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내력-하나님의 인도와 순종 선지자선교회

   

1988. 5. 4. 수전집회

 

본문창세기 12110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 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지금 사 분 전입니다. 열시 반에 시작하기로 했는데 지금 정각 사분 전입니다. 그래 사 분 동안에, 안 들립니까? 내가 딱 복종을 해야될세, 이거. 지금 약속한 대로 열시 반이 아직까지 삼 분 삼십 초가 지금 전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삼 분 남아 일찍 시작한 것은 조금 여러분들이 듣기 어색할지 몰라도 아마 이 말씀을 증거하고 가야 되겠다해서 지금 이 시간을 만든 것입니다.

 

어제 약간 하다가 중단했었는데 제가 알기로 찬송가가 제가 처음 믿을 때에 찬송가가 있었고 그 뒤에 OOO 목사님이 그 신편 찬송을 편집해 냈고 또 그 후에 합동 찬송이라고 있었고 또 그 후에 새 찬송이라는 찬송이 있었고 또 개편 찬송이라는 찬송이 있었고 또 나는 그 모르는데 군인들 부르는 무슨 찬송이라고 또 찬송이 있었고 이찬송이 아주 종류가 많아지면서 곡도 중요하지만 곡보다 그 내용가사가 더 중요한데 가사가 개인의 생각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성경에 위반된 가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마지막으로 나은 것은 통일 찬송이라 해 가지고서 이 통일찬송이 처음에 발기한 뜻은 한국에 모든 교회들이 찬송을 통일로 하자 해 가지고서 그래 통일 찬송을 만든 것인 줄 압니다.

 

그랬는데, 이 통일 찬송에 그 가사가 아주 많이 바꾸어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교파에서 유리는 이 가사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 통일 찬송을 쓰지 못하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그런 교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일하기 위해서 다른 교파에 있는 그 찬송 출관권 판매권을 다 통일 찬송부에서 사들였습니다. 제가 똑똑히는 모르나 제가 들은대로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과는 '그러면 그 찬송을 내 가지고 수입을 같이 가르자. 우리 그 찬송가로써 상당한 유익을 보고 있는데 그걸 없앤다면 우리의, 그 이익되던 그 이익을 혼자 도식하자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 할당을 하자.' 이래 가지고서 이익을 서로 할당하기로해서 그래 타협된 교파도 있고 아예 그만 돈을 얼마 주고서 사고 팔아가지고서 완전히 넘긴 그런 교파도 있고 이랬었습니다.

 

그 통일 찬송은 우리 진영에서는 서울에 있는 교회들이 제일 좋아합니다.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도 좋아하고 교인들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듣기 싫은 말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뭐 미국가서는 삼 년 있으면서 변질 안 되면 그 사람은 참 아주 인간의 중량을 가진 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삼 년 전에 다 옮겨 와야 되지 삼 년 넘으면 사람 완전히 버린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벌 말이 아니라 그 경험 가운데서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랬는데, 한국에서는 서울만 가면 교역자가 변해집니다. 자기네들은 안 변해지고 그것이 더 발달되고 더 성장됐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많이 변질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그만 세상에게 물이 들어서 속화된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이 통일 찬송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 통일 찬송과 모든 찬송들을 이렇게 열람을 해 볼 때에 통일 찬송은 요새 사람들이 좋아하고 듣기 좋아하고 수월하고 또 재미있고 한 그런 것을 위주로 해 가지고서 했고 그전에 찬송가들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써 그 은혜되는 면 또 교리와 신조에 틀리지 않도록 하려는 그런면에 주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통일 찬송을 보니까 많이 가사가 틀렸는데 모두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은혜가 되지 안하고 또 성경적이 아닌 그런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자꾸 이 사람들이 끌고 나가지만 실은 세상으로 자꾸 이거 사많이 끌고 나가는 것인데 우리가 이 찬송가에 무조건 자꾸 따라가서는 안 되겠다.

 

? 이 찬송가가 성경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성경과 거의 동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찬송에 있는 것이면 바로 그것이 성경에 있는 것과 그렇게 생각하는고로 이것이 찬송가 가사를 아무나따나 이래 고친다는 것은 우리 성경을 아무나따나 고친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 되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장기간 걱정을 했습니다.

 

걱정하나, 그 내용이 어떤지 그걸 자세히 살피지도 못해 보고 하기에는 안 돼서 그래 거게서, 그러면 이 찬송가를 그전에 있던 찬송가, 신편, 또 합동, 또 개편, 뭐 새 찬송 이런 찬송을 전부 주 모았습니다. 통일 찬송과 이래 모아 가지고서 보니까 통일 찬송이 이백 곡을 두고서 고쳐진 것 잘못 고쳐진 것을 이렇게 보니까, 이래서 찬송가를 주 모아놓고 한 장 한 장 열람을 해 봤습니다.

 

열람을 새 봐서, 꼭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오랫 동안 우리 가입에 익고 또 그 기억에 익고 또 곡에 익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취택하지 별 뜻이 없는데 왜 그 가사를 새로 고쳐서 새로운 그 어려움을 줄 게 뭐 있겠느냐 해서 아무래도 같은 뜻이라면 옛날 불러나오던 그 가사가 좋겠다 이렇게 그걸 하나 결정을 했습니다.

 

또 둘째로는 이 찬송가가 제이 성경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도리에 위반되는 그런 가사라면 이것은 고쳐야 되겠다 또 이렇게 그것을 결정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오늘 새로 고치는 데도 그 가사가 그새도 성경적이고 은혜적이고 또 우리의 구원에 유익이 되는 그런 면으로 해서 이것을 바로 한 번 좀 수정해 보자 해 가지고 그렇게 열람을 했습니다.

 

열람하면서 우리가 그 많은 찬송 뭐 몇백 곡 하는 그런 것이 다 전문가들이야 몇천 곡도 있을 것이고 다 하지만 우리 일반 무식한 교인들로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예배 찬송하는 것은 백 곡만되면 안 되겠느냐 이라다가 너무 범위가 적으면 안 되니까 또 백 오십곡으로 하다가 이백 일 곡까지를 우리가 넓혔습니다.

 

이백 한 곡까지로 넓혀 가지고 그것을 대조를 해서, 같은 뜻이라면 그것을 바꾸기만 위주로 해 가지고 같은 뜻인데 앞에 놓고 뒤에 놓고 또 그 토를 이 또 붙이고 저 또 붙이고 이래 가지고서 꼭 같은 뜻은 뜻인데 선후로 바꿔서 또 거게서 말 한 마디를 바꿔 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고치는 걸 위주로 해 가지고서 한 그런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이런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익혀 나오고 늘 불러 나오고 우리가 능숙해있는 그 가사를 취하자 해 가지고서 그 가사를 취해, 같은 가사면 통일에서 새로 고친 것보다 같은 뜻이라면 우리가 익혀 나온 그 가사를 하자 해 가지고서 고 친 것이 있습니다.

 

, 이거는 성경에 위반됐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자 해 가지고서 고친것이 있습니다.

 

, 이것은 말의 표현이 이게 아무래도 이보다 더 자연스럽지를 못하고 더 우리에게 은혜가 덜 되니까 이래 고치자 이래 가지고서 그가사를 고쳤는데, 대개는 보니까 신편 가사가 제일 정확하고 찬송 뭐, 나는 원어를 모르니까, 찬송 그 원문에 찾아 가지고 보니까 원문과 가까운 것을 할라고 원문을 대조해서 가깝게 하고 그래서 OOO목사님이 일 주간동안을 계속해서 원문 대조를 해 가지고 수고를 하고 그 후에 위원들이 한 달포 동안을 밤새껏 뭐 한시 두시까지 이렇게 계속을 해 가지고서 그 일을 다 대조해서 수정해 봤습니다.

 

그랬는데, 그 가사를 살펴 보니까 신편 가사가 제일 낫고 또 그 다음에는 새 찬송 가사가 그 다음으로 낫고 옛날 신편 나오기 전에 찬송가사가 좋은 게 많고, 같은 가사인데 말입니다. 이라고 통일에는 너무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이래서, 이백 일 곡을 우리가 취택을 했는데 이백 일 곡에 통일 찬송과 우리가 부르는 찬송과의 가사가 고쳐져서 달라진 것이 내가 헤아려보지 안랬는데 누가 헤아려 봤는가, 누가 헤아려 봤소, 그 수를? 안헤아려 봤지?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도 헤아리지 안해. 뭐하는 고, 젊은 사람들? 죄지을 생각만 하고 있어? 아마 내 생각에 대개 한 육백여 곳이 고쳐지지 안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육백 곳은 넘을 것입니다. 육백이 넘었으면 넘었지 줄지는 안할 것입니다. 이래서 고쳐서 그래 이백 곡을 해 가지고 예배 찬송에는 이 이백 곡만 사용을 하자 그래 가지고 우리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서울에 있는 교회들은 이 통일 찬송에 취미를 붙이고, 그거는 왜? 사람에 흥미있게 해 놨습니다. 신앙이야 옳았든지 성경에야 맞든지 안 맞든지 흥미가 있게 해 놨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문화인들은 다 그것을 좋아해서 시비가 낫습니다.

 

시비가 나서 교역자회에서, 그러면 찬송가 일장으로부터 우리가 지금 취한 찬송가의 가사와 통일 찬송가의 가사와 다른 것을 대조해서 통일 찬송에는 이렇게 해 놨는데 또 우리가 뽑아 놓은 찬송가는 저렇게 하고 하니까 이. 다른 것이 있는 것을 하나하나 대조를 해서 일장으로부터 대조해서 교역자들 전체가 모여 가지고서 해 봤습니다.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대조를 해 보자. 잘못 됐으면 고치자.' 일장으로부터 열장까지 대조했는데 대조한 것은 우리 찬송가에서 고 친 것이 다 첫째 성경적이요 또 우리가 과거에 익어서 입에 익고 기억이 돼 가지고 있는 가사들이요, 또 모든 가치적으로나 또 뜻으로나 모든 것이 좀 더 우월했습니다. 아주 완전 탁월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반대하던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이 반대를 하다가서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입이 오무라졌습니다.

 

거게서, 어떤 거 하나는 거게도 인제 '영 죽을 나를 살리려' 이렇게 해 놨는데 우리는 '영 죽은 나를 살리려' 하니까 그것도 틀렸습니다.

 

이래서, 또 하나 문제 난 거는 기억하고 있는데 '쉬 떠나지 마시고 부형같이 됩소서' 하는 것을 통일에는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그래 해 놨습니다.

 

그런데 거게서 말하기를 '부형같이 된다 말은, 예수 예수 내 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쉬 떠나지 마시고 부형같이 됩소서 하는 것을 그 통일 찬송에는 길이 함께 합소서 그렇게 해 놨는데 길이 함께 하는 것이 좋지 부형같이 되는 거야 그거야 불과 한 몇십 년 지나버리면 죽어버리고 없지 않는가? 이러니까, 그 부형같이 됩소서 하는 것보다도 길이 해께 합소서 하는 그 뜻이 낫다.' 그렇게 또 시비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거게 부형이라 하는 것은 몇십 년 살다가 죽는 인간을 말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들어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예수님을 말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있다가 없어지는 주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예수님이 그냥 길이 함께 합소서 하는 것보다도 부형같이 돼 가지고 함께 합소서 하는 그것이 낫다는 것으로서 그 가사를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거게 대해서 대조한 것을 책을 그때 몇 권 편집했어요? 오백권을 해 가지고 다 나갔습니다. 돈을 받고 해 가지고 이걸 가지고 가면 통일 찬송에는 어떻게 돼 가지고 있고 새 찬송은 어찌 돼 가지고 있고 우리 찬송은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데 이 가사가 어떻게 해서 이걸우리 찬송. 에서는 이것을 등용하게 됐다 하는 것을 그 보면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그런 책을 모두 내 줬습니다. 그거 한 권에 얼마씩 팔았어? 삼백 원씩 팔아서 그 이백 곡 찬송에 대한 가사 고쳐진 것을 낱낱이세밀히 기록해 가지고 그렇게 판 일이 있습니다. 나눠 준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그저 여게서 할 때는 앞으로는, 앞으로는 새찬송이니 통일 찬송이니 말하지 말고 이 찬송만 말하십시오. 말하면 그 가사를 아니까 가사 아는 분들은 가사 보고서 목록 가지고 능히 찾을 수가 있습니다. ?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판명하고 했기 때문에 자꾸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 좋게 하기위해서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좋게 할라다가 사람과 대립이 돼서 순교 당하는 것이다 그게 순교자이지 뭐 순교자들이 누가 자살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아무래도 이 속화를 방지하고 교리 신조를 바로, 이렇게 속화시켜서 타락시키는 이것을 방지하는 데에는 찬송가 이가사를 바로 성경대로 수정하는 것도 이것이 중요한 역사가 되겠다 해 가지고서 그래서 그렇게 고 친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마 각계에서 여게 참석하러 오신 교역자들이 많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만일 그분들이 그걸 원하시면 혹 지금 재고되어 있는 것이 있는지 몰라도 없으면 이제 가지고 있는 분들이 좀 댓가를 받고 줄 수도 있고 또 빌려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 그걸 가지고 가서 통일 찬송과 우리가 이제 편집한 이 찬송과 가사에 대해서 대조해 가지고서 이거는 통일이 나은뎨 왜 이거 여게서 이래 고쳤느냐 하는 그런 것이 발견이 돼 가지고서 말해 주면 우리가고 친 것이면 그걸 좋은 게 있으면 우리가 사과를 할 것이고 거게 대해서 공로에 대한 그런 사례를 할 것이고 또 틀리지 안했으면 이걸 채택할것이고, 우리가 고친 게 아니라 꼭 같은 뜻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써 나오던, 그 찬송, 우리가 외울 수도 있는 그 가사가 좋지 뭐할라고 앞에 있는걸 뒤에, 뒤에 있는 걸 앞에,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을 뒤바꿔 가지고서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하는 그런 것은 고쳐졌습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무슨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라는 그 교단에서 자기네들의 특색을 나타내고 자기네들이 무슨 뭐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와같이 한 것으로서 이렇게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는 것같아서 제가 지금 이것을 말을 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가서 대조해 보면 거게 표가 있습니다. 요것은 어느 가사에서 보고서 끌어왔다, 요것은 틀려서 고쳤다, 요거는 성경에 틀려서 고쳤다 그렇게 세밀하게 해 놓은 게 있으니까 그것을 보시고 평가하시고 여러분들도 꼭 우리와 같이, 이 찬송가를 자꾸 이래 인간 비위에 맞춰 가지고서 성경을 떠나서 가사를 고쳐 가지고서 이렇게 신앙들을 혼합시키고 이 속화시키는 이런것을 방지하는 것이 찬송에서 방지해야 되겠고 성경 번역에서. 방지해야 되겠고 주석에서 버지해야 되겠고 모든 이 설교하는 데서 방지를 해서 하나님이 똑 우리를 구원하는 정확 무오한 그런 진리를 같이 보수하고 같이 귀중히 여겨서 증거하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되었으면 참 소원입니다.

 

그쯤 아시고 그렇게 그 면을 여러분들이 그저 악평도 하지 말고 그저 맹종도 하지 말고 자세히 그것을 대조해 보면 분명히 진가가 나옵니다.

 

저는 뭐 무식해서 장담은 못하지만, 저도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으로 알기 때문에 제가 아는 대로 비판해서는 옳다 하는 것을 채택을 했고 또 그 원어 아는 사람이 원어에 따라서 근본 찬송. 그대로, 남의 찬송이면 그 저자한 저자의 찬송 가사를 그대로 가져 오는 게 좋다 해 가지고서 그대로 가지고 옮긴 것이고 그런 것이니까 그 면을 잘 살펴 보시고 좋은 것을 평가적으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여기서 증거하는 가운데에, 저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무슨 실수를 하는 고 하니 성경 구절을 말할 때에 혹 성경 구절이 틀리는 것도 있으니까 그런 것은 저한테 말해 좋도 좋고 안 해 좋도 요 성구는 틀렸으나 요 뜻은 성경에 있는 뜻이다' 하는 것으로서 또 이해를 하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재가 교리와 신조를 말할 때에 그것이 일반적으로 다 공통되어 있는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안하고 다르다 하는 것은 그런 것을 발견하면 저에게 말해 주시면 내가 말한 게 틀렸으면 내가 선생님으로 모셔서 내가 참 달게 가르침을 내가 받을 것이고 만일 또 그분이 잘못 알고 틀렸다면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옳은 것을 찾아서 구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냐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으로 삼키지 말고 온 세상에 두어도 다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의 말씀을 간단한 육십 육 권에 축소시켜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는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안하면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그 내용에 구바와 전부를 깨달을가 없다 그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덧붙혀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자기가 구경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안 되고 또 자기가 처세하는 데에 상식으로 가져야 된다는 것으로 가지는 것도안 되고 또 이 말씀을 다른 데 증거를 해서 이 말욜 팔면 돈도 나오고 옷도 나오고 모든 것 나오니까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해서 대우받기 위해서 하는 그것도 못쓸 사람, 안 되고, 그저 이 말씀은 우리의 지식이 이 말씀대로의 지식이 되라고 주님이이 말씀을 주신 것이고 이 말씀대로의 생활을 가지라고 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이고 또 이 말씀과 꼭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게서 요것을 이 말씀 듣고 읽고 하는데에서 먼저 작정 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대로 이미 여러 번 들었으니까 이 말씀대로 내가 되어져있나? 내가 이 말씀을 지금 구경만 하고 만 사람이가, 내 상식으로만 가지는 사람이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말씀을 증거하는 이런, 증거하고 대우받기 위해서 팔아먹는 그런 것으로서 내가 지내 나오는 사람인가? 그러면 내가 이 말씀대로의 내 지식을 정리해서 이 말씀으로내 지식을 삼은 것이 얼마나 되며 또 이 말씀대로의 내가 노력해 가지고서 내 생활한 것이 얼마나 되며 또 이,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진것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이 말씀 나올 때마다 대조를 해 가지고서 이 소망 가지면 이게 뭐이냐? 사람병 고치는 것인데 사람병 고치는 것이라 사람병 고쳐지고 나면 육체병 그까짓 거는 저절로 고쳐지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병이 고쳐져서 하나님이 일시에 그 사람병 고친 걸 보고 하나님이 기뻐해서 육체의 병을 고쳐 줬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 뒤에 죄를 지으면 다시 더 큰 증세가 발동돼 가지고서 나았던 것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 주시면 그거는 다시 재발이 안 돼야 되지 재발되는 것은 조짜배기로 고쳐진 것이지 하나님이 고쳐 주신것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이미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마라 죄를 범하면 더 큰 중세가 나타날까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집회에 모든 데에서 마음병 고친 사람, 사람병 고친 사람은 수가 없을 것이고 거의 다 고침을 받았었는데 사람병 고쳤다가 다시 독약을 먹고서 그만 죽어버리고 죽어버리고 이래서 사람이 모두 고침 받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뭐 거의가 다일 것이고 또 육체병 고친 사람도 뭐 수천 명입니다. 수천 명이 고쳐져 가지고서 그대로 신앙 생활을 계속해서 고침이 나음이 계속된 사람도 있고 나은 것이 다시 죄를 지어서 재발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는데 그러면 고쳐 준 것이 죄를 짓든지 말든지 그는 다시 재발이 안 되는 것이 좋겠습니까 죄를 지으면 재발되고 또 회개하면 고쳐지고 이렇게 자꾸 변동되는 게 좋습니까 변동 안 되고 고친 이후에는 어떤 죄를 지어도 그 건강은 그대로 유지되도록 그렇게 되는 것이 좋습니까 어느 것이 좋습니까? 변동되는 게 좋습니까 변동 안 되는 게 좋습니까? 변동되는 것이 좋다면 냉정스럽게 양심적으로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 변동되는게 좋습니다. 요것을 내가 일찍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작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회개하는 요 일을 내가 강조해서 하나님에게 배은 하는 일이 되지 안 하도록 그렇게 하겠으니까 노를 풀으시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제가 장기간 뭐 늘 해 나옵니다. 집회 끝나면 집회 다가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기도를 늘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내가 요것을 증거해서 모든 사람들이 은혜 받은 것 버리고 배운 것 버려서 배은 하는 사람의 그것을 반성, 하도록 제가 자꾸 많이 말을 하겠습니다. 노를 푸시고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제가 아마 매일 한 번씩은 계속해서 했을 것입니다.

 

이라니까, 이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와 이 말씀과, 바로 말씀이면 실상입니다. 이 말씀은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셔서 이 말씀이 엿새 동안에 우주와 안에 모든 만물을 다 지으셨습니다. 이 능력의 말씀이 지금도 오늘 우리에게 은 것은 그때 천지 창조한 말씀보다 능력 없는 말씀이 아니고 그때보다, 그때와 같은 능력 있는 말씀인데 그때보다 고급을 창조할라고 왔습니다.

 

그때 창조한 것들은 모든 것은 변해지지만 이번에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하여서 온 이 말씀은 변동되지 아니하는 것을 창조하시고 이제 그것을 몇 번이든지 연단시켜 가지고서 하나님의 공심판에도 무사히 통과되고 인정받는 그런 것을 만드실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 새창조의 말씀의 능력보다도 더 고귀한 창조를 하러 오신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에서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고침받을걸 고침받고 여게서 또 받은 이 말씀을 돌아가서 이 말씀 가지고서 개별적으로 노력을 해서 고칠 것을 고침받도록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게 1절에 보면,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러니까 이 본토라 말은 그 땅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본토라는 말은 그 속에 넓은 범위는 땅에 것을 말해, 물질을 말합니다. 땅에 물질. 물질에 네가 붙어 있는 그 접촉과 결합으로서 네가 물질에 떨어지지 못하고 물질에 붙어 있음으로써 물질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물질의 종이 되어 있는 그 물질 상전을 이것을 네가 떠나야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는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데 주인 하나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는 물질이라 해서 네가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한 주인은 물질을 말했습니다.

 

이래서, 물질을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나 자기를 인도하는 데에나 자기를 주관하는 데에 하나님보다 더 강하게 주관하고 있는 그게 있으면 그 사람은 물질주의요 물질에 속한 사람이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 문제를 이렇게 하나님보다 더 밀접하고 하나님보다 자기에게 권위있게 가진 그런 물질은 다 서로 이별해 버리라, 떠나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또 아비 친척 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인간에게 정든,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네가 사람에게 속하고 붙고 또 너를 주장하는 권세가 하나님보다 그것이 네게 대해서 권세가 더 많아서 네가 사람의 종이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을 완전히 거게서 해방당해 가지고서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물질의 종도 되지 말고 이제 하나님이 인도하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할 때에 가다가도 물질이 못 간다하면 그만 못 가고 사람이 못 간다 하면 못 가고 그러기에 그것을 가리켜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명하는 곳으로 가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보고서 또 똑똑히 그렇게 알 수가 있느냐 하면 그 다음에 5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떠날 때에 자기가 그곳에서 모은 모든 물질을, 그곳에서 모은 소유, 그곳에서 얻은 소유, 자기가 살고 있던 그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소유, 가지고 있는 소유 그 소유를 다가지고 떠났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소유를, '본토를 떠나라' 하는 것은 본토에 속한 것, 본토에 거깅 논도 밭도 있고 자기의 모든 이런 '모든 동산도 있고 부동산도 있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것을 떠나라 했는데 여게 보니까 가져 갔으니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떠날 때에 아무 방해되지 안하는 그런 것은 다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에 방해되지 안 하는 물질은 다가지고 떠났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에 방해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데리고 따났습니다. 여게서 우리가 잘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순종하는 이 순종 생활을 할라고 하는 데에 순종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이라든지 또 사람이라든지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을 떠나지 안하면 하나님을 떠나야러겠고 하나님을 떠나지 안하면 그 사람을 떠나야 되니까 둘 중에 하나를 떠나야 한 군데로 가지 그리 안 하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미련해서 에누리를 해서 그렇지 실은 하나님 인도를 받는 데에는 하나님 인도에 방해되고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하고 하는 그런 모든 사람이나 소유나 그런 것은 완전히 해결해서 내가 끊어버려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 봅니다. 저 장로는 돈 장로다. 저 목사는 돈 목사다. 저 사람은 마누라 사람이다.

 

저 사람은 자녀의 사람이다. 형제간 사람이다. 저사람은 친구의 사람이기 때문에 뭐 예수님을 떠나면 떠나고 진리를 어겼으면 어겼지 그 친구 배반하지는 못한다, 그 애정을 떠나지는 못한다, 그 사업이나 소유나 그 애착은 떠날 수가 없다 하면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우상 섬기는 사람입니까? 우상 성기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까? 저 뒤에는? 거게서도 대답을 해. 늦게 와서 뒤에 떡 앉았는데 거게서라도 발밧게 서둘러야 앞으로 올 수가 있지. 발밧게 서둘면 이다음에 오후 시간에는 여기 앞에 와서 앉아요, 그만. 이러니까, 하기는 어떤 사람은 여기 와서 그만 첫시간부터 아예 굶어요. 굶고 대소변도 하러 안 가고 그만 한번도 하러 안 가고 굶고 여기 앉았는 거야 그거야 어짭니까? 그거는 뭐 그거는 들어내지도 못하고 어짤 수가 없지.

 

이래서, 이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떠나지 안하면 주님의 인도를 따를 수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여게서는 짤막한 간단한 데서 말하니까 그렇다고 인정이 돼지지만 자기 그 생활의 넓은 범위에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그 물질, 인간, 하나 둘만 있는 게 아니라 가를 쌓아 놓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목사도 되고 장로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는 다 잡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잡것이오. 두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에게 하나님의 인도를 절대 받지는 못합니다. 받을까 싶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노력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도 애를 쓰고 계시는 것이지.

 

냉정스럽게 그것을 여러분들이 찾아 보십시오. 만일 그것을 해결 지은 사람이면 그 사람이 벌써 자유하는 자라 그렇게 신앙의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자유라 말은 하나님께 순종 자유라 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라고 했는데 순종하지 못하게 어떤 것이 방해해도 그 방해를 받지 안하고 순종을 자유로 할 수 있다는 그걸 가리켜서 신앙 자유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 자유는 누가 막습니까? 제가 막지.

 

이러니까, 그것을 해결을 지우고 그걸 해결 지워야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을 따라갈 수 있다 하는 요것을 여게 변동하지 못합니다. 요거 변동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자기 문제를 해결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해결을 지워야 됩니다.

 

'아이구 그라면 예수 믿다가 거지될세? 예수 믿다가 이 세상에서다 고독해지겠네.' 왜 고독해져? 예수 믿는 데에 방해하지 안하고 따라갈 수 있는 물질만 가져 가면 그거는 자기에게 보배요 참 요긴해서 예수 믿는 데에 도움이 되고 아주 쓰임이 되고 필요한 보배지만 믿는데 방해하는 물질 그놈은 가져가면 제가 그것에게 종만 되고 지옥만 만들고 고통만 만들고 멸망만 만들지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이래서, 이렇게 따라가면 주님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면 우리가 망할것인가? 그 다음에 말해 놨습니다.

 

 

'가라'.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룬다는 것은 자기가 자녀를 많이 낳아서 그 큰 민족 이루는 것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옴으로써 큰 민족을 이루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어짜든지 사람 부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 부자가 된다 말이오.

 

사람 부자되는 비결은 성경에 말해 놓기를 사람의 뜻을 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 는 것이 사람 부자가 되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유일한 법칙이오. 유일한 법칙이라 말은 하나 외에는 없는 이 법칙뿐이라 그말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그러면 이렇게 이 문제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그 걸음에서 자기가 큰 민족이 돼서 사람 부자가 되겠고, 민족이 돼서 사람 부자가 되겠고, 자기 혈육으로 낳은 사람도 있지만 자기를 찬동하는 자기 사람이 짤이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요새 국회의원들도 보니까 자기 사람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물질을 들여서 자기 사람 만들라고 애를 쓰는데, 이 큰 민족을 이룬다 말은 자기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부자가 된다 그말입니다. 이 국회의원들은 둔 주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요.

 

이러니까, 자기 혈육으로 낳은 자손들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을 자기를 따라서 살 길을 갈라고 애를 써서 자기 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말하니까 말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자기의 모든 미래를 그에게 맡겨 놓고 그의 인도대로 지도대로 가기 가는 것이 행복이라고인정받고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말입니다.

 

'창대케 하리니'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네 활동이 대단히, 불을 창()자 큰 대(), 아주 붇고 붇고 불어서 크게 한다.

 

그 아브라함은 조그만한 산골짝에 나 가지고서 죽은 분인데 그분의 한 일이 어떻게 창대해져 놨든지 우리에게 까지 다 왔습니다. 이래서 나도 누가 묻기를 너 누구 자손이냐 하면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을 누구 자손입니까? 다 아브라함 자손이라.

 

 

그분의 이름이 창대케 됐어.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한 것이 털끝만치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 우리 생각을 초월하게 그분은 신실히 역사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을 이렇게 믿어야 됩니다.

 

이분 믿는, 이분을 이렇게 신실한 것으로 알고 그분이 말씀한 대로 물질 문제, 인간 문제를 다 해결지우고 주님에게 순종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돼서 순종해 나가면, 순종해 나가면 '네 민족을 큰 민족을 만들고' '복을 받아서 네 이름이 창대케 하리니' 아주 그 운동이 크게 번성하고, 창대라. 말은 아주 큰 걸 말합니다. 많이 창대케 되리니, 이러니까, 처음에 보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는 이것만 보고 하나님 앞에 낙망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밑에 조금 내려 보니까 그라고 나서 내 지시를 따르면, 그거 아니면 지시를 못 는다 말이오. 지시를 따르면 이렇게 이름이 창대케 되고 또 복을 받아서 그 이름이 아주 크게 된다 이렇게 했는데 처음에 두 가지 그 해결을 지우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해결 지우고 주님 는 걸음은 이렇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걸음은 주님의 인도를 는 걸음은, 주님 인도하시는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걸음은 말이오. 주님 인도대로 따라가는 걸음은, 주님 인도대로 하는 그 걸음은 어떤 걸음이냐? 첫째 '네가 큰 민쪽을 이루고'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서 네 이름이 창대케 하리니' 창대케 된다. 요것을 봐야 됩니다.

 

주님의 길을 는 그 길은, 주님의 인도를 는 길은 민족이 창대케 된다, 내 민족이 창대케 된다, 복을 받아서 내 이름이 아주 창대케 된다, 큰 민족을 이룬다.

 

주님 인도 받는 데는 이렇다 말입니다.

 

인도받는 데는 이러니까 정반대도 말할 수 있어야 안 됩니까? 성경에는 짝없는 말은 없다고 했는데 다 짝이 있습니다. 배필이 있습니다. 이 인도 받으면 이러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인도받으면 이리되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지 안하고 인도받지 안하면 어떻게 된다 말이지요? 민족은 어떻게 돼요? 민족은 어떻게 돼요? 민족은 어떻게 돼요? O조사님, OOO? 쉽지 뭐. 창대 반대면 오그라져서 아무것도 없어 버리지 망해 버리지. 창대 반대는 오그라져 망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택함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딴 종자요. 일반 종이 아니고특수종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본토 친적 아비 집을 떠나라는 요 명령을 어기고 주님위 인도를 지 안하면 민족은 다 창대의 반대의 다 소멸되고 만다. 소멸되고 만다. 하나님의 복 대신에 저주받는다. 내 이름이 크게 창대해질 게 아니라 내 이름이 바짝 오그라져서 아무도 모르는 그 점점 내 이름이 멸망을 받는다.

 

, 어 말이 이게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OO? 그새 성경에 있지? 내나 여게 있지 안해요? 이라면 이리 된다 했으니까 그리 안 하면 또 저리 되지 그런 것 아니요? 성경에 짝없는 말은 없다 했으니까 순종하면 이리 되니까 순종 안 하면 저리 되지 뭐. 여게 다있지 않소?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렇게 순종하는 자는 복의 근거가 됩니다. 복의 뿌럭지가 돼요. 복의 기초가 된다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택한 자들 기초위에서 다 복을 받지 다른 데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세상에는 잘된다고 복이 아니라. 이 기초 위에서 복 받은 것은 영생이요 다 온전해지는 것인데 그거 아닌 거는 전부 멸망이라. 오늘 있다가 내일 멸망하고 또 좋았다가 홍포 부자와 같이 그렇게 거지되고 가난해지고 비참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 다음에 3절에 말하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추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면, 이러니까 이 걸음 걸어가는 사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님이 지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해서 가는 자는 어찌 됩니까? 이렇게 가는 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뺄쭉나다고 욕을 하면 어찌 됩니까? 욕을 하면 어찌 됩니까?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래 놨기 때문에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돼. 그럴 때에 '저거 내가 주님에게 순종해 가는 데에 나를 보고 저주하니까 하나님이 저거 저주하겠다' , 그라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까 '내가 순종해 가는데 저사람이 저주를 하니까 저 사람이 저주해서 망할 터이니까 이거 큰일났다' 주님에게 '당신의 계약대로 내가 주의 뜻대로 가는 나를 보고서저주하니까 저 사람이 반드시 저주 받아서 망할 터인데 주님 이거 저주시켜서 망하면 안 되니까 불쌍히 여겨서 그 사랑으로 하여금 저주받지 안할 수 있도록 회개시켜 주옵소서' 이렇게 하는 것이 순종입니까 뭐이 순종입니까? 그렇게 하는 게 순종이라.

 

그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새 주시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게 됩니다. 저주하게 됩니다.

 

저주하게 되니까 '그거 참 이제 배웠다. 우리가 진리대로 바로 갈때에 이렇게 핍박하고 대적하고 저주하면 그 사람이 망하게 하는 이치는'그 사람 망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그 사람을 하나님이 망쳐 주시지 만일 '그 망하면 좋겠다' 꼬시게 생각하면 망쳐 주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서 그 사람이 복을 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였습니까?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더 고급 고등범죄로 봅니다. 고등 범죄. 아주 고등 범죄로 봐서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니까 우리라는 이 사람이 방편만 가지고도 안되고 지혜만 가지고도 안 되고 내라는 사람이 변화가 돼져야 내 속에 그런 것이 안 나오지 내가 변화되지 안하면 암만 안 할라 해도 그런것이 자꾸 문뜩문뜩 나오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사람이 고쳐져서 변화받지 못하면 그것은 다 자멸하는 행위가 뭐, 아침부터 저녁까지말한다는 건 전부 자멸하는 행위입니다. 들어보면 전부 자멸하는 행위라.

 

하나님이 오래 참아 그렇지 참아도, , 참아도 '죄가 장성한 즉' 어떻습니까? 사망을 낳는다했습니다. 그 삐뚤어진 일을 자꾸 하고 하고 나면 오새 참지만 끝없이 참아지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회개할 수 없도록 그렇게 전멸을 당하는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러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나를 저주한다'하는데 저주에 대해서, 그런 데 대해서 우리는 좋은 실수 없는 방편이 있기 때문에 이 방편을 써야 되지 잘못 방편 쓰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저주하는 것이 그 저주가 내게 저주로 오는 수도 있고 그 저주가 축복으로 바꾸어 오는 수도 있고 그 저주하는 것이저주는 저 사람에게로 오고 축복으로 바꾸어 오는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축복한 것이 축복이 축복으로 안 오고 저주로 바꾸어 오는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어디 있느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그것으로써 나를 축복하는 사람도 나도 그도 축복으로 다 오게 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을 사람이 되어지면 내게 축복하는 것도 저주로 바꾸어 오고 저주도 저주로 오고 그렇게 해서 전부가 다 저주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는 좋은 일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할라고,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에게 속한 자손들은 복되게 할라고 애를 쓰고, 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도 복되게 할라고 애를 쓰고, 그 사람이 복을 받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복되게 하는 방법을 하기를 그 사람에게 직접으로 무엇을 주든지 그 사람에게 교훈을 해 가지고서 '네가 이라면 저주받으니까 이런 짓 하지 말고 복받을 일을 해라'자꾸 이렇게 말할라고 해도 말해도 안 듣습니다.

 

성경은 쉬운 것을 가르쳐 놨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되도록 저주받지 않도록 자꾸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듣거든, 남을 가르치는 것이 쉽습니까 자기 가르치는 게 쉽습니까? 누구 가르치는 게 쉽소? 남 가르치는 것보다 자기 가르치는 것이 쉽습니다. 사람들은 뭐 남의 말은 식은 죽먹듯이 하기 때문에 남 가르치기는 가르치기 쉬운 줄 알지만 실상이 이루어지는 데는 남을 가르쳐서 되구로 하는 것보다 자기 가르쳐서 되구로 하는 것이 쉽습니다. 말이야 남에게 하는 말이 쉽지요.

 

이래도 실상을 만들라고 하는 데에는 자기가 자기 가르치는 그것이 쉽지 남을 가르친다는 거는 심히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에는 네가 어려운 남 가르치는 그것을 남을 가르칠라고 애를 쓰는 것보다도 네가 너를 가르치면 남은 저절로 가르쳐진다. 네가 버릴 걸 버리고 순종할 것을 순종하고 이렇게 하면 네가 복의 기관이 돼서 너 하나 잘하니까 너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 네 가족들도 복을 받고 자녀들도 복을 받고, 그게 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을 것이지만 너로 인해서 복을 받는다. 또 세계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으리라.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버리라는 것 버리고 행하라는 것 행하고 이렇게 하면 복의 기관이 돼서 자기 한 사람이 그렇게 하는데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천하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고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 올리고 하나님께서 대우해주는 것을 여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와 관련되는 많은 사람, 자기와 관련되는 많쓴 사람 그 사람에게 대해서 울 일도 생기고 걱정할 일도 생기고 염려할 일도 생기고 단속할 일도 생기고 뭐 꽉 찼습니다. 그 사람을 멸망하지 않고 구원 얻도록 할라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힘이 드는데 주님이 좋은 법칙을 가르쳐 놨습니다.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만일 백 명이라 합시다. 백 명 그것을 사람 만들라 하니까 참 힘이 듭니다. 굉장히 힘이 듭니다. 힘이 드는데 백 명을 가 가지고 백 명에게 가 가지고 자꾸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 타이르기도 하고 권면도 하고 이렇게 또 도와 주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이렇게 해서 그것을 고치라 이랬는데 그 백 몇 가서 고치는 것이 쉽겠습니까 너만 하나 내가 만족하도록 고치면 그 모든 것은 내가 고쳐지게 하겠다 하는 그것이 쉽습니까? 이게 쉽지 안해요, 이게 쉽지 않소? 이러기 때문에 창세기 121절로부터 이 3절까지에 내리 읽어보고 사람들은 다 위로를 받고 기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거 암만 해도, 말해야 암만 해도 안 듣고 뭐 매를 때려도 안 되고 아무래도 안 되는데 안 되는 저것을 되는 방법은 뭐이냐 하면 내가 나만 바로 고치면 저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속한 것은 다 바로 고쳐주신다. 이 방법 준 것이 쉬운 방법입니까 어려운 방법입니까? 쉬운방법이오. 가장 쉬운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속한 자의 이 모든 고쳐지는 것이 자기 고침에 다 거기에 피동되어진다는 것을 요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나이로서 나이 많은 사람이 근본이 되고 나이 적은 사람이 거게 소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근본이 되고 자녀가 소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는 보면 신앙 가치로 따져서 그렇게 합니다. 아들이 그 가정에 신앙의 호주일 수도 있도 딸이 호주일수도 있고 아버지가 호주일 수도 있고 손자가 호주일 수도 있고 종이 호주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람 나라에 그 나아만 대장 집이 있었는데 나아만 대장 집에는 누가 신앙으로 호주였습니까? 계집종이 호주였습니다. 그거는 나아만 대장의 집에만 호주였습니까 아람 나라 전국에 신앙의 호주였습니까? 전국에 신앙의 호주가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외모야 이렇고 저렇고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 순종에 그 어떻게 하며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안 하는 이 명령 순종, 당신에게 믿고 순종하는 여기에서 가치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모두 어떤 사람들 뭐 참 죽을라고 해요. 자살할라고 하고 죽을 라고 하고 저거는 뭐 가둬 놔도 소용 없고 굶겨도 소용 없고 매 때려도 소용 없고 뭐 아무래도 뭐 소용 없고 소용 없다고서 탄식하고 걱정하는 데에 그때에 그분을 참아라 견뎌라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경험한 대로, 이제 나도 내가 이 방편을 알면서도 그걸 바로 하지 못해서 내게 있는 모든 속한 모든 교인들이나 자손들이 복을 못 받고 있는 것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아서 이렇게 할라고 장 애써 가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점점 복을 받아 간다 그렇게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부모에게 이 창세기 121절로부터 3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읽어 줘서 그에게 전해 주면 그분에게 복음이 됩니다.

 

그분이 복음이 돼서 그분이 이 말씀을 보고 이제는 자기 밖에 있는 고칠 것 그것을 고칠라고 애를 쓰는 그 방편을 바꾸어 가지고서 자기를 고칠라고 애를 써 봅니다.

 

분명히 고치면 고쳐진 것만치 거게 소속한 것은 고쳐지고야 마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뭐 백 번 경험해 봐도 들어맞고 천 번 경험해 봐도 들어맞습니다.

 

딱 들어맞습니다. 틀림없이 들어맞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방법을 쓰고, 이래서 아브라함이 떠날 때에 하나님 명령 순종하는 데에 거리끼지 안하고 하나님 명령 순종하는 데에 다 협동이 되어지는, 하나님 명령 순종하는 데에 순종하는 사람은 다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방해하지 않는 사람은 다 그것은 자기와 하나이요 방해하는 사람은 그것은 자기가 그리 끌려가면 안 되고 자기가 거게 끌려가면 안 되고 그를 자기에게 끌어 붙이도록 하면 됩니다. 끌려 가면 안 됩니다.

 

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에 그들이 따라오지 안할라 해서 떼놨습니까 따라올라 하는 것을 떼놓고 왔습니까, 어째요? 따라올라하는 걸 떼놓고 왔습니까 따라오지 않는 것을 떼놓고 왔습니까? 따라오지 않는 걸 떼놓고 왔습니다. 따라오지 않는 것을 떼놓고 왔어, 그러면, 떼놓고 왔으면 다시 그것들은 멸망으로 그만 집어 던집니까 그걸 떼놓고 왔는데. 그것들을 구원하는 방법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까 안 주셨습니까? 방법을 가르쳐 줬소 안 가르쳐 줬소?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이 창대케 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너를 대적하는 자는 망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다 축복받아 흥왕하케 되리라.' 이제 복의 기관이 됐으니까 그 안 된 그 가족도 뒤에 저희들이 얼마든지 구원 얻을 수 있는 그런 길은 열어 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가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에 오는 물질은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이니까 내겁니까 나는 하나님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왔으니까 그 오게 한 것은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그것이 있게 했기 때문에 내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예수님이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산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써 우리를 피로 값주고 샀으니까 나를 하나님께서 값주고 샀으니까 내게 있는 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라.

 

이렇게 성경 도리를 바로 깨달아서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함으로써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것이요 내게 준 것이요 하나님의 것을 내가 보관해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내게 온사람이나 내가 어길 때에 온 사람이나 어길 때 얻어진 물건이나, 하나님말씀을 어길 때에 온 사람이나 온 물건이나 그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누가 준 것입니까? 누가 준 것이지요? O권사님, 누가 준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에 내게 온 사람이나 물질 그것은 누가 내게 줘서 온 것입니까? 마귀가 내게 줘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시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취해야 됩니까 안 취해야 됩니까? 안 취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나와 접선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은 취하지 안해야 되겠다' 요것만 가지는 것도 굉장한 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것 하나만 해도.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오는 물질은 마귀가 주는 것이니 저주를 싸고 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요거 하나만 지키는 사람도 그 사람은 물질에 대해서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뭐 얼마나 정금 같은 보배이고 얼마나 큰 말씀인지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이걸 예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예사로 아는 사람들은 그 사람은 제가 뭐 목사든지 장로든지 물질의 종이지 아직까지 물질의 종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나 물질이나 들어오는 것도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은 주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의 문, 주님의 문, 요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 말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 주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 그것이, 말씀을 통하고 주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그것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요 내게 맡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소중히 알아서 그것을 잘 관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통해서 오는 것은 곧 말씀 통해서 오 는 것이요 대속을 통해서 오는 것인데 대속에 걸리게 오는 것은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그걸 냉정스럽게 물리쳐야 되지 물리치치 안하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습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은 세밀히 가르치고 있는데 아무나 따나 '예수 믿는다' 하는 그 말 한 마디 가지고서 이 일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래서, 세밀히 말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것은 안된 말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자꾸 껍데기를 벗기고 벗기고 벗겨서 온전하고 참된 것을 자꾸 잡는 것이라 그말이오. 온전 안 하면 온전함에 나아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뭐 마구잡이로 우리 믿는 신자들을 마구 통으로 삼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여게서, 주님의 뜻을 어겨서 되는 사업, 뜻을 어겨서되는 직장, 뜻을 어겨서 오는 재물, 뜻을 어겨서 성공하는 성공 이 모든 것은 마귀가 주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어겼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그 사람이 그 죄짓지 안하고 자꾸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그걸 얻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솔빡 받았을 터인데 그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슬금슬금 주일을 범하고 슬금슬금 죄를 지으면서 그랬으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속에 뭣이 끼어 들어 왔습니까? 뭐이 끼어 들어 왔소? 마귀가 끼어 들어 왔어 이렇게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 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요 내게 필요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들어 오는 것은 나에게 백해 무익의 저주이지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일에도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왔으면 그것이 뭐이냐 하면 그 축복의 속에 들어 있는 그 병입니다. 그 악마요. 그게 들어서 전체를 더럽힐 수 있습니다. 그거를 회개해서 거게 대한 수입은 홀빡 들어서 던져 버려야 됩니다.

 

요거는 범죄했기 때문에 아예 이 거는 뭐 구제한다 이라며 뭐, 다 없애버리고 어짜든지 자기를 깨끗게 해야됩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이랬습니다. 어짜든지 우리를 깨끗게 하고 또 깨끗게하고 깨끗게 하고, 빨래하는 사람도 아주 충충하게 진흙물이 들어 있는거 그저 아시로 진흙물만 빤 것도 빨래한 거지만 거게서 좀 더깨끗하게 좀 더 깨끗하게 나중에는 때가 하나도 없이 되는 것이 깨끗 아닙니까? 자기를 자꾸 깨끗게 깨끗게 하는 것, 이 처음에는 자기를 깨끗게한다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할 때에 괴롭소. 자기를 새끗게 할라고 할 때에 괴롭습니다.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할때에 괴로울 때는 그 괴로워 하는 것은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자기를 깨끗게 할라 하면 괴롭습니다. 옛사람이 왕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괴롭소.

 

그러나, 애를 써 가지고 오랫 동안 해서 자기를 깨끗게 해서 옛사람은 빈약하고 새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그런 단계에 올라가게 되면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하면 조금 걱정됩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할라 하니까, 이 깨끗하게 할라 하니 사업에도 걱정이 되고 물질에도 걱정이 되고인인 관계도 걱전이 되고 걱정이 되는데 큰 걱정 안 되지만 조금 걱정됩니다.

 

조금 걱정되는 그것은 왜 많이 걱정 안 되고 조금 걱정이 됩니까? 왜 많이 걱정 안 되고 조금 걱정이 됩니까? 옛사람이 조그만하기 때문에 골케골케 해 가지고 조그만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됩니다. 조금 걱정이 되고 난 다음에는 기쁩니다.

 

자기를 깨끗게 할라 하면 기쁩니다. 사업도 모든, 것을 다 깨끗게 할라 하면 기쁩니다.

 

기쁜데 처음에는 조그매 기뻤는데 차차차 오랫 동안 지나가니까 깨끗게 하는 것이 많이 기뻐집니다. 기쁜 것은 새사람이 기뻐하는 것입니까 옛사람이 기뻐하는 것입니까? 새사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같이 깨끗함을 하는 데에 깨끗합 하는 거게 대해서 기쁨이 약할 때 있고 기쁨이 충만할 때 있으니까 기쁨이 약할 때 있는 것은 무슨 증거며 기쁨이 충만할 때는 무슨 증거입니까? 기쁨이 충만할때는 무슨 증거인고 하니 새사람이 장성해졌다는 증거요 기쁨이 아직까지 빈약할 때는 새사람이 빈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죄를 짓지 안하고 의롭게 살 때에 걱정이 많이 되는 사람 있고 적게되는 사람 있는데 그 의롭게 살라고 할 때에, 저 이 뭐 석 달인가 넉달인가 된다 하는데 그라면 잠 오지. 그래도 그저 아이 밴 여인에게 화가 있다 이랬어. 아이 밴 여인에게 화가 있다. 그렇다고 예배볼 때 졸고 하면 화 있어. 어쩌든지 그러니까 아예 아이 밸라면 그것도 책임져야 돼요. '아이 배면 아이 밴 여인에게 화 있다 했으니까 아이 밴 표가 안 나야지' 이렇게 애를 써야 되지 그냥 아무나따나 아이만 배가지고 그라다가는 큰일나요. 우리가 과거에는 그걸 모르고 했는데 이제 그것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사는데, 의롭게 사는데 어떤 사람은 근심이 조그매 되고 어떤 사람은 의롭게 살라 하니까 참 뭐 죽을 지경이고 막 이거 이 뭐 탄식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의롭게 사는데 고통이 많은 사람은 무슨 연고입니까? 옛사람이 아직 장성한 연고입니다. 의롭게 살았는데 고통이 조그매 오는 것은 그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옛사람이 어리기 때문에 반대되는 놈이 약하니까 조그매 어려움이 옵니다. 고통이 옵니다.

 

의롭게 살았을 때에 기쁨이 충만한 사람 있고 의롭게 살았을 때에, 저 사람은 뭐 기쁨이 충만하다. 참 기쁘다. 기쁘다. 여기 요번에, 집회오니까 기뻐서 좋아서 ', 기쁘다, 기쁘다. 참 주여 감사합니다.' 자꾸 이래 쌓는데, 기쁘다 하는데 한 사람은 오니까 '요번에 집회에 안 옳라고 했더니만 하도 구역장이 권면해 쌓아서 왔으니까 오니까 좋기는 좋다' 이라면서도 저 사람은 좋아서 못 견디는데 이 사람은 뭐 '좋기는 좋다' 좋은 게 조그매 있습니다.

 

? 이게 옳은 일인데 옳은 일 하는데 어떤 사람은 기쁩이 막 충만한데 어떤 사람은 기쁨이 조그매 있습니까? 그거 뭣 때문입니까? 충만한 사람은 새사람이 강건해 그런 것입니다. 또 기쁨이 조그ri1 있는 것은 이제 새사람이 아직까지 어려서 그렇습니다.

 

기쁨이, 옳은 일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한 그 사람에게는 걱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걱정이 없습니까? 왜 걱정이 없습니까? 옛사람 그놈이 골케골케 죽었기 때문에 제까짓 게 뭐 대가리를 떠들지도 못합니다. 옛사람이 그만 아주 그만 골케골케 살아 있지만 완전히 죽은것같이 돼 버리고 하니까 그게 뭐뭐 제 기백을 낼라 해도 낼 수가 있어요? 기백을 못 낸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옳은 일을 할 때에 오는 물질도 옳은 일을 할 때에 오는 사람도 옳은 일을 할 때에 오는 기쁨도 옳은 일을 할 때에 오는 근심도 요런 것을 잘 구별해서 판단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옳은 일을 했는데 근심이 옵니다. 옳은 일을 했는데 걱정이 오요. 옳은 일을 했는데 걱정 올 때에는 어떻게 판단해야 됩니까? 이분 한 번 대답해 봐. 옳은 일을 할 때에 걱정이 오면, 옳은 일을 내가 하기는 했는데 걱정이 되고 딱 걱정이 되고 못 견딜 지경입니다. 걱정이 돼. 왜 그래요? , 걱정되는 것은 옛사람, 죽여야 될 옛사람 그놈이 강해서 그놈이 걱정하는 거라.

 

옳은 일에 걱정하는 거는 죽일 옛사람 그놈입니다. 옳은 일에 기뻐하는 사람은 새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꾸 가꾸어서 길러야 합니다. 이러기에 이런 것도 우리가 자꾸 구별을 해서, 이 직장이 없어서 지금 실직을 해 가지고 곤란을 당했는데 이제 직장이 하나 나섰습니다. 직장이 나서서 이제 내일부터 가면 월급 그만 한 달에 한 이삼십만 원, 삼사십만 원 이렇게 받게 되니까 좋아서 기쁩니다.

 

기쁜데, 가족은 마누라도 기뻐하고 아들들도 기뻐하고 이제는 학교도 가겠다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이 호주는 지금 근심이 가뜩 찼습니다. 근심이. 가뜩 찼어.

 

그래 마누라가 밥을 잘해 가지고서 '여보 왜 이거 안 됐던 직장이 됐으니까 얼마나 기쁘고 즐겁습니까 오늘 저녁에는반찬도 많이 했으니까 마음 놓고 밥 좀 많이 잡수십시오' 이라니까 '' 대답은 해도 밥을 깍깍 씹어 밥이 안 넘어갑니다. 밥이 안 넘어가. 걱정이 돼 그렇다 말이오.

 

'아이 여보 왜 이 직장이 없다가 직장 됐으니까 좋은데 왜 그거 뭐 기분이 뭐 나쁜 거 있습니까?' '어디 뭐 괜찮애요' '왜 그라면 밥맛이 없습니까?' '어짠지 밥맛이 없네요' 왜 그렇습니까? 직장은 됐는데 거게는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직장입니다.

 

주일을 못 지키는 직장이니까 그 마누라 아들들은 주일이야 범하든지 말든지 월급만 받아 가지고오면 이제 잘 살 수 있다 이라는데 이 지금 호주는 밥은 먹고 지내지만 이거 주일을 못 지키니 이 기가 찬다 해서 걱정하니까 그 걱정하는 사람은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주일이야 범하든지 말든지 월급받아 오니까 잘 살 수 있다 하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그거는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옛사람.

 

여게 모두 자기들 더듬어 봐요. 남편이야 지옥을 가든지 말든지 그거 주일 범하든지 말든지 돈만 벌어 가지고 오면 좋습니다 하고서 여보여보 간사하게 간교하게 그래 살살살 꾀워 가지고 주일을 범하나따나 돈이나 많이 벌어 가지고 오도록 이렇게 만드는 사람들 회개해요, 회개. 그거 옛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놈을 죽여야 되지 그놈 죽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요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라고 할 때에 거기에 지장되지 안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이요 지장되지 않는 소유는다 가지고 가야 되는 것이요 지장이 될 때에는 그거 가질라 하면 하나님 내놔야 되겠고 하나님 안 내놓을라 하면 그거 내놔야 되니까 할 수없이 그걸 내놔야 하나님을 따라가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생활은 크나 작으나 모든 것을 다 구별해 가지고 나가야 되지 구별 없이 하는 생활을 다 헛된 생활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물질에 대한 관계, 사람에게 대한 관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에서 모든 것을 결정지워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에 아무 흠과 점이 없으면 그런 것은 다내가 알뜰히 간수하고 그 신실히 간수해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그만 깨어지게 될 때에는 그뭐 이것도 저런 것도 다 돌아보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서 기독교 유물주외라 하는 것은 뭣이 기독교 유물주의냐 하면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기독교 유물주의자요, 기독교 인본주의자는 뭐인고 하니 주님의 이 도리와 진리 주님보다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기독교 인본주의는 마구 교인들이 좋아하요. 교계 사람들도 다 좋아하요. 거게서 기독교 신본주의는 '사람들이 귀하기는 귀하지만 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 따를 수가 있겠느냐'사람보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위주로 하는 그 생활을 할라 하면 사랑하는 친구도 나뉘어야 되고 또 어제 오늘 뭐 손목 잡고 야단지기던 사람들도 나뉘어야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그라면 한집에 살기는 살지만 뻘쭘해야 되고 또 직장도 그렇게 사랑하던 직장을 그만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물질과 이 인간 문제를 해결할 때에 아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한곳으로 가라 할 때에 아브라함이 그 떠날 때에 아따 시원하다고 좋다하고서 아브라함이 울었겠습니까, 웃었겠습니까, 춤을 췄겠습니까 풀이죽어서 턱 퍼들어졌겠습니까, , 그거 성경에 기록돼 있어? 기록 안 돼 있지만 우리는 추론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추측할 수 있고 추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치에서. 아브라함이 그때 좋다고 띕을 뛰었을까요 울었을까요, 울었을까요 뜀을 뛰었을까요? , 울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기뻐 웃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웃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으네요. 울었다고 하는 분이 적고.

 

울었다고 하는 분이 맞습니다. 울었다고 하는분이 맞소. 그래야 됩니다.

 

참 떠나기 싫고 갈라지기 싫고 대립이 되기 싫고 서로 그 의견 대립이 되기 싫고 마주치기 싫지만 부득이 하나님 때문에 안 할 수없으니까 부득이 말도 못 하고 벙어리로 하, 입을 다물고 이제 속으로만 기도하고 있든지 꼭 떠나게 될 때에는 아마 아브라함이 울었을 것입니다.

 

이거 참 안 됐습니다. 그분들도 울먹이면서, 이거는 천상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하라 하니 여러분들도 나와 그만 같이 갑시다. 같이 가자고 애걸 복걸 했을 것입니다. 그래 그 사람들이 안 갈라 하니까, 참 안 됐다고 울면서 그렇게 나뉘어졌을 것입니다. 이래야 됩니다.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하나님 때문에 부득이 내가 거게서 떨어져야 되겠고 갈라져야 되겠고 나뉘어져야 될 때에는 우리는 거게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그 애착보다 하나님 애착이 더 크기 때문에 어짤 수없어 눈물을 머금고 이제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새끼를 떼 놓고 가니까 부득이 법궤를 끌고 안 갈 수는 없고 가면서 그저 뒤를 돌아보면서 음메음메 울고 새끼를 생각해서 울고 갔다는 그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줬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 있는 모든 것을 등지고 갈 때에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법을 지키기 때문에 어짤 수 없어 가는 것이지 거게 대한 애정이나 그런 것이 주님 애정이 더 크기 때문에 내가 주님에게 애정을 이걸 붙이고 주님과 대립이 안 돼야 그것들도 구원할 수가 있지 그것들이 좋다고 이제 주님에게 떨어지고 거게 들어붙으면 나도 망하고 그도 망하고 구원할 길도 없기 때문에 울면서 그 암소가 법궤를 끌고 갔던 것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에는 춤추며 떠나지 안하고 그때는 반드시 울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것도 떠나기가 싫지만,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하나님이 있고 거게 붙은것보다도 하나님과 자기와 관계가 더 크고 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야 자기도 살고 그 뒤에 그들도 살릴 수가 있기 때문에 부득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울며 따라오는 그 아브라함을 보고 아마 위로를 했을 것이오. 아브라함아 네가 복의 기관이 된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가 복의 근원이 돼서 너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다 하는 것으로써 위로하는 그 위로의 계약을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 다음에 보니까 하란에서 얻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 갔습니다. 하란에서 얻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 가고 사람들도 얻은 사람들을 다 가지고 갔습니다. 얻은 것을 가지고 갔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앞에 죄되지 않게 자기에게 온 것이기 때문에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되지 않게 그 사람하고 나하고 친밀해진 것은 하나님이 내게 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 땅에서 얻은 모든 사람들이라' 얻은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얻은 사람이라 말입니까 하나님에게 얻은 사람이라 말입니까? 하나님에게 얻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해석이 틀려요? OOO조사님 뭐 잘 알지? 해석이 틀려? 맞아, 맞아. 이러기 때문에, 하나 하나를 우리가 세밀하면 이 신구약 성경을 파고들어가 보면 구구절절은, 이 구구절절은 뭐입니까? 이 구구절절은 하나님의 뭐입니까? 이 구구절절은 하나님의 뭐 이요, 파고 들어가보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자비요 하나님의 긍휼이오. 막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하셔서 해 놓은 한 마디 한 마디말씀이지 이 말씀은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이 녹아 나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온 생명의 복음이 된 말씀인 것입니다.

 

껍데기로 보면 자, 하나님께서 뭐 십계명을 갖다 주면서 십계명을 줘서 십게명을 지키라고 했으니까 그 십계명이 오해할 때는 '이 십계명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이 계명 지킬라 하니 참 힘든다.' 그러면 그 계명이 무거운 짐입니까? 아니오.

 

그것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행복으로 옮기시는 유일한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명은 하나님이 우리를 참 못견뎌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의 방편이요 우리에게 절대로 무거운 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법칙은 순종한 사람이 처음에는 울며 순종하고, 울며 순종하고 순종하고 난 다음에는 웃고, 또울. 며 순종하고 순종하고 보니까 또 웃고,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했습니다.

 

기독교라 하는 거는 십자가의 도인데, 십자가의 도인데 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하이구야, 그거 그대로 지켰다가 죽을라고?' 안 지킨 사람은 지키는 것은 멸망하는 길이라 이렇게 알았는데 하나님 명령을 지켜 본 사람은 난 다음에 '하나님의 권능이라' 그러기에, 지켜 본 사람은 전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감탄하고 지켜보지 안한 자는 전부 하나님에게 대해서 원망하고 '우리 망하라고 하는 소리다' 그렇게 다 보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래 떠났습니다. 이제 자기 따라오는 사람들, 자기와 동지자들, 같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들, 같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만 데리고 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데에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물건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 밭은 토지는 가지고 갈 수 있어요 없어요? 토지는 그거는 가지고 갈라면 뭐 안 되니까 거기 두고 가야 된다 말이오. 다른 물건은 다 가지고 갔습니다.

 

가지고 가니까 하나님께서 떡 가다가서, 가다가 벧엘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벧셀이라는 곳. 벧엘이라는 곳에,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따라서 줄줄 따라가니까 벧엘에 갔어. 벧엘에 갔더니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여게서 살라고 인도했기 때문에 네가 여게서 살아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서 이 모든 토지가 다 네것이 되어지고 또 네가, 내가 네게 선포한 대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서 네 이름이 창대케 될 것이다. 네가 여게서 살아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라니까 아브라함이 거게서 '감사합니다. , 여게서 살겠습니다.' 하고서 거게서 첫 제단을 쌓았습니다. 첫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거게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했는데, 시작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줘서 벧엘에서 자꾸 모든 생활이 부요해지고 모든 것이 좋아질 줄로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아닐성 마구 그 지방에 흉년이 들어 가지고서 영 뭐 곤경하기가 굉장합니다. 굶어 죽을 지경이라 견디지를 못합니다.

 

이라니까, 견디다가 견디다가 못 견뎌서 그 벧엘을 떠나 가지고서 '보자 어디 가면 양식을 얻어 먹을 수가 있겠느냐?'하니까 애굽으로 내려가면 양식을 얻어 먹을 수가 있다 해서 굶어 죽지 못해서 애굽으로 양식' 얻어 먹기 위해서 슬슬 남쪽으로 기어내려갔습니다.

 

그저 다 이야기는 못 하지만 기어내려 가다가서 마지막에는, 본문 읽어서 다 알지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주 예뻤어. 그거 그렇겠어요. 보니까 사람이 웃는 얼굴을 그리면 잠깐이면 웃는 사람되고 성내는 얼굴 그림을 그리면 성내는 사람 된답니다. 이러니까 그 아브라함하고 신앙 생활 신으니까 미인될 수밖에 없을 거라.

 

자꾸 신앙 생활 잘하면 미인이 돼요. 내가 언제 누구를 보고 '그 사람 몸도 건강해지고 아주 부인도 미인됐고 본인도 아주 미남이 됐더라' 인제 이랬는데, 그분이 뭐 아마 신앙 생활 바로 잡았는갑다 그래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 OOO목사님, OOO목사님 여기 왔어요, 얼마 동안 우리를 떨어져 가지고 저 OO에서 있는데 자기가 떠나 가지고 있다가보니까 마음이 괴로워서 그때 한 번 찾아왔어요. 찾아왔는데, 사과를 한 박스 가지고 왔어, 저 먼저 그때도 한 박스 가지고 활는데 자기 농사 지은 거 가지고 왔는데 그거 내가 지금, 가난해요. 교회도 빈약하고. 이래서 차비나 하도록 내가 줄라고 했는데 속으로는 내놓고 만나지를 못해서 못 줬었어.

 

그랬는데, 그때 뭐 사과를 한 상자 가지고 왔어요. 아마 사과가 이름이 좋아 사과니까 아마 사과하는 뜻으로 가지고 온 모양이라. 그래 가지고 잘못됐다고 하는데 잘못 됐다고 왔어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고칠라고 왔습니다.' 고래서, 내가 있다 말하기를 'OO목사야, 네 얼굴을 보니까 완전히 마귀가 됐는데 그 악과 독이 가득 차서 살인 악독이 가득 찼는데 너왜. 그렇게 됐노? 얼굴이 아주 좋은데 왜 그렇게 됐노?' 암만 봐야 그걸 내가 점을 쳐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물어 봤어. '너 지금 뭣하고 살았지?' 이라니까 과수원하고 살았다 이래. '과수원하고 살았으면 과수원하는 데에 요새 산을 자유로 개발하지 못하는 것인데 사과나무를 심을라 하면 시비가 있었을 터인데?' ', 시비 있었습니다.' '거게다 또 뭐 막을 쳐야 될 터인데 접도 지었느냐?' '집도 지었습니다.' 그래 내가 인제 실마리를 찾았다 발이오. 아마 거게서 이렇츰 아마 악독한 사람이 됐는 갑다 싶어서 내가 묻기를 '그러면 그 사과밭을 만들고 집을 지을 때에 무슨 말이 없었느냐?' 그때 보니까 이래. 음 막 이이 이래 그만, 영 얼마나 그렇든지. 아주 무서워요, 영 이래서, 그걸 내가 진찰해 볼라고 이라니까 ', 그때 내가 막을 하나쳐 놨더니마서도-뭐 군에서 왔다 하든가-와 가지고 그만 철거를 해버려서,' 철거를 해서 '그래 철거해?' 그말 하는데 벌써 막 입이 쫑긋쫑긋하며 막 악독이 졸졸해요.

 

그래서, '그래 철거했는데 어떻게 했노? "저거가 와 가지고서 길도이거 다 닦아 주고 집도 다 지어 주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할라 하니까 쫓아 내놓고 악독을 얼마나 부렸겠소? 그래 보니까 그만 사람이 그래 만들어져 버렸어.

 

그래 내가 있다가 ', O목사야, 네가 과수원과 집은 만들고 길은 만들어도 너 영 상이 아주 대마귀의 상이고 악독해졌다. 영 버려놨다.' 그라면서 내가 거게 대해서 여러 가지로 타이르면서 사람의 사는 것이가 산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 여하에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하고 '이제 내가 그런 것 다 거석하고 후회하고 이제 회개를 하겠습니다' 그 회개하라. 하고 그때 늦게까지, 밤 늦게까지 있다가서 교학실로 자러 보냈습니다.

 

자러 보내고 그 이튿날 새벽에 나와서 아침 예배보고 날 만났는데 밤사이 미남이 됐어. 나는 그렇츰 변한 줄 몰랐어요. 영 미남 됐어요. , 밤 사이 그때, 그래 내가 있다가 '뭐 좀 밤에 뭐 먹었나?' 아무것도 안 먹고 잤습니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살도 찌고 얼굴이 부끌붓끌해가지고 영 아주 미남이라. 평소에도 미남인데 영 미남이라, 그만. 아주 미남이 됐어.

 

', 밤에 이렇츰 용모가 바꿔졌는데 뭘 먹었노?' '아무것도 안 먹고 잤습니다' 그뭐 뭐 그때 보니까 그만, 뭐 그때는 그전에는 말하면 음음음음 막 입을 마구 그만 이래 쌓는데 뭐 이래 쌓는데 영 그만 희락이 충만한 그런 사람으로 변해졌습디다.

 

그해 싸가 그때 말하기를 ', 네 얼굴이 정반대로 변화가 됐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츰 변화된 것 보니까 우리가 정말로 주의 뜻대로 살면 이거 뭐 모세의 그 용호의 변화한 것보다도 더 많이 변화될 건데 변화가 안 돼요.

 

저는 모세 용모와같이 이 변화가 되도록 할라고 애를 써도 변화되면 커녕 변화가 안 돼요. 요새는 산에 가서 기도막에 있어서 새카맣지만, OOO교회 그런 거 장 그게 걸려서, 이거 그 사람들 위해서 기도해야 되지 마음이 께꾸름하게 어떻게 마음이 께꾸름한지.

 

께꾸름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서 '목사님 얼굴이 새카매졌습니다'이래.

 

새카매졌습니까? 그 햇볕이 꾸여서 새카매졌지만 그동안에 안 생각할라 하는 것이 그런 것이 근심 걱정이 들어와서 자꾸 그렇게 뭐, 이 모세의 용호를 닮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가정에 말이오. 그 부부간에 하나님 잘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근심 걱정없이 사는 집이라면 그 마누라는 다 미인이될 것이고 그 남편은 다 미남이 될 수 밖에 없지요. 하나님 생각하는데는 그래요.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참 아내가, 나이는 그때 많은데 뭐, 칠십 다섯살이니까 사라는 그매 몇 살이나 됐습니까? 명 살 차이 있었지? 열살 차이 있나? 그러면 육십 다섯 살인가배? 사라는 육십 다섯 살인데 왕이 반해서 못 견뎌서 마누라 삼을라고 청하기까지 그렇게 미인이었어요, 육십 다섯인데 할마이인 줄을 몰랐다 그거요, 육십 다섯인데.

 

그래 가지고서 거게서 자기 아내를 뺏길 뻔 했습니다. 그만 바로가 있다가, 그러니까 이 아브라함이 지혜는 있어서 '가면 반드시 당신의 얼굴은 아름답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아내 삼을라고서 나와 부부간인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터이니까 우리가 결혼하기 이전촌수를 찾아 가지고서 그 오빠라 누이 동생이라 이렇게 말을 하라 그라면 죽이지 안하고 자기로 인해서 내가 살 터이니까 그렇게 살려달라'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까지 했으니까 얼마나 굶는 게 힘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간해 가지고 아브라함이 거게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안했어요. 견디다 견디다 못 견뎌서 내려갔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만 마누라는 생겨 버렸는데 이제 마누라로 데려다 놓고서 바로는 이제 저거 마누라 됐다고서 좋아서 지금 잔치하고 아브라함을 데려다가 또 무슨 예물을 좀 주고 또 이렇게 처남이라고 지금 대접하고 있는데 그밌 하나님이 바로를 때렸다 말이오.

 

바로를 때려서 '네 이놈! 네가 지금 남의 아내를 취해서 네 아내를 삼을라고? 그 아브라함은 내가 선택한 의인인데 네가 의인을 모르고 그렇게 했어? 네가 회개치 안하면 내가 너거 막 족속을 다 멸해 버릴거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니까 그만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났든지얼른 아브라함을 불러 가지고 '아브라함아 네가 왜 날 이렇게 속였느냐? 네가 아내라랬으면 내가 그렇지 안할 것인데 누이동생이라 했기 때문에 내가 취해서 아내를 삼을라고 했다가 내가 하나님 앞에 이런 큰 진노를 받았으니까 너거 마누라가 여기 있으니까 어서 데리고 가거라.' 하면서 예물을 줘서 보냈습니다.

 

만일 그때 하나님이 돌아보지 안했으면 아브라함 죽어요 안 죽어요? 안 죽을 수 있어요? 죽어요. 아무래도 부부간이니까 그걸 모릅니까? 이래 취하고 나니까 사라는 바로하고 이렇게 같이 동침할라 하면 사라가 그거 잘 듣지도 안 할 것이고 걱정도 될 것이고 또 항상 그거 그러니까 이게 저를 덜 좋아하는 줄 알고, 안 좋아하는 줄 알고 이 사라에 대해서 지금 압력을 가할 거라 말이오. 압력을 가하면 나중에 보니까 아브라함 그 남편이 있거든. 이라면 냅두겠소 즉석 버리겠소? 죽이면 부득이 저한테 돌아을 거니까 죽일 거라 말이오. 틀림없이 죽인다 말이오. 하나님 아니면 죽임 받았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 생활 하다가, 하나님이 그 순종생활 가운데에서 고통있게 만드는 것이 곧 우리에게 벧엘에 머물게하는 것입니다. 순종 생활 하는데 모든 일이 풀려 나가지 안하고 자꾸 고통스럽게 돼 집니다. 고통스럽게 되어지니까 잘못하면 그때 고통을견디지 못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애굽은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성경에? 세상을 상징했습니다. 세상으로 실살 기어내려가면 나중에 가서 자기 목숨도 뺏기고, 자기가 거게서 뭐 물질을 좀 얻었어요. 물질은 하도 가난했는데 뭐 약대도 몇 마리 주고 또 양도 몇 마리 주고 소도 명 마리 주니까 받기는 받았지만 께꾸름하지 않겠습니까? 이렇지만 원청 없이 지냈으니까 그걸 받고 아브라함은 그냥 가졌더라 말이오.

 

가졌는데, 그 뒤에 아브라함 자손이 사백 년 동안을 애굽에서 종노릇해 준 그 근거가 어디 있느냐? 암만 찾아 봐도 그것밖에는 근거로 찾을 수가 없어요. 남의 공재물이라 하는 것은 자기 자손이 이렇게, 조그매 받고 난 다음에 자손이 사백 년 동안이나 종노릇한 것,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남의 재물을 착취해서 남에게 억울한 재물을 취한 그것은 자손이 그 빚을 갚을라 하면 몇백 배를 갚아 줘야 된다하는 것을 여게서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것을 홑어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억울하게 손해 본 것은, 억울하게 손해 본 것을 주를 생각하고 달게 참으면 그것이 새끼를 낳아서 이자가 길어 가지고 뒤에 가서 하나님이 갚아 줄 매는 굉장한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 그 사람의 복이 이쪽으로 오는 거라.

 

, 고거 뺏들라고 고런 야심 못된 마음 먹고 해서는 안 되지만 그저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너그럽게 살아야 되고 순하게 살아야 되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축복 하나로 살라고 그렇게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이 몇 마리를 몰고, 롯도 몇 마리 몰고 거게서 참 크게 혼이 나 가지고서 도로 이제 벧엘로 올라갑니다. 벧엘에 가면 뭐 배 굶을 일도 있고 기가 차고 흥년이 들고, 거게서는 그래도 양식이있으니까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이 있으라 하는 곳을 갈라 하면 이거 뭐 기가 찬다 말이오. 기가 차지만 그래도 가야지 싶어서 갑니다.

 

올라가니까, 몇 해 동안 걸렸는데 올라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축복을 해서 마구 벧엘에 도달할 때는 거부가 돼 버렸어, 거부가 이게 뭐이냐?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도해서 머물라 하는 데에 거게서 하나님이 만족하도록 인내하는 데는 굶어 죽을 지경이라도, 굶어 죽어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안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굶어 죽어도 그 자리에 떠나지 안했더라면 그런 실수 안 했고 자기 자손이 사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 안 했을 것이고 또 자기도 그렇게 위험 천만한,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생명이 끊겨지는 그런 위험한 그 죄를 범하지 안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데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해서 내려가는 데는 이런 환난을 닥쳤는데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기어올라오니까 올라오는 가운데서 축복을 받아서 모든 것이 창대하고 부자가 됐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여게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도리가 뭐인가?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도 하나님이 그 인도에서 대번에 복을 주시지 안하고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을 만들어서 연단시키기 위해서, 어려워도 하나님 버리지 안하고 배고파도 하나님 버리지 안해야 되지 사람이 배고파서 하나님 버리는 사람이라면 주면, 많이 주면 또 교만할 사람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안 줍니다.

 

안 주는데, 이래 가지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돌아오고 난 다음에는 아브라함이 사람이 됐어. 하나님이 뭐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어

 

하나님에게 거리끼는 재산이 그 많은 재산이 하나님에게 거리낌이 되니까 롯하고 둘이 시비가 됐는데 요단 들은 물도 있으니까 목축하면 물 먹이고 풀 있고 하니까 되지만 그 원쪽으로 이렇게 오는데는 가나안 거기는 흙만 있는 발간 자산이요 물도 없는 곳이라, 일 년에비 두 번밖에 안 와요. 물이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가나안은 우물 팔라면 몇십 리를 내려가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우물 파면 커단하게 빙빙 둘러서 자꾸 저 밑에 내려가야 비로소 물이 있어요. 이러기 때문에거게는 물이 유명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시험을 딱 해서 롯하고 시비를 하도록 딱 요렇게 만들어 가지고서, 데리고 와서 조카 숙질간이니까 하나님을 근심되지 안하게 할라고 하면 그 조카의 마음도 좋고 자기 마음도 좋고 서로 둘이 마음이 다 좋아야 하겠는데 요런 시험을 딱 줬어.

 

하나님이 주고 난 다음에 보자 이라니까, 그 목자들이 시비를 하는데 아브라함이 물질에 대한 가치를 하나님 순종하는 가치와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가치와-벧셀에서 배가 고파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는 하나님 순종하는 가치와 이제 배고파 죽을 지경에 밥먹는 가치와 어느것을 가치를 크게 봤습니까? 어느 걸 가치를 크게 봤어? 배고픈데 밥 먹는 것을 가치를 더 크게 봤지? 그러기 때문에 그걸 택했지? 하나님보다 물질을 택했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애굽에서 한 번 혼이 나고 난 다음에 연단받고 돌아와서는 하나님 보시니까 이 둘이 시비가 났는데 시비가 났으니 이 시비에서 하나님 기쁘시게 하도록 자기 조카와, 나쁜 조카지만 윤리를 끊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라고 하는 날이면 양보를 해야 된다 말이오.

 

양보를 할라면, 목축하기 좋은 요단 들은 전부 풀밭이 좋지만 그거 다 쩌 버리고 나니 이쪽에는 목축은 못 해요. 목축은 못해서 그만그라면 전부 그 양 그런 거는 다 그만 굶어서 쭉쭉 뻐드러져 죽는 판이라. 풀이 있어야지? 풀도 없지 물도 없지.

 

이러니까 어찌 그게 되겠습니까? 죽는 거라. 이게 시험입니다. 이게 시험이라.

 

과거에는 물질이냐 하나님 명령 순종이냐 이랄 때에 아무래도 하나님 명령 순종도 좋지만, 처음에는 순종해 왔지만 배고픈 어려움이 있으니까 할 수 없이 그 물질 따라서 갔었는데 그때 갔다가서철저한 회개를 하고 돌아오고 난 다음에는 아브라함이 '내가 물질 이거다 없어져도 이제는 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지 하나님을 거스리는 짓을 내가 하지 않겠다' 하는 그것을 이제 아브라함이 취했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네 자유대로 하라. 이라니까, 롯이 좋은 것 다 취해 버리고 나니까 아브라함은 발간 자산이라. 그거 목자들이 뭐 짐승을 먹일라 하는데 양을 먹일라 해야 풀이있소 물이 있소? 아무것도 없어. 발간 흙뿐이라, 발간 흙뿐이니까 부득이 인제 아브라함은 '발간 흙이라도 흙에 갖다 매 놔라' 흙에 매놨어. 흙에 매 놓고 '물 없어도 냅둬라. 물 없어도 냅둬라,' 이랬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붉은 자산에 푸른 초장이 있다' 거게 풀없는 데 매 놨는데 양은 살이 자꾸 더 찌고 새끼는 더 잘 배고 새끼는더 잘 낳고 그 약대도 살이 찌고 자꾸 새끼도 더 잘 낳고 자꾸 그래.

 

이러니까, '그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 눈에 안보이는 아마 푸른 초장이 있는가보다.' 이래 가지고 이사야 49장이가? 49장에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다'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때 아마 그거는 모두 흙만 먹었는데 휼이 물도 되고 풀도 되고 양식도 됐던 모양이라. 그걸 그때 아브라함 목축한 것을 요새 연구하면이 목축가들이 목축을 잘 할 것인데 거게 대해서 연구를 안 하는 것같애.

 

저는 일부 조금 봤어요. 나는 그때 양을 먹이는데 누가 말하기를 '흙을 먹이십시오' 이래. 흙을 갖다 퍼다 주니까 그 흙을 어떻게 잘 먹는지, 흙을 먹고 난 다음에는 병 안 해. 그러니까 리어카로 한 리어카 실어다가 놓으면 며칠 있으면 다 먹고 또 실어 놓으면 다 먹고 그래 했어요.

 

그래 가지고서 아브라함이 그때, 이제 처음에는 물질이냐 인간이:냐 다 두고 주님 따라왔지만, 주님 따라왔지만 정말로 마지막에 물질이냐 인간이냐 하나님이냐 할 때에 그때에 아브라함은 그만물질이 하나님보다 낫다고 크게 생각하는 그런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시헤을 애굽에 갔다 와 가지고는 이겼습니다.

 

그때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 노비고 소고 전부 다 버러라' 하면 두말 할 것 없이 싹 버렸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 주시는 것은 힘들지 안하고 사람들이 축복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서 우리는 뭣을 배울 것이냐? 우리가 처음 신앙에 인간문제 물질 문제를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면 안 되고 그런 것보다 하나님을 크게 여기는 요 신앙 출발 걸음을 해서 순종해 나가면 당장에 복을 줍니까 하나님이 시험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 나갔을 때에 당장에 축복을 주십니까 시험을 주십니까? 시험 줬어. 시험 줬어.

 

그때는 돈 주는 것이 축복입니까 시험 주는 것이 축복입니까? 시험주는 것이 정말로 축복이요? 이해가 돼요? 시험 주는 것이 정말로 축복이요? 옷 밥을 안 주고 그때 배가 고파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낭파당한 그런 시험을 주는 것이 정말 축복입니까? 축복으로 아는분들 손 한 번 들어 봐요. 축복이요, 축복. 우리가 요것을 알면 마귀 그놈의 궤휼에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시험에는 합격 합격으로 자꾸 전진 향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게서 만일 그때에 가정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여게 오라 했으니까 우리가 굶어 죽으면 어짭니까? 여게 오면 복 준다 했고 자손이 흥성한다 했으니까 숙은 송장이 무슨 아이를 낳노? 죽은 송장이 무슨 아이를 낳노? 당신이 아이 낳는다고서 민족이 큰 민족을 이룬다 했으니까 아이 안 낳고야 어떻게 큰 민족이 이루겠노? 이러니까 여기 굶어 죽으면 큰 민족을 어찌 이룰 수 있겠노? 그러니까 여게 축복을 준다 했으니까,' 아브라함이 나중에는 그런 시험을 이겼어요. 번제로 이삭을 쓰리라 하니까 막 좋아서 번제 드리면 죽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 자손으로 바다 모래같이 그렇게 아주 큰 민족이 된다고 했으니까 이삭을 번제로 드려서 죽으면 죽은 사람 살려내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 아마 번제 드리면 잿가루로 사람 만들어 가지고서 아이 낳구로 만들것이다.' 요걸 아브라함이 믿었어. 인간에게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것을그 지식을 깨달은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제일호에 깨달았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나중에는 그런 신앙 가졌는데 처음에 그런 신앙 가졌으면 굶어 죽을 지경 됐으면 그랬을 것이라. '여보 우리가 굶어죽으면 다 헛일 아닙니까?' '굶어 죽으면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려낼 수 있어. 살려낼 수 있어. 여보 사라 자기 죽고 나 죽고 둘 죽어도자기초 살려내고 나도 살려내 가지고서 아들 딸 낳도록 하나님께서 만들 권리 있어.' 하면서 이랬을 터인데 그때는 그런 믿음이 없어.

 

이래가지고 그 시험을 갔다 인제 차차차 그런 믿음이 생겨졌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순종하는 그 순종 걸음에는 반드시 순종하고 간 그것이 큰 축복이기 때문에 그 축복에 주는 축복은 뭐이냐 하면 순종한 그것을 다져서 다시 후퇴하지 안하고 순종에서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을 든든히 더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줘 가지고서 앞으로 어려운 그 태산 고령을 올라갈 수 있는 이런 실력가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욕심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순종했다가 당장에 뭣이 안 된다고 낙심하는 그런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못쓸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우리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거게서 머물라고, 아브라함의 실패로 우리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세상으로 내혀가면 뭐이 죽어요? 뭐 어찌 돼요? 마누라 삣기고, 자기 죽고 이리 돼. 이러니까 가족 파괴되고 모든 자기 생명 파괴되고 다 절단나는 거라.

 

이러기에, 하나님 순종해 가던 사람이 어럽다고 해서 그 순종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으로 기어내려가는 것은 자기와 가정과 전체가 전멸되는 생활인 것을 여게서 보입니다.

 

이 성경에 이렇게 보이요 안 보이요. 이게 맞습니까? 이 해석이 조작배기 해석이요 요 성경대로 자연스럽게 바른 해석입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이와같이 주님에게 순종하다가 어렵다고 세상으로 기어내려가면 망해요 안 망해요? 망해요. 거기서 있으면 돼요.

 

그런데, 거게서 인제 후회를 하고 벧엘을 찾아 올라갑니다. 벧엘을 찾아 올라가니까 올라가니까 하나님이 복을 줬어요 안 줬어요? 올라가니까 복을 줬어. '여게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걸음은 전부 복이요 하나님과 멀리 가는 것은 전부 떨어져 가는 것은 멸망이라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요것이 우리 택한 자들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법칙과 불택자들이 사는 법칙이 다릅니다. 우리는 종류가 다르고, 벌써 나기 전부터 종류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우리에게 소속이 다르고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다르고 우리를 축복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그만, 또 이거 좀 늦었소. 인제 오후에는 짤막하게 해 보지요. 너무, 또 시간이 뭐 삼십 오 분 늦었으니까 그전으로 말하면 열시에 시작한 셈입니다. 열시에 시작한 셈이니까 그렇게 많이 늦은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게서 인제 각각 돌아가서 요 말씀을 자세히 생각하면서 확정을 지우십시오. , 따라합시다. 확정합시다! 확정합시다! 확정합시다! 확정해요.

 

요게서 확정하고 그것을 놓지 말고 잊었으면 또 고치고 또 고치고 확정을 해요.

 

이제 폐회 됐습니다. 자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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