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에 대해서

 

1986. 7. 16. 수밤

 

본문: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멸망입니다. 뭐 멸망보다 더 두려운 것 없고 더 싫어하는 것 없습니다. 또 사람들이 제일 원하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초년 멸망이 있다, 중년 멸망이 있다, 노년 멸망이 있다, 초년이라면은 이십오 세까지를 초년이라고 봐야 되겠고, 중년이라고 하면은 오십 세까지를 중년이라고 봐야 되겠고, 노년이라고 하면은 칠십오 세까지를 노년이라고 그렇게 봐야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초년 멸망을 면해서 없이 해 준다는 그런 확실한 길이 있다고 하면은 사람들은 굉장히 서둘 것입니다. 뭐 세상에서 초년 행복을 가지겠다고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신체 건강으로 이렇게 쌓지마는 그게 뭐 또 그렇게 실효가 있습니까? ‘초년 이십오 세까지는 이것만 하면은 멸망치 않고 다 행복되게 살 수 있다’ 하는 보증이 있다고 하면 뭐 사람들이 굉장할 것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자기의 있는 힘을 삼분지 일은 기울여 가지고 초년 멸망을 피하고 초년 행복을 위해서 기울일 것입니다.

또 중년 멸망을 피한다고 하면은 자기의 있는 힘을 아마 있는 것 반은 들여 가지고 할 것입니다. 이제 벌써 남은 것 뭐 이십오 세로부터 오십 년밖에 안 남았는데 이십 오년을 멸망 받지 안하고 행복되게 산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남은 힘 반은 다 기울일 것 아니겠습니까? 노년에 자기에게 있는 모든 멸망을 다 피하고 노년을 평안하게 산다, 행복되게 산다 하면은 자기의 남은 힘을 다 기울여서 돈이면 돈, 뭐 자기의 체력이면 체력, 자기의 모든 활동하는 그 활동력이라면 활동력 다 기울여서 이것을 할라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예수님만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계약 이 뭐 틀린 계약이 아니라 우리가 안 믿어 그렇지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믿는 그날부터 세상에서부터 행복입니다. 모든 일이 형통해지고 모든 일이 행복되는데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에 한없는 행복을 말해 놨지마는 안 믿기 때문에 기쁨도 안 나오고, 안 믿기 때문에 힘도 안 쥐이고, 안 믿기 때문에 담력도 안 나오고, 안 믿기 때문에 배짱도 안 나오고, 안 믿기 때문에 우리가 이 한없는 복, 자, 세상에서 초년, 중년, 말년까지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멸망하지 안하고 행복되게 살 수 있는 이런 길이 있고 이런 것을 만일 자기가 가졌다 하면은 굉장할 것입니다.

여기 뭐 공부해 가지고 그 사람 무슨 학위를 여러 개를 따고, 또 자기가 이 세상에 출세했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도 자기의 일생을 행복되게 못 합니다 왜? 하나님이 불려 가면 그만 금방 죽어야 안 됩니까? 그런 것도 하나해 놓으면 배짱을 내고 뒤로 저뻥하고 또 그것 준비하는 데도 있는 힘을 다 기울이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런 계약을 줬는데 이 계약을 못 믿기 때문에, 이 계약을 믿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못 누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모든 행복을 다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멸망하지 않는 그것도, 멸망하지 않는 그런 보증이 있고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가졌다든지,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배경을 가졌다든지,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무슨 보화를 가졌다든지 하면 뭐 그 사람 쪼 빼고 권세 부리는 데 옆에 사람이 견디지 못할 것이오. 안 그렇겠습니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죽는 날까지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무슨 학위를 가졌다, 그런 기술을 가졌다, 그런 직장을 가졌다, 그런 권세를 가졌다, 그런 배경을 가졌다 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의기 당당하고 아주 자신 있는 그런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겠습니다.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는, 예수님만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믿지 안해 그렇지 믿는 것만침 행복은 다 가집니다. 믿어야지, 안 믿기 때문에 그렇지, 믿으면 다 행복을 가집니다.

또 이 멸망은 뭐 초년, 중년, 말년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이런 큰 행복이 예수님 믿으면 다 오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지마는 이 사실을 제가 새겨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행복된 사람인 것을 느끼지를 못해서 항상 행복되게 살지를 못합니다.

또 생명도 그러하지요. 어떤 사람이, 의사들이 진단하기를 ‘이 사람은 이제는 이거는 참 살 수 없다. 이제 생명은 몇 시간 지나면 이 사람 생명은 끝난다.’ 몇 시간 지나면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모든 의사들이 다 공통으로 증명하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돼서 ‘이 사람은 몇 시간만 지나면 생명이 끝난다’ 할 때에, 그때 그 사람에게 만일 일 년 연장이 있다 하더란대도 그 사람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여 할 것이고 십 년 연장이 있다고 하면은 뭐 자녀들이 암만 시비를 해도 자기 있는 힘 전부 다 기울여서 십 년 생명 연장하는 그 길이 있다고 하면은 그 연장을 할 거 아닙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이런 걸 좀 실지로 좀 생각해 봐야 될 터인데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실감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재산이 얼마 있다고 하면 자녀들은 뭐 십 년 더 살라고 그거 안 줄까 싶어서 자녀들은 반대할 것입니다. 반대하지마는 자유로 두고서 ‘자, 십 년 연장 된다. 십 년 연장될 일이 있고, 네 재산 다 하면 십 년을 연장할 수 있다, 생명이 연장 될 수 있다.’ 하는 그 길이 있는데 자녀들이 다 달라들면은 힘이 없어서 못 하지마는 자유할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당장 그 십 년 연장 위해서 그 재산 있는 대로 톨톨 털어서 다 바칠 것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안 그럴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안 그럴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예수님만 믿으면 영원히 멸망하지 안하고 영생 얻는 이 약속을 하나님이 해 주셨고 우리가 이 영생의 구원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도무지 여게 대해서 감사하지를 못하고 기쁘지를 못하고, 이 행복을 누리지를 못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생명을 전해 주지를 못하고 이라는 것은 이거 우리가 안 믿는 증거요.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 얻는 이런 행복을 주님이 약속해 주셨는데 이 사실을 믿으면 믿는 증거는 뭐냐?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할 것이오. 또 어떤 것이 와도 우리에게는 불행이 없을 것입니다. 왜?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는데 무슨 불행이 있겠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믿지 않는 그 증거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도 평강도 담력도 여게 대해서 이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도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뭐 우리가 너무 다 알아 놔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 하는 것을 하도 많이 말해 놔서, 입에 익어 놔서 아무 실감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좀 밥을 굶고라도 ‘자, 멸망하지 않는다. 영생한다.’ 이거 좀 실지로 좀 느껴 봐야 될 터인데 느껴 보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행복이 한없는 행복을 가졌지만 이 행복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또 이것을 섭섭해 합니다. 왜? 영원히 멸망할 것을 구출을 당신이 공으로 줬습니까? 당신이 대신 멸망하고 우리를 그 멸망에서 구출해 가지고 멸망이 우리에게 오지 안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또 영생을 그저 이래 뭐 줬습니까? 당신이 영원한 사망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데 이 가치를 우리가 여기지 안합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뭐 오만 거 섭섭한 거 죄를 지을 때에 섭섭한 거 많이 있지마는 제일 주님이 섭섭한 것은, 우리의 영원한 멸망을 당신이 대신 당하셔서 대속해 가지고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셨고, 또 우리가 영원한 사망하는 것을 당신이 대신 영원한 사망을 당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이 두 가지 큰 은혜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지 안하고, 기뻐하지 안하고, 이 행복을 우리가 누려서 못 견디는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이 행복을 우리가 느끼지를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멸망치 않고 영생 얻는 이 구원 준 이 구원을 아주 시시하게 여기고 그렇게 중대하게 여기지 않는 이것이 주님이 무엇보다도 제일 섭섭해 하십니다.

언제 내게 전화가 어떤 반사 하나가 전화를 하기를, 이번에 하기아동성경학교 때에 그 공과가 다니엘에 대한 공과인데 학생들은 지금 다니엘에 대해서 처음으로 많이 오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요새 지금 공과 그것보다도 이 영생을 말하고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 이 말은 자꾸 할수록이 학생들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은혜를 받고 간절하고 힘이 나는데 이걸 좀 했으면 좋을 것인데 그뭐 다니엘 공부를 하고 있다고서 그렇게 말하면서 혹 새로 고칠 수 없습니까 그런 말 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습니다.

그것을 그 말을 듣고서 유심히 제가 늘 계속해서 생각할 때에 지금 반사들하고 의논을 해서 이번 공과는, 하기아동성경학교 공과는 내나 이제까지 셋 주간 동안 계속해서 공부한 이 공과를 또 사흘 동안 계속해서 공부해야 되겠다.

이거는 그저 자꾸 이래서 우리가 참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으로 우리가 가지고 영생의 이 행복감을 실감으로 가지고, 또 믿지 않는 그 사람이 죽어 있는 그것을 실감으로 가지고 그 사람을 예수 믿도록 해 가지고서 구원 얻도록 하는, 죽은 자가 살아난 이 실감을 가지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래서 그 공과를 지금 바꾸면 그렇게 싶습니다.

너무,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 그러면 우리가 입에 배서 마비가 돼 버렸어. 아무 감각 없는 이 신앙 마비가 돼 버려서 여게 대해서 그렇게 멸망하지 않는다는 그걸 느끼지 안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이요, 어데 이 멸망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기막히는 일인가 하는 걸 요 멸망을 좀 맛을 좀 보여 주면 좋겠어요. 멸망을.

어짜든지 멸망을 맛을 보여서, 한 달 멸망을 맛을 보이든지 일 년을 보이든지 어쨌든지 이 멸망치 않도록 구원한다는 이 구원이 얼마나 이 행복되다는 이것을 느끼도록 좀 멸망을 우리에게 줘 가지고라도 멸망을 좀 느껴서, 멸망의 이 불행, 이 멸망에서 구출하는 이 구출이 얼마나 행복된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느끼면 살아 있는 여생은 우리가 행복되게 살 터인데 이렇게 큰 행복이 왔지마는 우리는 그만 수박 겉 기와 같이 아무 맛을 몰라요. 행복을 누리지 못해. 또 이 죽음이라 하는 이 죽음에서 건져서 구원이라 하는 이것이 얼마나 행복된지 이거 좀 죽음을 맛을 봐 가지고 ‘하, 죽음이라 하는 거 참 불행이다.’ 저 우리 ○○○집사님이 지금 ○○병원에 있는데 며칠 동안 용변을 못 해 가지고서 띵띵 붇고 죽을 지경이라, 지금 헐떡거리고 죽을 지경인데 오늘은 용변을 하고 난 다음에 그제야 하기를, 하이구 이거 참 용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이게 참 큰 은혜인데 이런 줄을 몰랐다고서 이라면서 그렇게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더라고.

○○목사님이 병원에 가 가지고서, 다른 거는 아무것도 없고, 뭐 다른 거는 할 여가가 없고, 소변을 못 해서 소변이 꼭 한 두 시간 되면 소변이 나오는데 소변이 안 돼서 소변 할라면 뭐 죽을 지경이고 나오지도 안하고 아프고 막 그라며 이래서 그저 두 시간 동안은 한번도 끊치 안하고 ‘주님 소변 잘하게 해 주옵소서. 소변 잘하게 해 주옵소서.’ 이걸 계속해서 뭐 어떻게 간절한 기도가 되는지, 계속 기도를 하면은 소변을 잘 하고 조그매라도 그만, 조그매 사이만 떠도 고통을 당하고 이래서 거게서 그 치료 될 동안은 세상에 소변 잘 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되다, 이보다 더 행복 있는 사람 어디 있겠느냐 이렇게 느꼈다고서.

그 모양으로 우리도 지금 이거, 죽음의 고통이라 하는 거 도무지 느끼지 못하지 이 멸망이라는 거 느끼지 못하지, 하나님께서 이래 가지고 뭐,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잘 살도록 이래 놓으니까 이거 도무지 멸망이라 하는 데 대해서 실감을 느끼지 못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멸망을 실감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이 그런 현실을 줘 가지고 멸망을 실감하고, 죽음이라 하는 걸 실감하고, 죽음에서 구출된다는 이 실감을 가질 수 있는 이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꾸 평안하게 살 게 아니라.

그래 가지고라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어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신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참 믿는 믿음을 가지고 참 행복을 누려야 될 터인데 이걸 누리지 못하니까 이거 참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강퍅해서 이런 것이고 또 악령이 와서 우리 마음을 미련케 만들어서 아주 마련하고 완패해서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멸망하지 않는 것을 자기가 실제로 ‘멸망하지 않게 해 주신 주님의 이 은혜가 참 크다’ 하는 것을 느낀 것만치, 느낀 것만치 감사가 있을 것이고, 감사가 있는 것만치 하나님께서 거게 대한 댓가인 상급을 주실 것이고, 또 감사가 있는 것만치 그 사람에게는 기쁨과 평강이 있을 것이고, 또 이걸 감사하고 기뻐 평강을 누린 것만침 그 은혜를 잘 보수하고 보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멸망치 않는다는 이 사실을 느끼지 않는 증거가 뭐인가? 느끼지 않는 증거가 감사하지 않는 증거요, 감사 안 하면, 이거 은혜로 주는 것 아닙니까? 은혜의 댓가는 감사인데 누가 댓가도 안 주는데 자꾸 물건 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감사 없으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 감사해야 또 은혜 주십니다.

이러니까 다른 거 모든 것 뭐 크지마는 그것보다도 멸망하지 않고 영생 주는 이 은혜가 제일 큰 은혜인데 이 멸망하지 않게 해 주신 여게 대해서 우리가 느끼는 것만치 감사함이 생겨질 것이고, 감사함이 생겨지는 것만침 기쁨이 생겨질 것이고, 감사와 기쁨이 생겨진 것만치 이 은혜를 잘 보수할 것이고 업신여기지 안할 것입니다. 영생도 그러합니다.

그런고로, 아무래도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 이 사실을 우리가 실감으로 느껴서 실감이 되도록 한번 해야 되겠는데 이거 실감되도록 우리가 자꾸 만들어야 되지 만일 실감이 없이 이대로 간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실감이 있도록 해 가지고서, 우리가 실감을 가지고 참 여게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고 또 기쁨을 누리고 은혜를 우리가 잘 보수하고 보배로 여겨서 잘 보수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돼야 되지 이거 뭐 이래 장 이래 평안하게 이래 가지고서, 영원 멸망을 면제해 줘도 아무 감사함 없지, 또 영생을 줘도 감사함 없지 이런 거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이니까 느끼지 않는 그 증거는 뭐입니까? 느낌이 없는 증거는 뭐입니까? 느낌이 없는 그 원인은 뭐입니까? 믿지 않기 때문에 느낌이 없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느낌이 없는 것이라.

느낌이 없기 때문에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멸망치 않고 영생한다 이걸 느낌이 없기 때문에 기쁜 그 행복도 쾌락도 누리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은혜의 댓가는 감사인데 감사하지 안하니까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을 길도 다 막혀 가지고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새는 다른 기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멸망지 않고 멸망을 다 당신이 대신 멸망을 받아 가지고서 우리에게서 멸망을 다 면제해 주셨다. 영원한 사망을 면제해 주셨다.’ 하는 여게 대해서 우리가 실지로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생각해 봐서 이 실감이 가져지도록 해 달라는 기도도 해야 되겠고 여게도 또 노력도 해야 되겠고, 안 되면 단식도 해야 되겠고, 안 되면 하나님께 그래 기도합시다. 이걸 느끼도록 나에게 고난을 줘서라도 ‘아이구’ 이 고난에서 고난을 면해 주는, 고난이 닥쳐서 도글도글 죽을라고 도글도글 할 때에 그 고난에 건져 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 고난이 있어 봤자 이 세상에 찍해야 뭐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고생이지 큰 고생입니까? 또 감옥 속에 가서 징역 산다 해도 징역이 무슨 고생입니까? 거기서도 밥 먹고 찍해야 자유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그런 데서만 구출해 줘도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을 터인데, 우리가 이 고난을 받아 봐야 되겠어.

이 고난을 받아야 멸망을 받아 봐야 거게서 이 구원되기를 힘쓰고 구원이 됐을 때에는 기쁨이 있을 터인데, 그래 느껴 봐야 될 터인데 이거 도무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가 없으니 댓가를 안 내니까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주시지 않을 거라 말이오. 댓가 안 주면 어찌 됩니까? 댓가 안 주면 냅둡니까 어짭니까? 여러분들이 암만 시장에 가서 아무 집에 가서라도 물건을 가지고, 물건을 내가 가지고 댓가 안 주면 물건 뺏듭니까 안 뺏듭니까? 뺏드요 안 뺏드요? 뺏듭니다.

그게 정식입니다. 친한 터에는, 안 뺏겨도 친한 터에도 안 줍니다. 그 사람에게 줄 만한 그런 보증이 있으면은, 보증이 있으면 월부로도 주고 이라지 보증 없으면 월부 안 줍니다. 댓가 안 주는데 누가 물건 주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멸망치 않게 해 주신 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함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멸망치 않는 이것이 삭감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삭감이 돼요. 삭감이 되니까 하늘나라 가면은 다 같은 구원인 줄 알아도 같은 구원이 아닙니다.

멸망치 않는 데 대해서 감사하는 그 댓가를 낸 사람들은, 세상에서 그 멸망치 않는 이걸 실감으로 가지고 보니까 그 사람은 생활이 다 변화가 돼지고 또 세상을 이기는 생활을 하지마는 여게 대해서 아무 감사를 누리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니까 그 사람 생활이 자연히 성화 생활을 할 수가 없고 하늘나라 가서 보면은 댓가를 안 냈으니까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그 은혜에 대해서 자기가 실감으로 느끼지 안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그만침 빈약하고 그만침 허무하게 됐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댓가 안 낸 거라, 그거.

안 낸 거라.

삭감을 자꾸 시켜서, 영생하는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영생 누리는 그 행복은 다 삭감됐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나도 그만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 이거는 너무 하도 많이 말해 쌓아서,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는 ‘인간이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다니? 그럴까? 그럴 수가 있을까?’ 이래 가지고 참 멸망치 않는다는 그 사실을 깨달을 때에는 뭐 좋아서 못 견디었는데 너무 오래 돼 놓으니까 이거 마비성이 있어서 아무 실감이 없어요. 우리 이거 이 실감이 일어나도록 이걸 가져야 되지 이거 안 가지면 안 되겠습니다.

뭐 어떻게 하든지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그저 혼자 산으로 가든지 어짜든지 가 가지고서 요거 중요한 것, 이거 아주 중요해요. 모든 신앙 생활의 원인이 이겁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뭐 오만 거 다 있지마는 천 가지 만 가지도 넘지마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은 이 두 가지뿐이라.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는 거.

멸망 받으면 무슨 소용 있어? 영생 못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 이것을 자꾸 요새는 좀 힘을 써 가지고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면 멸망하면 어찌 되는고?’ 이 세상 멸망을 자꾸 주 대 봐요.

‘이런 멸망, 그 멸망에서 그때 그 멸망이 왔을 때 그 멸망에서 누가 면제해 주면 어떻게 되겠느냐?’ 멸망도 이 세상에 자기가 아는 대로 지식에 따라 다를 터이니까 멸망을 아는 대로 열 가지고 스무 가지고 백 가지고 주 대 봐요.

‘이 멸망에서, 이런 멸망 있는데 이런 멸망에서 다른 사람이 만일 구출해 주시면 거게 대해 감사 하겠나 안 하겠나? 감사 하겠지. 그러면 거게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겠나? 거게 대해서는,’ 저 혼자 자문 자답해 봐. ‘거게 대해서는 아무래도 감사하는데 거게 대해서는 그래도 한 오만 원어치는 아마 감사하는 예물을 사다 드릴 것이다.’ ‘만일 이런 멸망이 있는데 여기서 구출했다면 어찌 되겠느냐? 거게서 구출했다면은 적어도 몇십만 원은 대우해야 되지, 또 이런 멸망이 있는데 그 멸망에서 만일 구출했다고 하면은 그 어찌 되겠느냐? 그거야 그 재산이 있다면 자기 재산 톨톨 다 털어서 그 사례를 해야 되지.’ 이런 걸 자꾸 이래 해 보면, 그러면 그 멸망에서 구출한 그런 걸 자꾸 계산해 보고서 연상해 보고, 자꾸 연상해 보라 말이오. 연상이라 말은 또 연해서 생각하고 연해서 생각해 보는 것을 가리켜서 연상이라 이라는데.

연상해 보고, 이라면 또 그런 멸망과 예수님께서 “멸망치 않고” 하는 이런 멸망은 영원 지옥의 멸망과 모든 영원 멸망을 다 면제했으니까 그 멸망과 이 멸망과 또 비중을 달아 본다 말이오. 달아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떤 멸망이라 해도 그 멸망과 비중을 달면 비중이 달 수 없어. 비중이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면, 예수님이 나에게 멸망치 않게 해 주었다는 이 은혜에 대해서 자꾸 이 은혜가 자기가 자꾸 커지고 커지고 이라면은 감사가 나와지고 이러면 다른 모든 고마운 일 중에 이게 제일 고마울 것이고, 또 이 멸망을 확실히 깨닫고 보니까 이만하면 족하지 뭐 딴거 뭐 딴거 가질 거 없어.

그러니까 이 멸망하지 않게 했으니까 이 멸망하지 안할 자이니까 멸망하지 안할 자로서 내가 할 일이 뭐냐 하는 걸 생각해 가지고 자꾸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거 좀 어짜든지 실감을 가져야 되겠어요. 다른 설교 설교가 나올 게 없어요.

영생도, 영생이라는 이 영생도 자꾸 그걸 생각해. 그 사람이 지금 이제 죽는데, 내가 어떤 전도 부인한테, 그분은 그때 권사라던가 이랬는데 그 사람이 뭐 독립 운동도 하고 아주 잘난 사람인데 그때 가서 보니까 숨이 곧 갈 때인데 말하기를, 나를 지금 나흘만 살려 주시면, 나흘만 살려 주시면, 나흘만 살려 주시면 내가 이제 나서 가지고서 좀 못 한 전도 좀 실컷 하고 좀 죽겠다고서 이렇게 말합디다.

나흘만. 처음에는 석 달 말하더니만 나중에는 나흘 말해.

석 달, 석 달 그래, 석 달 살라면, 석 달 살라면 석 달 그 생명이 연장되는 그 연장되는 그 약을 사 먹을라 하면 적어도ㅡ자기 재산이 만일 일억이라면,ㅡ그 약을 살라 하면 있기야 있지마는 그 약을 살라 하면은 일억 줘야 된다 하면 톨톨 털어서 ‘일억 여기 있습니다. 사 주십시오.’ 이럴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이 생명이라는 거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생을 줬는데 이거 도무지 실감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걸 자꾸 느껴 봐요. 자꾸 느끼면서, 이런데 영생을 주셨는데, 멸망치 않게 하셨는데, 이랬는데 내가 거기 대해서 감사함도 없고 아무 실감도 없이 예사로 지내는 이것은 참 자기가 자기를 봐도 이거는 참 멸망받아야 되고 이거는 뭐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될 만치 자기가 자기를 미울 것이라 그말이오.

이거 자꾸 아무래도 우리가 이거 가져야 되겠습니다. 왜? 은혜의 댓가는 감사인데 이 멸망 영생을 주님이 은혜로 주셨는데, 은혜로 주셨는데 여게 대해서 감사가 없으면 멸망을 제해 줘도 다른 사람은 멸망을, 예를 들면은 다른 사람은 멸망을 한 억만 멸망을 없애 주셨는데 이 사람은 멸망 열 개 없애 준 사람, 백 개 없애 준 사람, 스무 개 없애 준 사람, 다섯 개 없애 준 사람 그러면 그 차이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 차이가 하늘나라에서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멸망’ 하면 지옥의 멸망 안 받았는데, 지옥 멸망은 안 받았는데, 그러면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하늘나라도 무슨 멸망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겠는데 하늘나라에 멸망이 있습니다. 멸망이 무슨 멸망이냐? 하늘나라의 그 사람에게 배당된 행복이 예를 들어서 억만 개인데 댓가를 안 냈으니까, 댓가를 안 내니까 그 억만 개를 자꾸, 댓가를 안 내니까 또 도로 뺏들고 뺏들고 다 뺏들고 억만 개 다 뺏들었으면 하나도 없이 저는 하나도 없는 그런 자 될 터인데 이제 그래도 예수 믿은 조그매 감사했으니까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살기는 살지마는 그 행복의 차이가 그렇게 많게 될 것입니다.

또, 영생을 주셨는데 영생은 차이가 없습니까? 영생도 차이가 있습니다. 영생은, 영생 차이 있다 말은 다른 사람은 오래 사는데 좀 덜 산다 말이 아니고, 생명이라는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은 뭐이냐? 생명이라 하는 것은 능력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서 영생을 하고 있지마는 어떤 사람은 영생하되ㅡ이건 비유입니다ㅡ영생하되 그 영생하는 힘이 조그만한 파리 힘만한 생명 가지고 영생하고, 어떤 사람은 또 그 매미만한 그런 힘 가지고 영생하고, 어떤 사람은 강아지만한 생명 힘 가지고 영생하고, 어떤 사람은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영생하고 그 영생하는 생명의 차이도 많다 말이오.

하늘나라의 생명의 차이도 많고, 생명 차이가 많다는 말은 하늘나라의 실력 차이가 많다 말이오. 실력 차이도 많고 또 하늘나라의 행복을 가지고 갖춰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억만 행복을 다 구비해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한 가지 행복만 가지고 있어. 그러면 행복의 가지 수가 차이가 있다 말이오. 하늘의 행복의 가지 수가 차이 있어.

또, 생명력, 생명력의 그 차이가 있어. 하늘나라의 생명력의 차이, 또 행복의 차이가 하늘나라 없습니까 있습니까? 있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소 있다고 했소?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보면 “그 공로가 불타면 해를 보리니 저는 구원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이 그렇고, 공로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과 같이 공로가 하나도 불타지 안하고 다 보존돼 있으면 그 사람은 상을 받으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 행복의 차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행복이 차이 있고 하늘나라의 생명의 능력의 차이 있다. 이 차이 있는 것을 성경이 많이 말해. 차이 있습니다.

차이 많은데 내가 그것을 깨닫기를 행복의 차이가 있다, 생명의 그 능력의 차이가 있다 이랬는데, 이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이 신구약 성경 가운데 제일 요절입니다.

신구약 성경 육십육 권 가운데 제일 요절이 뭐이 요절이냐 하면 요한복음 3장 16절이 요절입니다. 요절인데 여게 대해서는 나는 깨닫지를 못했어. 깨닫지를 못했는데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며칠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좀 깨닫고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또 깨달았어.

뭐이냐? 하늘나라의 이 행복의 차이, 또 하늘나라의 생명력의 차이, 실력의 차이 이 실력의 차이가 있는 것은 그 원인이 뭐 연보를 얼마 했고, 또 뭣을 얼마 했고 뭐 전도를 얼마 했고 이랬는데 이 행복의 차이는 똘똘 뭉쳐서 여게 있구나 하는 그것을 제가 처음으로 발견을 했습니다.

어떻게? 발견한 것은 하늘나라의 행복의 차이는, 전부 은혜로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데 이 행복을 주심에 대해서 감사를 많이 한 사람 적게 한 사람 있는데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신 행복에 대해서 거게 마땅한, 거기에 해당되는, 거기에 해당되는 합당한 감사를 한 사람은 요 행복의 댓가를 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도 거두지 안하시고 고대로 다 두시겠고, 요게 대해서 감사를 하지 안한 사람은, 감사를 느껴서 감사하지 안한 사람은 요 행복에 대한 댓가를 내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다 거두시는구나.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이 그리스도의 심판은 어떤 심판이냐 하면은 불행을 주는 것이 그리스도 심판이 아니고 준 행복을 하나씩 둘씩 자꾸 거둔다.

거둬서 어떤 사람은, 똑 같이 줬는데, 행복도 꼭 같이 줬고, 또 생명력이라 하는 영생하는 생명력, 생명은 실력입니다. 능력입니다. 이래서 생명이라는 이 생명을 가리켜서 힘이라 이렇게 말해요. 생명을 힘이라고. 이래서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이 생명이라 하는 것을 생명이라 하지 않습니다. 힘이라 이랍니다, 힘이라. 생명을 힘이라고 번역했고 생명이라고 번역하지 안했어요.

생명도 그 차이가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을 깨닫고 나니까 ‘야, 하나님께서 모든 거 은혜로 주시는데,’ 자기가 행해 가지고서 행동 해 가지고서 상을 장만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네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했거든요. 또 “냉수 한 그릇도 떠 주면은 그 상을 잊지 않겠다” 했거든요. 냉수 떠 주고 행해 가지고 자꾸 이래 상을 장만하고, 행해 가지고 상을 장만하고 했는데 인생이 행하면 얼마나 행해서 상 장만하는 거, 인생이 뭐 일생 동안 참 바울같이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행한 그 상급을 말하기를, 행해 가지고 마련한 상급을 말하기를, 행해 가지고, 사람이 말이지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행해 가지고서 행한 상급을 장만한 그 상급의 뭉텅이를 만일 이 농짝만하다면, 농짝만하다면, 행해 가지고 연보도 하고 어짠다고 이래 행해 가지고 인간들이 행해 가지고서 장만한 상급 뭉텅이가 농짝만하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멸망치 않고 멸망치 않고 행복 준, 다, 멸망치 않는다 그 말은 행복 줬다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은 짝 없는 말씀은 없느니라 이랬는데 그 “짝 없는 말씀은 없느니라”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예? 누가 한번 읽어 봐요.

크게 한번 읽어 봐. 하나님 말씀 짝 없는 말씀이 하나도 없이 짝이 없다. 요거는 짝 없는 거 아니요? 요래 둘 하면 짝이 있지 안해요, 요래 짝? 짝 없는 말씀 없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은 다 짝이 있다.

한번 읽어 봐. 됐어. 짝이 없는 것이, 짝 없는 것이 없어, 짝 없는 것. 알겠습니까? 이라니까 자, “멸망하지 않고” 하는 그 말씀의 짝은 뭐입니까? 행복이라, 하나님이 행복 준다 그말이오. “멸망하지 않고” 하는 말씀의 짝은 행복 준다 그말이오. “영생 준다” 하는 그 말씀의 짝은 뭐입니까? 예? 영생 준다 하는 그 말씀의 짝은 뭐입니까? 뭐이요, 짝은? 영원한 멸망 아니요, 영원한 멸망? 이러니까, 사람이 열심히 노력을 해 가지고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했으니까 행한 대로 갚아 주는데 그 사람이 일생 동안 행했으니까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히 한 시도 놀지 안하고 한 현실도 허비하지 안하고 일생 동안을 자기가 주님 시키는 대로 행하고 행해 가지고 자꾸 이래 복을 장만하고 복을 장만했는데, 일생 동안 한 현실도 빠지지 안하고 행복을 장만한 그 행복이 만일 이 집채 무더기만하다고 하면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은혜로 주신 행복은 뭣만할까요? 농짝만할까요, 이 집채 무더기만할까요, 한국 땅 덩어리만할까요, 이 우주만할까요, 어떻습니까? 무한이라. 우주보다 커. 우주보다 커.

이러니까, 나는 말이요, 스위덴 물커라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성자인데 자주 입신을 잘 해요. 영계에 가 가지고서 영계도 돌아다녀 보고 자꾸 입신을 잘하는 사람인데 그분이 하늘나라에 가니까 말하기를 ‘네가 깜짝 인제 놀랠 일을 네가 세 가지 볼 것이다. 깜짝 놀랠 일을 세 가지 볼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앞으로 하늘나라 오면은 사람들이 깜짝 놀랠 세 가지를 볼 것이다’ 이랬는데, 그 세 가지를 본다 하고서 말은 안 해 주고 이랬는데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세상에서 참 저거는 못난 사람이고 천한 사람이다 했는데 못나고 천한 사람이 놀랠 만침 너무 높아져서 깜짝 놀랠 일이 생길 거다 이렇게 그거 하나 생각했고, 그거 하나 생각했고, 또 껍데기로 예수 잘 믿고 모두 성자라 성녀라 하는 사람보다도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아무도 둘도 셋도 모르게 숨어서 예수 믿었는데 그 사람이 참 예수를 잘 믿어서 그 사람의 상급이 크도록 깜짝 놀랠 것이 있을 것이다 모두 그런 걸로 생각해 봤지 다른 걸로 생각해 보지 안했어요.

○○○목사님 그때 집회할 때 말하기를 어떤 대부흥사가 그 사람이 참 입신을 했는데 가니까 상급이라고 모자가 있는데 아주 보니까 금면류관이 있더래요.

금면류관이 있는데 금면류관이 있어서 ‘아마 저 면류관은 나 줄라고 예비했는가 저 금면류관 내것이겠지. 내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큰 부흥사고 이러니까 금면류관 저거 내것일 거다.’ 이랬는데 그 천사가 말하기를, ‘저 면류관 저거 뉘 겁니까?’ `그거 네것 아니야.' 또 이라거든. `그러면 내 면류관 어데 있습니까?’ ‘또 가자.' 또 그보다 보니까, 그 뒤에 보니까 그만 좀 못한 것 또 면류관이 또 있더래요. 은 면류관이 있어서, 또 그것도 가니까 또 아니라. 나중에는 또 보니까 저 밑에 가니까, 밑에 밑에 내려가니까 이제 그 개터럭이, 개터럭이 가지고서 뭐 이래 벙거지를 하나 만들어 놨대. 개터럭이 벙거지. 개터럭이 벙거지 만들어 놨는데 ‘저거는 뉘겁니까?’ `그게 네것이야.’ 그게 그 부흥사의 것이라 하더래요.

그래서, 참 깜짝 놀래 가지고서 ‘그러면 아까 금면류관 그거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라니까 ‘너거 강단에 코 질질 흘리고 몸에 내음새가 나고, 오줌 똥도 잘 가리지도 못하고 병신이라 쩔룩쩔룩 절면서 만날 강단 앞에 거기서 엎드려 기도하는 할머니 계시지 안했느냐?’ ‘예.' `그 할머니 면류관이다. 네가 돌아다니면서 부흥사로 그렇게 은혜 끼치고 하니까 네 힘으로 하는 줄 아느냐? 그 할머니 기도로 가지고 네가 되는 것이지 네 힘으로 하나도 네가, 할머니 기도로 가지고 네가 돌아다니며 부흥사하니까 대접이나 잘 받고 있지 네 힘은 하나도 안 들였다.’ 이래서 그만 그 부흥사가 깜짝 놀랬대요.

그거 ○○○목사님이 여기 서부교회 집회할 때에 그렇게 말했지요? 그말 들었어요, 개털 모자? ‘개털 모자’ 들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거. 그때 ○○○목사 ‘개털 모자’ 들은 사람 손 들어 봐요. 우리 교인이 그동안에 다 죽어 버리고 이것뿐이가? 남은 사람 요뿐인가배, 그때 그 집회 참석한 사람이? 아마 거의 저 모두 김해 묘지에 가 있어요.

이랬는데, 내가 하나 새로 깨달은 것 있어요. ‘그게 아니다. 참 이 오묘한 이치가 있다.’ 그걸 떡 알고 나서 생각하니까 자꾸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그거야.

이제 하늘나라 가면 행복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셔 가지고서 하나님의 모든 부요와 행복을 다 내놓음으로써 우리에게 모든 불행을 다 대신 담당하시고 행복 주셨는데 우리에게 멸망하지 않고 행복을 주신, 멸망하지 않고 예수님이 대속으로 행복 주신 이 행복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이 행복으로 말하면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상을 만든 그 상을, 뭉텅이를 이 집채 무더기만하다면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은혜로 주신 이 행복은 이 지구 땅덩어리보다, 이 우주보다 더 크고 무한하게 큰데, 그렇츰 큰데 그걸 누가 차지하고 있는고? 그걸 누가 차지하는고? 그거 차지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되겠다.

행복되겠는데, 그걸 차지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되겠는데 그것은 누가 차지할꼬?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누가 차지하겠어? 댓가를 낸 사람이라야 차지하지 댓가 안 낸 사람은 도로 찾아요. 댓가 낸 사람이 차지하는데, 그걸 누가 차지할까요?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예? 감사하는 사람. 이라고 나서 내가 그 뒤에 또 생각하니까 성구가 증거를 해 준다 말이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은, 20장이가? 포도나무 일군 비유가 20장에 있나? 예. 거게 보면은 아침에 새벽부터 와 가지고서 일한 일군 있고, 낮에 온 일군있고, 오후에 온 일군 있고, 나중에 저 마칠 때, 마칠 때 돼서 온 일군 있고, 마칠 때 온 일군 있는데, 주인이 품군을, 품삯을 회계해 주기를 먼저 온 사람부터 주지 안하고 맨 뒤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준다 말이오. 품삯을 주고 먼저 온 사람 맨 뒤에 주니까, 같이 똑 같은 품삯을 주거든.

주니까 먼저 온 사람들이 불평을 하기를 ‘이 사람은 마지막에 와 가지고 찍해야 연장 자루 거머쥐었다가 놓았는데 하루 품삯 주고, 우리는 열두 시간을 꼭 일을 했는데 같은 품삯을 줍니까?’ 이라니까 주인이 있다 말하기를 ‘내것 가지고 너거 약속한 대로 너거 품만 받으면 됐지 내것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준다고 뭐, 왜 내것 가지고 선하게 쓰는데 네가 뭐 간섭할 게 뭐꼬? 네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갈 일이지. 내가 그 사람 일 하는데 외의 것 많이 줬다고 네게 무슨 상관 있뇨?’ 요래 놨는데, 이 성구 해석이 도무지 이해를 못 하고 지금 못 하고 이랬는데 그 뒤에 해석을 하기는 했어요. 해석은 하기는, 이거는, 그라니까 나중에 품을 받는 데에 먼저 온 사람들은 불평이 있고, ‘뭐 나는 적게 준다’ 불평이 있고, 자, 거게서 제일 감사 많이 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맨 마지막에 온 그 사람이 감사 많이 한 사람이라. 많이 한 사람이라.

그래서 그 뒤에 말씀하시기를 “먼저 된 자 나중되고 나중 된 자 먼저될 자 많이 있다” 요 말씀을 또 덧붙여서 결론을 지워놨거든. 이래서 설교는 그래 했어요, 설교는. ‘하나님 앞에는서 어짜든지 자기가 일하고 교만한 사람보다, 일하고 교만한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감사하는 사람이 상이 크다.’ 이래 가지고 해석을 했어. 조짜배기 해석을 했다 말이오. 그게 조짜배기, 인제 깨닫고 보니까 조짜배기 해석이라. 조짜배기 해석.

했는데, 이제 깨닫고 보니까 그게 아니라.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큰 축복을 주셨는데 이 축복을 말이지, 그 축복을 누운뱅이, 병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병신, 이거는 뭐 연보도 하나도 못 하고 전도도 하나도 하지도 못하고 주일도 지키려 옳게 오지도 못 하고 항상 누운뱅이로 있는데 그 누운뱅이가 ‘나에게, 나를 멸망 가운데서, 영원한 멸망 가운데 주님이 대신 멸망 받으시고 나를 주님의 그 영원한 지극히 큰 영원한 존귀와 부요를 나에게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해서, 그 사람이 감사를, 은혜에 대한 상당한 감사를 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우주보다 큰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을 그 사람이 차지했을 거라 말이오.

그 사람이 차지했어.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이 감사, 실감을 가지고, 실지로 실감을 느껴서 진정 어느 정도 실감을 느꼈으며 어느 정도 감사하느냐 이 감사하는 여기에 조화는 들었다. 감사하는 여기에 조화는 들었다. 하늘나라의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영광은 이 실지로 감사하는 이 실감의 감사 여게 달렸다.

여게 달렸다.

이러니까, 또 영생이라 하는 것도 영생을 주셨는데 그 영생에 대해서, 영생을 줬다 했는데 뭐 말하니까 ‘영생 주셨지’ 하지마는 영생 주신 그 영생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자기 그만 식중독에 걸려 가지고서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라.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라 도글도글도글 구불다가 이제 의사가 와 가지고서 치료를 해서 그만 그 아픈 게 나으니까 ‘감사합니다. 아이구 참 내가 죽을 뻔 했는데 살았으니 감사합니다.’ 그만침 감사도 일생 동안 영생 준 데 대해서 감사를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사람 있고, 영생 주신 데 대해서 참으로 그 댓가가 될 만침 ‘나에게 이렇게 참 영생을 주시다니요?’ 실감적으로 이렇게 감사한, 우리는 그걸 계산할 수가 없지마는 주님은 계산을 딱딱 할 거라 말이오. ‘너는 행복에 대한 감사를 얼마치를 했다, 너는 영생 줬는데 감사를 얼만치 했다.’ 이 영생과 행복 준 데 대해서 감사한 감사의 중량이 천인 만인 억만인이 다 차이가 있어서 굉장히 차이 있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야, 먼저된 자는 나중되고 나중된 자는 먼저 됐다.’ 사람들이 볼 때에, 사람 보기에 저 사람이 제일 행복되다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급도 장만하지 못한 그것이 행복은 제일 많이 가지고, 하늘나라의 실력은 제일 많이 가질 자가 되겠구나.’ 하는 이 비밀을 제가 조금 눈이 열려져서 깨달아졌습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하늘나라의 행복의 그 중량은 천층 만층입니다. 행복의 중량은 천층 만층입니다. 또 영생하는, 영생하는 생명의 실력도 천층 만층입니다. 생명의 실력도. 이런데, 이거 뭐인지 뭐 잘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모르는데, 이제 조는 사람들, 조는 사람에게는 더 졸도록, 조는 사람들에게 더 졸아지도록 내가 말해야 되겠어. 더 졸아지도록.

이 행복의, 행복의 차이는 천층 만층의 차이가 있겠다, 또 영생하는 생명의 실력도 천층 만층의 차이가 있겠다, 어떤 사람의 억억억억만 명의 실력을 보태도 한 사람의 실력을 당하지 못하겠다, 억억억억만 명의 행복을 똘똘 뭉쳐도 한 사람의 행복을 당하지 못하겠다, 아따 그 사람 행복스럽다, 참 행복스럽다, 실력도 있다, 행복스럽다. 이렇게 실력 제일 많고 행복 제일 많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저 우리 ○○○집사님? 누구겠습니까? 누구겠소? ○○○장로님? 믿는 사람? 틀렸어.

자, 누가 제일 하늘나라에 가 보니까 이제 행복이, 행복이 억억억억만의 일 가지고서 그 행복 가지고 사는 인간도 있고, 조그맨한 행복 가지고 사는 인간도 있고, 영생하기는 하지마는 실력이 모기 힘만한 그 힘 가지고서 영생하는 그런 자 있고, 어떤 사람은 하늘나라의 사람,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실력을 똘똘 다 뭉쳐도 그 한 사람 실력을 못 당하겠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똘똘 다 뭉쳐도 그 한 사람의 행복을 못 당하겠다. 이렇게 제일 행복스럽고 실력 많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요, 여기 여반에? 예, 백점. 감사 제일 많이 한 사람이 그때 제일 부자고 제일 실력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거는 나도 이제 깨달았어. 이제야 이거 깨달았어. 깨달았는데 20장 품군 비유에 보니까 확실하다 말이오. 거기 먼저 된 자 나중되고 나중 된 자 먼저된다 했거든. 사람 보기에 제일 실력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실력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분에게 뭐, 모두 다 우리에게 있어도 다 전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 연보한다 해도 다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 ‘아나, 또 연보 한번 해 봐라.’ 줘 가지고 당신에게 받아 가지고 한 것이지마는, 받아 가지고 한 것인데, 받아 가지고 한 그거 해 봤자 얼마나 많이 주고 얼마나 했겠습니까? 이랬는데 전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은 전부 뭐입니까? 생명도 축복도 전부 뭐입니까? 전부 은혜입니다. 알겠습니까? 전부 은혜 아니요? 전부 은혜라.

전부 은혜인데, 전부 은혜인 그 양반에게 대해서는 어떤 자가 제일 실력 있고 권위 있는 자냐 하면은 진심으로 감사 많이 한 그 사람이 실력가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늘나라에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진심으로 감사 제일 많이 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생명의 능력이 제일 강하고 큰 사람이 누구입니까? 진심으로 실감으로 실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감사 제일 많이 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제일, 제일 작은 부자, 하늘나라에 제일 작은 부자, 그거 뭐뭐 고통은 없지만. 하늘나라에 제일 작은 부자, 제일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제일 가난한 사람은 누가 제일 가난한 사람일까요? 감사가 제일 작은 사람이 제일 가난한 사람. 하늘나라에 실력이 제일 가난한 사람, 실력이 제일 작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늘나라에 실력이 제일 작은 사람 누구입니까? 감사 제일 적은 사람.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귀한 진리를 주셨습니다. 귀한 진리를 주셨어. 여러분들 귀한 진리를 들었어. 여러분들 놀래지지 안해? 양성원 학생들 놀래지지 안해? 예사지. 나는 놀래지고 지금 좋아 죽겠는데.

그래. 참 비밀이라! 하늘나라에는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 참, 가난한 자에게 믿음의 부요를 줘서 하나님 후사가 되게 했다고 말씀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이거 참, 어짜든지 실지로 실감을 가지고 실감을 많이 가져서 감사에 자지러져서 견디지 못하는 감사 많이 한 그 사람이 행복스러운 사람인데, 세상 것 많이 있고 이런 거 구비해 놓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하러 온 일군, 마태복음 20장에 읽어 봐요. 아침에 일찍 온 일군이 누군가? 아침에 일찍 온 일군이 모두 다 여기 목사님들 또 권사님들 모두 이런 분들 말이지, 이래 가지고 일을 많이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했으니까 하늘나라 내것이지’ 그 부흥사 모양으로, 또 ‘내가 연보도 많이 했는데' 이랬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이 영생 주신 데 대해서 진정 자지러지게 진정 감사해서 어짜든지 감사함이 하늘나라에 일등이면 그만 제일 부자요 제일 강한 자입니다. 감사가 적은 사람이 제일 가난하고 제일 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여게 대해서 그저 봉지는 뗐으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 얻는 여게 대해서 우리가 며칠 동안 좀 기도하면서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여게 대해서 실제로 자기가 실감을 느끼고 감사하는 이 사람이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주신 축복을 다 도로 뺏기지 말고 어서어서 죽기 전에 댓가를 다 치러 가지고서 하늘나라 가서 가난치 안하고 부자되고 하늘나라 가서 약하지 안하고 강한 자가 되도록 합시다.

자, 이걸 실지로 느껴서, 우리가 이거 안 느끼는 증거요. 왜 안 느끼는 증거인가? 자기 한 자리에 누웠는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예수를 안 믿어도 이거 예사로 같이 한 자리에 누워 자면서 그 죽은 송장인 줄 모르고 애가 타지지 안하면 그거 다 안 믿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한 자리에 누워 있는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예수 안 믿으니까, 그 안 믿으니까 지옥에서 지금 송장인데 그것을 느끼지 안하기 때문에 예사로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거 안 믿는 증거라. 통통 안 믿는 증거라. 우리가 이래 따져보고 저래 따져보면 안 믿는 증거라.

이 멸망치 않게 하고 영생 준 데 대해서 우리가 뭐 얼마나 막 감사해서 이 사실 깨달으면 뭐 세상에 뭐 딴거 할 게 뭐 있습니까? 멸망치 않으니까 이래도 저래도 문제가 뭐 있소? 멸망치 않게 해 주신다 했으니까 우리는 뭐 옆으로 뛰어도 모로 뛰어도 문제가 없다 말이오. 얼마나 튼튼합니까? 또 멸망치 않고 영생한다 했으니까 뭐 세상에 죽인다 하는 어떤 게 천만이 들어오면 무슨 소용 있겠소? 안 죽고 영생 시킨다는 거 이 사실을 믿으면은.

영생하는 데 죽을까 염려가 뭐 있겠습니까? 없다 말이오. 우리가 이 실감이 없어.

안 믿는 증거라.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는 사람이 되도록 금식도 하고 산기도도 하고 진정 실지로 실감으로 믿는 우리들이 되도록 이렇게 합시다.

자, 오늘 저녁에 그만 기도는 뒤에 하고 우리 찬송 좀 합시다. 이제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 이 얼마나 행복인지 오늘 땀이 버쩍 나고 기뻐 못 견디도록 막 손뼉 치면서 한번 해요. 이 인도하는 분도 말이요, 좀 힘있게 말이요. 이래 가지고서, 그뭐 책 안 봐도 다 알지 않아? 책 보면 도로 언제 거석하니 책 덮어 놓고, 다 외우지 안해요? 덮어 놓고 어짜든지 뭐 힘있게 자, 시작!

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님이여, 주님이여, 영생 주신 이 은혜를 진정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생 주신 은혜를 진정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영생 줬는데 영생을 주셨는데 영생 주신 데 대해서 감사를 못 했습니다. 영생 주신 데 감사를 못 하고, 아버지여 영생을 주신 것을 진심으로 내가 감사합니다. 영생 주신 걸 감사합니다. 멸망치 않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멸망치 않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영생 주신 걸 감사합니다. 멸망치 않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주님이여, 영원히 영원히 멸망치 않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멸망치 않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멸망치 않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생하게 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은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주신 대속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옵고 찬송함을 드립니다.

아버지여 이 사실을 이 무리들이 믿게 하시고 이 사실을 모든 무리에게 전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신 걸 감사합니다. 이는 이미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저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셔서 이 찬송을 여게서 했는데 밤새도록 하면 좋겠는데 우리 이웃에 좀 안면 방해가 될까 해서 그만 중단하고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이제, 오늘 저녁에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줬습니다. 하늘나라 가면 행복도 억억억억만 층 됩니다. 또 실력도 억억억억만 층이 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힘을 말합니다. 또 행복이라 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모든 구비한 행복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부요도 다 내셨고 존귀도 영광도 다 내놨습니다. 하나님이 부요 내놓았다는 거 물질 내놓은 것만 말한 거 아닙니다. 모든 부요를 다 내놨습니다. 내놓은 걸 우리에게 우리로 부요케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은혜로 주셨어.

제가 암만 세상에서 행함에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인간의 행함은 그까짓 것 집채 무더기같다고 하면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주보다도 큽니다. 무한히 큽니다. 이것은 어떤 자가 가질 것인가? 감사, 이 사실에, 이 은혜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 진정 감사를 깨닫고 느껴서 진정 감사하는 그 감사함을 가진 그 감사의 정도와 감사의 중량에 따라서 이 은혜는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기 때문에, 가까운 산에 가면은 안 될 것이고 어짜든지 암만 고함 질러도 안 들릴 데 가 가지고서 이 찬송을 하십시오.

자꾸 찬송하면,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 얻는다는 이 사실을 자꾸 찬송할 때에 우리 속에 배어 들어가서 우리 속에 이 영생 이 멸망치 않는 것이 우리에게 급해서 우리가 멸망치 않는 은혜에 감사의 뭉텅이가 될 것이고 은혜의 뭉텅이가 될 것이고 영생 뭉텅이가 자기가 될 때에 자기는 뛰고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저녁에 시작했으니까 며칠 동안 이 은혜에 충만키를 위해서 각자들이 그저 힘껏 찬송해서 자꾸 찬송을 몇천 번 하십시오. 며칠 계속해서 하십시오. 하면은 우리가 여게 대해서 이 은혜에 실감이 있어서 그래도 우리가 이제 지금이라도 이 은혜에 대해서 댓가를, 감사의 댓가를 내서 우리가 여게 대해서 가난한 자가 되지 안하고 부강한 자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는 감사의 댓가라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천국은」 말해 놓고 그렇게 말했어. 천국은 마치 비유하는데, 품군 비유에 천국에 천국 비유인데 거게 보면은 누가 제일 앞섰습니까? 그 품군 가운데서 누가 제일 주인이 좋아하고 칭찬하고, 제일 칭찬하고 제일 크다고 하고서 누구를 제일 우대했습니까? 제일 누구 우대했소? 일 많이 한 사람입니까? 감사 많이 한 사람입니다. 요것을 “천국은 마치 이렇다” 하고서 비유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감사가 없는 이것이 참 이거 마귀 이놈에게 꼬여 가지고서 우리는 왕창 도둑 다 맞았습니다. 이러니까 다시 이 은혜를 깨달아서 감사하는 우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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