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1987. 9. 2. 밤 (수)

 

본문: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라는 것은 악의 자유도 있고 의의 자유도 있습니다. 악의 자유는 멸망이요 의의 자유는 건설입니다. 그런데 의의 자유 중에도 땅에 속한 자유가 있고 하늘에 속한 자유가 있습니다.

민족주의자들 또 애국주의자들 이런 분들은 민족이 자유 없는 것과 국가가 자유 없는 이 일을 인해서 많이 피흘려 내려온 것이 세상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자유하지 못하는 식민 정책에 있는 사람들은 다 생명을 주고라도 자유를 얻을라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민족적 자유나 국가적 자유는 얻지 못하고 자기 개인으로서 생명을 주고 개인적 자유를 얻은 그런 사람들이 역사에는 많습니다.

자유할라 할 때에 자유하지 못하게 온갖 탄압과 온갖 박해가 있었으나 그 자유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그 자유함으로 자기 생명을 내 주고 자유를 취한 그런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도 순국 열사 가운데도 더러 있고 또 민족주의 가운데도 더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있다 할지라도 자유가 없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도리어 죽는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주고 자유를 찾을라고 그렇게 사람들은 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아무리 혹독한 학정 아래에서도 자유를 양보하지 안하고 자유할라고 할 때에 수많은 고문과 고형 중에서 생명을 내놓고 자유를 취할라고 노력했지마는 자기 한 사람은 자유를 했으나 그 자유의 운동이 힘있게 번져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그런 모든 일들을 다 추모하고 또 그 씨종자가 남아 있어서 자유를 되찾은 그런 민족들과 국가들이 많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원하는 그 자유는 다 자기 민족 사상대로, 주의대로, 또 나오는 유전대로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그런 자유였습니다. 그 자유를 그것은 얻어봐도 그 수명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길게 가지를 못 하고 다 그 자유는 결국은 없어지고야 마는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서 5장 1절 이하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신 이 자유는 평가적인 자유입니다. 평가적인 자유라 말은 가치적인 자유라 말입니다.

아무리 따지고 따지고 구별해도 참 가치 있는 자유요 또 진리의 자유요 영원한 자유요 이 자유는 생명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세상에서만 자유할 뿐만 아니라 영원 무궁토록 자유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가 곧 행복이요 이 자유가 곧 쾌락이요, 이 자유가 행복이요 쾌락이요 곧 생명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들이 생명이 있으면 다음으로 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생명이 있은 지 후에는 자유를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겨서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생명을 주고도 자유를 동경하고 또 도모해서 생명과 자유를 바꿨던 것입니다.

물론 사람으로서 다 같은 것은 아니고 또 그런 데 아무 그저, 그저 일반 수성적인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자유의 가치도 자유를 원치도 안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이 자유는 생명 자유요 의로운 자유인데 자유가 없는 곳에는 쾌락도 없고 또 생명도 없고 평강도 없고 건설도 없고 다 파괴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본능대로 사는 것이 자유요 또 그의 원하는 대로 소원대로 사는 것이 자유입니다. 이 자유의 반대는 그는 다 강제이기 때문에 거게서부터 다 사망이요 고통이요 다 파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이 자유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자유가 없는 데는 생명이 없고 사망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 가지고,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셨고 또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도 죽으셨고 또 부활도 하셨습니다.

이 자유는 그의 생명의 발동이요, 자유는 생명의 발동인데 자유가 끊혀지는 데에서는 생명이 끊혀지는 것이요 또 자유는 그의 욕망의 발동인데 자유가 끊어지면 욕망이 끊어지는 것이요 생명과 욕망이 끊어지면 그는 필연적으로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여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우리에게 자유를 줬습니다.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굳세게 서서’라 말은 견고히 서라는 말인데 이 자유를 가진 자는 이 자유를 빼앗을라고 하는 그 적이 많이 있는데 이 자유를 뺏기면 사망이요 이 자유를 뺏기지 안하면 승리입니다.

이래서 반드시 자유가 있는 데에는 거게는 필연적으로 투쟁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투쟁이 있고 투쟁이 있는 거게는 반드시 이기고 지는 승패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데에는 투쟁이 있고, 또 투쟁이 있는 거게는 승패가 있고, 또 승패가 있는 거게는 살고 죽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삼킨 것은 어떤 것이 우리의 자유를 삼켰는고? 이래서,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굳세게 서서” 이는 우리 자유를 뺏들라고 하는 강한 대적이 역사하니까 네가 못 살면 죽는다. 못 서면, 서지 못하면 너는 넘어지는 것이요 서면 살고 넘어지면 죽는다.

그러기 때문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하는 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곧 죄악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사망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마귀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이 세 가지 세력에서 자유하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 가지고 당신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으로서 첫째 많은 부요를 내놓고 가난해지셔 가지고 우리를 이 종 되어 있는 데에서, 종 되어 있는 데서 해방시켜 자유케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부요를 다 내어 놔 가지고 종 된 댓가를 치렀습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그 지위를 다 내놔 가지고 우리를 이 종 된 데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또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또 이 종 된 데에서 우리를 해방을 시켰습니다.

이제 해방시키고 난 다음에 해방된 자로 사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종될 때에 어떻게 해 가지고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종이 되었느냐 하면은 종된 원인이 우리가 부해질라고 하다가 종이 됐습니다. 우리가 부해질라고, 보다 좀 부해질라고, 지금보다 좀 더 부해지고자 하는, 부요해지고자 하는 이것으로써 우리가 종이 되었고, 또 높아지고자 하는 이것으로써 종이 되었고, 또 살고자 하는 이것으로 인해서 종이 되었는고로 이 종 된 이 댓가를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거게서 댓가를 대신 내고, 빚진 돈을 빚진 자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라도 그 빚을 갚으면 그 빚이 없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죄의 값을 주님이 대신 갚으시고 우리를 종으로 매여 있는 거게서 댓가를 내고 우리를 해방시켜서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는, 이 자유는 영원한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시간에 제한이 없고 공간에 제한이 없고 또 이런 저런 종류의 종별에 대해서 제한이 없고 모든 종별에 대해서도 무한하고 영원하고, 시간에 대해서도 영원하고 무한하고, 공간에 대해서도 영원하고 무한한 영원한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지금 자유를 얻을라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유는 주님이 다 당신이 부와 존귀와 생명을 내서 댓가로 내시고 이 자유를 완전히 설정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자유만 우리가 뺏기지 안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자유를 하는 것만치, 세상에서 자유한 것만치, 세상에서 자유한 것만치 그는 하늘나라의 것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자유하는 이 실력이, 세상에서 자유하는 이 실력이 하늘나라에 부요를 마련하는 실력은 아닙니다. 요거 잘 구별해야 됩니다.

마련하는 실력은 아니고 세상에서 자유하는 이 실력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영원 무궁한 그 세계에서 그 무한하고 영원하고 충만한 그 충만한 것을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우리에게, 우리를 후사로 두셔 가지고 하나님의 그 충만을 우리에게 부모의 재산을 유산으로 주는 거와같이 하나님의 그 충만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줘서 우리를 하나님의 후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그것을 우리가 하늘에 가서 만들어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그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실 때에 그 상속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그 실력이 곧 이 자유입니다.

그러기에 이 자유가 곧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실력이요 또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아 가지고 그것을 잘 감당하는 실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그 상속 받는 그것은 어떤 상속인고 하니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영계와 물질계에,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시켜 주는, 또 그들에게 우리가 유업으로 주는 그 실력입니다, 유업으로 주는 실력.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무한하심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고 또 우리는 받도록 돼 가지고 있고 다 이렇게 예수님이 대속하는 공로를 설정해 가지고 다 이와같이 완전 구속의 공로를 설정해서 다 이루어 놨습니다. 이루어 놨는데 그러면 이루어 놓은 그것은 그만 그 종류를 말하면 끝이 없으나 하나님의 그 충만을 우리가 다 받을 수 있는 그런 권세를 다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졌는데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받으면 이 세상에서 마치 부자의 재산을 그 자녀가 다 받아 가지고 상속받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부자가 그 재산을 모을 때에는 재산을 모았지마는 그 자손이 그 재산을 상속받아 가지고 잘 보존하느냐 하면은 다 그 부자의 재산을 그 자손이 받아 가지고 일시에 부자나 그것이 다 흘러 떠내려 보내고 간직하지를 못 하게 되고, 또 그 부자가 부자될 때도 부자가 되어지는 데도 수많은 투쟁이 있어 가지고 그 싸움을 이겨서 부요하게 됐기 때문에 거게는 시기와 질투와 그 원수와 대적 복수들이 가득 찬 것이 세상 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손이 유산으로 받고 난 다음에는 그만한 그 투쟁력이 없기 때문에 그만 그 재산을 받아 가지고 다 흩어지고 맙니다, 부모의 실력을 가지면 그것을 그대로 유지할 터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이 유업인 이 상속도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다 유산으로 유업으로 받는데 우리가 받는 여게 대해서도 하나님이 마련하실 때에도 방해물이 있었고 또 하나님이 가지고 계실 때에도 방해물이 있었고 또 우리가 상속을 받아도 방해물이 있습니다.

이래서 히브리서 1장 끝에도 말씀했지마는 시편 110편 1절에 보면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네 원수가 네 발등상 되기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는 그 예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마련한 그 충만, 영생이며 완전이며 무한이며 무궁이며 영광과 존귀며 사랑이며 쾌락이며 평강인, 하나님이 가지신 건 전부 온전하고 완전하고 이렇게 좋은 것인데 이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좋은 것을 방해할라고 하는 방해자 그 원수가 있습니다.

방해자 원수가 있어 가지고 방해하는 그자를 네가 다 멸해야 이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지 그 방해자를 멸하지 못하면 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네 원수로 발등상 되기까지” 네 발 아래 짓밟혀서 이제는 종이 되기까지 그렇게 승리할 때까지 “내 오른편에 있으라” 그말은 계속해서 투쟁해라 그말입니다.

주님이 계속해 투쟁해 가지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이 무한하며 완전하며 영원하며 이 참 충만한 것, 평가적으로 존귀한 것인데 이 좋은 것인데 이 좋은 것을 이것을 시기해서 이 방해 해 가지고 없애 버릴라고 하는 그 원수가 있었으니 그 원수를 예수님이 정복해서 완전히 그 원수를 다시는 반역하지 못하도록, 역적하지 못하고 반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투쟁해서 승리해 가지고, 발등상이라 말은 이제 종으로 이제는 영원히 잡아 부리고 이용되는 그런 그 완전 승리를 이루기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성령으로 예언하신 그대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그 부요를 내놓고 가난해지고, 또 지극히 높으심을 내놓고 아주 낮아지고 천해지고, 또 영원히 죽음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시고 이 세 가지 대속을 가지고 원수를 발등상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적이 누군가? 이 적이 누군가? 이 적이 바로 악령 죄 사망 이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늘에서부터 방해를 하고 이렇게 하다가 하늘에서 거게서는 쫓겨나와 가지고 하늘에 거할 곳을 얻지 못해서 거게서 쫓겨나 가지고 이 물질계라는 이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물질계에 들어와 가지고 또 모든 이 물질계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아서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또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렇게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그 대리자로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세워 놓은,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류의 시조 하와와 아담을 유혹시켜 가지고 완전히 그가 점령해서 우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까지는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우주가 저주 아래에 있었고 또 모든 인류와 모두가 다 저주 아래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이 전투를 해 가지고 승리를 해서 이제는 원수가 발등상 됐습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의 그 원수가, “네 원수가 발등상 되기까지 내 오른편에 있으라” 고 한 그 발등상 되기까지 있으라고 하는 그 원수가 뭐인가? 곧 그것이 악령과 죄와 사망이었습니다.

이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형으로 이것을 정복했고, 대행으로써 하나님의 지공한 지공 지성의 그 입법을 완전히 이행해서 자유하게 됐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이 화목의 제물이 돼 가지고 이 일을 하셔서 우리에게 이 자유를 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우리를 자유 주신 것은 자유하는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자유를 주신 것은 곧 예수님이 대속으로 죄와 사망과 마귀 이 세 가지를 완전히 정복해서 투쟁해 가지고 예수님이 완전히 승리해서 정복해서 그를 발등상 만들고 우리에게, 이제 그를 주님이 대신 승리해서 발등상 삼았기 때문에 우리를 해하는 적이 없게 됐습니다. 우리를 대적해서 해할 적은 완전히 정복을 당했습니다.

정복을 당해서 우리를 정복할 만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완전히 주님이 승리해서 정복하시고 우리를 거게서 완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완전한 자유를 주신 것은 이것은 마귀에 대한 자유요 죄에 대한 자유요 사망에 대한 자유, 사망에 대한 자유라 말은 모든 불행에 대한 자유라 말이요 마귀에 대한 자유라 말은 이 악령에 대한 자유를 말하고 죄에 대한 자유라 말은 모든 것이 정확무오하게 우리는 살 수 있지 삐뚤어진 그런 일이 하나도, 흠과 점이 없는, 삐뚤어짐이 없는 그런 자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완전 대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이랬어.

자유 주셨다 말은 이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자유를 주신 이유가 뭐인가? 자유를 주신 이유가 뭐인가? 자유를 주신 그 이유는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줬습니다. 자유를 주신 그 이유는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줬습니다.

자유를 주신 것은 주님이 세 가지를 다 투자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셨습니다. 세 가지를 투자해 가지고 우리 대신 투자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세 가지를 투자해서, 지극히 높으심과, 지극히 부요함과, 또 이 영원한 생명을 내 놓으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 세 가지 자유를 주셨는데 이 자유는 완전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입니다. 없는 자유인데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줬다”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줬다” 자유를 준 그 이유는, 자유를 주신 이유는 자유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자유를 줬다 하는 요것이 우리에게 문제입니다.

이제 자유케 하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하면, 자유를 하면은 이 자유는 영원한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자유 하면은, 이 자유라는 것은 어떤 그 실력인가? 모든 실패를 방어하는 실력입니다. 이제는,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가 있는데 모든 실패를 방어하는, 원수로 더불어 싸워서 원수를 정복하는, 대적하는 이 방어의 것이 하나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 있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받아 가지고 있고 이 방해하는 것 이것만 더불어 싸우는데 방해하는 이것만 정복하면,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하면 됩니다.

하나,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 이미 우리 것이 돼 가지고 얼마든지 그 충만을 우리의 것으로 완전히 받아서 가지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거는 뭐 힘쓸 것이 없고,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가지게 되고.

이런데, 이제 우리가 싸우는 것은 이 방해 하는, 방해하는 우리 원수, 주님이 이겨 놓은 원수입니다. 주님이 이겨 놓은 원수요 절대성 있는 원수가 아닙니다. 이겨 놓은 원수이기 때문에 이 원수는 우리를 절대성을 가지고 우리를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절대성 있는 원수가 아니고 이것은 우리만 이길라고만 하면 이길 수 있고, 우리만 이길라고만 하면 이길 수 있고 우리가 이길 수 있는데 우리가 이길라고 하지 안하면 이기지 못하는 이런 원수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이렇게, 우리가 세상 생활 해 가지고 검사 맡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검사를 맡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자유를 가진 자유는 이거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절대의 자유입니다. 절대의 자유이기 때문에 로마서에 말하기를 “과거에는 마귀 죄 사망이 우리에게 왕노릇 했다” 그말은 절대성 가진 걸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 죄와 사망과 마귀가 절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그는 제가 이거는 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대항해서 싸우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고 절대 패전입니다. 절대 그에게 종되어 가지고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두 종류인데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종되어서 그 종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가리켜서 “죄와 마귀와 사망이 왕노릇 한다” 이랬습니다.

“왕노릇 한다” 그 왕이기 때문에 절대권을 가지고 있는고로 그 권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다시는 죄와 사망과 마귀가 왕노릇 하지 못한다” 이렇게 로마서에 말했어, “왕노릇 하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가 우리의 종이고 우리는 그의 왕이 됐지 그것이 우리의 왕노릇을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주님이 주신 이 자유를 우리가 다 가지고 있고, 이 자유를 우리가 다 가지고 있고 자유 가지지 안한 것이 없고 자유를 가지면 이것은 왕노릇 하지 못합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자유를 내 주지 안하고,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자유를 양보하지 안하고 이 자유를 가진 자는 이 셋 세력에게, 이 자유하는 세력을 가진 자에게는 그들이 와서 해하지를 못하고 발등상이 되어지고 이 자유를 가지지 못한 요소는 그들에게 삼켜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이 자유를 자기가 믿음으로 가지지 안하고 이 자유를 지식으로만 알고 있지 이 자유를 믿지 아니하고 이 자유를 부정할 때에는 그 사람은 이 자유를 입지를 못합니다. 이 자유를 알고 확실히 믿고 입은 그 요소는 그 사람에게 십분의 일이 있든지 백분의 일이 있든지 반이 있든지 그것은 자유는 뺏기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택한 자들이 받은 자유는 이 절대 자유인데 이 절대 자유를 자기가 안 믿고, 자기가 안 믿고 부정하면 이 자유는 뺏겨버립니다. 이래서 “서서 다시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말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멜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 종이 될 수 있다. 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종되지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살이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절대성 있는 자유를 주셔서 이 자유는 어떤 자유냐? 이 자유는 우리의 원수를 발등상 만든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원수를 발등상 만든 자유인데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원수의 왕이 됐지 원수가 우리의 왕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준 이래 큰 힘 들여서 주님이 세 가지를 들여 가지고 우리에게 자유 주신 이 자유를 이걸 등한히 여기고, 이 자유를 등한히 여기고 업신여기고 이 자유를 팔면 안 됩니다. 자유를 팔아서 종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노릇 하지 말라” 말은 종노릇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종노릇 안 할 수도 있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심판거리를 장만합니다. 공심판에서는 대속해서 완전히 대속했기 때문에 원수를 발등상 삼았고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었지마는 자유를 줬는데 자유를 제가 부정하고 이 자유를 부정하고 자유를 팔아버렸다 말이오. 이 자유를 부정하고 제가 다시 죄의 종으로서 얽매였을 때에는 이거는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니 우리의 일생 동안 살고 난 다음에 우리가 가서 행한 대로 심판 받을 그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에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살이에서 어데까지 자유했느냐, 어데까지 자유했느냐 하는 자유한 그 실력, 자유한 실력이라는 그 실력은 하늘나라를 얻는 실력인데, 하늘나라를 얻는 실력인데, 자유라는 그 실력이 하늘나라를 얻는 실력인데, 그러면 자유라는 그 실력이 하늘나라를 얻는 실력이라면은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실력은 아니라 말이오.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건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것 아니고 하늘나라를 상속 받는 실력인데 상속받는 실력이라 그말은 이 실력은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서 감당하는 실력이라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력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실력 이상 것을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하는 실력, 자유하는 실력 이 실력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우리가 무궁세계에서 상속받아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실력 감당할 수 있는 걸 주시지 감당치 못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양을 가진 것은 자기에게 부담이 되어지고 자기에 화가 되어지는 것이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은 자기의 소유가 되고 보배가 되는 것이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우리는 다 받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고대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건설해 놓은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무한이 한없는데 그 무한하심을 다 우리에게 우리 것을 삼아서 우리 것으로 받아 누리도록 이렇게 다 당신이 이렇게 공로로 설정해 놨습니다. 이래서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주님이 다 받으셨어. 받은 이것을 또 “내가 승리하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승리하면은 내가 받은 거 너거에게 다 준다” 그 말씀이오.

이런데 이렇게 무한함을 우리가 다 받도록 돼 가지고 있고 내것이 돼 가지고 있는데 요는 그 무한함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또 우리는 받는 것이 필요하고 이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할 때에 받아서 누릴 수 있는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실력, 실력에 합당하게, 재간을 따라서 금 맡긴 비유에도 준다 했어. 재간을 따라서 맡겼다 하는 걸 말했습니다. 그 재간 따라서 닷 냥중 두 냥중을 맡겼다는 그것도 이 진리기 때문에 그 진리도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는 다 받을 수 있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받을 수 있어. 다 받을 수 있는데 요는 어느 정도 받아야 자기가 자기 힘에 감당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실력 이상 것은 받지를 못하기 때문에 실력이 적은 사람은 적게 받고 많은 사람은 많이 받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못 받고, 이런데 그 실력은 무슨 실력이냐? 그 실력은 어떤 실력이 그때에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실력이냐? 그 실력이 무슨 실력이 하늘나라의 것을 상속받는 실력이냐?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받는 그 실력의 종류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실력의 종류가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실력이 그것을 받습니까? 실력의 종류. 실력의 종류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이제까지 내가 그거 말해 놨는데 몰라?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상속받는 데에 그 상속 받는 것은 상속받아 가지고 그걸 복되게 누릴 수 있어야 되지 누리지 못하면 상속을 못 받습니다.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실력의 종류는 몇 가지 종류입니까, 손가락으로? 다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저 ○양 그 실력이 몇 가지야? 왜 그라면 손 안 들고 그래 가지고 있어, 있기를? 한번 유명해질라고? 인제 맞게 들었는데 손 들라면 들어야지.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상속받는 데에 상속 받는 그 실력은 몇 가지 실력이 그 상속을 받게 됩니까? 그 실력 몇 가지, 실력이 몇 가지 실력이라야 됩니까? 그 실력이 몇 가지 실력인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요, 다.

손가락으로 다 들어서 가리켜 봐. 아는 사람 다 가리켜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고. ○○○씨 몰라요? 왜 알면 안 들어, 안 들기를? 다 들어야 되지. 인제 영 못돼졌네, 모두 다. 손 들라 하면 손 들더니마는 인제 손 들라 해도 하거나 말거나 어데 그걸 배웠어, 배우기를? 하나님의 그 상속을 우리가 유업으로 받는 데에 그 실력을 따라서 주시는데 그 실력이 몇 가지 종류라요, 손가락으로? 아는 사람 다 들어 봐요. 뭐 어린아이들 거석하는 줄 알아? 아니야? 중요하기 때문에 들라 해, 중요하기 때문에 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로 들어요, 셋.

세 가지 자유. 세 가지 자유. 마귀에 대해서 자유, 죄에 대해서 자유, 사망에 대해서 자유. 자유는 사망 그놈이 암만 해도 그놈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마귀 그놈이 암만 해도 그놈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죄 그놈이 암만 해도 피동되지 안해.

이 세 놈에게만 피동되지 안하면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실력이 있다 그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손가락을 들라 하는데 뭐 공연히 하는 줄 알고, 이 들라 하니 어데 가서 아마 귀신 소리 들은 모양이라. 저거끼리 귀신끼리 모아 가지고 ‘아이구, 서부교회는 가니까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자, 몇이냐 손가락으로 들라 하니까 모두 뻐뜩 들고 아이고 유치하게.’ 유치하다 하는 그게 네가 그놈이 마귀다!! 유치하다 하는 놈이 마귀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봐라!! 어떤 게 유치한고, 유치하기를? 제까짓 게 알지도 못하는 게. 왜 그런 유혹을 받느냐 말이요, 받기를! ‘그래 너는 그거 아나? 그러면 그렇게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더 속에 박혀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몇이냐 손가락 들라 하는데 그런 중요한 데 안 들면 천국 가기 싫으냐?’ 마귀를 바짝 꺾어서 박살을 내 버리지 그까짓 걸로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아이고, 또 다른 사람 또 웃을라?’ 이러니까 이 손가락 못 드는 거라. 못났다, 못났어!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옳은 것이면 들지, 왜? 누가 무서워서? 그게 자유 못 하는 자라. 삐뚤어진 데 자유 못 하는 것이 죄에 자유 못 하는 자라. 죄에 자유 못 하는 자,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삐뚤어진 데 피동되지 않는 게 죄에 대해 자유라. 뭐인지도 모르고.

죄에 대한 자유, 마귀에 대한 자유, 사망에 대한 자유, 인간들이 전부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다 죄지어. 사망의 종이라.

이 세 가지 자유가 하나님의 충만을 상속받아 누릴 수 있는 실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자유의 실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충만을 주지 안해, 받아봤자 대번에 마귀에게 다 뺏겨버리고 죄에게 다 뺏겨버리고 사망에게 다 뺏길 것이기 때문에.

인류 시조가 이 우주를 통치할 수 있는 우주의 영장으로 이렇게 존귀함과 부요함을 받았지마는 그것이 마귀에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에게 종돼 버렸고 죄에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에 종돼 버렸고 이라니까 저는 사망의 종되고 말았지.

이러니까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서 도성인신하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사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 다시 살아나사”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세 가지 큰 제물을 내놔 가지고 우리를 거게서 해방시켜서 이 자유를 줬습니다, 자유를.

자유를 줬는데 이 자유의 실력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상속받는 그 양이라. 이 자유의 양은 상속받는 양이라. 이 자유의 양은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봉사할 수 있는 실력의 양이라. 맞습니까? 맞아요? 저 뭐 중간반 반사 이름이? ○○○ 맞아? 확실히 맞아. 어실므실 맞은 게 아니라 확실히 맞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확실히 이성으로 맞았어.

그런고로 이거는 변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자유의 양이 있는 것만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맡겨 줄 수 있고 있는 것만치 그걸 누릴 수 있고, 있는 것만치 누릴 수 있다 말은 그 누리는 건 뭐입니까? 그 누리는 거는 세상 것 모양으로 제 욕심 아니오.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것만치, 주먹덩이만치 받았으면, 주먹덩이만치 받았으면 만물에게 대해서 어떻습니까? 주먹덩이만치 받았으면 만물에게 대해서 어떻습니까, ○○○집사? 주먹덩이만치 받았으면 만물에게 주먹덩이만치 필요하요. 알겠습니까? 만물이 주먹덩이만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긴하다고 합니다. 만물에게 주먹덩이만치 봉사할 수 있고 그들에게 없어서 안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주먹덩이만치 만물은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하고 존대합니다. 이것이 하늘나라 것입니다. 뭐 무슨 말인지 모르면 다 헛일이라. 요렇게 똑똑히 가르쳐도 모르면 헛일이라.

내가 오늘 어데 갔다가 기쁨의 소망을 가졌어. 조그만한 국민학생인데, 국민학생인데 거창집회의 것을 필기한 게 많다 하기 때문에 ‘보자’ 내가 필기한 것 보자 해 가지고 봐 봤어. 보니까 하나로 쪽 꿰어서, 국민학교 아직까지 상급도 아니고 이거 아직까지 지금 하급에 속한 학생인데 쪽 써서 다 했어.

그래 내가 하기를 ‘아! 이 복음의 후계자 계대자가 여기 있구나!’ 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안심하고 기뻐했어. 왜? 여기 뭐 목사들 어림도 없어. 목사들 그 간추린 거는 그만 근방에 따라가지도 못해. 나는 놀랬어. ‘이거는 인간이 아니다.

이거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우셨다.’ 하는 걸 나는 봤어. 여기 목사들 와야 못 알아들어요, 그것이. 그러기 때문에 귀신이 들어 있으면 못 알아듣게 만들어, 다.

못 알아듣구로 만들어.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것만치 천상 천하 피조물들에게 필요합니다. 이해 됩니까? 받은 것만치 모든 피조물들은 감사합니다. 받은 것만치 모든 피조물들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유업으로 받으면 그 받은 그것은 그 양은 받은 양은 무슨 양입니까? 받은 양은 만물에게 대해서 무슨 양입니가? ○○○집사님, 무슨 양입니까? 만물에게 대해서 무슨 양입니까?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것만치 만물에게 무슨 양입니까, 그 ○○○씨 옆에 군인? 무슨 양입니까? 어? 뭐라 해? 이 어린아이들은 알 건데, 조그만한 어린아이들은. 일학년은 잘 알아요.

봉사의 양이라, 봉사의 양. 받은 것만치 봉사의 양이라. 희생의 양이라. 감사의 양이라. 그들이 좋아서 영광을 돌리는 영광의 양이라. 그들의 생명이며 평강이며 모든 부강이 되는 양이라.

그러기에 이 욕심은 땅에 있는 도야지 욕심과는 정반대입니다. 자꾸 끌어당겨서 받으면 좋은 줄 알아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분명히 거게 인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인간의 행복이 거기 있다는 걸 한번 체험해 본 사람. 다 봤을 건데? 다 체험했지.

이런데 이 실력의 양은 오늘에 준비해야 되는데 오늘에 준비하는 데에는 이 세 가지 자유 준비 하는 것이 이 실력의 준비입니다. 이 자유의 세 가지 실력의 준비를 할라고 하면 예수님이 이것 만드실 때에 몇 가지 가지고 만들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거 만드실 때에 몇 가지 가지고 만들었습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 가지고 만들었어.

세 가지 가지고 만들어 주신 이 자유를 우리가 이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다시는 종노릇 하지 마라” “자유하고 종노릇 하지 마라” 이랬으니까 이 종노릇 하지 안하고 자유하는 이 실력을 마련하는 데에는 주님이 이 세 가지고 실력을 마련했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세 가지를 투자해야 이 실력을 마련합니다.

주님이 마련해 준, 이 세 가지를 투자해 가지고 마련해 줬기 때문에 마련해 준 걸 공짜배기로 우리가 받는 데에도 이 세 가지를 투자해야 이 자유를 마련하지 그렇지 않으면 마련하지 못합니다.

세 가지 뭐? 세 가지가 뭐입니까? 낮아지는 거, 가난해지는 거, 죽는 거 이 세 가지를 날마다 내놓는 데서만 이 자유를 자기가 보존할 수가 있지, 자유의 실력을 가질 수 있지 이거 아니고는 자유의 실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내놓고 자유의 실력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속의 실력을 가지는 것이요 또 이 세 가지를 내놓고 자유의 실력을 가지면, 이 세 가지를 내놓고 자유의 실력을 가지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어떻게 된다 했습니까? 저 ○집사? 대답해 봐. 이 자유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세 가지를 내놓으면 어찌 된다 했어? 듣기는 잘 듣는구먼. 저거 부자될 거라. 그 소견머리가 있어. 그래, 여러 배 백 배. 백 배. 이거라.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손해보는 자는 여러 배 백 배 받는다” 했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이 자기 당한 현실에서 이 자유 뺏기면 영원한 멸망인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이 자유를 뺏기겠습니까? 죄에 대한 자유, 마귀에 대한 자유, 사망에 대한 자유. 자유는 뭐인가? 종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종되는 거는 뭐인데? 이 세 가지 이놈이 와 가지고 나로 하여금 범죄하라 할 때에 죄 짓지 안하면 우리는 거게서 승리하고 자유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시간 있으면 더 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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