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담의 자손


선지자선교회 1988년 6월 28일 화새

 

본문 : 고전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땅에 속한 자는 첫째 아담을 두고 말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둘째 아담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자에게 속한 것은 땅에 속한 자와 꼭 같은 형상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이와같이 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도 하늘에 속한 자와 꼭 같은  형상을 가집니다.

 우리가 아담을 보지 못했으나 아담과 오늘 우리가 예수님 알기 전 믿기 전  사람과 꼭 같습니다. 아담은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습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와  꼭 같습니다. 그와같이 이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에게 속한 자가  됐기 때문에 믿는 자는 예수님과 꼭 같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또 사람이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신성을  가졌다 이라고 사람을 가리켜서 인성을 가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인데 신성과 인성이 둘이 한테 합해져서 예수님된 것  아닙니다.

 마치 돌 두 개를 한테다가 주 모아 놓은 거와같이 그렇게 신성과 인성이 합하여  하나된 것 아닙니다. 또 마치 기계를 만들 때에 이 부속품과 저 부속품을 함께  조립을 해 가지고 어떤 제품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렇게 조립을 해 가지고 하나된 것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마치 붉은 물 하고 푸른 물 하고 두물을 한테  자꾸 대고 이렇게 저으면 두 물이 합해서 혼합색이 됩니다. 그와같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돼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큰 회의라면 니케야 회의, 콘스탄틴노풀 회의, 또 에베소 회의,  칼세돈 회의 이렇게 큰 회의가 있는데 그 회마다 예수님의 신성을 바로 믿지  안한 데서 이단으로 정죄했고 인성을 바로 믿지 안한데서 정죄했고 또  신인양성일위된 것을 바로 믿지 못함으로 정죄했고 신인양성일위로 믿는 것을  정통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정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이 교리라는 것은 조금 틀림으로 완전한 이단이 됩니다.

지금은 조금 틀렸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점점 틀려서 이단이 됩니다.

 그러기에, 비유컨대 지남침은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지남침인데 정남을  가리켰으면 백 리 가나 천 리 가나 만 리 가나 언제든지 정남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정남을 가리킨 것이 조금 삐뚤어졌으면 지금은 조금 삐뚤어졌지만 조금  더 나가면 많이 삐뚤어지고 한 발 나가면 한 발 나간 것 만치 그만치, 여게서 한  발을 가면 조금 삐뚤어진 게 한발을 지나가면 더 많이 삐뚤어지고 십 리를  지나가면 굉장히 많이 삐뚤어지고 백 리를 지나가면 굉장히 많이 그 바른 데에서  삐뚤어지는거와 같이 이렇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그 사람 예수 믿는 이치가, 교리, 믿는 이치, 믿는 모든  조건들 그건 것이 조금 삐뚤어진 것이 십 년 후면 굉장히 삐뚤어집니다. 백 년  후면 굉장히 삐뚤어집니다.

 이래서, 기독교가 오늘 참 수많은 갈래길로 이렇게 갈라진 이유는 처음에는 다  정통이었지만 그게 조금씩 잘못된 그것이 세월이 지나가니까 차차 차차 잘못돼  가지고 많이 잘못돼서 그렇게 삐뚤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 일시  사람들에게 욕얻어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온 천하 사람이다 인정한다고  해도 하나님 한 분이 부인하면 헛일이고 또 온 천하 사람이 부인한다고 해도  하나님 한 분에게 인정받으면 됩니다.

 그분에게 인정을 받느냐 그분에게 정죄를 받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입도 중하고 눈도  중하고 귀도 중하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이 더 무한히 완전하시고 크신 분이기  때문에 항상 그분에게 뭐 삐뚤어진게 있나 없나 그분을 향하여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사람은 삐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 초라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거 가지고 있으면어찌 됩니까? 자꾸  있으면 더 삐뚤어지게 자꾸 되는데?  삐뚤어진 줄 알고 자기 고집, 또 자기 자존심, 자기 욕심, 자기 주관,자기 때문에  삐뚤어진 줄 알지만 자기 때문에 그 삐뚤어진 것을 고치지 안하고 옳다고 주장을  하고 옳은 것을 자기 때문에 옳은 줄 알지만 옳다고 하지 안하고 찬성하지  안하고 따라가지 안하는 자는 그자는 벌써 자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에게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옛날 예수님 당시에 구약 그 성도들이, 제사장들은 구약에 있는 모든 하나님  섬기는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고 서기관들은 성경을 책임맡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그때에 열심 있는 교파가 바리새 교파요 또 하나님을 믿지만  하늘나라보다 세상을 중하게 여기는 그자들을 가리켜서 사두개 교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선생님이라는 대우를 받고 오늘날 교역자처럼 말이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가르친 것이 저희들의 가르친 것과 틀린 것을 다  알았습니다. 다 알았지만 그때 예수님이 가르친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 저희들이  권위가 깨어지고 지위가 인정이 다 깨어지고 이라니까 옳은 줄 알고도 자기  때문에 부인을 했던 것입니다. 다 자기 때문에 부인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삼 일만에 부활하신다고 했는데 삼 일만에 돌무덤 속에 장례해서  그 안에 있다가 삼 일만에 부활했을 때에 그때에 천사가 와서 옹위하고 많은  군대들이 지키다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과 천사들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걸  보고 기절하다시피 기절해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깨어나 가지고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빨리 가서 말하기를 과연 예수님이 살아났다 하는 그 사실을  증거하니까,  그들이 그때에 예수님이 살아났으니까 살아난 줄 알았으니 구주라는걸 확실히  알지만 예수님이 과연 참 메시야다 구주다 말하면 구주를 저들이 정죄해서  죽이도록 지도했으니까 저희들이 돌에 맞아 죽을 터이니까 맞아 죽지 않기  위해서 돈을 주면서 시체를 도적해갔다고 하고 살아났다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기에, 그게 다 뭐이냐? 자기를 위하고는 예수님을 위하지 못합니다. 거짓된  잘못된 자기이기 때문에 잘못된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옳은 주님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연히 그릇됐지만 자기 때문에 옳은 것을 부인하는 것을 우리가 보면 압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교파도 그걸 알고 개인도 알고 그거 압니다.

 저거는 반드시 저거는 틀림없이 이게 옳은데 제 고집통으로 제 자존심으로 또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은 그것을 그것이 깨어질 터이니까 그것을 없애지  않기 위해서 자기와 자기 행위, 자기 권위, 자기 대우, 자기 지위, 자기에게 모든  사람이 딿는 사람들 그걸 위해서 틀린 줄 알면서도 그걸 옳다고 역설을 하고  나가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그게 자살 행위입니다. 그게 막바로 자기 대가리를 자기가 돌로 찍는 것이요  자기 몸을 자기가 칼로 찌르는 것이요 자기 목을 자기가 베는 것입니다. 그게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옳은 줄 알고도 그것을 찬성하지 안하고 삐뚤어진 것을  따라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큰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땅에 속한 자의 형체를 우리가  가진 것처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가진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첫째 아담과 꼭 같습니다. 눈썹도 같고 눈도  같고 코도 같고 입도 같고 귀도 같고 수족도 같고 꼭 같습니다. 꼭 같이 생긴  거와같이 우리가 중생돼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과 꼭 같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것이 어떻게 같으냐?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루어서 신인양성일위가 됐는데 우리도 예수님과 꼭 같이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합해진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합해지기를 둘을 이렇게 붙여서 합한 거와같이  이렇게 합해진 게 아니고 또 주 한테 탄 거와같이 그런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신성의 그 신격과 인성의 인격이 그 두 인격이 합한 게 아니라 이 양성이 한  인격이 됐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일위입니다.

 우리는 둘째 아담 예수님과 같이 되는데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된거와 같이  그렇게는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이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 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룬 것은 예수님은 근본 죄가  없으시고 자연인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잉태해서 다만 동정녀 마리아의 이 육을  빌린 것뿐이지 그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자가 아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분이십니다.

 이래서, 신인양성일위로 이렇게 왔지만 우리는 어떻게 같이 되느냐? 그 신성,  삼위일체의 신성인 그 하나님과 내라는 사람이 둘이 나눌 수 없도록 그렇게  결합됨이 아니고 나눌 수 있도록 둘을 돌 두개를 한테 붙여 놓은 것과 같이,  나무쪼가리 두 쪽을 한테 붙여 놓은 것과 같이 그렇게 신성과 인성이 이렇게  결합을 해 가지고 우리는 하나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이렇게 있으나  언제든지 신성은 신성으로 인성은 인성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우리 사람은  사람으로 이렇게 영원히 가도 따로 있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또 신성과 인성이 언제든지 합해서 행동하는데 신성에게 인성이 복종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의의 행위를 합니다.

 예수님은 신성에게 인성이 복종해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루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한 격위를 이룬 이것은 사람의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과 이  유한한 피조물과의 한 격위 이룬 그것은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뿐이지 어떻게 그 격위를 이루었느냐 하는 그 과정은 우리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이신 그 인격의 형상을 가진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인 양성 일의 한 뜻, 일행, 또 일락, 그러면 이거는 자체가 하나된 것  하니고, 예수님은 자체가 하나됐고 우리는 자체가 하나된 것 아니고 움직이는  역사가 하나됐습니다. 움직이는 역사가.

 그러면, 예수님의 행동과 우리 행동이 바로 된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이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회로애락과 우리 희로애락이 하나입니다. 왜?  그분에게 피동되어서 그분으로 인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의 그 두뇌를 가진 거와같이 우리들도 꼭 같은 두뇌를  가졌습니다. 첫째 아담이 이성 판단이라든지 의지라든지 감정이라든지  지정의라든지 하는 그런 것을 꼭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예수님과 꼭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지의 지혜를 가졌는데 우리도 전지의 지혜를 가졌고 예수님이 전능  능력을 가졌는데 우리도 전능의 능력을 가졌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랑을 가졌는데  우리도 완전한 사랑을 가졌고 예수님이 완전한 진실을 가졌는데 우리도 완전한  진실을 가졌습니다.

 가졌는데, 그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가 첫째 아담의 그 형체와 똑  같은 형체, 그거 뭐입니까? 그거는 물질입니다. 물질로 된 것이 꼭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어. 첫째 아담의 형상과 우리의 형상이 꼭 같습니다. 아버지의 형상과  내 형상이 같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형상과 아버지 형상과 같았고 할아버지  형상은 증조부의 또 형상과 같고 증조부는 고조부의 형상과 같고 그라면 그  다음에는 오대조는 육대조의 형상과 꼭 같고 꼭 같이 그거 똑 같습니다.

 꼭 같은 거와같이 요걸 우리가, 꼭 같은 거와 같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도 꼭  같다 하는 요걸 우리가 강하게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은  첫째 아담의 형상은 물질이요 둘째 아담의 형상은 하늘에 속혔기 때문에  영물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우리가 같이 됐습니다. 그라면 신령한 것입니다. 그  혈육으로 같이 됐는데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인격성으로 같습니다. 속성으로  같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속성으로. 속성으로 같습니다.

 처음에는 팔다리가 같고, 첫째 아담과는 팔과 눈과 이거 썩는 것이 같았고, 썩는  것이 같았고 둘째 아담과 같은 것은 썩지 안하는 영원한 것이 같았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같고 지혜가 같고 사랑이 같고 진실이 같고 거룩이 같고 의가  같고 주권이 같고 온전이 같고 불변이 같고 영원이 같고 이거 다 같은 것이고  인격성인데, 요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꼭 같은 우리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땅에 속한 형상으로서 꼭 같았고 우리는  이래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꼭 같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 말은 이것은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과 꼭 같은 속성을 우리가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영은 꼭 같은 속성을  가졌는데 우리 이 심신은 같은 속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속성을  가질라고 우리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속성이 된 것은 영생이 됐고 같은 속성이 안 된 것은 영생이 안  됐으니 같은 속성되는 것은 그 자기 현실 생활에서 같은 속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진 것처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랬는데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은 내나 물질의 요소로서  입었습니다. 물질의. 땅에 속한 자, 흙에 속했으니까 이게 땅에 속한 자라 말인데  표현하기를 흙에 속한 자라 요래 흙으로 말한 것은 내나 물질을 똑똑히 우리가  알기 위해서 말한 것입니다.

 물질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은 어떤 그 요소의 형상입니까? 신령한  것입니까 물질의 것입니까? 물질의 것을 입었습니다. 또 하늘에 속한 자는 신령한  자인데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은 우리는 신령한 것으로 입었습니다.

 입었는데, 그라면 첫째 아담과 우리 그 자손이 꼭 같이 생긴 거와같이 둘째  아담과 우리와의 꼭 같이 생겼는데 첫째 아담과 우리 육체가 같이 생긴 것과  둘째 아담과 우리가 같이 생긴 것이 생겨지는 그 과정, 생겨지는 방법이  어떠합니까? 생겨지는 방법이 어떤가 그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내가 한 말을  알아들은 말이 되겠는데 방편이 어떠합니까? 첫째 아담에 속한 자손들이 그  형상을 입은 것이 그 방편은, 첫째 아담의 자손된 것이 형상 가진 것이 이제 둘째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 둘째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의 형상을 입은 것과 다른 점이 어떠합니까? 다른 점이 어떻습니까?  첫째 아담과 우리의 그 형상을 입은 것은 그와 꼭 같은 분자가 나와가지고, 그와  같은 꼭 분자가 나와 가지고, 이건 것은 여러분들이 알다 보니까 자꾸 말하다  보니 나와 그렇지 이것은 세계 조직 신학에 나온 게 아닌 것입니다. 이게 지금  새로운, 그 인론에 대해서 새로 나은 것입니다. 그 인론에 대해서 우리 조직  신학에는 이런 것이 기록이 돼야 될 터인데 거게는 분자로 그렇게 분식으로  됐습니다. 분식으로.

 첫째 아담에게서 먼저 나온 사람이 누구냐? 첫째 아담의 형상대로 그대로 꼭 돼  나온 자 중에 제일 일호가 누구냐 하면 내나 하와입니다. 첫째 아담과 꼭 같은  인간이 생겨 나왔으니 처음 생겨나온 인간이 하와라 그말이오. 남녀 이성만  다르지 꼭 같은 사람이라.

 나왔는데 그것은 어떻게 나왔느냐? 거게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나왔습니다. 쪼갱이 갈빗대 한 개를 빼내 가지고 나와 가지고 그것이 하와가  됐습니다. 그와 같은 식으로서 그다음에 오늘까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  나왔지만 꼭 그와 같은 식으로 생겨 나왔습니다. 형상을 입은 방법이 말이오.

형상을 입은 방법이 첫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을 첫째  아담의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아담과 같이 되고 그게 커서 아담과 같이  됐고 또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그와 같이 됐고 이렇게 그 자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됐습니다. 요거 말이요, OOO. 졸면 몰라. 헛일이라. 네가 뭐, 네가  그래 가지고 뭐 교리와 신조를 만들라 하고 있어? 에이고.

 그래, 첫째 아담에게 속한 형상을 가진 것은 첫째 아담의 분자가, 첫째 아담의  쪼갱이를 떼내 가지고 와서 그 쪼갱이가 컸습니다. 그 쪼갱이가 커져서 됐어.

첫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과 같은 그 형상을 가진 것은 첫째 아담에게서  쪼갱이를 떼내 가지고 그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이것이 커서 첫째 아담과  꼭 같은, 뭐 이목구비 수족도 같고 코도 같고 내장도 같고 외부도 같고 꼭 같은  자가 돼졌어.

 하와야 갈빗대 빼내 가지고 그랬지만 오늘 우리들이 왜 이런가? 아니야. 그때는  처음에는 아담 하나뿐이기 때문에 아담 하나에게서 갈라져 내 가지고 낳아야  되겠고 그 후에는 낳아 가지고서, 남자 여자가 됐기 때문에 남자에게서 갈라져  나와 가지고 돼야 되겠고 여자에게서 갈라져 나와야 되기 때문에 남녀의 둘에서  갈라져 나와 가지고 분자가 나와 가지고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그 쪼갱이와 아버지의 쪼갱이와 그 두 쪼갱이가 합해 나와가지고 그  사람이 돼 가지고 그것이 자라서 이제 사람이 된 것이 그것입니다. 전부 세밀히  말하면 다 분식 방편으로 됐습니다. 첫째 아담의 형상을 가진 그 모든 자손들은  다 분식, 분식이라 말은 번식이라는 식(殖)자 하고 나눌 분(分)자 하고 그  쪼갱이가 나눠 가지고 이렇게 됐다 그거요. 분식 방편으로 그 형상을 입게  됐습니다.

 둘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들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은 첫째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가진 것처럼 둘째 아담의 형상을 가진 것도같은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형상을 그 자손들이 가질 때에는 무슨 방편으로 됐습니까? 무슨 방편으로  됐어? 양성원 학생들. 무슨 방편으로 됐어? 저 무슨 조사지? 포항에 가 있는.

분식으로 됐어. 분식으로. 저 OOO알겠어요? 이해가 돼요?  분식으로 됐는데 둘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이 그 형상을 가진 것은 첫째  아담에게 난 자들이 분식으로 된 거와 같이 그 형상을 입을 때에 분식으로  됐습니까 우리는 무슨 식으로 됐습니까? 분식으로 된 것 아닙니다. 무슨 식으로  됐느냐? 믿음으로 됐어.

 믿음으로 됐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거기에 연합해 가지고, 연합해서, 연합해서  거기서 피동으로 된 것이고 연결로 거기서 연결이 돼 가지고 된 것입니다. 연결된  그 연결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연결을 믿음이라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주관에 있는 것이지 객관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며 인정하며 원하며 그대로 순종하여 거게 따라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되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의 행위라 그랍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가 그 형상을 가진 것은 그에게 속하여 됐고  결합으로 됐고 연합으로 됐고 연결로 됐고 거게 피동으로 됐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아담과 우리와의 하나된 그 방편과 둘째 아담과 우리와 하나된  형상을 가진 그 방편이 다른 점이 뭐입니까 다른 점이 뭐입니까? 첫째 아담은  뭘로 됐고 둘째 아담은 뭘로 됐습니까? 저 OOO권찰. 그래. 첫째 거는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서.

 그라면 우리에게 첫째 아담의 본질과 본 요소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떨어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떨어질 수, 나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내나 그 쪼갱이가 나와 가지고 이렇기 때문에 나와 가지고 그 쪼갱이가 커  가지고 그런 거라.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와의 하나된 그 형상 입은 것은 믿음으로 결합으로 됐기  때문에 억만 년 지내도 떨어지면 그만이라. 알겠습니까? 이게 달라. 언제든지  붙어 있음으로서만 되지 떨어지면 달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피조물  요소요 그분은 항상 자존자 하나님의 요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거게 연결됨으로서 거게 피동됨으로 살았고  피동됨으로 산 행위가 되는 것이지 억만 년 가도 우리가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혼합이 되든지 일위가 되든지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돼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화돼 하나님되는 것 아니오.

언제나 억만 년 가도 우리는 피조물이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것을 우리가  보수하지 안하면 실패합니다.

 이래서, 이 과거에도 많지만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되니까 이렇게  혼합으로 하나됐다 또 분자로 하나됐다 이렇게 하는 이 이단이 지금도 있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된 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데 대해서 그런 설이 있습니다. 유출설이라  하는 설이 있습니다. 유출설이라 말은 거기서 떨어져 나와가지고 됐다는 그  유출설이 있는데 유출설은 이단입니다. 우리는 유출설이 아니고 믿음으로  결합설입니다. 결합설이 맞고 연합설이 맞습니다. 연합으로 하나됐고 결합으로  하나됐지 우리가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변화되는 것 아닙니다.

 변화되는 것 아니고 언제든지 변화된 것은 결합으로 변화됐기 때문에 예를 들면  억만 년 변화돼 가지고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하나노릇 했다가서도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떨어지지 안할 구원으로 됐지만 논리적으로 말하면 떨어지면  그만이라.

 그러니까 그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혼합된 것도 아니고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가 된 것도 아니고 인적 요소가 신적 요소가 된 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언제든지 결합으로 이래 행동만 하나되고서 희로애락만 같아. 행동만 하나돼.

영광만 같아.

 자,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이다음에 또 말하겠으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가르칠  때에 배워야 될 터인데, 나는 가르치기는 실은 이거 장년반 가르치는 것보다도  유년반을 가르치고 싶어요. 유년반을 가르치고 싶은데 왜 유년반을 가르치지  안하고 장년반을 가르치느냐? 장년반 안 가르치면 유년반을 가르칠 수가 없어.

장년반을 안 가르치면 유년반을 가르칠 수 있는 밥이 안 나오고 비용이 안 나와,  쉽게 말해서.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출물꾼되기 쉽다 그말이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는데, 인도해 냈는데 사십 년 동안 있으면서  애굽에서 나온 거 그거 다 죽어 버렸는데 그거 다 죽여 버리지 뭐할라고  냅뒀느냐? 그게 출물꾼이라. 애굽에서 나왔는데 나와 가지고 낳은 것도 있고  애굽에서 빽빽 우는 쪼맨한 그건 거 데리고 나오고, 애굽 물이 안 든 것 말이오.

안 든 거 나온 그런 거, 그건 것을 사십년 동안 에미 애비가 안 기르면 안 돼.

에미 애비가 안 기르기 때문에 에미 애비는 기르도록 내비 뒀어. 에미 애비는  길러 가지고 그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광야에서 망했습니까? 광야에서  다 망해 버렸어.

 장년반들은 이거 주일학생들 이거 기르는 데 이게 자라지만 그저 이거 안  그라면 연보 안 나오면 예배당도 없지 가르칠 장소도 없지 연보 안 나오면 백  목사 가르칠라 해도 또 밥을 못 먹으니까 부득이 내가 일해야 되겠지 가르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은, 따라합시다. 장년반은 출물꾼! 장년반은 출물꾼! 장년반은  이용물! 안 돼야 돼. 따라해. 안 돼야 돼! 뭐가 안 돼야 돼요? (출물꾼) 또 뭐 안  돼야 돼? 이용물 안 돼야 돼.

 이러니까, 이제 밑에 이 주일학생들은 딱딱 알지만 장년반들은 이거 그 믿지  않기 때문에 못 알아 들어요. 이러니까 못 알아 들으니까 이거 오늘 새벽에도  요거밖에 안 나왔지.

 저거가 뭐가 보배라? 장관 아내도 소용없어. 재벌가의 아내도 소용 없고 재벌가  남편 재벌가 그자도 소용없어. 노아 때 홍수 심판에 뭣이 소용 있었어요? 재벌이  소용 있었어요? 정권이 소용 있었어? 공연히 그런데 조그매 뭐 조그매 정권만  가지면 그만 그렇다 그거요. 돈만 좀 가져도. 이 어리석은 자야. 그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교회도 그런 걸 가치로 봐 줘. 그런 거 가치로 봐 주면 안 돼. 교회서, 만물관  인생 가치관은 성경대로 모두 봐야 돼요. 성경대로 모든 걸 봐야 되지 성경을  떠나서 인간들 생각대로 그와 같이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다 못쓰는 거라.

 그 새벽기도 봐. 뭐 몇 명 나왔어? 오늘 아침 나온 사람 몇 명 안돼, 지금. 이거  몇 명 돼요? OOO집사. 한 오백 오십밖에 안 되니까 이거 뭐이요? 오백 오십  되니 약 사천 명은 다 뭣할 건고? 어리석어. 새벽기도 어디서 하든지 새벽기도를  해야 되지, 새벽기도 한다 말은 그러면 여기 안 나오면 가까운 교회, 가까운  교회면 쑥물 먹어. 또 거기가면 더 거석해. 가까운 교회 나가는 것보다는  아무데도 안 나가는 게 낫고 아무데도 안 나가는 것보다는 제가 하다 못해 안  되면 남의 셋방에 조그만 방이 있으면 온 식구가 다 거기서 있으면 마당이  없으면 웃목에도 앉아 가지고, 방 한 칸밖에 없으니까 뭐 웃목에나 앉지  어짤거라? 웃목에나 앉아 가지고, 웃목에 못 앉으면 거기서 그냥 누운 그자리  옆으로 엎드려 가지고라도 이 새벽 제단을 쌓아야 돼.

 평생 처음 만나는 이 날을 주님하고 의논해 가지고 결합하지 안하고 거게  은혜를 받지 안하고 제까짓 게 어떻게 살아나갈 터인데? 이 밖에는 뭐 우리를  삼킬라 하는 원수가 뭐와 같이 둘러 있다 했소? 뭐와 같이? 뭐와 같이? 우는?  그래 우는 사자와 같이 둘러싸 있어 이런데 제까짓 게 하나님한테 붙어 가지고  의논 안 하고 살아 나갈 수가 있어요?   '내가 장로인데' 장로는 새벽기도 안 나오는 그 권세 받은 게 장로인가? '나는  부자인데' 부자는 제까짓 게 무슨 제것인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 많이  받은 사람은 그라면 새벽기도 안 나와도 되는구만.

 다 모두 마귀에게 끌려서 깨닫지 못하고 꺼꾸로 생각하고 있어. 권사님들이나  권찰님들은 좀 권면해 가지고 새벽으로 자꾸 전화로 좀 심방해요. 암만 잘나도  그까짓 거 소용 없어. 딱 끊어 버리면 그만 팩 거려. 막 이북을 겁을 내 하지만  하나님께서 김일성 그 지금 이 시간이라도 그만 딱 끝내 버리면 코르록 팩 버려.

김정일이도. 그 사람도 그래.

 그분이 생명에 주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분이 크지 뭣이 커? 뭐이 어렵고 뭐가  커? 소련에는 뭐라 하더라? 고르바초프가? 그 사람도 힘 없어. 주님이 요래  버리면 다 돼. 무슨 힘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분이 안심하라 하면 안심할 수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30분 기도 잃지 말아요. 새벽기도 나오라 해요. 이거 지금 예수 믿는  이치를 전연히 모르는데 모르고 어찌 믿소? 다 도박 신앙 가지지 마. 노름하는  거, 노름하는 신앙.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첫째 아담의 자손/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 1988. 6. 28.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66 첫째아담 둘째아담/ 골로새서 3장 1절-6절/ 1989. 5. 11. 목전집회 선지자 2015.12.29
65 청종/ 신명기 28장 1절-6절/ 1985. 1. 2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9
64 청종의 권위/ 디모데후서 4장 14절-18절/ 1985. 1. 26.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63 청종의 권위/ 사무엘상 15장 22절-23절/ 1985. 2. 22. 금저녁 선지자 2015.12.29
62 청종의 권위/ 사무엘상 15장 22절-23절/ 1985. 3. 3.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9
61 청종의 권위/ 사무엘상 15장 22절-23절/ 1985. 2. 20. 수저녁 선지자 2015.12.29
60 청종의 실행/ 히브리서 11장 1절-2절/ 1985. 3. 2.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59 청종-전도사인허/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1985. 2. 27. 수저녁 선지자 2015.12.29
58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1982. 6. 1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57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1984. 4. 17.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56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10절/ 1981. 4. 8. 수저녁 선지자 2015.12.29
55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2절/ 1982. 6. 12.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54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9절-13절/ 1988. 2. 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9
53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1982. 6. 8.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52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0절/ 1984. 4. 12. 목새벽 선지자 2015.12.29
51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0절/ 1984. 4. 10.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50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절-10절/ 1988. 2. 7.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49 청지기 비유와 성경 존엄성/ 누가복음 16장 1절/ 1982. 6. 9.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48 청지기 직책과 사직동 교회 문제/ 마태복음 5장 38절-42절/ 1988. 4. 13. 수새벽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