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양식

 

1984. 3. 23. 금새

 

본문: 요한복음 6장 53절- 5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삼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는 음식을 먹으셨습니다. 음식을 먹지  안하면 주리시고 또 기진하시고, 음식을 잡수시면 기진이 회복이 되고 그렇게  우리와 꼭 같은 그런 인성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내게 있다 하시고,  그 양식이 무엇인고 하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 일을 완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양식이 무슨 양식이라는 것을. 육신의 양식이 아니고 양성 일위의  양식이요. 또 그 직책의 양식 이라. 그 직책은 이 두 가지를 먹어야 그 직책이  점점 완전해지고 온전해지고, 또 이 두 가지 양식을 먹어야 그 직책이  장성해지고 또 중보자가 차차 완성이 되어져 가고 또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하시는 그 구속이 점점 완성이 되어간다, 만일 그렇지 안하면 다른 것을  가지고는 되지 안한다. 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예수님이 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상속을 받는 그 상속권도 이 두 가지 양식을 먹음으로  상속권이 튼튼해지고 장성해진다, 또 하나님과 동거 동행도 이 두 가지 양식으로  말미암아 점점 장성해지고 튼튼해진다.

 십자가상에서 죽으실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신 것은 그것은 대속으로  완성을 이루었다는 것을 말하고, 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마리아가 만질라고  하니까 '만지지 말아라. 아직 내가 미완성이다.' 무슨 미완성인고 하니 '나의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에게로 내가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 말씀하시고 난지 잠시 후에 다시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당신의 몸을 만지라고도 하시고 또 '내 못자국과 창자국을 네가 만져 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놓으신 그  공로를 영원히 우리에게 입혀서 그 공로를 입고 새사람되어 사는 그 생활을  영원히 하게 하시는 그 일을 성공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시 창조 주자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심으로써 성공하기 시작했고. 지금 이천 년 됐지마는  이억만 년이 된 후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입혀 서 우리가  대속 받은 자로 영생 가진 자로, 온전한 자로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입으시고 또 이렇게 영원한 희생을 하셔 가지고서 부활하셨는데. 만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런 일은 없지마는 가정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이 억억만 년  후라도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은, 이 피조물을 입은 이 입은 것을 만일이거는  논리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하는 말입니다. 입은 인성을 벗는다고 하면 어찌  되느냐? 벗으면 우리들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있지마는서도 그  대속의 공로를 입고 영생하는 이 생명에 속한 것은 하나도 안 되고 고만 중단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영원히 우리 위해서 낮아지시고 천해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 희생을 영원히 끊치지 아니하고 영원히 희생하기로  하나님이 작정 하시고, 양성 일위이신 주님이 작정하시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심이 그것이 큰 희생이요, 또 사람 되셔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 큰 희생이요, 또 대속 의 공로를  베푸신 그 공로를 영원히 우리에게 입혀서 산 생명과 산 소망과 또 산 온전한  자로 영생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입으시고 오신 영원한  희생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 희생은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까지가 반  동가리고, 반 동가리고, 또 죽으신 가운데서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심이,  부활하심으로 영원까지의 부활하신 신인양성일위로 계시게 되는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희생하신 반 동가리입니다. 그러면, 그 양면이 합해서 온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우리가 논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시면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대속의 일을 온전히  이루었는데, 온전히 이룬 거기에까지 장성해지기를 무엇을 자시고 장성해졌느냐?  또 그 공로로 완성되기까지 장성해지기를 무엇을 먹고 그 공로가 장성해졌느냐?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중보자로 완성되기까지의 장성해지는 데에  무엇을 먹고 장성해졌느냐?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에 다시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는,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또 부활하신 후에 계속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의 중보자로  구세주로 이렇게 이루셔서, 우리에게 대해서 다시 새생명을 주시고, 산 소망을  영원히 가지고 영원히 누리도록 하시기 위한 중보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는 우리의 구원을 만드셨고, 또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만드신 구원을 우리에게 다 사누어 줘서 우리가 그 구원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그것이 부활에 관한 중보자요 구속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만드실 때에는 무엇을 먹고 만들 수 있는 그런 실력 이  있었으며 그 구원을 만드셨는가? 무엇을 먹고 만드셨는가? 또 만들어 놓으신  것을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서 누리고, 이 구원으로 영생하고 평강을 누리게  하시는 데에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고 계시는가? 무엇을 먹어서 그 힘을 얻고  점점 견고해지고 장성해지고 온전해지는가?  그러면, 예수님이 먹은 양식이 몇 가지 양식을 먹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  구원을 만드시는 데에 완전히 만들기까지의 장성해졌으며, 또 만들어 놓은  구원을 우리에게 나눠 주어서 그 구원을 영원히 나누어 받아 가지고 영원히  영생과 평강과 쾌락을 누리는 그 구원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 구원을  나누어 주시는 그 구주로서는 무슨 양식을 먹고 그렇게 힘이 계속 있었으며,  늙지도 안하고 쇠하지도 안하고 쇠잔해지지 안하고 그 힘이 장성할 뿐만 아니라  강건하고 점점 자라서 나누어 주시는 구주로서의 완성이 되어졌는가? 그러면,  예수님이 만드시기까지에 예수님이 장성하는 데에는 몇 가지 양식을 먹었으며,  또 그 후는 몇 가지 양식을 먹고 그렇게 힘을 계속 가지셨고 또 그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장성해서 점점 완전을 향하여 완성되기까지 자라가는 장성을 얻게  되었는가? 장성해졌는가? 몇 가지 양식을 썩었지요?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양식을 먹었는가?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예. 됐소. 저 뒤에  보니까 손가락 하나 가리키는 누가 있는 것 같다. 하나 이거 틀렸어요. 두 가지,  이 두 가지 맞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두 가지가  양식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계속 이 양식을 먹으심으로써 점점 강해지고 힘  있어지고 완성까지 자라가지. 이 두 가지 양식을 만일 먹다가서 한 끼라도  씻으면 예수님은 어찌 됩니까? 한 끼라도 뺏으면 예수님은 그만, 한 끼라 도  뺏으면 기진만 하고 맙니까 아주 죽습니까? 예? 기진합니까 죽습니까?  여러분들이 죽는다는 것이 느껴집니까? 죽습니다. 죽습니다. 그러기에, 한 끼도  빠지지 안하고 고대로,  그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말씀은 내가' 뭐라 했습니까? 뭐인  줄 아노라?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줄 아노라' 이랬는데 우리나라 번역에는  영생인 줄 아노라 하니까, 그 얄궂게 번역이 잘못돼 가지고서 에누리 한 것같이  영생인 줄 '아노라.' 영생이라는 것은 실상이 아니고 뭘 영생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는 것같은 그 좀 희미한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영생인 줄 아노라  그말은 영생인 것을 아노라, 영생임을 아노라,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임을  아노라, 아버지의 말씀이 영생인 것을 아노라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더 명확하고  옳게 되는 번역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예수님은 잡수신 것이 이 두 가지 양식입니다. 또 우리는  무슨 양식인가? 이 두 가지 양식을 또 말씀했습니다. '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지 안하면 영생이 없고 마지막 날에  영원히 살아나지를 못한다. 또 내 피와 살을 머는 자는 내 안에 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말은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인데, 나로 인하여  산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 그 자체가  내게 와서 산다는 말인지? 나로 인하여 산다 말은 내가,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예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살으셔서 내가 그분에게 피동돼  가지고, 그분이 내게 와서 살아 그분에게 피동되어 내가 산다는 말인지? 이제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주님이 나를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사는 것이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주님이 나를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그 두 말 중에서 한마디인데,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이렇게 우리가 입어서 이 공로를 생각함으로써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가  먹음으로, 먹는 자는 주님을 인해서 살리라 '나로 인해서 살리라' 주님을 인하여  살리라 이랬으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주님이 내게 와서  살으셔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내게 와서 살아서 내가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이 내게 와서 나를 위해서,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 나를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감사해서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이 두 말 중에 한 마디인테 여러분들어떤 것인고 한번 판정을 해 보십시오.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셨으니까 첫째는 내가, 이제는 주님이 날  위했으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인지, 이것이 일호, 또 이호는 이 공로를 입고 이 공로를 사모하고 생각 하고  이렇게 이 공로를 먹는 자는. 공로를 양식으로 삼는 자는'주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나 위해서 당신이 사신다는 말인지, 이것이 이호 (저 양성원에 남해  ○조사님 왔으면 손 들어 보이소. 아 그 앉았나. 안 보여서 말이 야.) 그러면,  일호를 말했고. 일호는 내가 주 위해 산다는 말이요, 이호는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나를 위해서 산다는 말이요 이 두 가지 말인데, 나로 인하여 산다는  말이 그러면 일호가 맞는지 이호가 맞는지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호가 맞는지 이호가 맞는지. 일호는 누가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거라 했지요?  예? 예? 네, 그러면 일호는 우리가 주님 위해 사는 것이 일호고. 또 이호는  주님이 우리 위해서 사는 것이 이호고, 그러면 일호가 맞는지 이호가 맞는지  물어 봅시다.

 자, 이호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가락을 들어서 한번 표해 보십시오.

이호가 맞는다고 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호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늘어 보십시오. 자. 그라면 인제 또 일호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안 들고. 그래. 알아듣기는 알아  들었습니다. 녜, 이호가 맞습니다. 이호가 맞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내게 있는 기능을 가지고, 내게 있는 원능을  가지고, 내 힘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주님의 그 무한하신 기능을 가지시고 내게 오셔 가지고 주님의 기능이  나를 붙들고 사십니다. 나를 붙들고 사시니까, 이호가 주님이 나를 붙들고  사신다는 것인데. 그러면 이호는 그 능력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그 능력이  사람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때문에 그 사는 것은 하나도 없어질 것이  아닙니다. 다 완전이 됩니다.

 그러기에, 금을 불로 연단하는 거와같이 우리를 연단한다고 했습니다. 연단을  해서 '금을 불로 연단한 것보다도 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했는데, 그 연단하는 것은, 금을 연단하는 것은 금 외에  잡것은 다 태워 버립니다. 흙도 태우고 모래도 태우고 잡것은 다 태워 버리요.

은도 타 버립니다. 처음에는 흙 이런 게, 돌 이런 게 타고, 그 다음에는 쇠가  타고. 그 다음에는 안타는 구리쇠도 타고 그 다음에는 은이 타고, 은이 맨 뒤에  탑니다. 제일 가치가 있지요. 은이 맨 뒤에 타고 그 뒤에 이제 금만 남는데 금은  암만 불로 구워 봤자 타지 않습니다. 타지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현실 이라는 그 시험을 줘 가지고 우리를  연단하신다는 말은, 우리에게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을 주시면 자기가 무슨 세상의  소망을 가지고 신앙 행위를 하는 것. 그런 거는 모래와 같은 것이니까 대번 타  버리고 또 자기 기분에 맞아 가지고서 자기 욕심으로 신앙생활하는 그것도 한  구리 쇠정도의 그것도 타 버리고, 자기에게 있는 전심전력 다 기울여서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은 그것은 은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타 버리고, 정금만  남는데 뭐이냐? 하나님의 그 완전하신 그것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 속에서  역사해서 우리를 통하여서 사신 요것은 완전이요. 완전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요것은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우리에게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영원히 타지 안하고 멸해지지 않습니다. 요것이 영생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을 연단하는 것은 금 외에 잡것을 태우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인데, 믿음을 연단하는 것은 어떤 것을 태우는 것입니까? 믿음을 연단하는  것은, 그 믿음이라 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욕심으로 뭐 그런  것으로서 된 것을 태우는 것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그 순종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우리 인간의 인적 요소만으로 된 것 그것을 태워 버리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가 우리 사람에게 와 가지고서 인적 요소를  붙들고, 인적 요소를 싸고, 보호하고, 인적 요소를 통해서 나타나는 그것만 남아  있지. 하나님의 신적 요소가 속에 알맹이가 돼 가지고서 우리 인적 요소는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를 힘입어서 그 요소로 인하여서 사는 그것만 남아 있지,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인적 요소로 된 것은 다 타 버린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신적 요소는 비유컨댄 주인이 되고 우리의 인적 요소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이 성전이, 하나님이 그 집  주인이기 때문에 그 이 집을 아무도 해하지도 못하고 이 집을 또 그 주인이  수리하기 때문에 이는 잘 보존이 되어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일생 동안 예수를 믿어도 분별을 못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기 쉽습니다. 자기가, 자기가 주를 위하는 요것으로서 살면 언제든지  주관이기 때문에 그것은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요 새사람이 아닙니다. 옛사람은  자기가 행동하고 사는 것이 옛사람 사람이요, 내가 사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나를 살려서 사는 것, 하나님이 나를 살려서 내가  거기에 피동으로 사는, 하나님이 내게 와서 나를 살려서 사는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은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다 이 말은 진리와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나를 살게 해서 살고, 나를 움직이게 해서 움직이고,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해서 행동하는 이것이 영생이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생명이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잘 구별있게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을 자기가 들어서 예수를  믿는 줄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주를 위해서 사는  생활이니 그것이 영생인 줄 압니다.

 우리는 주를 위한다고, 우리말로 하기를 주를 위한다고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주를 위하는 것이, 우리 어두운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를 위하는 그것이  실상은 주님이 나를 위하시는 그 일을 받을 수 있는 방편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받을 수 있는 방편, 이말 알아듣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예?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이것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주님이 내 마음을, 다해서 내 마음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되도록, 내 마음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그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그 은혜를 받는 그것은, 내가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주님의 그 완전하심이 내 마음을 붙들어서 내 마음이 참으로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되어지도록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이 좀 어려워서,  그러기에,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것을 내 요소 가지고, 내 요소 가지고  하나님 위해서 희생해서 산다는 말인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요소를 가지고서  나를 위해서 산다는, 내게 유익되도록 나를 위해서 산다는 그 말이지? 일호인지  이호인지? 일호인지 이호인지? ○○○목사님,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이제 내가  보니까 ○○○목사님이 그전에 잘 조는데 오늘 아침에는 눈을 또록 또록 뜨고 좀  알아듣는 것 같애, 보니까 이 말씀 알아듣는 것 같애서 그래 내가 한번. 한번  알아듣는 것을 드러내 줄라고 그래 내가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하니까 이호  손가락을 딱 드는구만.

 여러분들, 목사님이면 다 아는 줄 알아도 아니요. 만일 우리나라에서 목사님 백  명을 모아 놓고서 물으면 거기에서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런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했으면, 다, 백 명 있으면 백 명에게  다 가르쳐 주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을 통해서. 요거는 요 갑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면 모든 사람이 갑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 깨달음을 알게  됩니다. 또 요게는 또 을이라 하는 사람을 통해서 또 하나님이 깨닫도록 요렇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을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니까 을에게 또 배워야  됩니다. 이런데, 교만한 자는 절단일라. '내 거라야돼 되지. 내가 깨달은 거라야  되지, 우리 교파서 깨달은 것이라야 되지 남의교파서 깨달은 거는 안 된다'  요렇게 말하는 사람은, 고 사람은 하나님은 주시기를 자기 교파가 아닌 딴  교파에 있는 사람에게 깨닫게 해 가지고서 주는데 그 얼른 얼른 받아야 될  터인데 받지 안하니까 고거는 평생 못 받고 만다 말이오. 또 자기를 깨닫게 하셔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도록 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에게  깨닫게 하지 안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깨닫게 해 가지고 또 자기가 받게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 우리가 깨달은 것은 부지런히 주어야 하고, 또 내게 필요한 것은  어데 있습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자기에게서 나옵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나옵니까? 예?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에게서 나옵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나옵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거요. 그러면, 제게 필요한 것 제게서  나오면 편리하고 좋을 터인데 왜 하나님께서 내게 편리한 것 내게 좋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깨닫게 해 가지고 내게 오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깨닫게 하셔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도록 하고 왜 그렇게 복잡하고  불편한 그런 방편을 쓰시는가? 그 방편을 쓰시는 이유를 성경에 말씀해 놨다  말이오.

 성경에 말해 놓기를,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데 이 지체에 필요한 것은 저  지체가 가지고 있고 저 지체에 필요한 것은 이 지체가 가지고 있도록 그렇게 한  것은 지체와 지체끼리 나는 너 아니면 못 살고 너는 나 아니면 못 산다, 지체와  지체끼리 화합하도록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지체와 지체끼리 교만 부리지  못하고 다 겸손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한다, 서로 동등된 존대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다 말이오. 하나가 다 해 버리면  교만할 것 아닙니까? 이것은 이게 필요 없다 '네까짓 것 필요 없다.' 필요없다.

하는 그것에게서 나에게 또 필요한 것이 꼭 나온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괄시를  못 하겠다 말이오. 이제 모든 것에게 필요한 걸 주니까. 필요한 걸 주니까 '내가  뭐 모든 걸 주기만 하지 뭐 내가 뭐 모자랄게 뭐 있나?' 이랬는데 내게 필요한  것은 또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이거는 온 몸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 지체, 지체와 지체끼리 서로  분쟁하지 안하고 지체와 지체끼리 서로 애끼고 서로 귀중히 여기고 서로 저것이  아니면 안 된다, 모두 서로 서로 너 아니면 안 된다 다 이렇게 해서, 서로  화합으로 시비없는 화평의 이 단합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셨다  고렇게 성경에 분명히 말씀을 해 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요 깨닫는 것도 누가, 제가 다 깨닫는게 아니라 깨닫는 것을  열 사람이면 열 사람에게 한 가지씩 깨닫도록 해 가지고서, 저 사람이 만일  깨달은 것 아홉 가지를 안 주고 나는 한 가지 안 준다 말이오. 한 가지 안 주면  그 사람 아홉 가지 못 받지 않소? 한 가지를 주면. 아홉 가지를 다 받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하는 말이, 자기 한 사람이 자기 직책을 바로 하면 전 존재에게  혜택을 다 입히는 것이 된다, 다 입히는 것이 된다, 또 그럴 뿐 아니라 자기가  자기 직책을 다 하면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입히는 그 결과가 되어지고  모든 사람의 것은 다 자기의 것이 되어진다, 그러면, 이 이치가 같은 이치요  다른 이치요? 예? 요 말이 같은 이치요 다른 이치요? 같은 이치라 말이오.

그렇지 않소? 같은 이치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서로 교만하지 지체와 지체끼리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성경에 그래 놨소.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에게 이 사람은 저 사람에게서 저 사람은 이 사람에게서 고렇게  배워 가지고 되도록 하나님이 고렇게 하셨다 그말이오.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데. 가르치는데 내게 필요한 것은  어데 있습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어데 있겠소? 내게 있겠소? 여러분들에게  있겠소? 여러분들에게 있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에게, 나는 은혜받기를 주일 학교  학생들, 장년반들 자기네들은 몰라도 지내 가면서 행동하는 것, 행동 하나 하나  하는 데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하는 걸 보고 '내게 저 꼬라지가  지금 얼마나 더 많을 거다. 참 그 꼬라지 보기 싫다. 저 보기 싫은 저 꼬라지가  내게는 저 사람보다 더 많다.' 또 그러니까 고칠 것이, 고치라고 하는 고칠 것이  여러분들에게서 나오더라 그거요. 또 '저 사람이, 저 주일 학생이 조렇게  순진하게 깨끗하게 하는 것은 내게는 없다.' 또 그 사람에게 배운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줌으로써의 받을 수 있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 속에 있고 또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게 있다 하는  요것을 깨달으면 도통이 됩니다. 도통. 도가 통해져요. 장성 해져요.

 그런고로, 이제 오늘 아침에는, 주님이 두 가지 양식을 한 끼도 안 빼고 참  입맛 있게 구미 있게 한 끼도 안 빼고, 원하고 원하고 기뻐하고 기뻐하고 단  마음으로 한 끼도 재지 안하고 이 두 가지 음식을 잡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심의 이 우리 구원을 만드는 일을 성공했고, 구원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었고, 이제는 만든 구원을 우리에게 나눠 주시기 위해서도 음식을 잡수셔야  되는데 한 끼라도 덜 먹으면 안 됩니다. 꼭 한 끼도 안 빠지고 계속 이 양식을  자셔야, 영원히 자석야 우리에게 필요한 구원을 영원히 우리에게 나눠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영원히 자신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영원히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을 계속 한 순서도 빼지 안하고 계속해야 뒨다 그  말이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계속 죽으실 때까지도 계속 역사하셨고  영원히 계속합니다. 영원히 그분은.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계속하지 않기  때문에, 질팡 갈팡 이라기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대속의 사죄, 대형의 공로를  배풀어 가지고서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정죄는 받지 일게 했지마는서도  성장하지는 못한다 그말이오.

 우리의 양식은 둘이라. 주님의 피와 살이 우리의 양식인데 이 두 가지 양식을  우리에게 구미 있도록 조미료를 넣어 넣고, 조미료를 넣어 줬고 소화제를 넣어  줬는데 조미료와 소화제는 무엇이라고 말했지요? ○○○ 목사님, ○○○ 목사님,  주님의 피뫄 살은 우리의 양식인데 이 양식을 맛있게 먹도록, 소화가 잘 되도록  조미료와 소화제를 넣어 줬는데 조미료와 소화제의 이름이 뭐이지요? 인제  우사한다. ○○○ 목사님, 진리와 영감 진리와 영감이 소화제라 그말이오.

소화제요 조미료라. 어제 아침에인가 어제 말했지?  어짜든지 이 필기 녹음 그거 우상입니다. 여러분들 크게 속는다 말이오.

속아요. 필기만 자꾸 하는 이런 것만 해가지고 안 돼요. 그 필기를 하는 것은  그것은 나중에 우상이 무슨 우상이냐? '필기에 내가 기록해 놨다. 필기에 기록해  놨으니까 필기 보면 알지.' 그게, 그놈이 살아 역사해야지? 또 '녹음해 놨기  때문에 나중에 녹음만 틀면 안다.' 안 돼 들을 때 그때 자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따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말씀을 들을 때에 들어서 딱  깨달아야 됩니다. 깨달아서 그게 꽉 박혀 버려야 되요. 박혀서.

 우리의 영원한 양식 두 가지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은 무엇이요? 한번 말해  봐요. 예수님의 피와 살. 그러면, 그 피와 살을 먹기가 싫어. 아 구역질이  나는게 먹기가 싫어. 먹기가 싫을 때에는 조미료를 넣으면 맛있습니다. 조미료는  맛있게 한다 그말이오. 도울 조(助)자 맛 미(味) 자 재료 료(料)자, 맛을 돕는  그것을 조미료라 하는데.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데 맛이 있어서, 아,  어떻게 막 갈급하고 맛이 있게 하는 것이 뭐이라 했지요? 네. 진리와 영감. 또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소화할라 하니까 참 소화가 안 된다 그말이오. 소화  안 된다 그 말은 예수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 사는 일. 주님이 나를 위하여 살려  주시는 그 일을 내가 받는 그 일이 힘이 든다 말이오. 그럴 때에는 소화제는  뭐입니까? 소화제도 진리와 영감. 고 비유입니다. 고 비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것을 비유로 알고 있어야 돼. 소화제도 둘. 양식도 둘.

 오늘 아침에 또 어려운 것 배웠소.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것은 내가 주를  위해 사는 것인지 주님이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인지, 내가 주를 위해 사는 것  일호 주님이 나를 위해 사는 것 이호, 이호입니까 일호입니까? 자 손가락 들어  가리켜 봐요. 네. 잘 배웠습니다. 됐소. 놓지 말아요. 이런데 금방 마음이  되는게 아니라 자꾸 새김질하고 새김질해서 이래 새겨 가지고 이래 돼지는  것이지 그냥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면서도 항상 사모하고 길을 가면서도 사모 하고  누구하고 이야기 하면서도 사모하고 이렇게 계속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이래 생각해서 주님이 어떤 공로를 베풀었다. 어떤  애로가 있었다. 그랄라 하니까 어떻게 됐다는, 자꾸 거기에 대해서 내 마음  전부가 주님의 대속에 공로만 이렇게 접하고 있는 그것이 주의 피와 살을 먹는  일이라 말이오. 거기에서 우리의 인격의 양식은 됩니다. 이 영생할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자꾸 거기서 자라갑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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