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교회

 

1987. 5. 5. 새벽집회 <화>

 

본문:마태복음 13장 54절∼58절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느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데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어디서 왔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그러면 예수를 배척했다는 여기에서 어데서 왔느뇨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느뇨 하고 배척했습니까 하나님 아닌 다른 데서 왔다고 하고서 배척했습니까? 요것이 하나님 아닌 마귀에게서 왔다고 그렇게 인정하고 배척했다는 것이 요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껍데기로 보면 헛일이오.「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요거 지난밤에 말씀했는데 복습을 합시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지혜와 능력이 어데서 왔느냐 놀랐습니다.

“놀라 가로되” “놀라 가로되” 놀라서 깜짝 놀래 가지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그분들이 놀랬습니다.

놀랬는데 잘못 놀랬습니까 바로 놀랬습니까? 잘못 놀랬소 바로 놀랬소? 바로 놀랬습니다. 놀랬으면 놀랄 만한 그 실상을 다 봐서 놀랐습니까 얼마나 보고 놀랬습니까? 억억억억??의 만분의 일도 못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점점 이 지혜와 능력을 앞으로 더 볼 수 있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앞으로 봐야 될 볼 수 있는 여유가 남았습니까 없습니까? 앞으로 놀랠 일이 남았습니까 없습니까? 남았습니다. 요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알겠습니까? 더 보고 보고 나서 보니까 또, 또 더 보이고, 또 보고 나니까 또 보이고 또 보이고, 영원 무궁토록 봐도 다 보지 못하고 항상 앞으로 또 봐야 하고, 또 놀라야 되고, 또 깨달아야 되겠고, 또 거게 대해서 대비를 해야 되겠고 하는 그 여유가 영원히 영원히 가도 남아 있는 이것을 성경에 가르쳐서 말한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말한 성경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어데 있습니까? 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걸 껍데기로 성경을 보지 말아요.

이 지혜와 능력, 말하자면 지능인데 지혜와 능력 이 지혜와 능력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지혜와 능력이 어데 나왔습니까? 그들이 보고 깜짝 놀란 그 지혜와 능력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거게서 나왔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들이 깜짝 놀란 지혜와 능력이 어데서 나왔느냐? 그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거게서 나왔습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녜,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와 능력이십니다. 그러면 그 지혜와 능력이 어느 정도의 지혜와 능력입니까? 무한한 지혜와 능력입니다. 전지의 지혜요 전능의 능력입니다. 믿습니까? 믿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는 지혜와 능력이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하는 이 말씀에는 지혜와 능력이 내재해 가지고 이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이 지혜와 능력은 전지의 지혜요 전능의 능력입니다.

전지의 지혜와 전능의 능력을 자기 것을 삼았으면 그 사람은 누구보다 크고 높습니까? 모든 인류보다 크고 높고 모든 만물보다 크고 높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거 믿습니까? 이 말씀이 과장된 말씀입니까 정확무오한 말씀입니까? 정확무오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분개하시는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을,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을, 실상의 것을 사람들이 거짓 것으로 바꾸어 가지고, 실상의 것은 내어주고 거짓 것을 도로 찾아 가지는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안타깝게 여기시고 미워하십니다.

이 일을 누가 요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요렇게 하고 있습니까? 예? 누가 요렇게 합니까? 마귀가 요렇게 합니다. 인류 시조를 요렇게 꾀워 가지고 이 지혜와 능력을 뽑아버리고 나니까 엉뚱이같이 자기를 전멸시키는 선악과가 그렇게 좋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러니까 부모네들도 ‘뭐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되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지능이 들었는데, 전지 전능의 지능이 들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이 세상 지식과 현재 자기가 실상으로 동등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손 한번 듭시다. 회개를 해요, 손 한번 들어 봐요. 동등으로 삼고 있지는 안하구만.

그러면 이 세상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보다 심히 크게 여기고 지금 행동하는 사람, 크게 여기는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나는 여러분들을 거짓말쟁이라고 이 시간 정죄를 하겠습니다. 내 정죄가 틀립니까? 여러분들은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지능을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지식이 크다고 인정하는 행동을 현재 우리들이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네가 새벽기도는 못 나가도 숙제, 공부는 잘해야 된다. 주일은 범할지라도, 못 지켜도 공부는 잘해야 된다.’ 하나님의 현저히 나타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세상 지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법도를 어겨 세상 지혜 지식을 갖추는 사람은 어느 것을 크게 여긴 겁니까? 어느 것을 크게 여긴 겁니까? 하나님의 지혜의 능력보다 인간의 지혜의 능력을 앞세운 행동이 현저히 하나님 법도를 어겨서 나간 것이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행동을 그래 하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안하기 때문에 죽을 날이 멀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지 전능의 완전의 지능을 가지신 말씀이니 이 말씀을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이 인간의 지혜 지식을 이것을 다 부인하는가? 이런 것을 상관하지 않는가? 이런 것은 다 포기해서 염세주의로 들어가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전지 전능의 지능이 있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실력이요 이대로 행하는 것은 실상이 건설되고 성장되는 것이라 하는 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이 지능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기 위해서,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기 위해서 모든 언행심사의 움직임을 하고 또 이 지능대로 실행하여 실상으로 건설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요대로 실행하는 행위로 밥도 먹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것 저것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능을 인정하는 자 되기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하고 이 지능에 복종하여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여게서 인생 자체의 가치를 정평 정가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게 정상입니다. 주님의 지능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것 저것 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 지능, 전지 전능의 이 지능을 인정하기 위한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 인정할 뿐 아니라 이 지능에 소속해서 이 지능의 것이 될라고, 이 지능과 자기와 하나될라고 이것 저것도 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요것이 요 지능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틀렸습니까? 틀렸습니까?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아무것도 실상 없는 것이 거짓부리로 지금 하지도 못하는 게 한다고, 없는 것이 있다고 하는 그것이 다 허탄한 자랑입니다. 허탄한 주장이오.

인간은 하나님이 안 살리면 일 분도 못 살아요. 요거 믿어야 돼요.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안하시면 눈 한번도 깜짝거리지를 못해요. 딱 떠 가지고 뒈져버리지. 알겠소! 이걸 믿어야 합니다! 모두 믿지 안하고 거짓부리로 되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는 시험하는 신사참배가 오니까 신사참배 그까짓 게 뭐이 거석해서 다 거게 머리를 숙이고 천조대신 이름으로 세례도 받고 이래도 뒈진 줄 모르고 그 신앙 가지고 썩어서 다 죽었던 그 신앙을 죽은 줄도 모르고 그래 믿어도 예사로 그게 믿는 것인 줄 알고. 녜, 믿는 것인 줄 알고 죽는 날까지 믿어도 믿습니다. 그러나 심판에 가서 불타버리고 영생은 하나도 안 됩니다.

유엔군이 철퇴한다 하니까 ‘유엔군 없으면 우리 다 죽는다.’ 그때 한국 교회가 ‘유엔군 철퇴하면 우리는 다 적화돼서 하루 아침에 다 죽는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이것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배반하고 사탄을 영접하는, 신사참배는 억간 범죄라면, 억간 음행이라면 유엔군 철퇴의 시가행렬하고 혈서를 쓰고 공문을 써서 돌려서 반대 운동하는 이거는 제가 좋아서 마귀하고 합작해서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을 해도 부정하고 이것을 총회나 노회에서 말해서 하자 해도 듣기 싫어하고 부정해서 쓸어버렸습니다.

오늘은 벌써 그때가 유엔군 철수하고 난 다음이 지금 몇해째 납니까? ○○○목사님, 잘 아시는 분인데. 몇 해 됐습니까? 삼십칠 년, 봐. 내가 잘 묻지.

선생이라. 그런 데 내가 선생님으로 모시거든. 잘 알아요. 삼십칠 년 됐어요. 나는 몰라요, 삼십칠 년 됐는지 모르는데. 삼십칠 년 됐는데 유엔군 가면은 적화 남침 통일 된다 했는데 통일이 됐습니까? 전쟁 났습니까 안 났습니까? 한 번도 안 났어. 남침 못 했어. 적화 통일 못 했어.

이만하면 한국 교회가 ‘유엔군 철수하면 우리는 다 공산주의에 죽는다’ 하고 시가행렬, 혈서, 다 모두 연명 통지, 공동 운동한 우리 한국 교회서 이렇게 하나님관을 가진 사람들, 이렇게 인간의 생사화복관을 가진 사람들, 이렇게 유엔군관을 가진 사람들, 이렇게 공산주의의 그 능력관을 가진 사람들 이거 다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틀렸으면 고함을 질러요, 하나님 노를 풀라면.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저 뒤에는 왜, 여기 뒤에는 하나님의 노 안 풀어도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의 노를 안 풀어도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이야 뭐 이러나 저러나 멸시해도 되겠다 그렇게 장담할 수 있어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그 곳간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오느니라” 바로 이 자리가 영생의 것과 영원 멸망의 것이 그 실상이 바로 이 자리에 나오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실상이 나옵니다. 영생의 것과, 새 것. 옛 것, 멸망의 것.

“새사람은 기르고 옛사람은 죽이라” “새 부대는 필요 있고 헌 부대는 필요 없다.” 이렇게 바로 여게 인간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쓰셔서 말하기 때문에 여게서 멸망 그 실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영생 구원의 실상이 여게 나오고 있습니다.

완전한 것과 멸망의 실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멸망을 취할라면 취하고 완전의 영생의 구원을 취할라면 취하고 마음대로 골라 잡으십시오. 이 시간에 잡는 것이 그것이 곧 실상입니다.

곳간은 천국을 말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주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노를 말하는 것이니 여게서 노를 풀면 풀리고 노를 그대로 숨겨 강직하면 강직하는 것 됩니다.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공연히 실상 없는 걸 아무것도 아닌 것이 헛된 말만 합니다. 헛된 말만 합니다.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이런 장담은, 이런 주장은, “다 악한 것이라” 네 중심에서 나왔고 네 위주에서 나왔지 실존의 그 실상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사람이 범사에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 될 줄 알고도 그렇게 살지 안하면 전부 다 삐뚤어진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크심이 말씀으로 나와 이 말씀은 지극히 큰 전지의 지혜요 전능의 능력인 것을 믿는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차차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우리에게 깜짝 놀랜 그 지혜와 능력이 나왔는데 어데서 나왔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왔습니다.

오늘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병기로, 도구로, 당신의 것으로, 당신의 종으로, 당신의 지체로,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써서 당신이 친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식해도 “하나님이 저를 모세의자리에 앉혔으니 그 하는 말을 다 듣고 지켜 행하라” 마태복음 23장 1절 이하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서 그들이 깜짝 놀라기까지 한 그 놀람이 과장된 놀람입니까 지극히 과소된 놀람입니까? 과장된 놀람입니까? 실상 놀랠 것은 요만치밖에는 없는데 이만치 놀랬으니까 헛되이 놀랐습니까? 아니오. 무한히 과소평가한 놀램입니다. 실상은 굉장히 놀래서 다 알면 기절해 죽을 터인데 차차 차차 장성해서 여게서 성장해 가지고 알면 무한히 알아야 되고 무한히 놀라야 되고 무한히 능력도 큽니다.

우리의 하는 일이 뭐입니까?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또 잘못 안 것을 버리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알고 또 알고 알고 또 알고,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라고 또 놀라서 이 지능의 무한함에 놀람이, 놀람이 그 사람의 현재 주관이라 하는 것을 완전히 꺾어서 발 아래 밟을 수 있는 그 주관을 능가한 그 놀람이 아니면 절대로 실행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이 하나님의 지능 이 지능과 세상 인간에게서 나온 인간 지능과 이 지능을 비교해서 그 비중을 평가할 때에 인간의 것을 다 높이고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안 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저는 다 우리가 거짓말쟁이라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이는 절대 취소 없습니다! 여게서 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다대수가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것 전지 전능의 이 무한함이 우리에게 왔는데 이것을 정평 정가하고 땅에 속한 것을 정평 정가할 때에 이 비중은 겨룰 수가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이 사실인데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지능을 다 포기하고 무시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무시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녜, 그런 것은 다 무시했습니다. 무시했습니다.

무시하면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는가? 다만 이 무한한 지능에게 복종하는 것과 이 무한한 지능을  인정하는 행동으로, 복종하는 행동으로, 돈벌이 해야 되는 일이 인정 복종이면 인정 복종으로 돈벌이 하고, 학교 가는 것이 인정 복종이면 학교 가고, 봉사하는 것이 인정 복종이면 봉사하고, 건설하는 것이 파괴하는 것이, 사는 것이 죽는 것이 다 이 지능을 인정하고 거게 복종하는 것으로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는 그것이 이 지능을 인정하는 자들의 생애라는 것을 정상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여기에서 이탈되어 ‘이거 있으면 된다. 이 지혜 있으면 된다. 이 능력 있으면 된다.’ 하여 장담하고 그것을 여기에 이 지능에 연결시키지 않고 이 지능과 상관없이, 이 지능에 인정 복종하는 것이 아닌 그것만을 단독으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다 하는 이것은 성경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뭐라고 말했습니까? 좀전에 야고보서 4장에 읽어보지 안했습니까? 그거 뭐입니까? 허탄한 자랑. 헛 장담입니다. 헛 장담이라! 요걸 믿어야 돼요! ‘아, 나는 공부 뭣 하고 얼마든지 했으니까 되겠다.’ 네 생명 부르면 그만이라.

‘그런데 그래도 나는 살고 있다.’ 살고 있는 건 네가 몰랐어. 살고 있는 것은, 그래 살고 있는 그것은 네게 손해를 보였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규모의 광대하신 이 구속 역사를 하기 위해서 너는 알든지 모르든지 이용을 당하고 있어. 이용을 당하고 있어. 여러분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으면 아멘 하십시오. 저 뒤에도 아멘 하십시오.

그러면 그거 다 헛된 장담이요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나니 이것은 어데서부터 나왔습니까? 악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다 악에서 나왔다고 했소. 이것 때문에 인간들이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다 소용 없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 무시하고, 하나님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 무시하고 내대로 이렇게 지혜롭게 해 가지고 처세하고 이렇게 모두 다 방어하고 건설하고 정리하고 이렇게 승리하고 살고 있다. 그 성경 말씀을 노곡동 강단에서 가르치는데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이치도 있지마는 또 딴 이치도 있다. 나는 거게 맞지 안하고 그에게 인정으로 피동으로 그 말씀 그 지능에 피동으로 나는공부하지 안하고 그것을 버리고 공부했다.

버리고 사업했다. 버리고 출세했다. 버리고 성공했다. 이래도 이 성공이 되고 성공이 보존되고 유지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하기를 ‘노곡동 강단에서 말씀한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마는 이럴 수도 있다. 다는 아니다. 보라. 실례를 들면 그거 아닌 것도 서서 있다. 그거 아닌 것도 커져가고 있다. 그거 아닌 것도 건설하고 있다.

노곡동 강단에서는 다 그것은 네것은 하나도 없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요 말씀을 들어붙일 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모든 것이 “악인의 저축은 의인을 위해서 쌓아 둔 것이니라” 너는 이용만 됐지 네 실속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 말씀에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이 말씀은 치우친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체입니다, 전체.

이러기 때문에 그 지능을 인정하는 행동으로 살기도 죽기도 이것 저것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할 것이지, 또 거게 순종으로 할 것이지, 그것을 부정하고 하는 것은 전부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지능이 나오는 말씀, 말씀을 부인하고 하는 것, 말씀을 반해서, 말씀을 반동해서, 말씀을 반대해서, 말씀을 거슬려서 하는 것은 다 사망입니다. 맞으면 아멘 해요.

말씀을 어겨서 하는 것은 사망이요 말씀을 순종해서 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도, 사업하는 것도, 종노릇 하는 것도, 상전노릇 하는 것도, 정권 잡은 것도, 정치하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말씀 순종 인정으로 한 것은 다 영생이니라! 맞습니까?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자리에 두 사람이 같이 누워 자는데 하나는 멸망 하나는 구원, 한 밭에 둘이 일하고 있는데 한 현장에서 둘이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구원 하나는 멸망, 두 여인이 한 매를 갈고 있는데 꼭 같이 복음 운동, 개혁 운동, 꼭 같이 전도 운동 하고 있는데 하나는 멸망 하나는 구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아닙니까? 이 말씀은 맞겠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다 그러하지마는 하나님의 이 전지의 지능의 말씀을 인정 순종으로 하는 자, 인정 순종하지 안하고 땅에 있는 그것만으로 될 수 있다고 하여서 하는 자, 요게서 사망과 생명은 갈라집니다. 요게서 사망과 생명은 갈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야 돼요 죽어야 돼요? 살아야 돼요 죽어야 돼요? 살아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죽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죽어야 된다는 사람도 틀렸소. 살아야 된다는 사람도 틀렸소. 다 악에서 나온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맞습니까? 다 악에서 나왔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마귀 중심 마귀 위주에서 나왔다 그말이오.

나는 살아야 될란지 죽어야 될란지 나는 주권의 권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때 그때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말씀에 죽어야 된다면 죽어야 됩니까 살아야 됩니까? 그때는 즐거움으로 죽어야 됩니다. 살아야 된다면 그때는 살아야 됩니까 죽어야 됩니까? 살아야 됩니다. 살라 할 때 즐거워해야 됩니까 죽어라 할 때 즐거워해야 됩니까? 어느 것이 더 즐겁고 어느 것이 더 하잖습니까? 살라는 것이나 죽으라는 것이나 꼭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아멘! 꼭 같습니다. 요 지식을 놓지 마십시오.

여게서 “놀라 이 지혜와 능력이 어데서 났느뇨” 놀랐는데 놀란 것을 잡아먹는 놈이 뭐이지요? 놀란 것을 잡아먹는 놈이 뭐입니까? 자기의 자기 지식, 세상 지식, 인간 지식, 자기 주관, 자기 경험, 자기 체험,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그 모든 것 전부가 다 합하여서 이놈이 우리를 죽이는 원수입니다. 맞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거슬리는 모든 것이 자기를 죽이는 원수라는 것이 인정됩니까? 안 되면 죽어. 별수 없어. 잘나도 소용없어. 네 생명이 끝나는 날에는 그때는 후회해.

후회해도 소용 없어. 오늘이 끝날인 줄도 몰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살고 죽는 그것을 자기 주관에 매였습니까 객관에 매였습니까? 살고 죽는 것을 순종으로 살고 순종으로 죽어야 합니까 자기 욕심대로 살고 죽어야 합니까? 순종으로 해야 돼. 믿음으로 해야 돼.

그런고로, 따라합시다.믿음으로!행하지 아니한 것은!다 죄니라!주님에게!순종으로!하지 아니한 것은!다 죄니라!

지난밤에 공부했는데 무한한 전지와 전능의 능력은 어데서 나와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말씀에서 나왔는데 이것을 깜짝 놀라도록 그렇게 해 주셨는데, 깜짝 놀라도록 해 줬는데 깜짝 놀라도록 해 준 것은, 깜짝 놀라도록 해 준 것은 누가 들어서 그렇게 깜짝 놀라도록 했습니까? 자, 자기가 그랬습니까 누가 그랬습니까? 깜짝 놀라도록 한 그 놀란 것이 바로 놀랐습니까 잘못 놀랐습니까? 바로 놀랬습니까 잘못 놀랐습니까? 이 놀람은 우리가 점점 커지고 계속돼야 되겠습니까 이 놀람이 없어져야 됩니까? 요 놀람을 없앤 그놈이 내 원수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놀람을 없앤 그놈이 내 원수입니다. 그놈이 내 원수인 줄 알고 싸워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놀라게 한 데에 놀라게 하느라고 이렇게 놀랄 만치 이 지혜를 알도록 능력을 알도록 이렇게 알도록 할라고 놀랄 만치 알도록 하기 위해서 거게 역사하는 역군들이 있으니까 그 역군들이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너이라, 넷. 또? 자, 들어 봐요. 또 여섯이라. 또 저게 너이라, 저 집사님 인제 너이라 하는 거 보니까 인제 돼지는 거 같애. 인제 엔간히 죽기는 죽었어, 보니까. 죽기는 내가 저 지금 집사님 보고 있는데 집사님 엔간히 죽었어.

가만히 보니까 죽은듯이 엎드려 가지고 있어. 집에 가도 죽은듯이 엎드려 있어요.

교회서도 그라고 집에 가족들한테 가 죽은듯이 엎드려 있어. ‘우리 할머니 대구집회 갔더니마는 완전히 죽어 왔다. 영 아주 죽어서 송장이 돼. 인제 욕을 해도 괜찮고 부애를 질러도 괜찮고 영 아주 그만 아주 죽었네. 우리 할머니는 죽고 새 할머니 생겼다.’ 이래야 돼져요. 알겠습니까? 소원 돼요? 소원 돼요? 소원 돼요? 에이고 틀렸어. ‘소원 돼요?’ 하니까 `예에' 벌써 속에 아직까지 그놈이 들어 가지고 그놈 들어 있어. ‘소원돼요?’ 하면 ‘예! 예! 예!’ 막 그럴 것 아니겠소? `예! 이제 완전히 죽고 이 할머니는 죽고 별 할머니 하나 생겼다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막 원하고 원하고 원해서 막 죽을 만치 환장을 할 만치 소원해도 될똥 말똥 하는데 ‘되기를 원합니까?’ `예에' `예에' 나는 명의사라. 그 속에도 들어 있는 걸 또 내가 알거든. 또 뽑아낸다 말이오. 알겠어요? 인제 죽을 만치 소원해야 돼요. 그리 안 하면 안 돼.

자, 우리에게 이렇게 놀랄 만치 참된 지혜를 알려 주셨고 참된 능력을 알려 주어서 이 참된 지혜 외에 것은 다 이 참된 지혜에 반대되는 것은 전부 거짓부리요. 이 참된 능력에 반대되는 것은 전부 과장하고 거짓부리요 허탄한 자랑이요 허탄한 주장이오.

그런데 이렇게 알려 준 데에 몇이 들어서 알려 줬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아는가 모르는가? 요렇게, 요렇게, 또? 요렇게, 자, 그라면 우리 한번 쳐봅시다. 제일 처음에 독생자 보내신 성부, 또 그다음에 그리스도 예수 성자, 또 그다음에? 성령, 또 그다음에? 진리, 또 그다음에? 중생된 영, 그라면 몇이라요? 다섯. 또 그다음에? 그다음에? 선지 사도. 그다음에 선지 사도. 선지 사도들이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계속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선지 사도.

인제 다입니까, 그외에는 없습니까? 하나 더 뭐입니까? 그다음에는 우리를 소망하면서 탄식하고 고대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 자연계시들입니다. 알겠습니까? 만물이 우리에게 이렇게 알게 할라고, 그때에 설교할 때에 그 장소도 공기도 전부 협동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창조는 뭐하기 위해서 생겨졌어요? 예정의 목적이 뭐이며 창조의 목적이 뭐이라요? 우리 구원 위해서. 이라면 이 말씀과 우리에게 이 깜짝 놀라게 알려 준 이 모든 것은 만물들도 다 거게 협동했다는 이 말씀이 일통돼요 안 돼요? 모순입니까 일치됩니까? 일치라.

그라면 알려 주는 데에 몇이 들어서 알려 줬지요? 일곱. 요래 들어야 돼, 일곱. 자,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일곱. 몇 가지가 들어서 우리에게 전지 전능의 이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에게 알려 줬습니까? 몇이 들어 알려 줬습니까? 일곱.

일곱이 알려 줬어요.

알려 줬는데, 그러면 이렇게 알려 줄 때에 알려 줌을 받은 자는, 알려 줌을 받은 자는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알려 줌을 받은 자는 몇입니까? 너 어데서 왔어? 어데서 왔어? 어? 구미 ○○교회? 구미 ○○교회 목사 어데 갔어? 어? 구미 ○○교회 목사 어데 있어? 손 들어 봐, 구미 ○○교회 목사? 어데 뒷구석에 왔나? 저 뒤에 앉아 가지고 ‘보자, 논평하며 들어보자.’ 너는 속았어, 그라면. 스스로 속았어. 하나님에게 막 달라붙어야 돼.

○○교회 그 목사 재미있을러구만. 재미있겠어. ‘몇이 들어 배웠느냐?’ 하니까 둘로 가리키는데 그 둘이라는 이거 손가락 답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습니까 틀립니까? 모르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맞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나머지기는 ‘강단에서야 하든지 말든지 거게 따라서 내 점잔하고 위대한 사람이 동해? 내가 몇억만 금 중량을 가진 내가 그 말 한마디에 동하고 정해?’ 안 동할라거든 그 중량 가지고 단단히 앉아 있으십시오. 그 중량 가지고 요동치 마십시오. 그 중량은 자기를 망치는 중량인 줄 아십시오. 알겠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됐든지 틀리는 사람이 됐든지 아는 사람이 됐든지 그 아니면 ‘하거나 말거나 너는 네고 나는 내고’ 누가 말하는데? 백 목사 그까짓 거야 아무 가치 없어.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셔. ‘하거나 말거나 내가 거게 동하고 정해?’ 그 중량 된 그 사망 중량, 그 교만 중량, 강퍅 중량, 완패 중량 그 중량을 속히 빠사서 없애버려야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돌짝밭의 돌입니다.

일곱이 들어서 가르치는데 누가 배우느냐? 누가 듣느냐? 우리의 마음과 몸 이 둘이 듣습니다. 손가락 둘 든 것이 정답이요, 정답. 우리는 내가 들어서 성경 읽고 하니까 내가 들어서 노력하는 줄 알지마는 이 일곱 가지 세력에 붙들려서 피동돼 가지고 지금 내가 성경 보는 것은 내가 이 무한한 지능을 내가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이것은 저는 가르칠 권리가 없어, 실력이 없어요. 이 객관의 일곱 가지 세력이 내게 와 가지고 이 성경을 읽어라 봐라, 그러면 읽고 싶은 마음은 뭐인데? 거게 벌써 이 네 가지 세력 다섯 가지 세력이 왔어. 네 가지 세력 다섯 가지 세력이 왔어. 다섯 가지 세력이 와 가지고 하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성경 볼 마음을 일으켜 줍니다. 알겠습니까? 그 마음을 받은 것이, 그 마음을 받은 것이 누가 받았지? 받을 때에 육이 받았지.

육이 받았다 말은 심신이 받았지. 심신이 받았는데 심신 중에 제일 앞장나서 가지고 받은 자나 누구지? 앞장서 가지고 받은 자가 누구지? 양심. 양심.

양심이 없는 자는 자기 마음에 중보자를 죽인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양심을 꺾은 자는 자기 마음에 중보자를 꺾은 자입니다. 자기의 빛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화인맞은 양심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구원 역사의 큰 역사의 순위를 우리가 깨닫고 겸손히 우리가 복종해서 이 구원을 받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 전지 전능의 지능이 어데서 나옵니까? 저 뒤에도 좀 말해요. 어데서 나옵니까?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전지 전능의 이 지능을 놀랄 만치 받아들인 것은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했습니까 너무 지나치게 놀랐습니까 아직까지 놀랄 것이 실상보다는, 실상보다는 놀란 것이 너무 지나치게 겉놀랬습니까 놀랠 만치 놀래지 못했습니까? 놀랠 만치 놀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놀라야 됩니까? 영원히 놀라야 됩니다. 영원히 놀라야 됩니다.

가고 가고 가도 또 있고 또 있습니다.

이러면 그 지혜와 능력을 받으니까 이제는 다 받아서 받을 것이 없으면 좋습니까 받고 또 받고 받고 받아도 자꾸 받을 것이 있으면 좋습니까? 받을 것이 이제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받을 것이 영원히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영원히 있는 것이 좋아. 이것도 어려운 말이라, 이것도 어려운 말. 쉬운 말 아니오. 다 우리 선배들 선조들 깨달은 사람들은 수많은 눈물과 수많은 생명을 바쳐서 다 깨달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가고 가도, 그러니까 점점 받고 받아 지능을 받아 그 지능이 내것 되니까, 내것 되니까 나는 점점 누구를 닮아갑니까? 누구 닮아갑니까? 누구와 같이 돼 갑니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 “거룩하심같이 거룩하라” “깨끗하심같이 깨끗하라” “하나님은 머리요 너희는 그 몸이니라” 그분의 몸이 되기까지, 그분의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기까지, 그분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려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어떻게 돼요? “지극히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으니 곧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러므로 우리들이” 뭐라 했습니까? “우리들이” “우리들이” “우리들이” “우리들이” “더욱 힘써” “더욱 힘써” “더욱 힘써”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저 아무나따나 예수 믿어서 감투나 쓰고 명예만 가지면 되는 것 아니오. 다 속았소. 그거는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이용당하는 것이라. 잘하면 상급은 있을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화되는 거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구원이요 우리의 지위와 소유는 다릅니다. 자체가 아니오.

그런데 이 일곱 가지를 우리에게 주시느라고 협동해 가지고 합동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느라고 애쓴 그 모든 존재들이 몇 가지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일곱. 몇 가지가 받았습니까? 두 가지. 심 신. 심 신.

기능이 받았습니다. 받고 버리지 안하고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것이 양은 적어도 전지 전능의 요소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속성화된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하나만 재독하고 말아, 하나만 재독하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은총을 받는데 우리가 제일 주의하고 조심하고 우리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장하고 우리가 다 구원이 헛일되지 안하고 우리가 알속을 차리는 데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녜, 잘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 일곱 가지가 협동해 가지고 전지 전능의 은혜를 놀랄 만치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느끼게 했고 알려 주었는데 알려 준 그것을 우리가 알고 느끼고 믿어졌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놀랬는데 요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빼앗기지 않는 것이. 빼앗기지 않는 것.

그러면 빼앗기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데 빼앗기지 안하면 뭣 됩니까? 따라합시다.빼앗기지 안하면!옥토에 뿌린 씨 된다!옥토에 뿌린 씨 되면!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한다!인간대 완전!마귀대 완전!하나님 상대 완전! 세 가지 완전이면 완전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요것을 빼앗기지 말아야 됩니다. 그게 원수라, 원수. 돌밭이 원수, 덤불밭이 원수, 길바닥이 원수, 세 가지 원수 그놈이 들어서 요 듣고 깨달은 것을 싹 다 주 먹어버립니다. 요게서 듣고 깨달아, 지난밤에 벌써 듣고 깨달은 거 다 뺏긴 사람 있어. 껍데기만 있고, 다 같은 사람이지만 달라요. 요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있고 다 뺏긴 사람 있어. 이래서 오늘 아침에 재독으로 다시 지금 가지게 했습니다.

우리의 제일 주의해서 조심할 것이 무엇입니까? 빼앗기지 아니할 것. 우리의 원수가 무엇입니까? 요 지혜와 능력을 보고 깨닫고 놀랠 만치 가졌는데 요것을 내게 업애버리는 그놈이 내 원수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놈이 원수입니다.

그 원수가 어데 있습니까? 자기 안에 있습니까 자기 밖에 있습니까? 자기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자기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자기 안팎에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가득 찼어. 가득 찼어. 요렇게 알고 싸워야 돼요.

따라합시다.전투 교회!전투 교회!전투 교회!우리의 싸움은 끊어지는 시간은 없습니다. 영원히 세상 있는 동안에는 계속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합시다.

이제 산에도 가고 놓지 말아요. 요만치 걸어올라온 데서 다시 기어 내려가지 말아요. 요만치 변화된 데서 다시 어두워지지 말아요.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71 전도지 나누기/ 요한일서 3장 16절/ 841225성탄축하 선지자 2015.12.17
470 전도지 사용에 대해서/ 시편 91장 14절-16절/ 841009화새 선지자 2015.12.17
469 전도지-회개의 눈물을/ 사도행전 4장 12절/ 841008월새 선지자 2015.12.17
468 전신갑주/ 유다서 1장 14절-15절/ 811024토새 선지자 2015.12.17
467 전쟁발발의 징조와 우리할 일-회개/ 이사야 1장 18절-20절/ 830607화새 선지자 2015.12.17
466 전체를 보라/ 빌립보서 2장 1절-11절/ 850616주전 선지자 2015.12.17
» 전투교회/ 마태복음 13장 54절-58/ 870505화새집회 선지자 2015.12.17
464 전투교회/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07수야 선지자 2015.12.17
463 전투생활/ 고린도전서 9장 24절-27절/ 840820주새 선지자 2015.12.17
462 전투생활/ 에베소서 6장 13절/ 811023금새 선지자 2015.12.17
461 전투생활/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811023금야 선지자 2015.12.17
460 전투생활/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830823화새 선지자 2015.12.17
459 전투와 이기는 법/ 요한계시록 12장 7절-17절/ 860810주후 선지자 2015.12.17
458 전투의 대상.목적.방편/ 출애굽기 7장 3절-5절/ 830803수새 선지자 2015.12.17
457 전투의 목적/ 고린도전서 9장 19절-27절 / 880203수새 선지자 2015.12.17
456 전투중에 제일 큰 전투/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04주새 선지자 2015.12.17
455 전투하는 교회/ 마태복음 4장 2절-11절 / 860805화새집회 선지자 2015.12.17
454 전투할 때 제일 중요한 것 /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51025금새 선지자 2015.12.17
453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주의 할 것/ 갈라디아서 6장 6절/ 800618수새 선지자 2015.12.17
452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주의 할 것/ 갈라디아서 6장 6절 / 800619목새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