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생활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23일 화새

 

본문 : 딤후3:10-17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어서 악을 달성하는 것이 세상이요 기독교 생활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소가 다르고 종류의 그 본질과 본성도 다르고 소속도 다르고 또 가는  향방도 다릅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렇기에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이루어 가고 세상은 차차 죽여서 없애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요, 세상을 죽일 것은 아주 죽이고 또 세상을 하늘나라의  것으로 변화시켜 바꿀 것은 바꾸고 하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이요 세상은 세상을  점점 더 세상화시켜 가지고 지옥을 만드는 것이 세상 운동이요 그들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순전히 사망하는 방편뿐이지 사망하지 아니하는 방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사망 역사뿐이지 사망 역사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어떤 단체든지, 어떤 국가든지, 어떤 행정 운동이든지, 뭐 사업  운동이든지 그거는 전부 죽는 운동이요 지옥을 이루는 운동입니다. 그렇기에  하루 그 세상살이가 됐으면 그만치 죽고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에 왔던 사람들이 많지마는 그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무엇했느냐? 다 죽음 이루었습니다. 지옥을 이루었습니다. 멸망을 이루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완전 멸망시키는 것으로서 세상살이가 끝났지 하나도 생명화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자들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바꾸고 마귀적인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고, 또 자기 주장인 것을 하나님의 주장으로, 자기  의사대로의 것을 하나님의 의사대로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그런고로 세상과는 언제든지 마찰이 있습니다. 마찰 없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화 됐으면 마찰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천국화돼서는 암만  천국화가 돼도 마찰은 있습니다. 모든 선지 사도들이 그렇게 다 깨끗하게  회개했지마는 회개한 것만치 마찰은 더 많았지 없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세상화되면 마찰은 없습니다. 성전 밖마당은 세상하고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게 이용을 당하니 세상이 좋아하고 놓지 안합니다.

또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하는 것은 주관한다 말인데 세상에게 주관을  당하니까 세상하고 마찰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독자가 자기가 어떤 지위에서, 높은 지위서나 낮은 지위서나, 또  중요한 중역을 가진 데에서나 그저 펑범한 평역을 가진 데서나 제가 기독자로  살라고 하면은 전생활은 다 세상에 거슬리는 생활이요 마찰되는 생활입니다.

마찰되는 생활이 아니라면 그것은 자세히 따져보면 다 목적이 달랐고, 목적이  변경됐고, 또 방편이 변경됐고, 그 힘이 변경됐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양새끼 같은 것이 있는데 그는 용처럼  말하고, 또 전에 나왔던 짐승의 권세를 쓰고, 그 짐승을 위해서 짐승을 섬기는  우상을 만들고, 짐승을 섬기는 우상을 만든다' 말은 세상을 위주로 하게 하는  그런 유력한 인간을 만들어 세웁니다. 그런데 그 우상은 말한다' 그말은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교파든지 어떤 단체든지 요새는 뭐 복음운동, 선교운동 뭐 셀 수  없습니다. 사람 한 두 사람이 모여 가지고도 무슨 선교운동이라 하고서 있는  돈은 전부 다 들여서 선전비로, 광고비로 씁니다. 그것 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부  인간 제가 왕노릇 하기 위해서 저를 유명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도서실에 가서 기독자의 서적이 많이 나오는데 서적이 많이 나오는 그 서적은  대부분은 돈벌이 하기 위해서 나온 것 제일 많고, 또 '그 사람 저서한 책이 몇  권 있다' 자기를 저서를 가지고서 유명하게 할라 하는 그 책 있고-참 그 책을  가지고 기독자의 구원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한 책은 뭐 별로 없다고 할 수가  있고-그 책이 셋째로는 뭐하는고 하니 기독자를 이십세기의 기독자를 십 구  세기의 기독자로, 십 구 세기의 기독자를 또 한 십 사 오 세기의 기독자로  이렇게 점점 후퇴화시켜서 현실에 맞지 않는 그런 일을 목적해서 하는 것입니다.

 현실화라하는 그거는 요새 뭐 세상에서 말하는 현대화 현대화 하는 그것이  아닙니다. 기독자의 기독교의 현실화라 말은 이 현실을 대항해서 현실을 싸워  이길 수 있는, 현실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진리를 하나님께서  시대를 따라 자꾸 이렇게 깨닫게 해 주시는데 옛날 상대만 상대해서 전투하니까  현대의 기독자의 대적이 되는 원수는 알지도 못하고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마다 핍박을 받는다하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왜 핍박받느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자기 중심으로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들, 너희들이 세월을 아끼라 이 세대가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니라 그말은 잘못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악하다 선하다  뭐 그런 걸로 가지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때가 악하니라 말은 때가 전부 자기  중심, 인간 중심으로 점점 타락화된다.

 그러기에 네가 시간을 아껴라, '세월을 아끼라' 그말은 자기 중심 인간  중심화되는 자꾸 이 세상이 되어져 가니까 네가 여간 조심해 가지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생활을 인간 중심화, 자기 중심화 이런데 물이 들어 가지고  그런 사람으로 살기 쉽기 때문에 조심하라 그랬습니다.

 또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니라 이랬습니다. 천국 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난이 없으면 저 고난, 저 고난이 없으면 이 고난  자꾸 고난이 고난의 꼬리를 물고 자꾸 고난으로 자꾸 교체됩니다. 고난이  계속되고 고난이 중단될 때가 없습니다. 경제면으로 고난, 또 활동면으로,  사업면으로, 가정면으로, 또 자기의 모든 경영면으로 자꾸 고난이 있습니다.

 무슨 고난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 곧 하늘나라를 이루는 생활을 자기를  죽여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자기는 하나님에게 소속이 되도록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전체가 고난이오. 자꾸 고난만 닥쳐집니다. 경제면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니까 세상 뜻과 다르기 때문에 사업면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하니까  세상 뜻과 반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마찰이  없는 환경이 되면 좋아할 것이 아니라 좀 살펴봐야 합니다. 환경이 자기화  되어서 마찰이 없는 것인지, 자기가 세상화 되어서 마찰이 없는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자기화되어 가지고 마찰 없는 그런 일은 실은 별로 없습니다.

천국화되어서 마찰 없다는 것도 천국화되어서 마찰이 없는 그때는 자기의 믿음이  좀 속화됐습니다. 마찰 없는 거게도 또 마찰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도 거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마찰이 없어도 거게 영감대로  살라고 하면 또 마찰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선을 소선으로 바꿨을 때에  그 마찰이 없는 것이지 그것이 없는 것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자는 이 세상은 어떤 현실이라도 전투 생활이라, 싸우는  생활이라. 싸우는 생활이 없는 일은 없습니다. 목사끼리 만나서 의논해도  거게서는 반드시 싸움이 있는 것을 알아서 싸움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 싸움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 하지 않습니다. 왜? 목사들이 모여도  자꾸 세상과 가까와진 것을 할라 하고 천국과 가까운 것을 할라 하고, 세상 반  천국 반 할라 하고 또 세상 한 사십프로 또 천국을 한 육십프로 이렇게 할라  하면 또 마찰이 있습니다.

 만일 세상이, 목사끼리 만나서 세상에는 한 십프로 하늘나라가 구 십프로 이래  할라고 하는 그 목사들이 모였으면 거게서 마찰이 없으면 그 생활은 진보가 없고  성장이 없고 승리가 없는 것입니다.

 거게서 백프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라고 하면은 구십프로 천국을 건설하려는  그자와 대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찰이 없는, 투쟁이  없는, 대립할 그 상대가 없는 것은 그때 자기의 신앙은 실은 다 속화되고  타락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투 없는 것을 그것을 기뻐하지 맙시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마다 다 고난을 당한다 '천국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왜? 세상은 악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또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데 그 속일라고 한 때 내가 안 속을라고 하면은  원수가 됩니다. 또 모든 세상은 다 속이는 세상인데 그 속이는 데에 내가  협동하지 안할라 하면은 마찰이 됩니다.

 속이는 것은 뭐 속이는 것이냐? 그 사람에게 천국을 이루지 못하게 천국에  손해하게 하는 그게 속이는 것이지 세상 손해가게 해 가지고 천국을 유익되게  하는 그거는 사람 보기에는 속인 것 같지마는 실은 결과적으로는 속이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신앙 생활 할라 하면 어데서든지 나는 전투  생활이라 그것을 기억하고 전투가 있는 걸 찾아야 되지 전투가 있는 것을 찾지  안하면 안 됩니다.

 전투도 범죄함으로 전투되는 전투도 있고 범죄하기 위해서 전투하는 전투도  있고 의롭기 위해서 전투하는 전투도 있으니까 전투도 두 가지 전투입니다. 그만  세상과 짝이 되면 아무 마찰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찰이 없으면 그 신앙은 차차  타락해서 멸망이 자라고 구원은 점점 약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은 아예 고난 없는 것을 우리가 희망하지 안해야  됩니다. 또 마찰이 없는 것을 희망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나 마찰에는  거게서는 무슨 결과가 나오는고 하니 마찰에는 많은 희생의 결과가 나오고 또  승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찰, 옳은 전투에서 마찰로 말미암아 희생되어 없어지는 그것이 최종으로  말하면 순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찰로서 자기에게 있는 것이 닳아지고  적어지고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안 할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며,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며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를 우리는 피하지 말아야 하고 또 전투할 때에 그때에  전사가 된, 전투로 말미암아 희생되어진 전사가 된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죽을 것이 죽지 안 할 것으로서 살아난 것이요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없어질 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바뀌어지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진리대로 살다가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시니까 사람들은  죽은 줄로 계산하지마는 죽은 게 아니라 그 죽음으로 죽음을 완전히 이기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됐습니다. 우리 신자 생활은 다  그런 것입니다.

 요걸 알고, 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러니까 그런 걸 본받지 말고, 성경을 사람에게 배우든지  성령님에게 배우든지 우리는 성경을 열심해 배워야 되겠습니다. 자기 혼자  읽어도 성경은 그 안에 내재하신 성신의 감화가 있기 때문에 가르쳐 줘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한 절 한 절을 자기가 알면서 '확신에 거하라' 성경을 보고 하나  하나를 자꾸 우리는 믿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기억 못 했던 것을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구나. 이렇게 말씀한 이 사실을 나는 요대로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요 사실로 믿는다.' 자꾸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자기 믿음을 자꾸 길러야  합니다.

길러야 하는데 조심할 것 하나 있는 것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것을 또  주의시켰습니다. 성경을 읽고 확신을 가지는 확신보다는 귀하지 안하지마는 확신  다음으로는 귀중한 것이 뭐이냐 하면 '뉘게서 배운 것' 신령한 은혜에 그 은사  기관, 신령한 은혜를 자기가 누구를 통해서 받았든지,  우리 육체는 부모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우리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에 부모를 통해서 우리가 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다음으로는 부모를 공경하라 해서 일 계명으로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오 계명은 인간 계명 시작에 제일 초두가  오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네가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그 말은 안 망하고 잘된다  그말인데 그 오 계명이나 '네가 뉘게서 배운 젓을 알라' 하는 자기를 가르쳐서  모르던 진리를 알게 한 그 사람을 '네가 육체로서는 네 부모를 하나님 다음으로  공경해라 하는 것과 같이 교훈으로서는 하나님 다음으로 너를 가르친 그 사람을  네가 귀중히 알아서 섬겨라 그래야 네게 배워진 그 교훈이 너를 구원을 하고  네가 그 교훈으로 네가 점점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지 그것을 무시해 버리면  헛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배우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 나에게 가르쳐 준 그  사람을 배반한 사람은 절대로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을 못 합니다. 하는 것  같지마는 그만 벌써 그 사람이 자기가 배운 교훈이 절대적인 권위 있는  교훈이라고 인정이 되면은 그 교훈을 자기에게 증거해서 가르쳐 준 거게  대해서도 그렇게 존귀성이 자기에게는 인정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것을 또 주의를 해야 됩니다. 제가 어제, 어제인지 아레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산서 나를 찾아왔다고 이라는데, 어떤 사람인가  바꾸라고 해 가지고 전화로 바꾸니까 자기가 거창 제가 있을 때에 그때에  거창에서 늘 집회에 따라다녔고 내가 부산 왔을 때에 부산으로 따라와서 부산서  따라다녔고 또 그 뒤도 늘 전달해 가지고 이래 교훈을 받고 있는데 자기가 그때  그만 그 형편이 그래서 성결교에, 침례교라던가? 그 교파에 가서 지금 장로가 돼  가지고 마산 어느 교회에 총책임을 지고 그래 있어서 자주 오지 못하나 자꾸  이래 간접으로 이래 이 교훈을 받고 받고 이랬는데 그 교훈, 그것을 과거에 그  된 것을 쪽 말하면서 같이 고난받을 때 같이 고난받고 또 실행할 때 실행하고  투쟁할 때 투쟁하고 이래 나왔는데 만나보니까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는 것이  분명하고 독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찾아 뵈옵지 못해서 참 죄송하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나를 만나지 않는 그 이면에서 복음 역사를 한 그런 것을 말하데 그게 내게  증거가 됐습니다. 그런 일을 한 것을 누군지 몰랐는데 그 사람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 뭐더라 뭐? 무엇을 음료수를, 씨씨라 하더나, 그거 뭐야? 쌕쌕이.

그걸 가지고 와서 그래 내가 거기 냅두라고, 암만 가져가라 해도 안 가져가고  이랬는데.

 그래, 그 교훈받은 그것을 교훈을 귀중하게 여기면 반드시 교훈의 기관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되고 교훈을 받은 가르친 그 기관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교훈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또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자기를 귀중하게 여기는 법대로 바로 하는 것이지 자기는 귀중히 여기면서  자기를 낳아 길러 준 그 부모를 귀중히 여기지 안하는 사람은 그것이 벌써  자기를 멸시하고 들어가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자멸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뉘게서 배운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또 이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시켜서 기록했기 때문에 이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이래서 성경이  정확무오한 이것으로서 기독자도 정확무오할 수 있는 사람이 성령으로서는 될 수  있다 하는 그 가능성을 여게서 보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은 구원을 이루는 지혜가  있게 하는데 이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자체 온전과 실력 온전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이 성경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아침에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하나는 성경을 읽어서 확신을 하나씩 하나씩 자꾸 결정해 나가야 되고 성경을  읽어 한 성구 한 성구에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확신을 가져야 되고,  또 둘째로는 성경을 나에게 가르쳐 주신, 가르쳐 준 그 사람을 기억해야 되지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안하고 그 사람과 멀어지면 교훈은 자기에게는 멀어집니다.

아무리 교훈은 차지해도 그 사람을 자기가 존대하지 안하면 그 교훈도 존대하지  않는 것이 되는데 교훈과 그 교훈의 은사의 사람과 꼭 자기는 가치가 같이 돼야  됩니다. 이를 귀중히 여기면 저도 귀중히 여기고, 이를 천하게 여기면 저도  천하게 되는 것이니까 요것을 기억할 것, 교훈은 받아놓고 나중에 뭐 사람은  배반하고 '나는 교훈은 뭐 하나님이 주셨지' 암만 둘러붙여도 그 사람에게 배울  때에 그 영감이라는 것은 절대 그에게 가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기독자로서 교훈에 배은하는 사람은 신앙 생활을  승리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도 사람을 통해서 알려 주셨고,  성령도 사람을 통해서 성령이 가셨지 성령이 직접 된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로서만 꼭 기독교는 이루어지지 전도 아닌 자기 혼자 전도 안  받고 독단으로 예수 믿는 사람 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요 두 가지를 기억하고, 셋째로는 성경은 직접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의로 교육해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체가 온전하고 행위가  온전하도록 하는 그 역사를 이루는 것이 이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에 대해서 요 세 가지를 단단히 기억합시다. 성경을 한절  한절 읽으면서 거게서 확신을 마련할 것, 확신을 마련하고 또 둘째로는 무엇을  마련해야 됩니까? 둘째로는 무엇을 마련해야 돼요? 뉘게서 배운 것을 네가 알라  그말은 뉘게서 배운 것을 네가 그저 기억하라 그말은 아닙니다. 알라 말은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칼빈에게 배워서 칼빈주의를 많이 이와같이 자꾸 칼빈의 그  교훈을 자꾸 책임지고 옹호하고 하는 그것이 내나 그 자기네들이 아나 모르나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자꾸 자연히 그렇게 되어지는 것인데 요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둘째로.

 또 셋째로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들어서  하나님의 사람 자체를 온전케 하고 그 기능을 온전케 할 수 있다. 기독자는 그  자체 온전과 기능 온전을 무엇으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다 성경 말씀  가지고만 하지 딴것으로는 하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한 절이라도 자기가 의심나면 그것이 벌써 그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말하면 암병 걸건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치료해야 되지 한 절이라도  의심하면 한 절 의심이 극단에 가면은 모든 성경을 다 의심하게 됩니다. '그것도  그런지 안 그런지 어찌 알겠나?'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세 가지를 알고 요 세 가지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 때는 반드시 전투  생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우리 자체로서 실력을 삼아야  되겠고 이 세 가지로 실력을 삼으면 그 실력 삼아 가지고 뭣 하느냐? 필연적으로  전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세 가지로 실력을 삼고 자기가 자기 생활을 전투  생활인 줄 알고 전투를 두려워하지 안하고 전투에 피하는 자가 되지 안하면 다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는 참 성경 한절 한절을 읽으면서 성경 한절 한절에서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성경 한절 한절에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어제 바닷가에 갔다 온  사람들 가운데에 오늘 새벽기도에 참석하지 안한 사람이 내 눈에 많이  보여지는데. 그래 게을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범죄하면 망합니다. 그것  아십시오. 범죄하면 망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암만 모르게  범죄해도 그게 관영하도록만 기다리고 있지 하나님께서 모르는 것 아닙니다.

자기 구원은 다 범죄로 절단나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런 망령된 짓 하지 말고  그래 내가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자기가 신앙 생활을 괜찮게 해 나 가는데 그  사람이 늘 기도할 때는 자기에게 대해서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나에게 대해서  나를 그냥 안 되면 어떤 징계를 해서, 내가 뭐 다리가 뿔라지든지 팔이  뿔라지든지 어떤 징계를 해서라도 내가 어떤 징계를 받아서 내가 사업이  무너져서 완전히 거지가 되든지 어떤 징계를 해서라도 나를 죄에 방치해 두지  마시고 나를 회개시켜서 깨끗한 자만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 하는  사람을 내가 봤는데 기도할 때에 늘 그 사람이 보면 그 기도를 하는데 그 사람은  깨끗해지고 자기의 그 생애가 점점 온전하게 펴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자기가 참, 주님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오른눈이 범죄케  하면은 오른눈을 빼서 한 눈으로서 천국 가는 게 낫다. 네가 손이 범죄케 하면  그 손을 끊어서 한쪽 손 가지고서, 발이 범죄케 하면 발을 끊어서 하는 그것은  뭐 끊으라 해 봤자 끊으면 또 다른 데 쓰지 못하니까 끊는 것과 같이 그렇게  당하라 하는 것인데 실은 그것으로 범죄하는 것보다 끊어서 병신되는 것이  그것이 나은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혀가 범죄케 하면 혀를 끊어라' 그래서 어떤 장로님 힌 분이 자기의  그 신앙 생애 한 것을 자기 사모님에게 이래 들으니까 참 그 어른이 말에 흠이  없는 그런 사람으로 성화돼 나갔는데 그 혀를 깨물기를 얼마나 깨물어서 혀가 참  젊을 때는 병신되다시피 그렇게 됐고, 눈으로써 보지 안할 것을 자꾸 봐서 한번  보면 그 눈에 대해서 징계를 가하고 징계를 가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 눈이  젊을 때부터 상해져 가지고 있어 그 사람이 눈으로 범죄하지를 안하고 혀로 범죄  하지를 안하는 그런 경건을 이루어 간 것을, 하도 그래서 내가 그것을 그의 바로  친가족에게 이렇게 유도해서 이리저리 넓게 물으니까 이제 그렇게 자기가  깨끗하게 회개할라고 애를 쓰는 그 결과로 되어졌지 아무나따나 제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지고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제가 처음 예수 믿을 때에 얼마 되지  안하고 예수 믿을 때에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나 가지고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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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전도지-회개의 눈물을/ 사도행전 4장 12절/ 841008월새 선지자 2015.12.17
468 전신갑주/ 유다서 1장 14절-15절/ 811024토새 선지자 2015.12.17
467 전쟁발발의 징조와 우리할 일-회개/ 이사야 1장 18절-20절/ 830607화새 선지자 2015.12.17
466 전체를 보라/ 빌립보서 2장 1절-11절/ 850616주전 선지자 2015.12.17
465 전투교회/ 마태복음 13장 54절-58/ 870505화새집회 선지자 2015.12.17
464 전투교회/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07수야 선지자 2015.12.17
463 전투생활/ 고린도전서 9장 24절-27절/ 840820주새 선지자 2015.12.17
462 전투생활/ 에베소서 6장 13절/ 811023금새 선지자 2015.12.17
461 전투생활/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811023금야 선지자 2015.12.17
» 전투생활/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830823화새 선지자 2015.12.17
459 전투와 이기는 법/ 요한계시록 12장 7절-17절/ 860810주후 선지자 2015.12.17
458 전투의 대상.목적.방편/ 출애굽기 7장 3절-5절/ 830803수새 선지자 2015.12.17
457 전투의 목적/ 고린도전서 9장 19절-27절 / 880203수새 선지자 2015.12.17
456 전투중에 제일 큰 전투/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04주새 선지자 2015.12.17
455 전투하는 교회/ 마태복음 4장 2절-11절 / 860805화새집회 선지자 2015.12.17
454 전투할 때 제일 중요한 것 /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51025금새 선지자 2015.12.17
453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주의 할 것/ 갈라디아서 6장 6절/ 800618수새 선지자 2015.12.17
452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주의 할 것/ 갈라디아서 6장 6절 / 800619목새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