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의 양식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3일 수새

 

본문 : 요 6:52-58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양식이라, 떡이라 또, 내 피와 살이  양식이라 너희들이 이 양식을 먹지 안하면 생명이 없고 이 양식을 먹으면 생명이  있어서 영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를  못해서 서로 수군거리면서 어떻게 저가 제 피와 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하겠느냐 이렇게 수군 거렸습니다.

 그 앞에 보면 또, '하늘에서 내린 양식을 주신다고 하신 대로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라니까 만나도 하나님께서 내려 주셨고 또, 이  떡도 하나님께서 내려 주셨지마는 만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 안의 것을 당신이 능력으로 다시 재창조 해 가지고 만나 가루가 되도록  해서 내려 보낸 것이니, 마치 한 원소 가지고 하나님께서 짐승을 만들었다가 또,  그 원소 그것을 가지고 식물을 만들고 또, 이런 모든 무생물을 만들고 하는 거와  같이 재창조의 능력으로 이 만나 가루를 만들어서 주신 것인데, 이 만나 가루는  너희들이 보기에 땅에서 나서 열매 맺어서 양식되지 아니하고 공중에서 내려와  가지고 양식된 것이니까 너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니 별 이상한 것인 줄  알지마는 내나 하나님의 능력이 창조해 가지고 된 양식이니, 곧 너희들이  농사짓는다고 할 때에 농사를 지으므로 흙에서 벼 한되를 심은 벼 한 되를 심은  그 씨가 흙에서 벼를 한, 한 닷 섬이면은 얼마입니까? 닷 섬이면은 오십  말이니까 오십 말이면은 오백 되됩니까? 오백 되나 된다. 그렇게 오백 배나  불어서 오는 그것은 너희들이 농사짓는 방법 그거 가지고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나 종자 한 되에다가 하나님이 재창조 하시느라고 거기다가 물도  가하고 햇빛도 가하고 흙도 가하고 오만 것을 다 가해 가지고 그렇게 한 오백  배나 되는 벼의 다섯 섬이 나오는 것이라. 그러면, 그거 창조나 그것도 재창조요  만나 가루가 내라온 것도 그것도 하나님의 재창조라. 그러기 때문에, 그 만나  가루도 내나 창조가 좀 너거 보기에 다르고 또, 땅에서 나오지 안하고 공중에서  내려오니까 별 걸로 알지마는서도 그거는, 너희들이 뭐 농사짓는 그런 방법  그것만 가지고 꼭 밥이 되는게 아니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중에서 당신의 창조의 능력 가지고 이런 거 저런 것을 종합해서 만들어 가지고  내려오는 것도 있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알려 줄라 하는 그것이 딴 것이요.

다른 뜻이 있는 것이요 아무리 그 거는 먹어 봤자 그거는 내나 육체의 양식이다.

육체의 양식이다. 몸의 양식이지 그거는 사람의 양식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의 양식이니까 몸 만 먹고 그거는 유지되지 마음의 양식도 되지 못하고 영의  양식도 되지 못 하기 때문에 그것은 다 먹어도 내나 만나 가루 먹어 죽은 것이나  땅에서 난 밥 먹고 죽은 것이나 꼭 같은 양식이라 같이 죽는다.

 그러나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너희들의 양식인데 인자는 세상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온 양식이라. 그러면. 이 양식을 먹은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면. 이 양식이 무엇이뇨? 내가 곧 이 양식이요, 내가 곧 떡이다. 나를 먹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들어 있고 또, 영생한다. 생명이 들어서 나를 먹을 때는 다  영생을 하게 된다. 또, 마지막 날에 부활한다 이랬습니다.

 부활을 시킨다 그 말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하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다 죽은 것이 다 살아나기는 다 살아납니다. 다 살아나는데  살아난 거 중에 영원히 죽지 안하고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도 있고, 살아난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도 있고 또, 살아난 그것이 일단 죽는 것도 있다. 죽는다  그 말은 우리 사람 보기에 죽지요. 사람 보기에 죽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예수님의 재림 때는 다 살아난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살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자가 다시 죽으나 살아난 자가 죽으나 그는 너거  보기에 죽으나 죽지, 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게 만나를 말한 것은 내나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이  이미 창조해 놓은 이 물질계에 있는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서 그것을 재창조해서  나온 만나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든 만나이기 너거들 보기에 너거는  꼭 사람이 심으고 거두고 해야 먹고 땅에서 나오는 그것을 먹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지마는서도 실은 땅의 것뿐만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 가지고도 먹고 사니 그것은 너희들이 뭣 먹고 사느냐? 하나님의  능력이 창조한 그것들을 먹고서 사는 것이 고기 덩어리요 몸들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는 땅을 꼭 통 해야 창조하느냐? 땅을 통하여 창조하기도 하고  땅을 통하지 안하고 이 모든 물질계에 있는 이 우주에 있는 원소 우주에 있는  원소 그것들을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 수가 있다 하는 것을 너희들에게  알리니, 그것은 너희들이 이제까지의 알고 있는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의 이  우주에서 그 요소들을 가지고 창조해서 공중에서 내려 온 그 양식이나 땅에서  생산된 그 양식이나 다 그것은 몸의 양식이기 때문에 먹어도 죽었다. 그 몸은,  그거는 영원한 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먹어도 죽었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인데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재창조 하신 그 창조의 능력이 왔다. 창조하신 능력이 왔고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왔다 하는 그것을 말하지마는 그들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 보기에는 사람이지마는 속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한 온전한 하나님이시요 온전한 사람이라, 신성과 인성 양성 일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은 만나를 만드신, 만나를 만드시고 없는  가운데서 우주와 영계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이 친히 내려온 그 분의 그 자체요  그분의 본체요,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그 본체요 자체요, 만나는 그분의  능력으로 물질계의 것을 가지고서 만든 것이라. 그러기에 그 만나와 이 양식은  다르다.

 이러니까, 유대인들이 수군거리면서 '어떻게 해서 제 피와 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하겠느냐?' 또, 그 피와 살을 먹어 봤자 뭐 찍해야 한 사람 피와  살이니까, 큰 황소보다 작은데, 소보다 작은데 뭐 고기가 얼마 돼서 몇이나 먹고  살겠습니까? 이러니까 이치에 맞지 않다 그 말이오. 맞지 안해서 유대인들이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수군거린 그거는 어데서 착각을 일으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이 내 피와 살은 양식이라 나는 너희들이 먹을 떡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슨 양식이요 무슨 떡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냐 하면 곧 하나님의 신성을  모형 한 하나님의 신성 같은 그 인성, 인성, 하나님의 신격성 같은 인격성  그것의 양식이라. 하나님의 신성의 모형인 인성의 양식이라, 신격성의 모형인  인격성의 양식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의 양식이라, 영의  양식이라. 영의 양식인데 또, 영이 먹으면 마음의 양식이 돼서 마음의 양식이라.

또, 마음의 양식이 됐는데, 영의 양식이요 마음의 양식이요 또, 그것이 몸의  양식이라.

 이래서, 영과 마음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이 양식만 먹고 살고 이 양식 만  먹고 살고, 또,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은 이 양식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양식과, 그러면, 또, 몸의 양식, 몸의 양식인 이 물질 몸의 양식의  신비한 것을 먹고서 그래 삽니다. 요거는 여러분들이 자꾸 좀 많이 생각하면  알아지는데,  고 영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만 먹고 삽니다. 먹고 사는데, 그 영이,  중생된 영이 중생활 때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 양식을 먹고 살아났고 그래서 이  양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살아났고. 또 살아난 이 영도  이 양식을 먹고 자라갑니다. 자라가는데 이 양식을 먹고 자라가면서, 산 영이 이  양식을 먹고 자라가는데 이 양식만 먹고 자라가는 것이 아니고 또, 마음의  마음의 양식을 가지고 자라간다. 다시 말하면 육의 양식을 가지고서 자라간다.

 이래서, 우리의 중생된 영은 그 영이 위에서 내려온 주님의 피와 살 또,  주님으로 이 중생된 영이 자라가고, 이 중생된 영이 자라 가는데 이 영이 자체가  아니고, 영 자체가 아니고 자체에게 소속한 것들로 인해서 자라가니. 그 사람이,  '아. 그. 사람이 커졌다. 아주 그 사람은 참 요새 많이 커졌다. 그 사람은 아주  요새는 많이 조브라졌다. 커졌다 작아졌다'그렇게들 말합니다. '아. 그 사람은  너무 비대해졌다.  정권은 너무 비대해졌다. 또, 그 사람의 권위는 너무  비대해졌다. 그 사람은 요새 지금 아주 허약해 졌다. 또, 아주 보잘 것 없이 참.

아주 허무하게도 작아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의 몸통, 영육이라는 그  몸통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에게 소속한, 소속한 그 소유나 또, 무슨  지위나 권세나. 자기의 소유는 물질도 소유요 또, 지식도 기능도 소유요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소유라. 이런데, '그 사람은 인성이  든든해서, 사람으로 성을 만든 인성이 든든해서 그 사람은 든든하다. 그 사람의  정권은 온 국민이 다 지지하고 온호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정권은 비대해졌다,  그 정권은 지금 아주 강건해졌다 아주 많이 커졌다 그 말은 이제 속에 있는  지능의 과학적으로도 커졌지마는서도 또, 물질적으로도 커졌고 또, 그 백성들이  자지하나 안 하나 하는 것들로서 커져서. 커진 것은 그는 단순히 하나 둘만을 말  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소유와 그 사람에게 소속한 그 사람에게 소속 한 모든  여건들이. 여건들이 강건해지고 충만해지고 구비해지고 이럼으로서 그 사람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이 자라는 것은 뭘로 자라느냐 하면은 우리  영이 자라는 것은 곧 이 마음과 몸으로 자랍니다. 마음과 몸으로 영이 자라는데.

그러면, 마음과 몸을 먹어 자라느냐? 마음과 몸도 밑에서 올라오는 양식이요  예수님은 위에서 내려오는 양식인데 이 두 양식으로 영은 자라게 된다.

 그러면, 이제 해석한 대로 그 사람이, 아무것이가 커졌다 하면은 그 몸뚱이가  커진게 아니고 그 사람의 모든 이력이 커졌고 해 놓은 자이 전부 견고해졌고 그  사람의 계획과 모든 무대가 넓어지고 했을 때에 '그 사람이 커졌다.' '그 사람이  요새 뭐 아주 그 사람 죽었다.' '와 죽었어?' 지금 밥을 하루 세 그릇씩 단단히  먹고 있어도 죽었다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소속한 모든 권위나 지위나 명예나  소유나 그 사람의 모든 지능이나 그 사람의 그 모든 영광이 그것이 아주  죽어져서 저래 될 때에 그 사람이 죽어 졌다 작아졌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곧,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의 소유 자기 몸밖에 있는 그런 것들로 인해서 커지고  작아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중생된 영도 영 밖에 있는 영의 소유인 이  마음, 몸, 또, 이 모든 사물들 이런 것으로써 커집니다. 커지는데, 그것은  커지나 자체가 커지는 것이 아니고 그의 모든 소유로 인해서 그 영향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은 완전한 영이라, 중생된 영은 영생을 가져서 완전한  영이라 이라는데 중생된 영도 자꾸 자라갑니다. 중생된 영이 자라가니 뭘로  자라가느냐? 첫째로는 자라가는 것은 우리의 중생된 영이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로 자라가고 또, 영감으로 자라가고 진리로 자라가고, 말씀으로 말이오.

말씀으로 자라가고 이렇게 자라가는 동시에, 이 자라가는 것은 자체가 자라가는  것이고, 영 자체의 양식이 돼 가지고서 자체가 자라갑니다. 우리의 육체가 밥을  한 그릇 먹으면 고만침 커지고, 만일 밥을 일 년에 삼 백 육십 오일 이니 천  그릇 약 되겠지요. 천 그릇 아마 되니까 일 년에 천 그릇을 먹으면은 한 살  먹었다 말이오. 그러면 천 그릇을 먹으면 한 살 먹었으면 처음에 날 때보다 한  살 먹었으면 많이 자라졌다 말이오. 또, 두 살 먹으면 더 자라진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밥을 먹음으로 자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영, 중생된 영  자체에는 이 주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차차 차차 자꾸 이래 자라갑니다. 자라가면서 또, 뭘로 자라가느냐 하면은 이 영  자체가 아닌 영에게 소속한 모든 그런 것들로써 자라갑니다. 그런 것으로써.

 아까 비유로 말하기를 어떤 그 사람의 정권이 지금 자꾸 그만 점점 쇠퇴해지고  아주 오그라지고 곱사가 되고서 아주 그만 다 죽어간다 하는, 그 정권이 다  죽어간다 이랬는데 정권이 요새는 힘이 있어서 활개가 있고 많이 비대해졌다  커졌다 아주 강건해졌다 아주 더욱 더 위대해졌다 하는 것은 그, 정권 가진자  정권자 그 자체의 뭐 자체가 그렇다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소속한 것들이 커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중생된 영도 그런 것입니다. 중생된 영이 자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얻었느냐? 중생된 영이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얻었으며, 또, 그  마음이라는 것은 그 몸을 어느 정도 얻었으며, 영이 마음을 얻음으로써 영이  차차 차차 커지고 또, 마음은 몸을 얻음으로 차차 커지고 몸은 그의 모든 일들과  물건들을 얻음으로써 소유함으로 점점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된 영이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얻어서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중생된  영이 자유할 수가 있고 점령을 했느냐, 취득을 했느냐? 그러면, 중생된 영이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제 마음을 만들어 가지고서 이 마음을 제가 이용할 수 있게  됐느냐? 또, 그 마음은 몸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게 됐느냐? 또, 그 몸은 이  물질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게 됐느냐? 이래서, 몸의 권위는 물질을 차차  차차 많이 취득하는데에서 자라게 되고 자체 자라는 게 아니고 그의 활동이  자라고 그의 권위가 자라고 영광이 자라고 그의 모든 소유가 자라고 하는 것은  밖의 것이 그것으로 자란다 그 말이오. 물질로 자라고 또, 마음은 그 몸을 어느  정도 점령을 해서 어느 정도 지배권을 가지고 어느 정도 통치권을 가지고  이용권을 가졌느냐, 또, 영은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통치권을 가졌으며  지배권을 가졌느냐 소유 하고 있느냐 하는 그것으로써 자라니까, 이 아래 것으로  자라고 또, 예수님의 피와 살과, 예수님의 피와 살과 성령과 진리로 자라는 것은  위에서 내려온 것을 가지고 자라고 또, 밑에서 올라오는 거 자라고 둘로 자라는  양면으로 가지고서 자라간다 그거요.

 그러면, 그것이 그런 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식물도 말 하면은  그 식물도, 식물도 전부 다 위의 걸로 자라고 땅의 걸로 자라고 이래 자라는  것인데, 위의 걸로 자라는 것은 신령한 것이고 땅의 것으로 자라는 것은 이것은  좀 저급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좋은 화초가 땅에 있는 그것을 먹고서, 땅에  있는 땅을, 흙을 먹고 흙에 있는 지기를 먹고 자라는 게 지기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도 위에서 내려오는 햇빛이나 이 모든 공기나 거게 있는 모든  탄산 가스나 이런 모든 것들을 먹고 자라는데, 그러면. 위의 것 먹고 자라는  것이 땅의 것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해서 땅의 것이 암만 있어도 위의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위의 것이 암만 있어도 땅의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게 다 이 오묘한 이 사실을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이 모든 자연 만물들이 가르쳐  주시는데 성령이 가르치시고 또, 말씀 진리가 가르치고 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무슨 계시라고 말합니까? 예? 자연 계시? 성령님이 가르치고 진리가 가르치고  하는 그것을 무슨 계시라고 말합니까? 특별 계시, 특별 계시. 또, 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와 또, 만물들과 인간들의 마음의 구조가 요렇게 조렇게 자꾸  변해져 나감으로써 우리에게 깨달아지고 알려지고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무슨  계시라고 말합니까? 자연 계시라 일반 계시라 그래 말하지요? 자연 계시, 일반  계시라. 그런 걸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 걸  통해서.

 그런 식물들도 위의 것 먹고 밑의 것 먹고 이래 먹는 것인데, 위의 것만  가지고도 안 되고 밑의 것만 가지고도 안 되는 이 양면을 연결시켜 가지고서  자라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중생된 영이 예수님의 피로 자라가고 또, 영감으로  자라가고 진리로 자라가고 하는 동시에 그 마음 말이오. 그 마음을 이 영이  백분지 일을 점령을 해서 백분지 일을 얻었다 그 말이오. 백분 지 일을 복종시켜  가지고서 백분지. 이 사람은 마음의 백분지 일이 영에게 복종을 하는데 저  사람은 마음의 백분지 오십이 영에게 복종하고 또, 저 사람은 마음의 구십 구가  영에게 복종하고,  예수님은 그 마음이 예수님의 영에게 얼마나 복종했습니까? 백프로  복종했습니다. 복종했습니다. 또, 그 마음에는 몸이 얼마나 복종했느냐? 뭐 구십  구가 복종 한 게 아니라 백 프로 복종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 몸의 세포 하나 신경 하나. 세포 하나 신경 하나가 딴 데 제  마음대로 날뛰지를 안하고 전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우리를 대속하려는  요것만을 거머쥐고 하나님에게 호소하고 간구하고 그것만 기울여졌지 어느  요소나 신경 하나가 아야 소리 하지 안했습니다. 아야 소리 하지 안 했어. 만일  아야 했다고 하면은 어찌 됩니까? 실패했어 성공했어? 실패요. 나뉘었다 말이오.

그 세포가 나뉘어졌어. 그러면, 예수님의 그 마음은 육의 마음 말이오. 육의  마음은 그 몸을 완전히 다 점령하지 안하고 이 육이 제마음대로 갔다 그거요.

또, 영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인 하나님은 인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이제 그 인성 중에  조그매가 마음대로 나갔기 때문에 다 점령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은 실패한 것이라. 그러나 완전히 점령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지금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느냐  하면은 우리의 영은 우리의 영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에게 완전하 점령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영은 완전히 진리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의 것이 됐습니다. 털끝만치도 남은 것이 없이 전부 다 그의 것이  됐는데. 그러니까 완전히 살았고 영생을 가졌고 다시는 죽지 안하도록  살아났는데, 이 영이 지금, 지금 세상에 있으면서 영이 커지는 것은 영의  활동성이 커지고, 권위성이 커지고, 기능성이 커지고, 지 위성이 커지고  영광성이 커지고, 또, 자기의 그 모든, 영광이 커진 다는 것은 그 한 이력이  커지면 영광이 커지는 것이지요. 그 사람은 이력이 아주 초췌해지면 욕 얻어먹지  영광될 게 하나도 없지요. 그게 커지지요.

 커지는 것은 뭘로 가지고 커지느냐 하면은 그 중생된 영이 마음을 어느 정도  점령 했느냐 그 말이오. 마음을 어느 정도 점령해서 마음이 어느 정도 영에게  심부름을 잘하느냐 하는 것인데, 마음의 이제 기능인데, 마음의 능력인데 영은  살았지마는 마음은 그 영에게 하나도 복종 안 한다 그 말이오. 복종 안 하니까,  찬송을 부를 때도, 찬송를 부를 때도, '구주의 십자가' '구주의 십자가' 할 때에  벌써. 어떤 사람의 마음은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할 때에. 그 마음이 순전히  주님의 그 대속을 보혈을 찬양하는 거게만 기울여져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으로는 '구주의 십자가' 하는데 그 마음은 벌써 국제 시장에 갔다가  또, 저거 공장에 갔다가 회사에 갔다가 누구 꼬아 먹을 때 갔다가 오만데, 또,  어떤 사람은 지금 돌아다니며 지금 미국 갔다가 일본 갔다가 또, 저거 애인한테  갔다가또, 죄 짓는데 갔다가 남 사기 횡령 협잡 행락에 갔다가 테레비에 갔다가  오만데 다 돌아다닌다 말이오. 오만데 다 돌아다니니까 이놈은 영이  중샜했지마는서도 마음을 하나도 점령을 못 했다 말이오. 하나도 점령을 못 해서  그 마음이 영에게 복종을 하지 안해. 영에게 복종 하지 안하는, 산 영에게  복종하지 안하는 그 마음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죽어 있다 말이오. 죽어  있는데, 그러면, 지금 그 마음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활동한 그 모든  행동도 죽었고 그 마음도 죽었고 다 죽었습니다. 그 마음이 그때에. '구주의  십자가' 할 때에 그 마음이 순전히 구주의 보혈을 찬양하는 거게 만 막  기울어지고 딴데, 뭐 테레비 생각도 하나도 없고 돈벌이 생각도 하나도 없고  저거 가족 생각도 하나도 없고 죽는 것이나 그런 것도 생각도 안하고 전부  거게만 딱 기울어져서 요래 됐을 때에 그 영은 장성하고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가 있고.

 또, 그렇게 하지마는 서도, 그 마음은 그럴 수 있는데 몸은 구주의 이래 보혈을  찬송한다 하니까 마음은 찬송을 합니까 안 합니까? 찬송한다 말이오. 몸은  찬송하는데 마음 이놈이 딴 데 가서 있을 수 있고 마음은 사모하는데 몸 이놈이  딴 데 가서 안 되고 이러니까 이 중생된 영은 마음과 몸을 점령해 가지고 이것을  길을 들여서 어짜든지 영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영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요대로 이걸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이라 그 말이오.

 지금 만들어 놓고 지금 길을 들인 것만치, 영에게 복종 시키는 거만치, 영이  이용할 수 있는 것만침 영의 기구가 되고 영의 도구가 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훌륭한 비행사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비행기가 없으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안  된다 그거요. 아무리 선장이라도 그 사람이 배가 없으면 못 타고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러면 이 마음이 길을 들여 놔야, 비행기가 있어야 타고 가지? 이  마음을 길을 들여놔야 이 마음을 타고 영계에 돌아다닐 터인데 이 마음을 길을  들이지 안했으니까 탈라 하니까 이 마음 이놈이 하나도 말 안 듣는다 말이오. 말  안듣고 제 마음 대로 가. 또, 몸 이것도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이오. 몸이 말을  들어 놔야 이 물질 계에 얼마든지 타고 돌아다니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의 기능을 지금 점령해서 성 장시킬려고 하는 것은  영계에 활동하는 자기의 무기, 자기의 도구, 자기 승구 타고 다 니는 자기 승구  뭐 이런 말로 표시하는데 그 종류는 몇 가지라고 형언할 수 못할 만치 많습니다.

또, 이 몸을 점령하는 것은 물질계 우주를 다닐 때에 그 몸을 타고 다니는데 이  몸이 뭐 말을 들어야지? 안 듣는다 그거 요. 그러면 안 돼,  그러니까, 영은 꼭 같습니다. 중생된 영은 꼭 같지마는서도 그 사람은 비행기  없는 사람, 이 사람은 비행기 있으니까 타고 다니는 사람, 그 사람은 배가  있으니까 바다에도 타고 다니는 사람. 이 사람은 배가 없으니까 바다에는 타고  다니지 못하는 사람, 또, 그 사람은 생명은 있지 마는서도 생명은 있지마는서도  팔에 힘도 없지 다리에 힘도 없지 아무데도 힘이 없지 또, 그 사람은 생명은  있기는 있지마는, 눈이 까막눈이라서 기역자 하나도 모르지, 또, 이 사람은 다  같은 생명이지마는서도 지식에 대한 권위성 이 많이 있지, 그 지식을, 그 지식은  마음이 가지고 있고 몸이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의 몸은 뭐 꼬끄랑 글자 요리  요리 요리 요리 Tm니까 무엇이 무슨 말이 되는데 이 백 목사는 꼬끄랑 글자  하나도 쓸 줄 모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의 육의 기능이 다르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를 죽인다고 영어로 죽인다고 써 놨으니까 '아, 나 죽이는 곳이라 이리 가면  이리 가면 죽는다' 하니까 그리 안 가는데 나는 그거 몰라. 모르니까 이리 가면  죽는다 해도 나는 그리 뿍뿍 갈 거라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은 내게는  영어를 아는 지식의 기능이 그만침 없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라.

 이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영의 권위는, 영의 권위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점령을  해서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자기가 자기 무기로 사용할 수가 있느냐? 병기로  사용할수가 있느냐? 또, 그 마음은 어느 정도 자기 몸을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느냐? 복종시킬 수 있느냐? 또, 그 몸은 어느 정도 이 물질계에 있는 것들을,  자기 몸밖에 있는 것을 사용할 수가 있느냐?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의 방 한  칸도 자유로 사용할 수 없고 이런데 이 사람은 우리 O 대통령은 우리 한국에  있는 반도 남한은 사용할 수 있고 미국 지금 대통령이 무슨 대통령이고?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을 다 영토를 다 사용할 수 있고, 그 나라에 있는 모든 권위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크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지금 그 마음을 자꾸 점령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점령할라고 애를 쓰고 마귀란 놈은 점령을 못 당하도록 할려고  방해를 하고, 방해를 하고 하나님은 점령을 해라 하고서,  그러면 영이 점령하도록, 그 영이 그 마음을 점령 하도록 배후에서도 와주는  것이 무엇이 도와주고 있습니까? 예? 네, 진리와 성령 또, 피 이 셋이 도우고  있습니다. 이 셋이 도우고 있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아 가지고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 현실에서, 현실마다 자기 마음도 몸도 물질도 그거 다 관련되어  있는데, 세 가지가, 마음, 몸, 물질 이 세 가지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요 현실에 그 영이, 그 영이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움직여서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서 요 현실에서 마음을 살살 달래 가지고 말이오 꾀우는 게 아니고  마음에게 타이른다 그 말이오. 마음을 살살 타일러 가지고 마음을 달게서 마음을  복종케 하고 몸을 또, 이해를 시켜 가지고 복종케 하고 또, 이 모든 물질을  점령케 하고 이렇게 하면은 그 현실에 자기가 점령한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물질의 기능은 벌써 살아났다 말이오. 살아났으면 그것이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게 자기가 점령한 것입니다.

 점령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이렇고, 영원무궁토록 영계에 가 가지고 내가  여게도 저게도 사용할 거,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되고 죄에게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된다 이랬습니다. 도구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 언제든지 마음과 몸을 중생된 영의 도구 영이 사용할 수  있는 그 보배로운 병기가 되도록. 도구가 되도록, 기구가 되도록 이렇게  점령할려고 애를 쓰는데에 이 점령하는데에 도와주는 이가 누가 도와주느냐?  진리가 도와주고 영감이 도와주고 주의 되의 대속이 도와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는 것이 그것이 우리 양식이요 우리 힘이다.

 그러면 그래 받아 가지고서 그 성신의 감화가 내 영을 통해 가지고서 그 마음이  성신의 감화를 받으면은 그 마음이 고만 이 중생된 영에게 복종 하고 싶고  하나님께 복종하고 싶고 마귀에게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마는서도 성신의  감화를 안 받으면 이것이 영에게 복종하기 싫고 어찌 됐든지 악령 악성 악습  구습대로 그 대로, 죄 짓던 옛날 구습, 옛날 죄 짓던 습관, 뭐 도적질 하던 거는  도적질하고 거짓말하던 거는 거짓말하고 노름 하던 거는 노름하고 또, 춤추던 건  줌주고 간음하는 것은 간음하고 음행하는 것은 음행하고 자꾸 구습 이대로  좋아서 자꾸 그래 할라 하는데. 또, 성신의 감화가 오고 진리가 오고 하면은  그게 깨달아져 가지고 '아, 이건 안 되겠다. 이거는 안 되겠다 고쳐야 되겠다.'  그 진리를 보고 고쳐야 되겠다 하는 것보다도 성령의 감화가 오면은 고칠 마음이  돼 버립니다. 고칠 마음이 돼 버리고, 그것보다도 주님의 피의 능력이 오면은  완전히 변화를 시켜 버린다 말이오. 변화를 시켜 버려.

 이러기 때문에, 피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는 이 셋은 우리의 양식인데  우리를 증거한다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결론으로 여러분들이 그러면 주님의 피와 살은  무슨 양식이냐? 그 살은 우리의 영의 양식이오 영의 양식. 영의 양식이요, 영의  양식인 동시에 마음의 양식입니다. 그러면. 영은 순전히 위의 것 먹고 자라고  또, 밑의 마음과 육을 먹고 자랍니다. 또, 이 마음은 중생된 영을 먹고 자라고  또, 마음은 이 육을 먹고 자라고, 육은 마음을 먹고 자라고 이 모든 자기 몸  밖에 있는 사물들을 먹고 자라고 이래 가지고 완전한 것이 돼지기 때문에 주님의  피와 살은 영의 양식이라는 것을 여러분 들이 기억하시고,  또, 예수님의 피와 살과 진리와 영은 그 인격의 양식이라, 인격의 양식 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또, 이것은 그러면 몸의 양식은 아니냐? 몸의 양식도 됩니다. 몸의 양식도  돼요. 몸의 양식도 되는 것은, 마을의 양식이 몸의 양식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영양가로 말이지요, 과학적으로 따지면 영양가가 삼분지 일밖에 안 되는 식물을  먹고 삼 배가 먹는 식물을 먹는데, 그 마음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할  때에는 그 삼분지 일이 되는 그 음식을 먹고도 그 사람이 충족하고 아주 살이  찌고 윤기가 있고 기운이 나오는데, 삼 배나 되는 그 식물을 먹어도 마음의  양식이 없어 마음이 고통스러우니까 몸의 양식을 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안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몸은 물질만 먹는 게 아니라 마음의 양식으로써 이  몸이 건강해지고 윤택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몸의 양약이라 어질 양자, 좋을 양(良)자 약이라는 약(藥)자 몸의 양약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게 양식이라 하는 것은, 그러면 영의 양식이요 마음의  양식이요 몸의 양식도 된다. 이러니까, 한 말로 주님의 피와 살이 피와 살은,  성령은 피와 살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피와 살 하면은 성령과 진리는  포함됐습니다. 성령이 뭐 하러 왔느냐? 주님의 피 때문에 왔고, 진리가 뭐 하러  왔느냐? 예수님의 피 때문에 왔습니다. 피로 인해서, 피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왔지 피의 공로가 아니면 우리에게 어림도 없습니다. 피의 공로로  인해서 왔고, 또, 피의 이 역사를 심부름해서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이러기에, 주님의 피와 살은 무엇의 양식이오? 영의 양식이요 마음의 양식이요  몸의 양식도 된다. 한 말로 말하면 주님의 피와 살은 무엇의 양식입니까? 이  셋이 합하면 뭣 됩니까? 영과 마음과 몸 이 셋이 똘똘 뭉쳐서 한덩어리가 됐을  때에 그게 무엇입니까? 예? 사람. 그게 참사람입니다. 참사람은 영. 마음, 몸  이것이 서로 대립이 돼 가지고 분쟁을 일으키지 안하고 영, 마음. 몸이 셋이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가 됐을 때에 요것이 참사람입니다. 요 셋이 하나만  되면은 그 사람이 뭐 합니까? 이 셋이 하나 되면은 요것이 산 사람입니다.

산사람. 그러면 그 사람 뭐 합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의 것이다.

하늘과 땅의 것이 다 그의 것이다.

 (저 학생은 지금 공부한다고 너무 기울이니까 예배 볼 때에 조네? 잘 듣는데  말이오. 이름이 뭐이더라? OOO 교회서 왔어? 예? 조 학생. OOO 교회서 왔어  어디서 왔어? 손들어 봐. 그래. 어디서 왔지? 예? OO 교회서 왔어? OO 교회서 온  학생 오늘 새벽에 조네. 예? 조불랐지요 새 공부 열심히 한다고 뭐 정신없는  모양인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꼭 깨어서 해야 됩니다. 공부 이게 우상 되면 안  돼요. 거기 점령당하면 안 돼요.)  그래, 이래서, 사람의 양식이라, 주님의 피와 살은 사람의 양식이라. 한 말로  말하면 사람의 양식입니다. 참 사람의 양식입니다. 참사람의 양식, 새사람의  양식, 새사람의 양식이라 말은 영의 양식이라 말이요 마음의 양식이라 말이요  몸의 양식이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러면. 말씀으로  산다는 그 말씀은 누구의 양식이라 말입니까? 고기 덩어리의 양식이라 말이오,  영의 양식이라 말이오, 마음의 양식이라 말이오? 예? 무슨 양식이지? O 조사님.

참사람의 양식이라 그 말이오. 참사람의 양식.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이것을 새벽으로 와서 깨달아야지 깜깜한 세계에, 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 피와 살을 먹지 안하면 너희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이라니까 '어떻게 제 살을 줘서 우리에게 먹게 하는가?' 유대인들이  수군수군하면서 그래 가지고 지금 배척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예수 믿는 진리를 전혀 모른다 말이오. 전혀 모르는데  오늘까지 영이 뭐인지 마음이 뭐인지 '영이 뭐이냐?' 마음이라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더 이상하게 말하느라고 '영이 뭐이냐?' '영은 양심이 영이다.' 양심이  영 아니오. 또, 영이 뭐이냐? '이성이 영이다.' 아니오. 이성도 마음에 속했고,  양심도 마음에 속했고 뜻도 마음에 속했고 감정도 마음에 속했고, 정서도 마음에  속했고, 기억력도 마음에 속했고 이거 다 마음에 속한 것이지 영에 속한 것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유대인들이 이렇게 된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러니까, 이걸 바로 알라면 우리가 참 마음을 다하고 그것도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 하고 뜻을 다해서 이래야 바로 알고 바로 행하고 이래 구원이 돼지는  건데, 이거 세상에 썩을 학문 그것도 의례히 몇십 년 걸려야 되는 줄 알면서  예수 믿는 거는 당장에 하루 이틀에 될 줄 알고 제가 알고 있어요. 껍데기로  제가 알았지. 마귀가 주는 대로 껍데기로 알았지 속의 알맹이는 모른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꾸 말해요. '아, 목사님 자꾸 시간이 넘어  가면은 그만 안 듣습니다. 안 듣고 자꾸 들은 것도 게워냅니다. 게워 내는데  자꾸 시간을 뭐할라고 많이 그래 합니까?' 어짜든지 처음에 한 번 해 놓고 그  다음에는 안 해야 된다. 그 사람이 몰라 그렇다 말이오, 몰라서. 물론 시간을  짧게 할 줄 압니다. 알지마는서도 여게서부터 말이오 해석을 할려면 지금 저 천  미터산에 올라갈라고 저 발치 한 오십리나 백리 밖에서 차차 차차 걸어 올라와  가지고서 여기까지 올라와 가지고서 지금 저 만당에, 한 만당이. 한 만당이 한  십 미터 남았으니까 십 미터만 더 올라 가면 되는데 고만 그걸 중단해 버리고  말면은 또, 새로 시작해야 된다 말이오. 또, 저 밑에서 시작해야 돼. 그거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한 번 말한 걸 안 잊어버리고 고대로 기억하고  있으면은 그만 그때 고다음에 말하면 되는데 다 잊어버렸으니까 또, 이것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이거는 모른다 그거요. 그러니까 저 밑에서 또, 해석해서  올라오고 이러니까 해석해서 올라오다가 알듯 하게 되니까 고 시간은 지지해도  갈 사람은 가고 부득이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래 알면 안 돼요.

 이러니까, 들은 것을 잊어버리지 안하면,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말씀하신 대로 기억하면 되는데. 기억을 했으면  그 다음부터 가르치면 되는데 먼저 가르치는 거 다 잊어버렸으니까 모른다  그거요. 그러면, 먼저 가르친 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영감을 받아서 자기가  지식으로 알고 영감 받아 알고 능력 받아 알고 이래야 실천이 돼지는 것이니까  안 들으면 모르고 또, 들을 때 그런 거요.

 그러니까 새벽으로 혹 이거 좀 가르쳐서, 몇 가지 가르쳐서 되는 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런 건 쉽소. 쉽지만 이 도리를 분석해서 해석하는 거는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 새벽으로 참석해서 자기 보는 시간, 가는 시간 보고 딱 시간이  되거들랑 나가요. 시간이 됐는데 안 나가면 뒤에 또, 올라 하면 자유 없거든.

시간 어기면 피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O집사도 시간 되거든  가. 시간 되거든 가야 돼요. 시간 되거든 가야 되지 안 가면 또, 뒤에 가서  후유증이 또, 생겨져. 그러나 고 가르칠 때는 고런 것이니까 어짜든지 나와야  됩니다.

 나오고, 재독을 여러분들이 뭐 얼마나 들어야 될는지 모릅니다. 재독을 들어서,  아는 줄 알아도 아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얼마나 알아야 되는지. 알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치지 안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 다 알면. 이 가치를 알면. 그게  사는 것인 줄 알면 누가 순교 안 하겠어? 순교가 대성공이요 일대 성공인데 누가  순교 안 할라 하겠어? 모르니까 순교 안 할라 하고 죽는 걸 두려워하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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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람의 양식/ 요한복음 6장 52절-58절/ 1985. 4. 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