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에 대해서

 

1986. 7. 9. 수밤

 

본문:요한복음 3장 16절∼21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은 인류 시조 때부터 타락한 천사 그 악령을 인해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범하여 다 죽었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정죄받아서 사망 아래에 있습니다.

사람이 땅위에 혹, 그때는 구백여 세도 살고 지금은 뭐 그저 많이 살면 백여 세, 그리 안 하면 육칠십 세, 또 몇 살, 몇 달, 며칠 이렇게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범죄한 후에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것이 다 하나님 앞에 사형을 받은 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인데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사람 사람이 달라서 긴 시간을 거쳐서 죽습니다.

사람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에서 죽음을 벗고 살아나는 것은 문제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세 가지 면으로 범죄한 이 죄를 벗어야 살아날 수 있는 일이 하나 됩니다. 그러면 그 죄는 세 가지 죄인데 그거는 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고. 이 세 가지 죄를 벗어야 살아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법을 세워 놓은 그 법에 하나에도 저촉되지 아니하고 그 법을 완전히 다 이행을 해야 살아나게 되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이 화친을 이루어야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가지고 땅위에 오셔서 신인양성일위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살게 하는 이 공로를 설정했습니다.

그런고로,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하신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죽음을 벗어날 수 없고 생명을 얻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이종교들이 다 말하고 있지마는 그것은 성경에 보면 다 거짓말입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는 길이 없다고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으면 즉시 그 영은 살아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이 살아나면 그다음부터 살아난 영과 성령과 진리가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죽어 있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살리려고 이 구원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이 멸망에서 살아나는 것이고 하나는 이 육이 멸망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육이라고 하면은 혹 사람들은 고기덩어리라고만 생각을 하지마는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합해서 육이라고 그렇게 성경에서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보면은 사람도 혼이 있고 짐승도 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이 있지마는 짐승은 영이 없다고 했습니다.

영은 사람뿐이지 짐승은 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사람같이 영은 받지 못했지마는 혼과 몸은 받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죽으면 그 혼이 하늘로 가고 짐승은 죽으면 그 혼이 땅으로 간다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 혼이 곧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도 혼이 있고 사람도 혼이 있는 그것이 짐승도 사람 같은 육이 있고 또 사람도 육이 있기 때문에 육은 사람은 아주 좀 고급적이고 짐승은 저급적인 것만 다르지 짐승도 그 감각이라든지 지각이라든지 감정이라든지 또 모든 이성 비판 하는 이성같은 그런 것들이 짐승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비해서 미치지 못하는 그런 저급의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이 둘인 것은 영 죽음이 있고 육 죽음이 있습니다. 육 죽음이라면 곧 마음과 몸이 죽는 것을 가리켜서 육 죽음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죽을 때에는 영은 단번에 죽었고, 그래서 사람이 태어날 때에 그 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즉시로, 하나님이 지으실 때는 죽지 안했는데 지으신 즉시로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면 즉시 그 선조의 정죄받은 그 정죄에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즉시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영이 됩니다. 그러면 죽은 영이 되나 그 육은 죽지 안하고 모태에서 나와 가지고 세상에서 몇 해라도 살다가 그다음에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은 영이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영도 영원히 죽어 있고, 또 마음도 영원히 죽어 있고, 몸도 영원히 죽어 있습니다. 죽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이 돼야 그것이 살지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지 안한 그것은 아무리 강하고 크고 억세다 할지라도 진리와 연결되지 안했으니까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 중에는 영과 육이 다 죽어 있는 사람 있고 그 가운데는 영은 살아나고 육만 죽어 있는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알게 살아나지 안하고 하나님 편에서 택한 자들만 살리시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모릅니다. 언제 살아나는고 하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이 피공로를 전할 때에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아직 영이 살아나지 안한 사람의 그 영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읍시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면 그 전도하는 그 전도는 우리가 전하는 그뿐인 줄 알아도 거게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같이 하기 때문에 그 전도를 통해서 죽은 영이 살아날 때가 되면은 그때 살아납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도 육은 아직까지 죽어 있기 때문에 믿는 행위는 시작하지를 못합니다. 그라다가 영이 살아난 지 얼마가 지나면은 살아난 영이 그 속에서 악령 악성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대내전, 자기 안에서 전쟁을 일으켜 가지고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아무래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마음에 여러가지 갈증과 공허감이 생겨져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이 중생된 지 혹 며칠 만에 혹 몇 해 만에 혹 십여 년 후에 그 육이 살아나는 그런 일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제 경험으로 보면은 제가 열세 살 먹어서 학교 가다가 전도받아 가지고 그때부터 지금 생각하면 중생된 것이 분명합니다. 믿지는 안하면서 어짠가 내 속에는 그 믿는다는 그 문제가 암만 잊어 버릴라고 해도 자꾸 떠올라서 문제가 생겨져서 오히려 그 반항심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핍박을 많이 할수록 내 속에서는 예수를 믿고 싶은 욕망과 그 미련이 자꾸 내 속에는 생겨져 가지고 스물다섯 살 먹어서 예수 믿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영이 중생된 지 직후에 그 육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오랜 후에 육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택한 사람이 아닌 사람은 우리가 알면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해 봤자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신 것은 택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대속했지 사람이라고 다 위해서 대속한 것이 아닙니다.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걸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시고 모든 존재들을 보존도 하시고 관리 섭리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앞에는 영이 죽어 있고 육도 죽어 있고 영육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고 또 영은 살아나도 육은 살아나지 못해서 죽어 있는 그런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 도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하며 이래 전하는 것은 그것은 죽은 영을 중생시키기 위해서 전하는 것이요, 또 중생된 그 영의 육체가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 그 사람이 예수님 믿기를 시작한다고 하면, 또 그 사람이 예수를 믿겠다고 대답을 한다고 하면 벌써 그것도 육이 살아나기 시작한 증거입니다.

육의 살아나는 이 구원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 그 사람이 끝날 때까지 그 심신으로 된 그 육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이 육이 완전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땅위에 하나님이 둬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 가십니다. 이 준비하는 죄악이 관영한 이 땅위에 둘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계로 옮겨갑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이 아무리 성자라 할지라도 아직까지 그 사람이 살아날 부분이 있고 회개할 부분이 있고 고칠 부분이 있기 때문에 땅위에 머물러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영원한 멸망을 받은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든지 어떻게 하든지 해 가지고서 내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의 구원을 영이 받게 된 여게 대해서 진정 그 감사와 기쁨이 우리 속에 있고 감사해야 됩니다.

또 우리 이 심신이 다문 얼마라도 성화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는 이 일이 있으면 이는 뭐 우주로써 비할 수 없는 참 큰 축복이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감사도 해야 되고 기뻐도 해야 되고 또 이 감사와 기쁨의 그 실지의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우리가 중생되고 육이 살아나는 성화의 구원을 자꾸 생각하고 또 이 구원을 이루게 하는 성경을 읽고 또 설교 말씀을 자꾸 듣고 새김질하고 또 하나님에게 이 구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이라면 우리를 꾀우고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는 이 원수가 내게서 서서히 벗겨져서 쫓겨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면이 변화됩니다.

기쁨도 변화되고 슬픔도 변화되고 소원도 변화되고 변화가 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무슨 불의로나 또 세상 이런 것 저런 것으로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는 그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님의 대속의 이 피공로와 또 자기가 구원 얻은 것과 또 성경 말씀과 설교 말씀과 기도를 하게 되면 그런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세상적인 그런 모든 행복감과 모든 기쁨과 모든 그 평강이 그것이 슬슬 없어지게 됩니다. 그거 여러분들이 그래 보십시오.

그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아주 세상 일로 기쁘고 즐거워서 견디지 못할 만한 그런 감사와 기쁨이 있었던 것도 성경을 자꾸 읽고 기도하고 또 내 구원의 대속도 생각하고 선택도 생각하고 이것을 생각을 하면은 그런 기쁨 그런 것이, 마치 그림자가 있다가서 빛이 오면은 이 그림자가 다 물러가는 것처럼 그런 것이 다 물러가 버립니다.

이래서 금방 그 기뻐 즐거워하던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 일로 이것으로 기쁘다 즐겁다 해 봐야 아무 맛이 없습니다. 생각하면은 참 그것으로서 기뻐했던 그것이 좀 우스꽝스럽게 생각이 되지고 그런 모든 세상에 속한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행복감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아주 없어집니다.

이것을 이래서 야고보서 1장 9절 이하에 보면 그런 말씀했습니다. “높은 자는 낮은 것으로 자랑한다” 이 세상 걸 가지고서 아주 높아졌던 그런 사람이 성경을 읽고 구원 얻은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이까짓 것 가지고 내가 공연히 뭐 된 줄 알고 기뻐하고 좋아했구나. 이건 참 가치 없는 것이다.’ 이래서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가치 없다는 걸 생각하기 때문에 높은 사람이 푹 낮아집니다.

또 이 대속을 생각하면 세상적의 것이 없던 사람이 자기는 아주 희망 없는 못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 대속을 생각하면은 낮은 사람이 자기도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유망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영이 구원 얻은 것이라든지 이 심신이 영생으로 구원 얻기 시작한 것이라든지 이 마귀와 죄를 벗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영생을 가지게 된 이 구원은 이거는 참 말로 할 수 없는 이런 기쁨과 즐거움으로서, 원수에게 고문과 고형을 당하는 그 가운데서도 기뻐했고, 사자구덩이 속에서도 기뻐했고, 불 속에서도 기뻐하고 어데든지 이 구원을 생각할 때에 구원으로 말미암은 이 기쁨은 세상 무엇이 없앨 수 없습니다. 이런 기쁨이 우리에게 가득 차게 됩니다.

가득 차게 되고, 이 세상에 속한 세상의 것에 욕심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그 가치로 여기는 것이라든지 뭐 행복감이라든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 것을 자기가 깨닫기 때문에 사람이 완전히 변화됩니다.

그라면, 악령 악성 악습의 이것이 물러가고 땅의 것으로 행복감을 가진 사람이 하늘의 것으로 행복을 가지게 되고, 땅의 것에 소망과 소욕을 가진 사람이 하늘의 것으로 소욕과 소망을 가지게 되고 없어질 모든 그 언행심사의 행동이 없어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하늘나라의 영생에 속한 완전한 언행심사의 사람으로 점점 이렇게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기도하고 느끼고 하면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된 이 구원이 자꾸 깨달아지고 생각돼 가지고서 기쁘고 즐거운데, 그저 죽음도 조금도 내 기쁨을 내 평강을 해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데 우리가 생각을 안 하고 세상 것만 생각하면은 세상 것으로만 가득 차지 여게 대한 욕망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기쁨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면은 그 사람 구원 없는 사람이오. 기쁨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고, 슬픔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고, 소원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고, 또 소욕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고, 부러운 것이 바꾸어져 있지 안하고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은 그런 희로애락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영만 중생했지 그 심신이 이 구원을 느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구원도 감사한 줄 모르고 또 죽어 있는 사람도 죽어 있는 줄을 모릅니다.

이래서, 자꾸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생각하면 없어질 땅의 것을 똑똑히 알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가치로 여기지 안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것만이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그 사람이 육체가 죽는 것은 보고서 슬퍼하지 안하고 그 심신이 구원 얻지 못하고 죽어 있는 걸 볼 때에 슬퍼하고 통곡하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육신 죽은 것 보고는 예수 믿은 후에 눈물을 하나도 흘리지 안하고 원통한 생각만 혹 가지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내가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그 사람이 살아나지 못하고 그렇게 멸망 가운데서 그대로 멸망으로 계속됐다’ 하는 걸 생각할 때에 원통해서 마음에 원통한 감은 생기지마는 육 죽음에 대해서 이미 죽을 것이기 때문에 슬퍼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믿지 않는 그 친구, 믿지 않는 친구가 죽어 있는 것, 믿지 않는 부모가 죽어 있는 것, 믿지 않는 형제가 죽어 있는 것,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죽어 있는 그 죽어 있는 죽음이 육이 죽는 것을 내가 보고 죽음을 느끼는 것보다 이 심신이 예수님의 피를 힘입지 못해서 죽고 있는, 그 영이 죽어 있고 육이 죽고 있는, 그 죽어 있는 그 죽음을 자기가 느끼는 그 느낌이 육이 죽는 것만침 느끼면 그 사람이 믿는 것이 육의 가치와 영의 가치와, 금생의 생명과 죽음과 영원한 죽음과 생명을 같이 평가하는 그런 정도로 믿는 사람이고, 실상 가치대로, 육이 죽는 것은 아무래도 죽을 것이요 잠깐 있다가 갈 것이기 때문에 이미 이러나 저러나 죽을 것이지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안해서 이 심신이 죽는 이것은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힘을 씁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친척이나 뭐 그런 아주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예수 믿지 안하면은 그 사람이 죽어 있는 그 감을 가져서 애터져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뭐 욕을 얻어먹으면서, 또 매를 맞으면서, 조롱을 받으면서도 자꾸 믿는 전도를 하고 벌써 그 사람이 이랬든지 저랬든지 숨이 딸칵 끊어질 때에 대해서는 다시, 죽는 데 대해서는 거게 대해서 그렇게 원통하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안하면 그 사람이 영원히 멸망을 받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 이 말씀을 했지마는 이 말씀을 우리가 어느 정도 실지로 믿느냐, 실감으로 믿느냐 하는 거게서 그 사람의 행동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이 예수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고 예수님 믿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다 영원한 사망에 빠져서 지금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숨 끊어지면 그만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 두 가지를 보고서 평가하기를 육체가 죽는 그것보다 예수님 믿지 안해서 그 심신이 영원한 사망 속에 빠져 있는 그 빠져 있음이 더 자기에게 느껴지는 그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가깝다는 그 가족이 예수 믿지 않는 데에 거게 대해서 마음이 안타까와서 하지, 육이 죽는 거게 대해서는 그렇게 문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으면 저거는 할 수 없는 것이고 죽는 것이고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하지 안하면 안 된다는 그걸 느끼기 때문에 그 마음에 안타까와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문명 나라 그 부국을 버리고 야만국에 가 가지고도 전하게 되고 또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 거게서는 안 믿는 모든 다른 이종교들이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 가 복음 전하면 다 죽임을 당할 줄 알지만 죽임을 당해도 그 죽어 있는 그 사람의, 영원한 죽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죽음에 있는 그 사람을 보고서 자기가 구출하지 안하고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게 대해서 실감을 느끼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주 빈약하기 때문에 안 믿는, 예를 들어서 자기에 안 믿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고 하면은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성경대로 말하면 멸망 가운데 지금 죽음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만 그대로 숨 끊어지면 영원한 멸망입니다. 사람이 또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압니까? 이러니까 자기의 부모나 형제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있는데 믿지 안하고 있는 부모나 형제를 지금 육신이 죽을라고 호독거리는 그것보다 더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사실을, 그것을 느끼지 않는 그런 사람은 그것은 성경 말씀을 어누리하고 바로 믿지 않는 거게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바로 믿는 사람은 자기의 뭐 자녀라든지 또 자기의 무슨 참 자기가 가까운 무슨 형제간이라든지 친척이라든지 친구라든지 그런 사람이 예수 믿지 않는 거게 대해서 제일 근심 걱정이 많고 마음에 걱정이 되기 때문에 믿도록 전도해서 구원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자기에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구원할라고 뭐 그거 오며 가면서 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구원되기까지 하나님 앞에 쉬지 안하고 기도하고 또 거기서 복음을 전하고 뭐 복음 전하다가서 부모 형제에게도 맞은 사람도 많고, 그거 참 뭐, 제가 거창서 아는 데만 해도 뼈가 뿔라지고 또 갈빗대가 몇 개 뿔라지고 또 벌써 참 기절해서 죽었다가서 살아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믿지 않는 남편이나 이런 사람들이 멸망 가운데 있는 그것을 확실히 성경을 믿는 사람은 육체가 죽는 것보다 그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이 보기가 더 마음에 기막히기 때문에 다 생명을 무릅쓰고 자기가 죽어도, 자기는 이미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그 멸망하는 그 사람을 구원하지 안할 수 없어서 자기가 다 죽고, 가정 순교한 사람 많습니다. 가정에서 믿지 않는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고 그 가정을 구원하는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뭐 이 사회에서 순교당한 게 아니고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가지고서 그 병신이 되고 이래 가지고서, 뭐 사람이 보면은 그까짓 것 이혼해 버리면 그만이고 떠나 버리면 그만이지마는 그 실지로 자기와 관계 가진 그 사람이 죽어 있는 이 사실을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믿기 때문에 거게서 다 죽어 제물이 되고 참 뭐 남편에게 맞아 죽은 순교자 많습니다.

어제도 제가 그런 소문을 들었는데, 거게 어떤 분 그의 부인이 그 남편이 어떻게 핍박을 하고 아주 참 매도 뭐 수없이 맞았고 그 고형당한 걸 말하면 말할 수 없습니다. 이랬는데 그래도 그 남편 위해서 기도하고 그저 쉬지 않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하니까 이제 그 남편이 교회에 나와 가지고서 새벽기도도 잘 나오고 예수를 잘 믿습니다, 아주 주일에 한 번도 안 빼고 새벽기도 꼭 나옵니다 하는 그런 것을 요번 교역자회 때에 내가 그런 말을 듣고서 기쁨이 됐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말씀하신 예수 믿지 안하면 영원한 멸망이요, 또 믿으면 영생되는데 안 믿는 이 사람이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을 우리가 실감으로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어누리하는 데에서 생겨진 고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도 자꾸 기도하면 이게 소생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서, ‘왜 나는’ 지금 이 시간에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데 이 시간 하나님이 영혼을 부르면 그만 가야 안 됩니까? 사람이 젊다고 뭐 그 사람 오래 살리라고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죽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의 종말 시간은 모르는데 이 시간이라도 그 사람이 그만 끝이 나 버리면 다시는 영원한 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멸망 가운데서 죽는 것 아닙니까? 이런데, 그러면 이 시간이 끝일란지 뭐 몇십 년 살란지 모르지마는 이 시간에도 끝날란지 모르니 이 시간에 다시 지나보내면 이 사람은 이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할 수 없다 하는 이런 실감이 우리에게 생겨지지 안 하니까, 영원한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그 영원한 송장, 영원히 죽어 있는 영원한 송장을 거머 안고 드러눕고 영원한 송장하고서 뭐 요리집에 가고 또 둘이 동행하고 이렇게 뭐 의논하고 한 집에 사는 이것이, 그러면 그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그 사람이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 있다고 성경은 말했는데 성경이 거짓말이냐, 네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그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사실을 네가 느끼지 못하도록 마귀란 놈이 자꾸 미혹을 줘 가지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하는 이것을 우리가 판단해 봐야 됩니다. 느끼지 못해서 우리가 고장이 나 가지고서 그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안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누리가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이 그 멸망 가운데에 빠져 있는 그것이 우리 마음에 실감이 되어지도록 자꾸 우리는 애를 써야 됩니다. 우리가 자꾸 믿을라고 애를 써야 믿어지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꾸 실감을 가질라고, 따져 보십시오. 성경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 있다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인가?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거짓말인가? 자꾸 따지고 생각해 봐요.

생각해 봐서, 과연 육의 생명보다도 그 생명이 더 큰 것인데 내가 현재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지금 깔딱깔딱하며 지금 곧 숨이 넘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옆에서 살릴 수 있는,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나만 힘을 쓰고서 수고하면은 그 죽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그런 기능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람 죽는 것을 보고 있다고 하면은 내가, 나만 힘 쓰면 살릴 터인데 살리지 안하고 그대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대로 두고 있다 하면은 우리가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자기 마음에 평안하며 마음에 가책이 되지 안하며 그 고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도 이거는 더 실제로 그런데, 이거는 더 실제로 그런데 우리가 왜 이 실감이 우리에게 없느냐? 이것이 악령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사실인데 그 사실이 그렇게 어누리돼 가지고서 그렇다는 말에서 지내져 버리고 말고 그렇게 실감이 없는 그만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실제로, 실제로 믿는 그 믿음이 그렇게 희박해서 아주 어누리하고서 말뿐이요 생각뿐이지 실지로 믿지 않는다 하는 그 증거입니다.

이러니까, 그러니 우리가 기뻐할 것도 막 뛰고 굴리면서 못 견딜 만치 기쁠 것인데 기쁨도 우리에게 없지 또 말할 수 없이 울고 슬퍼해야 될 터인데 그런 슬픔도 없지 참 막 생명을 내대고 욕심을 부려야 될 것은 그까짓 것 가치 없는 걸로 집어 던져 버리고, 실상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은 그거 취하면 화를 취하는 것인데 화가 되는 그런 거는 또 못 취해서 야단을 지기고 이러니까 정 거꾸로 되니 이게 마귀에게 우리가 미혹받아 가지고 완전히 우리가 환장을 한 것이고, 완전히 우리가 변질돼 가지고 완전히 정신이 이상이 돼 가지고 완전히 그 미쳐진 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말하기를 술취한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 취한 자라. 그러면 정상인 그런 비판과 평가를 가지지 못한 자라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 예를 들면은 자기 믿지 않는 그 남편이 곧 육체가 지금 죽는 그것보다, 육체 죽는 그것은 뭐 아무래도 한번 죽을 것이지마는 육체 죽는 그것은 이미 백 살 먹어도 백 한 살 되면 죽을 것이고 하니까 죽을 것이지마는 영혼이 구원을 얻어야 될 터인데 이 영혼이 구원 얻지 못하고 그만 구원 얻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다시 그 기회 놓치면 살 수 없는 것이니까 영원한 멸망, 영원한 멸망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데 구출하지 안하고 멸망 가운데 이와 같이 빠뜨려 놓고 있는 이것이 내게 실감이 느껴지지 안한 이 강퍅한 마음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가 되도록, 믿지 않는 남편을, 믿지 않는 아내를 자기가, 바로 영원히 죽어 있는 멸망받고 있는 그 송장과 자기와 함께 있으니 자기가 애를 쓰면 살려낼 터인데, 자기가 무슨 애를 쓰면 살려낼 터인데 그 살려내는 전도를 할라고 하면은 박해가 있어서 뚜드려 맞는다든지 이혼을 당한다든지 또 어려움 있으면은 그만 어려움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전도하지 안하고 멸망 가운데 빠뜨리는 그것이 내가 성경대로 따져보면은 비정상이라 그말이오.

그거 내가 믿어지지 안하고 실지로 느껴지지 안했기 때문에 내가 위로를 받고 그래도 안심하고 있는 것이지 사실상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 사실을 자기가 확실히 사실로 믿는다고 하면은 우리는 견디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면 성경에는 지금 안 믿는 그 사람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 지금 후덕거리고 있기 때문에 그걸 내가 건져내면 삽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하는 것은 네가 땅에서도 멸망 받고 있는 사람을 건져내면 그 사람은 하늘에서도 영생으로 건져나올 수 있고 그 사람을 던져두면은 영원히 멸망받는다 하는 그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16장에도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것은 육체가 죽는 것, 육체의 이 죽어서 송장되는 것, 육체가 죽어 송장되면 울고 뭐 야단을 지기고 뭐 참 견디지 못하게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슬퍼하는데 육의 죽음의 슬픔보다도 예수 믿지 안하는 영원한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이 슬픔이 그 중량이 같은 게 아니고, 그 중량이 같은 게 아니고 이 영원한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이 중량이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우리가 육의 죽는 데 대해서 만일 슬퍼하는 것이 하나라면 여게 영원한 죽음에 대해서는 슬퍼함이 한 십 배나 백 배나 더 슬퍼함이 커야 될 터인데 우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생각이 이래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것을 이렇게 크다고 말하는데 우리 생각은 아주 이렇게 아주 뭐 이거는 예사로이 장난삼아 그저 그 말뿐인 걸로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자, 하나님 말씀이 틀려서 우리가,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틀렸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고쳐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리지 안하면 우리를 고쳐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중대성이 육체의 죽음보다도 예수 믿지 안해서 영원한 멸망이라는 이 멸망은 비교할 수 없는 그게 크다고 했으니까 성경은 크다 하는데 우리는 아주 그것은 사소하게 여깁니다.

오늘 지금 여게 있는 사람들이 다 여러분들이 자기 부모 형제 자매나 그 친척이 지금 무슨 사고가 났든지 무슨 병이 들어서 꼴막거려 가지고 죽든지 안 되면 늙어서 죽는 거야 다 살고 죽는 거 아닙니까, 뭐? 이래도 그 육체의 죽음이 지금 닥쳐서 그 생명이 끝나는 그런 지경이 되면 다 눈물 흘리고 울면서 뭐 야단이 날 것입니다.

야단이 나는데 그보다, 예수 믿지 안해서 멸망받고 있는 거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중대한 일인데, 그러면 이 시간에 숨 떠 버리면 다시는 구출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줄 던지라, 생명줄 던지라, 저 지금 저 깊은 데로 멀리 들어가니까 다시 건질 수 없도록 지금 빠져 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찬송한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잘못된 게 아니고 우리가 성경과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안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돼 그런 것입니다. 잘못돼 그런 것은, 그러면 우리가 그 멸망 가운데 있는 걸, 멸망 가운데 있는 부모, 안 믿는 부모, 안 믿는 남편, 안 믿는 아내, 안 믿는 형제, 안 믿는 친구 그것을 보고서 마음에 예사롭게 이 육체가 병들어 죽는 것만침 느끼지 안하고 있는 그것이 우리에게 고장입니까, 그렇게 육체의 죽음은 강하게 느껴서 슬퍼하지마는 영원한 멸망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슬픔을 느끼지 안하고 있는 이것이 우리가 느끼지 안한 이게 정상입니까, 느끼지 안하고 있는 이게 비정상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느끼지 안하고 있는 것이 비정상입니까, 정상입니까? 다 예수 믿는 사람 쳐 놓고 믿는 사람은 자기 가까운 사람이 예수 믿지 안하면 그래 실실 지내지 안 합니다. 지내지 안해요. 믿기 전에는 자기가 죽든지 어짜든지 그 믿는 그것부터 해결하고 그래도 가까운 사람 멸망에서 구출하고 난 다음에 숨을 쉬지 그전에는 숨을 안 쉬는 것입니다. 다 그래요.

저도 믿지 않는 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버지의 안 믿고 있는 그것이 곧 육신이 죽어서 지금 슬퍼하는 그거 요량하면 몇십 배 내가 더 슬퍼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마음이 놓여지지 안하고 잊어 버릴 시간 없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이래 가지고서 구출했습니다.

제 장형이 믿지 안했는데 그 믿지 않는 그 장형을 내가 그 거창 가도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를 안했습니다. 나와 가지고 그 장형이 나한테 와 가지고 왔느냐고 해도 차 안에서 내려가지도 안했습니다. 내려가지도 안하고 그라면서 그 안 믿는 데 서로 대립이 되고 원수된다는 그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그라고 늘 계속해서 그를 참 구출하기 위해서 마음에 안타까와 견디지 못했는데 한번은 폐병이 걸렸어. 폐병이 들려 가지고서 이제 희망이 없으니까 한번 나한테 왔습니다.

그 왔을 때 그때 제가 같이 겸상해서 하면서 폐병 앓는 그분에게 위로 주기 위해서, 위로 주기 위해서 내가 같이, 먹는 것을 같이 먹고 같이 이래 그분 먹던 것을 내가 먹고 자꾸 이래 이라면서, 이 병이라 하는 것은 신앙을 침노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이고 그래 가지고서 그때 제가 여게서 약도 몇 달 동안도 또 보냈고, 또 양도 한 마리 그때ㅡ지금은 뭐 경제가, 그때는 어려웠어요.ㅡ한 마리 사서 보내고 이래 가지고서 예수 믿기 시작해 가지고서 예수를 잘 믿고 세상을 떴습니다. 제 가까운 친척으로서는 예수 안 믿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도 보니까 그렇습디다. 안 믿는 그 친척이 육신이 죽는 그 죽음을 느끼는 그 슬픔에 비유가 되지 않는 그런 슬픔에 그 느낌을 가지고 그 애타하는 데에서 다 자기 가까운 데서부터 구원을 얻어서 이루어 나가고 있지 그런 아무 느낌 없이 뭐, ‘저는 지금 아직 젊고 지금 돈 잘 벌고, 우리 남편은 젊고 돈 잘 벌고 저래 있으니까 저 지금 살아 있다.’ 하고서 번들번들 산 사람으로 보는 그런 사람은 그 남편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겉어머리는 그래도 속으로는 저 죽은 송장을, 지금 송장을 뻐들뜨리는 것보다도 마음을 더 아픈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이요, 참 죽었다 하는 걸 믿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라야 노력하는 그 노력이 믿음의 노력이기 때문에 거기서 효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밤에는 우리가 우리 마음이 강퍅해서 지금 육체의 죽는 것보다 그 영혼이 예수 믿지 안해서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은 그로 비교할 수 없는 참 기막히는 슬픈 일이요 기막히는 일인데 그것만치도 느끼지 안하는 그만침 우리 마음이 강퍅해져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회개를 해서, 자기의 가까운 친척 가운데에 믿지 않는 그 친척이 있으면 그 친척이 곧 육체가 죽어 가지고서 지금 숨이 떨어져서 송장되는, 곧 죽어가고 있는 그것보다도 더 강하게 내 마음에 느껴져서 그 죽음을 보고서는 견딜 수 없는 요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자꾸 거게 대해서 기도하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지지 안하면 그 가족 구원도 안 될 뿐 아니라 그게 되어지지 안하면 제가 믿는다는 것이 다 거짓부리입니다. 안 믿으면 멸망받고 믿으면 영생한다는 것이 다 거짓부리요.

그렇게 느껴지는 그것을 느끼는 그것이 있어야 자기 구원도 되고, 이렇게 영생 받은 사람은, 영생을 확실히 알고 영생을 받은 사람은 자기 육체의 그 생명을 위협하고 뭐 고문과 고형이 있고 육체를 어떻게 생명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육체의 생명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예수 믿는 일을 부인하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참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못 하는데 어려운 일 있으면 다 예수 믿는 것 척척 버리고, 육체의 생명은 중하게 여기지마는, 예수 버려 버리면, 예수 버리면 다 영원히 죽는 것 아닙니까? 여게 대해서는 그렇게 죽는 감을 느끼지 안하는 그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것이 우리에게 확실히 알 수 있는 요 증표이니까 자기 믿지 않는 남편, 믿지 않는 아내, 믿지 않는 형, 동생, 믿지 않는 뭐 가까운 친구라면 친구, 우리가 또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자기가 죽어서 마음에 죽어서 안타깝다 할 사람이 그렇게 많이 없습니다. 많이 없어요. 그저 뭐 자기 부모, 형제, 참 가까운 친구 몇 사람이지 그렇게 많지는 안해.

자기가 그만침 육체가 그 사람이 죽어서 마음에 슬퍼서 견딜 수 없는, 그 견딜 수 없는 그 사람의 영혼이 지금 구원 얻지 못하고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걸 보고서 그만침 마음에 아픔의 느낌이 없는 그것은 우리가 영생의 구원 멸망이라 하는 걸 믿지 않는 증거요.

믿지 않는 증거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회개하고서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생겨지기까지 우리는 기도하고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해 보면은 우리에게는 이 마귀란 놈이 벗겨지고 자꾸 이 녹이 벗겨지고 이 마귀가 벗겨지니 강퍅이 자꾸 완패가 벗겨지고 벗겨지고 이라면은 우리 속에 그 실감이, 사실이 실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반사 선생님들도 자신이 이걸 회개해서 그래야 될 것입니다. 안 믿는 부모가 멸망 가운데 있는데 내가 이 시간 전도를 해서, 전도를 해서 구원하면 할 수 있는데, 전도해서 안 믿어도 돼요. 전도를 해 가지고 그이가 안 믿어도 택한 자면 중생이라 하는 것은, 중생이라 하는 것은 믿는다고 말하지 안해도 택한 자면 전하면 중생됩니다.

중생만 됐으면 영은 하늘나라 가기 때문에 육도 하늘나라 가고, 육체의 구원이 안 돼서 육체의 기능이 죽었지 구원은 얻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을 지내 보내지 말고 어짜든지 오늘 저녁부터라도 요것을, 내 마음에 그렇게, 암만 해도 예수 안 믿어 죽은 그 죽음과 육체의 죽는 죽음이 같은 동등으로 느끼지지 않는 것은 고장이오.

진상으로 느껴지면 이 육체야 아무 때라도 죽을 때 죽기 때문에 육체 죽음 그것은 만일 한 닢푼치라 하면은 우리 영혼이 믿지 안해 죽는 것은 그거는 뭐 몇천만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그만치 차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런 느낌이 가져지지 안하면 우리가 믿지 않는 증거요, 하나님 말씀 믿지 않는 증거요, 믿지 않는 증거니까 자꾸 믿을라고 성경 말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육체의 지금 죽는 그 깔딱거리며 죽을라 하는 것보다도 영이 이 시간 믿지 안하고 지금 영혼이 믿지 안하고 있는 것은 더 기막히다’ 하는 그게 자꾸, 자기가 생각하니까 논리적으로 처음에 알지요. 논리적으로 알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니까 ‘과연 그러하다’ 그래서, 육체의 죽는 것보다 영혼이 믿지 안하고 영원한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그것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까지 우리 마음을 닦읍시다.

우리 마음을 닦고 우리 마음을 벗기고 우리 마음을 이거 강퍅을 벗겨서 갈아 벗겨서 자꾸 슬기롭게 예민하게 우리 마음을 만들어서 자기 믿지 않는 그 가족을 멸망 가운데 두고는 우리가 죽었으면 죽었지 견딜 수 없는 그런 느낌을, 자기 친척이 죽는다고 꼴막꼴막거리는데 자기가 살릴 수가 있다고 말이요, 살릴 수가 있다 하는 것이 확실히 있다고 하면은 살릴라고 얼마나 힘을 쓰겠습니까? 이렇게 힘을, 살리기까지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 살리기 전에는 딴게 보이지 안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안해. 그래 그런 사람들은 뭐 대사업가들도 사업이고 다 치워 버리고 가족들 믿도록 하기 위해서 뭐 환장한 것같이 날뛰어 가지고서 다 믿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사업도 저런 것도 하지 그전에는 사업 안 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을 갈고 닦고 벗겨서 이 강퍅함이 없어져서, 우리가 강퍅해서, 마귀 그놈이 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강퍅해 그렇지 성경에 예수 믿지 안한 것은 멸망받는다는 이 멸망이 육체의 죽음만침 경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말이오. 경해 그런 게 아닌데 우리에게 느껴진 거는, 오히려 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귀란 놈이 우리 마음을 둔하게 미련하게 만들어서 우리 마음이 강퍅하고 완패하고 이 완전히 변질이 돼서 이렇지 정상이 돼서 그 사실 그래야 되는 걸로 가지고 그런 거 아니라 말이요, 우리가. 우리가 비정상이 돼 가지고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신도 이 정상으로 느껴지도록 회개를 하고 어짜든지 우리가 믿지 않는 그 가족을 회개시키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돼져야 됩니다. 오늘 죽으면 그만이라 말이오. 영원한 지옥 아닙니까? 영원한 멸망 아닙니까? 어떻게 안 믿는 부모가 있는데 그냥 둬 두고 예수 믿는다 하겠습니까? 단판을 지워. 안 믿으면 자기가 육체의 죽는 것을 보고서 안타까와 살릴 수 있는데, 자기가 살릴 수 있는데 살릴라고 애쓰는 것처럼 이렇게 안타까운 이것을 가지고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안타까와서 구원할라고 애를 써야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동행하지 믿지 안하고 거짓부리로서 안 믿는데 무슨 성령이 가 가지고서 역사하겠습니까? 역사 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않는 가족이 그것이 육체의 지금 죽을라고 깔딱거리는 것보다도 더 비참하고 가련한 것을 느낄 정도에 느끼는 그 느낌이 없으면 전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고 뭐이고 느낌이 없으면 구원 못 합니다. 저도 구원 얻는다 하지마는 기본구원 얻지 건설구원은 못 얻습니다. 못 얻는 것이 그 실감으로 느끼지 안하기 때문에, 안 믿기 때문에 실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거요.

그런고로, 이제 옆에 같이 침대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믿지 안하고 있으면 이거 지금 송장이 지금, 송장이 누워 가지고 있는 것이고 지금 깔딱거려 죽을라 하기 때문에 이걸 살릴라면 살릴 수 있는데 이 송장이라 보고 이 송장을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서 살리는 이런 안타까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그것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으리라” 안 믿으면 멸망하고 믿으면 영생한다 요 사실을 자기가 사실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을 가지도록 하고, 가지고 난 다음에 이 남은 가족들 구원하는 이 일을 우리가 어짜든지 해야 되지, 이라다가 예수님 재림 오면 어찌 될 것입니까? 아무래도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운 것 같애요. 어짠지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심령이 이상해집니다.

오늘도 국민학생 하나 그만 어디로 갔는지 실종이 돼서 암만 찾을라 해야 찾지 못하고 이라다가 한 열흘 됐는데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시체로 발견됐는데 가 보니까 뭐 낯을 어째 버렸는지 한 찍해야 열흘밖에 안 됐는데 그만 낯이 다 뭐인지도 모르고 그만 다 썩어서 다 이래 버리고 이랬는데 국민학교 사학년이라.

사학년인데 덩치가 커서 중학교 한 이학년쯤 되는 그만침 덩치가 크답니다.

이러니까 아마 그 동리에 청년들이 살살 끌면서 과자도 주고 그리 ‘놀러 가자, 놀러 가자’ 이라니까 이게 자꾸 추근거리니까 따라서 가 가지고서 그 뒤에 산골짜기에 숲속에 가 가지고서 그만 욕을 보이고 이라고 그만, 하나 갔는지 두 놈이 갔는지 세 놈이 갔는지 모르지요. 요새 그래 안 합니까? 서이 너이 가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이라니까 안다 말이오. 그 안면을 아니까 이거는 죽여야 되지 그라고 난 다음에 냅두면 안 되니까 죽여 버려라. 그거 그렇게 박해를 주고 욕을 보이고 난 다음에 모르는 사람 같으면 그만 냅두고 저거는 달아나 버리면 그만이지마는 알기 때문에 죽였다 말이오.

이 세상이 이런 것이 뭐 신문에 이런 걸 지저분하게 못 내구로 해 그렇지 그만 그런 것 무슨 고발을 한다고 하면은 뭐 치안부에서 그뭐 경찰에 그런 것 뭐 수사하는 줄 압니까? 그저 어짤 수 없어 그러면 하지마는 그만 뭣이라도 말할 수만 있으면 ‘그거는 안면을 몰라서 지금 수사를 못 합니다’ 그라고 말고, 그게 뭐 꽉 찼습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지금 죄악이나 이런 걸 볼 때에 이걸 벌로 봐 그렇고, 신문에 그런 걸 안 냅니다. 지저분해서 말이지요. 그걸 다 내면 이 세상이 뭐 굉장한 세상이오.

미국 같은 나라는 문화 나라니까 괜찮은 줄 알아도 그 나라에는 어둠발 들면 출입 못 한답니다. 어둠발 들면 출입을 안 해요, 아예 어둠발 들면 남자고 여자고 출입 안 해요. 출입하면 언제 쏴 죽일란지 몰라. 거기는 다 무기들 다 자유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아무리 봐도 죄악이 관영할 대로 관영합니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는 뭐 백지 정권자들은 이리저리 평화 뭐 떠들어 쌓지마는 속에 알맹이를 보면은 이래 가지고는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 해도, 없다 해도 얼마 안 나갑니다. 나갈 수가 없어. 이렇게 자꾸 가속도로 악해 나가는데 이거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것이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할 때가 예수님 재림 때라 했는데 이거 죄악이 뭐 교회 안에도 가뜩 찼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오늘,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으면 그만, 지금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빰을 맞으면서, 욕을 얻어먹으면서, 갈빗대를 뿔러뜨리니까, 그라니까 또 자꾸 전하고 그 마음이 이게 느껴져서 예수 믿으라고 이라니까 뚜드려 맞아 갈빗대가 부러져.

우리 진영에 학생 그거 하나도 저거 아버지가 얼마를 때려 놨든지, 자꾸 맞으며 예수 믿으라고, 아버지 예수 믿으라고 자꾸, 예수 믿으라 하니까 ‘이놈의 가시나 지금 미쳤다’ 이라면서 얼마를 뚜드려, 뚜들려 가지고 절뚝절뚝 절며 여기 와 가지고서, 여기 와서 나중에 그래 좀 낫기는 나았는데 지금도 인제 저거 가족들이 교회를 못 나가도록 하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있어도 그 아버지에게 그라니까 그렇게 맞으면서도 자꾸 전도하니까 그게 교회 안 나와도 그 속에 영은 벌써 택한 자면 중생됐어요. 택한 자면 중생됐기 때문에 그 마음에 예수 믿지 안한 것이 고민스러울 거고 그런 것이라. 그래 그래 가지고 다 전도됩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 시기를 놓치지 말고 자기 믿지 않는 가족을, 교회 안 나와도 좋으니까 어짜든지 예수 안 믿으면 멸망받고 예수 믿으면 영생 얻는다 하는 그것을 강하게 말해 가지고 그 속에 믿음이 생겨져서, 교회 안 나와도 중생만 되면 구원하지 않습니까? 이게 만일 요 기회 놓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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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집회에 대해서 많이 기도합시다.

또, 기도하기로 정하는 사람 열 명씩, 열 명씩 정해 가지고서 그렇게 그 정하는 사람. 같은 집을 백 명이 정해도 좋아요. 백 명이 정해도, 백 명이 다 그 집을, 그 집을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만 알고 열 사람을 정해 놓고서 그렇게 기도하는 일을 하고 그걸 속히 등록해서 다 등록하고, 지금 참 구원에 급한 때니까 빨리빨리 등록을 해서 그렇게 기도하도록, 우리가 자꾸, 티끌 모아 태산된다고 그 정해 놓고 그 사람 구원 얻게 하기 위해서 하루 몇 번씩이든지 기도하는 이것이 없는 것 같애도 그게 일 년 지나가면은 굉장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작정해 가지고 기도하지 안하면 일 년 지내가 봤자 별 낳은 것도 없고, 별 다른 뭐 일한 것도 없고 그 기도한 것만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예수 믿는 일에 자꾸 주력하게 하는 이것이 복된 것입니다. 기도하고.

그라고 또 전도는 전도지 지금 다 됐으면 또 박을 터이니까, 처음에는 그냥 전도하기 어려우니까 전도지 가지고서 다섯 장, 전도지는 다섯 장 이상 전하지 말아요. 다섯 장 전하면 입이 벌어져요. 다섯 장 전하면 입이 벌어지니까 그다음에는 자꾸 입으로 ‘예수님 믿고 영생 얻읍시다, 예수님 믿고 영생 얻읍시다.’ 자꾸 그래 전하도록 하고,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한 사람 이상을 꼭 매주일 인도하고, 그러면 한 사람 인도했으면 또 그다음 주일에도 그 사람 인도하고 그다음 주일에도 그 사람 자꾸 인도하면은 그 사람이 나중에 열매 맺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 이상으로.

이렇게, 이거 하나님이 자꾸 시키시는 건데 우리가 거기 대해서 그만 무심히 여기는 이걸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이거는 목사가 게을했었어. 백 목사 그래 내가 부산 오고 난 후 백 목사 영 버렸다 하는 것은, 내가 거창 있을 때 그렇지 안했어요. 거창에 있을 때는 사람 보고는 뭐 장 에 그날, 장날은 수천 명에게 전합니다. 이래 전했는데 여기서는 그만 짖지 못한 개가 돼 버렸어.

그만 전도도 못하고 이래 됐는데, 우리가 어짜든지 나서서 믿지 않는 가족도 그럴 뿐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에게 다문,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한 사람 이상씩 데리고 오도록 그렇게 하고, 매일 전도지 다섯 장 또 그 외에는 뭐 몇십 명이라도 자꾸 전도해서 그저 듣고 안 듣고 자꾸 전도해요.

우리가 전도할 때에, 전도할 때에 전도하기가 부끄러운 것은, 전도하기가 부끄러운 것은 예수님으로 제 가치 떨어질까 하기 때문에, 제 가치 떨어질까 하기 때문에, 전도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왜 부끄러워하느냐? 예수님 때문에 제 우사당하고 제 가치 떨어질까 하기 때문에 저를 예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해석 해 보면은 기가 막히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도록 하고.

그라고, 또 이번 주 공과는 지난 주에 가르친 걸 하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안 믿는 부모 형제 죽어서 지금 이 시간 그만 끝나 버리면 그만이라. 다시 전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그것을 알고 가족들에게 전해서 멸망에서 구출 하도록 하고, 요것을 여러분들이 하고, 학생들에게도 말해 가지고 학생들도 요래서, 학생들 전부가 아버지 어머니께 맞아 죽어도 뭐, 학교 뭐, 학교 가는 것 그까짓 것 뭐입니까, 지금 영원한 멸망이 있는데. 영원한 멸망이 있는데 학교 그게 무슨 문제요? 학교를 못 가도 그 부모 형제 자매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하는 이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박아서 인식을 시켜 줘야 될 것입니다. 뭐 딴것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저녁에 확정을 합시다. 자기 믿지 않는 가족이 죽어 있는 것을 확실히 보고서 우리가 그거 느끼지 못하는 거는 우리 마음이 강퍅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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