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의 목적

 

1984. 6. 17. 주일오후 

 

본문 : 시편 73편 13절∼28절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물이라도 그 목적을 모르면 바른 이해는 안 됩니다. 아무리  값이 많이 들어서 만들어 놓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물건을 어데 쓸 것인 줄을  모르면 우리는 그 물건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뭐 하려고 이렇게  이 모양도 없고 이런 물건을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들었을까 하면서 오히려 그  만든 사람을 원망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그 용도를  발견하고 많은 돈을 들여서 참 지극히 귀한 용도에 필요한 그런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 사람의 선견은 특출하고. 또 그 용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비판이나 평가할 아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람되어 오셨으며 또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는가,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참  하나님의 사람되심이나 또 십자가에 죽으심이나 부활하심에 대해서 아무런 뜻  없이 생각할 것이고 또 멸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그 목적이 어떠한 것을 확실히 깨달았을 때에  예수님의 하신 일은 지극히 존대하고 숭배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이렇게 대속하시고 이 세상에 두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가 모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기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이 자기 할 일을 분명히 모르는 사람이요, 또 모르고 세상살이하는 사람이  옳은 생활을 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모든 문도들과 제자들이  크게 근심을 하였습니다. 근심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이 보시는 그 광대함을 보지  못한 연고요, 그들은 다만 이 세상이라는 그 한계 안에서만 그것을 초월한 그  관찰이 없었던 연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또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너희의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심히 많다' 말은 심히 좋다. '너희들은 이 세상을 보고서 못 잊어서 이렇게  말하지마는서도 아버지의 집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모든 면이 비교 못  하는 아주 고차원의 그런 나라이다. 그 나라에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병드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원망과 시비와 미워하는 것도 없고 시기도  질투도 없고 모든 죄악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참 깨끗한 성경의 진리의  나라요 영생의 생명으로 사랑만이 충만한 그 나라다. 그 나라가 만일 없다고  하면 너희들에게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주었을는지 모른다.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다 만드신 주님께서 생명을 버리기까지 이렇게 사랑하시는 우리에게 대해서  세상으로 준다면 세상에 무엇을 줄는지 너희들에게 필요한 대로 세상을 다 주고  요구대로 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 한계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주지 안하고 내가 가는 것이니 이 가는 것을 너희들이 잘 생각하면  알 것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위로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을 이 세상에 두신 연고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두었는가? 세상에 두신 것은 세상은 영원을 연습하는 곳이요, 또 영원을 배우는  곳이요, 또 영원을 마련하는 곳이요, 영원한 가치와 실력을 성장하는 곳이  세상인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세상의 이것 저것을 하면서 그것을  누리고 살라고 세상에 두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서 이런 거  저런 거 사용하고 먹고 쓰고 그렇게 활동하고 사는 그것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것을 주신 그렇게 단순한 좁은 것이 아니고 짧은  것이 아니고 그렇게 작은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어서 이것 저것을 가지게 한 것은 그것은 결코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가질 때에  우리는 몰라도 한 토막 한 토막 그것이 영원을 연습합니다. 영원무궁 세계에서  우리가 가서 살 그 생애를 세상에서 연습하는 것이요, 또 연성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이 문서 계시와 모든 자연 만물의 이 자연 계시와 영감  계시도 우리에게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가 영원한 희망을 두고 영주처인 하늘나라를 두고 세상은  배움으로 준비하는 배움의 학교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면 바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소리를 그 소리로 끝났다면 그 사람은 참 외식자요  그속에 생명 역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어떻게 지극히 작은  소리, 우리가 보이는 지극히 작은 한 토막의 모든 움직임, 모든 존재. 모든  관계, 세상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천태만상으로 시간을 두고서 변해 가는  모든 인간의 심리, 그 모든 활동 작용 이 모든 것은 결단코 우리가 육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와같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지식이 담겨 있고  영원무궁한 세계에 필요한 우리의 실력을 갖추는 그 실력이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궁 세계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며 어떻게 등용하며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영원한 자기의 천직을 지금 연습하고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영원히 등용 될 수 있는 그 수많은 과정들을 시험 마치고 그의  실력이 자란 대로 무궁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등용하시고. 또 그의 가치를  대우하시고 또 그의 마련한 실력대로 그 실력은 영원무궁한 그 세계에서  끊임없이 사용할 그 필요하고 요긴한 참 눈 깜짝 사이에 마련한 그것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필요 있게 써 먹을 수 있는 요긴을 우리가 마련하는 실력 준비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참 기이하고 오묘한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한 말로  말하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서 주신 세상이 아닌 것을 우리가 똑똑히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서 주신 세상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받을 때에 세상을 위해서 주님이 주셨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세상 한계 내에서만 가지고 사용할 세상으로 생각 하면 우리는 많이 속는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은 세상을 위해 주신 것 아니고 이 세상은 영원무궁한 세계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간단하게. 우리를 위해서 주신 세상이 아니고 이 세상은  영원무궁토록 지극히 존귀한 그분을 위해서 주신 세상입니다. 그분에게 알맞는  사람, 그분의 뜻에 맞은 사람. 그분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사람, 그분과 동행할  수 있는 사람, 그분의 동지자가 되고 있고 동역자가 될 수 있는 그분으로 더불어  모든 희로애락을 같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무궁한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세상을 주셨고 세상은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유리하고 필요하고 요긴해서  나 아니면 안 될 이 나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자신을 영원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셨다고 하면은 그는 우리 자신을 위해 봤자  자신의 자본이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위해 봤자 유한한 것, 또  우리 자신을 기쁘게 만족하게 해 봤던들 우리가 유한하기 때문에 그것은  뻔연하게 유한한 것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 세상  주신 것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 1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하사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팡과 감사를 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분에게,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그분을 위해서  그분이 창조하신 그 창조도 참 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데 이 세상에서 과학이  발달돼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의 지혜가 늘어서 이 우주는 얼마나 거리가 넓다,  그 우주의 한 항성의 그 범위도 넓은데 그 항성이 십억 만 항성이나 된다. 또 한  사람의 머리를 지으실 때에 머리 속에 컴퓨터가 천억이라 했어 그렇게 크신 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인간들이 과학 만능이라고 저희들이 말을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과학 만능을 말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의  억억억억억억 만분지 일이 될란지? 평생 인간의 끝이 나도 그분의 지으신 것의  그 뭐 억억억억 만이라도 안 됩니다. 그 무한한 그것을 모릅니다. 하늘에도  무한하고 물질계도 무한하고 참 무한이라고는 그분만 무한하지 그것은  무한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데까지인가 끝이 있기야 있겠지마는서도 그렇게  이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영계와 물질계, 무한한 창조, 이 무한한 창조에게  우리를 제사장으로 당신 위해서 제사장으로 삼기 위해서, 당신의 소원에 만족을  하실 수 있도록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를 잘 조화 붙여서 이 온전을 이루는  그 제사장,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너무도 그 지위도 영광도 직책도 커서 우리는 측량 못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감각을 못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심령이 밝아서 조금이라도 생각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조그만한 한 가족을 통치할라 해도 그것이 잘 안 되고, 얼마  되지 안하는 교인들을 통치할라 해도 안 되고, 얼마 되지 안한 그 동역자의 그  진영을 통치할라 해도 여기에서 저기에서 뿔, 뿔, 뿔이 나와 가지고서 이렇게 안  되고, 조그만한 손바닥같은 이런 한 민족도 통치할라 할 때에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그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조화  붙여서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그런 조화를 붙이는 제사장으로 우리를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모든 삐뚤어진 데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세계에 -우리가 측량못합니다.- 무궁 한 세계에,  그 무궁한 세계에 이 면도 있고 저 면도 있고 저 면도 있고 그 무궁한 종류.

무궁한 그 면, 무궁한 각도, 무궁한 그 모든 질과 양. 그 무궁한 그 나라를  위해서 우리를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사는 우리의 세상에 전 생활은 영원무궁 세계의  그 세계를 위한 전 생활입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가 감사할 때도 있지마는서도 불만 불평할 때에도 있고 우리 가이해할 때도  있지마는서도 이해 못 해서 낙망하고 번민하고 뭔 일인가 이렇게 놀랠 만한 그  수많은 모든 현실을 우리에게 접촉해 주시는 것은 우리 위해 하는 범위 내에서  한다면 그 주시는 은혜가 우리의 그 이성 범위 내에 있고 지식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지식에 제재 받지 안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당신의 사랑을  가지고서 영원무궁한 세계에 후회할 것이 없고, 무궁한 세계에 필요 있는 사람,  그 무궁한 세계를 준비해 놨는데, 그 무궁한 세계를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것을 누리고 거기에 대해서 참 봉사하며 희생하며 제사장 노릇을 해서  만족케 할 수 있는 그 준비를 일으키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세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만한 수많은 하나님의 창조를 우리가 유업으로 받아 가지고  내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한 대상이 되고 그것들을 정복하고 그것들을 통치하고  그것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것들을 관리하고 그것들을 지도하고 그것들을  인도해서 조물주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그것도 측량 못 할 지극히 큰  것이지마는 그 보다도 완전하신 그 영원하신 무궁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그분의 무한히 크심은 이 영계나 물질계 존재  이것으로서는 측량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극히 크신 그분을 위할 수  있는. 그분을 위할 수 있는. 그분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그분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그분의 배우가 될 수 있는, 그분의 유일의 범사의 상대가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은 영원무궁한 세계를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세상을 주셨고, 이런 저런 우리에게 쓴 일, 단 일, 이해 못할 일 지루한 일 그  하나 하나의 그 일에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이루어지고 자라 가는  깨달아져 가는 이런 거 얼마나 무한한지 뭐 측량 못 합니다. 무한히 측량 못 해.

이뿐만 아니라 지극히 크신 그분에게 필요 있는 존재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필요 있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권자에게 필요 있는 사람만 된다고 해도 영광이라 하고, 어떤  대신령한 성자에게 필요한 사람, 그 성자에게 필요한 사람, 영능의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 어떤 큰 사물에 필요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는 그것도 가치  있는데 지극히 크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그분에게 필요 있는 이런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세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을 주시고  세상에 있게 하시고, 영원무궁에 영원무궁에 내가 필요한 존재. 그 영원무궁을  내가 누리고 영원무궁을 내가 누리고, 영원무궁을 내가 다스리고, 영원무궁에게  원망 한 마디 없이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이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시고 세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한 분  밑에 모든 피조물 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 교회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한 번 듣고 두 번 들을 때는 잘 모릅니다. 너무도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차차 차차 들어 깨달아 알아가면 이는 과장도 아니요 과소도  아니요 이거는 필연한 사실입니다. 필연한 사실.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깨달으면 이거는 필연적이라. 그렇게 안 될 수가 없고 없을 수가 없어.

필연이라. 당신의 완전자이신 자존자이신 당신이 계신다 면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은 이 일이 종국이요 결론이요 이 결말이 안 될 수가 없는 이  사실입니다. 외의 것 말하는 것 아니요.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이라는 이 말을 처음에 듣는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다  비웃지마는 비웃을 것이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개별적으로 섭리하시는 것이 나  단체에 대해서 섭리하시는 것이나 시대에 대해서 시대적으로 섭리하시는 것이나  그 섭리하신 그는 두 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요 무한하신 능력이요 우리에게 무한한 소원을 가지시고 우리를  향하여서 당신이 베푸시는 그 은혜 역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광대한 것을 우리의  조브라운 지식. 너무도 어리고 옅은 지식 이 지식 가지고서 조그만한 인생의  칠팔십 년 이 세상이라는 조브라운 이 범위의 이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  모양으로 요것을 한계로 해 가지고서 이 안에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크다  적다 이렇게 우리가 비판을 하고서 이대로 산다는 건 너무도 기막히는 일입니다.

이대로 산다는 건 너무도 기 막히는 일이요, 성경에 이래 말씀 해 놨기 때문에.

 우리가 뭐 이 세상에서 짜다라, 호의호식하다가 마지막에 죽으니까 호의호식  할만하고 살다가 죽으면 뭐할 겁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생하다 가 죽으면 또  뭐할 겁니까? 그 죽으면 끝나는 것인데. 그것을 욕망으로 삼고 그것을 자기의  세계로 삼고 그 조브라운 감옥과 같은 그 속에서 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이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 눈을 밝혀서 너의 눈먼 것과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너의 눈먼 것, 너의 눈먼 것, 눈 먼 자들아 내게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한  고대로 만물관을 가지라. 고대로 금생관과 내세관을 받아라. 존재관을 가져라.

너희의 하나 하나의 그 생애에 대해서 이 생애가 뭐이냐 하는 것을 성경이  너희에게 말씀해 주신 그대로 너는 바로 봐라.

 우리가 이렇게 광대하심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섭리를 그  직감적으로 한 토막. 요 현실 세상에는 요 한 토막, 한 일년. 그리 아니면 하루,  이삼 일, 몇 해 요 국한해 가지고 고 안에서 요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해  가지고서 고게서 평가해 가지고 요거는 가치가 없다 가치가 있다, 이거는 복이다  이거는 화다, 이거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거는 하나님의 저주다, 이렇게 우리가  조브랗게 판단하니까 우리는 참 지척을 분별 못 하는 소경들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오후에 제가 여기에서 증거하려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이 세상의 영원한 보응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는  이것을 하나님에게 호소하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하려 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여러분들이나 나는 눈이 어둡습니다. 눈이 어두워 참 가치 있는 거는  가치 없다, 영광은 수치라, 수치는 영광이라. 권위 있는 것은 멸시하고 멸시할  것은 권위 있게 하는 우리는 전부다 꺼꾸로 되어 있으니 이 꺼꾸로 이것을 언제  바로 수정하고 바로 고치고 치료 받아 가지고 바로 해 가지고 갈 것입니까?  우리의 갈 날은 오늘인지 내일인지 마지막 시간 이 언제인지 모르는데. 이  세상의 종말은 어느 시간인지 모르는데.

 이 시편 73 편 기자가 악인이 세상에 잘 되고 의인이 자기를 빚고 깎고 씻고  닦고 조심하고, 또 고치고 회개하고 이래도 자꾸 고칠 게 나와서 자기 속에  가책이 돼서 실컨 고치고 나니까 또 고칠 게 나오고, 또 고칠 게 나오고, 또  깨끗히 한다고 손을 씻어서 깨끗하게 깨끗하게 한다고 했는데, 또 보니까 죄  가운데에 들어 있고 이렇게 하니 이 괴로운 인생 생활과 성도의 세상 생활이라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고민해서 견디지를 못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눈이 뜨여지고 난 다음에는 '내가 그렇게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서 징책을 받고 손을 씻고 마음을 정하게 하고도 또 부정이 나오고 나온  그것이 내가 원망스러웠고 나는 불행스러운 사람이라 왜 이렇게 저런 사람들은  죄를 집채같이 둘러 마셔도 꿀떡꿀떡 맛있다고 둘러 마시는데 왜 나는 이렇게 못  난 인간이 됐는가?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했는데, 이것이 전능자의 사랑의  주님이 나를 당신의 장중에 오른손을 잡으시고 놓지 안하고 끌었기 때문에 내가  이와 같이 됐다는 것을 이제 내가 알고 보니까 '나는 우매 무지한 짐승 같은  자입니다. 하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번민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사 비로소 그이의 종국을 깨닫고 오히려 그에 대해서 동정하는  마음이 생겼고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죄짓고 세상에 잘 사는  사람의 그 사람의 비참하고 가련한데 대해서 하나님에게 인생이 몰라 이랬으니  용서해 달라고 간구할 수 있는 그 행복스러워 부러운 사람이 불쌍하고 가련해서  그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낙루의 동정의 그 기도를 하지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사람으로 변해졌으니 이 성소에 가기 전에는 되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눈이 밝아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심령이 너무 어둡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완전히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인데 전부 이 크나 작으나 모든 사람들이 다 소망이 땅에 있는 것 같이  보여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히 가리워졌습니다. 천국은 완전히  가리워졌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오후에 제가 여기에서 호소하고자 한 것은 그것입니다.

'아버지여 우리에게 눈을 열어 금생의 보응인 금생의 보응인 영원한 나라를 보여  주옵소서. 금생의 한 토막 한 토막, 한 마디 한 마디, 한 생각 한 생각, 마음의  뜻 한번 가졌다가 놓은 것 하나 하나에 대해서 영원한 보응 이 무지무지한  영원한 보응이 있는 이 보응을 보는 눈을 우리에게 열어 달라고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래도 기도해서 이 눈이 열려야 되겠다 하는 것을 마음에, 그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다 나와 같은 사람이요, 이는 여러분들이 앞서  달음질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천국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암만 달음질 쳐도 나보다 앞서가지는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조직을 해 놨소. 내가 앞서 가야 여러분들이 뒤에 따라오게  되지 내가 가지 않는 그 연결을 여러분들은 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걷지 못했으니까 여러분들도 걷지 못했으니 여러분들도 나 위해서  기도하고 나도 여러분들 위해서 기도해서 아무래도 우리가 이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확고하게 이 사람은 섰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비추어져도 잠깐 비추어지고 생각하면 비추었다가 생활할 때에는 가  버리고 없기 쉽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모해 봤자 돈을 사모해 봤자 그 끝을 우리가 보면 계산해 보면  압니다. 돈을 사모했는데 그 돈이 어데까지 나를 도우며 그 돈을 사모해서  일생동안 돈을 위해서 살았으나 끝이 있는데 돈을 사모함으로써 일생을  끝냈다면은 그 돈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건가? 돈을 사모했으면 돈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며, 좋은 애인을 사모했으면 애인이 나에게 얼마나 그  필요하고 도움을 주며, 권세를 사모했으면 그 권세가 나에게 얼마나 주며,  부강을 사모했으면 그 부강이 나에게 얼마나 주며, 명철한 세상의 그 명예와  공로 공명을 우리가 사모해서 공명을 일생 동안 사모하고 사모해서 만족이  사모했다 할지라도 내가 일생 동안 사모한 그 공로가 나에게 주는 것은 무엇을  주며 언제까지 줄 것인가? 언제까지 따라올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말로 그  결말은 전체가 다 멸망입니다. 진리 외에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진리 외에 사모할 것이 없고 주님 외에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사모할 가치 있는 거 없습니다. 사모 할 만한 실력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모할 만한 장수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에게 영원한 사모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사모 하는데 그거는 없어졌습니다. 내가 사모하는  그거는 있는데 내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리를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할  때에 주님 사모하는 사람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사모하기를 땅 위에 있는 돈이나 권세나 지위나 인간이나 어떤  땅 위에 있는 피조물을 사모하는 그 사람 같지 않습니다. 땅 위의 그 피조물을  사모 하는 그 사모하는 사람은 사모하는 대상도 끝이 있어 없어지고 사모하는 그  자도 끝이 있어 없어지고, 그러나 진리와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사모할 수 없었는데 주님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은 끝이 없어  그는 영생합니다. 세상은 불타도 그는 타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시든지 마시든지  상관없습니다. 죽으나 심판이나 무궁 세계나 그는 상관없습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느니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런고로, 이 우리가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참 공연한 것을 사모한 것이 전부  생각해 보면 내가 상대방을 속인 것뿐입니다. 물질을 사모한 것도 내가 물질을  속인 것뿐이요. 내가 물질을 사모하지 안하고 물질을 내가 주님의 뜻대로  이용하였던들 그 물질을 속이지 안하고 그 물질이 살았을 터인데, 물질을 내가  사모해서 한 그것은 물질 죽이고 나 죽인 것뿐이요 거기에는 죽음의  시체뿐입니다. 인간을 사모 하는 것도 그리 됐소. 다 속이고 속은 것뿐이오.

세상에 있는 권세나 무엇이나 가정이나 가정도 사모한 것은 내가 가정을 속였고  가정은 나를 속였습니다. 내가 진리만을 사모하고 주님만을 사모하는 사람으로서  그 가족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나는 가족을 정말로 속이지 안하고 가족에게 그는  유익을 끼치고 가족을 바로 지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진리와 주님 외에는 사모의 대상을 삼지 맙시다. 진리와  주님만 사모하고, 이 세상은 영원무궁의 모든 존재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무궁한 세계에 거기에서 내가 필요 있고 무궁 세계를 누릴 수 있고 무궁  세계를 다스릴 수 있고 무궁 세계에 필요할 수 있고 무궁 세계에 감탄으로 주라  시인하여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는 지극히 큰 이 포부  희망을 위해서 세상을 주셨지 이 땅 없어질 이런 자 위해서 세상 주신 거 아닌  것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지존하신 완전 자이신 그분을 만물보다 거짓된 이것이  그분에게 유일로 필요한 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눈을 열어 세상의 영원무궁의 보응을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시옵소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땅 위에 이것 저것 사모하면서 여기에 저기에  애착을 붙이고 여기에 저기에 미련을 두고서 다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 기울여서  나는 그것 죽였고 그것 속였고 그는 나 죽였고 나 속였는데 이 모든 것이, 눈먼  소행인 것이니까 하나님 앞에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사모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사모하면 나는 그를 속였고 그는 나를 속였고 다 죽였고, 진리와 주님 외에는  사모할 것이 없는 이 사실을 깨닫는 우리의 심령의 밝은 눈을 달라고 우리가  기도합시다. 이 세 가지. 사모의 대상은 진리와 주님 외에 없는 것, 이 세상의  한 토막 원망 불평, 시비, 낙망하지마는서도 그것의 영원무궁의 보응 그 사실을  보는 것.

 우리가 가서 보면 놀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는 토막 가운데에 가장  불행하다 불행하다 원망, 낙망, 불행. 불행 비참하고 낙망한 가장 가장  불행스럽다고 한 고 한 토막 고 한토막이 나에게는 제일 귀중한 무궁 세계의 그  토막이었건마는서도 우리는 그것을 허비하고 다 버려 버리고 다 발질로 다  밟아서 쳐 넣고 말았던 우리가 아닙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눈을 열어주시기를 기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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