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소하는 혀

 

1986. 7. 14. 월새벽

 

본문:로마서 10장 13절∼15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선지자선교회 시편 15편 3절∼5절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여기 시편 15편 3절에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한다 그 말은 우리 말로서는 그 혀를 가지고서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말 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참소치 아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참소하는 영이 있으니 마귀의 이름은 참소하는 영이라 이랬습니다. 밤낮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게 꼬닥거려서 어짜든지 사람의 뭐 조그만한 단점이라도 있으면 참소를 하고, 그래도 단점이나 나쁜 점이 있는 것을 참소하면 괜찮은데 나쁜 점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항상 참소하다가 야단을 만나고 쫓겨나고 하는 그런 신이 있었는데 그 밤낮 참소하던 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승리를 함으로 쫓겨나 버렸습니다. 인제 땅에 쫓겨났는데 쫓겨난 그 신이 사람을 붙들고 참소하는 자를 만듭니다.

참소한다는 것은 ‘그 혀를 가지고 발바닥을 삼고 다닌다’ 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참소한다는 데 대해서. 혀로 발바닥을 삼고 돌아다닌다.

그러면, 사람이 이리저리 행동을 하면서 어짜든지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 헐고 삣고 깎고 이간을 붙여서 사람의 믿음을 손해케 하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혀로 참소하는 자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이 입이 똑똑해서 말 잘하고 잘 주껴대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이 또 그렇게 입이 똑똑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마는 그만 그 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떨어뜨리는 거,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흔드는 거, 또 다른 사람들과 사이 좋은 화목을 이간 붙여서 깨뜨리는 거, 그 입술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모든 복된 점을 헐어서 해되게 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혀로 참소한다 이랬습니다.

혀로 참소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 반열에 들지 못합니다. 혀로 참소하는 사람, 그 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모든 면으로 복되게 유익되게 할라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은 다른 행동이 여간 나빠도 그게 복이 돼 가지고서 복을 받는데 이 혀를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복된 그 점을 어떻게 하든지 흔들어서 복이 되지 못하도록 사람을 흔들어 사람을 버리는 이런 사람은 다른 면으로 암만 골빠지게 일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이래서, 야고보서에는 “그 혀는 윤회하는 만물을” 윤회한다 말은 돌아가는 만물이라 말인데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고 또 모레가 있고 자꾸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는데에 모든 만물들은 이렇게 자꾸, 사람의 육체가 짐승의 육체 됐다가 또 사람 육체가 풀이 됐다가 나무가 됐다가 흙이 됐다가 자꾸 이렇게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런 모든 윤회하는 만물을 “지옥불로 사른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옥불로 사른다” 그래서는 그 혀는 얼마나 악한 것인가 하면은 불이요 불의의 세계와 같은 악이라 이랬습니다. 그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와 같은 그 큰 악이라. 그러기에 사람이 아무리 다른 면으로 열심히 하고 조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구제를 많이 하고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 혀를 지켜 재갈먹이지 안하면 좋은 날 보기는 틀렸다 이랬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혀를 금하여” 이랬어.

“혀를 금하여” 그러면 그 혀를 금하지 안하고 그 혀를 가지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믿음을 흔들고 복을 흔들고 또 그 사람이 사람돼 볼라고 하면은 그 배암의 입술, 내빌내빌 하는 그 배암의 입술 가지고서, 말을 잘한다 그말이오. 말을 잘하고 아주 언변이 있고 이라니까 그 내빌거리는 똑 배암 혀와 같은 그 혀를 가지고서 사람을 믿음을 손해보이고 그 사람에게 건설할라 하는 그런 것을 없애고 사람을 못쓰게 그렇게 만들고 이간 붙이고, 또, 사람이라는 건 다 장단점이 있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저 사람은 저런 면은 참 저런 면이 좋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지금 저도 그 사람과 같은 장점 있는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데 그라면은 슬그머니 그 사람의 단점을 썩 말해 가지고서 ‘사람은 다 같구나. 그 사람도 별 사람이 아니로구나.’ 이래 가지고 그만 소망을, 그 사람으로 인하여 소망 가졌던 사람을 소망을 떡 깨뜨리도록, 요런 일 하는 자는 언제든지 고 입술은 고런 일 하고 있습니다.

남을 헐고 삣고 또 사람들의 그 결심하는 결심을 풀고 헐고 나사 풀듯이 그렇게 하는 그자는 하나님께서 그 미래에 생명이나 좋은 날이 없도록 딱 금해 버렸다 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ㅡ제일 일호가 뭐냐 하면ㅡ혀를 금하라” 이랬습니다.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3장.

그래 한번 읽어 봐.

혀를 조심하지 안하는 사람은 아예 생명은 바라지를 말아야 됩니다. 생명 바라지 말아야 된다 그말은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입니다. 혀를 조심하지 안하는 사람은 아예 하나님과 연결은 바라지 말아라 그말이오.

하나님은 혀를 불과 같은 악한 것 불의의 세계 같이 악한 것이 혀다. 윤회하는 만물을 지옥불에 사른다. 자기 몸에 지체 중에 가장 적은 내빌거리는 그 혀지마는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와 같은 악이다. 윤회하는 만물들을 모두 불사른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을 원하고 앞으로 좋은 미래가 닥치기를 원하는 자는, 차차 차차 오늘보다 내일이 좋고 내일보다 모레가 좋고 모레보다 그다음이 좋고 이렇게 좋기를 원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할 거 뭐냐 하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버리라” “악한 말을 버리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악이라는 정의를 여게서 가르쳐도 사람들이 그걸 잘 수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만히 보면 그 악이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이나 각 나라의 각국의 어학 사전을 찾아 보면은 인간들이 말해 놓은 해석이기 때문에 배암이 모두 다 말해 놓은 해석이니까 그 악이라 하는 것을 불교에서 악이라는 거 또 이종교에서 악이라는 거 유교에서 도덕가들이 악이라 하는 거, 그런 모든 악이라 그렇게 해석을 하지 이 서부교회에서, 악은 하나님 중심 내놓고 어떤 피조물 중심이라든지 피조물 중심은 악이라고 그렇게 정의를 내는 것을 조금 지식을 있는 데 따라서 자꾸 인정치 안하고 더디 인정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신학의 박사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인정을 늦게 하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신학 박사들이. 그분들은 지금도 얼떨떨하게, ‘그거 참 악이라 하는 걸 그렇게 막 모둘뜨려서 그래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니까 빨리 청종을 못 한다 그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길바닥에 뿌린 씨라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길바닥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다져졌다 말이오.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 많은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말에 대한 그렇게 자극성이 없기 때문에 나쁜 말도 잘 안 듣지마는 좋은 말도 잘 안 들어. 자기 지식을 가지고 자꾸 이래 날뛰고 있다 그말이오.

그런데,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버리라” 그 말은 자기 중심의 말을 버리라 그 말입니다. 어짜든지 자기 중심,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를 유익되게 자기 좋게 할려고 하면 모든 것은 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혀를 금하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면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하느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유익되게 할라 하는 그 마음을 가지기 전에는 절대로 그 혀는 절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보면은, 이리 저리 말해도 말하는 거 자꾸 들어 본 사람들은 좀 지혜가 성장한 사람은 아는데 그 사람 말하는 걸 보면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듯 하는데 ‘저게 조리 조리 가 가지고서 결국은 자기를 위하는 말이 되고 말겠다.’ 그 밤낮으로 언제든지 자기를 위하는 그 중심을 가진 사람은 그 혀를 바로 놀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혀를 금하면 그것이 참 자기 성화 구원에 제일 속빠른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에 흠이 없는 사람은 다 온전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해. 말 하나 고쳐서 말에 흠없이 살라 하다 보니까 모든 행동이 다 고쳐집니다.

그러기에, ‘혀로 발바닥을 삼아 가지고 돌아다니는 자다’ 하는, 발로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그 혀를 가지고서 그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혀로 가지고서 사람을 해치는 그런 일을 하는 그자를 가리켜서 “혀로 참소하는 자라” 혀로 참소 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에 들지 못하고 좋은 날을 보지 못합니다. 좋은 미래를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말을 자주 하는 사람,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주 말 잘하는 웅변가라면 그것은 웅변가를 은으로 비한다면 말이 없는, 말하지 않는 무언사, 무언의, 말 없는, 무언자는 금덩이라 이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 그런 말 해 놨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말을 자꾸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 이라기 때문에 그런 소극적 면에서 말 없는 사람이 낫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 없는 사람이 낫다. ‘웅변이 은이라면은 무언은 금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제일 일등이 뭐이 일등이겠습니까? 제일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제일 일등으로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일 어떤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안 하는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말을 적게하고 좋은 말 하는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말을 밤낮 쉬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데 옳은 말 하는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어떤 사람을 일등으로 봅니까? 녜, 말을 많이 하고, 많이 하되 다른 사람 해치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그 사람의 혀를 하나님이 말하기를 “네 혀에서는 꿀이 나온다. 네 혀에서는 젖이 나온다.” 그 말은, 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을 다 기르고 살린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 못씁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구역을 옮길 때에는, 구역을 옮길 때에는 신고함에 써 넣어 놓고 또 권찰장, 권찰장은 제가 권찰장입니다. 권찰장인데 권찰장에게 의논해 가지고 구역을 옮겨야 합니다. 구역을 옮겨야 될 사람들 제가 볼 때는 그 구역장이 놓기 싫어서 암만 그래도 기어코 구역을 옮기고 맙니다. 내가 몰라서는 그래도 알면 옮깁니다. 그러나, 구역 옮길라 하는 것이 옮기는 것이 안 옮기는 것만 못할 때에는 옮기지 못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이런데 왜 이런 말 하는고 하니 요 혀를 가지고서 남의 구역에 속하여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거기 있으면 신앙 생활 잘하고 그만 그럴 사람을 자꾸 옆에 속살거려 가지고서 어떻게 하느냐? ‘네가 그 구역은 안됐으니까 우리 구역으로 오너라’ 이래 가지고 자꾸 달콤한 말 해 가지고 그 사람 신앙을 흔듭니다. 이래서 만나 가지고 자꾸 달콤한 말 하니까 ‘아무 구역장은 좋다’ 이래 가지고 그만 자기한테로 오도록 이렇게 자꾸 유도를 합니다.

이 목사들 가운데도 그래요. 어떤 사람은 목회하는데, 사람을 만나면 저거 교회 자꾸 자랑을 하고 저거 교회 자랑을 해서 저거 교회 좋은 양으로 오면 복받는다고 이래 가지고 또 그 사람을 슬그머니 올 수 있도록 아주 만나면 달콤하게 그 사람에게 아주 친근하게 친밀하게 해서 그 사람이 정이 확 자기에게로 기울어지도록 고렇게 하는 그런 목사들 있습니다. 언젠간가 하나님이 노여워하십니다. 꺾으십니다.

또, 이 구역장들도 그렇게 하고 또 반사들도 그렇게 해요. 남반 구역장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내가 아직까지 별로이 발견하지 못했는데 여 구역장들은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전에 명령을 뭐라고 내렸느냐 하면은 ‘구역장은 남의 구역에는 가지 말아라.’ 이랬어. `남의 구역 식구일랑은 상대하지 말고 방문하지 말고 관계하지를 말아라.’ 또 처음에는 어떻게 했는고 하니 이 구역장들이 자기 구역에 제가 가 가지고 설교하고 할라 하니까 힘이 드니까 어짜든지 다른 구역장을 청해 가지고 심방하러 가서 다른 구역장이 저거 구역에 와 가지고 설교를 해 주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 일 하는 것을 그걸 하지 말라 하니까 막 데모가 올라왔어.

‘그렇게 하지 마라. 너거가 그래 하면 너거 죽고 다른 사람 구원도 못 하고 하니까 하지 마라.’ 이라니까 ‘은혜있는 사람 데리고 가 가지고서 심방 같이 가는 거야 뭐이 나쁘다 말입니까?’ 이래 가지고 데모가 올라왔어.

데모 여기, ○○○권사님 데모 안 했어요? ○○○권사님 데모 안 했어요? ○○○권찰님 데모 안 했어요? 다 이 사람들 다 데모 한 사람들이라. 그때는 ○○○권사님이 이거 왕이 돼 가지고 어데든지 막 초빙해 돌아다녀.

그러면 자기 구역에는 뭐 옳게 하지를 못하고, 돌볼 여가가 없어요, 그렇게 하니까. 이런데 다른데서만 유명해서 교회 모든 구역이 ‘○○○권사님 구역했으면 좋겠다’ 이래 가지고 거게서 한수 보지마는 또 바빠 보니까 돌 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이래서 ‘남의 구역 식구들에게는 상관하지 말아라’ 이걸 명령해 놨고 ‘권찰 권찰끼리 만나면 서로 죽이니까 만나지 말아라’ 이래 가지고, 이제는 지금 벌써 좀 정신이 들고 진리를 깨닫고 나니까 지금 구역장에게 ‘다른 권찰을 데려다가 심방을 해라’ 하면 안 듣습니다.

여기 ○○○집사님이 말씀 새김질을 좀 잘하고 이라니까 ‘그 말씀 새김질 좀 데려다 시켜라’ 이라니까 어짜든지 안 시킬라고 애를 써요. 시켜 보면 그때는 은혜받는 거 같지마는 그 사람의 구원이 ‘아이구 우리 구역장은 참 재미 없다.

구역장을 좀 바꿔야 되겠다.’ 이라니까 그 구역장이 신앙 지도하는 것을 받지 안하니까 그만 그 사람 구원이 전부 박살이 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도 하라 하면 안 하고 저 사람도 하라 하면 안 하고, 아직까지 철때기 없는 사람은 또 그렇게 하고. 이제 이라다가 재독이 나와 놓으니까 됐다 해서, 재독은 해도 목사가 한 설교 재독하니까 뉘한테 거석할 거 없는 것이거든.

왜 그러냐? 사람이 아무리 조심을 해도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안한 사람들은 말을 하면 어데서든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말을 하고야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의 구역 식구를 만날 때에 어떤 사람은 ‘그 구역장은 참 재미 없더라.

냉정하더라.’ 그라는 사람은 그 구역장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한 것입니다.

바로 한 것이오.

또 이라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서부교회는 전부 구역 관념이 어떻게 강하든지 저거 구역이나 사람으로 알고 인사하지 남의 구역은 인사도 안 한다고서.

제가 맡은 사람만 인사하면 될 일이지, 목사가 돌아다니면서 저거 교회 교인이나 잘 알뜰히 돌아봐야 되는 것이지 목사가 이 교회 교인들에게 찾아 돌아다니고 저 교회 교인들에게 찾아 다니는 그것이나 그 구역장이 남의 구역 식구를 보고서 예 예 예 이래 친절히 하는 것이나 꼭 같은 거라. 그자는 나쁜 사람이라 알겠습니까?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서부교회 목사가 여기 ○○교회도 뭐 ○○교회도 ○○교회도 ○교회도 돌아다니며 그 교회 교인들 가정에 찾아 다니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아주 은혜 있는 설교나 해 주고 또 이렇게 자꾸 말하고 하면은 그것을 뭐이라 하겠습니까? 이름을 뭐라고 하겠지? 한번 해 봐.

양도둑. 그래 가지고 양도둑, 나는 안 가도, 안 가도 그 교인이 와도 그 교인을 뺏기고 난 다음에는 양도둑이라는 그런 말 많이 들었어. 나를 양도둑이라 한 사람 여게 자기네들이 알 거라. ○○○권사님 때문에 내가 양도둑이란 말 들었고 ○○○권찰님 때문에 양도둑이란 말 들었어.

나는 오라 소리 안 하는데, 장 ‘그 교회서 충성하십시오’ 이라는데 자꾸 오니까 양을 뺏들어 양도둑이라 이랬는데 그거는 자기가 진리가 그래 지금 제 발로 오는 거야 어짤 수 없어. 제 발로 오는 거 못 오구로 금지할 권리가 없어요. 그거는 우리가 하나님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권리는 없어. 이러나 자기가 말해 가지고 그렇게 다른 식구를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그거는 하나님 앞에 크게 진노를 받습니다.

그거 내가 만일 다른 교회 교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이렇게 거기서 은혜 있는 말을 하고서 달콤하게 상대해 주고 이라니까 ‘우리 교회 목사는 재미가 없는데 이 목사님은 재미 있다.’ 이래 가지고 그 교인을 내게다 자꾸 마음을 끌어붙이고 하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소 안 기뻐하시겠소? 그라면 옳은 일입니까 틀린 일입니까? 그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틀린 일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녜, 손 놓읍시다.

그거나 이 구역장이 다른 구역 식구를 보고서 상관하고 그 식구에게 이렇게 감언이설로 이렇게 말하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또 다른 구역 식구는 그저 알면 인사하면 인사받는 정도이고 자기 맡은 식구에게 전심 전력 기울여서 길러라 이라니까, 우리 서부교회는 구역 관념이 세어 가지고서 저거 구역 식구나 알지 남의 식구는 알지 못한다고서, 나는 그게 밉상이라고, 그게 나는 맞지 않는다고, 그게 정치가 안 맞다는 거라.

정치 안 맞다는 그자들이 지금 교역자 나가고 난 다음에는 다 배나 더 합니다.

배나 더 해. 여기 ○○○사모님이 그때 활동이 많았는데 그 소리를 제일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에, 서부교회는 너무 구역 관념으로 제 구역 사람 아니면 뭐 인사도 안 하는데.’ 사랑 없다고 자꾸 이래 쌓고 이래 쌓았었는데 지금 뭐 사모님이 됐거든.

사모님이 됐는데 남해 교인이 남편하고 싸워 가지고서 거게서 너무 뚜드려 맞아서 여기 와 있었다 그말이오. 여기 와 있었는데, 그거 자꾸 나는 가라고 하지요. 이러나 그 사람이 그래 가 가지고서 안 되고 조금 여기 진리를 좀 더 배워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 그말이오.

‘조금 더 배워 가지고 나중에 가기는 간다. 가기는 가는데 좀 내비 둬라.’ 이래도 뭐 자기 교인 챙기느라고, 그거 그때 말썽이 많이 있고 이랬습니다. 여게서 못 가도록 붙드는 것처럼 말이지. 인제 목회를 해 보니까 자기 교인을 자기 목자가 자꾸 붙들고 이렇게 아껴야 되지 다른 교회와 이렇게 붙으면 그 교인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걸 깨달았다더라 그거야, 내가 말하는 것을.

지금도 여기 구역 제도 그거 밉상이라 하는 그 인간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것은 이 서부교회 구원을, 복음 운동을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운동 옳은 거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모든 게 안 됩니다. 모든 게 안 돼요. 고쳐야 돼지지.

그전에 여기 ○○○목사님이 이 구역 제도 관념하는 것을 많이 반대를 했습니다.

많이 반대를 해서 뭐 손해본 일들이 많았어. 여게서 손해본, 저 ○○○집사님이 그때 여게 거석해 쌓아면서 군에 갔다 와 처음으로 와 가지고 이란 사람들은 거게 붙어 가지고서 큰 손해봤어. 그라다가 그 뒤에 인제 회개를 하고 모두 달라졌지.

이러니까, 어짜든지 사람을 만나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다책임 못 지면 붙어 있는 데에 거기서 잘 살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 경제는 겨우 보리밥밖에는 못 먹을 수 있는 그런 경제인데 저거 집에 한번 다니러 오면 아주 고기 반찬에다가 아주 허연 쌀밥을 잘 해 가지고서 한 끼를 주면서 ‘야야 집에서는 보리밥뿐이지. 이 쌀밥 많이 먹어라.’ 따둑거리면 그 아이가 ‘우리 어머니보다 낫다. 우리집보다 낫다.’ 그렇게 하면 그만 그 아이를 기르는 그 집에서는 경제가 그래밖에는 안 되는데, 제가 평생 먹여 살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 버려 버리고 마는 거라.

이러니까,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무래도 이거는 저거 부모 경제에 맞게 하기 때문에, 혹 밥 먹으로 왔으면 저거 집보다도 더 험한 밥을 주면서 이래 거석하면은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고 우리 집이 제일 낫다.’ 이렇게 여겨야 거기 붙어 살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부흥사가 못 돼요.

부흥사가 다 끝이 좋지를 못합니다. 왜? 부흥사가 나중에는 껍데기가 돼 버리고 말아요. 처음에는 부흥사인데 나중에 가서 껍데기가 돼 가지고서 나중에 부흥사노릇 못 하고, 한창 은혜 있을 때에 부흥사노릇 하던 그 버르징이는 남아 있어서, 손 낼 때에 손 내고, 고함 지를 때 고함 지르고, 날뛸 때 날뛰고, 주먹 때릴 때 때리고 이래 하지마는 속에 은혜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은 별명을, 말하기를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무대의 배우다. 요새는 그 사람 부흥사가 배우가 됐대.’ 이렇게 말한다 그말이오.

그거 왜 그러냐? 그 부흥사는 어느 교회든지 그 교회 정도로서 그 교회에 은혜되고 유익될 것을 하지 안하고서 자기에게 인기 끌어붙이도록 할라 하는 그런 부흥사는 나중에 가서 저 망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은 오래 부흥사로 시키지를 아니합니다.

여기 저 ○○교회 ○○○목사 설교를 내가 들었는데 그분이 끝까지 부흥사로 있을 겁니다. ○○○목사 설교를 들었는데 어짜든지 그 교회 가면은 그 교회 정도에 맞춰서 그 교회가 잘 되도록 그렇게 해서 그 교역자에게 은혜를 받도록 하면서 그 교역자도 그 부흥사에서, 교역자는 먼저 앞서고 교인들은 그다음에 따라갈 수 있도록 그렇게 그 조절을 해서 설교하는 그걸 보고 내가 위대하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그렇게 지냈습니다.

제가 여게 있을 때에 ○○교회에서 저를 청년회 그때 설교하라고 청했는데 그 교회 목사가 설교를 잘 못합니다. 이렇는데 내가 거기 가 가지고서, 청한 사람 청년들은 목사 설교하는 것이 밉상이라서 이제 설교 잘하는, 내가 잘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그리 알고 있다 말이오. 백 목사를 청해서 한번 청년회 강사로 청해 가지고 한번 설교를 하면은 이제 목사를 납짝 눌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 목사 설교 나쁘다 이런 것을 알 거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서 나를 청했다 그말이오. 내가 또 그걸 안다 그말이오.

아니까, 내가 거게서 설교 한번 거석하는 날이면 교인들이 아이구 거기 가야 되겠다 이럴 터인데 내가 그 날 설교하러 가 가지고서 역부로 죽을 썼습니다.

죽을 썼으나 해로운 거는 말하지 안하고 저거들에게 별수 아니나 은혜되는 그 말을 하되 그들의 마음을 아주 사이다 맛으로 산뜻해 가지고서 미혹을 받도록 그렇게 하지 안하고 아주 죽쓴 설교를 하면서 그들이, 깊은 은혜를 끼치기는 끼치되 그렇게 아주 짝짝한 조미료 맛 같은 그런 맛이 없는 그런 설교를 했다 그말이오.

그 설교를 하고 나서 내가 그 뒤에 가만히 보니까 ‘백지 백 조사 백 조사 그래 쌓더니마는 내나 우리 목사나 별것 없구만.’ 그래 그 교회 교인들이 좀 안정이 됐습니다. 거게까지를 다 생각하고 이라는 것이지 설교하는 사람도 제 인기만 끌라고 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데 가든지 말을 하면은 다른 사람 유익하도록. 이래 가지고 구역장이 만일 만났으면, 남의 식구를 만났으면, 거짓말은 하면 안 되고. 그 사람의 구역장의 장점을 말하면서 ‘참 좋은 구역장을 만났다. 그분은 참 내가 볼 때에 이런데 존경을 한다. 이런 장점이 있다.’ 이러니까, 만나 보니까 그 사람이 소문에 그 구역장이 제일이라 했는데 만나 보니까 저거 구역장이 제일이라고 뭐 이런 소리를, 거짓말 안 하고 진실을 말하거든. 참으로 사람은 장단점이 다 있다 말이오.

장점을 이래 말하고 이라니까 당장에 ‘야, 아무것이 뭐라 해도 우리 구역장이 제일이라 하더라.’ 이래 가지고 그만 거기 들어붙어서 그런 줄 알고, 설교는 여기 들으니까 뭐 구역장이 별게 뭐 있겠소?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구원을 잘 이룹니다.

여게까지, 어째든지 자기 좋도록 자기 중심 위주를 버려 버리고 주님 기뻐하시도록 할라 하면 말이 바로 나오게 되고 또 그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유익되도록 할라 하면은 말이 저절로 바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제일 미워하느냐?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그래 다니며 만나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헐어서 그만 절단을 내고, 그 사람이 저거 목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우리 목사님 하는 말씀은 한 마디도 틀림이 없다. 우리 목사 같은 은혜 있는 목사 없다. 어찌됐던가 목사님 참 은혜 있다. 목사님 말은 한 마디도 어기면 안 돼. 곧 하나님 말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는 그 사람에게 만났을 때에, 그 사람이 ‘우리 목사님 설교 잘하지요’ 저거 목사 자랑하면은 거기서 지나가는 말로 그만 ‘참 복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렇게 은혜 있고 좋은 줄 어떻게 깨달았습니까? 참 복이 있습니다.’ 요 말 한 마디만 해 놨으면 그만 그 사람이 가서 그렇다고 죽자 살자 하고 목사 말을 듣고서 순종할라고 애를 쓸 것인데, 떡, 목사 쳐놓고 단점 없는 사람 없거든. 이제 거짓말로 단점을 만들어서도 하고 참 또 단점이 있다 말이오. ‘이런 일 처리하는 건 이걸 잘못 처리하는 거라. 그 목사님 이런 일 하면 이라면 안 되는데.’ 그 한 마디 가지고서 ‘나는 천사인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그 한 마디 가지고서 그 사람의 생명을 팍 꺾어 가지고서 죽여 놨다 말이오.

아른아른하게 자꾸 커 올라오는 새 순에게다 끓는 물을 들어 부으니까 팍 삶겨서 팍 시그러지지 않습니까? 요와 같은 말하는 그 사람을 주님이 그걸 볼 때 그냥 두겠습니까? 얼마나 분개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혀를 잘못 놀리는 사람은 연보 많이 하고 뭐 전도 많이 하고 충성 암만 많이 해도 혀 잘못 놀리는 그거 가지고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기 때문에 나중에 마지막으로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옹쳐대서 꺾어서 회개하기까지 망쳐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이걸 알아야 돼요.

어떤 사람 보면 입이 무거워서 말 안 해요. 말을 안 하고 뭐, 말 도무지 말 안 하는 사람인데, 말 안 하는데 가끔 가다 한 마디씩 하면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합니다. 그게 말 조심을 해서 ‘말 많이 하면 안 된다. 말 조심 해야 된다.’ 하면서도 자기 중심이라는 것을 빼내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 가다 말 한 마디 말이 나오면은 자기 중심의 말로서 남을 해치는 말 딱 하고 만다 말이오.

내가 그전에, 그래 죽었어요. 모두 죽었어요. 그 사람 내가 말 더러 했는데. ‘그 사람은 말 안 하는 거 같지마는 가끔 가다 말 하나를 하면은 다른 사람을 꼭 죽이는 악독이 많은 그런 말 한다.’ 사람의 말에서 사람을 더 알아야 됩니다. 말 들어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사람인 줄 알아야 되요. 그러기 때문에, “훼방치 아니하며” 다른 사람을 삣고 깎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오. 훼방 안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

이런데, 사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 돌아다니는데,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돈벌이 하는 거, 돌아다니면서 사교해 가지고서 사업에 성공하는 거 그 수입보다도 제가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믿음을 해치지 않는, 구원을 해치지 않는 말 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사람이라.

돌아다니며 잘못된 말하면 하나님이 딱 쳐 버려. 그거 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돌아다니니까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다리를 병신을 만들든지 뭐 어째 한번 차 사고를 내든지 어쨌든지 해 가지고서 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들어 버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피 흘려 사람을 구원하는 데 돌아다니면서 입술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그 믿음을 손해케 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사람은 그거 알 거라. ‘요렇게 사람을 구원할라고 했는데 그만 그 사람이 말 한 마디 해 가지고 절단냈다.’ 사람을 적극 구원하고자 하는 그 사람은 사람을 압니다.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말 한 마디 해 가지고서, 내가 천 마디 만 마디 해도 안 들었는데 그 사람이 말 한 마디 해 가지고 그 사람이 거게서 힘을 얻고 회개를 하고 고쳐서 구원 얻었어.’ 그런 사람 있고, 또, ‘그 사람 하나 그 돌이켜 가지고서 사람 만들어서 옳은 일을 할라고서 애를 얼마나 쓰고 막 사람이 녹아 났는데 그라고 나면 그게 가 가지고 말 한 마디 속싹 해 가지고서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이 말 한 마디로 가지고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는 그것을 마음아피 느껴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마음아피 느껴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마음아피 느껴본 사람. 본 사람이 손 안 들면 거짓말쟁이야. 사람을 고치는 사람은 다 그걸 느낍니다.

느껴서, 봅니다. ‘저 사람이 아무 때 그 사람을 만났으니까’ 어데 가면서 그만 십 리만 동행해도 고장납니다. 하루만 사귀어도 고장납니다. 한 번만 만나도 고장나요. 자, 그게 하나님 앞에 무슨 복을 받겠소? 예수님의 피로 구속했기 때문에 그게 될까 싶어서 아끼고 아끼지마는 하나님 앞에 복받을라 하면 감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버리고” 한번 따라합시다.생명을 사랑하고!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혀를 금하여!악한 말을 버리고!악한 말은 자기 중심의 말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요 몇 마디만 알면 사람 가치 알아요. 말하는 것 보면 다 알아요.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도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기인이면 기언이라’. 그 사람 말 못 들어도 ‘기인이면 기언이라' 그 사람이면 그말 하지 딴 말 할 것 없다. ‘기언이면 기인이라’. 그 말 한 사람이면 그 사람이지 별게 뭐 있느냐? 그 말 한 자라면 그 사람이지 뭐. 말과 사람이 하나라 그걸 가리켜서 안 믿는 사람이 통계를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복 주시는 사람이냐 하면은 여게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하기를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는 발,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는 발걸음 말이오.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는 발, 하나님이 귀하게 예쁘게 좋게 아름답게, 좋다 하는, 아름답다 말은 굉장히 아름다운 걸 말합니다, 여기 아름다운 것은.

좋은 걸 뭐 물건 볼 때에 아름다운 것 더 이상 더 좋은 것이, ‘그 물건 좋다’ 좋다 말과 괜찮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과 어느 말이 더 좋다 말이오? 아름답다 말이 제일 좋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사람의 발걸음을 제일 아름다운 발걸음으로 보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 사람이 어짜든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저 이 집 저 집 찾아 다니면서, 배가 고파도 찾아다니고 어두워져도 찾아 돌아다니고 또 그 사람 하나 구원하기 위해서 그저 아무 언변도 없지마는 자꾸 찾아가 가지고서 그저 이렇게 방문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그 발걸음을 제일 아름답게 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통계에 보십시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다 건강하고 장수합니다. 건강하고 장수하요.

건강하고 장수하는데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살리는 말 열흘 동안 하고 난 다음에 한 번 가 가지고 사람 죽이는 말을 딱 하면은 열흘 동안 한 것이 싹 뭉케져 버렸어. 알겠습니까? 좋은 일은 열 개 했으면 열 개 그대로 있다가서 나쁜 일을 한 개 했으면은 이제까지 좋은 일 한 것도 다 싹 무너져 버려.

사람이 스물 살 먹을 때까지 정직한 일 하고 깨끗하게 참 모범 학생으로 이렇게 해도 죄 하나 딱 지었으면 그 사람은 이래 묶여 가지고서 교도소에 가야 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서 발걸음을 걷는 거,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돌아다니는 전도하는 그 걸음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믿는 사람을 심방하는 것도 좋고, 그런데 또 안 믿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좋아요. 요새 내가 권사님들 좀, 묵은둥이 권찰님들은 말해요. 자꾸 심방 그거만 하지 마라 해. 심방 그거 한다고 해 사는 게 아니라. 심방 그거 한다고 사는 게 아나야. 심방한다고 그게 클 줄 압니까? 안 커.

이거 나무에 이런 가지가 하나 이래 척 뻗었습니다. 이 나무에 가지가 척 뻗었는데 이 가지가 크는 것은 어떻게 하면 큽니까? 이 가지가 크는 것은 어떻게 하면 큽니까? 저 ○선생 한번 대답해 봐. ○선생. 이 가지가 크는 거 어째야 크지? 저 봐, 암만 도시에서 똑똑해도 소용이 없어. 이거 어데 갔노? 촌에 나온 사람 어데 있노? 농사 짓는 사람. ○○○이 어데 있어? 이 가지가 크는 거는 어짜면 커지지? 저것도 나무를 못 길러 모르는가배. 어떻게 하면 커지지? 그래.

이 가지에게 자꾸 잔가지가 나야 돼요. 이 가지에게 자꾸 잔가지가 나면 이게 큽니다.

나무 둥치도 보면은 나무 둥치가 이래 있는데 그 둥치에 위에 가지가 많이 나서, 위에 가지가 많이 나 가지고서 잎이 많이 나면은 이 밑에 둥치가 커집니다. 위에 다 잘라서 가지가 없게 해 놓으면 이거는 암만 오래 가도 생명만 붙어 있지 크지는 안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연 계시로 보여 주는 거라.

이러니까, 자, 일등, 이등, 삼등, 사등, 오등, 안 믿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이래 해 봅시다. 반대하는 사람이면 이제,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하는 데에는 어째야 됩니까? 반대하는 사람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은 안 믿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 됩니다. 또 제일 하등으로 믿는 사람에게 힘을 줄라 하면 어째야 됩니까? 안 믿는 사람이 믿으면 그게 힘을 냅니다.

이러니까, 이게 일등입니다. 이걸 기를라거든 이걸 기르고, 이걸 기를라거든 이걸 기르고, 이걸 기를라거든 이걸 기르고, 이걸 기를라거든 이걸 기르고, 이걸 기를라면 어째야 됩니까? 안 믿는 걸 길러야 되고, 안 믿는 그걸 기를라 하면 반대하는 그걸 길러야 됩니다. 반대하는 그걸 예수 믿도록 자꾸 만들면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끝으로부터 대목이 자라지, 대목으로 인해서 끝이 자라는 것이지마는 그거는 원리고 끝으로 인해서 대목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믿는 사람만 심방하고 돌아다니지 말고 이제 호별 방문을 하고 안 믿는 사람 그런 거, 안 믿는 사람, 못 믿는 거, 믿다가 낙심한 거, 안 믿는 사람, 그런 거 전도하면은 자연히 잘 믿는 그거는 저절로 힘을 얻습니다.

저절로 힘 얻고 또 잘 믿는게 그래도 아니까 연보도 내고 하니까 보배라 말이오.

보배인데 잘못하면 그것 보고 ‘이거 또 거석해야 되겠다’ 그러면 그건 또 그만침 보배인만치 시간을 소모할라고 애를 써. 자꾸 만내면 저 혼자 권찰 독차지할라 하고서. 거게 이런 거 저런 거 얘기하다 보니까 나중에 할 거 다 못 해 버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이치를 똑 바로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복을 받을라 하면 멀리부터 생각해, ‘보자’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그 근원을 넓이 생각해 가지고서 ‘행이나 여게 내가 이로 인해서 복받는 내 복이 절단날라?’ 이래 가지고서 아주 삼가 조심해야 됩니다.

왔다고 좋아하지 말고 갔다고 싫어하지 말고, 왔다고만 돈이 왔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돈이 와도 주의하고 가도, 간 것은 문제가 없어도 온 것은 크게 조심이 됩니다. 위험성이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살펴서 하면은 자꾸 되어지는데 사람이 하나님이 복 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자꾸 망하게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말 한 마디에 사람을 죽이고 말 한 마디에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혀는 세계 같은 악이라. 윤회하는 만물을 지옥 불로 사룬다.” 그렇게 해독은 큰데 이 혀는 살리는 것은 얼마나 살리느냐? “네 혀 밑에서 과 꿀이 나온다” 젖과 꿀이 나오면 젖이 나오면 몇 사람이나 살립니까? 젖이 나오면 몇 사람이나 살리요? 천 명 살리요 만 명 살리요? 젖 나오는 건 한 사람 살리요. 젖 나오는 건 한 사람. 한 사람밖에 더 살립니까? 이러니까, 천 명 놓고서 설교하면은 그 천 명 그 사람이나 설교 듣지, 그 사람 한 사람 아니요? 들었으니까. 들은 사람만 그렇지 안 들은 사람은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나, 이 해독은 하나 들었으면 그 사람만 아니라 아주 급성 전염병과 같이 그 한 마디로 많은 사람을 죽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그걸 그렇다고 시비를 해서 멱잡이 할 것도 없어.

그러면 그 욕 얻어먹는 사람은 어째? 욕 얻어먹는 사람은 그 사람은 욕이 나오면은 자기에게 고칠 게 있는가 살펴서 빨리 고치는 사람이 지혜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하면은 ‘그 욕하는데 이거 때문에 욕 얻어먹는가?’ 욕 얻어먹는 그 일을 빨리 고칠라고 애를 쓰면은 그 사람이 내 선지자가 됐었기 때문에 내가 복 있는 사람이고, 또 욕 얻어먹을 일이 없다고 하면은 ‘내가 그런 일 없는데’ 할 게 아니라 욕 얻어먹을 일이 없다고 하면 가만히 있으면은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대개 믿음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나는 복이지마는 또 어느 단계 가면은, 그 사람이 욕을 자꾸 이래 하지마는 내야 뭐 가만히 있으면 결국은 내게 “거짓 걸로 핍박하거든 기뻐하라 하늘의 상이 크다” 이랬으니까 고것만 생각하고 ‘그 사람이 뭐 그렇게 했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복 있겠다’ 요렇게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또 나무라는 사람있다 말이오.

‘그러면 이놈아 네가 거짓 걸로 핍박받아 가만히 있으면 너만 복 있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누가 고쳐 주고?’ 또 이런 사람 있다 말이오. 그러면 또 할 수 없이 그때는 그 사람에게 어짤 수 없게, 위해서 기도하다가 이리이리 간간접으로 그 사람이 깨달을 수 있도록 또 이렇게 해서, 어짜든지 사람을 사랑함으로 구원코자 하는 고것이 주먹덩어리만 하면 복이 주먹덩어리만치 오고, 사람을 사랑함으로 구원할라 하는 것이 한 아름되면은 복이 한 아름 오고,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태산 같으면 그 사람에게 태산 같은 복이 오고, 사람을 해하는 것이 주먹덩이만치 있으면 주먹덩이만한 진노와 징계가 오고 자꾸 이런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고 섬겨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제일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는 발걸음은 어떤 발걸음입니까? 어떤 발걸음이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발걸음. 그러니까 권찰님들도 가 가지고서, 가거들랑, 심방 가면은 ‘저 집에는 심방 가면은 요 말씀 한 마디 전해야 되겠다.’ 그 말씀 한 마디 딱 전하고, 제 말로 전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봐라 설교 들을 때 요렇치 않더냐? 요렇지?’ 그 말씀 한 마디 딱 전하고는 또 와 버려요. 앉아서 이야기 해 봤자 유익 못 줘요. 앉아서 이야기 해 봤자 유익 못 줍니다.

하나님 말씀 딱 한 마디 말하면 그 사람이 그때는, 좀 있으라 하니까 가 버리니까 재미가 없지마는 고 말씀 딱 듣고 자기 혼자 이래 생각하면 그 말씀이 들어서 속에 역사해 가지고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일이 없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조금 믿어 보면 알 거라. ‘너는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구역장이 말하거들랑은 다 고거 들어야 됩니다. 다 앞에, 어린 구역장은 몰라도 그래도 큰 구역장들은 다 인간 경험을 많이 했어.

그 구역장들도 빨리 자랄 수 있어요. 구역장이 빨리 자랄라거들랑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거 뽑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하면 빨리 자라고 자꾸 지혜가 늘어서, 사람 지도를 하면은 처음에는 반대하지마는 뒤에 겪어 보니까 그대로 맞거든.

구역장 권위가 어디 있습니까, 목사 권위가? 말하는데 지내보내 놓고 뒤에 겪어 보니까 그대로 맞거든. 이라면 남권찰이나 여권찰이나 다 권위가 섭니다.

‘아이고, 우리 권찰님 말하는 대로 다 한다. 권찰님 말하는 꼭 고대로 맞더라’.

이래야 되지 않습니까? 되나 안 되나 말로 씨부렁거기야 누가 못 씨부렁거려? 그러나, 그에게 지도할 때는 올바르게, 뒤에 가서, 지도 잘하고 못한 것은 미래가 현재가 되고 말고 현재가 과거되고 마니까 현재될 때는 몰라도 과거가 되고 나면 환하게 다 알아요. ‘아, 그 지도가 틀렸더라.’ 이래서 어떤 사람 구역 바꿀라고 애를 쓰는 것을, 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신고함에 써 넣은 걸 내가 안 바꿔 줬습니다. 내가 안 바꿔 주고, 말해서 ‘안 된다. 너는 그 구역에 있어야 되지 네가 그 구역에 안 있으면은, 그 구역에 네가 꾸중 듣는 것이 싫어서, 꾸중 듣는 거 싫은데 그 구역에 꾸중 듣지 안하면 너는 몽둥이로 가지고서 너는 뚜드려 맞아서 너는 시집살이도 하지 못하고 이혼해야 된다. 꾸중 듣는 그게 이혼과 몽둥이를 방어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면서, 지금은 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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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참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1985. 9. 4.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6 참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1985. 9. 3.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05 참사랑/ 사도행전 20장 29절-32절/ 1985. 8.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104 참사랑과 그 역사/ 요한일서 4장 7절-21절/ 1982. 4. 16.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03 참사랑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장 3절-25절/ 1985. 11.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102 참사랑의 의의/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1982. 3. 19.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01 참선 중의 회개/ 에베소서 1장 5절-14절/ 1985. 7. 16.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 참소하는 혀/ 로마서 10장 13절-15절/ 1986. 7. 14.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99 참자랑과 어리석은 자랑/ 고린도후서 12장 5절/ 1981. 12. 1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9
98 참제사-믿음이 더해지는 방편/ 고린도전서 4장 2절/ 1981. 7. 22.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97 창기 신앙/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988. 10. 28. 금새벽 선지자 2015.12.29
96 책망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13절/ 1983. 9.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95 책망과 징계/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3. 9. 8. 목새벽 선지자 2015.12.29
94 처음 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9.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93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6.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92 처음 행위와 그 효력/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91 처음 행위와 순서/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90 처음사랑을 7가지에서 찾으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7. 9. 28.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9 처음사랑-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5절/ 1987. 10. 5.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8 처음사랑-처음행위/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