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랑

 

1980. 3. 9. 주후

 

 본문: 요일3: 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본문을 읽을 때에 여기서는 그만 본문 읽을 때부터 그만 잠이 오고 구역질이  나는 사람이 있는 줄 압니다. 또 오후에 이제 여기 대해서 증거를 한다고 하니까  올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줄도 압니다. 그래도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선 듣기 쉽게 쉽게 이해되게 하면 듣기는 쉽지마는 실지로 사랑을 가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안됩니다. 그러면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런고로 무조건  해라 무조건 실행해 봐라 자꾸 강조하는 것은 그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사랑과 미움 이 두 가지로 나누게 됩니다. 사랑이  아니면 미움이요 미움이 아니면 사랑입니다. 미움은 사망이요 사랑은 생명과  평강인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그 실력이 전지 전능의 실력을 가져야 사랑이 됩니다.

전지가 아닌 지혜로서는 오늘 사랑한다고 한 것이 뒤에 보니까 그를 아주 미워한  것이 되어질 수 있고 또 능력이 없는 것은 그를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한다고  하지마는 방해물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랑이 실현되지 못합니다.

 또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무한성 영원성 불변성을 가지지 아니하면은 그  사랑은 무한성이 없으면은 끝이 있습니다. 불변성이 없으면 변해져 갑니다.

영원성이 없으면 있다가 중단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만이 이 사랑을 가질 자격이 있고 또 하나님  완전성에서만 이 사랑은 나올 수 있고 또 사랑을 행할 수도 있고 가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보내서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와서 이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자체는 피조물이지마는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피조물이나 행동은  창조주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이 무지 무능하지마는 전지 전능과  전능을 받아 연결되었기 때문에 전지 전능의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유한하고 변하고 일시적이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일시적의 것이 영원한 것이 됐고 변하는 것이 불변의 것이 됐고 불완전한 것이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줄기에 연결되어 그  사랑을 받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이 참 사랑이요  변질되지 아니한 본성적 사랑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참사랑은 하나뿐인데 가치 있고 능력 있고 무소 무능 무소  부재 완전 영원 생명 평강 쾌락 이 전부가 그 안에 다 가득 쌓여있는 이  참사랑은 하나뿐인데 사람들이 이 사랑에 그림자와 같이 그 빛을 받아 가지고  사람들이 만든 그 인조 사랑이 많습니다. 인조 사랑 인본 사랑 사람이 만든 이  조작 가짜 사랑이 많습니다. 그거는 천도만도 억만도 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살리는 참사랑은 하나 뿐이요 그 나머지는  살해하는 무서운 해독이 가득 차 있는 사랑인데도 사람들은 다 이 사랑을  좋아합니다.

 성경은 사랑은 제일이라고 그 한 것만이 아니고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랑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 사랑하면 사람들이 귀가 기울어지고 마음이 쏠려지고 또  사랑들을 다 노래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그 어떤 것이기 때문에 그런가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랑은 자기  아닌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아름답게 보고 좋아하고  아름답게 보고 그를 점점 더 좋게 만들라고 좋게 할려고 자기의 것을 다  기울여서라도 그 아름다움을 이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좋은 것을 더 좋게 또  그걸 좋아하는 것  또 그를 위해서 그 상대방 그것 좋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가 무엇을 희생을 해  보니까 이것이 손해 같다 해서 마음이 불만 불안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쁘고  상대방으로 인해서 자기가 기쁘고 즐겁고 또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해도  기쁨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사랑을 좋아하고,   사랑은 상대방을 상대방이 좋고 아름답고 또 그것을 좋게 복되게 좋게 복되게  좋게 유익 되게 하고 싶고 또 그로 인해서 자기가 기뻐지고 그로 인해서 자기가  손해가 가도 오히려 좋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을 사랑한다 하는 것도 그를 보니까 아름답고 좋고  자기 마음이 좋고 또 그를 좋게 유익 되게 하고 싶고 그로 인해서 자기가  기뻐지고 또 그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면 손해가 가서 안될 터인데 기뻐지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그 사랑을 좋아합니다. 꽃을 사랑하고 짐승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 그 돈이 자기 마음에 좋고 기쁘고 돈 보면 좋고 돈 보면 기쁘고 또  돈을 위해서 희생하고 싶고 돈을 유익 되게 하고 싶고 돈으로 인해서 자기가  기뻐지고 또 돈을 위해서 수고를 해도 짜증나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뻐지고  그러기 때문에 자꾸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좋고 기쁘고 또 그를 좋게  하고 싶고 위하고 싶고 그로 인해서 내가 기쁘고 그를 위할수록 기뻐지고 요것이  모두다 그것이 생명의 가까운 법이요 사망 중에도 그것이 가장 좋은 법이요 옳은  법이요 가장 아름다운 방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따로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참 아주 고차원에서 고차원으로  아주 지극히 고귀한 것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아름답게 보고 유익 되게 하고 그로  인해서 내가 기쁘고 그를 위해서 희생을 할수록 즐겁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기뻐한 것이 그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암만 해야 거리가 멀어서 도무지 못 알아들어 그러니  이것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돼. 너무 천리 만리 거리 먼 자기네  생활고 거리 멀기 때문에 말해야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안 먹어 들어간다 이거요  잠이나 꾸벅꾸벅 자고 땅의 말하면은 더 좋고 하늘나라에서 일어나는 먼지 같은  것 파문 같은 것 이런 것 말하면 좋고 본체를 말하면 재미없고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을 지어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위하고 그것을 유익 되게 하려고 그로 인해서 당신이 기뻐지고 희생하니까  기뻐지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니까 그 자료들이 고귀한 것을 떠나서 이제 그 모형을 가지고 사람들은  예를 들면은 용모가 아름다우니 얼굴이 아름다우니 솜씨가 아름다우니 또 그  기능이 아름다우니 또 그것보다 옷이 아름다우니 그림이 아름다우니 수목이  아름다우니 경치가 아름다우니 자꾸 이렇게 이제 그 재료가 점점 저급적으로  내려오나 아주 내려와서 말단에 아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그 자체요 존재지마는  그것을 인해서 자기가 아름답게 보이니까 좋고 또 그것을 보니까 귀하게 보이니  좋고 그를 위하고 싶으니 좋고 그를 위하니 더 좋고 또 그로 인해서 자기가  기뻐지고 좋아지고 하니까 그것을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원인이 다르지 어떤 사람은 그 돌을 사랑하고 또 수목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또 물질을 사랑하고 집을 사랑하고 대상은 다르지마는 그  사랑의 작용들이 다 하나님의 근본 사랑의 그 작용과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서 쉴려고 하고 거기서 쉴려고 하고 거기서 살려고 하고 거기에서 **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뭐 간단합니다. 미움은 어떤 것이냐 그 상대방이 어쩐지 마음에  아름답지 않고 좋지 안하고 기쁘지 안하고 그를 해하고 싶고 그를 해하니까  도리어 대번 그로 인해서 불쾌해지고 이것이 미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뭐 사랑이 뭐인지 분해하지 못하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미움이 뭔지 정의를 내리고 분해하지 못하지마는 어쩐지 사랑하니까 좋고 어쩐지  미움은 징그럽고 싫다 그거요  미움이 되면 그만 누구든지 할 것 없이 참 지옥같이 사랑이 되면 해석할 것  없이 기쁘고 즐겁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그것에 본체가 무엇이며 그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은 좋아하고 미움은 싫어하는 게 이것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랑을 수많은 것을 만들어 냈고 뭐 자기가 실지로 당면할  때에 우연히 그 사랑이 생겨졌고 이래서 무엇이든지 상대방을 보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자기가 볼 때에 그게 좋아 보이고 기뻐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그것을  위해서 수고를 하고 싶고 그걸 더 좋게 하고   그러므로 자기가 기뻐지고 또 수고를 하면 아깝지 안하고 수고를 해도 기뻐지고  이제 그것이 사랑의 작용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제일이라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가 그걸 보고 아름다워 내가 아름다워 아름답게 보고 내  눈에 아름답게 내게 아름답게 보여지고 좋게 보여지고 기쁘게 보여지고 또 그를  위하고 싶은 그런 것이 되어지고 그를 위할수록 기쁘고 즐겁고 또 그로 인해서  내가 기쁘고 즐겁고 좋고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 해서 어떤 사람은 거기  비슷한 돌도 돈주고 사 가지고 나무도 돈주고 사 가지고 집도 돈주고 짓고 또  장소도 또 산도 짐승도 물건도 또 사람도 이렇게 모두다 노력을 해서 대가를  주고도 그런 것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 사랑할 수 있는 걸 만들라고 사랑할 수 있는 걸 구할려고 사랑할 수 있는  걸 만날라고 미워하는 것은 피할려고 그것이 하나님은 하나님과 같은 완전자 고  차원에서 그 지능의 완전 도덕의 완전 행위의 완전 또 무한 영원 불변 이렇게  아주 그 작용이 이런 이런 거와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없는 참 하나님에게만  감추어 있는 그런 자원을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셔서 이렇게  하셨는데 이제 그것은 없으니까 그 방편이 전해 내려오고 흘러 내려오고 모형과  그 흔적이 남아 가지고 사람들은 지금도 사랑할 그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거기서 생겨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자연히 모든 만물을 접촉할 때에 그것이 생겨진 거도 있고 또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생긴 것도 있고 또 이러니까 자기가 논리적으로 만든 것도  있고 이렇게 해서 세상에는 사랑이 굉장히 종류가 많습니다.

 많지마는 참사랑 하나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 사랑의 그림자요 그것을 흉내내고  열 가지 중에 한가지만 닮아도 사람들은 좋다고 이제 그것을 못 견뎌하고 또 그  몇 백 가지 그 요소 중에 한가지 좋은 참 것에 요소하나만 그 사람들은 좋아서  마구 몰려들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이 있고 또 수많은 미움도 있는데 크게 말하면  미움과 사랑 두 가지니까 미움은 어짜든지 피하고 사랑은 가지라 말한 것이요 또  사랑을 가졌을 때에 그 사랑이 참 진짜 사랑 좋은 사랑을 가졌으면 하지마는  결과적으로는 자타를 망치는 그런 생명 없는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나님의  참 사랑은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자기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해도 못 할 뿐만  아니라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를 알지  못한다" 그 말은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 사랑을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지 아니하고 좋아하지 아니하고 하는 것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움과 사랑이 많은데 참 사랑은 하나 뿐이요 참 미움도 하나뿐인데  우리가 지금 사랑 편에 속해야 되겠는데 자기가 참된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의 몸과 생명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게 참 사랑이라 그런 게 아니라도 사람은 결국은 사랑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농장에서 돈벌이가  아니라 저 원예 중고등학교 처음에 창설자가 그 누구지요 내 이름은 아, 그 무슨  박사입니까? 우장춘 박사입니까? 네 우장춘 박사입니까 네 우장춘 박사라는  그분도 그분은 그 식물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그는 살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어쨌든지 인간에게 내세가 문제도 영원이 문제지 금생뿐이라면  이 사랑에서 파묻혀 살거나 저 사랑에서 파묻혀 살거나 어짜든지 사랑 속에서  파묻혀 사는 사람이 세상은 지겹지 않게 기쁘게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금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영원 장래가 있기 때문에 진짜  가짜를 찾는 것이지 이 세상으로 끝나 버리고 만다고 하면은 그는 어떤 사랑에  파묻혔든지 사랑에 묻혀 살았으면 그 사람은 세상이라는 것은 지겹지 않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그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모르고 그만 세상살이를 살다가 끝에  마지막에 끝일 때에 그때에 그 사랑의 대상을 떨어질라 하니까 고통이지  그전에는 다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보다 그걸 보니 좋고 기쁘고 아름답고 그를 유익 되게 하고 싶고 자기를  다 주어서 그의 좋도록 하고 싶고 그렇게 희생을 할수록이 기쁘고 또 그로  인하여 자기가 좋고 아무리 해도 피곤치 아니하고 그런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학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예술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식물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그 풍경을 사랑하고 뭐 이렇게 다 이 세상뿐이라면 이거나 저거나 다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행복스러운데 이제 참 가치 있는 보배로운 사랑이  있고 인간을 세상 지내는 동안에 좋은 것을 찾고 바른 것을 찾고 좀 무슨  구불덩이를 쳐 가지고서 무엇을 좀 발동이라도 해보고 발광이라도, 아이들 말로  발광이라도 쳐보고 좀 몸부림이라도 쳐 볼 수 있는 그런 기회에 이제 가지 없는  그 사랑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거기서 일생을 지내니까 일생은 편하게  지냈지마는 인간은 일생 살이라 하는 게 다 헛되고 말기 때문에 그게 불행이라  그거요  그러므로 사랑을 그것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으로 바꾸어 가져야  된다 하는 것을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랑과 참사랑을 바꾸어 가진다는  것이 힘듭니다. 바꾸어 못 가집니다. 사랑하는 그걸 제가 놓을 수 있는 줄  압니까? 농장을 사랑하는 사람 그걸 못 놓습니다. 심지어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 노름을 못 놓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생을 식물에, 저 가장은 가족은  냅두고서 풍경을 사랑해서 저 경치를 사랑해 가지고 그만 거기 파묻혀서 하는  사람 가정이 다 절단 나고 미치괭이지 마는 그 사랑을 옮길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자기가 이미 잘못된 사랑이라도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을 좋은 사랑과 사 사랑은  나쁘니까 버리라 좋은 사랑을 참, 참 사랑을 가지라 한다고 해서 사랑을  바꾸기가 힘이 든다 그 말이오 바꾸기가 힘이 들어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마는 사람을 오랫동안 지도해 나오다 보면 분명히 이 사람은 이 사랑  때문에 이 망하는 것인데 이 사랑을 바꿔야 되겠는데 이 사랑을 바꾸어나 볼려고  아무리 타이르고 말해 봤자 정 바꿔 놓으라 하면 그 사람이 그만 다른 데로  도망을 쳐버리지 갔다 피해 가 버리지 바꾸지를 못한다 이거요 그런 것을  얼마든지 많이 겪어 볼 수 있어 또 어떤 사람은 분명히 미움은 가지고 있는  그것은 자기부터 자기에게 가까운 자로부터 차차 망쳐 들어가는 것이니까 이거는  대 금물인데도 야 미움 그걸 버리라 미움 그걸 버리고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가지라 암만 바꾸라 해 봤자 그게 안 된다 그 말이오. 말로는 쉽지마는 되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안 된다 이거요.

 이러니까 미워하는 그걸 아무리 타일러도 안되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안되고  안돼. 말을 할수록 반동적으로 점점 미움은 심해져 간다 이거요.

 이러니까 미워하는 미움은 사랑으로 바꿔야 되겠고 거짓 사랑을 참 사랑으로  바꿔야 되겠고 바꿔야 되니 바꾸는 방편이 뭐냐 이제 바꾸는 것은 방편부터  가지라 그 미움 가진 그 미움을 버리지 말아라 미움을 가지라 미움을 가지지마는  미움을 가지지마는 미워하는 방편을 네가 이제는 미워하는 방편은 네가 바꿀 수  있다. 미워하는 방편을 네가 바꾸고 미워하는 목적을 네가 바꿔봐라. 그거는  아주 원수같이 미워하는 자에게도 방편과 목적은 바꾸라고 하면은 잘 바꿉니다.

바꾸라고 하면 그거야 바꾸지요. 내가 미워하지마는 정말로 그렇지요 내가  미워하지마는 그 목적이야 뭐 그거야 다를 게 뭐 있습니까? 방도야 뭐 다를 게  있습니까? 잘 바꾼다 말이오. 목적과 방편을 바꾸어 놓으면은 얼마 안 가서  미워하는 미움이 없어지고 미움이 없어지고 상대방이 나보다 먼저 나를  사랑합니다.

 이러니까 내가 사랑치 아니할 수 있소. 이러니까 상호간에 미움이 변해서  사랑이 됩니다. 또 거짓 사랑을 요 못 쓸 사랑을 참 사랑으로 바꿀라 해도 안  돼. 너 창기를 사랑하는 사랑을 창기 사랑을 그런 사랑을 버리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 사랑을 사랑해야지 자타를 망치는 창기를 사랑하는 사랑을 가져야  되느냐 암만 바꾸라 해도 안 듣는다 그거요 또 저도 못해요 저가 할 수 있는 줄  압니까 못합니다. 아 생명도 내놓는 수가 있는데 생명까지 다 바쳐 사랑하는 거  어떻게 이것을 버리라 한다고 버려집니까?  거기는 네가 창기를 사랑하지, 사랑해라 그 사랑하지 사랑하는 데는 네가  창기를 참 사랑해야 될게 아니가 그러니까 창기를 사랑하는 데는 네가 사랑하는  그 방편을 좋은 방편을 써라 내가 창기를 사랑하는데 좋은 방편을 쓰지요 어떤  방편을 쓰겠느냐 이렇고 이렇고 성경에 이리하고 이리하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창기에 대해서 네가 나쁜 일을 행하지 말아라 거짓말 말고 진실 되게 할려고  애를 써라 그렇고 말고요 또 삐뚤어진 걸 하지 말아라 차차차차 이래 가지고  성경 이 도리 이 성경의 이 법칙을 이제 창기 사랑하는 법칙으로 써라 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창기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그 법칙을 쓸 수 있다 그 말이오.

창기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그 창기에게 그 사랑의 참 사랑의 목표인 그가  행복해야 되겠고 영광스러워야 되겠고 멸해지지 안 해야 되고 존귀해야 되고  완전해져야 되겠다 그 말이오 요 목표는 바꾸어진다.

 이렇게 바꾸어지다가 보면 얼마 안 가서 그 사랑은 없어지고 변해져서 조금  가면은 정신 차려져서 미움과 사랑을 구별해서 그 사랑 속에 미움이 있었고 미움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제 사랑의 종류를 바꾸게 됩니다. 사랑의  종류를 바꾸게 되고 미움과 사랑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 방편을 바꾸고 목적을 바꾸라 하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온갖 지혜가 다 들었는데 참 사랑에는 온갖 지혜가 들었고  또 악한 사람도 그 종류대로의 것은 다 들었습니다. 참 사랑도 참 사랑의  종류대로의 것은 다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그것도 내나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하는 그것도 내나 보통 사랑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입문을 말했는데 세상에는 미움과 사랑 두 종류만 두  종류로만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면 일단 미움은 버리고 사랑은 가져야 된다.

사랑을 가졌으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거짓 사랑을 참 사랑으로 바꿔야  된다. 미움은 버려야 되는 것이니 미움은 버려야 되는 것인데 미움을 버릴 수가  없게 되니 미움을 버리지 못하거든 그 방편과 목적을 이제 네가 바꿔 바라  사랑과 사랑을 바꿀 수 없거든 그 목적과 방편을 바꿔 봐라. 하는 그것을 여러  시간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세상은 둘 있는데 우리의 영주처는 어디 있나 우리의 거주처는  사랑에 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데 이 사랑에 들어가야 되겠는데 들어  갈려면 들어가는 방편이 미움의 방편을 바꾸고 사랑의 방편을 바꾸면 미움의  방편을 바꾸면 미움의 방편을 바꾸면 미움이 변하여서 사랑이 되어지고 사랑의  방편을 바꾸면 거짓 사랑이 변하여서 참 사랑으로 되어진다 하는 거기까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참 사랑은 어떤 것이 참 사랑이냐? 이제는 참 사랑에 대해서 적극성  있게 구체적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것을 말하는고 하니  이거 큰 지식입니다. 세상에 미움과 사랑이 있다. 미움은 전 사망이다. 사랑은  생명과 평강이다. 이 지식을 가지고 아 미움은 내가 금물이다. 미움은 내게  금물이다. 가정에 미움이 있으면 가정이 망한다 부부간에 미움이 있으면 부부가  망한다 회사에 미움이 들어 있으면 회사가 망한다. 암만 정계라도 그 정치가의  머리 속에 미움이 있으면은 그 정부는 망합니다. 어떤 단체라도 그 속에 미움이  들어 있으면 망합니다. 미움은 사망의 암병과 같다 금물이다.

 이것을 알고 미움을 없앨려고 하는 사람 미움이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사람, 이게 얼마나 큰 지식인지 모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지식인지 몰라, 이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이해를 시켜봐야 이해를 못해 그걸 이해를 할라 하면은 며칠을 두고서 계속해  가지고서 그것을 이모저모로 마구 찔러서 진찰해 가지고서 이제 그것을 분석해서  비로소 머리가 바꿔지고 머리가 식고 좀 세뇌운동이 머리를 씻어서 머리가  바꿔져야 지식이 바꿔져야 되고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이 바꿔져야 되니  그것이 일시에 바꿔 놓을 수 있습니까 지식으로 바꿔나 봤자 소용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 생활 가운데서 체험 경험으로서 서서히 이게 바꿔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예 지식적으로 미움은 나 망치는 것이다. 미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물 변질되지 안하고 창조된 그대로 그 본질 본성대로 있는 거와는  전체와 대립이 된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가, 자기가 왕이 되어 가지고서 자기  단독이 주장되어서 나서는 것인데 그것은 말하자면 모든 존재를 대적해서 멸하는  그 자기가 되어졌고 그 종류 그 요소 그 방편 그 기능 그거 외에는 아무것도  썩인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망한다. 이게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저 알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알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그거는 금물이다.

이해를 못하고 분석을 못하고 평가를 못해도 내 속에 미움 있으면 내가 망한다  하더라 내 운동은 전체가 그것에게 충격 받아 가지고서 전체는 사망의 작용  사망의 결과 외에는 맺는 게 없다더라. 이거는 대 금물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걸 알아서 이거부터 제거를 해라  이거부터 가정에도 이것을 제거하고 자기 속에도 제거하고 또 어떤 데에도  제거하고 이것을 제거하지 아니하고 이것으로 작용하면 일시는 힘이 있습니다.

 일시는 아주 속성같이 되어집니다. 속성같이 되어져서 자체가 속성같이 되어져  가지고 크는 것은 모든 존재에게 나는 이렇게 대적이나 하는 것을 대적된 것이  뚜렷이 똑똑히 나타내도 확실히 표시되는 것이라 말이오. 대적되는 걸 보이는  거라 작으면 있는 것 없는 것 모르지마는 크면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세상이  이런 것으로 됐기 때문에 큰 것 만치 미움이 많습니다. 큰 것 만치 벌써 그 일에  적은 많고 그의 깨질 날은 가까웠고 그야 깨질 때에 박살이 될 것이 점점 관영해  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디서든지 이것을 뽑아야 된다 내 속에는 이것을 뽑아야 되고 또  내가 거처하는 곳에도 이걸 뽑아야 되고 자기가 거처하는 곳에도 이걸 뽑아야  거기서 다리를 펴고 잠을 자고 평안하지 이것을 둔 자는 절대 평강은 없는  것입니다.

 또 거기는 그것이 어두움의 근원이기 때문에 어두움의 근원이기 때문에 거기  가리워서 전부 빛은 막혀지고 전부 나오는 것은 어두운 것만 자꾸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래도 사랑을 가져야 되겠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도 사랑이  있어야 되고 부부 속에도 사랑이 있어야 되고 가정 속에도 사랑이 있어야 되고  단체 속에도 사랑이 있어야 된다. 사랑이 있어야 생명과 평강이 있는데 사랑과  평강이 있어야 되겠다. 이제 이것을 가지고 이 둘을 가지고 힘을 쓰는 사람도  힘을 쓰는 사람도 이것만하면 외부적인 행복은 받습니다. 없어질 세상 행복은  받습니다. 영원한 것은 안되지마는 껍데기 세상 복은 받는다 그 말이오. 세상  모든 패망이라 하는 재앙은 물러갑니다.

 그 사람 속에 미움이 없는 사람은 아무데 가도 그 사람을 몰아 죽일라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를 해하는 외부적 적이 없소 내부적 신령과 생명에 속한  적들은 뭐 얼마든지 그 안에서 전투할 수 있지마는 껍데기는 없다 그 말이오.

 또 외부적인 그 자기가 어떤 선의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현재에 자체가  평안하고 또 외부 중에 모든 것도 다 자기 사회에서는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을 가져야 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미움을 물리치는 법  사랑을 가졌으면 사랑에서 참 사랑을 가지는 법 이것을 이제 지난주 오전까지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사랑은 좋은 것인 줄  알고 사랑이 있는 부부사랑이 있는 가족 사랑이 있는 사회 사랑이 있는 단체  사랑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는 나라 사랑이 있는 정부 사랑이 있는 관청 그러면  뭐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짜가 되면은 일시는 좋지마는 그것이 가짜가 되면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미움이나 다를 바 없이 사망을 빚어내게 되기 때문에  이제는 일단 사랑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서 이제 참사랑을  바꿔야 되겠습니다. 참사랑을 바꾸는 데에는 그 방편은 방편을 참사랑의 방편을  하면 그것이 오전에 왕봉 기르는 비유를 하면서 말했는데 그 참사랑으로  바꿔지지마는 참사랑이 어떤 게 참사랑인지 그것을 이제 오후에 좀 증거를  할려고 합니다.

 참 사랑은 어떤 것이 참 사랑이냐 참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왔다 말은 어떤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시는 좋아하심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신 좋아하심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심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고 싶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함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는  희생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좋게 좋아해서 위해서 좋게 할려고 희생을  하심으로 희생을 하심으로 당신이 기뻐하시는 그것이 왔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이 이런 것 다 우리에게  희생하고 이래도 하나님이 좋답니다. 하나님이 기쁘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만족합니다. 이게 왔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 온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이게 왔소.

 그러면 왔으면 구체적으로 뭘 왔느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그  사랑을 보니까 우리를 죄의 감옥 속에서 해방을 시켰고 또 의에서 끊어져 불의가  된 데에서 의에 연결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셨고 이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보자 그 사랑이 어떤고 한번 구경해 보자 그  사랑은 영원한 멸망 감옥 속 다시 말하면 죄 아래 갇혀서 영원히 멸망시키는 죄  안에 갇혀 거기서 해방을 시켰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다. 해방을 시켰다.

 망하는 데서 해방시켰고 저주에서 해방시켰고 실패에서 해방시켰고 삐뚤어진  데서 해방을 시켰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이래 왔다.

 그러면 내가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를 영원 멸망에서 거기서 해방하도록 영원히  탈선에서 삐뚤어짐에서 영원히 실패 안에서 해방시키는 그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을 받아서 이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라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이 어떠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이냐 이  사랑이라 말이오.

 또 다음에는 이런 저런 옳고 그른 것이 그대로 묵과되어서 다 지나가는 게  아니고 반드시 그것이 조사가 있고 판단이 있고 평가가 있는 심사가 없는 것이  없으니 심사 중에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조작 배기의 심사는 이것은 일시지마는  절대자의 심사가 있으니 절대자의 이 검사에 떨어지면 헛일이다. 이 심사에  걸리면 큰일이다.

 이래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을 이것을 다 정리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을 이것을 다 정리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지 안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하게 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모든 심판에서 모든 정죄에서 이것이 정죄하고 저것이 정죄하고 만물들이 제  비유에 안 맞췄다고 다 정죄해. 정죄하는데 오만 것이 다 정죄하고 비꼬아 뭐  찢고 삐뚤어뜨리고 해도 아무것도 정죄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그걸 틀렸다고  그까짓 정죄를 해서 해할 수 있는 그런 요소를 다 고쳐서 그런 것이 없도록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 아버지의 사랑이라.

 이러기에 세상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에 어짜든지 이것이 걸리지  아니하도록 남에게 욕 얻어먹지 않는 자식되기를 이것은 해방시켜 사죄에  성질이라 말이오.

 또 둘째로 효성은 칭찬 받아 부모에게 욕 돌리지 안하고 부모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칭찬 받아 어디든지 칭찬 받아 내나 이게 칭의입니다. 이게 칭의요.

 그거 내나 사랑이 비추어 와서 하는 것인데 이게 좋은 건데 이것이 너무 범위가  좁고 너무 범위가 좁고 너무 짧고 너무 얕고 너무 낮으니까 높은데도 도달  못하지 깊은데도 도달 못하지 긴데도 도달 못하지 넓은데도 도달 못하지 너무  편벽 된 그 개체이기 때문에 전체에게도 도달 못하지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은  사랑인데 이 사랑이 생명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에게 구할 수 있는 거라.

 그래서 그 사랑이 모든 심판을 다 해결 지은 사랑이로구나 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모든 검사에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모든  정죄에 정죄 받지 아니하도록 모든 심판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거기를 통과시킨  이 사랑이로구나.

 이것도 세상에서 참 느껴본 사람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 아마 김계원씨니  김재규씨니 지금 그 정죄에서 누가 대속해서 그 죄를 가로막고 떡 내 준다고  하면은 그분들이 얼마나 감사할 것입니까? 내 줘 봤자 인제 백 년 살겠소 오십  년 살겠소? 이름이야 오래 나가지만 또 그 이름이 세상 끝 날이면 다 묵살되고  없애 버리는데 뭐 얼마 가겠소 그래도 얼마나 기뻐하겠소.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영원 우리의 정죄의 감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줬고 이제는 아무 심판에도 걸리지 안 할 수 있는 이 심판을 통과시킨 이 칭의를  가르칩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

 또 이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절대자이신 조물주 대주재  주권자 이분 이분이 왕이요 이분이 주인이요 이분이 제일 큰 분인데 그 밑에  것만 암만 친해봤자 그분만 삐뚤어지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최고위층 최고의,  최고의 대주재 자존자 만 왕의 왕, 그분과 해결을 지어서 그분과 연결을 시켜준  이것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누가 할 수 있소 그러나 이 사랑은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분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분의 사랑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최고위층 주재 이분과의  문제를 해결 짓고 원수 된 문제를 해결 짓고 이분과 한 몸 같은 친밀이 되는 이  친밀을 맺어줄 수 있는 이런 사랑으로 우리가 할 수 있게 됐다 이거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제대로는 다 이거를 가질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을 가질라 할 것이요. 높은 사람 높은 이와 서로 교체가 있고 그  관계가 맺어지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 다 있지 않소. 아무리 썩은 사랑을 가져도  네가 사랑의 대상을 그리해 줘라. 예 그리해 주지요. 어떻게 하면 그리 할 수  있습니까? 눈물 흘리며 간구 합니다. 그라거든 좋은 목적을 둬라 차차차차  유도해 가지고서 이런 목적을 줘라 목적이 얼마나 좋으냐 아이구, 좋지요 이런  방편을 줘라 될 수 있다. 그거입니다.

 인도의 도마교파 의심했던 도마 의심했던 도마, 재림의 하나님 의심했던 도마  인도의 그 왕이 궁전을 지을 터인데 이 궁전을 짓는 데에 세계 제일 되는 궁전을  한번 지어 볼라고 애를 쓰는데 도마가 가 가지고서 아, 어떤 분이 가 가지고서  그 유대나라에 좋은 목수가 있으니까 그 목수를 청해 가지고서 그래 궁전을  지으면 세계 일등 궁전을 지을 수가 있다. 그 왕이 사람을 보내 가지고서 그  목수를 구하러 가 가지고 지금 거리를 가는데 어떤 사람이 썩 나서더니만  말하기를 요거요 어찌 왔소 인도에서 이렇게 우리나라 왕이 궁성을 지을라  하는데 좋은 그 기술자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래요 저분을 데리고 가십시오 저  건너편에 가서 저분을 데리고 가면은 세계에 제일 되는 궁전, 궁전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자입니다. 데리고 가십시오. 아이구, 글쎄 감사합니다. 가  가지고서 인사를 하니까 도마라, 도마가 그러면 궁전을 지을 수 있소? 예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설계를 대강 한번 말해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20장으로부터 22장까지를 쭉 드리 대면서 이런 궁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 가 가지고 이 궁전은 사람 눈에 보이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내가 돈 내라 하는 때만 돈만 내고 해야 되지 이거는 사람 눈에 보이는 궁전이  아니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게 자꾸 돈을 내는데 이 돈 가지고 자꾸 지금  사람을 복음을 전해 가지고서 자꾸 교회를 세워서 이렇게 행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재산은 나라 재산이 거의 다 돼 가는데 이제 궁전 짓는 거 보니까  궁전은 하나도 안 짓고 양 사방 자꾸 전도만 하고 예수교만 전도하고 돌아  다니요.

 그러면 이제 나라 재산은 거의 다 들어가 버렸고 사형을 시킬라고 떡 데리고  왔다 말이오. 어떻게 이제 됐느냐? 예, 이제 다 됐습니다. 그러면 어디 있느냐  예, 그거는 하늘나라에 있고 땅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좋은 궁전을 땅에다가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놈이 사람을 꼬아 가지고서 저거 못 쓸 도만  전한다고 사형을 내렸다 사형을 내리고서 이제 이것을 시행할 모양인데 그 왕이  한번 비몽사몽간에 보니까 아주 광명의 세계가 있는데 광명의 세계를 보니까  좋은 궁전 아 참 내가 꿈꾸던 궁전이 저런 궁전인데 저런 궁전 한번 참 지을라  하다가 나는 도적 맞았다 저 궁전은 어떤 궁전이냐 아 그것이 인도에 있는 아무  왕의 궁전입니다. 깜짝 놀래서 누가 저 궁전을 지었노? 도마 목수라 하는 그  목수가 지은 궁전입니다.

 그라고 나서 퍼뜩 깨 보니까 그래 이 왕이 도마를 소리해 가지고서 칭찬을  하고서 그런 궁전을 지금 우리는 짓지마는 아무 왕이 그런 궁전을 원하는데 하나  더 지을 수, 더 지어줄 수 있느냐? 이제 세상을 떠나서 갈 때가 되어서 더 짓지  못합니다. 그라고 그 나라에서 순교 당해서 끝을 마쳤습니다. 그거 모양으로  모르니까, 모르니까 이 세상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이리도 보이고 저리도  보이고 그렇게 보여줘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이 그림자 같은 것을 가지고서 차차  깨닫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옮기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가져서 사랑이 있어야 생명 역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사랑을 가지고 그 방편을 방편과 목적을 바꿔서 차차차차 참  사랑으로, 참 사랑으로 옮겨져야 되겠는데 그 사랑이 뭐인지를 알아야 되지  옮기는 방편만 가지고서 이라면 체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아집니다. 그것을  성경에 기록해 놨지마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의 방편을 가지고  행하는 가운데에서 하나씩 체험해볼 것을 체험해 봐라. 경험하고 체험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가운데에 비로소 그것이 성경에 있는 것이 비로소 눈이 열려서  보여지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 그 사랑을 우리가 알아야 되기  때문에 여기 이렇게 말씀해 놓으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이냐 해방시킨  사랑이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제일 주재 된 그분과의 연결을  맺어준 사랑이다 제일 주재자와 연결을 맺어준 사랑이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연결만 맺어주고 심판만 통과하고 감옥에서만  이제 해방시켜 줄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아니지마는 다만 다른 것은 창조주 피조물 창조주 피조물만  다르지 그는 능동이요 이는 피동만 다르지 다른데 노릇 하는 것은 하나님노릇  다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 다해  그러니까 그 다음에 밖에 것은 볼 때에 저희 것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한  것과 꼭 같은 것을 하는데 하나님이 하신 일 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해서 사랑해 준, 사랑해 준 사랑의 베풀어 놓은 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인간이 자기밖에 있는 모든 것이 볼 때에는 하나님이요  하는 일도 하나님의 하신 일이요 그 안에 자기와 자기 위에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보니까 하나님은 능동이요 그거는 피동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그거요  피조물이다 그거만 다르다 하나님과 꼭 같애요.

 오늘 내가 들으니까 지하실에서 그래 소새끼는 소, 하나님새끼는 하나님 이  모양으로 우리가 하나님 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들으면 오해할 것입니다. 하나님 되는 것인데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하나님의 모형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른 것은  뭐이냐 그는 원형이요 이는 하나님의 원형이요 본체는 이거는 하나님의 모형이요  그는 창조주요 이는 피조물입니다. 그는 능동 하나님은 능동 이거는 피동입니다.

하나님은 원형이요 이는 하나님은 만드신 분이요 이거는 만들어 놓은 피조물  이것만 다르지 하나님과 꼭 같이 되어지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려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그가 우리를 이제  사랑에서 사랑으로 자꾸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은 해방이요 사랑하는 것은 심판 **이요 사랑하는 것은 절대자의  결합이요 사랑하는 것은 자체의 완전이요 자꾸 이래 사랑한다 말이오.

나타내시면 그가 사랑을 나타내시면 말입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누구 하나님과 우리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그때 지금은 우리가 어떤 자가 될 것인가? 못 보지마는 그때 그분을 볼 때에  그분이 우리 눈에 보임과 꼭 같이 우리도 그분이 우리 눈에 보임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어 놓은 그것도 볼 때에 꼭 같은 이런 것으로 보여질  그때에 우리가 본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입니까? 이 사랑이라 그를 온전자 하나님같이  온전자 전지 전능자 전지전능자가 하나뿐인데 또 있겠는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에게만 피동 되니까 하나님의 피동지식이니까 그 지식은 전지지 그렇지  않소 자기 지식을 완전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지식에게 피동 하니까 그거는  전지지 그 능력에 피동 되니까 전능이지 그가 하는 것만 하니까 그 일은  전능자가 하는 일이지 이게 사랑이라.

 또 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그 사람은 영생하는 사랑이라 영생케 하는  사랑이라 영생케 하는 사랑이라. 영생케 하다니 그 법대로 사니까 그거는 다  영생입니다. 이게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이게 사랑이라 영생케 하는  사랑이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내가 아노라 그 영감과 그  도리대로 한 것은 다 영생이지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상대방을 영생케 하는 그 사랑이라.

 이러기에 하나님 한 분만 이 사랑을 가졌지 인간은 피조물은 아무도 가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오니 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하나님이 나를 영생케 한 이 사랑을 받아 나도 그 사람을  영생케 할 수가 있어.

 또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사망과 저주와 고통과 죽는 것과 아픈 것과  병드는 것 변해지는 것 더러워지는 것 이런 것이 없는 진리의 나라 사랑의 나라  모든 존재의 통일된 나라 이 나라로 영주처를 만들어 준 영주의 처소를 만들어  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사랑하사 어쨌다 말이오 독생자를 우리의 죄를 인하여 화목 제물로  보내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랑의 정의를 우리가 이제는 바로 알고 어렸을 때에 일을 차차  벗고 사랑은 제일인데 그러면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사랑의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참 사랑은 하나 뿐이요, 나머지는 다 죽이는 사랑이기 때문에 이제  참사랑 이 사랑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는데 죽이는 사랑을 네가 못 버리느냐 나는  이게 아닌 줄 알지마는 못 버리겠습니다.

 야 네가 돈 돈 하다가 뒈질래 돈 이 사람을 좀 보자 의례히 그럴 줄 알지마는  어쩐지 자다가도 돈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고 돈만 보면 정신이 까랑 까랑해지고  돈사랑 이 사랑을 고치지 못하겠습니다.

 아 내가 분명히 이 권세 사랑하는 이게 권세 된 것을 내가 모자라는 줄  알면서도 밤마다 꿈만 꾸면 이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 참 이 사랑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깡패 동무가 나쁘지만 이것 차라리 버릴 수가 없습니다.

 못 버리느냐 버리는 방편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버릴 수 있는 사랑이냐 사랑은  참 사랑으로 바꿀 수, 자유 자제로 이제 사랑을 바꾸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냐  사랑 이거는 이 사랑의 정의를 가르쳐 줘라 사랑의 정의를 가르쳐 줘라 사랑은,  딸을 사랑할라거든 아들을 사랑할라거든 남편을 사랑하거든 아내를 사랑하거든  부모를 사랑하거든 자녀를 사랑하거든 친구를 사랑하거든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왔으니 이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냐? 이제  말한 대로 멸망에서 벗겨 주는 그것이 사랑이라 상대방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그걸 복되게 하기 위한 이것은 다 있다 말이오. 사랑은 있는데 어떻게 그를  해독을 벗겨 줄까 어떻게 모든 것에 형통하도록 통과시켜 줄까?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 이 여섯 가지를 이것을 우리가 얻었고 이것이 자녀  사랑입니다. 이것이 아내 사랑이로구나 이것이 남편 사랑이로구나 이것이 부모  사랑이로구나 친구 사랑이로구나 이웃 사랑이로구나 이것이 참 사랑이로구나  깨닫고 이 사랑을 자기가 가지고 상대방을 사랑할려고 할 때에 자기는 이거  위해서 희생해져 이것 위해서 수고하고 이거 위해서 눈물 흘리고 이거 위해서  녹아지고 이거 위해서 견디고 이거 위해서 참고 이거 위해서 하기 싫은 것 하고  이러면 뭐이 되느냐 그 운동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이 그 줄기가 나를 통해서  마구 지금 통과해 나가기 때문에 나가는 것 만치 나에게는 커지고 충만해지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네게 쫓는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두려우면 심판을 염려했지마는 이거는 심판이 없고 두려움이 완전히 물러간다.

 그러면 두려움이라면 완전히 죽음인데 죽음이요 고통인데 죽음 고통의 선을  벌써 올라가 가지고 높은 차원에서 중대한 이 여섯 가지 문제를 거머쥐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제 심판이 그거는 벌써 발아래 벌써 밟혔고 그것이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오지를 못해.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것을 하시기 위해서 해방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

두려움이 물러가 옛날에 미움을 가졌을 때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  예수님께서 유월절 이 잔치를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 원하고 원하였다. 원하는  일이 되는데 무엇이 시켰소. 두려움을 네가 쫓나니 소원 성취가 그건데 소원  이제는 과거에 두렵던 것이 소원이 되었는데 그것이 두려움이 되지 안하고  기쁨이 되어졌다. 이러기 때문에 내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너희들이 나를  사랑했으면 내가 가는 것을 기뻐했으리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래도 사랑을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해방시키는 데에는 그 방편이 성경  법칙대로 하면 그것이 그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요 달리 해방시켜 주는 것 없소  내가 그에게 대해서 말할 때에 성경 말씀대로 하고 생각할 때에 성경 말씀대로  생각하고 또 그에게 대해서 모든 희로애락은 성경대로 하고 이 영광을 위해서  그와 같이 할 때에 거기서 해방도 필연적으로 통과도 필연적으로 결합도  필연적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거함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뭐 어떻게 사랑하는 것 목적은 여섯 가지 이것  방편은 계면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케  하려함이라 이렇게 할 때에 기뻐지는 이 기쁨을 떠나지 아니하고 이 기쁨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뭐냐?  상대방을 좋게 하려는 것 상대방을 기뻐하는 것 상대방에 이익 되게 하는 것  상대방을 아무 일 없게 보는 것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가 노력해서 더 좋게 좋게  아름답게 귀하게 되어지도록 그러므로 내가 기뻐지는 것 이것이 원형적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사랑의 껍데기 껍데기 껍데기 껍데기의 그 비슷한 모형을  가지고서 사람들이 다 사랑을 좋아할 것은 그래도 거기서 나온 비슷한 모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름답고 좋고 기쁘고 그를 위하고 싶고 위할수록 더  좋고 그를 보니 내가 기뻐지는 그 작용을 일으키는 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외부적인 떨어져 내려온 이것이 인조의 사랑이요 원형적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기 때문에 세상에 땅위에 이 사랑 속에서 늙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살았으면 싶으겠지요 이제 그 사랑에 하나님의 그림자와  같이 되어진 그것도 기쁘거든 하물며 원형적 사랑이 됩니다. 모형의 모형의  모형의 모형 된 그것도 사람들이 좋아서 그 속에서 일생을 안 죽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인생들아 사랑을 맛을 봤느냐? 그것의 원형적 이 사랑에는 죽지도  안하고 그것보다 강도가 심히 강하고 이래서 아주 그 잘된 극한 포도주와 같다.

그 취한 것이 극한 포도주와 같다 이렇게 아가 서에서는 나타냈습니다.

 원형적 이 사랑은 일생을 지겹지 아니하고 주고 주고 모든 생명까지 다 주어도  그래도 행복 되게 좋게 하지 못해서 원수를 더 행복 되게 좋게 복되게 유익 되게  해주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나는 빚진 자라 줄걸 다 주지 못했다 빚진 자라 빚진  자라 이 세계에서 사는 것이 이 사랑에서 사랑 속에서 산 것입니다. 이 사랑에  속에 이렇게 평안하고 즐겁고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 있는 사랑 거기서도 이 일생을 남기는 것이 이게 모형적  모형 모형에서도 이렇게 좋고 기쁘고 지겹지 안하고 평안하거든 하물며 언덕을  떠나서 하나님의 이 사랑 속에 들어 가 보라. 이것으로 살아 보라 끝이 없는  이것을 겁을 내지 말고 우리는 요새 늘 말씀해 준 말씀을 가지고 초보부터 첫  발자국부터 한 자국부터 떼 놓는 거기서만 우리 기독자의 평강은 있고 성공은  있고 행복은 있고 자기를 존귀케 하는 존귀는 있지 그 외 딴 데는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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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착한 행실이 빛이다/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1987. 9. 1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44 착한 양심/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 1987. 6. 30.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43 착한 양심/ 베드로전서 3장 18절-22절/ 1987. 7. 1.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42 찬송가 201곡/ 베드로전서 1장 3절/ 1989. 2. 7. 오전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
141 찬송가내력 -하나님의 인도와 순종/ 창세기 12장 1절-10절/ 1988. 5. 4. 오전집회 선지자 2015.12.28
140 찬송가내력-하나님의 인도와 순종/ 창세기 12장 1절-10절/ 1988. 5. 4. 수전집회 선지자 2015.12.28
139 찬송가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1987. 4. 7.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38 찬송가에 대해서/ 야고보서 1장 15절-18절/ 1987. 12. 29.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37 찬송론/ 요한계시를 2장 23절/ 1889. 2. 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136 찬송하리로다/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7. 9. 11.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135 찬양 예배/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2. 15.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134 참 기쁨 얻는 구원/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3. 3. 27.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133 참 나와 나 아닌 나 원수인 나/ 로마서 8장 23절/ 1987. 1. 16.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132 참 된 생애/ 전도서 1장 1절-4절/ 1979. 12. 20.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31 참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주를 믿자/ 히브리서 10장 19절-39절/ 1987. 5. 6. 수새집회 선지자 2015.12.28
130 참 목자/ 요한복음 10장 1절-3절/ 1984. 1. 3. 밤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
» 참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3절/ 1980. 3. 9.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28 참 연보와 그 결과/ 고린도후서 8장 11절-14/ 1982. 5. 24. 월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