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종의 권위

 

1985. 2. 20. 수야

 

본문 : 삼상 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청종이라 말은 들을 청(聽)자, 또 좇을 종(從)자 두 자로서 청종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죽은 영을 살리시고 우리 영 안에 계십니다. 또, 잘하면 우리  마음과 몸 안에도 계십니다. 이래서, 우리 영육 안에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내주해  계시고 또 우리밖에 계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안팎으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모시고 사는 이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신 것을 아는 것만치 그 사람은 이 주님의,  자기가 모시고 있는 이 주님의 비위에 거슬리지 안할라고 노력을 할 것이고, 또  모시고 있는 이 주님의 성품에 맞도록 할라고 애를 쓸 것이고, 또 모시고 있는  이분에게 거슬리지 안할라고 또 애를 쓰게 됩니다.

 모시고 있는 이분의 혹 뜻에 대립이 될까, 의사에 대립이 될까, 혹 내가 하는  일로서 내가 내 일에 모시고 있는 이분에게 혹 욕이 돌아갈까, 또 수치가 돌아갈까,  내가 잘못해 가지고 모시고 있는 이분을 다른 사람에게 낯 뜨거운 꼴을 보게 할까  하는 그 마음이 있는 것은 다 자기 위에 어떤 종류로 자기가 모시고 있든지 모시고  있는 그분이 자기 보기에 시시하게 보이든지 '모신 그까짓 거야 오늘이라도 치워  버리면 그만이지' 이렇게 자기가 거기서 참 아무런 소망이나 또 거기 뭐 유익을 볼  무슨 덕이나 어떠한 그 존귀하게 되는 것이나 그런 유익의 소망이 없으면 자기가  모시고 있는 그 사람을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기가 모시고 있는 그분이  아주 무능한 자이면 그저 얼마 동안 형식으로 그래 가지고 있지 거기 대해서 그렇게  존경하고 충성하는 그런 충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된 사람은 처음에 모실 때에 모르고 모셨는데 아무 것도 아니고  유익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참 주인이며 사장이며 상관이며 왕이며 수상  대통령이며 장관이며 무엇이라 할지라도 실력이 없고 유익이 없다 할지라도 사람 된  사람은 일단 자기가 그런 자리에 인연이 있어서 들어섰으면 그 자리를 사표 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 중심으로 질서를 지키고 모든 조직들이 방해가 되지 안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인격이지만, 일반 사람으로도 자기가 모셔 있는 그분이 참  큰 분이요. 또 자기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러운 자리라. 또 거기서  잘못하면 큰 이제 그 해가 돌아올 것이라.

 또 잘하면 유익이 있을 것이라. 자기가 거기서 하는 일이 책임이 또 하나 마나  그런 것 같이 하지만 이 일이 책임이 중하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는 모시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자기가 모신 그분의 권위와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돌아오는 그 모든 영향이 크면 클수록 자기가 모신 그분에게 대해서 조심도 하고,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할라고 말은 안해도 벌벌 떨고, 또 그분과 대립이 안 될라고  또 그분이 시켜 놓은 일을 자기가 무엇인가 미진하게 부족하게 처리하지 아니하려고  또 자기의 해 놓은 일이 뒤에 가서 자기 위에 어른에게 큰 욕이 돌아가도록 그런  일을 하지 안할라고 애를 쓰는 것은 인생이 누구나 본능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일에도 인간이 모르는 것은 성경이 가르쳐 놓은 그런 특수한  인간 모르는 법칙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다 사람들이 성경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다. 너희들이 알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면, 내가 모시고 있는 그분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 것이고 그분이 어떻게 하면  섭섭할 것이고 또 내가 모시고 있는 그 위의 분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그분이  좋아할 것이며 그분이 또 기뻐할 것이며 또 그분에게 그 신임과 사랑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도덕면이라. 윤리면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이거는  종교마다 거의 같습니다. 다만 기독교의 특수 강령이 되는 그런 것은 이종교가  모르지만 거의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는 그저 간단하게 우리가 모신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그분이 어떻게 크신 분이시며, 내가 그분에게 잘못되면  어찌되며 잘하면 그분이 잘 보면 나를 신임하고 잘 보시면 어찌되나? 그분의 크심과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을 그 영향, 유익을 받든지 해를 받든지 그 영향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것만치 그분에 대해서는 청종하게 됩니다.

 그분의 말하는 데에 순종할 수 있을 거고,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게 될 것이고 따라  움직이는 걸 봐서 그분을 내가 어떻게 무시하고 멸시하는지, 또 그분에게 대해서  내가 참 실력 있는 분인지 내가 무식해서 전연히 모르는 자인지 그것은 그  행동으로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청종이 제일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네가 모시고 계신 그분, 내  안에도 계시고 내 밖에도 계신 내가 모신 이분이 대통령만침 큰 분인가, 왕만침 큰  분인가, 이분이 무슨 사장만치 큰 분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한국에 제일 되는  그분만 한가, 세계에 제일 된 그분만 한가, 이분이 어떤 분인가, 내가 모신 이분이  얼마나 크시며 얼마나 능력을 가졌으며 이분이 얼마나 지혜가 있으며 얼마나 모든  것을 다 공평 되게 계약한 대로 처리하실 분인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느냐? 아는  거만치 자기 행동은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아는 자는 아는 그것으로 높아진다" 주를 아는 자는 높아진다 이랬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어떤 정권자나 어떤 그 부강한 사람이나 어떤 엄위와 권위가  있는 그 권력이 있는 분이나 이런 분도 우리가 그분을 모셨다고 하면 우리의 행동이  어떨 것이며 우리의 조심이 어떨 것이며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할라고 그분에게  그분의 비위를 상하지 안할라고 그분과 대립되지 안할라고 또 자기 의무와 책임에  실족하지 안할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필연적 다 생의 본능의  지식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없는 가운데 모든 걸 만드신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산만당에 올라가 가지고 누워서 저 공중에 이리저리 형형 색색의 구름을 보면서, 또  멀리 바다를 보면서, 모든 삼라 만상들을 보면서, 넓은 바다에 무변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바다를 보면서, 또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조그만씩한 그런 똑  불티만씩한 그런 별도 이게 지구 땅덩어리 만한 것도 있고 지구 땅덩어리 몇 배 큰  것도 있다 하는데 그런 것이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라. 요새는 이십억만인가  삼십억만인가 항성이라 이러니까 그 항성 한 개에 따른 위성과 유성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걸 생각하면서 이 모든 것을 혼자 지으신 이분이 큰가, 작은가?  이것부터 우리가 자주 명상하면서 따져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분이 크심을 깨달을 때에 이 크신 분과 내가 무엇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가졌는가? 내가 어떻게 이분을 아버지라고, 아, 내가 무엇이기에 내가 부를 때에  대답하시고 내가 기도할 때 기도에 응답을 하시고 몰라서 물을 때 가르쳐 주시고,  아, 내가 미래사를 몰라서 '이거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에 진심을 가지고 며칠 마음이 흔들리지 안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안하고 한갖된 마음으로 자기의 답답한 어려운 일이라도 두고 며칠만  직심(直心)을 가지고 물으면 당신이 그에게 이 일은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될  것이니까 네가 어떻게 거기 대해서 방비하며 대비해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말이오.

 이분이 우리 아버지 되신 거, 이분이 우리와 친교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분이  우리의 주가 됐다는 거 이것 참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리자고 우리가 인사말에  그랬는데, 회개의 눈물도 감사의 눈물은 이거는 감사는 암만 할라 해도 계속 입을  벌여 놓고 그 은혜를 감사한다 해도 영원히 감사한다 해도 그 감사의 해야 될  감사의 억억만분의 일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크신 분을 내가 모시고 있는 내요, 또 그분이 내게 대해서 생명으로 영생을  주시지 당신이 계약하기를 당신에게 청종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고, 또 청종하면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서 영원토록 피조물을  통치하며 피조물들에게 강제로 그렇게 월권하는 그런 일이 아니고 피조물에게  만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에게 충만 시켜 줄 수 있다고 이렇게 존영하고  영광스러운 이 직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냐? 내 안에와 내 밖에 내가  모시고 있는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이것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가 말로 어떻게 하고 이렇게 공로를 암만 세웠다 할지라도 그까짓 것도 다  껍데기입니다. 다만 자기가 현실을 착 닥쳤을 때에 그 현실에서 내가 모신 주님을  멸시하고 대우하고 존대하고 천대하고 만홀히 여기고 두려워 여기고 깔보고  시시하게 보고 하는 거, 그 현실에서 내 언행심사의 행동으로 다 그대로 미끄러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대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모시고 있는 그분이 어떠한 분이라고 어떤 사람은 돈 천 원짜리  하나만도 못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어떤 상관만침 못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우주의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주님으로  알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자기 소유나 마음이나 생명을 이분 위해서  다 바치고 싶고 이분을 위해서 다 드리는 이것보다 더 성공이 없고 더 행복이 없고  더 수입이 없고 더 승리가 없고 더 부강해지는 것이 없다 이렇게 또 알고 이분을  현실에서 대우해 가면서 현실 현실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안팎에 모시고 계시는 이분이 어떠한 분으로  내가 알고 있고 어떠한 분으로 인정하고 있고 어떠한 분으로 대우를 하고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말씀하신 그 말씀 순종에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청종이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알고 이분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순종함이 이게 제일입니다. 그러기에, 이분은 "믿는 대로되리라." 이분을  내가 인정하는 대로 나는 순종하게 될 것이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대로 우리는 거기  대한 대가가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참 자존자요, 전능자시요, 창조주 이 모든 것 다, 오늘 밤에  우리들이 지금 천여명이 모였는데 우리 하나 하나도 주님이 다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고 주님 혼자 만드셨어. 다만 만드실 때에 은혜의 기관으로 도구로  쓴 것은 우리 부모들이지만 부모가 우리 뼈가 몇 개인지 우리 안에 창자가 몇  개인지 기관이 무엇인지 피가 얼마나 있는지 뭐 압니까? 아무 것도 모르요. 이렇게  크신 분인 것을 자기가 성경을 봄으로 믿고, 현실에서 이분에게 순종하는 거 이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거 이것이 제일입니다.

 오늘 본 말씀에 "사무엘이 가로되" 사울 왕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 이거보다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이랬습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은 전부 무얼 가르치느냐 하면 이분이 어떠하신 분이라고 알고  순종하는 그대로 다 됐습니다. 알고 순종하는 그대로 다 됐습니다. 이분은  거짓말쟁이라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 상대하는 자에게는 그대로 그대로의 하나님이  돼 주십니다. 이분은 38년 된 병자가 성신의 감화로 와 가지고 엉뚱한 소리같지만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원한다고 할 때에 주님이 '일어서서 자리 들고  걸어가라' 이라니까 '예' 하고 일어나 자리 들고 갔으니까 그만 38년 된 병자가  나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경에 있는 것은 무얼 가르치느냐? 이것은 표적입니다. 표적. 이거  이 병 고치는 이게 목적이 아니고 이게 표적입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면 이  38년 된 병자 같이 참 아주 병자 중에는 제일 중환자와 마찬가지로 아무 짝도 쓰지  못하고 이거는 개짐승 같고 이거는 짐승도 아니고 이거 짐승 중에도 더러운  짐승이고 아무 쓰지 못하고 천한 인간이라도 예수님은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다 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이분이 나를 암만 내가 이런  인간이지만 이분이 나를 온전한 사람 만들어 줄라 하면 나는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유업으로 상속으로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는 이것을 믿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도 청종으로  나았습니다. 그만 주님 말씀하실 때에 듣고 순종하니까 그만 됐어.

 38년 된 병자도 청종으로 나았고, 나면서 앉은뱅이도 청종으로 나았습니다. 그  나면서 앉은뱅이 이런 것은 다 우리에게 계시 기관입니다. 계시 기관. 날 때부터  인간 노릇하지 못하는 아주 저능자, 앉은뱅이 같은 그런 못난 자도 주님의 말씀만  청종하면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라고 나니까 그 병신으로 모든 사람  가운데에 제일 천물이지만 순종으로 청종으로 병 낫고 나니까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인기가 제일 높습니다. 이게 예수 믿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어떻게 병신이고 어떻게 못나고 어떻게 인간 중에 제일  가련한 자라도 주님은 이렇게 다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믿고  그분에게 또박또박 순종하면 다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38년 된 병자와 앉은뱅이도 나았고, 이게 다 무엇이냐 하면 사람병 낫는  걸 말합니다. 이게 표적이요. 38년 된 병자가 나은 것이 표적이라, 표적이라 말은  그 속에 실상은 들어 있다 그 말이오, 실상은.

 그러면, 이 표적이 무엇을 지금 표적하고 있느냐? 38년 된 병자와 같은 이렇게  인간 중에 제일 짙은 죄병, 악병, 독병, 못된 습관병, 참 인간 중에 제일 못 쓸  인간 병에 들어 가지고 있는 자라도 청종하면 낫는다, 나면서 인간 노릇한 번도  못한 그자도 청종하면 낫는다. 그것을 여기 보이는 표적입니다. 또, 나사로 라든지,  나인성 그 과부의 아들이라든지, 야이로의 딸이라든지 그런 것은 죽은 송장이  어짭니까? 죽은 송장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죽은 송장이 제가 뭐하겠오? 그러나 그  송장에 관련된 사람, 송장이 죽은 데 대해서 마음이 아파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 그  송장이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산 사람이 주님에게 청종할 때에  그 산 사람의 청종으로 인해서 그 썩은 냄새 나는 그 송장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또 우리에게 표적입니다.

 이렇게 믿는 내가 어떤 사람이 그것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그 사람이  사람되기를 원하면 그 자는 예수 믿지 안해도 이미 믿는 자의 이 자가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순종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순종했는데 살아나기는 냄새 나는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이미 우리 믿는 자가, 또 회개한 자가, 좀 앞서 잘 믿는 자가 안 믿는 자, 또  아주 죽어 있는 자, 신앙이나 모든 게 죽어 있는 자 그 자를 위해서 힘을 쓰면 이  자가 청종하는 그 청종의 대가는 썩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소원을 위해서 내가 청종할 때에 내 청종을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시고 내 청종을 받아서 내가 원하고 있는 그 죽은 자를 당신이 살려  주시는 그것을 여기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청종하니까 다니엘이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청종을 했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그만 순종했어. 청종이라 말은 주님의 말씀 듣고 그대로 순종이 그게  청종입니다. 청종이라는 것을 그만 익혀 놓이소, 청종. 다니엘이 청종하니까 사자의  입을 천사를 보내서 막아 줬습니다.

 우리가 청종 생활만 할 때에 주님의 명령만 따라서 지킬 때에 이 세상 전체가 다  사자 같은 맹수가 있어도, 맹수 속에 들어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맹수 속에서도  주님께서 다 그 입을 막아서 그가 상해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이것을 우리에게 이  표적으로 보이십니다. 이 표적은 사자 이것이 이래 된 이것은 무엇이냐? 사자와  같은 맹수 같은 어떤 그 인간의 단체 속에서라도 청종하는 자에게는 해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여기 표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청종할 때에 주님에게 청종할 때에 아, 불미 속에  집어넣었는데 뜨거운 불이 그를 해하지 못하게 그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 것이 다  필연적이요 오늘까지의 나온 통계요 이게 과학이지만 기독교는 과학을 초월한  것입니다. 청종하니까 불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불 냄새도 안 났습니다. 불 세력을  막았습니다. 이거는 어떻게 혹독한 시대라도 어떻게 혹독한 그 정권 안에서라도  어떤 혹독한 그 사회 어떤 단체 아래서라도 어떤 혹독한 가정 속에서라도 상관없다.

너만 청종하면 그 불 기세를 막아서 불 기세가 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을 여기  표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표적으로.

 또, 다니엘서 1장으로부터 2장까지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 네  청년은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 - 그때 소년들입니다 - 이 소년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줘서 같이 그 나라에서 천재라고 뽑은 사람들만 같이 공부했는데 그  학원에서 십 배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줘서 느부갓네살 왕이 시험해 보고 이는 모든  일반 그 나라에 박사, 학사, 술객 그런 사람들의 십 배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  이라면서 대우해 가지고 포로된 사람이지만 그 나라 본 족속보다도 뛰어난 높은  지위를 다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거 뭘로 했어? 다 청종 가지고 했어, 청종 하나로.

딴거 운동 하나도 안했어 청종 하나 가지고 했습니다.

 또, 요셉이라든지, 사무엘이라든지 그분들은 공부도 안했어. 공부도 안했는데 다만  하나님의 명령을 딱딱 순종하는 청종 하나만 했어. 청종에만 능숙했어. 청종에만  숙달했어. 그러니까, 애굽에서도 애굽이 생긴 전무 후무의 요셉 같은 그런 실수  없이 그렇게 아주 명총리 대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는 없습니다. 그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요셉 외에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딴 거하지 않소 청종  하나 가지고 했오. 하나님께서는 청종 연습했으니까 하나님이 이래라 하는 거 들을  수가 있었고 하나님 음성 들었고 그대로 순종한 이 둘뿐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했으니까, 요셉이가 애굽에서 총리 대신한 것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애굽의 총리 대신 됐으니까 잘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사무엘도 공부한 사람 아니오. 사무엘도 그 제사장 역사를 보면 거기서 공부할  수가 없어. 그저 하나님 섬기는 거,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이래라 하면 그 음성  듣고 밤으로도 낮으로도 듣고 있으면 음성 들으면 그대로 순종. 음성 들으면 그대로  순종, 청종뿐이라. 청종뿐이었는데,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통치가 중에 제일  으뜸입니다. 그 사람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윗이니, 솔로몬이니 그 비교가 어림도  없소. 참 아이들 말로 새발에 피라 하더만 아주 그 참 어림도 없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사사되었을 때에 이웃 나라하고 전쟁하지 안했습니다. 전쟁을 안  하고 그가 있는 동안에 그 나라에 전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통치했기에?  청종뿐이라. 그것만 연습했어. 당신이 이래라 하니까 '예' 이래라 하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 당신의 뜻을 깨닫는 것과 당신의 뜻을 깨닫는 것과 그대로 실행하는 이  둘밖에 안했오. 이러니까 사무엘이 사사되고 난 다음에도 다른 사람은 다 학술을  통달했고 역사를 공부했고 이렇게 저렇게 다 심리도 또 정치학도 공부하고 이래  했는데 사무엘은 그런 것 안했어. 안했지만 하나님께서 '해라' '예' '하지 말아라'  '예' 그것뿐이라. 이래라 하면 이라고 저래라 하면 저라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하기 때문에 사무엘의 통치는 전지의 통치요, 전능의 통치기 때문에 그  전무후무한 통치를 했던 것입니다. 이거 다 청종 가지고 돼졌습니다.

 그러기에, 여섯째 문제에 하나님에 대하여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청종보다 청종보다 나은 것은 없다. 주님에게 청종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거 없습니다. 더 가치 있는 거 없고 이걸 잡고 살면 우리가 못할게 뭐  있겠습니까? 당신이 약속해 놨는데 이걸 안 하고 청종 안 하고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제 의견대로 하는 그게서 다망하고 맙니다.

 욕심도 제 욕심대로 말고 하나님, 주님 욕심대로, 소원도 주님 소원대로, 방편도  주님 방편대로, 이러니까 주님 방편 쓰면 도둑놈의 방편을 쓰는 것이 주님 방편  쓰면 다 망한다, 주님 방편 쓰면 내가 사형 당한다. 내가 모가지 달아난다.

어리석은 자야 모든 것의 주권을 주님이 가지셨다. 왕의 왕이 그분이시요, 대통령의  대통령이 그분이시요, 사장의 사장이 그분이라. 모든 것이 그분에게 매이고 그분이  하는데 그 밑에 이하의 것이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사랑도,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청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기가 뭐 어떻게 한다고 할지라도 몸과 생명을  바친다 해도 소용없어. 당신이 하라는 대로 청종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없소.

 이러기 때문에, 청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중에 제일 뛰어나게 사랑하는  사랑이요,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사랑입니다. 사랑도 청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제일  사랑함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청종이 하나님을 제일 섬기는 것이 되고, 또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도 청종이 제일 대우고, 또 하나님을 우리가 아는 데도 청종이  제일 제일 똑똑히 배우는 지식이라. 내가 청종해 보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제일  훌륭한 지식을 가지게 돼. 내가 청종 안 해 보면 그걸 모르거든. 청종해 보면  그분을 아는 그분을 배워서 아는 데는 청종 더 이상으로 그분을 지식 할 수가 없어.

사모도, 내가 암만 주님을 사모한다 그래 쌓아도 그저 당신에게 청종하면 그것이  제일 당신을 사모하는 것이요, 애무하는 것이요,  또, 위함도 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도 청종하는 것이 제일 잘 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도 연보도 좋고 전도도 좋지만 당신에게 청종하는 거 당신  이랄 때 이라고 저랄 때 저라고 당신에게 청종하는 거 청종보다 더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또,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청종 더 이상이 없어. 청종할 때에 당신이  영화롭게 됐어. 다니엘이 청종할 때에 바사 나라에서 얼마나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됐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청종 이것이 하나님 영화롭게 하는 데에도  제일입니다. 또, 증거함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다, 저런 하나님이다, 아무리  증거 해서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청종이 제일이라. 당신에게 청종하면 그  청종하는 그 청종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러기 때문에  증거에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데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을  내가 아끼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을 친밀히 교제하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라. 하나님하고 나하고 친밀히 교제하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과  나하고 밀접해지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과 나와 직접 대면하는 것도  가까이 대면하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요, 동거 동행도 청종이 제일이요,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단합되는 것도 청종이 제일이요, 이러기에 청종보다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에 청종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청종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청종이면 제일이라.

청종 하나면 다 돼요.

 일곱째. 청종보다 더 섬김도, 청종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도 없어. 청종이  제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잘 섬기는 거. 받음도 받음이라 말은 하나님에게 받는  것도 내가 청종하는 그 청종할 때에 하나님께 내가 받는 거, 청종으로 받는 거  그보다 더 많이 받는 법이 없어. 받음도, 주님 형상을 입음도, 내가 주님의 형상을  입는 것도 내가 청종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어. 내가 청종하는 데에 주님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에 찬미되는 것도 내가 청종하면 영광에 찬미가 돼 져.

 그런고로, 우리는 이걸 익힙시다.

 제가 며칠 전부터 이랬는데 이걸 이번에 공과를 한번 이걸 해야 되겠다 해서  했습니다.

 그저 청종이 제일이라. 청종, 청종, 청종, 청종이 제일이라. 청종은 무엇이냐?  그분이, 내가 모시고 있는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알고 그분에게 청종하는 거.

그분이 말씀하는 대로 내가 들어서 순종하는 게 청종이라. 들을 청(聽)자 순종할  종(從)자 들어 순종하는 거라. 그런고로, 우리는 어쩌든지 이 청종보다 더 수입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한번 미국이 한번 거꾸러질 때에 미국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 무디  선생이라는 그분이 미국을 한번 다 새로 부흥시켜서 참 살려냈는데 그분이 말하기를  '청종보다 더 큰 수입은 없다' 아무리 제가 단번에 억억억만원이나 무슨 어떤  세계를 점령했다 할지라도 청종보다는 수입이 적다. 청종하는 그 청종으로 말미암아  수입되는 수입이 제일 크다. 말했습니다. 그분은 깨닫고 한 말이오. 청종 그거  가지고 우주와 영계 자기 것 돼. 이러니까, 그보다 더 큰 수입이 있습니까?

 그런고로, 문답에, 예수님을 믿는 표적을 받는 데는, 이 믿는 이라고 했는데 이  믿을 표적, 예수님을 믿을 표적 표적보고 다 믿었어. 아, 베드로도 고기 잡힌걸  보고 난 다음에 그만 '아이구 나는 죄인이올소이다. 내가 주님 모실 수 없는 더러운  죄인입니다.' 이래서 위로하면서 '네가 지금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될 터이니까  낙망하지 말고 낙망하지 말아라' 이라니까 그만 배고 무엇이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갔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표적을 보고 그랬어. 표적을 보고. 우리가 표적을 보면  믿는 사람되고, 표적을 안 보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표적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은 표적을, 믿을 표적,  믿을 수 있는 그 표적을 받는 데는 어떤 방법이 제일이뇨? 청종이라. 청종하면  '아이구 참 믿어야 되겠다.' 청종하면 '참 이거 믿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청종 가지고 모두 다 되니까,  둘째로,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방법이 무엇이뇨? 답에, 청종이다.

 세째로, 자타의 구원 이루는 제일 좋은 방법이 무엇이뇨? 내 구원도 이루고 남의  구원도 이루고 내 구원도 이루고 남의 구원도 이루고 남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좋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좋고. 봉사하는 것도 좋고, 성경 가르치는  것도 좋고, 전도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주님이  나한테 시키시는 대로 청종만 하면 청종만 하면 주님이 내 구원도 이루어 주시고  나와 관련된 그 사람의 구원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청종이  제일이라.

 그러기에, 자기가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나님이 내 가족을 구원해 주시지 순종 안하면 하나님이 안 구원해  주시지' 해서 하나님이 자기 가족을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해서 자기가 주님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딱 딱 청종하는 사람은 청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거 다  구원시키십니다. 안시킨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자타의 구원 이루는 제일 좋은  방법이 무엇이뇨? 청종이다.

 네째로, 믿는 자가 존영하여지고 영원히 하나님과 만물에 대한 제일 큰 봉사가  무엇이뇨?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거. 만물을 제일 잘 섬기는 거,  이래서 만물이 감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과 만물에  대해서 제일 봉사를 잘하는 봉사가 무엇이며 그 자격을 만드는 데는 무엇이뇨? 자격  만드는 데도 청종, 봉사도 청종, 청종 하나면 다 됐습니다. 다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기억합시다.

 따라 합시다. 청종! 청종! 죽어도! 청종은! 빼앗기지 말자! 우리가 이 사람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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