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준비-도적맞지 않는 법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23일 월새

 

본문 :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루가 천 년 같다' 이 말씀은 세월가는 것이 대단히 더디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회개를 하고 하늘나라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또 회개한  성도를 향하시는데는 마음에 하나님에게 조급한 마음이 있어서 어서 주님이  호소하는 그 성도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또 약속하신 대로 속히 이루고 싶어서  이렇게 참 하루를 지내는 것이 천 년을 지내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에 안타깝고,  또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는 것은 그 회개를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을 그런  택한 자들을 향할 때에는 그 회개 안하면 안될 터인데 회개 안 하고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회개는 하지 안하니까? 너무 그 회개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 자꾸  지나가고 회개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는 그런 걸 생각할 때에는 안타까와서 천  년이 하루 같이 그렇게 짧게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이렇게 더딘 것은 주님이 약속을 무심히  여기시거나 혹은 또 성도들이 땅 위에서 여러 가지로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것을 예사롭게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고 참 마음에 안타깝기가 하루가 천 년  같지마는서도 일면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꾸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그런  사람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연히 그렇게 더뎌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 생활하지 아니하고 자기 사욕대로  세상을 향해서 사는 자는 그저 주의 재림이 더딘 것이 좋고 또 아무런 마음에  조급하거나 갈급하거나 그런 마음이 없지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답답하고 어렵고 참 견디기 힘드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대해서 그 확신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것을 여기  미리 주의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세가 되어갈수록 신앙생활 할라 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개 대해서 쉬지 않는 그 뜨거운 관심을 가지시고 늘 함께 하시는 이 사실을  의심하게 되고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여기에 경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세에 신앙을 지켜 나가는 데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요동치 아니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안보하시는 그 안보가 요동치 않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확신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다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은 털끝만치도 요동치  아니하고 그대로 이루시는 이것을 믿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삼 대나 가나안을 약속하시고 생전에 받지 안했을  때에 받지 못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털끝만치라도 의심하지 안하고 자기네들이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을 회개하면서  영원히 터가 있는 그런 진동되지 아니할 그런 가나안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런 변해지는 가나안을 주시지 안하고 영원한 터가 있는 가나안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라 하는 이것으로 그렇게 믿고 나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상대할  때에 언제든지 고칠 것은 우리에게 있지 하나님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이것은 주님이 도적으로  오시는게 아니고,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는 것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이 주님의 날이요, 또 우리 개인적으로 주님이 불러서 주님을 만날 그날이  주님 만날 날입니다. 주의 날입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소유가  빼앗겨지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금 자기의 모든 소유 자기는 영 또 마음과  몸을 합해서 육, 그 영육이 자기인데 영육의 자기 외의 것은 자기의 모든 다  소유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기능을 하나씩 둘씩 갖추어 가지는 것도 그것도 자기  소유요, 또 모든 기능도 소유요 또 자기 몸 밖에 있는 모든 지위나 권세나명예나  가정이나 행락이나 모든 어떤 것이나 그런 것들 다 자기의 소유인데-몸 안에  있는 소유, 몸 밖에 있는 소유, 그런 소유가 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다  없어지고 빼앗기게 된다. 다 없어지게 되고 빼앗기게 된다. 자기의 생명이  떠나는 그 시간에는 모든 것이 다 빼앗겨지게 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보면 낮에 속한 사람은 자지 아니하고 깨어 있기  때문에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오지를 못 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도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지라도 빼앗길 것 없고 또 자기 생명이 오늘 떠나도 자기는  빼앗길 것이 하나도 없는 이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 몸 안에 있는 심신의 기능. 몸 밖에 있는 모든 소유 그런  것을 마련할 때에 또 가질 때에 그것을 죽음이 와도 주님의 재림의 심판이 와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영원히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을 그런  것으로 가질 수도 있고, 그만 자기 생명이 떠나든지 주님이 재림 하시든지  하면은 다 빼앗겨질 그런 것으로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필 죽음이 오든지 심판이 오든지 하나도 손상하지 안하고 그대로 보존해서  영원무궁한 세계에도 그대로 가지고 가 가지고 영원히 그것을 자기가 누릴 수도  있고 그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형제를 만물을 위할 수도 있는 그런 보배로운  자기 소유를 이 세상에서 빼앗기지 아니할 것으로 가질 수도 있는데 하필 다  도적맞을 그런 것으로 가질 필요가 뭐 없는 건데 악령이 꼬아 가지고서 이렇게  어리석은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 이하에는 보면 '조심하지 안하다가 주님의 날이 그물같이  덫과 같이 이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자유성을 말한 건데 제  마음이나 몸이나 모든 심신의 행위가 자유하는 그 자유가 그 때는 다 완전히  속박 당해서 하나도 없어지게 된다. 그것을 가르쳐 말씀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이 오고 예수님의 재림이 오실 때에 재림은 우주  종말이요 죽음은 자기 개인 종말인데. 개인 종말이 오고 영원히 시발되는 그런  큰 하나의 바꾸어지는 그런 시기가 우리 앞에는 놓여 있고 그 다음에 심판이  있고 무궁이 있는데 이 세상에서 영원히 빼앗기지 안할 좀도 동록도 도적도 해할  수 없는 영원히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그것으로서도 가질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의 공로로서 열어 놨습니다.

 이랬는데 하필 도적맞을 그런 그 방편으로 가질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 사람들이 생애 애착의 본능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소유의 소유욕의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길이 있다고 하면은 다 손해 가지 안하고  빼앗기지 안하고 그런 든든한 길을 택하는 것은 필연한 것인데, 여게 대해서는  이게 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 이치인데, 이 이치를 마귀로 인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자꾸 빼앗겨지고 없어지고 도적맞을 것, 이런  것만 가치로 여겨서 이런 성질의 것 이런 종류의 것, 이런 것들만 취하지 든든한  것으로 취하고 보존하고 또 이용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거는 사람들이 다 어리석어서 속아서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그와  같이 되는 것이지. 그 제가 참으로 알아서 고의적으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다 마귀의 궤휼에 속아서 그렇습니다. 왜 마귀의 궤휼에 우리가  속느냐? 속는 이유는, 이 세상에는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 두  지식이 있는데 사람의 지식은 배암의 지식입니다. 배암이 미혹시켜 가지고서  타락한 이후에 배암이 그 안에 주관해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지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서 인간 지식이라 하는데 실은 그것이 배암의 지식이요 그것은 다  죽는 지식이요 망하는 지식입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서 제가 모든 비판과 평가와  경영을 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좋다는 것은 나쁘다, 하나님이 산다는 것은  죽는다 하나님이 유익이라 하는 것은 다 손해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정반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이든지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 그것만 보고서 급속히 그  비판과 평가만 할라고 달라들지 말고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이 모두 좋다고  한다고 따라가지 말고 나쁘다 한다고 그 물리치지를 말아야합니다.

 이 세상에 악령이 주관하는 사람들은 전부 꺼꾸로요. 배암 지식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거꾸로라. 배암이 에덴동산에서부터 해와에게 좋게 말한 그것이 전부 이  하와를 속여서 다 죽게 만든 그 외에는 하나도 섞인게 없습니다.

 그러거 때문에, 우리는 무슨 뭐 현실을 만나든지 현실을 만날 때에 그것을  평가할라고만 달라들지 말고, 비판할라고만 달라들지 말고 먼저 정비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이것을 지금 비판 평가할라 하느냐 마귀  배암의 이 사망의 지식 가지고서 비판 평가할라 하느냐 그것부터 먼저 우리는  정비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모든 답안이 바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도적맞지 안하고 깨어 있는 것이 어떤게 깨어 있는  것인가? 깨어 있는 것은 우리는 살기를 뭘로 살았느냐 하면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난 우리들이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는 우리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있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영감의 힘으로 영감의 지혜로 사는 것이. 그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몸 안에 있는 것이나 몸 밖에 있는 것이나 그런 것이 들어 올 때도  수입할 때도 반드시 진리와 영감을 통해서 외부적으로 그 진리를 통하고 진리로  또 잘 알기 어렵거들랑 이 모든 만물의 이치, 이 자연 계시와 성경 문서 계시와  또 성신의 감동의 영감 계시. 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이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들어오는 것도 들어오게 해야 됩니다. 수입도 이를 통해서 수입한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이 법대로 이 진리와 영감 안에 보관해 놓은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자기가 지불해서 사용하는 것도 영감과 이 진리로  지출한 것은 절대로 그것이 썩는데 이르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둬라 거게는 동록도 좀도 도적도 없다' 그 말은 세상 암만 부패성이  죄악성이 많아도 그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길게 가도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그런 걸 가르쳐서 좀 먹는다 시간에 대해서 말했고. 동록 스는  것은 부패성에 대해서 말했고, 도적은 사망이나 예수님의 재림의 심판을 두고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무슨 예를 들어 하나 직장을 가진다 할지라도 그  돈만 보고서 날뛸 것이 아니고 자기의 뭐 돈이나 자기의 무슨 사욕이나 주관이나  사정이나 그런 걸 보지 말고 그걸 할 때에 현실은 언제든지 현실은 어떻게 하면  망한다 했습니까? 현실을. 녜, 현실을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랬습니다. 너를 위하여. 현실을 닥칠 때에는 하나를 사랑하셔서 현실을  주셨으니, 고 다음에 사호가 뭐입니까? 주를 위하여. 사람들이 그 순서를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자기요 셋째는 선물로 준 현실이요, 넷째는 주를 위해야 될  터인데 그만 너를 위하여, 자기 위합니다. 자기 위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우상되고 맙니다. 우상되면 그놈이 끄는대로 끌려가아 되고 그것만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절하고 섬긴다 이랬습니다. 주님을 위하게 되면은 그것이 우상되지  안하고 주님을 위하게 되 면은 주님을 기쁘시게 한 일 되고 영화롭게 한 일 되고  존귀케 한 일 되고 자기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축복하는 일 되고 그러기 때문에  시발에서부터 바로 해야 되지. 언제든지 시발의 머리는 주님으로 두십시오.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주님이 날 구속하셨다. 주께 나는 속했다. 그저 어쨌든지  주님을 먼저 부르십시오. 먼저 부르고 먼저 생각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기 현실에 무슨 직장 같은 것 하나 가져도 이 현실에 내가 취직할라 하는  것은 주님이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돈 위해야 되느냐 나  위해야 되느냐? 주님 위해야 되느냐 어떤 사람들의 요구 위해야 되느냐? 이것은  분명히 주를 위한 이 직장으로 해야 되겠다. 주님을 위할라고 하면은 죄 되면은  그것은 주님 위한게 아니기 때문에 말아야 할 것이고, 또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기가 그 일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주지 안하고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안하고 자기 생활 자기가 하게 되면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워지지 안할 터이니까? 그것 영광된 것이라 말이요.

 그러면 그 일을 합니다. 또 하다가도 자기가 할 때에는 아예 미리 예비적  영감을 받아 가지고 내가 여기 들어오기는 들어왔지마는서도 주일을 닥치면  반드시 주일에 출근을 하라고 할 거다 그러니까?, 미리 예비적 영감받아서 출근  하라고 할 터이니까? 그때는 내가 출근하면 죄가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니  어짜든지 내가 들어오는 이 시간부텀 주일 닥칠 때까지는 내가 여기서  결사적으로, 내가 요게 순생할 곳이다 여게서 모든 선한 충성을 주를 위해서  상전들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결사적으로 다른 사람 보면 저 사람  일하다가 죽을라고 저라나 할 만침 결사적으로 충성을 합니다. 이러니까?,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이 조금 정신이 놀았다 이제 직장 없다가  들어와 놓으니까? 죽자껏 저라는 가보다 다른 사람은 비쭉 비쭉 웃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 같이 있는 사람들도 제일도 저 할 일도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해도 그저 죽자껏 합니다. 그래도 그럴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니까?, 그  사장 위에 하늘에 있는 사장이 있습니다. 그 사장이 다 보고 계신다 그 말이요.

이제 죽도록 충성하니까? 벌써 그만 해도 알아. 주일을 딱 대해서는 천상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제가 출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면 위에 감독된 사람이 볼  때에 그라면 안 된다. 아주 그것을 안 된다고 거부를 할 것입니다. 거부를 해서  안 된다. 이러니까? 너 그러면 지금부터는 너는 여기 일할 수 없으니 나가야  된다. 어짜든지 미안 하지만 내가 주일은 안 지킬 수 없고 이러니까? 주일  이렇게 지키도록 해 주시면 내가 다른 날은 충성하겠습니다. 있는 힘대로 내가  충성하겠습니다. 제가 여기 들어오고 난 다음에 뭐 조그만치라도 꾀를 파든지  잘못한게 있었습니까? 충성하겠습니다. 그래도 안된다. 이미 주일은 꼭 지킬  사람이니까? 안 된다 했지마는서도 주일을 떡 지키고 나면은 그 다음에 이제 또  온다 말이요. 월요일 오면은 못한다 이래도 속으로 또 욕심에 미련이 있다 그  말이요. 이러면 이 다음에는 주일날 안 된다. 오늘은 일해라. 나온 김에 일  해라. 또 일을 붙여 준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 어쨌든지 그렇게 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그래 하면, 주님이 모든  주권적으로 개별 일까지 다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를 보고 하지 돈 보고 하지 말고 사람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직장을 받아들이든지 돈을 받아들이든지 지위를 받아들이든지 받아  들일 때도 진리와 영감으로 또 주님에게 받고 또 보관할 때에도 진리와  영감대로, 보관하고 또 그것을 지불하고 사용할 때에도 진리와 영감으로  사용하고 이렇게 하면 그것이 도적맞지 안하는 진리 안에 보관해 놨고 진리로  사용했고 또 진리로 수입한 것 진리안에 들었는데 진리와 영감 안에 든 것을  세상이 망치지를 못합니다. 거룩한 것은 썩는데 이르지 않았다고서 주님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한 것은 그것은  물질이 하늘에 가는 것은 아니지마는서도 그 물질의 가치성, 또 효력성, 또  이용성 그 유효성 그런 것은 영원무궁토록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은 여기  있지마는.

 그런고로, 우리는 이 도적맞지 않도록 이 일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가 진리를  어겨서 수입한 것 얼마를 가졌든지 보관했든지 자기가 진리를 어겨서 자기  사욕대로 주관대로 세상대로 지불한 그런 것은, 어떻게 해서 유명 해졌다  할지라도 그런 것은 다 죽는 그 시간에 끝납니다. 또 주님이 재림 하시면  끝납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행할라고 할 때에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이  아닌데 이 일을 행할라고 하면은 힘이 드니까? 그 자기에게는 자연히 투쟁이  된다 말이요. 이것이,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 전투의 교회라.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나는 진리와 영감대로 할라고 하는데 세상은 하지 못하도록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는 자꾸 이래 할라 하고 하지 말라고 이라니까? 그 힘이  생긴다 말이요. 힘이 생기는데 내 힘을 다하고 나면은 나머지기는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을 퍽 부어 주신다 말이요. 이러니까? 전능의 능력이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시고, 그 능력을 도로 가지고 가십니까? 안 가지고 가십니다. 한번 나에게  줬으면 그 능력을 뺏아 가지 않소. 그 능력은 주셨고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주는  것은 전부 다 이런 전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해서 우리가 지혜 없는 자와 같이 자꾸 도적맞을 것만 가지고,  또 뒤에 그물에 홀길 자유만 가지고 하지 말고 이 일을 생각해서 후회없는  생활을 해서 자기가 죽을 때에 '아! 과연 죽음이 닥쳤다. 이 죽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나에게 시키셔서 믿음으로 산 것이 이것이 후회없이 잘  살았다.' 이렇게 되어야 되지. 세상을 떠날 때에 '하나님 말씀 하셨는데 나는  그렇다고 말했지마는서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어떻게 할 걸' 그렇게 후회챠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 하면은 지혜의 사람이 아니라. 자꾸 좋아져야  되지. 죽음을 닥치니까? 참 잘 됐다. 죽음이 있기 신문에 잘 됐다.

심판있으니까? 심판이 있기 때문에 잘됐다. 부활이 있으니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잘됐다. 자꾸 잘 되어져야 되지요. 우리 기억하고.

 또 여게 그러면 우리가 준비할 때에 어떻게 준비하는가.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우리는 모든 생활을  거룩과 경건을 가져야 됩니다. 거룩이라 하는 것은 티끌같은, 그 티끌 속에서 그  금이면 금, 그것을 가려내는 것처럼' 이 모든 사이비한 잡된 것들이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심판받지 안하고 불타지 안하고 멸하지 아니할 그런  진리와 영감의 일치되는 온전한 그것을 자기가 선택해 내는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말해서 거룩이라 그럽니다. 모든 잡된 것이면 거게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선택해서 완전에 도달했다 하는 그 과정과 결과를 다 합해서 거룩이라 그  말하는 것이고, 또 거룩과 진실이라는 진실이라는 것은 완전을 이루어 놓은  그것만을 말할 때에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거룩의 생활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무엇이든지  자꾸 진리로 구별하고 또 영감으로 구별하고 진리로 구별해 모르는 것은 이 자연  계시,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모든 구조를, 이 자연 계시 이것을  가지고 이 문서 계시를 특별 계시를 보고 특별 계시로 자연 계시를 알아  가지고서 거게서 자꾸 구별해야 됩니다. 문서로 구별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만침 했으면 됐다 할 것이 아니라 문서로 문서시, 신구약 성경이 문서  계시로서 자기가 구별을 했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보실 때에  인을 쳐 줄 수가 없는, 너는 됐다 인쳐 줄 수가 없고 협조 해 줄 수가 없고  가담할 수가 없는 일 많습니다. 성경 말씀대로는 하지마는서도 그 속에 옛사람  도적이 들어 있다 그 말이요. 그럴 때는 하나님이 하지 않소. 순전히 주를  위함이 되면 하나님이 인을 쳐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찾기 위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이러나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심이 없는 그분 앞에 설걸 생각하니까?  두렵고 떨린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문서 계시로 찾고 그 다음에 영감 계시에 들어맞도록 하나님의 은밀  의지에 들어맞도록 이렇게 자꾸 구별해 가지고서 찾아서 이래 하는 이것이  있어야 되지 이것 없는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성도라 하면  구별하는 무리라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인데 믿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있는 것만  보고 욕심만 내지,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사물과의 삼각적으로 구별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 넘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새덥치기가 앞에 있는 그 새를 덥칠라고 새만 욕심내고 뒤에 포수가 총을  가지고 저를 겨누고 있는 거는 모른다 말이요. 탁 쏘면 그만이요. 이거 모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주권은 무시하고서 자기 욕심대로만 자꾸 가고 이래하기  때문에 자꾸만 멸망으로 달린다 그거요.

 그런고로, 하루 종일 생활하고 난 다음에도 이 구별이 있어야 됩니다. 하루  종일 생활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 결산의 구별이 있어야 '내가 오늘 산 생활했나  죽은 생활 했나, 내가 오늘 수입이 있었나 과연 수입이 하나도 없었나'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인간 인정만 생각해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허영과  허욕에만 날뛰어 가지고 있고, 그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 그분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한 분이 제일이지 딴 거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보지 안하고 이렇게 구별하지 안 하고 사는 생활을 우리가 하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언제든지 구별할 때도 이거 자 내 이 일에 대해서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그래 하지 마십시오. 내게 대해서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우리  가정에 대해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이 모든 동무 친구에 대해서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하지 말아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 나를 구속하신 주님에게 대해서  주 하나님,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그분에게만 맞추면  나머지기는 제가 계산에 맞지 안해도 아주 쭉 다 맞아 들어갑니다.

 이래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경건하라 하는 것은 두 가지 요소가 있는  것인데 하나는 영감과 진리대로 된 것이 경건이요. 영감과 진리대로 된 것이  경건인데 그 그것이 영감과 진리대로 된 것이 경건이라 말은 진리대로 돼도  영감대로 돼야 된다 그 말이요. 경건은 진리와 영감대로 된 것이 경건인데  진리대로는 됐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주를 위해서 주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면 영감은 없습니다. 영감은 성신이 찬성하고 인정하고 인쳐 주는 것은  성령이 볼 때에 옳다 바로 됐어야 인정을 해서 제 결재를 지어 준다. 결재를  지어 줘야 그것이 생명이 속하게 되고 영원에 속하게 뵈지 하나님이 결재 안하면  소용없어.

 이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법도를 잘 지키지마는 서도  속에 도둑놈이 들어 앉았다 그 말이요. 그건 뭐이냐?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도둑이 속에 들어 앉아 가지고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 잘 지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지켜 가지고서 그것이 고등 범죄로 이용해 먹고 팔아먹을라 하는  것이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속히지마는서도 하나님은  속히지 않습니다. 경건을 네가 힘써라. 주를 위하여 올바른 진리대로의 행위를  힘써라 그 말입니다. 진리대로 해도 주를 위하지 안하면 소용없고 주님을  위한다고 해도 진리대로 안 되면 또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경건하므로 하나님의 날이' 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러면 네가 소망을 어디 두고 있느냐? 소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날에다가 소망 두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날에  소망 두라 말은 죽음의 날에 소망을 두라 말이요. 죽음의 날에 소망 두고,  하나님의 심판 날에 소망 두고. 예수님의 재림 날에 소망을 둬야 합니다. 자  내가 땅에 있는 소망을, 땅에 있는 것에 소망을 두면은 그것을 향하여 달리게  되니까? 그 사람 하는 일이 다 헛일 되고 맙니다. 언제든지 소망은 하나님이  날에다가 둬서, 그날에 그날에 어찌 되느냐 그날의 수입을 그날의 수치를 그날의  후회를 그날의 두려움을 그날의 평강을 그날의 영광을 그날의 것을 그날의 것을  내가 내가 소망으로 합니다. 그날의 것을 소망 해서 그날의 부끄러울 것은  오늘에 해결할 수 있고 그날에 또 욕심나는 것을 오늘에 갖출 수 있고 그날에  필요한 것은 오늘에 내가 갖출 수 있고 그날에 이것은 다 치료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은 오늘에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은 그 날에 두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그날에  소망두고 '간절히 사모하라' 간절이라 하는 것이 자기 심리 작용을 말하는  것인데 네 마음의 전심은 거기 가 있어라. 마음의 전심도 거기 가서 있거라. 네  사모의 전부도 거기 가 있거라. 내 소망도 그 간절도 사모도 하나님의 날, 내가  세상 떠나는 날, 주님의 심판 앞에 나타나는 날. 주님 재림하시는 날 거기에 내  소망도 간절도 사모도 다 거게 있는데 거게 있는 그것을 오늘에 끌어다가 여기  현실에서 만듭니다. 이러니까? 그 그날의 것을 그날의 것을 내가 바라보고  사모하고 간절한 그것을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만들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이 현실에 있는 오늘 있다가 지나갈 것. 이 현실에 있는 것을 오늘에  만드는 것이. 그것이 지혜 있는 줄 알지마는서도 그것은 다 어리석은 일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도 사모도 간절도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가 요것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헛소리가 나와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주님을  만나는 날 개별적으로 만나는 날, 그래 가지고 부활해서 심판하는 그 심판의 날.

그때를 내가 예비적 영감을 받아 가지고서 날아가서 거게 것을 내가 전부 다  보고 경영하고 그때 수치를 오늘에, 그때에 영광을 오늘에, 그때에 필요를  오늘에 그때에 모든 유익을 오늘에 끌어다가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 이것이  신앙이요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내가 어제 가만히 생각하니까? 반사들 지금 노반사들이 이 게을을  부린다 말이요. 늙었어. 사도행전 그 장에 보면 '늙은이는 꿈꾼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늙은이는 꿈꾼다. '젊은이는 환상보고' 젊은이 그것도 소용없어.

늙은이는 또 옛날만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이요. 꿈꾼다. 종과 아이들만 희망  있어요. 자꾸 신앙이 늙어져가면 그거는 잡된 것입니다. 신앙은 늙는 것  아닙니다. 영생하는 신앙인데 믿음은 영원토록 있다 했는데 신앙이 늙습니까? 왜  노반사들이 왜 게을을 부려. 그래서 노반사를 이제 한 번 모임이 있을 것이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게을을 부리고 어째 늙었는지 어째 늙어지고 썩어 빠졌는지.

 안 됩니다. 우리는 죽도록 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라 그 말이요.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라.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라 그 말은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결합한 그 결합이 승리한는  승리라 그 말이요. 주님하고 나하고 결합된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결합한 그 결합이 승리하는 데는 우리가 있는 힘 다하여 죽도록, 우리  있는 힘을 다해서 아무리, 일시로 다해도 마지막에 한 시간이라도 쉬면 안돼.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을 그것을 다하다가 끝을 마쳐야 된다는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 얻는 건데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한 그 생명을 구원하는데 그렇게 게을부려 가지고 뭐이  될거라. 뭐 노반사들 심방하러 나갔는데 아침 일곱시에 나갔어 그 소리를  뻔뻔스럽게 하고 제 돈벌이에만 욕심을 치고.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손해본 것은 내가 여러 배 백 배라도 갚아 준다 이랬어. 네가 남에게 순종치  않으면 누가 너희 것을 네게 주겠느냐 말씀했어. 이러니까? 남에게 누구 말이요?  주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충성하지 안하면 우리에게 줄 분량을 당신이 줘야 되기  때문에 당신 것 안 줍니다. 당신의 축복 안 주고 은혜 안 주면 뭣 될게 있소  되기를. 어리석지를 말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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