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심령가난

 

1986. 10. 31. 밤(금)

 

본문:마태복음 5장 1절∼3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광고부터 먼저 합니다.

설교 마친 지 후 십 분 기도 후에 지난 주일 오전 오후 설교 말씀 재독이 있고 또 철야가 있습니다.

또 주일학교 광고입니다. 춥기 전에 어짜든지 우리가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심방해서 찾을 양들을 찾아야겠습니다. 아직도 구천도 못 됩니다. 지난 주는 구천에 한 일백 몇십 명인가 모자랍니다. 지금 견고히 세워 놓지 안하면 추위가 오면 또 학생들이 더 많이 요동되기 쉽습니다.

그라고 십오 명 이하된 선생님은 어떻게 하든지 노력해서 십오 명을 채우도록 그렇게 하고 또 십오 명 된 사람은 그만 허리끈 풀어 놓지 말고 자기도 좀 우승반과 모범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그라고 교회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은 집이 가까우니까 그만 늦게 가도 된다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주일날 새벽기도를 꼭 모두 다 나오도록 하십시오. 나와 가지고 여기서 은혜를 받고, 가까운 분들은 여섯시에 출발하기가 좀 이르거든 여게서 기도도 많이 하고 또 그날 가르칠 공과를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은혜와 권능을 받도록 해 가지고 그래 가르치도록 그렇게 합시다.

우리 서부교회서 전도지를 새로 박았습니다. 이러니까 이 전도지를 많이 전하도록 하십시오. 먼저 전도지 박는다고 연보가 얼마 백 뭐 육칠십만 원인가 나왔었습니다. 이랬는데 전도지 박을 그 본문이 미비돼서 박지 못하다가 이제는 출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전하면 전하는 대로 그저 자꾸 전도지를 박아서 이래 전할 것입니다. 전도지 내용을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급한 소식’입니다, `급한 소식.' 그라고 요 밑에 조그만하게 요래 놓은 것은 우리 교회의 약도입니다. 그 약도를 크게 그린 것을 그래 크게 그려서 보기 안 됐다고 아주 누가 보면 무슨 그림같이 조그만하게 요렇게, 도장같이 조그만하게 요래 찍혀 가지고 있습니다.

그라고 ‘급한 소식’ 오늘도 제가 저 오면서 버스길에서 전도지를 전하니까, 급한 소식이라 전하니까 보고서 ‘무슨 급한 소식입니까?’ 그래 물어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온 천하는 다 불타는데 빨리 구원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급한 소식이다’ 그렇게 말하고, 그라니까 나도 너도 달라 해서 그래 좀 전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말씀' 이래 놓고 첫째.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 또 둘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한 것만큼 복받아 세계 모든 민족 머리되는 부강된다’ 또 셋째로, ‘예수 재림하면 천지는 불타고 의인은 새 천지로 피난 간다’ 또 넷째로, ‘예수 믿는 것으로만 하나님 아버지 자녀 된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전해서 우리가 후회 없도록 합시다.

6 5 때에 그때에 신자들은 뭐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다급하니까 살려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는 기도는 다 통일됐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을 전하지 안한 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번에만 살려 주시면 복음을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기독자의 전부의 그 공동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다 기도를 그래 했었습니다.

또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 좀 말은 내가 여러 사람한테 들었는데 넘어오면서 ‘이번만 살려 주시면 어짜든지 가 가지고 전도해서 예수 믿구로 만들겠습니다’ 하는 그런 말 한 사람은 별로 없고, 넘어오면서 ‘이번만 살려 주십시오. 내가 돈이니 옷이니 거게다가 전소망을 두고 그렇게 했던 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고 이제 옷은 두 벌 옷을 가지지 안하겠고 돈은 있는 대로 전부 복음 운동에 다 바쳐서 쓰고 돈 모아 저축하는 그런 사람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다 회개를 하고 넘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금이니 뭐 옷이니 보배는 전부 땅을 파고 도가지를 땅속에 묻고 그 안에다가 넣어 놓고 왔는데 아마 참 뭐 어째 가다가 패물, 금덩이 그런 거 넣어 놓은 도가지 찾은 사람은 부자가 됐을 것입니다. 이북에는 부자 돼도 소용 없어. 부자 돼도 돈을 쓸 데가 있어야지, 뭐. 쓸 수가 없어. 양식도 마음대로 못 팔지, 옷도 마음대로 못 사지 그래 놓으니까. 그렇지마는 그랬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복음 전하는 것을 열심히 합시다. 제가 위천 있을 때 그때에 거게서 6.25를 만났는데 모두 다 제가 있는 교회 교인들은 다 말하기를 ‘이번만 살려 주시면 열심히 복음 전하겠습니다. 또 한 집도 빠지지 안하고 전부 집집마다 다니면서 복음을 다 전하겠습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안하고 복음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뭐 다 공동 고백하고 주님 앞에 자복하고 살려 달라고 그렇게 그때 기도했었습니다.

기도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내가 들으니까 제가 아는 사람 몇 사람은 그 위천면 산골에도 한 집도 빠지지 안하고 다 다니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호별 방문으로 그렇게 전도했다 말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열심히 전도합시다.

지금 아마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왔는지 대단히 모두 다 사명을 깨닫고 전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교회만 그런 줄 알았더니마는 뭐 부산서도 총동원 운동이 일어나서 그 교회서 ‘어느 달’ 이래 정하면 그 달은 어떤 직장에 있든지 자기는 꼭 매일 몇 시간씩 정해 가지고 장로는 이백 명, 집사는 오십 명, 새로 인도하는 사람을 꼭 인도해 가지고 오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작정 약속을 하고서 그렇게 해서 달성을 해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 지금은 ○○○교회를 위해서 저도 기도하고 있는데 그 소식이 어찌 됐는지 도무지 지금은 못 듣습니다, 그전에는 ○○목사님이 있으니까 좀 들었지마는.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은 돈벌이에 몰두가 되는지 정신이 없어. 뭐 도무지 사람들 콧등이가 보여야지, 뭐. 여반들은 양산동 그 기도산에 기도하러 오지마는 남반은 뭣이 그리 바빠서 그런지 참 그저 밥 벌어 다니느라고 그래 지금 그런지 아주 신앙에 자유 시간이 전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서울도 들으니까, 내가, 서울이지 아마? 서울 어느 교회에 그 물으면서 ‘요새는 조금 교회가 어찌 되느냐?’ 하니까 ‘이웃 교회서 총동원 운동이 나서 가지고 어떻게 열심히 하는지 학생 다 뺏겨 버리고, 학생 다 뺏겨 버리고 학생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거게는 총동원 하는데 너거는 총동원 안 했노?’ 내가 이렇게 말하고 말았는데. 각처에서 지금 전도하는 일에 아주 열중하고 있습니다. 뭐, 아마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 세계의 신앙의 나라들, 기독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나라가 전부 멸망을 받을 행실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그 일을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에게 말 들었는데, 어떤 목사에게 들었는데 그 목사가 말하기를 ‘미국에서는 뭐 주일날을 그렇게, 주일날 지키는 그런 교파가 없습니다.’ 주일 지키는 신학교가 없대요. ‘주일 지키는 신학교가 없고 또 성경에 뭐 창세기 엿새 동안에 천지 창조라 하는 것을 믿는 그런 신학교는 별로이 없습니다. 다 부인합니다.’ 그거는 으례히 정통 신학자들도 다 부인하고 그거는 몇 억만 년 걸렸고 그렇다고, 그렇게 부인한다고 그러는데, 참 망할 짓입니다.

이런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하다고 성경이 말씀한 대로 이와같이 믿는 사람이지마는 이래 믿으면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래 믿으면 그들의 유혹을 다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성경 말씀을 배워 가지고 그대로 실행을 안 해 보면 실상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실행 안 해 본 사람은 실행 안 한 거짓부리 설교는 재미가 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고 실행하는 설교는 귀에 안 들어옵니다. 이제, 늦게 믿든지 일찍 믿든지 실행하는 신자는 실행하는 설교가 아니면은 안 듣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좀 정신 차려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레도 말했지마는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하는 이 설교 하고 난 다음에 이 산상교훈을 했습니다, 산상교훈. 이래서 이 말씀은 산상보훈이라. 보배 보 자 훈계 훈 자, 가르칠 훈 자 말이오. 산상 보배의 가르침이다. 또 황금율이다. 아주 성경 가운데도 제일 황금같은 도리다 이렇게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주님이 제일 처음 가르친 것이 이 팔복을 가르쳤습니다. 팔복을 가르쳤는데 그만치 중요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팔복 설교를 제일 먼저 하시고 그 다음에 이제 교훈을 쭉 계속했습니다.

이래서, 오늘밤에는 첫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이 머리말 이 말씀에 대한 뜻을 이거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되겠는제 지금까지 통일이 되어 있지 안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번역이 되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번역되지 안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그렇게 번역이 됐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라 이렇게 여게 대해서 그 주석가들이 다대수가 심령이 가난하다는 이 뜻은 마음이 퉁, 아무것도 마음에 없고 마음이 빈 사람이 복이 있다. 마음 빈 사람이 복이 있다 이래 가지고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다는 찬송가도 짓고, 마음이 빈 사람이 심령 가난한 사람이라 이렇게 또들 설교를 많이 하고 주석가들이 많이 주석을 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아까 오늘 오후던가? ○○○목사님에게 그 좀 칼빈 주석하고 거게 양성원에 주석이 몇이나 있는지 좀 정통 주석들이 많이 있을 터이니까 칼빈 주석이나, 또 뭐 다른 주석 박윤선 목사님 주석이나, 또 일본말로 있는 무슨 그런 일본 신학자들의 주석이나 그런 게 있거들랑은 좀 그 심령 가난에 대해서 읽어 보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그래 읽어줘서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렇게들 모두 다 깨닫고 있으니까 이것을,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인데 이 말씀을 견고히 잡지 못하면 구원이 절단이 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뭐 가르친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나가면 또 뒤태여버리요. 나가면 뒤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분들은 어떻게, 칼빈이라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제일 유력한 신학자로 보고 있는데 그분은 어떻게 깨달았는가? 그런 것을 봐 가지고 이렇게 다 참고를 해 가지고 증거를 해야 되겠다 해서 그렇게 한번 읽어 보라 했습니다.

그랬는데, 여러분들이 이제는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이만치 장성했기 때문에 뭐 설교할 때에 무슨 고함이나 크게 지르면 은혜 있다 하는 그런 그 유치한 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함만 크게 지르면 ‘아이구 은혜 있더라’ 이제 그 사람이 우리 교인 가운데도 많이 있으니까 어서 그런 허물을 다 벗어야 할 것입니다.

또 설교할 때에 감정을 일으켜서 자기 마음에 감정이 일어나고 감동이 되고, 정서가 일어나서 감동이 되고 또 눈물이 나오고 이렇게 그 감정 움직이는 그런 일이 되면 또 은혜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 말하기를 그저 ‘진리는 좋지마는 영감이 없다. 성경을 가르치는데 진리는 말씀은 좋지마는 영감이 없다, 불이 없다.’ 그 사람은 뭣을 불이라고 하고 있느냐 하면은 그 설교 들을 때에 자기 감정이, 감정이 쭈릿쭈릿하이 감정이 기쁘든지 슬프든지 감정이 움직이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없으면 아무리 진리라도 그만 그것을 무시하고 이라는데 그런 것도 다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그것도 다 어리석어서 얼마든지 마귀의 밥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설교는 고함을 지르든지 안 지르든지, 또 인간의 감정에 무슨 자극이나 충격을 주든지 안 주든지, 그것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상관없이, 그저 가르치는 이 말씀이 성경대로냐 아니냐? 또 성경에, 이 성경 말씀은 아주 쉬운 말로 기록해 놨는데 말은 쉽지마는 이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믿는 도리는 어렵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그 진리는 이치는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말은 쉬워서 말은 다 알면서도 그 이치는 자기가 바로 깨닫지 못하는 그런 일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성경을 고함 지르는 것도 좋지마는 그것보다도, 또 설교할 때에 사람의 감정을 충동시키는 그런 것도 은혜라고도 할 수가 있고 또 그런 것도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설교할 때에 무슨 뭐 병이 낫고 이렇게 뭐 기적이 나는 그런 것도 또 은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보다도, 우리는 그런 유치한 데 머물지 말고 어짜든지 성경이 가르치는 이 참된 도리, 성경이 가르치는 참 믿는 이치, 바로 믿는 이치, 바로 믿는 이치 이것을, 여게다가 제일 가치를 두고 여게다가 제일 중점을 두고 이것을 바로 배워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애를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큰 소리로 안 하고 모기 소리만 같이 해도 진리면 그는 천지가 진동되는 것이고 아무리 뇌성벽력같은 그렇게 고함을 쳐도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다 울리는 괭과리요 다 죽은 말인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은혜 받는 것은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깨닫는 여게다가 중점을 둬야 될 터인데 암만 해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이 설교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설교에는 어떤 것이 가치 있는가? 설교의 가치관을 바꿔서 바로 가져야 될 터인데 도무지 설교의 가치관을 항상 소리, 또 고함말이요, 고함. 또 무슨 정서를 움직이는 무슨 정서적인 그렇게 그런 말, 또 무슨 이 세상에 어떤 훌륭한 무슨 소식이나 무슨 어떤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그런 유식한 말 그런 데, 그런 데다가 두고 하나님의 이 구원 도리를 바로 깨닫는, 바로 깨달으면 우리가 바로 행할 수가 있고 바로 행하면 구원 이룰 수 있고, 잘못 깨달으면 잘못 행할 수 있고 잘못 행하면 구원이 잘못되는 것이니까 이거 뭐 죽고 사는 게 아니라 영원히 죽고 사는 것이 여게 달린 이 중대성을 아무리 말해도 여러분들이 잘 듣지 않습니다.

이래서, 오늘 저녁에도 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이 말씀에 대해서 모두 해석들이 구구하니까 제가 가르쳐 봤자 이거 뭐 여러분들이 잘 듣지도 안할 것이고 이래서 그래 주석을 가져와서 좀 읽어 달라 이랬습니다. 이래서 지금 ○○○목사님이 나와 가지고 주석을, 거게 유력한 주석이 몇 권 있느냐 하니까 두 주석이 있다 해서 그러면 두 주석을 가져와 가지고 좀 읽어 달라 이랬습니다. 읽어드릴 터이니 여러분들이 잘 들어 보십시오.

예. 여러분들이 여기 들었는데, 심령이 가난한 것은,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말인데, 부자는 많이 있다는 말이고 가난은 없다는 건데,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두 분의 주석 가운데에 자기는 아무런 의로운, 의로운 그 의가 없다. 의가 없다. 의가 없기 때문에 의가 없으니까 의에 가난하다. 의가 없다. 또 실력이 없다, 지능이 없다. 지능이 가난하다. 또 아무 승리한 것이 없으니까 승리에 가난하다.

그러니까 가난하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뭣이 있고 실력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마음이 부자고 교만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음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난한 사람이니 이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천국을 얻게 된다. 이런 사람은 천국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천국을 얻게 된다 하는 그런 해석들입니다, 해석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다 들었지요? 그런 해석 아닙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지능이,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고, 착한 것도 없고, 성공한 것도 없고, 의로운 것도 없고, 아무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그런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가르칠라고 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러면 천국이 앞으로 자기 것이 될 것이 아니고 천국이 이미 자기 것이 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자기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천국은 여러분들이 그전에 많이 들어서 알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것이 천국인고 하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고 주님이 그 나라에 왕으로 계시고 또 그 나라의 법은 하나님의 뜻인 이 신구약 성경 말씀과 모든 하나님의 뜻, 진리, 진리가 그 나라의 법이 되어 있고 영생하는 나라요 또 모든 죄나 고통이나 배고픈 것이나 아픈 것이나 슬픈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생과 평강과 진리와 사랑으로 충만한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여러분들이 다 많이 들어서 알 줄 압니다.

여게서 제일 중요한 게 뭐인고 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건 천국이 저희 것이다. 세상이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세상이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공산주의가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민주주의가 저희 나라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이 과학 만능이 저희 세계가 되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런데 이 심령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저희 나라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위에부터 해석할 게 아니라 이 성구는 꺼꾸로 밑에서부터 해석을 해서 올라가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천국이 저희 나라이기 때문에, 세상을 자기 나라로 삼는 사람은 그의 소원하는 것도, 소망하는 것도, 가치로 여기는 것도, 노력하는 것도, 모두 건설하는 것도 다 세상이지마는 하늘나라가 저희 나라가 된 사람은 그와 정반대로 자기의 소망이나 욕망이나 계획이나 건설이나 모든 가치를 하늘나라에다 두는 사람 아닙니까? 하늘나라에다 두는 사람.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심령의 사람이 됐다. 그 심령이라는 것은 뭣을 가리켜 심령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마음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마음입니다. 마음인데 그 마음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영은 죽었고, 영은 죽어 있어서 있어도 기능적으로 없는 거와 같고 마음이 주장을 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켜서 마음이라 이랍니다.

그러면, 천국이 자기 나라가 되지 안하고 세상이 자기 나라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마음이라 이라는데 여게 심령이라 말하는 것은 뭣을 가리켜 심령이라 말했는가? 박윤선 목사님은 그 심령에 대해서 영혼의 근본된 부분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대단히 좀 깊이 생각한 말을 했습니다.

영혼을, 영혼을 사람들은 다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을 영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혼은 영이 아닙니다. 영혼이라는 말과 심령이라는 말과 다 같은 뜻입니다.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들, 세상 나라를 소망으로 세상 나라를 자기 나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가리켜 마음이라 그렇게 하고 그 마음이 심령으로 변합니다. 마음이 심령으로 변해집니다. 마음과 심령이 같은 게 아니고, 여기 심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마음이 영에게 소망을 두고, 영에게 속하고, 영과 이렇게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심령이라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그 마음이 지금 어떤 사람은, 과학자들은 과학에 그 마음이 소망을 두고, 과학을 향하고, 과학에 접하여 있고, 과학에 속하여 있고, 과학을 지금 자꾸 갈급해서 그들은 그 마음이 과학에 가난합니다. 마음이 과학에 가난합니다.

마음이 과학에 가난한 사람, 마음이 돈에 가난한 사람, 마음이 권세에 가난한 사람, 마음이 세상 이 모든 부귀 영화에 가난한 사람, 그 가난성을 느낀다 말이요, 가난성. 가난성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

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그저 세상에서 유명한 장로, 유명한 목사, 돈 많은 목사, 권세 많은 장로 이래 그 모두 다 그들은 항상 가난이라 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거 가지고는 만족이 안 되니까 가난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에 있는 것이 만족이 안 되니까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리켜서 가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더 가지고자 하는 거. 더 가지고자 하는 거.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돈, 그 마음이 돈 가난에 있고, 돈 가난에 있는 사람은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이고, 권세 가난에 있는 사람은 권세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마는 뭐 박사가 돼도 또 지식의 가난성을 가진 사람은 지식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사람이고, 이제 가난이라 하는 것을 자기 있는 것으로서 만족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는 지금 부족하고 부족하니까 더 좀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지고자 하는 가난성, 가지고자 하는 가난성은 뭐 사람마다 다릅니다.

요 말을 지금 여러분들이 요거 지금 다른 해석을 하기 위해 하는데 요걸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돈에, 돈 가난 되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있다가 ‘너 지금 어떤 권세를 주겠다, 어떤 지식을 주겠다.’ 해도 ‘아, 지식이고 뭐이고 나는 지금 돈이 제일이다.

나는 지금 돈이 제일인데 나는 돈이 지금 뭐 돈이 없어서 탈이다, 돈이 지금.’ 돈이 그 사람이 한국에 제일 부자이면서 그 사람이 ‘나는 아무것도 싫고 나는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은 한국의 제일 부자지마는 그 사람의 지금 소원이 돈에 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의 가난은 무슨 돈 가난을 자기 가난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까 권세 가난을 가난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까? 뭐입니까? 돈 가난을, 돈이 자기에게 만족이 못 돼 지금 돈을 좀 더 가지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돈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거는 다 이해가 되지요? 돈에 대해 가난한 사람.

가난이라 하는 건 자기 있는 것이 부족하고 불만하니까 더 가지고 싶은 마음 그것이 가난 아닙니까? 더 가지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이 사람은 ‘그만하면 야 사람아, 먹고 살 터인데, 그만하면 족한데 뭐 더 할 게 뭐 있느냐? 자기가 지금 그만한 재산 가지고 있으면 그만 됐지 뭐 새로 또 돈을 탐해?’ ‘아이, 나는 돈 좀 더 가지겠어. 좀 가져 가지고 나는 돈이 모지래. 돈 좀 더 가져야 돼.’ 그러면 돈을 조금 더 가져야 되겠다면 그 사람이 그 지방에서 제일 부자라도 그 사람은 돈을 좀 더 가져야 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돈에 가난한 사람입니까 부자입니까? 가난한 사람이라. 부자는 ‘이제 됐다’ 하는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지겠다’ 하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런데, 이 심령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마음을 심령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그 마음이 세상에 속하고 세상을 향하지 안하고 그 영, 중생된 영을 향하고, 영에 속하고, 영에 욕망을 가지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심령이라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나는 그 심령이라고 표시한 건 내가 그렇게 지금 내가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심령이 가난성을 가지는 그 가난성은 뭣이겠습니까? “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그러면 그 심령이, 심령이, 이제 심령을 여러분들에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심령도, 심령도 돈 가난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심령도 돈 가난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권세 가난성을 그 심령은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심령이, 심령은, 심령이 ‘아주 돈이 좀 더 있어야 되겠다’ 돈에 대한 가난성, 가난성이라 말은 더 욕구성이요 또 불만성이라 말이지요? 그러니까 좀 더 가지고 싶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심령이 돈 가난성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심령이 돈 가난성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심령은 돈 가난성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아직 모르는데, 심령은, 그 심령은, 요 심령이라는 것부터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요 첫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데는 제일 먼저 알 거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천국을 앞으로 받을 게 아니라 제 천국이 되어 있다 하는 요것을 먼저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또 둘째로 깨닫는 것은 그 심령이라는 말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심령. 심령이라 하는 것은 일반 마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게 아니고 그 마음이 영에게 접근하고 영에 소욕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영에 관계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 마음을 가리켜서 심령이라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래, 그 심령이 가난하다, 심령이 그러니까 부족성을 가지고 갈급성을 가지는 것은 여러분들이 요렇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또 심령에 대한 해석을 여러분들이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그 심령은 무엇에 대해서 부족성과 갈급성과 갈망성과 욕구성을 가지겠습니까? 그 심령은 무엇에 대해서 더 욕구성을 가지겠습니까? 무엇에 대해 더 욕구성을 가지겠지요? 인제이것들이 행하지는 못해도 자꾸 들어 쌓니까, 중생된 영에 대해서 가난성을 가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러면 그 심령이 뭐이 가난하겠는가? 그러니까 해석이 천국은 이미 자기 천국이 되어 있기 때문에라는 이 해석을 앞으로 이 천국을 자기가 받는다고 해석하니까 이는 정반대의 해석이 됩니다.

또 심령을, 심령을 가리켜서, 그 심령을 가리켜서 마음에 제일 근본되는 마음, 진짜 마음, 아주 마음 중에 지금 제일 좋은 마음, 제일 참 중요한 부분 마음, 이 심령을 이렇게 복잡하게 이렇게 그 심령 해석이 돼지니까 또 이 진리에서 거리가 너무 멉니다.

심령은, 세상 나라를 자기 나라 삼은 사람은 마음이고 천국을 자기 나라 삼은 사람은 심령이 됩니다, 심령. 심령이라 말은 마음이 영에 접근돼 있다 말입니다.

영에 접근돼 있다. 영에 접근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그 심령은 뭣을 갈망할 건가? 이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그 중생된 영혼에 대해서 갈망한다 그렇게 말했는데 그 해석이 맞습니다.

요게 중요한데, 우리가 하늘나라를 자기 나라로 삼아 있으면 그 마음의 소원은 천하를 준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에게 소욕되지 안하고 그 마음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을 소원하느냐? 중생된 영만을 소원합니다. 영으로, 중생된 영으로 자기에게 채우기를 원합니다.

그 중생된 영은 어떤 것입니까? 중생된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있다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있으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있다 말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어 있는 것이 그 중생된 영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는데 그 사람의 영이 범죄함으로써 죽었습니다.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고 이 심신이 범죄함으로써 영은 주격 위치에서 죽임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영이 죽어서 영이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마는 영의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어서 없는 것같이 돼 버렸습니다, 죽은 영은. 그러면 죽은 영이 기능적으로는 아주 없는 것같이 되어졌었는데 그 죽은 영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죽은 영이 살아났으면 죽은 영에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났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속성으로 된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살아났습니다.

이래서 산 영은 하나님의 속성이 살아 있는 것이 산 영인데, 하나님의 속성이라니? 하나님의 곧 공통성 있는 속성은 여덟 가지고 공통성 없는 속성은 네 가지인데 네 가지 이 속성은 미래적으로는 이 속성을 가지지 못했지마는 회고적으로 이 속성을 가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에게도 회고적으로서는 자존성, 완전성, 또 영원성, 단일성, 이거는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속성이지마는 우리가 성화가 되어지면은 이것이 되어집니다. 그러고 공통성 있는 속성은 지식성, 지혜성, 선성, 사랑성, 진실성, 거룩성, 의성, 주권성 이건데 이 여덟 가지 속성도 다 땅위에서 두 가지가 돼 있습니다. 지식도 두 가지, 지혜도 두 가지, 중심도 두 가지, 사랑도 두 가지, 진실도 두 가지, 거룩도 두 가지, 의도 두 가지, 주권도 두 가지, 두 가지인데 하나님께 속한 것 있고 마귀에게 속한 것 있는데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살아난 것이 우리 영이 중생된 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은 심령이 됐다 그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심령이 됐다. 심령이 되고 보니 그 사람의 심령의 갈급은 어데 있느냐? 그 심령의 갈급은 곧 중생된 영에 있다.

중생된 영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중생된 영이 가진 건 뭐인가? 중생된 영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이 십이 속성을 여덟 가지는 가졌고 네 가지는 미래적으로 가질 것이기 때문에 그 속성의 갈급성 가난성을 가진 것이 이것이 하늘나라에 속한 그 심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그 갈급성이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그전에 제가 언제 그걸 가르쳤는데, 그러면 만물의 소원은, 만물의 소원은 어데 있는고 하니 만물의 소원은 성도들의 몸에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만물의 소원은 성도들의 몸에 있습니다. 이것도 여러분들이 알기가 어려워. 잘 들으면 어린 아이라도 대번 알아요. 만물의 소원은 성도들의 그 육체에 있습니다.

고기덩어리에 있습니다. 고기덩어리에 있다 말은 이 고기덩어리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사는 데에서 이 모든 만물은 죽고 살고 하는 것이 거게 매였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게 이해가 됩니까?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이라” 말은 자유함에 이르는 것은 고기덩어리 행동입니까 마음 행동입니까? 고기덩어리의 행동이요 마음 행동이요? 고기덩어리 행동이라.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성도들의 고기덩어리가 바로 살면 바로 사는 그 고기덩어리 행동할 때에 거게 동참한 만물은 다 살고 그 고기덩어리가 진리와 영감으로 자유하지 못하는 행동 할 때는 거게 관련된 만물은 다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의 소원은 성도의 고기덩어리에 있고, 성도의 고기덩어리의 소원은 어데 있습니까? ‘마음에’ 안 돼. `심령'. 심령에 있고, 심령의 소원은 영에 있고, 영의 소원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영은, 영은 하나님의 원형입니까 하나님의 모형입니까? 이거 알기 쉽게 하려는 건데,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인 이 영은 그 소원이 어데 있습니까? 그 소원이 원형인 하나님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지금 뭣이 돼야 되느냐? 하늘나라를 자기 나라로 삼은 자는 그 마음이 영에 접근돼 있다. 심령이 된다. 영에 접근돼 있으니까 영에 접근되어 있는 그 마음은 소원이 땅에 것을 소원하지 안하고 중생된 영을 소원한다. 중생된 영을 소원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중생된 영이, 중생된 영이 돈을 가졌습니까, 권세를 가졌습니까, 세상 이 학박사의 지식을 가졌습니까? 중생된 영은 뭣 가졌습니까? 중생된 영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은 어째 가졌느냐? 이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인해서 가지게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살아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중생된 영에게 항상 갈급하고 소원되고, 마음은 그 중생된 영으로, 영으로 충만하지를 못해서 항상 갈급하는 그 마음이 복있는 마음입니다.

또 우리의 중생된 영은 소원이 어데 있습니까? 우리 중생된 영은 소원이 모든 피조물에게 있습니까 창조주에게 있습니까? 창조주에게 있는 것입니다. 있으면 이 가난이 언젠가 이 가난이 부자가 될 때가 있습니까 이 가난이 항상 가난하겠습니까? 부자가 될 때가 한번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항상, 항상 가난으로 지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항상 가난으로 지냅니다, 항상 가난으로. 왜? 얻었고 얻었고 얻었지마는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니까 무한하신 분을 자꾸 내가 차지할라 하니까 자꾸 차지해도 또 또, 이 심령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저희 것임이라는 것은 천국이 저희 것이 돼 가지고 있다 말입니다. 이거 과거사요.

“저희 것임이요” 하는 건 과거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꾸 껍데기로 이라면 자꾸 잘 듣고 하지마는 외나 진리를 말하면 안 들으니까 여러분들이 참 이거 문제라 그말이오.

여게서 가르친 그 진리가 자기가 실지로 예수 믿는 행동을 해 보면 아멘이 될 건데 행동을 안 하기 때문에 암만 가르침을 배워봤자 소용이 없어. 모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이 배워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이 진리 떠나서 아무데도 안 갑니다. 행동 안 해 본 사람은 뭐 이 진리는 듣기 싫고 나중에 가서 오늘은 좋다고 떠들어 쌓지만 나중에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갈란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여기서 천국이 내것 돼야 되고, 내 마음이 심령이 돼야 되고, 내 마음이 심령이 된 내 심령된 내 마음은, 심령된 내 마음은 가난해야 되고, 가난해야 되고, 그러면 가난한데, 가난한데 뭐 돈 가난입니까, 권세 가난입니까, 지식 가난입니까, 세상 가난입니까, 중생된 영 하나님의 형상 가난입니까? 뭐 가난입니까? 자, 하나님의 형상 가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님의 형상 가난. 하나님의 형상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거는 필연성입니다.

자기가 예수 믿어보면 나중에 가서 아무것도 귀찮소. 온 천하를 다 준다 해도 싫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뭐인데? 형상 첫째가 뭐입니까? 첫째가 뭐이요? 첫째가 뭐입니까? 지식성. 지식도 둘이요. 마귀 지식 하나님의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갈급한 것이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이 하나님의 지식을 얻고 얻고 얻어도 항상 가난이오. 가난이라 말은 받아 놓은 것을 무시해 그렇습니까 받아 놓은 것은 보배로 강직하고 있지마는 받을 게 또 많기 때문에 지금 더 받고 더 받고 평생 영원토록 가난한 심령 가진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알아듣겠어요? 요것만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도 허탄한 걸음 안 걸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런 짓 하지 않아요. 알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석 둘 읽어 봤지요. 하도 답답해서 그랬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자기가 하늘나라가 자기 나라 돼 있는 사람 있고 이 가운데서도 지금 세상이 제 나라 돼 가지고 있는 사람 있고, 세상이 제 나라 돼 있는 사람은 소망이 세상에 있을 것이고, 하늘나라가 제 나라 되어 있는 사람은 소망이 하늘에 있겠습니까? 하늘나라가 제 나라 돼 있는 사람은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이 제 나라 돼 있는 사람은 소망이 세상에 있고 하늘나라가 제 나라 돼 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까? 하늘나라? 하나님의 형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하나님의 형상. 왜?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 이것이 자기 실력이기 때문에 그 실력만 갖춰 놓으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게 다 제것인데 안 갖추면 소용이 없거든. 이러니까 천국을 다 준다고 해도 자기가 하나님의 완전히 형상화 안 되면 소용이 없어. 하나님의 형상화 되는 거, 하나님의 속성화 되는 거.

그러기에 시편 17편에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분깃을 받아 가지고 먹고 쓰고 남는 것은 자기의 어린 자녀에게 상속시켜 주고 만족한다” 제 새끼기 때문에 이것은 자격이 있으나 없으나 준다 그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깬다니 무슨 말이요? 이 세상 싸움 다 싸우고 이다음에 부활할 때가 그때 깬 때입니다, 부활할 때에. 부활할 때에 뭣이 제일입니까? 부활 영생할 때에 그때 뭣이 제일입니까? 그때 뭣이 제일이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 이것이 제일이라.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제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이것을 깊이 새겨 가지고 여게 대해서 자기가 확실히 이 말씀이 자기 복음이 돼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전부 껍데기로 예수 믿고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땅의 것이 자기 소망이면 바로 됐소 틀렸소? 바로 됐다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안 됐어.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의 부귀 영광 존귀 권세 그것이 자기의 소원되어 있는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그거 뭐할라고? 그거 뭐할라고?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아서 꼭 같은 자기 되어지는 것을 소원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이거야, 이거.

이러기 때문에, 안 나오다가 가끔 가다 새벽기도 삐쭉 나와 가지고 뭐 알 거라, 알기를? 안 나온 자는 몰라요. 배우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그러니까 말은 쉬운데 속에 뜻이 어렵다 그말이오. 그러면 뜻을 가르쳐 줄라고 쉬운 말로 암만 지금 말해도, 이거 보십시오. 아까 주석 가운데 여게 가르치는 것은 뭐, 이 가난은 자기 영의 가난이다. 그러면 만물의 소원은 우리 행동에 있고, 모든 우리 행동은 육에 있고, 육의 소원은 이 심령에 있고, 심령 소원은 중생된 영에 있고, 중생된 영의 소원은 하나님에게 있고, 요래 있는 요것이 하늘나라의 조직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자, 하나 물어봅시다. 요새는 새벽기도 날이 춥고 하니까 그만 못 나와요.

못 나와서 요새 나오는 사람은 한 팔백 명 될까 그래요. 제일 많이 나올 때 천 명쯤 나왔는데, 자, 내일 아침에는 추워도, 암만 추워봤자 뭐 하늘나라 가는 그거, 그것도 못 견뎌 가지고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에는 춥든지 어짜든지, 종을 사놔요. 그거 왜 새벽으로 잠깨라고 따르릉거리는 거 있잖아요? 그 종을 딱 사놔 가지고 따르릉거리거든 후닥딱 일어나버려. 그만 뭐 ‘좀 누웠다’ 하지 말고.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똑똑히 들고 있어 봐요. 다 들었네요, 다 들었어. 다 들었는데, 다 들었는데 내일 새벽에 못 나오거든.

자, 다 들었는데 내일 새벽에 못 나오는 것은 나오기 싫어 안 나옵니까 약해서 못 나옵니까? 나오기 싫어 안 나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약해서 못 나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약해서 못 나와요. 그라면 약자니까 불쌍하지 않소? 약자니까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지요. 내일 아침에는 다 나옵시다. 다 나와요.○○○씨 나와요, 요새 새벽기도? 나와요? 안 나오면 병들어 죽어. 나오면 쌩쌩해지지. 자, 내일 새벽에는 다 나오도록 합시다.

여러분들, 세계의 학자들이 모르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님이 가르쳐 주시니까 좋지 않소? 좋지 않소? 이거 꼭 옳고 바른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소원은 중생된 영에 있어야 됩니다. 중생된 영의 소원은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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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패괴 된 세대/ 창세기 6장 5절-12절/ 1988. 5. 11. 수저녁 선지자 2015.12.30
55 펠라기우스주의펠라기우스주의/ 창세기 6장 1절-12절/ 1988. 10. 21.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4 평상시 생활이 대환난 때의 생활이다/ 누가복음 16장 10절/ 1984. 9. 27. 목새벽 선지자 2015.12.30
53 평소에 기름 준비하는 법-자기부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3. 11. 4.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2 평소에 전력하여 말씀을/ 마태복음 14장 22절-23절 / 1984. 8. 3.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1 평안은 죄의 온상-아합/ 디모데후서 4장 1절-4절/ 1979. 12.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0
50 포도나무 가지의 제일 성공하는 방편/요한복음 15장 1절-11절 /1988. 1. 6.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49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9절-15절/ 1981. 12. 12. 토새벽 선지자 2015.12.30
48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8절/ 1984. 4.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47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15장 1절-14절/ 1983. 5. 15.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46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1983. 5.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0
45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5절/ 1979. 7. 18.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44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2절/ 1988. 1. 5. 화새벽 선지자 2015.12.30
43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5절/ 1988. 9.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42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7절/ 1988. 09. 12. 월새벽 선지자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