻으니까 이 세상에 중대한 것이 다 불타버리고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비참한 것입니다.

이런데 자기를 자기 아닌 자기를 똑똑히 보고 똑똑히 아는 법이 무엇이냐 참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아는 법이 무엇이냐 자기 아는 법, 자기 아는 법  그것은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이 하나로만 알기 돼 있습니다. 딴 것으로는  모릅니다.

아무리 신구약 성경을 외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어떤 그 세상구비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꼭 이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이것으로만 자기를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이것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율법은 무엇이  온전한 율법인데 온전한 율법은 신구약 66권 도리와 그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셔서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이 영감을 합해서 온전한 율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온전한 율법, 영감도리 온전한 율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온전한  율법, 영감도리 온전한 율법은 영감 도리입니다.

영감된 도리, 어떤 사람은 영감은 없이 이 도리, 이 도리만 자기가 받아 가지고  되는 줄로 아는 그런 사람은 자기를 모르게 됩니다. 그것은 온전한 율법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온전한 율법을 받은 사람은 영감도리를 받은 사람 영감도리를 받는데 그러면  영감도리, 온전한 율법은 두 가지, 하나는 문서요, 문서속에 성신의  감화감동으로 알려주는 은밀의지 하나는 나타내지 안 한 그 은밀한 하나님의  뜻인데 그 뜻은 성령님이 그 때 그 때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 그 영감  의지입니다. 영감 의지와 문서 의지. 이 의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인데 의지짜 뜻지짜 나타난 의지는 하나님의 신구약 66권 성경이요 또 은밀한 의지는 성신의 감화  감동인데 이 두 가지를 합해서 온전한 율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율법 준비를 하는 데에 나타난 문서의지를 준비하는 데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양성원에서는 입학을 할 때에 신구약  성경을 20독을 읽지 안 한 사람에게는 우리 교역자 양성원에는 입학을 못합니다.

입학을 하려면 신구약 66권을 20독을 내리읽은 그 사실이 있어야 비로소 입학을  시켜줍니다.

그러면 입학을 하면 거기서 다른 공부도 하지만 그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신구약 66권을 80독을 해야 됩니다. 80독을 하는 데도 제대로 줄줄 읽는 것이  아니라 이면으로 연구를 해라 해서 창세기 1장으로부터 그 면으로 연구를  해가지고 계시록 끝장까지 그면으로 연구한 그것을 연구한 발표를 기록해  냅니다.

내면 그것을 교학실에서 채점을 해가지고 이 사람은 성적이 좋다, 나쁘다 하는  그 채점을 합니다. 이렇게 연구하라는 제목을 내주는 그대로 80독을 읽어야  비로소 양성원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문서 의지  문서계시 나타난 문서의지에 온전한 이 율법에 껍데기 66권을 자기가 읽고 자꾸  보고함으로 연구하는 그 방편으로 온전한 율법을 껍데기로 자기 것 삼고  알맹이는 그 사람이 성신의 감화 그것에 대한 성신의 감화 감동을 그 66권  도리안에서 자기가 받아야 되는데 이 성신의 감화를 받는 영감의 사람, 영능의  사람, 성령의 능력있는 사람, 성신의 감화 감동이 자기와 동행하는 사람, 성신의  은사를 받는 이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성경을 읽음으로 됩니까 자기가 그 행동을 함으로  됩니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지요? 성경 읽으면 됩니까 그대로 실행하면  됩니까? 실행하면 됩니까 실행해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던지 안식일 날은 일하지 말라  한다고서 그 날 그 닭모이 줬다고는 한 낱이라도 그것이 딴 데 떨어져서 움나면  종자 심은 일 된다고서 모이도 안 줬습니다. 불을 떼서 밥도 안 합니다.

이 나물 한가지 까지도 십일조 다 드렸습니다. 이래도 그들이 자기 구주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은 영감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나다나엘이라든지 시몬이라든지 안나라든지 동정녀 마리아라든지  요셉이라든지 사가랴든지 엘리사벳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영감이 충만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들판에 있는 베들레헴 들판에 목자들도 예수님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지만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교인 번들번들한 이 모두다 성직자들  이자들은 하나도 모르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지 아니했습니까? 또 예수님께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이고쳐주니까 안식일 날 고쳤다고 예수님을 정죄해서  죽일려고 하지 안했습니까 성신의 감화가 없고 나타난 문서만 지켰고 영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면 그 영감은 어떻게 해야 받지요 그들은 얼마나 실행을  잘했습니까 성경말씀대로 실행해도 그 가지고 영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율법을 실행해야 되지 온전한 율법은 문서만이 아니요. 문서만이 아니요. 영감과  문서 합해서 영감도리라 영감도리를 실행해야 되지 문서도리로만 실행해도  안됩니다.

영감도리를 실행해야 되는데 영감을 받을려면 이것은 무엇을 드려야 됩니까?  돈을 드려야 됩니까? 수고를 드려야 됩니까? 간절을 드려야 됩니까? 무엇을  드려야 됩니까? 무엇을 드려야 되지요 뭘 드려야 됩니까 네 자 첫째 뭐요? 마음을 다하고 또 힘을 다하고 또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이러면 무엇이요?  남은 것 있습니까? 남은 것 있습니까? 없지 욕심도 다 그 속에 들었소 이러니까  자기 전부를 말합니다.

자기를 다해서 자기를 다해서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상대를  해주지 자기다 하지 않고 자기 지식만 보내서 하나님 상대하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 뜻, 성품, 목숨은 세상 다른 것을 사랑함으로 그것에 다 기울여서  거기에 다 기울여서 있으면서 찌기 이것만 하나님에게 상대하려고 다 기울이고  껍데기 남는 것 가지고 이러면 그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면 하지만 아시는데 그런  것이라도 상대해 주시겠습니까? 상대해 주겠소? 사람도 자기가 지혜가 있고 지능이 있고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이  와 가지고 못 났든지 잘 났든지 그 진실한 마음을 인격을 다 가지고 상대할  때에는 그 사람이 무지해도 좋고 유지해도 좋고 자기 대로는 있는 그 인격을 다  해가지고서 난 사람으로 알고서 상대할 때에는 나도 그 사람을 상대해서 내 힘껏  그 사람이 모자라면 가르쳐 주고 보충해 주지만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속에  마음은 따로 두고 껍데기만 발라 붙이가지고서 모르지만 하지만 알면은 그  사람은 잘 났다고 날 아주 업신여겨서 이중삼중 껍데기를 가지고서 지금  상대하고 나를 설설 놀려 주는 것이면 하면 그 사람 상대 안합니다.

아무리 잘나도 그 사람에게 들어 붙어서 종노릇하지 그 사람에게 붙지 않으면  죽을 판이면 몰라도 그런 사람이면 상대 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잘 나가지고서 껍데기로 근성으로 하는 그런 사람은  똑똑한 사람들과 상대를 안하고 진실한 못난 사람들은 상대하고 진실한 못 난  사람이 없으면 차라리 순진한 짐승을 상대합니다. 짐승을 그것이 아무 이중이  없어. 이중이 없으면 솔직히 다 하기 때문에 좋으면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고  싫으면 (   ) 그것이 차라리 났다고.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가 진정 자기라는 것 다 드려서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높으시고 완전하시고 창조주시고 주재시고 또 나를 위해 생명까지  버려두신 모든 현실을 다 당신이 만들어 내 구원에 유익되게 하시는 이  하나님으로 알고 참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높이면서 자기가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  껍데기 없이 거짓거리로 하지 마라.

이분에게 상대할 때에 그 분은 상대해 줍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기 속은 딴 데 두면서 인간들에게 내가 지금  기도 잘한다  소리 들어야 되겠고, 이렇게 해가지고 이 인간들을 설복을 기도로 설복을 시켜  어떻게 돼. 순 흉측한 야심, 복심 이것만 딱 가지고서 있으면서 청산유수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째 너 기도 잘한다. 내가 들어 다 들어 주마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이 놈, 내가 누군데 네가 나를 가증스레 내게 가증스럽게 그 따위  행동을 하노. 이러면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말미암아 분개하겠소? 좋아하겠소?  분개하지요  이러기 때문에 그래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소리를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큰소리를 하지 말아라. 버러쟁이 없이 버릇없이 하나님을 두려운 줄  모르고 하나님이 업신여긴 등신 같은 것, 아무 등신 같은 것은 무슨 소리를 해도  괜찮치 않습니까 등신 같은 것 이런 말, 저런 말 해도 괜찮은 것 모양으로 하나님께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이런 일 하지 말아라.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하나님 앞에서 큰소리를 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자기의 인격을 자기는 속으로는 사람앞에는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만 좋아합니다. 인간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다 속고 있습니다.

여자마다 남자에게 난 당신만 사랑합니다. 참 사랑하는 줄 알지만 속으로는 별별  것 갔다가 눈에 보이는 대로 현실대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이러하면서  그렇다 그런 사람 있지만 그런 여자는 열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이런데 그만  기울어져 가지고 글너가 이러지만 하나님은 그리 안 속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속지 않해 그 버릇이 있어서 하는 주여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주를 위해  죽고 싶습니다. 주의 뜻대로 속으로는 지금 딴 마음이 있어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 껍데기 거짓말 한다 말이요. 그런 말 하나님이 비유있게 듣지 안해요.

마음 상하게 들리요. 이러기 때문에 내가 내 마당만 밟지 말아라 내가 경험이다.

월 세계난 절기를 지키지 말아라. 내가 괴롭다. 너희들이 똘똘 뭉쳐 대회로  모였다 할지라도 너희 인간 노름이지 도저히 나를 중심으로 생각지 안하니까  내가 갔다가 그 대회도 싫다 내 마당을 밟을 뿐이다. 내 손이 짧아서 너를  구원하지 못하겠느냐 내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겠느냐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에게는 외면하고 있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감을 받는데에는 자기라는 인격을 다해야 됩니다.

참 진정 다해야 되요. 자 돈벌이 하는 것 만큼도 심신을 기울이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은 그 까짓 신앙을 가지고 신앙을 하나님이 받습니까  어릴 때에는 내버려 둬요.

마음 성품을 다 드려서 믿는 사람이 될까 해서 기다리고 있지요.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런 자를 하나님이 상대하는 줄 압니까 아닙니다.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꾸 가르칩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가르치고 그리 믿으면 안 된다. 저래 믿으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사는 그 현실에서 이렇게 경험하고 저렇게 경험해 가지고  차차차차 깨달아지도록 자꾸 이렇게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될 때는 언젠가  되는냐 자기도 자기를 다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며 죄없는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이 다 기울어서 나를 구원했기 때문에 다 기울어 구원하신 그 구원을 내가  받는데는 아무리 못나고 더럽지만 나도 다 기울어야 된다 말이요. 다 기울일 때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과 접선이 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것이 처음 예수 믿을 때에 어리지만 어리지만 처음에  도를 받고 난 다음에 있는 것을 다 기울입니다. 처음에 도 받을 때에 기뻐서  온갖 것 생각없이 참 솔직하게 순진하게 하나님에게 쏙 다 드릴 때에 그 때에  영감을 받습니다.

처음 믿을 때 영감 받는 일이 많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영감 받는 일이 있고 또 어떤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가 되면 그럴 때 있고 이  집회를 거창집회, 대구집회 모양으로 집회할 때 그 때에 그렇게 되는 수 있고  예배 드릴 때는 정성을 다 드려 예배드릴 때는 돈도 권세도 생각도 뭐 애인도  가정도 다 잊어 버리고 예배드릴 때는 솔직하게 마음과 정성을 다 해 가지고서  주를 위해서 생명바쳐 사랑해야 될 터인데 이 마음으로 딱 집중될 때에 그 때에  성신이 딱 이래 가지고 그 때에 영감이 되는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을 맛 본  사람은 이 일이 안 되고는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 하는데도  껍데기는 이야기 하지만 속으로는 주님하고 연결하고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그저 일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영감이요. 언제든지 갔다가 그 이중생활하는  껍데기 접하는 생활하는 속으로는 하나님과 연결하고 외부는 일도 접하고 만물을  접하지만 껍데기로 만물 접하면 속으로는 하나님하고 접하는 이것을 연습이  되어서 이렇게 하는 그럴 때에 성신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 줍니다.

가르쳐 주는 그것이 무엇이냐 가르쳐 주는 그 영감과 또 이 66권 도리와 둘이  합해졌을 때 이것이 온전한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실행하는 자 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 범위내에 세부적으로 성신의 감동대로 감화감동하시는 대로 그  율법을 성경 진리대로 행하면서 예를 들면 도적질 하지마라. 도적질 할 수 있는  그 현실에서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 듣고 도적질 안해도 도적질 안해도 그 마음이  자기 명예 위해서 안할 수도 있고 이것이 폭로될까 싶어서 안 할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까 싶어서 안 할 수도 있고 이것이 다른 사람이 이것보면  덕이 안되니까 안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안할 수도 있다 말이요. 이것을 안해야  날 신임을 받으도 신임을 받아 가지고 이 다음에 큰 뭉치를 닥치면 지금 도적질  하겠다 큰 도적질하기 위해서 작은 정직을 지킬 수 있다 말이요 별별 그 욕망과  별별 그 마음의 작용과 성질과 견해를 가지고 할 수 있다 이것이요 그것이 다 잡 것이라. 정직하되 주님이 나를 죄 가운데서 구속하면서 생명까지  버려서 죄를 사해 주셨는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을 수가 있겠느냐 주님이 나에게  의를 입혀 주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서 의를 입혀 주셨으니 내가 의롭게 살지  안할 수가 있겠느냐 주님 배반함으로 내가 영원 멸망 그것을 이 결합시켜  화평하기 위해서 주님이 죽기 까지 하셨는데 내가 주님 떠나 살 수 있겠느냐  이러니까 주님의 3대구속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이렇게 하라 했으니 내가 이것을 정직해야 주님이 기뻐하시지  이러해야 주님이 나에게 구속을 입혀 주신 이 구속을 내가 벗는 일이 아니지  이래가지고 주님과 구속과 내가 또 이렇게 살아야 이 생명의 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빛이 되어지지 이 순전히 이 성신의 감화인데 이 감화감동을 가지고서  정직을 행하는 것과 엉뚱한 일하고 정직 행하는 것이 많이 있다 말이요.

새벽기도를 나와도 그렇습니다. 새벽기도를 나와도 이제 영감도리는 내버려두고  억지로 깨우니까 끌려 나오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그 집사될려고 일 년동안  그렇게 잘 나왔는데 그 목사가 잘 알아서 조 집사될려고 그러는데 이 번에  집사를 안 시켜줘야 제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집사를 딱 떨어 뜨렸다 말이요.

떨어뜨리니까 그 이튿날부터 그만 새벽기도 안 나오고 반발하더라 말이요.

그래도 나오고 장가 예수도 믿고, 돈 예수도 믿고 자본주를 바래서 예수믿는  자본주 예수도 믿고 또 누구 동무 예수도 믿고 별별 것이 다 있다 말이요.

명예도 있고 말이지  이러니까 이 성경도리를 행한다고 온전한 율법을 함께 지키는 것이 아니고  성신의 감화감동과 이 율법을 함께 지켜야 되는 것이니까 이 율법을 바로  지킬려면 성신의 감화감동을 주는데 바로 지킬려는 자가 누구냐 자기 마음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 자기를 다해서 하나님의 구속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난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 나 위해 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명령인 줄 알고 이 성경말씀대로 행할 때 되어지는  것이지 달리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리 행해도 하나님 내 버려 둡니다.

내버려 두는 것은 어째 그러다가 차차차차 이것이 되어지고 자라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안되지만 오랫동안 이러면 자라갑니다.

이러니까 예수를 이래 믿는 사람은 자라가면 그 사람이 차차 명철해지고 굉장히  지혜로워집니다. 세상 대 마귀가 와도 그 놈에게 안 꼬이요 넘어가지를 안해요.

아주 지혜로워집니다.

하나님과 연결. 제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 연결. 자꾸 연결 하나님의  지혜가 자기 지혜되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다 알지만 예수를 믿는 가운데  오랫동안 믿으면 예수믿는 사람은 참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 이러니까 아파도  참고 싫어도 참고 억울해도 참고 가만히 예수 믿으니까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오랫동안(    ) 부처 같습니다.

바보가 되어 버려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예수 믿으면서 아무것도 몰라요. 또 어떤 자는 예수를 믿으면서 그  지혜를 배워가지고 돈벌이 하는데 그 지혜를 썼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은 지 오래 될수록 그 아주 아주 최고의 깍쟁이가 되는 그런  자가 있습니다. 최고의 깍쟁이 최고의 깍쟁이도 예수 안에 있소. 교회 안에  있습니다.

최고로 등신 바보도 교회안에 있소. 또 이는 예수 믿되 하나님에게 어찌 됐느냐  실상에 어찌 심판에 어찌 됐느냐 그것은 생각지 안 하는 사람이 점잖다. 다른  사람에게 아 그 사람 점잖다. 그 사람 참 훌륭하고 그 사람 참 의인이다 남한테  간판 소리만 듣기 위해서 속이 ? 사람에게 지금 이렇게 해야 날 점잖다 하고  신사로 보겠느냐 아 그 사람은 참 옳은 사람이네 사람이 어떠냐 사람의 눈만  상대하니까 이러면 나중에 보면 부처 같은 인간이 되버리고 맙니다. 이래 점잖이  아주 점잖게 기르면 인제 바보라 그 말이요 예수믿는 자는 그런 것 아니라 어제  명예로 믿는 자도 다 있고 예수님과 동하고 정하는 자는 그 자는 하나님같이  어떨 때는 천치바보같이 뭐 참 죽을지 속을 썩일 때는 굉장히 속을 썩이고 또  입을 다물 때는 굉장히 다물고 또 말할 때는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또 말을  하고 그 사람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움직이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요.

이런데 오늘 교회들이 왜 이렇게 자꾸 세상적으로 세상화 되어지느냐 이것은 왜  그렇다고 했지요 기독교가 미신의 기독교, 미신적인 기독교가 되어 나가고  기독교가 세상과 꼭 같은 그 인본주의, 사회주의, 도덕주의, 정치주의 이런  세상주의의 기독교가 되어지는 것은 무엇만 위주로 해서 나갔기 때문에 그래  됐다 했지요 성경, 성경만으로 보고 갔기 때문에 그렇게 탈선됐습니다.

그것이 오늘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교회들이요. 거짓 교회들입니다.

또 기독교가 미신적 기독교요 미신적인 돌팔이 도 모양으로 미신적인 기독교  이래가지고 시온파라는 것 그것은 참된 교가 아닙니다.

이래서 그런 자는 그렇게 빠지요. 내가 물건을 잊어 버렸는데 그 어찌됩니까 좀  알아 봐 주십시오. 그 물건은 동으로 간다 동으로 찾아 봐라. 동으로 찾아  보니까 동쪽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보자 아무것이가 우리 집에 왔다 갔는데 그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공연히 다른 사람 의심만 실컷하고 어떤 사람은 가 가지고  내 물건 내 놔라 네가 안 가지고 갔나 이러면서 혹 맞는 것이 있습니다. 혹 맞는  것 있다 말이요.

그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가져가면 혹 맞는 것이 있을 수가 있다. 동쪽에 자기가  그럴듯한 사람만 찾아 가니까 혹 맞는 것 있다 말이요. 백에 99는 안 맞고  하나만 맞으면 다 안 맞았다 맞은 것은 말하고 안 맞은 것은 또 부인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거짓돼요.

여러분들 그것 해 봤소 우리 클 때는 그 침점이 있습니다. 침점, 자 침을 여기 탁 뱉아 가지고 이래 탁  때리면 침이 어디로 뛰어 가는고 그리로 뛰어가면 그리 갔다가서 소 먹일 때  소를 잊어 버리면 자 침점을 해봐라 딱 때리면 침이 많이 뛰어 간다고 이리  갔다가 찾아보면 있습니까 열 번 찾아봐도 없고 어쩌다가 뛰어 간 곳이 한 번  맞았다 말이요. 맞았다 맞았다 열 번 틀리것 놔 두고 한 번 맞았다고 야단이요.

또 작대기 점이 있습니다. 작대기를 딱해서 작대기 어디로 넘어 가는가 보자 그  작대기가 바람부는 대로 넘어갈 것이고 바람 안 불면 기울어 진대로 넘어가지 별  수 뭐 있습니까 갔다가서 물리는 안 틀리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서 하는 작대기  점 한 번 해본 사람 손들어 보라고 이렇게 없습니까 그 세대가 바꾸어졌구만 자 침점 해 본 사람 침점 해본 사람  많구만 그것이라 말이요. 사람들이 이렇게 거짓되어서 자꾸 인본화 되 나간다고  이러니까 그것은 그런 것은 다 미신적인 신앙.

그것 모양으로 자 무엇 있는고 보자 어디에 가면 있다 또 나는 이런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을 포기를 해야 됩니까 해야 돼요 포기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만 점쟁이처럼 그 하나님이 그 자에게 가르쳐 주니까 하는 것, 순  거짓말이요 그 남을 꾀우는 거짓말이요. 거짓말하는 그것이 시온파에  머리입니다. 이래서 그런 호기심을 가진 그런 미신적인 인간은 그런 ( )로  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가 제 친구라. 미신자는 미신자끼리 모이고  욕심쟁이는 욕심쟁이끼리 모이고 세상 주의자들은 세상 주의자들끼리 모이고  하나님 만을 위주하는 하나님 위주자로 위주자대로 모이고 천국만 바라보는 자는  천국만 바라보는 자들 모이고 제 동무 제 찾기를 저거 끼리만 똘똘 뭉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신적으로 탈선되는 것은 그 왜 그렇게 됐습니까 왜 그리됐소.

한 번 대답해봐 미신적인 신앙은 왜 그리됐지.

뭐 위주하다가 그랬지. 한 번 대답해 봐요.

자 미신적인 신앙을 무엇을 무엇만을 치우치다가 그리됐습니까 네 문서계시 이  성경을 무시하고 성신의 감화만을 위주해 나갔기 때문에 그만 그리 탈선돼  치우쳐 가지고서 미신의 신앙이 됐습니다.

또 성경만 이렇게 위주로 하는 사람은 인본주의 처음에는 지식주의가 됐다가 그  다음에는 인본주의, 세상주의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와 성신의 감화가 없으니  그것을 인간끼리만 상대해서 날 뛰니까 자연히 인본주의 세상주의가 될 수 밖에  더 있습니까 이래가지고 절단이 난다 이것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온전한 율법이라는 것은 이 껍데기는 66권 도리요 속에는  성신의 감화입니다.

그러면 66권 도리는 내게 이성이란 마음이요. 이성과 몸을 가지고 이 66권을  자꾸 읽고 상고해야 되고 성신의 감화를 받는 데에는 뭘 해야 됩니까? (000씨  뒤에 있는 청년 대답해 봐요. 이름이 뭐지 내가 성신의 감화는 뭘 하면 받아? 한  번 대답해봐요.졸았는데 무엇을 대답할 것이라 그러면 잘 알지만 그 뭐 앞으로  복음 위해서 하겠다는 사람은 그 따위 하면 안 돼. 지금부터 이를 붙이고 살아야  되는데 뭐 그래 가지고 되겠나 ) 성경을 무시하고 성신의 감화 감동만, 그 율법만 성경만 고조해서 애를 쓰고  성경은 자기 마음과 몸에 힘을 기울어 성경은 읽으면 된다.

영감 받는 것은 암만 읽어야 소용이 없어. 양성원 학생들 백독 읽어도 그것  가지고 안 됩니다. 백독 읽어도, 천독 읽어도 안 되요. 뭐 하느냐. 자기 자기를  다 바쳐야 돼. 마음, 힘, 뜻, 목숨 이래 말하는 것은 자기 다를 말합니다.

자기가 순전히 자기를 다 바쳐 자기를 다 기울어서 자기를 다 기울어야 만  자기가 하나님을 진실히 상대하라는 말이요. 성경을 진실히 상대하라 말이요.

껍데기 마음만 가지고서 알맹이는 딴데 두고서 껍데기만 기울어 그와 같이  하지말고 자기를 기울일 때에 그 때에 내가 나를 다해야 하나님이 나를 상대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중을 못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오. 완전의 하나님 이시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중 삼중없이 다 가지시고 날 상대해 주는데 나는 다 맡겨 버리고  찌끄러기 하나 가지고 하나님 상대하면 하나님 그렇게 못 났습니까? 상대해  줍니까 못 나도 내 인격 전부 다 해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도  전부를 다해서 나에게 상대해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은 겸손한 자가 받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받고 참  하늘나라 소망하는 자가 받고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영감을 받지  이 지혜있고 똑똑한 자들은 세상의 것 전부 다 생각해두고서 세상일을 제가 그  못난 사람보다 저는 그 조금만 들어도 되어지니까 이것 모양으로 예수 믿는 것도  그러면 될 줄 알고 알맹이는 세상일에 다 기울이고 찌끼만 가져 와 가지고서  하나님을 상대하니까 이 놈아! 내가 너한테 속았다. 내가 너 찌끼 가지고 상대할  자냐? 내가 너를 다해도 사랑하는 자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너를  상대하지.

예수님의 공로만 아니면 너만 아니라 너 억억억억 뭐 수많은 역대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뭉쳐도 그 까짓것 하나님이 이만큼도 안 봅니다.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보는 것이요. 이런데 이런 분 인 줄을 모르고 자기 모든  지혜 능력 잘난 것은 모두 딴데 전부다 기울어 버리고 찌끼 그것만 떡 갔다가  가지고서 하나님을 상대한다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상대해 줍니까 예수 믿는다 해도 제일 좋아하기는 돈을 좋아하든지 인간을 좋아하든지 권세를  좋아하든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딴데두고 하나님은 제이 제삼 제오 제십 차례나  이렇게 좋아하는 그것으로 상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를 상대해 줍니까 저  혼자 날 뛰고 있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어.

이러니까 앞선 자가 뒤 서고 뒤 선자가 앞 됩니다.

뒤에라도 뒤에 예수 믿어도 딱 된 자는 되번에 되버리요. 늙도록 예수 믿어도  찌끼만 가지고 하나님 그 상대하는 자는 하나님이 상대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자기를 이 자기를 예수를 믿는지 저 자기로 예수를 믿는지  어떻게 알것인가 그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자라 실행하면 그 때에 자기를 알게 됩니다. 실행을  하면 원수 자기 아닌 자기 그 놈이 온전한 율법대로 실행하려니까 실행을 못  하도록 막 방해를 합니다. 이 놈이 막 방해를 합니다. 방해를 할 때에 내 속에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이 놈이 속에 들은 줄 나는 몰랐다. 내 속에 이런 악이  들었구나. 이런 독이 들었구나. 이런 거짓이 들었구나 아구 이런 욕심쟁이  들었구나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 나쁜 놈이 들었구나. 자기  속에 원수인 자기를 그 때 발견하게 됩니다. 새 사람 자기도 발견하게 돼요.

이러니까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데에서만 되는데 그 실행을 하되 문서율법만  실행하면 되지 않고 영감 율법을 실행해야 되는 것이니까 영감 율법이 되는  데에는 무엇이냐 문서율법 대로 실행하는 데에 문서율법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을 자기 인격을  다해서 실행할 때에 그 때에 영감 율법을 실행하는 것이 되어지고 영감은 함께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알게 돼.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기를 다 기울이지 않고는 기독교의 생명길은 하나도  못 걷습니다. 주일을 평생 지켜도 자기는 성화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에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소? 많이 없어서 노아 때 구원 얻은 사람이 몇이  있었소? 여덟식구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초림 하실 때에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몇사람 되지 안 했습니다. 몇 십명이 됐는지 몇 백명이  되었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아주 번들번들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던 사람들  메시야 기다리던 사람들, 다 배반하게 되었소.

그것이 보면 아주 못난 사람들도 주님을 영접했고 다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을  팔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정죄했으니까 말할 것이 무엇있소  성경 잘 안는 서기관들, 이것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기에 예수님 믿는 것은 모든 것보다  예수님은 제일 좋아해야 되고 제일 두려워해야 되고 제일 의지해야 되고 제일  바라봐야 되고 제일 가깝게 해야되고, 제일 높여 섬겨야 되고, 이 분이  창조주요, 이 분이 주권자시오, 이 분이 주제시오, 이 분이 모든 통치자시오, 이  분의 것이요, 이 분이 모든 개별 섭리를 하시는 분이시오. 이 분인 것을 믿어야  됩니다.

이래서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 분으로 알고 이 분으로 상대하는 이 분으로 아니까 대통령도  만나면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서 만날 터인데 대통령, 대통령을 만들고 세계를  만든 이 분을 상대하니까 이 분을 아는 것만큼 자기는 긴장할 것이고 높일  것이고 이를 존대할 것이고 숭배할 것이고, 마음을 기울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되어지는 것이라.

그러니까 저가 나를 안즉 뭐라고 했습니까 자 그 다음 뭐라 했소? 내가 저를  높이리라. 주님이 높이는 것 아니라 주님을 알고 그대로 상대하니까 그 사람 죄  안 짓지, 의롭게 살지, 하나님과 동행하지 그러니까 모든 일이 잘될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다른 것을 탐할 필요가 없어 또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다 잘돼요. 모든 잘 돼요. 저 의긴이 큰 아버지가 왔소. 나의  8촌동생되는데 와서 그 사람이 학자입니다. 와가지고 저 내가 한 번 만났는데 한  번 만나서 말했더니만 자기 부인을 이제 교회에 나오는데 나오고 자기는 뭐 제사  때문에 뭐 못 나오고 이래 내가 그래 다 말했어. 그 제사에 대한 것 다 말하고  예수 안 믿으면 망한다. 예수 잘 믿으면 잘 된다. 영, 육이 제일 잘된 사람들이  누군고 봐라.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예수 믿는 사람 누가 잘됐노? 예수 믿는 사람 제일 잘되지 안 했나? 상엄이라하는 사람은 잘못 믿었다. 그것은  먼적부터 예수를 잘못 믿었다.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네. 이 번에 집회는 내가  좀 참석하겠습니다 이랍디다. 예수를 믿으면 영,육이 다 잘돼요. 예수를 잘  믿으면 잘 믿으면 참 부부도 참부부가 됩니다. 거짓부부도 슬슬 살고 예수를 잘  믿으면 참부부가 되기 까지 굉장한 투쟁과 압력과 이 막 분쟁이 일어나지만  예수를 잘 믿으면 이것 부부도 참부부, 부자도 참부자 참 것이 될 때까지 실랑이  많이 있소. 시비가 많이 있소.

이러하나 결국은 참 것이 되고 만다 말이요. 이러니까 예수 잘 믿는 것은  세상도, 천국도, 영도 육도 다 성공입니다. 하나만 성공되는 것 아니요. 바로  알아야 바로 믿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히 돌아갑시다.

그 집회를 위해서 노력을 하되 여러분들이 절제있게 노력을 해야되지. 절제있게  노력하지 않으면 일도 못하고 병만 나고 헛일입니다.

그러니까 몸을 아껴서 병나지 않도록 슬슬 그리 개미모양으로 노력을 해요.

개미모양으로 토끼하고 거북이 경주해서 누가 이겼지요? 경주하는데 거북이가  이겼소. 거북이는 엉금엉금 기어 가니까 얼마나 느립니까 토끼는 이미 날래어  이렇지만 이 놈은 날래 뛰기는 뛰고 드러 누워 잘 때는 드러누워 자 버리고  거북은 쉬지않고 이러하니 됐소.

그러니까 이 집회 준비에 모든 노력도 꾸준히 마음을 들고서 수지 계산을 맞춰서  요리해야 되지 할 때면 왈칵 해버리고, 안 할 때는 안하는 그런 자는 토끼 걸음  걷는 자는 언제든지 성공 못합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자기가 은혜를 받아야 할 터이니 몸이 병나지 않도록 몸이  고장나지 않도록 몸을 건강에 맞도록 자기가 기도를 하고 해야 되지. 기도를  하지 않고 쫓아 다니기만 쫓아 다니면 만나면 툭 깨지고 만나면 툭 깨지고 안  되겠어.

기도를 하면 가기전에 벌써 그 사람도 날 만나고 싶고 나도 그 사람 또 만나고  싶고 만나고 싶은데 쭉 이렇게 해가지고 가면 그만 되는 것이라 마음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가면 일이 척척 되는데 이 마음은 기울이지 않고  고기덩어리만 가지고 자꾸 그러니까 자꾸 괴롭다 하면서 그 사람이 피합니다.

이제 안 돼요. 지혜있게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히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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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6토새 선지자 2015.12.17
566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30수새 선지자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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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5금야 선지자 2015.12.17
560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5금새 선지자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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