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양식


선지자선교회 1985년 3월 27일 수새

 

 본문 : 요 6:44-48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말씀을 하셨고 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 오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주님이 뒤에 덧붙이기를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하는 것으로써 오해되기 쉬운 것을 방어해 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버지가 이끌지 안하면 내게 아무도 올 수가 없다 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가 아니면 내게 올 자가 없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들을  이끌고 또, 가르쳐서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한 것이 이끎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주관이 이해하도록 된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주관이  이해하도록 된 것이 아닌 것을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이끎을 받은 사람들도  주님이 어떤 분이지 모르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또, 보지도 안했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 편의  객관 역사를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라는 이 주관과 나 아닌 객관인 이 하나님과의  합해 가지고 우리의 신앙생활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모든 이 종교. 뭐 불교나  어떤 다른 종교 어떤 종교든지, 어떤 또, 도덕이든지 어떤 사상이든지 그런 것은  다 그 종자가 뭐인고 하니 주관입니다. 자기가 종자요 자기가 주관인 주관  그것이 다 시발의 움싹입니다. 또, 그것이 종자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종자요.

모든 종교나 도덕이나 그 행동들이 다 자기라는 종자에서 그것이 움싹이 터  가지고 나와서 자라가는 것이 그것이 모든 이종교요 또, 도덕이요 모든  철학들이요 또, 모든 과학들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통털어 말해서 하나님의 이 지식과 하나님의 역사 외의 것이 다 이  세상인데, 이 타락한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임은 그 움직임의 종자가  자기요 또, 자기에게서 움싹이 터 가지고 거게서 발아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모든 세상 지식들이요 종교들이요 철학들이요 모든 행동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생각이나 또, 소원이나 욕심이나 기쁨이나 뭐 모든 고통이나 슬픔이나  모든 인간의 크고 작은 모든 마음의 움직임 몸의 움직임 모든 그 움직임이라는  것은 다 자기라는 그 씨앗 속에서 자기라는 종자 속에서. 씨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라는 그씨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껍데기는 첫째 아담에게 받은  영과 마음과 몸이 영육으로 되어 있고 그 속에는 악령과 악성과 이것이, 악령과  악성 이것이 속에 생기라고 할 수 있는데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고 생명입니다.

그러면, 그 생명이 자기의 그 심신을 붙들고 한 번 두 번 역사하면 고것을 모인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우리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제, 악령 악성이 우리의 영에게는 범접하지 못하고 육이라는  그 심신 속에 주격이 돼 가지고 역사를 하는데 그 역사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을 가리켜서 악령이라 악성이라 악령이라 말은 하늘에서 타락한 그 천사  악령을 가리켜 말하고, 악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령으로 말미암아 물들어진 그  인간성을 가리켜서 악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왜 악령이니 악성이니 그래 악이라고 그렇게 붙여서 말하는가? 악이라 한것은  그게 이 세상적으로 나쁘다는 게 아니라, 세상에 뭐 공명의 도덕이요 석가모니의  도덕이라면 그거는 사람들의 가장 이상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다  악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의 정의가,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이분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지 아니하고 이분에게 지음을 받은  존재가. 이분으로 말미암아 보존을 그 받고 있는 존재가 이분을 떼버리고 제가  이분의 자리에 앉아 가지고 이분과 같은 주장을 하고 대우를 받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존자 창조주 대주재자의  중심이 아니고 위주가 아니고 피조된 제가 제 중심 제 위주로 하는 그 영을  가리켜서 악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그 천사 중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안하고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영광을 가로 취하고 제가 들어서 하나님처럼 이렇게  자존자처럼 완전자처럼 절 세워 가지고서 모든 접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저의  동류인데. 같은 동류요 저와 동등에 있는 다 같은 피조물인데 그들보다 탁월하게  생각하면서 그 모든 피조물을 자기에게 다 집중시키고 집합시키고 자기를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살도록 그렇게 왕노릇을 한 그것이 사탄입니다. 그 사탄이  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에게 쫓겨났습니다. 이놈 네가 내가 널 없는 가운데  지었고 네가 또,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네가 살지도 못하고 전부 나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나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나로 말미암아 활동하고 있는 네가 네  중심으로 네 위주로 하고 창조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것을 유다서에 기록하기를 지위를 지키지 안하는 천사라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위라는 것은 어떤 게 위인고 하니 위라는 것은 반드시 계급이 있고 또,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 위입니다. 왕위라 또, 뭐 동장위라 구청장위라 지위라  지위라는 그것이 자기의 계급과 의무와 책임 권리 그런 것을 다 합해서 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위를 지키지 안했다, 저는 하나님에게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그 분야에서 있는 충성을  다해야 될 터인데 그 자리를 지키지 안하고 제가 하나님처럼 이렇게 할라고  함으로써 쫓겨나서 흑암에 가두었다 이랬습니다. 흑암에 가두었다 말은  사탄에게서는 다시 빛이 없게 했다 그 말입니다. 빛이 없게 했다 그 말은 사탄은  다시는 옳은 것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옳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러기 때문에 어두운 데서 방황한다 그랬습니다.

 이러기에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본체는 하나이신데  본체는 하나이신 하나님께서 이런 직책을 맡았고, 또, 이런 직책 감당 할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졌고 또, 이렇게 그 감당하는 섭리를 하셔서. 역사를 하셔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하는 그것이 크게 말해서 세 가지로 나누기 때문에  삼위, 성부의 위. 성자의 위, 성령의 위. 그 위라는 것은 한 하나님이 이런  직책과 권위와 역사를 이루는 한 격위를 가졌다, 한 직위를 가졌다 한 책임을  가졌다 이래서 삼위, 위가 셋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신인 양성  일위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신성은 하나님이시요 인성은 사람이신데, 신성과  인성 둘이 한 지위 한 직책한 책임 둘이 한 격위를 이루어서 한 지위를 이루어  한 책임을 하나로 감당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양성 일위라, 양성 일위 인데. 일체  삼위라, 일체 삼위일체인데 삼위일체라는 말이나 일체 삼위라, 일체가 삼위가  됐다는 말입니다. 삼위가 일체가 됐다는 말이 아니고 일체가 삼위가 됐다  이랬는데 이제 모두 쓰기는 삼위일체라 삼위인데 그 내용을 보면은 일체라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세상에 속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을 배반해서,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쫓겨나서 인생이 본지위에 있지 못합니다. 본  지위에서 쫓겨난 것이 사람입니다. 쫓겨나고 보니까 영은 아예 그만 죽어  버렸고, 형체는 있지마는서도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송장과 같이 아무런  작용 없는 죽어 버렸고, 또, 죽은 영은 악령이 사용할 수 있느냐 하면 사용하지  못합니다. 죽은 영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형상은  이용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은 죽었고 그 심신은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있는데 죽지 않는 그  심신이 악령이 벌써 점령을 해서. 따령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악령에게  패전했기 때문에 악령의 소유가 됐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악령의 소유가 돼서  본지위에서 쫏겨남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한 사람의 그 심신은  악령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중의 악한 영이,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이  불신자의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 그렇게 에베소서 2장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자들은, 타락한 그대로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다 그 속에  주관자는 악령입니다. 또, 이 모든 사람들에게나 모든 사물에 대해서 역사하는  것은 마음과 고기 덩어리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고기 덩어리가  활동하고 있는데 활동하는 그 활동의 주권자는 누구며 거게 대해서 그 통치자는  누군가? 그 마음을 통치하고 그 몸을 통치하는 자는 누군가? 그것은 악령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한 후 타락한 그대로 있는 전부는 다  그것은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정죄 아래에 있는 것이요,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요, 악령이 다 주관하고 있는 것들이요, 악령에게 감화받아 악령에게  피동되어 악령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감동되고 또, 악령으로 감동된 그  마음에게 그 몸은 다스림을 받고 이라기 때문에 인간이 악성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악성, 악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영은 악성 된 것 아닙니다. 영은 그저 죽어 있습니다. 그거는  뭐,

 이러기에 사람의 영육이 지음을 받는데 지음 받을 때에 영을 한목 하나님께서  그 숫자대로 지어 놓고, 곡간 안에 넣어 놓고 하나씩 빼 쓰는 거와 같이 영을  하나씩 그때 그때 심신을 지으실 때에 빼내 쓰느냐 해서 이 주장을, 그 주장을  하는 것을 가리켜서 모두 다 전재설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영이, 그거는 한목 다  지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있다. 벌써 한목 지어 가지고 있는 먼저 있다 하는,  그래 말하고, 또, 창조설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지으실 때 그때 그때 하나님이  영도 같이 육과 같이 지어 가지고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창조설이라 그렇게, 뭐  별별 만들어 낸 것이 많은데 그런 거 뭐 지저분한 거 다 냅두고 그 둘이 제일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재설이라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고 틀렸고  창조설이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였는데 모두 다 사람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다 더러워져 있는 죄인들이니까 하나님께서  그라면 창조할 때에 죄인을 창조했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에  걸리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는 그는 다  깨끗한 것을 창조 하셨는데 창조한. 창조한 그것이 인간이 되어지는, 인간,  인간에게 속하고 인간류에게, 뭐 이거는 감자류에 속한다, 곡식류에, 곡류에  속했나 이거는 무슨 유류, 기름류에 속했나 하는 거, 인간류에, 인류에게 소속할  때에 그때에 벌써 정죄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소속할 때에 정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깨끗한데 소속할 때에 정죄가 되어 가지고 거게서부터  감염이 되고 또, 염색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생골 집회 때에 사람의 영육은, 영과 육은 다 무색이라, 깨끗한  무색이라 아무 거석이 없는, 색깔이 없는 무색이라. 그런데. 영은 그대로 있고  영은 처음에는 하나님으로 물들었다가 선악과 먹은, 육체가 선악과 먹음으로써  영이 주격적 위치의, 주격 위치의 책임성에서 정죄받아 가지고서 죽었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의 색깔이 없어지고 죄악으로 마귀로 악으로 물들지 안했기 때문에  그는 무색 그대로 돼 가지고 있고, 또, 사람의 심신도 지을 때에 그것이  무색으로 지음을 받았다. 무색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그것이 타락한 인류,  인류류, 인류라는 그 종류에게 소속할 때에 그때에 정죄와 사망과 저주로 물들어  가지고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도 깨끗하고 몸도 깨끗하다. 심신이 다 깨끗하다.

깨끗한데, 이것이 악령과 악성과 모든 악습으로 물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물든 것만 탈색을 하면은 근본대로 깨끗해진다.

 그래서 사람의 그 심신이 본질적으로 그것이 더럽다 이렇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물질 개악설이라 물질이 다 악하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도 물질에 속한 것이요  몸도 물질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에 속한 그것은 다 악한 것이라 이래  가지고서, 이 물질은 다 타락했기 때문에 본질상 더러워 졌다 하는 그 주장이,  물질은 뭐 거게 빠진 것 없이 전부 다 악하다 하는 고것이 개악설이라. 다  개(皆) 자. 물질은 다 악하다. 요런 개악설을 주장하는 고것을 정통에서는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거는 이단이다. 그건 잘못이다.' 정죄하고  있고.

 물질은 사람의, 물질 이거는 죄가 없다. 물질은 죄가 없는데, 물질은 마치  칼이, 칼이 그거 죄가 없다. 칼이 죄가 없는데 사람이 칼을 가지고서 악용하면은  살인도 할 수 있고 그 칼을 가지고서 의료 기구로 쓰면은 죽을 사람을 살리는  선용도 할 수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구도 되고  악한 일 할 수도 있는 기구도 된다. 이래서 사람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면 의의 도구가 되고 의의 병기라 했어요, 의의 도구도 되고  죄에 드리면 죄의 도구가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고 무색이라는 말 하니까 고 말을 처음 듣는 말이니까, 고런 말을  미리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제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면, 지금 대번에 말하면 이단이라고 막 떠들 것이기 때문에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하고 있으나 이제 차차 차차 해서 제가 OO 교파에 속했더라면 제  깨달은 대로 발표를 이래 못 했을 터인데 그때는 발표하면 야단이 나기 때문에  발표를 못 했을 터인데 이제 거게서 제명 돼 나왔습니다. 쫓아냈어. 쫓아내서  쫓겨나왔어. 내가 탈퇴한 것 아닙니다. 쫓겨나왔어. 그거 언제든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어야 돼요. 쫓겨나왔는데 쫓겨나 온 후에는 그것을 조금씩 조그매씩  조그매씩 제 깨달은 것을 발표를 이래 하는데, 그 발표를 처음에는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오래 있다가 또, 고다음에 이제 조금 또, 그것이 보편이 되면 또,  조금 더 강하게 발표하고 발표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나와서 여게 있는  사람은 모르지마는 저 딴 데 있다가 처음 오면은 '저 뭘 말하는고' 하는 그런 거  좀 이색진 것이 많을 것이고, 처음에 들을 때에는 다 이단이라고 하는 그런  소리를 다, 아우성을 다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 말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은  세월이 지나가면은 고것이 자기네들 속에도 다 알고 있고 영감이 있기 때문에 다  깨달아지니까 시기 문제이지, 그라고 나면 나중에는 이단이라는 그런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범죄 안 하니까 안  죽지요. 안 죽을려면 범죄 안 해야 되지요. 그거 뭐 간단하게 다 아는 것인데  하나님이 가리어 놓으면 모른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중생된 영을 범죄  않는다 한다고, 중생된 영은 범죄 안 한다 한다고 그걸 우리 전국에서  노회로서는 OO 노회가 제일 큰 노회인데 OO노회가 '백 아무것이는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절대 범죄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그래 가지고  정죄를 해서 노회 철에다가 이단이라고 정죄를 해 놨다 말이오.

 정죄를 해 놨는데, 그때 인제 가 가지고서 그것을, 여기 모든 목사님들이 '자,  그러면, 이걸 이단이라고 하는데 여기도장을 찍어라.' 써 가지고 가서 '여기  이단이라는데 도장을 찍어라.' 도장 찍어라 하니까 하나도 안 찍을라 해요. 안  찍을라 하는 것 보면 그 사람들 속에 확신이 없는 말이라. 그래 지금은 그  노회에서도 정죄를 안 합니다. 정죄한 걸, 정죄한 걸 지금 '우리는 몰라 그렇지  그거 뭐인지 모른다.' 모른다 하지 그게 틀렸다 이단이라 그렇게 정죄하는  사람이 별로이 없고 저 시골에 가서 더러 있는데 그 사람들은 뭣 때문에  정죄하느냐 하면은 이 교훈이 들어가면 자기네들 교훈이 다 꺾어지고 또, 그  교훈이 혹 수정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방어해야 되겠다. 이래서  방어하는 방편으로 '이단이니까 거게는 가지 말아라' 그렇게 그 방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람이요 또, 예수님의 구속도 잘  모르는 사람이요 복음도 잘 모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서  어떤 큰 낭파가 될 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인기 끄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천하 사람들이  자기네들 다 옳다고 인기를 끌어도 그 일이 하나님 앞에 정죄됐으면 심판 앞에  가서 정죄하면은 영원히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오를라고 하는, 인기 끌라고 하는 그런 일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여게 교역자 될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설교를 할 때에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설교할 때에 인본이 있습니다. 인본이 있는 것은  뭐이냐? 설교 할 때에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은혜를 받아서  이 사람들이 내게 대해서 환영을 하고 찬성을 하고 해서 내 이기가  올라가겠느냐?' 사람들하고 저하고 둘이 붙어 가지고서 이래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물론 은혜받고 감동받고  좋기는 좋지마는서도 그거는 돌볼 여가가 없습니다. 그거는 돌볼 여가가  없으니까 다만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둘이붙어 가지고서 '내가 이 설교하는데에  하나님이 인정을 하시나 안 하시나? 그분에게 걸리나 안 걸리나?' 그분이 혹은  내게 대해서 걸린 것이 있으면은 이것은 영원히 없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정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거리끼지 않으려고 또,  그분에게 옳다고 인정을 받으려고, 그분을 상대해서 설교를 하는 것이 또, 어떤  사람들의 설교인 것입니다. 그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는 사람이 설교하면서 교인들이 좀 반응이 있는 것,  교인들의 반응이 있는 것 같으면 그 반응을 보고서 주먹을 두드리며 힘을 내는  그런 설교자가 있고, 교인들의 반응은 있거나 말거나 그런 거는 상관하지 안하고  설교를 하면서 주님이 설교할 때 '오 그건 좋다. 고 주장은 좋다. 내가 원한다.

네가 원하는 소리를 한 마디 네가 했다.' 당신이 원하는 고 당신의 눈초리를  보고 당신의 그 영감이 좋아한다는 고걸 보고서 그때 힘 있게 두드리며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요거야 요 말 하니까 주님이 좋아하시는구나' 해서 거듭  거듭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설교를 할 때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거 좀 요거 어려운 말인데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저 먼저 좀  가르치다가 그만 딴거 해서 중단되고 말았었는데, 모든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도덕이나 정치나 땅 위에 있는 이 모든 것은 다 고 인간이라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자기가 종자요 자기가 근본이 요 자기가 종자요, 또, 자기 속에  생명이라는 그 운동. 그 생명이라는, 말로 하기를 생명이라고 표하는 것이지  죽음이지요. 죽음인데 자기를 움직이고 있는 그 힘이라는 그 힘은 무슨 힘이냐?  그거는 악령의 힘입니다. 악령의 힘이 들어와 가지고서 그 사람을 악성화시켜  버렸고, 그러면. 마귀가 점령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악령 악성 둘이 합해  가지고서 그 몸을 이용해서 한 행동 한 것이 악습인데 악습이라는 것은  버릇이라. 습관, 습관인데 그 악령 악성으로 말미암아 행동한 것이 한 번 했으면  한 번 했고 두 번 했으면 이제 두 번 이니까 연습 한 번 했습니다. 세 번 했으면  연습을 두 번 했습니다. 네 번 했으면 연습을 세 번 했습니다. 그것을 모은 걸  가리켜서 악습이라,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피조물 중심의 위주로서 그렇게 한  행동 두 행동 한 그게 악습이라.

 그러기 때문에 고 속에 자기라는 것이 씨알과, 비유컨댄 씨알같이 됐고, 고  속에 들어 있는 고 생명이라는, 힘 이라는, 생명이 아니고 사망은 사망 인데, 고  속에 들어 있는 고 힘은 무슨 힘이냐? 악령의 힘이라. 이래서 악령의 힘을  가지고 악성으로 된 그 사람들이 합해 가지고서 그 악성 악성의 행동을 하나  했으니 고것을 가리켜 뭐 이냐? 악습이라 악한 행위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종교, 모든 철학, 모든 과학 모든 세상 지식  전부 이 전부는 다 이것들이라 하는 것을 근본으로 알아야 됩니다. 이 걸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의 정의를 모르니까 이거 모두 다 종교 통일이니 뭐이니 하면서  자꾸 복잡한 일들이 생겨집니다. 요것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이 교리를, 요새 여러분들은 다 교리, 깨달음이라는 도꾸마라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성경을 보고서 깨달은 그것을 치우치게 일방적인  깨달음을 가지지 안하고 전체적인 깨달음을 그렇게 군형 같게 그 깨달음을 배워  가지고서 알라고 하는 그것이 여러분들의 거석인데 실은 조직 신학이니 뭐 성경  신학이니 실천 신학이니 하는 이런 것은 다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은  공부할 될요가 없습니다. 성경 보고 자기가 실행을 하면, 실험을 하면, 자기가  처음에는 그 지식으로 말하면 원만 치 못한 치우친 한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마는서도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고대로 행할라고 하면은 일방적  지식 가지고는 일이 안 되니까, 안 되니까, 행할라고 하니 거게 자연히 거기에  관련된 믓요한 구비 지식이 다 등용돼야 되지 구비 지식이 등용되지 안하면은  행동하고 나면은 그만 일방적 지식이, 이 팔은 팔 다리는 다리 끊어서 다 이래  흩어 놨는데 행동할라고 움직일라 하니까 이 모든 게 합해져서 조직이 자연히  되는 것입니다. 조직이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다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서 이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알도록 하기 위해서 뭐 조직  신학이니 성경 신학이니 실천 신학이니 하는데, 그게 다 합해서 하나인데  그렇게,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발명가가 연구를 할 때에 그 연구가 두  가지입니다. 논리 연구가 있습니다. 논리로. 자기가 지식을 가지고 앉아서,  책상에 앉아서 이렇다 저렇다 논리적으로 자꾸 연구를 했는데 그 연구를 하고 난  다음에 그렇다 하고 하면은 그 사람 큰 낭파당합니다. 그러면 사람 다 죽이고 일  낭파됩니다. 논리 연구를 했는데 실지로 해 본다 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실험  연구라, 실험 연구 실험, 실험을 해 보니까, 논리로는 딱 들어맞은데 실험을 해  보니까 안 된다 말이오. 안 될 때 비로소 '아, 내가 논리한 그 논리의 지식이  이게 잘못 됐구나' 이래 가지고서 논리 연구를 하고 고다음에 실지로 실험  연구를 해 가지고 논리 연구 한 것이 실험한 연구와 이와 같이 들어맞았을 때에,  그러니까, 논리 연구 해 놓고 실험할 때 자꾸 고칩니다. 해 보니까 고쳐지고  고쳐지고 그래 가지고 논리 연구 한 것이 실험 연구까지의 달성이 돼 버렸으면  이제 그거는 됐다 그거요. 그거는 됐어. 발명이 된 것입니다. 발명이 됐는데도  또, 발명이 돼도, 내가 그때 죽림 교회이든가 죽 무슨 교회인데. 서울에 있는  교회인데 그 때 오래 돼서 모르겠어. 집회하러 갔는데, 거기 가니까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그 사람이 생활의 필수품을 아흔 두 가지를 발명했어요. 바로 O 정권  초기인데 필수한 필수품의 발명을 아흔 두 가지인가 했는데 이 사람이 어찌  됐느냐 하니까 '이거 참 우리나라가 이래 가지고는 이거 되겠습니까? 이 사람이  아흔 두 가지 발명을 했는데 이 사람이 지금 밥을 못 먹고 살아서 참 가난하게  곤고하게 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 묻기를 '뭐 그러면 뭐 하나 발명했느냐'  이라니까 '이 사람이 발명한 것 중에는 이거 모 두 다 석탄도 캘라 하니까 힘이  들고 연료 부족으로서 심히 곤란한데 이 바다 물을 가지고서 연료를 만들어서  불을 뗄 수 있도록 이것을 발명을 했습니다.' '발명했으면 그거 실험을 해서  됐느냐?' '예, 실험해서 됐습니다. "그런데 왜 곤란하냐? 왜 생활이 곤란하냐?'  그라면서 내가 있다가서 말을 했어 '내가 곤란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부족한 것이  있겠지?' 뭐 이거 참 어려운 걸 발명을 했는데 그렇다고서. '그런데, 네가 하나  몰랐다. 아마 그게 경제성이 없을 것이다. 경제성이 없을 것이다. 십 원 들여  가지고서 십 일 원이라도 돼야 되든지 십 원 들여 십 원이 돼야 될 건데, 백 원  들인 게 십 원밖에 안 되면, 백 원 들여 가지고서 만든 것이 십 원밖에 안 되면  그게 된다 할지라도 그거는 다 파괴적이요 아무 소득이 없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그거는 안 된다. 그라니까, 바닷물로 가지고 암만 연료를 해서 불을 뗀다  할지라도 그거 하나 만드는데는, 석유 살라 하면은 백 원 들이면 사는데 네가  만든 거 쓸라 하면 한 십만 원이나 백만 원이나 들어야 되니까 누가 그거 사  쓰겠노? 그러니까, 경제성이 없어 안 된다.' 그 사람에게 경제성이 없어 안  된다는 고걸 말했습니다.

 요새도 보면 사람들이 요걸 혼잡해요. 논리, 논리 연구가 실험 연구의 그런  데에는 경제성이 있어야 돼. 자본과, 자본과 결과의 수지의 계획성. 그 수지  계산이 맞아서 거게서 이익성이 있어야 된다 그거요.

 그런데 모든 것은 그런데,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고 다 이래 나왔는데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여게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데 있지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안하면' 네, '나를 보내신'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요거 위로 갑니다. 요걸 밑으로 붙이면 안  돼요. '기록 되였은즉 아버지께서' '기록하였은즉 아버지께서 요걸 밑으로 붙여  버리면 영 딴 말 됩니다. '기록하였은즉' 하는 요거는 위에다 떼 붙여야 됩니다.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그래 예언 되어 있기 때문에' 끊어졌습니다.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그런데, 고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보지 안했는데 뭣 듣고 뭣 배우겠습니까? 보지 안하고 뭘  배우고 듣겠습니까? 이것은 이 인간 주관이라 하는 것은 모르나 인간 주관은  모르나 객관인 하나님 편에서, 객관인 하나님 편에서 벌써 들을 수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이렇게 은택을 입은 자라야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러니까 이것이 절대자이신, 자존자시요 절대자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거게서부터 발원대 가지고서 이런 것이지 인간들이 여게서 주관해 되는 게  아니라, 주관은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데 객관 단독의 역사가 있어 가지고서  그 객관 역사가 와 가지고서 이제 주관에게 슬슬 배어들어 와서 되는 것이  기독교라.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주관이 이해해서 믿는 게 아니고 객관  역사가 이 주관인 반대하는데 자꾸 이걸 변화시켜 가지고서 예수 믿게 만드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요 다른 모든 이종교는 땅에서  올라온 것인데, 다른 모든 과학이나 철학이나 모든 것은 사람에게, 사망이라는  그 종자에서, 그 속에 부패시키는 사망 시키는 악령의 힘에서 악령의 힘에서 그  사람이라는 종자에 가 가지고서 거게서 악령 악성이 움직여 가지고서 나온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인간의 발동이요 인간의 생각이요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의  그 모든 뜻이라 그러나 기독교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 자존자 그분이 지은.

그분이 지으신 그분에게 지음 받은 이것들이 뚝 떨어져 가지고 저것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거게서 독생자의 대속으로 이랬으나 실은  그것도 영원 전부터 예정하셔 가지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위에서부터 역사하신  그 역사가, 오래 전부터 많은 역사를 만들어 가지고서, 범위 넓게, 섭리가 범위  넓게 역사해 가지고 슬슬 배어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요새 벌써 겨울이 거의 가고 봄이 되어오는데 봄이 오는 것도 볼 수 없게  말이지요, 하나님이 슬슬 이렇게 봄을 오니까 봄 오는 줄 아무도 모르요. 아무도  모르고 그분하는 건 다 그래요. 모르는데 벌써 '아 이거 봄이 확실히 왔구나.'  조금 있다가 '아이구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이럴 거라 말이오. 또, 그분이  정원에 심어 놓은 나무를 암만 봐야 커는 걸 모르지마는서도 슬슬 와 가지고서  그 모든 분위기나 이래 거석하니까 그것이 움이 트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자꾸  이와 같이 돼진다 말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그 위에서부터 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게 요한복음에 말씀한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약간 말했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듣고 배운자, 듣고 배웠다 말은 우리 주관으로서 듣고 배웠다  말이 아니고. 주관이 하나님 봤다 말이 아니고. 고걸로 발표합니다. 아버지를  봤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그 객관 역사의 그분에게서 들을 수 있는 벌써  은택을 입혔고 배울 수 있는 은택을 입고 그 은택을 입은 자만 이 내 말을 들을  수 있고 내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내게 올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우리 주판이 뭘 명철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요 도리를 깨닫는 사람은 제가 아무리 명철해도 명철한  그게 제게서 발원된 게 아니고 명철이 벌써 위에서부터 시작 돼 가지고, 와  가지고 명철이라 우둔이라 다 거게서부터 와 가지고서 이와 같이 나타난 발표라.

거게서 시작된, 발원된 것이 발휘된, 환하이 빛이 나 오는 것같이 발휘되어  나오고 발아 되어 나오고 발표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제 된 것이  아닌고로 저 된 거 가지고서 교만할 수가 없고 또, 어떤 못난 것을 보고서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왔기 때문에 멸시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 가지 도적질 말했지요?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것이라 하는  이 사실을 깨닫는데에서 사람의 폭은 넓어지고 사람이라는 것은 슬기로워지고  모든 어리석은 교만이나 제 자랑하는 자긍이나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게, 악성이 없어져야 하늘나라 갑니다. 악성이 없어져야.

어제 아침에 설교했지. 새벽에 설교 했지요. 그 부자에 대해서 했는데, 우리는,

 그러니까 기독교는 위에서부터 내려온다는 걸 똑똑히 알고, 기독교에는 고만  자기 부인이 그게 능력이오. 자기 부인이 능력이요, 또, 기독교는 그렇기 때문에  아주 똑똑하고 잘난 자보다, 똑똑하고 잘난 자보다 어리석고 못 난 자가 좋고,  어리석고 못난 자보다 아주 송장같이 죽은 자가 좋습니다. 알겠습니까? 송장같이  죽은 자. 이제 완전히 자기 주관이라는 거는 송장 같이 완전히 죽어 버렸고 그  자기를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을 마음대로 잡아 부리고 써서, 써  가지고서 불에 넣어도, 불에 넣어도 그저 순종, 이거 똑 생명 없는 도구와  마찬가지로 불에 넣어도, 아무리 해도 자기 주관이라는, 자기의 소욕이라는,  사욕이라는, 주관이라는, 자율이라는 것이 없고 완전히 그분의 것이 돼 가지고서  그분에게 피동되고 그분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한 그것이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랬소. 예수님은 하나도 당신의 주관이 하나도 없었소. 당신이  주권이 하나도 없었소. 당신의 자율이 하나도 없었소. 아버지 그분에게 만  피동됐지 당신 거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말하고 난  다음에 '이거는 내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일하시니까 그 일이 내  입으로 통해서 나와서 말로 나왔다.' 요것이 우리의 본받을 우리의 원형입니다.

원형이기 때문에 요 원형을 우리가 입어서 이 모형을 입도록 하기 위하는 것이  우리 구원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 자랑하고 제 잘남이나 하고 자기 위한 다는 거  그러기 때문에 말세에. 요한계시록 18장에 인간이 멸망을 받는데 멸망 받는 그  죄가 무슨 죄냐? 그것을 정의를 나타낼 때 간단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자기를 기쁘게 자기를 사치했던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거 내나 자기중심, 타락이라는 악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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