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1986. 6. 1. 주일오전

 

본문:히브리서 5장 11절∼6장 8절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제가 예배 때에 몇 시간 안 나오면 고만 우리 교인들은 장년반 중간반 유치반이 줍니다. 그러니까 또 제가 안 나올 수 없어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잘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자주 안 나올수록 ‘아마 죽을 때가 가까왔는가 보다.

그러니까 살았을 때에 들어야 되겠다.’ 고걸 여러분들이 가져야 복이 있습니다.

아직 여러분들이 이 교훈을 들어도 무슨 교훈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귀가 어두워 모르고 있습니다. 옳게 듣는 사람은 목사가 됐다가도 다 이 교훈 듣고 난 다음에 예수 새로 믿어야 되겠다 하고서 새출발합니다. 그렇게 쉬운 교훈 아닙니다.

성경 해석을 한 절씩 두고서 해석하는 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시록 끝장까지 한 절 한 절을 행한다고 해 가지고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전체의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하고 있느냐 그것을 그 전체의 성경 가운데서 보고 깨달아야 되는 건데 그거 한목이야 뭐 어떻게 기록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육십 육 권에 기록한 것은 예수 믿는 이치를 그렇게 간단하게 할라고 해도 그만침 넓게 범위 잡아서 기록하지 안하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 대 사 대 오 대를 예수를 믿어도 도덕을 잘 지켜서 도덕주의의 신앙으로 하니까 아주 그 가정이 육신으로는 잘됩니다. 예수 믿는 진리는 하나도 삼사 대 가도 모르는 사람들 있습니다. 중생이 뭐인지, 예수님의 대속이 뭐인지, 네가 죄인이가 의인이가 하면은 항상 죄인이지 의인된 거 모릅니다.

이렇게 어렵고 높은 도를 여러분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단단히 기억하고 설교록을 무조건 사 보십시오. 왜? 앞으로는 못 듣습니다. 어렵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을 어떤 시대에 선지자를 주면 되지마는 그렇게, 자꾸 그렇게 흔하게 나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환난이 오면은 그런 설교를 하지를 못합니다. 지금 설교한 것이 온 세상에 다 거리낌이 되고서 대적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가루고 감추기 때문에 대적하지를 못하고 있지마는서도 때가 되면은 용납지 안하는 때가 옵니다.

그런 것을 다 예언으로 말해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가 온다고 말하지마는 그 예사로 듣지, 그런 말은 일년 내 가야 설교에 한번도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환난이 오며 어떻게 우리가 믿어야 되며 어떻게 신앙 생활하고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창세기 1장에서부터 1장 2장 가르쳐서 이래 나가면은 그거야 창세기 1장으로부터 끝장까지 주욱 행하면 된다고 해 가지고 예수 믿는 구원 이루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 전체를 가르쳐 가지고 현재에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치는 고대로 하라 하는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의 귀가 어두워 몰라! 이러기 때문에, 재독을 듣고 듣고 해도 그 뜻을 모르는데 교만만 가지고 ‘한번 들은 말 또 듣는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재독을 열 번 들은 자에게 시험 문제 내 가지고 말하라 하면 모릅니다. 모르는 자가 누가 모르느냐? 박사가 모르요 대학자들이 모르요 어린 아이들은 다 알아. 그만침 그 정신과 지식과 모든 사상이, 감각이, 이성이 완전히 썩어, 완전히 썩어서 출출 흐르고 있다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되지 그걸 모르고 있다 그말이오.

간단하게만 합니다.

11절에서부터 한 말씀은 그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도의 말씀을 벌써 오랫동안 들었기 때문에 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터인데, 선생님이 되어야 할 터인데 항상 예수 믿는 초보, 예수 믿는 초보, 몽학 선생, 예수 믿는 초보가 뭐이 예수 믿는 초보입니까? 예수 믿는 초보는 ‘예수 믿으면 병 낫는다. 예수 믿으면 귀신 달아난다. 예수 믿으면 가정 잘된다. 사업 잘된다.’ 예수 믿어서 육의 것이 잘되는 그런 것이 다 예수 믿는 초보입니다.

이러니까, 그런 말은 들으면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설교는 듣기 좋아하지마는서도 하늘의 소리, 죽은 다음 부활할 때에 필요한 그런 교훈은 필요로 느끼지도 안하고 말해야 무슨 말인지 전연히 못 알아 듣습니다. 참 깜깜하게 못 알아 듣습니다. 주일학생들은 알아 듣지마는서도 장년반들은 너무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오늘이라도 죽으면 애착스럽게 했던 그 생활 다 불타 버리니까 뭐 가지고 하늘나라 갈 겁니까?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이제 몽학 선생, 강단에서도 땅에 속한 말이 있고 하늘에 속한 말이 있는데 땅에 속한 말은 하면 잘 듣지마는 하늘에 속한 말은 듣지를 못합니다.

강단에서 자기를 추켜 올려서 멸망할 놈을 길러 주고, 멸망할 놈을 길러 줘 ‘위대하다. 이 장하다. 이 참 위대하다. 높다. 영광스럽다.’ 암만해 봤자 그까짓 거 다 불타 버리고 말고 지옥가고 말 그 썩을 인간,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는 옛사람 이놈만 추켜 올려 주면 좋아서 하고 그놈을 한 대 때렸다가는 당장 돈 있는 장로 같으면 ‘목사 조거 내가 어짜든지 조걸 쫓아내든지 내가 그리 안 하면 쫓겨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 하겠다’ 나중에 심하면 ‘조걸 죽이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 하겠다’ 이렇게까지 악의 세력이 강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적이 되는 적그리스도가 돼 가지고, 적기독자가 돼 가지고 무슨 구원을 이룰 거야? 여러분들 생각해 봐요.

어데든지 칭찬하는 데만 따라다닙니다. 저를 추켜 올리는 데만 찾아다닙니다.

옛사람을 살찌게 북돋아 주는 데만 찾아다닙니다. 옛사람을 꺾어 치면 당장 ‘인신 공격한다. 나를 지금 대항한다.’ 그러니까 그런 자들은 그런 자들만 모아 가지고 옛사람만 자꾸 길러서 그러면, 이래 가지고 이놈은 이놈의 옛사람 길러서 살을 찌우고 이놈은 이놈 옛사람 기르고, 이래 가지고 세상 사람 중에 세상 사람, 교회 안에는 세상에서 보는 세상 사람보다 몇 배나 짙은 그 세상 사람들이 교회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젖이나 먹지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다 그말은 단단한 식물은 뭐인가? 세상에 살면서 영원 무궁한 세계를 준비하는 거게 관한 교훈입니다.

젖은 뭐인가? 예수 안 믿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예수 믿으면 이거 잘된다 저거 잘된다 세상 것을 말해서 그 재미 우선 봐야 되지요? ‘예수 믿고 나니까 뭐 병이 낫는다’ 이번에도 보니까 이백 사십 몇 명이 병 나았다고서 이랬는데 인제 그 재미라. 암만 나아 봤자 그까짓 거 다 죽을 터인데 무슨 필요 있어, 있기를?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이니 ‘하나님은 이렇게 능력 계셔서 이런 것도 하실 수 있다. 네가 기도하는 거는 하나님이 들으신다.’ 하는 것을 믿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 하늘나라의 교훈은 듣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도다. 우리 한번 따라합시다. 땅의 음성! 땅의 음성! 땅의 음성! 육체에 관한 음성! 하늘 음성! 하늘 음성! 하늘 음성! 영원에 관한 말씀! 왜 이렇게 되었느냐? 13절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젖을 먹는 자마다」 항상, 그래야 그만 취미 있어. 이 세상에서 테레비에서 재미있는 소리하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말을 하면 눈이 버쩍 뜨이고 재미가 나서 뭐 아주 재미와 흥분이 진진합니다. 그래 깨워 놓고 하나님 말씀 몇 마디 하면 그만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왜? 속에 귀신이 들어서 그 사람을 지금 점령하고 있는데 그뭐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 오면 귀신 그놈이 쫓겨나가야 되기 때문에 어짜든지 저를 주관하는 그 귀신이 말씀을 못 듣게 만드는 이 원수가 속에 들어 있는 줄 알아야 되지.

이런 말 하면은 다른 사람은 두고 이래 모두 말하면은 ‘내게 관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예사로 듣고. 제게 대해 `네가 그렇다’ 하면 그만 당장, 개가 진주를 밟고 물러 달라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달라드니 언제까지 그라다가 죽을 건가 말이오. 언제까지 그라다가 죽을 건가? 이렇기 때문에, 강단에서 교인들 비위 맞춰서 듣기 좋도록 어짜든지 이렇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하면은 모아듭니다. 멸망을 할 자를 ‘네가 멸망한다.

회개해라.’ 선지자에게는 모아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아십시오.

13절을 읽어봅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이라 말은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입니다.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니? 의롭게 하는 게 뭐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제것 만들게 하는 말씀이라 그말이오.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제것 만드는 말씀이라 그말이오. 껍데기를 말하면 잘 듣지만 알맹이를 말하면 못 들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하고, 읽듣지 듣든지 하고 이 말씀을 경험해 봤으면, 읽어 보니까 이렇게 하라 했고 이렇게 하지 말라 했고 들어 보니까 이렇게 하라 하고 이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러니까, 정말로 이 말씀이 거짓부리 말인지 이 말씀대로 참으로 그런지 제 직장이 뚝 떨어져도 한번 행해 보고, 목숨이 딸칵 넘어갈 경우라도 해 보고, 감옥에 들어가도 해 보고, 경험해 봤으면 ‘아니다. 우리가 땅의 것 소망할 게 아니다. 이는 참으로 영원 무궁세계에 관한 말씀이 있으니 이 말씀이 중요하고 여게 대해서 전심 전력 기울일 일이지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세상 일 여게 기울이는 이런 생활 지금, 자는 생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럴 건데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했어. 하나님 차지하는 이 말씀을 경험해 봤으면 하나님 외에 딴것 바라지 안해요.

대구 집회 때에 제일 위인이 동서양을 차지한 사람이 제일 위인이라 했습니까 뭐이라 했습니까? 동서양을 차지한 사람이 제일 위인이라, 동서양을 차지한 사람이 제일 위인인 줄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동서양을 다 차지한 사람도 위인은 위인이지마는 제일 위인은 어림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어림도 없어. 어림도 없어.

뭣 차지하고? 영원 자존자, 우리 하나님, 도성 인신하신 우리 구주. 이분 차지해야 되지 이분 차지 안 하고 그까짓 거 차지해 봤자 오늘 끝날지 모르는데? 이분 차지하면 영영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장성한 사람이라야 단단한 식물을 받아. 단단한 식물은 뭐이 단단한 식물인가 하나 거게서 뾰족한 걸 말하면 나는 죽고 주님 사는 그것이 단단한 식물이오. 너는 어짜든지 날마다 주를 위해서 죽는 일 하고 주를 위해서 사는 일 해라. 네가 주님 위해서 손해보는 일하고 주님을 팔아 가지고 덕 보는 일 하지 말고 주님 위해 손해 보는 일해라. 네까짓 게 주를 위해서 손해를 많이 봐 봤자 몇 닢푼치나 보겠노? 그까짓 고기덩어리 생명 그거지.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바친 자에게는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그에게 유업으로 줍니다. 손해 봤습니까? 이 큰 욕심을 자기의 소망인 줄 알고 가지는 사람들이 장성한 사람들입니다.

「장성한 자의 것이지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지각을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서 알고 이 말씀을 사용하므로, 사용하는 이거 사람들 말로 듣기 좋도록 사용한다 그말입니다. 듣고 깨닫고 이 말씀에 복종을 해 보니 말이오. 사용하므로라는 말은 ‘복종해 보니, 시키는 대로 해 보니’ 그말이오. 그걸 사람들이 그걸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사용해 보니까 ‘아이구, 요거 잘못됐다.’ 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고 보니까 먼저 한 거는 잘했다 싶었는데 또 틀렸고 또 틀렸고 평생 가도 또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점점 해서, 금이, 이 십팔금 뭐 이십금 나중에 마지막에는 이십 사금이 되는 거처럼 자꾸 말씀대로 살고 보니까 자기를 삣고 깎고 씻어서 더 온전하고 온전하고 온전하고 온전하고 온전해서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에 담대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이런 자가 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거요.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선악, ‘이거는 하나님 중심이다.

이거는 피조물 중심이다. 피조물 중심은 온 세계가 떠들어도 이거는 망할 자이다.

하나님 중심은 온 세상이 매장을 시켜서 불로 살라서 없앴다 할지라도 이는 조만간에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하고 통치할 자이다.’ 이것을 분변하다 말이오.

말씀대로 복종해 봐야 이보다 더 큰 게 없고 더 좋은 것이 없지 말씀은 어기고 마귀 시키는 대로만 자꾸 하고 보니까 그거 안 하면 안 되지, ‘아이쿠, 어제 만일, 권찰님이 와 가지고서 ‘주일 지켜야 됩니다. 주일 범하면 안 됩니다.’ 어제 주일 지키라 한다고 내가 어제 주일에 안 나갔더라면 나는 오늘 직장 떨어졌지. 어제 보니까 막 주일 지킨 사람들 주일에 안 나온 사람들 전부이 똑똑 다 떼는데 어제 주일 안 지키기 다행이다 이렇지마는, 지킨 자는 ‘야, 직장이 떨어져도 주님 말씀 어기지 안하고 지켰으니까 다니엘만은 못하다. 다니엘은 목숨은 끊어져도 이제 하나님 계명 지켰는데 나는 직장 그것 떨어졌다고서 뭐 하나님 계명 지키고 했으니까 다니엘만은 못하다.

나도, 나도, 내 생명이 끊어져도 주의 계명 요동치 안하고 지킬 수 있는 요런 단계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은 그날 주일 지키고 직장 뚝 떨어지니까 주를 그만치 견고히 믿고 직장이 떨어지기까지 주님 믿게 됐으니 이런 행복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는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 그러면 그만 굶어 죽습니까? 그 사람에게 나중에 가서 그 직장 백 배나 되는 높은 직장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요. 보통은 백 배 이상되는 걸 주시는 것이라. 그러나, 어떨 때는 또 그것보다도 또 딴거 주기 때문에 그거는 그보다도 더 좋은 거 주기 위해서 안 주는 것도 있어.

절대로 내가 주의 말씀대로, 말씀 때문에, 주의 명령 때문에, 주님 때문에 내가 손해본 거, 내가 낮아진 거, 내가 해받은 거 절대 하나님께서 몇 배 백 배로 더 불궈서 많게 해 주심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구약 성경, 구약에 있는 성도들이 다 성경에 역사로 기록돼 있지 않소? 모르면 세계에 기독자의 교회사를 보십시오. 교회사를 보십시오. 교회사를 보면 어떤가.

정말로 예수 믿은 사람을 또 찾아보십시오, 어떤가? 손해 안 가요.

내가 어제 그런 말했어. 우리 집에 자녀들이 말하기를 ‘아무 목사같이, 아무 목사같이 그렇게 우리 아버지가 목회했으면 우리 전부 목사다 됐을 터인데 아버지 목회하는 목회는 못 합니다’ 왜? 그분들은 뭐 목사되는 것이 다른 고관 대작되는 것보다도 자녀들에게도 부가 더 많고 영광도 더 많고 잘먹고 잘입고 돈도 잘쓰고 얼마든지 그라니까, 그보다 더 좋은 직장이 어데 있는가? 그러니까, 다 보니까, 세상에 이런 직장 어떤 직장보다도 목사 직장이 제일 낫다 해서 전부 다 쭉 다 따라오고 다 하는데, 우리는 봐야 목사됨으로써, 목사 자식이 됨으로써 말도 마음대로 못 하지 목사 자식이 됨으로 뭐 시집살이는 많지 목사 자식됨으로 모두 다 곤고하게 지내지, 고통스럽게 지내지 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노릇을 안할라 한다.

녜, 그런 점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보면, 이러기 때문에 목사노릇하는데 거짓말 참말해서 어짜든지 교인들은 안 줄라 하고, 달라 하고 막 받아 대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있는 거 전부 다 써버립니다. 저도 그래 쓸라 하면은, 그래 쓸라 하면 한 달에 천만 원 이천만 원이고 쓸 수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니고 쓸 수 있습니다. 뭐 그거 그대로 써도 교회가 불어 나갈란지는 몰라도 쓸 수 있다 말이오.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지 그게 소용이 없어.

그러면, 내가 얼마나 적게 썼느냐? 내가 말했어. 따져 보자. 다른 사람 다 냅두고 그러면, 따져 보자. 저거 삼형제인데 제 밑이 ○○ 목사고 고다음 밑이 ○목사인데 ○○ 목사도 남의 집 살았고 ○○ 목사는 국민학교 삼학년 그만 공부 못 하고 나무 끌고 돌아다니며 지게 졌고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못했고 이랬는데, 그러면 그래 가지고서 살았으면 어찌 될까? 아마 나는 그때 안 믿을 때 보면은 혹 그래 살았으면은 거기서 무슨, 작은 마누라 얻어 가지고서 술장사나, 술도가 했으니까. 술장사나 했을 거고 그리 안 하면 또 혹 면장이나 하나 했을 것이고, 많이 해 봤자.

또, 그 골짝에 보니까 자녀 대학 공부시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 우리보다 부자로 지낸 사람들도 그때 대학 시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는데 나는 자녀 대학 다 시켰지, 하나 안 한 것은 제가 안 할라 해서 안 했지 대학 다 시켰지. 내가 살던 그 본토에 가서 보면은 자식들 그만치 공부시킨 사람들 하나도 없어. ○○ 목사도 그거 찍해야 아마 그러면 논이나 몇 마지기 해 가지고 알뜰히 부쳐서 그저 등 따시고 배부르게 밥은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뭐 어떻게 고등학교나 시키겠소? 요새는 그렇지마는 그때는 고등학교 못 시켜.

이런데 전부 다 대학 시켰습니다. 아니, 대학 다 시켰어. ○○ 목사도 대학 다 시키고 외국에 유학까지 보냈어. 예수 믿는 게 망하는 겁니까? 저희들이 너무 허욕 허영을 닥치니까 ‘이래, 목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곤란하지’ 목사 안 했으면 저거 찍해야 산골짝에 가 가지고서 거기서 농사나 짓고 지금 있지 뭐 하겠소? 우리 있을 때는 그때에 부산이나 서울이나, 요새는 달라요. 그때 나올라 하면 참 힘듭니다. 서울 나갈라 하면 얼마나 힘이 들고 부산 나올라 하면 힘이 들어요. 이런데 가 가지고 거기서 다 대학 졸업했지.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자기 옛날 어떻게, 안 믿었으면 어떻게 될 거, 그러면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고만 집사나 하고 장로나 하고 지냈으면 어떻게 될 거, 이제 목회자가 됐기 때문에 이렇게 참 쭉 늘어져서 ‘그 사람이 ○○ 목사가 지혜 있는 걸 보면 목사노릇 안 해도 큰 부자는 됐을 것이다’ 아니야. 목사 하니까 모든 사람을 지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지혜와 총명을 줬지 근본 그렇게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오.

알겠습니까? 나도 무슨 지혜를 내가 뭐 지혜 그렇게 있는 사람 아니야. 보통 좀 뭐 똑똑한 사람이라 했지만 그래 지혜있는 사람 아니라. 예수 믿고 나니까 많은 사람,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해서 당신의 피로 구속한 자들 이것을 지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니까 지혜와 총명을 많이 받았어.

교만한 소리가 아니라 지금 아무를 만나도 만나면 지혜를 말할 때에 ‘좀 모자란다 요리했으면 좋을 건데’ 그 말은 안하지. 뭐 정객이나 어떤 자라도 보면 지혜는 하나님이 주셔서 누구 지혜만 못하다 하는 것을 하나님도 만나 보지 못하고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줘 그렇지.

이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믿는 경험을 해 봤으면은 참 이는 정금같이 자기를 연단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서 장성한 자가 될 터인데 하나님 말씀 들어야 그 말씀은 들어 버리고 들어 버리지 그대로 복종해 봤어야지? 이런데, 요새 우리 교회는 복이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재독을 자꾸 들으니까 처음에는 모르다가 또 들으니까 좀 알겠고 두 번 들으니까 좀 알겠고 열 번 들으니까 더 알겠고, 자꾸 열 번 아니라 백 번이라도 들어도 좋습니다. 나도 또 들으면 또 은혜되고 또 들으면 은혜되고 또 자꾸 더 은혜가 새로와져.

이래서, 내가 어제는 성경을 녹음해 놓은 것을 제가 들으면서 내가 그런 생각 가졌어요. 이제는 재독이 끝났으면 재독도 자꾸 재독을 계속할 거고, 자꾸 재독을 계속하는데, 재독은 일층에서 계속할 거고 이층에서는 성경 낭독을 계속해야 되겠다.

이러니까, 이제 창세기로부터 자꾸 읽고, 또 어제는 내가 시편을 들었는데 시편을 들으니까 시편을 한참 내가 몇 시간 듣고 나니까 그만 눈이 환하게 밝아져서 이 세상 사람들이 가치로 여기고 사는 생활이 참 불쌍하고 애연해서 못 견디지 그 하나도 ‘아야, 그 생활은 할 만한 생활이다. 그거는 가치 있다.’ 그렇게 가치로 보여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막 이렇게 보는 것도. 왜? 눈이 밝아서 금생과 내세를 보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다 연관시켜 가지고 보기 때문에 그 가치로 여길 것이 없어.

이래서, 6장 1절에 이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어제도 또 깨달은 거 있어요. 뭐 깨달았느냐? 내가 하나님 앞에 자꾸 이거 뭐 눈에 눈물나니까 이런 거 자꾸 낫아 달라 하는데 안 낫아 줘요. 그래서 어제는 이제 안과에 갔습니다. 안과에 가 가지고서 ‘눈물이 자꾸 나고 이라는데 그래 왔습니다.’ 이라니까, 집사라요, 그이가.

집사라서 잘해 주는데 요 눈은 눈물이 나오고 요 눈은 눈물이 조매씩밖에 안 나와. 안 나오는데 요 눈을 치료했는가 어제 치료하고 나니까 눈물이 한 방울도 안 나와요. 요 눈은 그만 치료를 보통했기 때문에 요거는 눈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말이오. 있는데, 그래 뭘 깨달았느냐? 너는 하나님의 능력을 네가, 자연을 줬고 이 세상에 과학을 줬으니까 자연 가지고 네가 노력해서 할거는 하지 꼭 나를 심부름꾼 모양으로 다 그런 것도 할라 하느냐? 내가 네 심부름꾼이 아니고 네가 할 수 없는 거 높은 거 그런 거는 내가 다 들어 주지마는서도, 들어 주지마는서도 네가 안과에 가서 돈 사천 원만 내면 그만 눈물 안 나오구로 쏵 해 버리는데 그거는 안 하고 자꾸 나한테 말하니 내가 네 심부름꾼이가? 그 자연의 법칙도 내가 준 법칙이니 밥 먹어라 했으니까 밥 먹으라는 법칙을 줬으니까 배고프거든 밥 먹고 이래 목마르거든 물 마시고 이래야 될 터인데 목마른 놈을 ‘주여, 목이 마릅니다. 목이 마릅니다. 물을 주십시오.’ 저 산날망에 앉아서 암만 한다고 네 또 물 달라 한다고 물주고 또 밥 안 먹어도 자꾸 배부르다 하고 이래 놓으면 어찌 되노? 이래서 내가 늦게사 어제 깨달았어. 깨달은 거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모든 일반 자연법을 가지고서 할 것은 자연법을 가지고 해야 되지 자연법 가지고 할 걸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이 특수법으로 할라고 하니까 한말로 하나님을 내가 심부름꾼으로 놀려 먹은 거밖에 안 됐다’ 그래 내가 회개를 했습니다.

이래서, 그래 인제 또 깨달은 것은, 이러니까 누구든지 제일 처음에 병들면 ‘이거 자연법 사용하라 하더라’ 병원에 가지 말고. 제일 처음에 병들면 `주님이 내가 잘못해서 징계로 주신 것인지 모르니까 야, 징계인지 모르겠다. 주님 이거 무슨 내가 잘못의 징계입니까? 그러면 잘못을 알려 주옵소서’ 하고서 이리도 살펴보고 저리도 살펴보고 양사방 주욱 살펴보고 난 다음에 ‘요거 잘못됐습니다.

요거 내가 고치겠습니다.’ 고거 회개하고 나니까 그 병이 떨꺽 나았으면은 고거는 하나님의 징계니까 고거는 기도해서 주님에게 구해 가지고 회개로 고칠 병이라 말이오. 회개로 고칠 병이고.

또, 그걸 안 되면은 또 둘째로는 ‘내가 회개할 게 없고 내가 뭘 안 믿어 그렇습니까? 안 믿는 게 뭐 있습니까?’ 요래 살펴 가지고 요래 요래 ‘요걸 안 믿었구나. 요거 내가 안 믿었습니다. 요거 믿습니다.’ 믿어 보니까 병이 딸칵 낫거든. 고거 안 믿으니까 또 믿으라고 그라는 것이고,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또, 그래도 안 낫습니다. 그래도 안 낫고 이래 있으면은 그럴 때는 어째야 됩니까? 회개해도 안 돼, 믿어도 안 돼, 그라면 어째야 됩니까? 기도해도 안 돼, 어째야 됩니까? 병원에 가야 돼. 배 고프면 밥을 먹어야 돼. 이래서, 자연법 이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기 때문에 이 법칙을 사용해야 되겠다.

이러니까, 야 이거 참, 목사노릇 할라면 힘이 든다 이 사람 보고 ‘너는’ 내가 눈이 밝으면 ‘너는 회개하면 되니까 그 회개해라’ 해서 회개해서 딱 고쳐지면은 그 사람은 그만 ‘우리 목사 참 진짜 목사다’ 하고서 이럴 터인데 고걸 잘 모른다 말이오. 진찰을 못 해.

‘또 너는 아직까지 불신이 있어 그러니까 그 불신 그것을 회개해라’ 불신 고걸 딱 회개하니까 딱 돼 버리고 뭐 병도 그렇고 사건도 그렇고 회사 잘되는 것도 다 그렇다 말이오. 이 길로 해 야 될 터인데 영 목사가 아직까지 진찰력이 모자라서 못 한다 그거요.

이렇고, 또 그외에도 또 안 되는 것은 ‘이제 그거는 가서 과학으로 해라’ 과학으로 할 것은 ‘네가 힘을 안 쓰는구먼, 내가 조심을 안 하는구먼, 네가 열심을 안 내는구먼, 네가 땀이 쭉 흐르도록까지 수고를 해서 참고 견뎌야 되는데 네가 할 수고를 안 하는 구먼.’ 이런 거를 바로 해 가지고 치료하면 땍깍땍깍 다 나으면은 얼마나 재미 있겠소? 이러니까, 여게 말씀하시기를 ‘경험하지 안했다’ 경험하지 안해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이러니까 연단받지 못한 사람, 경험하지 못한 사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또 뭐, 시간 뭐 다 됐는데, 이제 오늘은 내가 본문에서 6장 1절에서 여섯 가지, 요것 내가 간단하게만 말하고 맙니다. 똑똑히 들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초보를 버리고」 초보 버리라 그말은 예수 믿는 어린이 신앙 생활은 그만 이제 두고 장성한 신앙 생활을 해라 그말입니다. 어린이 신앙 생활은 그만 두고 장성한 신앙 생활을 해라. 그러면, 장성한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는 데에 요 해석이 사람들의 그 모든 나쁜 행실, 나쁜 행실, 부정한 행실 뭐 거짓말하는 행실 모든 행실 그런 거 나쁜 행실 그런 것을 회개하라 한다 요렇게 해석을 합니다. 요 뜻은 그런 것 아닙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 없는 행실을 다 고쳐라 그말이오. 연결 없는 행실이라니 무슨 말인가? 세 가지 연결 없는 행실. 예수님의 대속과 연결이 없는 행실, 영감과 연결이 없는 행실, 진리와 연결이 없는 행실, 그러니까 껍데기에 제일 쉬운 것은 하나님 말씀에 ‘말씀이 요래 하라 했다’ 네가 무슨 행실 하든지 `하나님 말씀이 요렇게 하라 했다’ 해서 그 말씀의 보증서를 딱 끊어 가지고서 있어야 심판 안 받지.

그러면 말씀이 하라는 고대로 하지 안한 것, 네가 또 말씀대로 하기는 했는데도 성신의 감화가 동참해 주지 않는 것, 말씀대로 하기는 했는데 성신이 동참 안 해 줍니다. 말씀대로 했는데 왜 성신이 동참 안 해 줍니까? 안 해 주는 이유는, 말씀대로 했지마는 성령이 속을 들여다 보니까 동기가 틀렸고 목적이 틀렸고, 방편만 성경 말씀대로 했지 동기는 전부 흉측한 동기 목적도 흉측한 목적이니까 이 성경 말씀대로 했다고 해서 성령이 같이 협동해 줄 수가 있습니까? 그런 게 다 죽은 행실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첫째는 성경 말씀과 일치가 되는 행실, 거게서 성신이 찬성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행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저촉되지 아니하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고 사는 그 행위, 그것이 아닌 것을 다 회개하라 했다 그말이오.

이러나 이런 소리 하니까 뭐, 이웃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불우의 이웃돕기를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거석할 때에 협조하지 못하고 반상회 할 때 반상회나 잘 참석하고 또 이웃 거석하면 이렇게 자주 방문해 가지고 놀러나 다니고 이래 서로 친밀하게 이래 하는 그런 걸 말하라 하면은 좋다 하지요. 외나 진짜를 말하면 안 듣는 거라.

죽은 행실은 그게 죽은 행실입니다. 그러면 죽은 행실은 어떤 게 죽은 행실인가 그걸 알아야 돼요. 죽은 행실의 표준을 알아야 되지 그저 세상이 나쁘다 하는 행실은 전부다 죽은 행실인 줄 안다 말이오. 세상이 나쁘다 하는 행실이 오히려 산 행실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 믿어도, 예수 믿어도 보니까 그 다른 집에 초상이 났으면 와 가지고 곡도 하고 또 절도 하고 제사에 오면 서로 제사에 부조도 하고 또 같이 뭐 꼭 친구들 만나서 그라면 꼭 권해쌓으면 술도 한잔 먹고 담배도 피우고 그 좀 인간성이 있고 재미가 있지마는 고 인간은 무슨 인간인지 뭐 옆에서 암만 권해도 권하던 사람들이 그만 미안하도록, 술 암만 먹어라 해도 술 입에도 안 대지 담배 피우라 해도 담배 피우지 안하지. 또 와 가지고도 다른 사람은 모두 곡하고 하는데 곡도 안 하지 절도 안 하지, 초상난 데 와 절도 안 하지 그 무슨 인간이 아주 인간성이 없다고서 이렇게 말하지마는서도 고것이 죽은 행실을 하지 안하고 산 행실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마귀의 법을 따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때문에 악령의 주관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성령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요 악령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제일 악하다고 이렇게 정죄한 그것이 성령은 제일 의롭다고 칭찬하는 행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해됩니까? 대답이 없구먼. 이해됩니까? 몰라, 이해가 되는가? 어짜든지 예수 믿어도 이 사회적이요 이 동양 도덕적이요 윤리적이요, 왜 윤리 왜, 윤리 나쁩니까? 윤리 도덕 가져야 되지마는 하나님을 중심해서 그 법도대로의 윤리, 그 법도대로의 도덕, 그 법도대로의 사회성, 그 법도대로의 인간성, 그 법도대로의 친교성 사교성 이거라야 되지 그 법을 떠나 하면 다 사망이라 그말이오. 요거, 하나만 똑똑히 알아도 세상에는 외롭게 됩니다. 나는 암만 친할라 해도 친해지지를 안합니다. 그래도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십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이 신앙이라 말은 믿음이라 말인데 신앙이라 말은 하나님을 우러러 보면서 이렇게 높이 크심을, 크심을 바라보면서 믿는 것을 가리켜서 신앙이라 이래 합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믿는 것, 크신 분인 줄 그분의 말한 것도 믿고 모두 교훈한 것도 믿고 약속한 것도 믿고 그분의 성품도 믿고 그분의 사랑도 믿고 모든 걸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그러면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 것, 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걸 믿는 것 전지자라는 걸 믿는 것, 이것을 다시 터를 닦지 말고, 터를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 했어.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한 신앙도 말이지요. 자꾸, ‘내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믿는다. 제일 크심을 믿는다.’ 믿는다 하고 나서 또 행동해 보니까 안 믿거든.

요만치 믿고 또 안 믿는 다 말이오. 하나님의 전능을 믿는다 해도 요게는 전능을 믿었지마는 외나 큰 일 닥치면 전능을 안 믿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믿으면서 또 안 믿는 걸 고쳐서 뽑아내 가지고 또 안 믿는 걸 또 믿고 안 믿는 거 믿고 난 다음에 또 안 믿는 부분을 또 믿고, 또 믿고 또 믿고 또 믿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라.

다시 터를 닦지 말아라 말은 이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을 하다가서 무슨 일이 있으니까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또 얼마 제 볼일 다 보고 난 다음에 이제 여가 있으니까 ‘아이구, 예수님 믿어 봐야 되겠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오면 환영은 하지마는서도 무궁세계에 꼭 갚습니다. ‘너는 이놈아, 나를 언제 박대하고 박대하고 박대했지. 너는 몇 번 박대했기 때문에 나도 너를 이래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뭐 용서하고 참고 견딘다고, 어리석어, 어림도 없어. 하나님은 정확한 분이십니다. 복수성이 강하신 분이시요. 아주, 정의심이 강하니까 복수님이 강하지 정의심이 무한하시까 복수심이 무한하지.

「신앙과 세례들과」 요 간단하게 해석하고 맙니다. 「세례들과」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내가 연합해서 죽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내가 연합해서 다시 산 자되는 것이 그게 세례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지 안해요? 세례받는 것은 우리는 세례를 물로 머리 위에 찍어 부어 가지고서 세례를 줘요. 이 침례교에서는 세례를 그래 주지 안하고 사람을 물 속에 잡아 넣어 가지고서, 안 보이도록 폭 잡아 넣어 가지고서 다시 들어내서 그렇게 침례를 줍니다. 그 침례가 나는 옳다고 자꾸 봐져요. 이 세례도 그렇지마는서도 침례가 오히려 그게 실감이 느껴지고 효력이 있겠다.

이래서, 내가 지금 장로교인이니까 이 세례 주는 걸 버리고 침례식으로 할라고 하면은 세례를 부인하는게 되기 때문에 내가 그리 못 하지 내가 지금 둘 중에 어느 거 할라냐 이라면 나는 침례하겠어요. 왜? 침례가 좀 실감이 느껴진다 말이오. 침례는 물에다가 집어 담그면은 이제 쏵 들어갔으니까 안 죽었습니까? 죽었다가 새로 살아나는 식을 하는 것이 그게 침례식입니다. 세례라는 것은, 여게는 세례라고 번역을 했는데 또 그 침례하는 사람들은 침례라고 그렇게 번역을 합니다.

이 「세례들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 세 가지 의를 이루기 위해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내 대신 죽었으니까 내가 죽은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기가 죽은 자인 것을 자꾸 인식하고 인식해서 나는 완전히 죽은 자라.

남아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해서 죄 짓던 것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의로운 자로 사는 이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세례받는 것이라 말이오. 「세례들과」 세례는 이 수족이 세례받고 눈이 세례받고 귀가 세례받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받기 때문에 세례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눈이, 다시는 눈이 죄 안짓는 데 대해서는 그 눈이 죽어서 송장이 돼 버렸으면 그 눈이 다시 죄 짓습니까? 눈이 죄 지을 수 있어요? 송장됐는데 죄 안 짓지요. 이제 송장 눈이 돼 가지고 죄 안 짓는 것처럼 죄 짓는 눈은 완전히 죽여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서 이제는 의롭게 사는 눈으로 사는 요 일을 평생 연습해 가지고 완전한 데 나아가거라.

이래서, 내 눈이 죄 짓는 눈은 ‘이놈 죽은 줄 알았더니마는서도, 일 년 내내 이 눈이 나쁜 거 보지 안하고 죽은 줄 알았더니마는 요게 한번 살아 나왔네.’ 이러니까 또 다시 죽인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눈이 죄 짓는 것도 몰라요, 눈이 죄 짓는 것도. 눈이 안 볼 거 보는 게 죄 짓는 거라. 눈으로 전부 죄가 다 들어옵니다. 눈으로 전부 죄가 다 들어와요. 이거 모두 사치들은 다 눈으로 들어온 죄값이오. 눈으로 들어온 죄, 또 허영과 허욕은 전부 눈으로 들어온 죄. 눈으로 죄가 들어오지 귀로 들어오지, 눈으로 들어오고 귀로 들어오고 접촉을 함으로써 들어오고, 이래.

이러니까, 「세례들과」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죽는 이 연습,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해서 새사람으로 사는 연습, 이 연습을 평생해서 완전한 데 나아가야 되겠다 그거요.

「세례들과 안수와」 안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안수하는 것은 무슨 식이냐?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그 안수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지금 시작해 놨다 말이오. 시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안수 받는 것은 성부의 은혜 성자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내가 지금 영원히 계속 받기 시작된 그 식을 가리켜서 안수라 이랍니다. 안수하는 거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받을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렇게 그 위에 안수하는 것은, 안수하는 것은 그것은 성부 성자의 성령의 은혜를 이제 받기 연결됐으니 이 연결은 영원히 연결된다. 이 사실을 또 믿고 믿고 자꾸 믿어.

안수받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내게 축복해 주시나?’ 축복을 벌써 축복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데,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데 제가 믿지 안하기 때문에 오지 안하고, 받지 안하기 때문에 오지 안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무한한 은혜를 받고 받고 받고 받고 하면 얼마든지 받아서 충만해지는데 그 은혜를 받지 안하니 ‘온전한 데 나아가라’ 받고 받아서 완전히 다 받는 데까지 나아가라 그말이오.

또 「죽은 자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은 내가 살아서 오늘 하루 행동합니다. 하루 살아서 행동하는 그 행동은 죽었습니다. 내가 하루 살아서 이런 행동이든지 저런 행동이든지 행동한 것은, 행동한 것은 그게 남아 있는 줄 알아도 행동한 것은 벌써 죽어 지나가 버렸습니다. 죽어 버렸습니다.

죽었는데, 오늘 하루 행동한 그 행동이 부활할 때에, 부활할 때에 무슨 효력이 있느냐, 부활할 때에 영향이 있느냐, 부활할 때에 그때 남아 있느냐, 부활에는 상관이 없고 오늘 하루 종일 뭐 산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 버리고 부활에는 상관이 없느냐 요것을 깨달아서.

‘죽은 자의 부활과’ 나는 오늘 산다. 하루 산다. 하루 사는 것은 이것으로서 끝나서, 하루 살면 하루 사는 것은 이것은 끝나 버린다. 끝나 버리면 내가 뭐 어떤 왕노릇을 했든지 뭐 사장노릇을 했든지, 어떤 미인 미남 노릇을 했든지, 어떤 행락자 행동을 했든지 과학자 유명한 사람의 행동을 했든지 오늘 하루산 이것은 나는 이 사는 것으로 끝나 죽고 만다. 끝나 죽고 만다.

끝나 죽고 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대속의 이 구원을 길이 있으니 오늘 하루 사는 이 생애. 이 사는 생애, 이 생애는 전부 죽은 가운데에서 부활하는 이 부활을 위해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뭐 이거 뭐 사장노릇 하는 것 같고 뭐 관직노릇 하는 거 같고 행정하는 거 같고 목회하는 거 같고 하지마는서도 내가 하는 이 하루 사는 이 생활이 전부 부활을 위해서 준비해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꼭 같이 사는 것 같지마는서도 전부 부활을 위해서 완전히 하루 살고 보니까 하루 산 것이 이 껍데기는 죽어 없어져 버리고 고다음에 알맹이를 보니까 알맹이 그것이 부활에 가서 딱 딱 다 채여 있다 말이오. 부활에 채여 있어. ‘죽은 자의 부활과’ 이것을 네가 생각해서 이 일이 실수되지 안하고 손해가지 안하도록 완전한 데 나아가라.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영원한 심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 판단을 받는다. 다 검사를 받는다. 하나님 앞에 판단 검사를 받으면 그 판단 검사 그것이 백 년 지나가면 변해지는가, 십 년 지나가면 변해지는가, 이 세상 법에서는 판단해도 그것이 몇 해 시효가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 공산주의의 재판에서 판단받은 것은 민주주의로 넘어와 버리면 없습니다.

영원한 심판이라 말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은 것은 억만 년 가도 변함이 없고, 판단받아 가지고 그때 이렇다 저렇다 판결을 받은 그 판결은 영원 계속한다. 영원 계속한다. 그 판결은 영원히 계속한다. 그것을 가리켜서 영원한 심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게 대한 교훈에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여게 대한 교훈을, 이 중대한 교훈을 내가 시작했다가 또 버리고 또 새로 시작하고 새로 시작하고 그래 하지 말고, 이제 다시 터를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도록까지 힘써라.

그러면, 주일을 지켜라, 연보를 해라, 또 기도를 해라 하는 그런 교훈들이 뭐 수백도 수천도 넘습니다. 넘지마는, 그물이 천고라도 벼릿줄은 하나인 것처럼 그런 교훈이 천도 넘지마는 그 교훈은 이 여섯 버릿줄 위에 속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이 뭐이냐? 죽은 행실을 회개할라고 기도하는 것이고 안 죽을라고 회개하는 것이고 산 행실 할라고 회개하는 것이고. 또 내가 성경 열심히 보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할라고 내가 하는 것이고, 신앙할라고 하는 것이고. 또 내가 주일을 열심히 지키고 뭐 기도하고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은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고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들과’ 세례들에 대해서. 또 내가 지금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주님이 내게 축복의 안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 안수로 말미암아 내가 계속되는 이 축복을 받고 받고 받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전도를 하고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것이 좋은 부활을 받기 위해서 ‘죽은 자의 부활과’ 또 하나님의 심판에 너는 옳다 칭찬받기 위해서.

이래서, 이 터 여섯 가지를 다시 닦지 말고 이 터 여섯 가지 위에 네가 건설해라.

건설하는 것은 성경 읽어야 건설이 되고 기도해야 건설되고 전도해야 건설되고 주일 지켜야 건설되고 연보해야 건설되고 이렇게 건설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이 여섯 가지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새로 시작하지 말고 이 시작한 것을 네가 계속하도록 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의 어린 아이의 이 신앙을 이제는 버리고 장성한 신앙에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이대로 될 것을 확신합니다.

여섯 가지 터를 말씀해 주셨사오니 모든 신앙 생활할 때에 이 터 위에서 이 여섯 가지 면으로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전생활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므로 주님에게는 만족이 되고 얼마든지 축복하실 수가 있고 저희들은 주님의 축복을 영육에 받아서 믿음이 어린 자들에게 세상 것으로써 본을 보여 주고 장성한 자들에게는 주를 위해서 순생 순교의 생애로 잘 본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참으로 세상이 이해 못 할, 주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실 수 있는, 완전히, 땅에 사나 땅을 밟고 하늘의 사람으로 사는 다 성자와 성녀들이 되게 하시고 영육에 한없는 축복으로 권능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어떤 환난이 와도 그 환난을 다 기쁨으로 이기고 웃음으로 그런 것들을 다 호령치고 모든 환난을 승리하고 남음이 있어 과연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모든 세상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노아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같이 이렇게 믿음으로 세상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저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오늘 많은 형제들이 처음으로 나왔사오니 이들과 함께 하여 주셔서 이제는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계시지 안한 곳이 없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주님의 손바닥에 놓고 늘 헤아리고 계신다고 하셨사오니 이 주님을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고, 바로 보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고, 하였기 때문에 저희들이 곤고함에 있었던 것을 깨닫고 이제는 주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간구하고 의논함으로 주님의 온갖 축복으로 영육에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의 십자가의 이 구속의 사랑이 그 속에 점점 불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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