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양식


선지자선교회 1982년 9월 19일 주일오전

 

본문 : 요한복음 6장 52절-59절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지난 주일 오후에 제가 이 말씀을 증거하려고 했는데 몸에 열이 더 많이 올라서  뒷날을 생각하고 그만 뒀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이래 모여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 안에는 별별  욕망과 영웅심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끼어 있습니다. 특별히 은사 위치에 있는  반사로부터 권찰, 집사, 또 장로, 전도사, 목사, 다문 한 사람이라도 남의 신앙을  책임맡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앞으로 시대도 바꾸어지고 또 저도 얼마나 뭐 몇십 년 있을런지 며칠  있을런지 또 하나님이 딴데로 옮기실런지 모릅니다. 내일 일 우리는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 말씀 한 말씀 듣는 이 진리를 굳게 잡아야 그 흉악한  이리에게, 또 여러분들 중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잘못된 운동자들 그런 이들에게  주먹으로 시비할 것 아니고 반드시 교리 신조 논쟁이 나옵니다.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논쟁해서 첫째 신조와 교리적으로 여러분들이 맡은 바  양떼를 안 뺏길 수 있는 그 실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옳은 편에 서서  하나님과 같이 하는 그 편이 되고 입장을 가져야 온유도 화평도 담력도 가지고  양떼를 빼앗기지 아니하지 벌써 지금 하나님의 도리를 귀넘어듣고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 구별하지 못하면 일차 패전해서 희망이 없습니다.

 또 교리와 신조로 이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그것 다  힘없습니다. 교리와 신조에 굳게 서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여러분들 속에 강하고  담대함도 나올 것이고 또 어떤 세력이 나타난다 해도 그것에 대해서 대항해  싸우실 이는 주님이십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을 성령이 택해서 은사 위치에  세우신 것은 너희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양떼들을 지켜  보호하여 이런 악한 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선택해  세웠다'하는 말씀을 사도행전 20장에 똑똑히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도 오늘 공과를 하지 못해서 저 지난번에 자유로 옛날 걸 택하라  했더니마는 주님의 성도의 요구에 대해서 그 설교를 오늘 공과로 한 모양인데  오늘 공과를 일층 이층 사층 모두 가르치는데 사층은 좀 낫고, 일층은 내가 잘 못  들었고, 이층에는 OOO선생이 가르치는데 그 속에 뜻을 벌써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 떠내려 보내면, 앞으로 양떼를 삼킬 자들이 다 유식하고, 언변 좋고,  빼짱 있고, 또 활동성 있는 그런 사람들을 붙들고 일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앞에 닥쳐 놓으면 여러분들이 교리와 신조를 성경대로 굳게 쥐지 않으면 폭풍  앞에 등불같이 다 꺼져 버리고 날아가 버립니다. 지금 귀넘어 들으면 헛일입니다.

자기와 맡은 바의 양떼를 책임을 지고 들어야 됩니다.

 오늘 간단하게만 말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유대교인들에게 설교를  하시니까 모든 유대교인들이 다 수근거리기를 '제가 어떻게 제 피와 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하겠느냐? 그 피와 살이 몇 사람은 먹을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을 것이 뭐 있으며 또 하겠느냐?' 그렇게들 그들이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생각 가진 것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셔야 된다는 여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육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 말입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와 살을 우리가 먹는다고 하면 그는 우리의 이 고기 덩어리의  영양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와 살은 벌써 쏟았고 새로 부활해 가지고  신령한 몸으로 우리 안에 계시고 아버지에게 계시기 때문에 그 피와 살은 우리가  구경도 못 합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유혹받은 이해 못 하던 거와 같은 그런  혼잡은 가지지 않지마는 지금도 육적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것을 방비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이 양식이라, 피와 살을 안 먹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말씀했는데 생명 없다 말은 중생한 자도 생명 없다 말 아니고 피와 살로 인하지  않으면 중생이 안 됩니다. 피와 살로 인하지 않으면 주의 피와 살의 공로를  근거하지 아니하면 중생도 없고 또 중생된 사람이라도 주님의 피와 살의 이  은혜가 아니면 그는 산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피와 살이 양식이 되는 것은 이는  고기덩어리의 양식이 아니고 마음의 양식이요, 곧 그보다 신앙 양심의 양식이요,  그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참사람의 인성이 죽었었는데 참사람의 인성이 죽은  그 인성은 하나님의 형상 곧 신성의 모형인 인성, 인격성, 하나님의 신성의  모형적 속성을 말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사람의 인성은 죄와 허물로 죽었고  수성, 인성이 아닌, 인간성이 아닌, 인격성이 죽었고 짐승과 같은 고기덩어리의  수성만 남아 있게 된 것을 가리켜서 노아시대 멸망할 때에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 그 말은 순전히 인성은 죽고 수성이 됐다 그말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수성된 사람을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진리와 성령의  연결로 우리에게 죽었던 참사람의 인성이 살아났습니다. 참사람의 인성이  살아났다는 그 살아난 인성은 곧 신성의 모형인 모형 속성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죽은 `인간의 발작으로 소생된 그 죽은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살아계신 그 지식으로 살아났습니다. 참사람의 지성, 참사람의 지혜성, 참사람의  중심성, 참사람의 도덕성, 사랑성, 참사람이 가진 그 인격의 진실성, 거룩성,  하나님으로만 사는 의성, 하나님의 의의 모형인 의성,  이것을 일반적으로는 여덟 가지 공통성이, 신성과 인성이 공통성 있는 점이  강령으로는 여덟 가지고 비공통적인 그 신성은 자존성, 완전성, 영원성, 단일성,  이것은 우리가 소망하면서 그런 것으로 성화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하는 말씀은 참사람의 인격성의 양식이라  말입니다. 인격성의 양식이라, 참사람의 인성의 양식이라 하나님의 속성의 모형인  하나님의 속성같은 지식성, 지혜성, 선성, 사랑성, 진실성, 거룩성, 의성, 주권성  이것이 참사람의 인성인데, 이것을 한 마디 더 붙여서 말하면 인격성인데,  신격성의 모형인 인격성인데 하나님의 형상인 이 인성, 참사람의 인성과 인격성의  양식은 주님의 피와 살, 주님의 공로밖에는 없다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참된 지식이 갈급한 것도 주의 공로를 사모할 때에  생겨집니다.

 천하 사람들이 다 말하는 것 부인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미래에 대한 모든  미래, 모든 미래에 대한 올바른 지혜의 갈급도, 이 지혜의 얻어지는 것도 힘도  주님의 공로를 통해서만 옵니다. 또 모든 인간이 수많은 중심이 천인 만인이 각각  다른데 참된 그 중심, 자존자의 중심으로만 되어지는 그리 집중되고 그 힘이  나오고 그만 갈급해지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죽이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지마는, 세상은 인간적 사랑 제일  악독이 많은 것이 사랑이요 제일 생명의 힘이 많은 것이 사랑이라는 사랑과  사랑의 구별성을 많이 말했는데 이 말이 걸려서, 이 말이 걸려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모르면 가도 가도 헛갑니다. 가 보면 헛일입니다.

인간에게 참사랑이라는 그 인격성 인간성 그것도 주님의 피와 살의 공로로만,  그게 중생되기는 됐는데 그게 거게서만 힘을 얻어서 강건해지고 자라고 그것이  활동하는 모든 기능이 다 자라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진실도 그러하고 거룩도 그러하고 우리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의 형상인 참사람의 인격성, 인간성, 참사람의 그 속성 이것은, 주님의 피와  살로 표시한 것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표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 저 자존하신 분, 그분 다음으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에서부터 유래해 오는 그것을, 대속으로 완성하기를 주님의 피와 살이  완성했기 때문에, 주님의 피와 살을 말한 것은 주님의 피와 살이 뭣 때문에  찢어지고 흘려지고 신성이 인성이 됐더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생각할  때에 거게서 참사람의 지혜도 생기고, 지식도 생기고, 중심도 힘을 얻고, 진실도,  거룩도 사랑도 중생은 됐지마는 먹어야 자라는 것처럼 이것이 힘을 얻고  새로와지고 강건해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피와 살이 양식되는 것은 마음의 양식,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양심의 양식,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는 참사람의 인격성, 더  들어가면 참사람의 인성 곧 하나님의 모형성, 그것은 주님의 피와 살로만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만 더 말할 것은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말했습니다. 참된  양식이라 말은 그 외에 것은 많이 있지마는 그것은 다 거짓되고 껍데기요 사망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요 참된 양식이라는 것을 내가 말을 많이 못 해서 해석을  못 하겠으니까 잘 들으십시오. 잘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참되다 말은, 세상에 도가 많고 길이 많지마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을 엿새  동안에 지어놓고 이것을 영원 무궁토록 완전케 하려는 그 목적을 세우신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 그 목적이 시작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피조물을 당신의 목적대로 완전케 하여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가 되게 하려는 그 정하신 목적이 하나뿐입니다. 목적이  하나뿐이오. 불교에나 유교에다 다른 이종교에 있는 것 아니오. 하나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인, 하나인 요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된 요게만 있다. 그  외에는 천 종교 만 종교가 있어도 그것은 다 이 목적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수의 이용물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인 목적이 예수님의 이 중보자로만 되기 때문에 참되고  그외에 거는 다 헛되다. 그것을 가리켜서 첫째로 말씀하신 것이고, 둘째는 인생이  이 피조물로서 만물보다 권세를 가지고 만 사물을 접촉하고, 아는 것도 접촉하고  모르는 것도 접촉하고 무한한 그분도 접촉하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관적으로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이 죄인데 잘못됐다고 느끼는 그것보다 모르는 삐뚤어진 게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삐뚤어진 것보다 모르는 삐뚤어진 것이 숫자가  무한입니다.

 그러면 모르는 삐뚤어진 이것은 지공법과 지성법에서 정죄해서 대심판에서  영원한 사망인데 이 삐뚤어진 것을 담당해 줄 실력을 가진 자가 누군가? 이  삐뚤어진 것을 담당할 실력을 가진 자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실력 가진  위대한 분이 티끌같은 나의 수많은 삐뚤어진 것을 책임져 주실 그분이 누군가?  아무리 소원해도 실지로 안 됐는데, 실지로는 안 되는 것인데 소원도, 실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내 모든 삐뚤어진 것을 담당하신 분이 누군가?  담당하신 분이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러기에 내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삐뚤어진 그것을 아무리 이제까지 해결했다 할지라도 미래 영원토록 삐뚤어질  것을 그것을 어떻게 할 건가? 그것조차 다 담당해서 해결을 짓고 우리를  책임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에 이길만 참길이라 그말입니다.

 또 칭의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칭의는, 삐뚤어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칭의는  절대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 주권자이신 하나님,  이분과 결합이 돼서 이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는 것이라야 영존할 수 있지  이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마지막에는 이분과 대립이  되고 충돌이 될 터이니까 언젠간가 정죄받고 사망받는다.

 이런데 이분과 이 연결된 이 연결을 누가 이 연결을 시킬 자가 있으며, 시켜  주기를 원할 자가 누가 있으며, 또 연결시킬 만한 실력이 누가 있으며, 연결시킬  자가 누가 있는가? 이 지극히 큰 문제, 한 분이신 그분에게 속하여 그분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것. 이는 참 무한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인이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여기에서도 천층 만층으로 다릅니다  절대자이신 그분과, 일국의 정권자가 그 정권자와 맞지 않으면 언젠가 마찰이  되고 마찰이 되면 약자는 강자에게 깨지는 것입니다. 이 절대자와 누가 연결시켜  줄 자격이 있으며, 또 연결시키는 길을 누가 알며, 연결시킬 자가 누군가?  연결시켜 놓은 자는 피와 살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밖에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길만이 참 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그때에, 이 공로가 아니면  자기가 자기를 생각할 때에 삐뚤어진 게 만도 천도 아니라. 참 다윗이 말하기를  내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깨어 보니 절대자와 대립된 그  삐뚤어진 것, 절대자와 연결 없이 혼자 움직이는 것 그게 천도 만도 넘습니다.

억만도 넘습니다.

 '주님이여, 이떻게 내가 헛된 거와 하나돼 가지고 주님을 대적한 이 입장에서  내가 돌아선다 할지라도 이제 그들과 대립되니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주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천천만의 이 원수에서 나를 건지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자와 삐뚤어진 걸 거머쥐고 탄식을 하고 참 피골이 상접하기까지  고통을 느낀 그분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칭의가 가치 있고 이 칭의를 잡지 않고는  도무지 설 수가 없고 안심할 수가 없고,  이러니 이 공로 외에는 그분과 다시 재연결을 할 수가 없다. 완전한 연결 할  수가 없다. 이분의 공로로 완전 연결됐기 때문에 네가 끊어진 것을 깨달아서  끊어진 것을 거게서 돌아서면 실은 너와 연결되어 있다, 벌써 연결되어 있는  그것을 잡고 그 연결로만 인생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켜서 참된 양식이라,  연결이 암만 되고 흠이 없다 할지라도 연결이 됐으면 그분과 나와 동역자는  되고 동행자는 되고 동업자는 되지마는 그분이 나를 좋아하고 내가 그분을  좋아하고 그분과 나와의 화친을 가지는 것이 이것이 최고의 문제인데 이 화친을  누가 시킬 것이냐? 불목의 되어 있는 그 종류가 천인지 만인지 알 자가 누구며  불목의 문제를 해결할 자가 누구냐? 이를 해결하신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밖에 없다. 이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공로로만 인생이 수많은 갈래길에서 방황 주저하면서 다만  인생이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삐뚤어진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길은 요 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요 한 길에서 해결받고 요 한 길에 들어섰을 때에 비로소  영생이 되고 하나님과 상호내주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공로의 요 길, 이 공로는 절대자의 절대법과 삐뚤어진 것을  해결하는 것은 요 한 구멍뿐이기 때문에, 요 한 구멍뿐이기 때문에 요 구멍으로  들어가는 외에 다른 데에서는 구원이 없다.

 이것만이 참된 양식이라, 여기에서 만 하나님의 모형인 인격성은 여기에서만  된다, 영생할 수 있격성은, 영생할 수 있는 중생한 속성은 여기에서만 주님의  사죄, 옳은 것이 이리 다 집합해. 이 사죄라는 요 구멍으로 다 모이지 요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영생이 없다. 요 구멍, 칭의 요 구멍, 화친의 요 구멍,  요 구멍 외에는 사는 구멍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참된 양식이라  요 구멍 외에는 이만하면 됐다 저만하면 됐다 하는 것은 아직까지 심령이  어둡고 헛된 미혹에서 그러하지,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삐뚤어진 해결 못 할  삐뚤어진 것을 하나님의 법칙으로 발견했을 때에 예수의 사죄가 필요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연결되지 않고 그에게 피동되지 아니한 것은 천지가  움직여도 그까짓 것 아무 소용없다는 요 무서운, 이 유일이 신, 유일의 힘만  남아서, 그분이 지었고 그분이 지은 걸 그분 혼자 통치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사는  이 통일성, 이 사실을 깨닫고 아무 데도 의지하고 소속해서 움직이는 것이 크든지  작든지 다 이는 참 속이는 미혹이요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칭의가 그에게 요구되고 적용되고, 화친도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론 천인 만인의 주장이 많이 있지마는 마지막에 심판은 그분  앞에 삐뚤어진,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게 도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입니다. 어떤 것으로 인하여서 움직였다 해도 마지막에는  단일의 그이의 주권, 그이의 유일의 단일성의 움직임, 거게 연결된 것 외에는 다  원수입니다. 다 싸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선은 대선의 적이라. 모든 피조물이 이렇게 저렇게 그 중심된  것은 유일한 절대자이신 그분 한 분의 중심과는 다 적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주와  세계에 큰 것들이 다 깨지고 소리치고 망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참된  양식이라 또 그분과 화친한 것, 별별 걸로 화친해도 그분이 대속하신 저 시발,  자존에서부터, 뚜렷하게 가감을 할 수 없는 원줄기가 있으니 그 줄기 한 줄기로만  되지 그 줄기 외에 다른 줄기로는 서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여기에서만  대주재와 상호내주 할 수 있는 이 결합이 되고, 여기에서만 영원히 영생할 수  있는 기능도 행위도 될 수 있고, 여기에서만 죽은 것이 부활할 때에 다 영생할  부활의 인성으로 이게 되어지고 이 공로로 인한 거기에는 대속의 주님과 그  공로로 인한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에 거게서만, 예수님이 아버지로 인하여,  예수님 당신 단독이 살았으면 실수가 몇 백 몇 천이 될지 모릅니다. 혼자 안  살았습니다 '너희들이 다 가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곧 내가 말한 것 움직이는 것은 전부 다  아버지가 일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인다. 죽기까지 복종했다.'  이와 마찬가지니 절대자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져서 그분이 인간 통해서  나타내는 요 한 길로만 썩는데 이르지 않는 온전한 생애는 이루어지는 걸  가리켜서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처럼 내가 너희들 안에 있어 나로 인하여  사는 생애가 되게 하겠다'  그런고로 인격의 양식 마음의 양식은 먹는 자, 성경에 '이 책을 먹으라 네  입에는 꿀과 같이 달지마는 네 배에는 쓰리라' 우리가 먹는 것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 왜 이 공로가 있느냐? 이 공로가 아니면 다 멸망이요 구원길이 없는, 이  공로가 범위가 어떠하며, 이 공로의 넓이가 어떠하며, 세밀한 구비가  어떠하며-하나 둘 구비한다 말이오, 구비 조건.-구비가 얼마나 하며 또 길이  시간적으로 영원토록. 그 길이가 어떠하며,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아, 이 일을 할 때에 절대자 그분이 이 일을 담당하려  해도 어떻게 힘들여 담당했는가? 전능자니까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했지마는  이 일은 그래 못했습니다. 당신의 전부를 기울여 어떻게 기울여 어떻게 이걸  했는가? 이 모든 그 실지의 원동력이나 또 소망이나 그 방편이나 실지로  성취시키는 그 설정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자기가 깨닫고 느낌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것이 육신의 양식을 씹어먹는 것과 같습니다. 씹어먹는 것이오.

먹어도 설사하면 소용 없는 거와 같이 먹고 소화되는 것은 내가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은 지식과 행동에서 됩니다.

노름꾼이 되는 것은 노름하는 지식을 자기가 취하고 노름하는 일을 한 번 두 번  하면 노름하는 사람됩니다. 그 행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행동은 사람이 되기 때문에 행동 없이 사람 안 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도  도둑하는 그 행동에서 그 사람됩니다 사기꾼도 그러합니다. 자선가도 자선가의  일을 자꾸 함으로 자선가가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지식의 사람, 지혜의 사람, 하나님대로의 하나님 중심의 사람,  거룩한 사람, 의로운 사람, 진실한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이 내가 행동으로 되는데  그 행동은 예수님의 피와 살의 그 공로의 범위와 그 사실을 깨닫고 거게서  나오는 그 지식으로 인해서 내가 행동함으로 나는 하나님의 모형의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먹는 것은 이 도리를 자기가 착념해서 알려고 해서 하나씩 둘씩 알아  들어가는 것이 씹는 것이오. 이것이 소화되는 것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은 거게서 영양이 나와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모든 소원과 생각과 지식  이것을 인해서 한 행동 두 행동이 돼 나가면 자기는 그 행동과 그 사람이 같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행동을 하면서 '이 행동을 하지마는 나는 사람은 안  된다' 행동한 것만치 그 사람 된 것은 떼 버리지를 못합니다. 택한 자면 죽을  때에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떼 버리고 가지마는 그전에는 그것이 평생  따라오면서 그 사람으로 작용합니다. 의로운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동한 사람을 떼어 버릴 수 없고, 행동할 때 그 사람 그 힘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죄라면 죄 평생 같이 합니다. 의도 같이 합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는 불의한 것은 예수님의 공로가 되기 때문에 다 떼 놓고  가지만 자기가 예수님의 피와 살로 말미암은 행동이 없었으면 부활할 때는  없습니다. 이러기에 '마지막날에 내가 다시 살린다' 그 말은 부활의 요소는  거게서만 됩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피와 살은 우리의 하나님의 모형인 인성의, 참사람의 인성의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벌써 인성은 죽었고 예수님의 공로로 인성이 우리는 중생과  동시에 살아나기는 났지마는 이것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어리게 있고, 어린  채로 있고 어떤 사람을 길러서 장성한 사람되어 있는 것이 차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 양식은 곧 하나님의 모형인 인격성, 인성,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속성의 양식이라 그 말이오. 참된 지혜성은 주님의 공로에서만 자랍니다. 참된  지식성도 주님의 공로를 사모할 때에 지식이 생겨지고, 그 지식이 강해지고, 그  지식이 넓어지고, 주님의 공로를 생각할 때에 '요래야 되겠다!' 하는 그 지식  그것이 영생하는 지식이지 그 외에 다른 천하의 독서를 다 하고 서적을 다  읽어도 거게는 그 지식은 없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의 그 공로 이 사실로  인해서만 하나님의 속성인 이 지성이 자라고, 중심성도, 거룩성도, 의성도 살이  찌고 자라가고, 또 그 힘 가지고 예수님이 사심 같은 그 생애, 절대 복종의  생애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다 사모할 것 많지마는 예수님의 피와 살의 이 대속의 공로의 이 사실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전시간이 여기에 기울여서 사는 거게서 나온 것만이 참사람이  자라고 힘얻고 그것만이 다 영원한 것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27 참 이스라엘/ 출애굽기 12장 7절-10절/ 1979. 11. 22.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26 참 자기와 원수 자기/ 로마서 8장 18절-23절/ 1987. 1. 16.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25 참 제자/ 요한복음 8장 31절-38절/ 1986. 11. 28.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24 참 제자/ 요한복음 8장 31절-37절/ 1986. 11. 29.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123 참교역자/ 요한복음 10장 7절-12절/ 1986. 9. 1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122 참교역자/ 사도행전 3장 6절-10절/ 1986. 10. 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121 참된 도의 젖/ 베드로전서 2장 1절-2절/ 1980. 11. 17.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120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21절/ 1989. 7. 16.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119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21절/ 1989. 7. 17.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118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21절/ 1989. 7. 1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17 참된 성전을 건축하자/ 학개 2장 18절-23절/ 1986. 10. 1.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16 참된 성전을 건축하자/ 학개 2장 18절-19절/ 1986. 10. 1.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115 참된 양식/ 요한복음 6장 48절-51절/ 1982. 9. 19.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14 참된 양식/ 요한복음 6장 44절-48절/ 1985. 3. 27.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13 참된 양식/ 요한복음 6장 41절-48절/ 1985. 3. 21.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12 참된 양식/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84. 3. 23.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111 참된 양식/ 요한복음 4장 30절-34절/ 1984. 3. 22.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 참된 양식/ 요한복음 6장 52절-59절/ 1982. 9. 1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109 참된 양식-목회자의 할 일/ 요한복음 6장 45절-51절/ 1985. 3. 20.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8 참사람의 양식/ 요한복음 6장 52절-58절/ 1985. 4. 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