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의 의의

 

1982. 3. 19. 금야

 

본문: 마태복음 25장 31절 - 4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선지자선교회 나중에 또 잊을까 해서 광고합니다.

오늘밤에도 아래층에서 철야 기도회를 종전과 같이 할 것입니다. 예배 끝난 뒤  삼십 분 기도하고 나서 학습 세례 문답에 대해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내일 오전 열 시로부터 열 한 시까지 낮에 문답할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을 정했습니다. 밤에 참가 못하는 분들은 내일 오전 열 시로부터 열 한  시까지 사이에 문답을 하면 됩니다.

학습과 세례와 성찬이 이번 주일에 있사오니 많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세례  받을 분은 저 신관에 자기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자기 이름을 찾아서 앉도록  하고 또 학습 받을 분들은 아무데 앉아도 되고 성찬에 참례할 세례 교인들은 다  이 앞자리로 와서 다 앉도록 그렇게 하면 편리하겠습니다.

기도회가 마친 후에 이 4층 예배당에서 통지한 그대로 양성원 운영위원들과  총공회 위원 지방 공회위원 개교회 위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빠짐없이 다  참석하시고 장로님들도 다 참석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 시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말씀이  중요하지마는 중에도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시간을 걸쳐서 계속 증거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학자들의 해석이 같지를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이라, 어떤 사람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이라 이것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건설구원과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이라고 각각 달리 생각하는 데에서  해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이 이 말씀은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 밖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기를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라고 이렇게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배운 것에 대해서 미혹을 주기 쉽습니다.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왼편에 앉은 염소는 말씀을 순종치 아니함으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말씀했습니다.

또 둘째로 중요한 것은 여섯 가지로 어려움 당한 사람을 구원했을 때에 주님이  이 다음 심판 때에 네가 이 여섯 가지로 나를 대접하였으니 너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아라, 이렇게 여섯 가지 대접한 이 대접이 영적 대접이냐 육적  대접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적 대접을 말씀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또 영적 어려움 당한 일을 대접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상관없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쉽지마는 육으로 보면 육에 사랑의 역사가  되고 영으로 보면 영에 사랑의 역사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달리 보는데 따라서 거기 대한 뜻은 완전히 바꾸어집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기본구원을 말함이 아니고 건설구원을 말씀하신 것인 것과  또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영에 대한 것을 말씀하신 것인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놓치면 안됩니다.

셋째로는 이 여섯 가지를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수많은 하나님의 계명들이 있어 사람들이 그 계명을 지켰든지 못  지켰든지 그 수많은 계명들을 지키고 못 지킨 그것은 그들이 그동안 살 때에  자기들에게 지킨 사람은 복이 됐겠고 못 지킨 사람들은 화가 된 것뿐이지 홍수  심판의 구원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른 계명들을 지키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신  대로 방주를 만든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었고 다른 계명을 잘 지켰다 할지라도  방주를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홍수 심판에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홍수  심판 때는 하나님의 계명 중에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어라 하는 이 계명이 모든  계명 중에 하나님의 구원의 표준계명으로 정하신 계명입니다.

그러기에 이 계명을 따라서 방주를 만든 사람들은 구원이 됐고 다른 계명을  지켰다 할지라도 이 방주를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심판은 불심판입니다. 물심판에는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이 표준계명인 것처럼 불심판을 맞이할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표준계명으로 정하신 계명이 어떤 계명인가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계명을 어기면 화를 받는 줄을  알기는 알았지마는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이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때는 제일 중요하고 천하가 멸망 받는 데에 그 멸망에서 구출됐고 될 수  있다는 것을 노아의 여덟 식구만 알았지 다른 사람들은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신구약성경 66권 도리는 빠짐없이 우리의 생활지도의  말씀인데 이 수많은 말씀을 자기가 어떻게 지켰다 할지라도 말세에 하나님이  정하신 표준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다 허사라는 것이 노아 때에 방주 만들라는  계명 지키지 안하고 다른 계명 지킨 것이 다 헛된 거와 꼭 같이 됩니다.

불심판을 맞이할 말세에 하나님이 표준계명으로 정하신 계명은 어떤 계명인가?  이것은 다 사랑입니다. 저도 말세에 표준계명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렇게 똑똑히  확실히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안 했습니다. 모든 것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씀을 많이 증거도 했고 느끼기도 했지마는 말세에 불심판을 면하고 말세  성도들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이 표준계명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확신하고 느낀 것은 얼마 되지를 안 했습니다. 노아 때에 표준 계명인 방주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만들었을 때에 그는 이 천하를 하나님에게 자기의  것으로 상속받았습니다. 온 천하는 노아의 그 식구들의 것이 됐습니다. 다른  주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세에 심판을 맞이할 우리들이 이 심판을 면하고 영원무궁토록  영계에 있는 모든 것과 이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상속받을 자는  누구인가? 말세에 표준계명인 이 사랑을 완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든지 우리의 구원은 사랑을  완성하라는 이 하나님의 계명에 다 기인되어 있다는 이 사실을 굳게 잡고 이  사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의  성공이라면 구원의 성공이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상속받을 것이요.

사랑의 실패자라면 어떤 계명을 지켜 사람 보기에는 구비하고 온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심판을 면하지 못하고 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될 것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사랑에 표준계명이라는 것은 전 시간에 많이 말을 했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표준계명이라는 것만 증거하고 거기 대한 증거의 성구들을  말하지 아니합니다.

그런고로 우리 구원에는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이 하나에 멸망과 구원이  근거됩니다. 모든 지식을 통달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자기 몸을 다른  사람 위하여 불살라준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몸을 불태워  희생하여 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다른 사람 위해서 조그마한 것도 희생하기 싫은데 어떻게 자기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의 제물로 불사르는 데까지 내어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자기  몸을 아끼지 안하고 그를 위해서 불사르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럴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하는 말씀을 하셨으니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인가 하는데  대해서 우리는 문제가 생겨집니다. 말세는 사랑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고  사랑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사랑만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행위에 있어서는 사랑이 제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표준계명이요, 제일인줄 아는 우리들에게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사랑이 하나뿐이라면 이 하나인 사랑을 우리가 전심전력 기울여 완성시키면  되겠는데 사랑이 하나가 아니고 사랑이 둘입니다.

첫째 아담의 사랑이 있고 둘째 아담의 사랑이 있으니 첫째 아담의 사랑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요 인간에게서 성장된 것이요. 한 사랑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사랑이요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퍼지고 성장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둘째 아담의 사랑입니다.

인류 시조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악령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사랑 인간의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귀하게 여기고 이 사랑 인간사랑 마귀가 준 사랑, 이 사랑을 해와가 받고  선악과를 먹고 나니까 자기만 먹고 존재케 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담도  먹어야 자기와 같은 존귀한 자가 되리라고 생각해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했던  것입니다. 해와의 사랑이 권했습니다. 인간의 사랑이 권했습니다. 그럴 때에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지마는 해와를 사랑하고 해와의 사랑을 받고  이 해와의 사랑을 받은 이 사랑으로 인해서 그 선악과를 먹어 대대손손이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 사랑을 가지고 당신에게 속한 모든 자를 다 구출했습니다.

그러기에 한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이요. 한 사랑은 산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세에 악한 것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말세를 당한 세계교회는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세계가 다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제일로 알고  사모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겉은 같지마는 속에 그 사랑의 본질과  본성과 실력은 다릅니다. 껍데기는 비슷하지마는 그 본질과 본성이 다르고 그  실력이 다릅니다. 산 사랑은 전지 전능 영원 불변의 완전의 실력을 가진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대로 되어 있는 사랑이요. 진리대로 되어  있는 본질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요. 본질과 본성이 다 악입니다. 자기를 건  자기를 중심해서 발동되고 활동하고 열매맺는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다른 계명을 다 지켜도 그것 가지고는 우리 구원에는 상관이  없고 우리 구원은 이 사랑의 완성을 해야 하는데 말 한 마디도 발걸음 하나도  움직이는 지극히 작은 움직임이라도 이 사랑을 성장시키고 사랑을 달성시키는 이  움직임이어야 하지 사랑이 아닌 움직임은 암만 위대하다 할지라도 구원에는  상관이 없으니 우리는 이 사랑에다가 주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랑이 한 종류뿐이라면 우리는 안심하고 사랑을 주고받고 사랑에  주력만 하면 되겠는데 사랑이 하나가 아니고 두 종류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한  사랑은 구원을 받는 사랑이고 한 사랑은 멸망을 받는 사랑이니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의 표준계명이 사랑이니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그 다음에 우리가 노력할 것은 무엇이냐 사랑이 두 종류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느  사랑이며 이것은 어느 사랑인지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여기에 첫째로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말세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않는  이로 인해서 거짓 사랑이 인간을 미혹시켜 멸망시킬 것을 요한계시록에 말씀해  놨습니다.

땅에서 나오는 두 뿔 가진 새끼양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에 세도를  부리고 모든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다  새끼양 어린양보다 더 순진하고 깨끗하게 보여지는 새끼양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다 우상 섬기다가 멸망 받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랑과  사랑을 바로 구별하지 못하면 저는 구원에 중요한 사랑을 달성시키려고 하는 그  모든 생애가 스스로 자기를 멸망시키는 생애가 되겠고 이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그것이 이웃을 다 멸망시키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과 사랑을 우리가 구별해서 제일 보배로운 것이 사랑이요. 제일  몹쓸 것이 사랑이요. 생명과 신령이 충만한 것이 사랑이요. 사망이 가득 찬 것이  사랑이라. 한 사랑은 우리가 무서워 멀리 피해야 할 사랑이요. 한 사랑은 우리가  가까이 하여 초성하고 성장시켜야 될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말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인가 어떤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인가 어떤 사랑이 인간 사랑인가 하는 것을 그 다음에 여섯 가지를 정의를  내놨습니다. 사랑은 전능을 가져야 사랑입니다. 전지를 가져야 사랑입니다.

영원불변을 가져야 사랑입니다. 영생을 가져야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사랑은 그 실력이 없습니다. 본질과 본성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해도 내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자기가  근거입니다. 아무리 애국 애민족 애가정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근거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면 말세에 구원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인간에게는 죽은 사랑 거짓 사랑 마귀에게서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준 사랑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 산 사랑이 사랑을 우리에게  보내왔습니다. "사랑은 내게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왔으니 이 사랑을 받아 자체도 사랑의 완성자가 되어야 되겠고 이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줘야 되겠고 그러면 이 사랑을 사람에게서  받고 이 사랑을 사람에게 주는 이것이 역사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이 아니면 받지도 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주지도 말아야 합니다. 간단하게 대한 밑에  말씀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 그 소자의 주림이 주님의  주림이 되고 주님의 주리심이 그 소자의 주림이 되는 창조주와 피조물이지만 그  관계는 연결되어서 하나된 것을 말씀해 놨습니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육신이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그것은 인간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가지고 상대방을 손을 잡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방편으로는 쓰지마는 인간의 사랑 그것만으로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주릴 때에 먹여주시는 것은 음식 못 먹어 주린 자 이 양식은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을 일으키기 위해서 모든 소유를 다 희생하시고 몸과  생명을 다 최종적으로 희생하셔서 우리를 구출하신 예수님의 이 구속의 피와  살에 대한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때에 그 사람의 인격은 굶주리고 심령은  굶주립니다. 물이 없고 양식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구속의 이 사랑을  깨달음으로 먹지 못해서 주님의 피와 살을 먹지 못해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마지막에 다시 살고 또 그 속에  영생이 있고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하늘에서부터 대속의 제물 되어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대속의 하나님의 지극한 이 사랑과 지극히 큰 구원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알려줘서 그 사랑의 인격이 힘을 얻고 그 심령의  용기를 얻고 그 사람이 영원한 소망에 굳게 서서 참사람으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 힘을 일으켜주는 것이 이것이 양식을 먹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자기의 자녀든지 친구든지 부부간이든지 원수든지 그에게 예수님의 이 대속의  사랑을 어떤 방편으로든지 그에게 알려줘서 이 대속의 사랑에 깨달음을 가져  그가 소망의 힘을 얻고 인간 살이의 힘을 얻고 참사람이 일어나도록 먹음으로  참사람이 점점 성장해지고 건강해지도록 이것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이고 이러므로 인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영감과 진리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씩 둘씩 걸음마 하듯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작은 것  하나씩 실행시키고 둘 셋 실행시켜서 점점 하나님의 뜻을 하나씩 둘씩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그리스도인이 그의 참사람이 그의 새사람이 그의 참 인격이  이렇게 힘을 얻고 강건해지게 하는 이것이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하나님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와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셔서 모든 것을  희생하신 이 사랑을 이 대속을 사람들에게 알려 그 사람이 이 대속의 은총을  깨닫고 이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성장되고 주님의 뜻을 하나 행하고 체험하니까  둘 행하고 경험하니까 경험과 체험에서 그의 참사람 새사람이 힘을 얻고 점점  성장되어 나가도록 이렇게 하는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하나님의 표준계명으로 정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배고픈 자에게  고량진미를 먹이고 일생 동안 먹여 살린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구속의 피와 살을  저의 양식 저희의 힘이요 저희의 인격의 양식이 되는 것을 그에게 먹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뜻으로 하나 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경험과 체험에서 그의  신앙인격이 자라가도록 하지 못했다면 그는 주릴 때에 먹여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목마를 때에 마시어 줬다" 이 말씀은 그  사람에게 성신의 감화가 없고 인간 감화 돈 감화 권세 감화 세상 행락 감화 모든  욕심 감화 땅에 있는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정신의 감동이  그 마음을 주장하지 못한 그 사람이 목마른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 성신의  감화를 그 사람에게 주워서 그 사람의 마음이 성신의 감화 감동이 되니까 당장  변해집니다. 원수에게 칼을 품었던 자가 성신의 감화가 되니까 칼을 던지고 그  원수에게 와서 자기 몸과 생명까지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행복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복음 운동이나 하나님의 의를 인하여 자기에게 어려움이 당할 때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팔고 진리를 팔고라도 살 구멍을 찾을까 하다가 성신의 감화가 올 때에  어떻게만 하면 내가 주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이 복음운동을 위해서 내 생명을  단 마음으로 바칠까 하는 마음으로 즉시 바꾸어지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체험합니다.

이 영감을 영감 없는 자에게 영감 주는 것이 이것이 목마른 자에게 마시어 주는  것인데 이 영감은 제가 영감을 받아야 영감을 줄 수가 있지 제가 받지 못한  영감을 상대방에게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성신의 감화가 오지 안  하면은 우리 마음은 독사와 시랭이 같습니다. 살인강도와 다름이 없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악독하고 거짓됩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성신이 그 마음을  감화 감동시킬 때에 그는 참 하나님 앞에서 향기 나는 마음이요. 모든 만물이 다  탄식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과 그 사람의 행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평강을 주는 것이 무엇이며 옳은 지혜 지식을 주는 것이  무엇이며 의의 강건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영감입니다. 영감이 오면  우리 마음은 강건합니다. 죽음이 와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영감이 올 때에 우리는  살인강도와 같은 모든 욕심이 다 물려가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사람으로 이 모든 답답함과 어두움과 갈급과 모든 고난 고민을 면하는  것은 생수입니다. 성신의 감화입니다. 이 감화는 제가 감화된 것 만치 상대방에게  줄 수 있지 제가 감화되지 않고는 상대방에게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구원의 표준계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과 행복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는  성신의 감화를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성신의 감화를  주어 행복 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거룩하게 하겠다고 말씀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이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영감의 사람이 되어지려고 애를 써 영감의 사람이 되어지므로 자기가 접촉하는  사람에게 영감의 사람이 되어지도록 이 영감으로 목 마셔 준 사람 영감으로  마시어 준 사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남을 위해서 자기가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자기 가족을 위해서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아내를 위해서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남편을 위해서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오만 것 다 주는  것보다도 내가 먼저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나를 영감 시켜 사로잡은 성령이 나를  통해서 내 가족을 내 원수를 나와 접촉하는 사람을 점령하시고 그 사람을  성령에게 점령당해 성령의 사람으로 시원함과 만족함을 얻을 수 있는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이 영감으로 준비하고 영감의 이웃이 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요새는 가짜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다 양 사방서 끌어온 그 손님에게 주인이 인사할 때에  예복을 입지 안한 자를 밖에 쫓아냈습니다.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면케 하라고 말씀하신 내가 벗었을 때에 네가 와서 입혀 주었다 말씀하신  이 입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있는 자 사죄를 벗고 칭의를 벗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이 화친을 벗은 자에게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세  가지 이 대속을 입히려고 애를 써서 입혀준 그것은 막 바로 주님에게 입히신  것이요 그는 주님이 무궁세계에서 당신이 대접받은 것으로 계산해서 영원히  보상하는 주의 대접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대접이요. 이것이 말세에 표준계명인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입니다. 땅에서 솟은 사랑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입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네가 영접하였다 자기 처소를 찾지 못하고 허덕거리고 있는  사람이 나그네인 것입니다. 자기 집에 있지 못하고 객지에 있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자기 집에 거처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물론 자기 집에  온 손님도 대접하겠지마는 그것은 이것을 위해서 있어야 되지 그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은신처, 자기의 은신처 자기의 골방 자기의 의로운 나라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 오라" 밀실로 들어가라 은신처로 들어가라 하는 자기가 머물  장소를 깨닫지 못하고 허덕거리고 다니는 사람 자기가 설자리에 서지 못하고  자기가 머물 자리에 머물지도 못하고 자기가 살 자리에 살지 못하는 지존자로  거처를 삼지 못하고 자기 위치 자기 분수 자기 사명 자기 궤도 자기 아버지 만난  자기 집 자기의 골방 이것을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빙빙 돌아 자기 집에  없으니까 돈에도 들어붙었다가 인정에도 들어붙었다가 정실에도 들어붙었다가  물질에도 들어붙었다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해.

 이렇게 방황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골방 자기의 은신처 자기의 의로운 나라  요것을 찾지 못한 자에게 네가 먼저 찾아 그를 너 있는 곳으로 영접하라 네가  있는 은신처로 네가 있는 골방으로 네가 나를 머물고 있는 의로운 나라로  주안으로 영감 안으로 의인이 곤욕을 당하고 죄인이 형통하게 사는 것이 이해가  안됐지마는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내가 깨달았다 악인이 형통한 것은 졸지에  그가 망하고 나그네 세상에서 한 번도 멈추지 못하도록 네 안에 타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것이 죄를 지어도 형통한 멸망이라는 것을 성소에 들어갈  때 사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 자에게 이곳으로 들어오도록  이곳으로 영접해 드리면 이것이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자기가 여기 거처를 해야 되지 자기가 먼저 들어가지 안하고 다른 사람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보니까 마음에 욕망스러워서  견디지를 못하던 세상은 간 곳이 없고 주님과 하늘나라만 사모되지 어떻게 하면  욕망대로 잘 살아볼까 하는 이것이 그 사람 만나고 보니까 어떻게 만나도 네  십자가 지고서 주를 따를까 하는 십자가만 사모되고 십자가만 보여지는 이것이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말세의 구원의 표준계명이 이것입니다. 말세의 교회는 첫째 아담의  사랑 이걸 가지고 거기 적이 되고 맙니다. 고독을 당하고 배척을 당합니다.

이러기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면 허사입니다. 병들었을 때에 찾아와서  도와 주었느니라. 병든 것 분명히 중생 된 기독자인데 중생한 기독자가 어떤 사람  만나고 나니까 돈 병이 들었습니다. 어떤 자를 만나고 보니까 세상 지식병이  들었습니다. 권세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과  세상에 있는 사람들로 더불어 이 병든 것을 어떻게 하든 지어서 구원해 줄라고  찾아가서 이 병든 것을 구원해서 세상으로 병든 것을 영감과 진리로 치료해서  주와 하늘나라로 강건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이것이 치료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예수 믿는 사람인데 순전히 세상화 돼버렸습니다. 세상화 된 그 사람을  예수화 되도록 하려고 애쓰는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사울을 다메섹에서 세상 모든 거는 다  멀어져 버리고 빛 가운데 나타난 주님만 그 심령과 전체에 다 바라보던 거와  같이 이렇게 그 사람을 이제는 세상에 있는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예수님  안에서 하늘나라에 주님 만날 것과 그 나라에 가서 살 것, 세상 떠날 때에 자기가  갈 것 이것을 생각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이것이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육의 사랑은 적이  됩니다. 육의 사랑은 그 사람을 좀 더 땅에 소망의 사람으로 땅에 구비한  사람으로 땅에 풍성한 사람으로 땅의 것을 단단히 알뜰히 가꾸어주는 이것이  땅의 사랑인데 이것을 하늘의 사랑을 위해서 이것을 투자하고 이것을 희생시키고  이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겨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죽은 사랑과  산 사랑은 정 반대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인해서 부모와 자녀가 형과 아우가 친구끼리 다 원수가 되어지는  이런 박해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다 이렇게  이상해졌습니다. 이거는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면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냐 그 신앙이 이 신앙인격이 신앙의 사람의 그 심신이 사상이  욕망이 지식이 세상으로 병들어 있는 자를 안타까이 여겨서 그 병에서 치료되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한 요것은 막 바로 이것이 주님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 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은 산지식인데 인간의 지식을 암만 가져도 죽은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만 가진 자에게 죽은 인간의 지식이 들어붙어서 암같이  들어붙어 가지고 그 사람이 지식의 병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에는 하나님의 지식이 주체가 되고 인간 지식이 거기 소속이  되어지더니마는 이것이 고등학교를 떡 들어가고 나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점점  자라지 안하고 인간의 지식은 밤낮으로 자라니까 자기도 모르게 인간의 지식이  주체가 돼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은 거기 소속한 게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한 상식으로 가졌고 인간의 지식은 자기에게 주체적으로  필요성을 가지는 이 사람이 되었으면 그 사람은 지식이 병든 사람입니다. 이런  종류들의 병든 것을 치료하지 안 하면 그 사람의 구원이 실패되기 때문에 이  구원을 위해서 방문하고 치료해주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땅에 인간의 사랑을 가르쳐서 지금 구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느니라. 물론 진리 때문에 옥에 갇힌 사람도 있지마는  그런 것은 진리 때문에 정말로 갇힌 자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방문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로서 위로를 받지 않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형사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사모님을 가졌으니 저 주기철  목사님이 그 사모님의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울적해서 그 마음이 아마 변동될  것이다 해서 다른 이는 면접을 시간을 정해 놓고 잠깐 면접하게 하는 게 주기철  목사님 사모님은 주기철 목사님 미혹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시간을  줬습니다. 시간을 준 것은 거기 와 가지고 가정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당신  없으니까 내가 어려워서 못 견디겠고 하니까 그만 신사참배하고 나오라고 이렇게  말할 줄 알고 했는데 가 가지고 귀도 후벼 주면서 손톱도 깎아 주면서 '여보  당신이 만일 이 신사참배에 깨끗이 이기지 못하고 나온다면 내 남편은 아닙니다'  손톱을 깎아 주니까 '손톱 밑에 죽침 질을 해도 당신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사참배를 하지 안하고 지조를 지켜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정말 내 남편입니다.'  거기서 실컷 한다는 것이 먹여주고 마셔주고 입혀주고 영접하고 병도 고쳐주고  옥에 갇힌 데서 해방을 시켜. 이러니까 비록 그 감옥에 들어 있기는 있으나 그  사모님 한 번 척 만나고 나면 양심이 어떻게 자유로운지 진리와 영감에 얼마든지  자유로운지 '아, 이렇게 이 진리와 영감대로 할라 하면은 또 형벌이 많을  터이니까 그만 엔간히 하고 말까 어쩔꼬' 하다가 그 사모님 만나놓으면 '주여,  진리와 영감에 추호도 어김없이 단 마음으로 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유  하겠습니다' 하니까 비록 몸은 갇혀 있지마는 그 심령은 자유 합니다. 그것이  옥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의 감옥에서 어리석은 허영의 감옥에서 감정 오기의 감옥에서 온갖  자기 주관의 감옥 세상 세력의 감옥 명예 감옥 영광 감옥 모든 정실 감옥 죽음에  죽기를 싫어하는 죽음의 애착 감옥 안일주의의 감옥 온갖 무형의 감옥 속에 들어  있어 이것 때문에 영감과 진리대로 자유하지 못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영감과 진리대로 자유 할 수 있는 이 자유하지 못하는 이것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고로 여기 있는 말씀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요 여기 대접하는 것은 육에 대접하는 것이 아니요, 심령을 대접하는  것이요.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말세에 구원의 표준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을 여기서  말씀했습니다. 어디서 사랑인 걸 말씀하고 있소. 밑에 여섯 가지 말하는 것이  사랑의 정의입니다. 사랑의 정의. 이것 가지고 멸망 받고 구원 얻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근거라. 이 여섯 가지 하고 안 한데서 구원의 근거라 여섯 가지가 뭐인데  이 여섯 가지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다 하늘에서 다 하늘에서 내려왔소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온 이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에 표준계명은 사랑의 계명이라 그러면 사랑은 죽이는 사랑과  살리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인데 인간의 사랑은 죽이는 사랑이요  죽은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산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어떻게 구별하느냐 밑에 여섯 가지로 구별을 해서 이 여섯 가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인 것을 여기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이 여섯 가지 사랑의 노력하고 사랑에 주력해서 이  사랑의 완성이 되도록 노력해. 이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서는 이 사랑만 받고 다른  것은 받지 마. 다른 것은 빚지면 안 돼. 이것은 얼마든지 빚져도 돼 이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내가 얼마든지 담쑥 받고 나도 모든 사람에게 이 사랑을 주어  사랑으로 노아가 방주를 완성한 것처럼 이 사랑의 완성이 되어질 때에  무궁세계에 하나님에게는 쓸모 있는 사람이요. 이런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이 목적으로 정하신 그 목적에 완성의 사람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사석에든지 공석에든지 가정에서든지 여섯 가지 이 사랑을 기억하고  이것이 막 바로 주님에게 하는 일인 이 지극히 고귀한 일인 것을 우리는 깨닫고  아무리 어려워도 이 일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오는 환경은 하나님이 조성해 주시는 것인데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점점  구비하고 현실에서 사랑에 병든 것을 치료하고 현실에서 사랑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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