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비유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12일 토새 

 

본문 : 요 15:9-15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이 포도 나무  비유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한 말씀인데 오늘 아침에 봉독한 이 말씀이 그  결론입니다. 그 결론에 세 가지 큰 은총을 여기에 표시 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신 것 같이 우리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이것입니다. 또 둘째는 주님이 가지신 그 기쁨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심과 같은 그 기쁨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이 아버지가 알려 주신 것을 다 아심같이 우리도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큰 은혜를 결론으로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하심을 주님이 다 받아서 감당한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다' 이래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은  좋아해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줘서 안보하고 충만케  하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한다 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좋아하셔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예수님을  책임지고 예수님에게 유익하도록 전부를 다 투자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나의 사랑하는 자라' 말했고, 아들이라 하는 것은 기업을 받는 것을 가리켜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지만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중에 있는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중에 있는지 이랬는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예수님이 다 받게 된 것을 가리켜서 '사랑 안에 거한다' 이렇게 말씀했고,  이제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안에 있으니까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한 것을 전부 모든 걸 다 줬습니다.

 그러면 현재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같이 됐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하는 것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크심이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크심이나 꼭 크심이 같은 것을 말했고,  그랬는데 예수님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계명을 지켜서 거하시게 된 거와 같이  우리도 그 계명을 지키면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고 그 사랑을 다 받아서 자기  것이 될 수 있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랑을 자기가 받아 가지지는  못한다. 하나님이 전부를 다 기울여서 우리 유익하게 하지마는 그 유익을 자기가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 전부를 다 가지고 우리를 책임져 주시지마는 우리가  책임져 주심을 입지를 못한다. 모든 것을 다해 가지고 우리 좋게 하시지마는 그  좋게 하심을 자기가 받지를 못한다 그런데 계명 지키면 받게 된다 그말입니다.

 너무 이 성구가 커서 자기가 된 것만치 알지 자기가 된 것 이상은 알지를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연계시인데, 보면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자기를, 자기 상관이 사랑한다든지 또 자기의 부모가 사랑한다든지 또 자기  부부간이 사랑한다든지 어떤 좀 자기보다 실력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하면  그 사람은 대단히 든든해지고 행복감을 누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보면 자기 상관이 그 사람을 사랑해서, 좀 특별히 사랑해서 모든  걸 책임지고, 참 이 세상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성질은 같으니까. 권능이  다르지. 그만 그 사람이 위로가 되고 평안이 되고 배짱이 나오고 담대해지고  그렇습니다. 또 결혼한 사람들 보면 그 자기 남편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한다 하면 그만 참 평안하고 든든하고 그 좋은 것은 그 본인이  아니면 모를 만침 그렇게 좋습니다. 만일 일국에 왕이 자기를 사랑해서 있는  것을 다 아낌없이 다 기울이고 또 책임을 지고 자기 유익되게만 도모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그 왕 다음에는 존귀할 것 아닙니까?  이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 자기가 인정하고 받고 있다고  하면 이것이 평강 중에는, 기쁨 중에는, 참 만족 중에는 더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그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 기쁨도 본인만 기쁘지 다른 사람  기쁘지 않은 것 있고, 기뻐도 다른 사람들이 환영하고 찬성하지 않는 기쁨 있고,  주님의 기쁨은 사람들이 몰라서 핍박을 하지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다 감탄하는 기쁨이요, 다 환영하는 기쁨이요, 모두다 찬성하는 찬송을  하는 그런 기쁨이요, 또 하나님이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기쁨입니다. 창조주가  기뻐하시는 기쁨이요, 모든 피조물이 기뻐하는 기쁨이요, 본인이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어. 이 기쁨도 크기 때문에  얼마든지 연구를 해도 자기가 된 것 이상은 모릅니다.

 또 '아버지께서 나에게 알려 주신 것 내가 다 안 것처럼 내가 안 것 전부 다  알려 준다' 알려 준다 이것을 지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주실 때에 '아나 이거는 권능이니까 네가 받아라' 이렇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너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니 이 영광을 받아라' 그렇게  영광을 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죽은 나사로를 살아나도록 기도를 하고 명령을 해라' 그럴 때에 아버지가  주님에게 주시는 것은 권위와 영광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나사로야' 부르니까 벌써 썩었는데 거기서 살아났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까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아, 이분이 과연 하늘에서 오신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로구나!' 모든 사람이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 큰 영광을 예수님에게 '아나!' 영광 이래 주지 않았고 그것도 내나 알린  거요. 그것도 알렸습니다. 알렸는데 알려 주시는 그것을 알려 주시는 그대로  하니까 영광이 됐고, 다니엘 사자의 입을 막는다든지 그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는 그것도 그런 권능 준 것 아니오. 그것도 알린 거요 '다니엘아  끝까지 네가 기도 한다 해라' 이래 알렸다 그 말이오. 거기서 끝까지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권능과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무형의 존재인데,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는 것은 전부  영감 하나 가지고 다 합니다. 영감이 나와 가지고 이제 문서계시가 됐습니다.

영감 하나 가지고 하시는데 영감 그거면 하나님이 지혜로 주실 때에 주시는  영감도 있고, 권능되는 영감도 있고, 원수를 멸하는 영감도 있고, 원수 멸하는  것도 원수 멸하는 걸 주지 않았다 말이오. 이렇게 해라 할 때에 그러니까 원수가  멸해졌어.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세 바퀴 돌아라' 할  때에 도니까 됐다 그거요. 그게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 내게 알려 주신 것' 그 말은 아버지의 전부를 다 받은  것이라 그 말이오. '내가 다 너희에게 알리겠다' 그 말은 내가 너희에게 다  주겠다 그말입니다. 알리는 것이 주는 방식이오. 알리는 게 주는 방식, 이  문서로 알리는 것은 그저 윤곽적으로 대충이고, 또 영감으로 알리는 것은 이제  진짜입니다. 이런데 내게 있는 걸 너에게 다 주겠다 그 말이오. 알린다는 것이.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계명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계명 지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네 기쁨으로 충만케 해라. 계명 지키면 내 친구라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 네게 전부 다 알리겠다' 이 참 축복이 어떻게 큰지, 양이 커서 보고  알기가 참 어려운데, 대단히 큰데. 이 세 가지를 받는 방편은 꼭 하나 뿐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것도 그 방편이 하나, 주님으로 기쁨으로 우리 안에 충만케  하는 이것도 그 방편이 하나, 또 주의 아시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어 다 아시는  것을 우리에게 다 알게 하시는 그 알게 하심을 받는 것도 그 방편이 하나입니다.

알게 하셨지마는 알게 하심을 받지 못하는 자는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안에 거한다' 그 말은 사랑하셨지 마는 사랑을 자기가 실질적으로 받아 있는  것을 가리켜 안에라고 말했고, 또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지마는 제 기쁨이  안 되는 그것이 있는데 제 기쁨이 되는 것, 그런 것은 다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인데 그것은 계명 지키는 것 하나 가지고  됩니다. 다른 것 가지고 되지 않고 계명 지키는 것 하나만 가지고 됩니다.

 그러면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인가? 잘못하면 우리가  계명 지키는 그 계명 지킴의 동기나 목적이 중요한 것인데 동기나 목적은  생각지도 못하고 상관도 없고 그 방편만 쓰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그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고 하면 말씀은 방편입니다.

 예를 들면 '네가 동으로 가야 피난한다. 네가 산으로 도망가야 피난한다.' 롯이  산으로 도망갈 때에 도망을 치는 그 발걸음도 왼발 오른발 힘 있거든 바꿔가면서  뛰어 가는 것이 뛰어 가는 방편이오. 그 방편이 구원됩니까? 돌아서 가지고 소돔  고모라성으로 오른 발 왼발 바꿔가며 뛰어 가면 걸음은 꼭 같이 뛰어 가는데  멸망 속에 가서 불탈 것 아닙니까? 목표가 발라야, 피난처를 향해서 달아 나야  되지요.

 이러니까 계명을 지키는 그 계명은 하나님이 주신 이 문서계시 또 영감계시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이지마는 그 계명 그거는 계명 중에 방편이고 계명의  동기와 목적인 계명의 생명이 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는 것이라야 생명있는 계명 지킴이 되지 형제를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목적으로 다른 동기에서 계명 암만 지켜  봤자 그거는 계명을 지키는 방편만는 것이지 동기와 목적은 없으니까 생명은  없는 계명 지키는 라 그 말이오.

 '내 계명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사랑하면 어디까지 사랑할 건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 이상 더 큰 사랑이 없다. 이 이상 더 계명 지키는 것이 없다.

이것이 최고의 계명을 지킨 자다.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생명을 버림같이  너희도 서로 이 구원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되 생명까지 희생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라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받는 데에는 계명 지키는 그 하나만, 계명 그거  하나만 지키면 이 세 가지가 다 한목 되는 것인데, 한목 된다 말은 세 가지가 다  같이 된다 말이오. 다 된다 말 아닙니다. 계명을 다 지켜야 다 되지. 계명을  지킨 것만치 이것이 이루어집니다. 계명의 100분지 1을 지켰으면 이 세 가지가  세 가지 다 100분지 1씩 이루어질 것이고, 이 계명을 100분의 50을 지켰으면 이  세 가지가 50씩 될 것이고, 반씩 될 것이고, 이 계명을 다 지켰으면 이 세  가지가 다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기를 날마다 죽노라는 것은 이 계명을 지키되 형제 구원을  위하여서, 서로 구원을 위하여서 자기의 생명을 날마다 바쳐 놓고 있다 그  말이오. 평생 한 번도 못 바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은 일년을 살면 365번을  생명을 바쳤습니다. 바쳐도 하나님이 끝나지 않게 하시니까 바쳐도 또 남아 있고  바쳐도 또 남아 있지 본인은 바쳤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다음에 구원의 그  영광이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제가 대구에 십자가 노인이라고, 그분이 또 장로 됐다더니 목사 됐다더니마는  그분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그만 그분을 절단을 내 버렸습니다. '아, 너  그러니까 널 우리가 목사 안수를 시켜줄께.'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을 죽여 버렸다  말이오. 지금은 그분이 살았는 지 어쨌는지, 살아 있는지 몰라도 이름은 죽었어.

권위는 죽었어. 그 성이 뭐이지? 이가? 지금 아마 살아 있기는 있을 것 같은데  그만 죽어 버렸어.

 대구역에서 '예수 천국' 이러고 다녔는데, 그러면서 역으로 양 사방  돌아다니면서 그러고 다녔었는데 그분을 내가 역부러 하루밤 만나가지고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매일 생활이 어떻습니까?' 이러니까 '저는 그래  증거하러,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증거하러 가다가 갇히기도 수없이 갇혔고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지금은 이제 문제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예  내가 집에서 딱 떠날 때에 이제 살아 돌아온다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가져 보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 구원을 전하다가 어디서 어떻게 죽을런지 모른다. 맞아  죽을런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살아 돌아와 가지고 어떻게 하리라.' 하는  그런 생각 한 번도 못하고 '이제 오늘 가면 다시 못 온다.' 그것을 확정을 짓고  다닌다고.

 이러니까 그분에게 두려움이 없고 항상 기쁘고 즐겁고, 하루밤 내가 같이  있었는데 머리만 허옇지 얼굴이 벌거이 광채가 나. 어떻게 영광스러운지. 아마도  본 사람은 봤을 건데, ○○목사 대구 가기 전이지요? 대구 가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있었어? 있으면 다 알 건데? 그때 ○○○목사가 붙들려 가지고 그만  절단을 냈어 그 내가 알아. ○○○목사님이 그런데 그때 그 역에 없었어.

○○목사 갈 때 없었어.

 그때는 대구역에 누구든지 가면 그만 그 사람이 것보다도 먼저 보입니다.

광채가 얼굴에 벌거이 광채가 환하이 광채가 난 사람이 '예수 천당, 예수 천당'  하면서 십자가의 깃대 들고 이래 가지고 쪽 나가기 때문에 그 사람 제일 먼저  띄어요.

 이러니까 자기가 하도 박해를 당해 쌓아니까 뭐이 될지를 모르니까 그 사람  비결이 '나갈 때에 집에 오늘은 살아 돌아온다 하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날 밤에 그 사람하고 저하고 얘기하는 그  결론이라. 그것이 그이에게 모든 걸 다 주셨어. 계명을 최고의 계명을 지켰어.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더 큰 계명 지킴이  없나니, '내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사랑인데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 말은 더 큰 계명 지키는 것이 없다 말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때는 그분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었고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우러러 봐. 아마 전국에 다 소문이 났어. 제가 저 시골에 있으면서 그 말이  들려서, 대구 갔다 온 사람인데 '이런 분이 있더라' 다 눈에 띄게 해 가지고  이랬는데 그때 주님의 사랑 안에 있었어. 또 주님의 기쁨이 그 속에 충만했기  때문에 모세 모양으로 그렇게 광채가 났다 그 말이오.

 또 그때는 내가 그날 밤에 만나 가지고 거기서 뭘 얻겠다고 이래 이야기하는데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별계의 이랴기라. 별 세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말이오. 별 세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이면도 물으면 이야기 하는 것이  별계의 이야기이고, 이 땅 위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하늘에 있는 이야기라 그  말, 대답하는 것이.

 그랬는데 아마 지금은 살아 있어도 가 보면 내나 일반 목사 이야기가 나오지  그분의 이야기가 없어졌을 것이라 말이오.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알렸는데 알려 주신 그것을 받아서 알지를 못하고 가리워져 있을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를 사랑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게  뭐입니까?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서로 사랑하라' 했으니까 형제 구원 자기  구원 그거는 두 조건이라 말이오. 주님은 우리를 사랑 하셨었지마는, 이는 내가  저를 사랑하고 저가 나를 사랑하니까 저가 내 사랑하는 사랑을 받아야 되겠고  내가 사랑을 줘야 되겠고 이러니까 저가 나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고 나는 그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이 외에는 이 세  가지를 얻는 방편이 없습니다.

 자타의 구원을 위하여, 잘살 사람이 못살고, 높아질 사람이 낮아지고, 자유할  사람이 자유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 안할 수 있는 사람이 하기 싫은 것 안할  수 없고, 이거 위해서, 모든 지식도 지위도 부요도 영광도 이거 위해서 희생한  사람을 주님이 냉수 한 그릇의 희생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는 그 법대로  그에게 영원히 베푸실 것이요, 또 세상에서 받는 것이면 족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그게 좀 돈 좀 잘 벌고 권세있는 남편만 가져도  배짱이 나옵니다. 그 친척만 있어도 배짱이 나오요. 결혼식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그 교회에서 밑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자기들 돈 좀 있다고, 남편 좀  거석한 사람 있다고, 자기 친척이 좀 권위있는 사람 있다고 아무래도 예배당에서  결혼식 해야 되겠다고 이래 가지고 시비를 거니, 이 교역자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도 있지 못하지 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을 받지도 못했지 껍데기만  목사지 속에 알맹이는 목사가 안돼 놓으니까 얼떨떨해서 이게 난제가 되어서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해 가지고 시비가 나한테까지 왔어.

 내가 그런 것 한 군데 뿐 아니라 몇 군데 봤다 말이오. 그래 내가 말했어.

'다른 사람 하는데 같이 하지 뭘 잘났다고 그렇게 해? 뭐 특별하다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특권을 쓰면 좋은 줄 알아? 화덩어리야! 안돼!' 그걸로 끝나  버렸어. 인간의 그까짓 게 몇 닢 푼치 안 돼. 오늘 스위치를 주님이 딱 누르면  푸리팅팅한 송장 돼 버리는데, 허, 이것도 좀 권리있는 것이 절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 있다고 하면 그만 우쭐해지고 어깨가 나오고 이래 되어지는데 주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어찌 될 건가!  한 달에 월급만 5, 60만원 돈 100만원 받아도 막 우쭐하고 이래지는데 만유주의  주님의 것 전부 자기가 다 받을 수 있다면 어찌 될 건가, 되기를? 이거는 커서  사람이 작은 사람은 듣지를 못해, 알지도 못하고.

 세상에 제한받지 않는 이 기쁨이 십자가상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떻게 날 이렇게 대접합니까! 모든 피조물 중에 최고의  대접을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의 그 인성이 말하는 이 기쁨, 우리는 공산주의가 독침만 가지고 와도  기쁨이 다 달아나 버리는데 이럴 수 있는 그 기쁨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입니까? 이것은 단지 방편이 하나 뿐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처럼 자타의 구원 위해서 희생하는 여기만 있다.' 그 하나를  방편으로 썼어. 이것을 알고 목회에 나서고, 이것을 알고 권찰로 나서고,  이것을 알고 반사로 나서고, 이것을 함으로써 이 세 가지가 자기에게 와 지는  것 이걸 봐야 피곤치 않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을 하면서 경건이 유익이  되리라고, 유익의 근본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자, 경건을 이익의 근본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다 탈선됩니다. 이러면 무슨 세상 유익, 이 썩어질 것, 어떻게  가치있는 일의 댓가를 썩은 것으로 줄 수 있겠소? 가치있는 일은 썩지 않을  것으로 댓가를 줘야 그 댓가가 바른 대가지.

 이러니까 일하다가 기어 들어가고, 일하다가 낙심되고, 누가 칭찬해 주면  우쭐해서 기가 나다가 탁 꺾어 버리면 그만 기가 안 나고. 그까짓 게 무슨 주의  기쁨인가? 그것이 무슨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그 자인가? 그것이 무엇이 주의  뜻 하나 찾아 가지고 찾으면 그로 말미암아 실상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가 받는  그 경험과 체험이 있는 자인가? 어리석소.

 우리 교회 남권찰들 다 썩었소! 다 죽었소! 무슨 일 하고 있소, 있기를! 상을  받을 줄 알아?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데? 남권찰들 일 안 해. 그래 가지고는  헛일이라. 왜? 뭣 때문에 책망해? 내게도 따라 같이 부수입이 있을 터인데  자기네들 헛일 하니까 거기에 동참한 나도 헛일이지. 뭐 무슨 수입이 있을 거라?  빈깡통이지.

 중간반 반사들 가운데서도 일을 하는 사람 약간 있고, 하되 칭찬따라 하고  하다가 휙 던져 버리고, ○○○ 반사도 제일 열심히 했는데 어떤 것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던져 버렸어? 어디다가 미혹을 받아 가지고 던져 버렸어, 던져  버리기를? 돈 보고 하나요? 어리석어!  자기에게 '이게 너 암만 해 봤자 유익 없다. 그런 돈 가지고 생활 곤란하고  어쩌고 어쩌고' 이렇게 마귀라는 놈이 이래 저래 가지고 그 열심을 깨트려서  약화시킨 그게 원수라! '원수가 네 안 식구라' 네 가까운 자니라.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평안할 도리만 생각하고, 어떻게 형제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많은 형제 구원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그것이 복이지. 뭘 가지고  왔는데? 딴거 없어. 내가 너희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한 것처럼'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이 한 방편뿐입니다.

 거룩한 행실이 뭐이며 경건이 뭐인가? 그것이 경건이지. 자타의 구원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발견하는 전 전력과 발견한 것을 이행하는 전력 그게, 뭐  발견 해? 주의 뜻이 뭐인데? 지금은 주의 뜻 아무것도 없어. 인간을 구원하는  이거 외에는 주의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그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죄인 부르러 왔다 치료하러 왔다.' 이 다음에 의인에  대한 당신의 뜻은 하늘에 있어. 지금은 구원하는 이것 만이가 이것이  전무(全務)라. 하나님의 전무. 전공. 뭐인 줄 알고 일을 해야지. 이것 때문에,  일하기 때문에 일하는 자가 보수, 돈이 이래 오나 저래 오나 그게 아니라.

보수를 보면 벌써 빠져 버렸어. 베드로가 풍랑을 보니까 빠져 들어가.

 이 세상에서 어쨌든지 주님만을 바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주를 기쁘시게  주를 위하는 것, 주님을 위하는 것, 주님을 위하는 것이 뭐인데? 당신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주를 위한 것이지. 우리가 주님을 위하는 것 뭐 돈 드려 가지고  주님을 위할 줄 알아? 돈 그게 주님의 것이라, 돈을 드리는 것 가지고 주님을  위할 수 없고, 주님을 위하는 일 하기 위해서 돈을 드렸으면 그것도 가치있는  거라. 돈을 바쳤으면 가치있어. 이러기에 자기의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살려고,  생명까지 바쳐서 살려고 이러는 것이지 뭐 직업 모양으로 그런 것 바라서 하는  것입니까?   이러기에 미국 같은데 가면 복이 없다 말하는 것이 거기는 전부 차 타고  돌아다니지 집이 넓지 이러니까 하루종일 제가 돌아다녀 봤자 몇 사람 못 만난다  그 말이오. 여기는 뭐 사람이 버글 버글 하니까 자꾸 예수믿으라고 전하고,  이러니까 그 장목사라 하는 그분은 아래도 전화가 왔어. '지금은 또 대전에서  전하고 어디서 전하고 이러니까 어쨌든지 기도해 주십시오. 특별 기도해  주십시오.' 많은데 한 마디를 전해서 많은 사람에게 예수믿고 구원 얻으라고  고함을 지르는, 이렇게 전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서 한 달에 얼마씩 감사하다고  사례를 드립니다.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갈 때마다 전보가 옵니다. 그런데  전보가 하도 와 쌓아니까 전하는 사람도 예사로 안다 그 말이오. 그래 내가  전보가 오면, 반드시 그 전보를 받으면 내가 무릎을 꿇고, 암만 바빠도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뭐 그 사람들 돌아다녀 봤자 욕이나 얻어먹고 뚜드려 맞고 갇히기나 하고  그러는데 뭣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소원을 깨닫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이 하나뿐인 줄 알기 때문에. 인간 구원밖에 없어. 알고  일해야 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아라' 선이 뭐입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다가 낙심치  말아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 되면 거둡니다. 피곤치 않은 것이 진짜로 하는  것이라. 피곤치 아니해야 바로 알고 행한 것이라. 피곤한 것은 벌써 그 동기  목적 그 결과가, 동기와 목적인데 그 산 결과가 자기에게 오는 그것을  잊어버렸소. 잊어 버렸으니까 내나 육신주의지 딴것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다 할려면 하고 말라면 말고, 하나님은 또 그게 안 하면 딴 사람  데리고, 당신은 손해 안 봐요. 백목사도 한다고 해도 백 목사 안 하면 이 돌  가지고도 백목사 만들 수 있소. 똥 덩어리 가지고도 백목사 만들 수 있소.

당신의 권능이면 못 만들 것 없어. 이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다는 그  말이 뭐이냐? 물질, 인간은 물질뿐이라. 영과 물질 피조물뿐인 데 피조물 그걸  당신이 아브라함 되게 하니까 아브라함 됐지. 다 같은 사람인데 롯도 되지  않았소? 가룟 유다도 되지 않았소?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고 교만할 것이 없어. 뭘로 일하는 줄  알고 해야 될 터인데 이걸 모르고 하기 때문에 목회 나가도 목회하는 것만치  사람의 구원을 절단낸다 말이오. 정신차려 살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간단하게 이 세 가지를, 계명 지키는 것으로만 받을 수 있다 하는 이 세 가지를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10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권찰님들도 되게 바쁜 일이 있으면  와서 잠깐 출석하고 안면이라도 내고 가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권찰회 끝까지  참석할 수 있는 자유있는 사람이라야 되지, 그렇게 중한 회의에 참석 못하면  종이지 자유를 못하는데, 주님이 그렇게 하라 하는가? 그거 주님이 시키는 것  아니라. 마귀 세상이 붙들어서 자유하지 못해 그런 거라.

 '아, 목사님은 그렇게 바쁜 줄을 모르고' 목사는 권찰들보다 바쁜 것 몇 배  바쁜 것 다 통과하고 나왔소. 뭘 몰라, 모르기를? 찍해야 해 봤자 찍해야 돈벌이  가는, 일하러 가는 그것뿐이지 뭐이라? 그러면 저녁에 자지 말고 뭘 해 놓고, 딱  해 놓고, 전기밥솥에 딱 꽂아놓고, 전기밥솥도 보니까 시간 재는 것 있데. 시간  재는 것, 몇 시에 딱 불 오면 몇시가 딱 되면 여기에 가면 딱 밥 돼 가지고  있고, 뜨끈 뜨끈 돼 가지고 있고, 반찬 해 놓은 것 그 뭐 보온밥통인가 요즘  그래 좋은 게 있으니까 그래 놓으면 뜨실 것이고,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뒈지지! 왜 일하는데 돈이 없어? 뭣 때문에 돈이  없어? 하기 싫은 일만 해 보지, 먹기 싫은 것만 먹어 보지, 입기 싫은 것만  입어보지 막 돈이 지적지적 안 모이는가! 뭣 때문에 분수넘게 먹고 싶은 것만,  분수 넘은 먹고 싶은 것, 분수 넘은 입고 싶은 것, 분수 넘은 쉬고 싶은 것, 다  그러니까 거지가 돼 가지고 있지.

 죄를 지어 거지 돼 가지고 있고, 이래 가지고 '아무래도 이래야 되겠다. 다른  사람은 지금 피아노 샀지마는 나도 보온밥통 사야 되겠다. 다른 사람은 회사  차리지마는 나는 지금 전기밥솥 하나 사야 되겠다' 왜 그러면 주님이 안 줘, 안  주기를?

 그리고 남녀 중간반 반사로서 참석 않는 그런 건방진 행위는 하지 말아요, 용납  안할 터이니까. 건방진 행위를 하지 말고 일찍 와서 참석을 해요. 하기 싫으면  사표내고 말고. 할려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게 '아, 저 사람 보니까 나도  이래야 되겠다!' 이래야 되어지지, '아! 그 사람 그러니까 나도 이래야 되겠다'  다른 사람 미끌어지게 하면 주님의 사랑 밖에 쫓겨나가는 것이고, 마귀 기쁨이  그 속에 있고, 마귀 취미, 마귀 기쁨만 있고 하나님 기쁨 없으면 저 망하지 어쩔  거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 주시는 것 나 못 받고 마귀 뜻만 알아  그대로 하면 망할 기쁨이지 딴거 뭐 있소? 일생 동안 살고 나면 망하는 것뿐이지  뭐 있느냐 그 말이오.

 하나님의 도는 업신여김이 아닙니다. 절대자가 절대자의 도요 절대적인 권위  가지고 하는 것이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그것 주는데 권위가 없어? 없어질  것을 줘도 권위가 있는데, 없어질 돈도 권위가 있는데, 없어지지 않을 것을  주는데 권위가 없어? 살려 봤자 송장 되고 암병 치료해 봤자 송장 될 그것도  치료 할 수 있으면 권위 있다고 막 우쭐 하는데, 고치면 영원히 완전할 수 있는  그 치료를 하는데 권위가 없어? 얼마든지 권위가 있습니다.

 왜 권위가 없어? 그거 잘못 권위 쓰다가, 권위 쓰다 보면 그게 까무라쳐 죽을까  싶어서 설설 메고 기는 듯이 하는 것이지 정말로 하나님의 도가 권위가 없어서  하나님의 도인들이 권위를 안 씁니까? 상대방이 까무러칠까 싶어서 예수님이 안  썼고 우리가 안 쓰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1 팔 덕/ 베드로후서 1장 3절-11절/ 1986. 3. 13. 목새벽 선지자 2015.12.30
60 팔 덕과 유익 세 가지/ 베드로후서 1장 5절-11절/ 1984. 9. 7. 금저녁 선지자 2015.12.30
59 팔복/ 마태복음 5장 1절-12절/ 1985. 9. 2. 월새벽 선지자 2015.12.30
58 팔복/ 마태복음 5장 1절-12절/ 1986. 10. 31.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7 팔복-심령가난/ 마태복음 5장 1절-3절/ 1986. 10. 31. 금저녁 선지자 2015.12.30
56 패괴 된 세대/ 창세기 6장 5절-12절/ 1988. 5. 11. 수저녁 선지자 2015.12.30
55 펠라기우스주의펠라기우스주의/ 창세기 6장 1절-12절/ 1988. 10. 21.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4 평상시 생활이 대환난 때의 생활이다/ 누가복음 16장 10절/ 1984. 9. 27. 목새벽 선지자 2015.12.30
53 평소에 기름 준비하는 법-자기부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3. 11. 4.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2 평소에 전력하여 말씀을/ 마태복음 14장 22절-23절 / 1984. 8. 3.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51 평안은 죄의 온상-아합/ 디모데후서 4장 1절-4절/ 1979. 12.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0
50 포도나무 가지의 제일 성공하는 방편/요한복음 15장 1절-11절 /1988. 1. 6.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9절-15절/ 1981. 12. 12. 토새벽 선지자 2015.12.30
48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8절/ 1984. 4.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0
47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15장 1절-14절/ 1983. 5. 15.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46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1983. 5.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0
45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5절/ 1979. 7. 18.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44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2절/ 1988. 1. 5. 화새벽 선지자 2015.12.30
43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15절/ 1988. 9.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42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1절-7절/ 1988. 09. 12. 월새벽 선지자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