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비유

 

1984. 4. 6. 금새

 

본문: 요한복음 15장 1절∼8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는 주님과 우리 사이, 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그 관계가 어떠한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에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으나  한 몇 가지만 지금 생각하고 기억하면 그 남은 것은 차차 차차 연상돼서  이루어집니다.

 첫째로 기억할 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는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와의  관계처럼 떨어지면 죽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는 연결이 돼야 되지 연결이 안  되면 죽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연결돼야 되고 주님의 그 능력과  우리의 능력이 연결돼야 되고, 주님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이 연결돼야 되고,  주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연결돼야 되고, 주님의 지혜와 우리 지혜가 연결돼야  되고. 주님의 그 지능과 우리 지능이 연결돼야 됩니다. 어쨌든지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영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연결을  가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마음. 몸. 행동 이것이 주님과 연결이 돼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마음에나 몸에나 행동이 언제든지 주님으로 인해서 움직이도록  주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도록 이렇게 주님 없이 나 혼자 내 마음을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소원 저런 소원. 이런 뜻 저런 뜻 이런  소원 저런 소원 그렇게 우리 마음이 주님에게 연결 되지 안하고 우리 마음대로  날뛰는 그거는 전부 자기가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옛사람입니다.

제가 아무리 도덕을 말하고, 선을 말 하고 또 가정을 위하는 행동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하는 무슨 봉사 일을 하고 어떻게 하든지 주님과 연결되므로 되는  그거 아닌 것은 전부 다 옛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천인이고 만인이고 전인류, 전부의 그  움직임의 행동이 다 옛사람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전부 자기가 들어서 자기를 죽이는 자살 행위뿐입니다. 자살 행위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혹 말하기를 안 믿는 사람에게도 도덕이 있는 그런 도덕은  그것은 믿는 사람들과 같은 것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에게  죽었지마는 다 죽지 안하고 조그매 남아 있는 그것이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 학자들이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과 연결이 없으면 죽는다, 예수님과 연결 없이 하는 것은 전부  죽는 운동이요. 죽음의 행동이요, 죽는 것뿐이다 요걸 우리가 단단히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주님과 연결없이. 연결없으면 죽고, 고만 연결없으면  죽습니다. 우리 마음이 뭐 죽었다고 대번에 표가 납니까? 그렇지마는 주님과  연결없으면 연결이 끊어지는 그 시간 벌써 우리 마음은 죽었습니다. 또 죽었다가  또 연결을 가지면 또 살아납니다. 우리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마치 전선의 전구가 붙어 있으면 칠이 빤짝 쓰였다가 요라만 또 꺼졌다가,  붙이면 쓰였다가 떼면 꺼졌다가 하는 거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나 몸이나 이것이 주님과 연결이 되면 살았고, 또 산 행동을 하고, 또 산  결과를 맺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연결 끊어지면 그만 죽은 것이요, 죽는 행동,  죽음의 일밖에는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몇 해를 예수님을 믿었든지 주님과  연결없이, 우리 마음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나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나 그것이 다 주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 생각없이 돈만 생각했든지, 인간만 생각했든지, 사건만  생각했든지, 어떤 물건만 생각했든지 주님과 주의 말씀 생각없이 그로 인해서  '말씀이 이러니 내가 이란다. 주님이 이것을 원하시니 내가 이렇게 한다.'  이렇게 주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든지 주님을 생각하므로서가 아니든지 어쨌든지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죽는다 하는 그것을 요 비유에서 우리가 단단히 잡아야  됩니다.

 우리는 가지, 비유컨댄 가지와 같고 주님은 둥치와 같은데 가지가 둥치에  떨어지면 그만 말라 죽습니다. 기독자가 주님과 연결을 끊으면 그만 그 뒤  부텀은 점점 범죄하는 생활, 타락한 생활, 멸망하는 생활 그 외에 딴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좋고,  사모하는 것이 좋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생각하므로, 주님을 생각하므로  인하여서 내게 생각이 떠오르는 그 생각이 사는 생각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므로,  주님을 사모하므로, 또 주님을 소망하므로, 주님을 생각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마음에 생각이나 소원이나 뜻이나  생겨지면 그것은 산 것이지마는 주님 잊어버리고 뭐 돈이나 사건이나 무슨,  전도라도 주님 잊어버리고 전도하는 것. 주님 잊어버리고 이렇게 성경을 읽는  거, 주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거, 주님을 잊어버리고 무슨  교회의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거 어깼든지 우리가 주님 잊어버리고 하면 그거는  벌써 주님에게서 끊겨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많지마는 그 말씀은 전부 주님을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기 쉽도록 주님을 나눠 놓은 것이 그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주님을 나누어 놓은것이. 마치 우리의 그몸이 여러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  지체가 되어 있는데 손가락 요거 하나 보고는 백 목사로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 목사로 모릅니다. 엄지 손가락을 봐도 모릅니다. 무슨 다리를 봐도  모를 것입니다. 이러나, 신구약 성경 말씀은 그와 같은 것인데, 모르지만 요  손가락 하나 거머쥐고 자꾸 붙들고 찾아 들어가면 결국은 백 목사 전신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요게 보면 손가락 거머 쥐고 자꾸 찾아 들어가서. 찾아 들어가면  팔목도 생기고 그 다음에는 몸뚱이도 찾게 되고, 머리도 찾게 되고, 하체도 찾게  되고 전부 요 하나만 하면 다 찾는 것처럼,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있는 이  모든 말씀은 주님의 그 전부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접촉할 수 있도록 이렇게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비유컨댄 주님의 사진이라 할까요? 주님의 사진이라 할까. 또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전부 한 지체라 할까, 그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  한 말씀을 거머쥐고 자꾸 찾아 들어가면 결국은 그 성경 한 말씀이 온 성경이 다  연결돼 가지고 있는 걸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한 말씀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성경 말씀 육십 육권이 있지만 그 말씀은 다  연결되어서 하나라, 거기에는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는데 그 전부는  하나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뭐 시간 없으니까 각자들이 생각하기를 '주님과 나와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죽는다.' 연결없이 마음의. 마음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생각이 마음의 행동 아니오? 소원이 마음의 행동 아니겠소? 욕심어 마음의 행동  아니겠소? 감정이 마음의 행동 아니겠소? 기쁨이니 이런 것이 모두 마음의 행동  아닙니까? 이러니까, 마음의 행동이든지 몸의 행동이든지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죽습니다. 뭐 끊어지면 이런 나무 베어 놓은거 모양으로 서서허  며칠 걸려 죽는게 아니라 이것은 주님만 끊어지면 즉시 죽습니다. 찰나에  죽습니다. 그러기에, 말을 우리가 하다가, 말을 하다가. 주님과 연결된 말을  하다가 그 연결이 끊어지면, 연결 되어 말할 때에는 그 말이 산 말이요, 자기가  구원을 이루는 말이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말이지마는서도 말을 하다가 그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그 다음부터는 죽이는 말 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요 말을 한 것은 예수님께서 '네가 반석의 말을 했다.

교회의 기초의 말을 했다. 모든 인간의 사망의 문제, 죄의 문제, 모든 문제를 잘  생명으로 해결 짓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귀한 말 했다 했습니다. 귀한 말을  했는데, 고렇게 말하던 사람이 금방 주님이 '내가 인제 앞으로 고난을 당할  것이다' 말하니까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말 했습니다. 그 말  하니까, 내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그 말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금방 아주 인류 가운데에 제일 고귀한 베드로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고귀한 베드로가 당장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뭐이냐? 주님과 연결될 때에는 살았고, 살리는 말하고, 산 일을  하지마는서도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죽습니다. 뭐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찰나에 죽고 그만 그 다음부터. 내나 말을 줄줄 해 나가는데 요  말까지는 산 말이고 고다음에 하는 말은 죽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또 그 사람이 금방 이 시간에는 생명에 속해서 산 사람 됐다가 그 다음에는 그만  죽은 사람 돼 버립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안  됩니다.

 제가 거창 그때에 제가 집사로 있을 때입니다. 전도사 아니고 집사로 있을  때인데 거기에서 양 사방 다니면서 집회를 많이 했는데 그때에 그 집회하는  가운데에서 깨닫고, '주님 잊어버리면 안 된다'하는 그것을 깨닫고 그저 그  입에다 늘 주를 불러서, 이래 길을 가다가서 속으로 주님을 자꾸 생각하고, 말을  안하고 속으로 주님을 생각하든지 그리 안하면 주님을 부르든지, 이렇게 주님을  늘 연구해 나가는데, 가다가 퍼뜩 딴것이 생각이 나 버려서 끊어졌으면 도로 그  사람이 뒷걸음을 쳐서 와 가지고서 거기에서 주님을 생각해 가지고 주님과  동행해서 걸음을 걸었지, 주님과 동행 하지 안하고는 걷지 안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 가정이 참 아주 신앙의 가정이었고 행복스러웠습니다. 장로의  가정이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그 뒤에 신앙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하니까  지금은 뭐 아무 그때 살았던 신앙이라는 것이 형편없이 다 죽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신앙이 사는 것도 뻐뜩 하면 살고, 또 죽는 것도  뻐뜩 하면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연결 없으면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을 자꾸 이래 생각하면 일은 언제하고, 가정은 언제  거석하고, 직장은 어짜고, 다 절단나고? 아니오. 주님을 생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주님이 전지자입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주님이 생각할 것은 생각하게 하시고  생각 안 할 것은 안하게 하시고. 일할 것은 일하게 하시고 안 할 것은 안하게  하시고, 원할 것은 원하게 하시고, 그 분이 전지자이신 데 전지자를 내가  생각하고 자꾸 그분을 모실 때에 그분이 쫓겨나가지 안 하고 내 안에 계시면 내  안에 계시는 분이 전지자이기 때문에 전지자가 내 마음을 주장하니까 생각할 거  안할 거, 소원할 거 안할 거, 원할 거 안할 거 전부 다 그대로 총총 다 해  가지고서 하나도 털끝 만한 것도 실수 실족 실패없이 당신이 해 나갑니다.

당신이 또 말해 가지고서, 우리가 원하게 한 것은 당신이 원하게 한 것을 우리가  원하고 하기만 하면 당신의 전능이 그 일을 꼭 기어코라도 이루어 주십니다.

 이런고로, 기독자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전부가 다 기적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이 피조물의 사는 것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의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생활  하는 것이 그것이 구원이 되지, 인간의 무슨 절제하고 열심있고 또 조심있고 해  가지고서 하는 그 생활이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조심하고  주의하고 또 기도하고 힘쓰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도울 수 있는  그 연결을 안 끊는 것이오. 연결을 안 끊는 것, 연결 안 끊는 데에 불과하고  연결 안 끊을 때에 오셔 가지고서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살아서,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위대한 생활을 한 것은 바울이 말하는 것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러면, 주님이 자기를  붙들고 살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 마음. 자기 마음이나 자기 몸은 주님의  수족같이, 주님이 이렇게 머리가 움직이면 머리의 움직임으로서 이 마음과 몸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렇게 주님이 자기 전부를 주관하고 자기는 주님을  따라서 산다는 것을 그것을 말해서 '이제는 내가 활동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활동할 때에 그 활동이 내 활동으로 나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 단독이 하는 말이 없고, 단독이 하는  행동이 없고 전부 주님이 언행심사한 그것이 바울의 언행심사로 나타난  것뿐입니다. 이게 영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불로 연단해서 없어지지 아니할 금보다 '보배롭다' 그  말은, 주님으로 인하여서 나타나지 않는 이것은 전부 이것을 제거합니다.

제거해서 다 이런 환난 저런 환난, 이런 형편 저런 형편 가지고 그런 거는 다  없애 버리고 순전히 주님으로 인하여 된 것만 남아 있도록 고렇게 만드시는 것이  이 세상 여러 가지 시험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연결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요거 단단히 기억합시다. 기억하고,  또 둘째로 기억할 것은 뭐이냐? 이라면, 포도나무에게 유익을 줄 자가 누구냐?  포도나무에게 유익을 줄 자가 누구냐? 포도나무에게 유익 줄 자는 누구냐?  우리에게 영이나 육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우리에게 유익 줄 자, 유익을 줄 자는  누구냐? 포도나무에 유익 줄 자는 누구겠습니까? 유익줄 자는 포도나무 둥치  포도나무 둥치. 그 다음에 유익을 줄 자 하나 있는데 뭐입니까? 누구입니까?  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는 그 농부라, 농부가 또 이걸 잘 가꾸면은  포도나무 둥치도 잘되고 포도나무 가지도 잘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얻을 것은 주님에게와 아버지에게서, 이 두 군데서밖에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이 두 군데 외에는 얻을게 없습니다. 뭐이 두 군데, 아버지와 주님. 주님과  아버지, 이 두 분에게서만 우리가 얻을 것이 있지 그 외에 딴 데서는 얻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아버지에게 얻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주님과  아버지에게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성경 말씀대로  할 때에 주님과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이 올 수 있습니다. 또 그 보다도 더  긴밀한 것은 우리가 영감대로 하면, 말씀대로 하면 껍데기를 얻고 영감대로 하면  알맹이를 얻고 다 얻습니다. 영감대로 하면 알맹이를 얻는다 말은 영감대로 하면  우리가 성화, 자체가 성화되어지고, 영감대로 하면 성화되어지고 말씀대로 하면  우리의 모든 일들과 소유와 그런 것들이 잘됩니다. 우리, 우리 자신 밖의 것이  잘되는 것은 말씀대로 하면 잘되고 우리 자체가 성화가 되는 것은 영감대로 해야  성화가 될니다. 영감대로 해야.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아버지와 주님에게서 받을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하는 그 방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거 비유로 가르쳤으니까 알기 쉽다 그말이오. 포도나무  가지에 가지에 무엇이 유익되구로 해 줄게 있습니까? 포도나무 가지에 유익되게  해 줄 것은 포도나무 둥치와 그 농부 외에는 다른 이 아무도 해 줄 자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포도나무에게 유익되게 해 줄 이는 둥치와 그 농부  외에는 없다,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요걸 단정 지워야  됩니다. 단정 짓고, 그러면, 주님과 아버지에게서 얻을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씀대로 하면 외부의 것을 얻고. 영감대로 하면 내부의 것을 얻는다.

내부의 것은 자체가 변화되어진 자. 또 외부의 것은 뭐이냐? 외부의 것은 하면  우리의 모든 행동과 모든 생활과 소유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져서 멸망되지  아니할 그런 것들이 이루어진다. 그런고로, 아버지와 주님 외에는 우리에게는  유익될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어떤 취직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어떤 성공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무엇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당장에 무엇이 될 거같이  보이지마는, 우리 눈이 어두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해와가 마귀의 유혹  받고 보니까 이 선악과가 천하에 제일이라서 이 선악과만 먹으면 다 되겠다  싶었지마는 실은 그 선악과는 천상 천하에 아담 해와에게는 제일 해독이 되는  것이었는데 마귀가 드니까 제일 해로운 것이 그렇게 제일 좋게 보였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어겨서 되는 가정 일이나 사회 일이나 직장  일이나 경제일이나 명예 일이나 자기의 무슨 건강 일이나 어떤 일이라도, 자기  몸에 대해서나 자기 심령에 대해서나 자기 행동에 대해서나. 자기 소유에  대해서나 어떤 거든지 말씀을 어겨서 되는 것으로서는. 우리가 눈이 어두워서  그리 하면 좋겠다 그래 싶으고, 마귀의 일군들이 말하기를 이라면 된다 말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의 말은 우리가 들을 것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한 마디도 없다는 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혹 안 믿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구로 써 가지고서 하는 일도 있겠습니다. 도구로써 하는  일도. 하는 일 중에 도구로 써 가지고 아는 일은 성경 말씀에 딱 들어맞는 일  하지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어짜든지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말, 영감에 위반된 것은 아버지가 말해도 아들이 말해도, 남편이 말해도, 아내가  말해도, 목사가 말해도 권찰이 말 해도. 평신도가 말해도. 누가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에 어긴 말은 그건 다 마귀의 말이요, 옛사람 단체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해독만 회고 사망만 되고 실패만 되어지지 유익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걸 비유로 한 것이니까, 자. 포도나무 가지에게 포도 나무  둥치와 농부 외에 유익을 줄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물론 땅이 유익을 준다  하지마는 땅 그거는 농부에게 매인 것이오. 농부가, 농부가. 농부가 밭에다  심어서, 그 밭이 농부의 밭이오. 농부가 파 내버려 버리면 그만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존재. 모든 피조물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면 유익되고 우리에게 유익되지  못하게 하면 유익 되지 못하게 합니다. 아무리 옥토 속에 있는 포도나무라도  그만 파 내버리면 그 땅지기는 하나도 못 맡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면 유익이 되고 해가 되게 하면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유익을 줄 자는 누구냐? 포도나무 둥치와 농부 외에는  우리에게 유익 줄 자는 없는 하는 요것을 단정을 지워야 됩니다. 첫째는 주님과  끊어지면 죽는다, 끊어지면 죽는다. 연결되면 살고 오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우리에게 유익 줄 자는 주님, 포도나무 둥치인 주님과 농부인 아버지 하나님  외에는 우리에게 유익 줄 자가 없다. 요 두 가지를 단단히 기억하고,  한 가지만 더 기억할 것은 뭐이냐? 거기에 보니까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깨끗케 하시느니라.'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농부가 '열매가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깨끗케  하시느니라' 그러면, 농부가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할라 하면 가지가, 가지가  커야 열매가 많이 맺습니까, 그 가지 그대로 있어 가지고 열매가 맺습니까?  그대로 있으면 열매 못 맺습니다. 가지가 커서 새순이 나와야 열매 맺지 새순  나오지 안하면 열매 맺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아무리 작년에 많이 맺었던  가지라도 새순 안 나오면 열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자라 나가는 것. 하나님이 결실을 많이 맺도록 길러가는데, 자라가는데  자라가는 것이 어떤 것이 자라가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어떤게 자라간다고  했습니까?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하기위해서 농부가 이를 가꾸면 새순이 나와  자라가는데 새순 나와서 자라가는 것을 여기에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예?  '깨끗케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요 셋째로 우리가 알 것은.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깨끗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깨끗해지는 그것이 자꾸 자라가는 것이요, 그것이 능력이 있는  것이오. 깨끗해지기만 자꾸 깨끗해지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고  주님은 우리를 위하고. 깨끗해지는 이것이 성장돼가는 것이 이 무슨 사기나  협잡이나 그런 것으로서 자라가는게 아니고 성경 지식을 이래. 성경을 많이  읽어서 많이 외운다고 자라가는게 아니고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성경을 읽고 이  영감이 필요한 것은 어데 필요하냐? 우리가 자라는 데에 필요합니다. 자라는  데에. 커 나가는데 필요하다 그 말이오. 우리가 커 나가는 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커 나가는 것인가? 깨끗해지는 것이 커 나가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가 깨끗해지기 위해서 필요하고, 영감도 우리가 깨끗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충만하 다 해도 내가 깨끗해지지 안하면 내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내게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깨끗해지는 이것이 우리의 실력이라, 우리는 깨끗함으로써의  자라가는 우리들이라, 요것을, 기독자의 자라가는 것은 깨끗이라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깨끗케 자꾸 이래 깨끗해갈수록  점점 열매가 많이 맺는다. 깨끗해갈수록이 행복이 많이 맺는다, 의가 많이  맺는다, 모든 승리가 많이 맺는다, 모든 평강과 기쁨이 많이 맺는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깨끗케 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는 그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조금 깨끗하몄 하나님의 축복을 조금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고, 이만치 깨끗해지면은 이만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이만침 잘하면 이만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고, 하나님에게는  영과 육의 축복, 물질이나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나 존귀나 얼마든지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고 있는데, 원하시고 있는데 우리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서 못  줍니다. 자격이 없어서. 그러니까, 그런 것을 어리석게 뭣을 권세를 탐하려고,  지위를 탐하려고. 이래 가지고, 마귀란 놈은 꼬우기를 뭐라고 꼬우느냐? 네가 이  말씀을 어겨야 이 지위를 감당한다. 네가 오늘은 주일을 어겨야 이 직장을  가지게 된다. 이놈이 말씀만 어기면 뭐이 된다고 이렇게 말하지마는서도 우리를  꼬우는 말입니다. 꼬우는 말.

 우리가 깨끗해지면 깨끗해진 것 만치 모든 행복은 주님이 주십니다. 우리가  행복을 마련 못 합니다. 행복 마련 못 하는데. 다만 우리가 깨끗해지면 깨끗해진  것 만침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워 줍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우리에게 다  주실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걸  주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도리어 화가 되기 때문에, 돈을 주면 그 돈이 화가  돼서,  내가 말들어 보니까 ○○○씨가 참 그분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그  자녀들이 있는데 자기는 이제 그 만치 나이가 늙었으니까 그만 이 재산을 전부  자녀들에게 다 물려 주고 자녀들이 관리하도록 하면 좋겠다 싶어서 맡겨 놓으면  그만 저거가 맡아 놓으면 잘한다고 날뛰지만 맡아 놓고 좀 한 몇 달 지나면 그만  회사가 바싹 내려앉아 가지고서 깨질 판이면 할 수 없어서 가서 그놈을 또 새로  맡아 가지고 이것을 다시 복구를 하느라고 애를 써서 복구를 하고, 또 맡겨  놓으면 그렇고. 이와 마찬가지로 실력이 없는 자에게 맡겨 주면은 그거 가지고  죄만 짓고. 그거 맡아 가지고 이래 하다 보면 사람하고 원수 다 되고, 그 맡겨  준 것 얼마 맡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 하고 원수 다 되고. 교만자 다  되고, 불량자 다 되고 죄만 지어서 이래 버리고 이러니까, 망하니까 할 수 없어  맡길 수 없다 말이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이  우리 실력이기 때문에, 깨끗해지는 고 실력에 따라서 당신의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깨끗이 성장되지 안하면 우리의 축복은 행복은 성장 돼  가지를 못 합니다. 또 깨끗이 성장돼 가지 안하면 우리의 지위와 권세는 커지를  안합니다.

 다니엘이 마지막에 삼 총리 중에 한 사람으로 있다가 온 전국을 다 맡아서  총리할 수 있는 그, 다니엘에 되나 안 되나 해서 하나님께서 한번 시험 하실  때에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안하는 고 실력가가 됐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바사 나라의 모든 걸 다 줘서 총총리가 돼도 문제가 없겠다  해서 그라고 나니까 그만 총총리를 줬습니다. 그 요셉이도 그와같이 갑자기 되는  거같이 보이지마는서도 내치 어릴 때부터 죽 나오는 그 생애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을 줘도 그로 인해서 요셉이가 더 의를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  그것을 인해서 죄를 짓지 않겠다 하는 그런 깨끗한 사람이 되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얘굽 나라의 총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셋째로는 성도의 실력은 깨끗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것은 실력을 따라서 맡기지. 실력 따라서 맡기지 안 한다면은  그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큰 화를 만납니다. 조금 권세 주면 그 권세로 죄를  짓고 월권하고 남용하고 교만해가지고서 그 사람이 멸망할 터인데 그걸 줄 수  있습니까? 돈도 그렇습니다. 뭐 보면, 자, 그사람에게, 기도를 해 봅니다. '그  사람에게는 너무 곤란스러우니까 돈을 좀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  가지고 나 회개한 일 많이 있습니다. 이랬는데. 암만 봐도 돈 좀 있어야 되겠다.

외나 돈 좀 생겨지니까 그만 그 사람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버립니다. 그걸  회개 안할 수 없소. 주님이여 내가 돈 돌라 한 죄를 자복 합니다. 사유해  주시옵소서. 돈을 인해서 그 사람 그만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볼때에 그 사람은 자기로서는 권세를 조금 더 받았으면, 한층  더 올라갔으면, 신앙의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오. 자유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막상 똑똑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에게 그 신앙의 마찰이 없고 핍박이  없으면 그 사람 예수 믿는 거 낙심하고 뭐이 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절대 병이든지, 핍박이든지. 해든지. 천 대든지 모든 해로운 것은 우리  구원에 유익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구원에는  그게 있어야 되기 때문에 고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우리를 내비두면 조금만 평안하면 그만 교만해 가지고서  고만 옛사람 돼 버리고 마귀 노름 할 터이니까 하나님께서 또 근심 걱정을 딱  입혀 줘 가지고 머리가 쿡 숙여져 가지고,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서  머리가 쿡 수그러져 가지고서 죽은 듯이 꺼꾸러져서 있을 그 때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그때 제일 미가 있고 그때가 하나님의 복을 청하는 때요, 난 체로  떠들어 쌓을 때는 하나님이 벌써 그 사람에게 복 주면 멸망하기 때문에 다  그것을 벗겨 버리고 맙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모든 행 불행이 다 자기에게,  매여서, 자기 때문에. 자기로 인해서, 여러 가지 근심이나 걱정이나 고통이나  그것이 꼭 자기로 인해서 왔다는 거 우리가 느끼고 그것을 우리가 정리하고  그것을 단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 세 가지. 연결, 어떻게 하든지, 뭐 목숨이 끊어져도  연결을 끊으면 안 됩니다. 목숨이. 목숨이 끊어져도 주님과 나와의 연결은  끊으면 안 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연결은 우리의 생명보다 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을 끊지 말고 연결을 가져라, 그거. 또 둘째로는  포도나무 둥치와 농부에게서만 유익을 얻지 다른 데서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만 우리는 유익을 받을 수 있지 딴  데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 전부 사망뿐입니다. 유익은 하나도 안 옵니다. 또  우리의 힘은 무엇이냐? 우리의 힘은 깨끗이 우리의 힘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슨, 그 가지에게 해독이 있는 그 해독을 포도나무  가지는 저는 포도나무를 길러 봤는데 포도나무에 있는 포도나무 벌레는 시퍼런  버러지가 아마 내 가운데 손가락 만합니다. 가운데 손가락보다 좀 클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만침 큽니다. 아주 시퍼런 벌게가, 똥도 큰 누에 똥보다 더  크게 눕니다. 이러는데, 그게 갉아 먹으니까, 그만자꾸 버썩버썩 먹어 제끼니까  이걸 밑에 포도나무 가지가, 그놈이 먹어 제끼니 그걸 제딴에는 대항하는게  딴거는 대항하는 길이 없어. 먹어제끼면 마구 밑에 뿌리하고 가지하고 힘을 써  가지고서 양분을 막 토합니다. 이래 먹어 제끼면 그만 그 위에 양분이 막  올라옵니다. 양분이 올라오면 그 놈은 올라오는 걸 딱 입을 대 가지고 꿀떡 꿀떡  이라면 한 이틀 크면 이만치 커집니다. 이만침 크면 그것이 나비가 됩니다.

그런데 그걸 내가 발견했을 때는 그놈이 어떻게 괘씸 한지 그걸 집게로 딱 집어  가지고 내려 가지고 발로 싹 문태 버린다 말이오. 그러면 죽어 버려. 내가 그걸  해하는 걸 제거 하지 포도나무 저는 아무리 해한다는 것이, 대적한다는 것이  대적이 아니라 도리어 그놈 좋게 하는 것뿐이라. 그러기 때문에,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다. 내가 갚으리라. 너희들의 원수가 주리고 목마르거든 먹이고  마시우라' 이랬습니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주님만이 그것을 제거할 수 있지, 우리에게 오는 해를  우리 힘으로서는 그 해를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우리에게 오는 해를 우리가  방비하려고서 이렇게 했다가는 안 됩니다. 그걸 또 잘못 알고 우리가 여기  경비하니까. 경비하는 그것은 주님이 경비를 하라고 하는 것이오. 우리가  경비한다고 경비됩니까?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주일날 이 주일학교 학생들 안보에 대해서 말합니다.

차사고 말하고, 또 미아 말하고, 또 유괴 말하고. 겨울에는 동상 말하고 지금  평안 때에는 낙상, 자빠져서 상하는 낙상 말하고 이래 상함이 여러 개 있는데  아무리 교통 지도원들이 거기에 가서 늘어서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운전수의, 운전수가 실수해서 저 죽을 줄도 모르고, 밑에 사람이 있는데도 콱  그래 가지고 죽이는 거 많이 있지 않습니까? 운전수의 심리를 누가 주관할  것이며, 또 학생들이 그거 죽을 데로 찾아 들어가는 것도 학생들의 심리를 누가  주관할 것입니까? 또 이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꾀워서 미혹시키고 유괴하는 것,  또 제가 엉뚱한 마음이 들어가지고서 집으로 요리 가면 될 것인데 요리 마음대로  가 가지고 미아가 되는 것 이것을 누가 이걸 안보할 것입니까? 주님이 안보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저 주님이 우리 성의를 기울여서 주님이 안보를 해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통 지도원이 이래 지도를 하고 있고, 우리가 또  기도를 하고 이라고 있는 것은 주님의 안보라야 되지 주님의 안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주님의 안보를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뿐이지 우리가 털끝 만한  것이라도 안보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금방 교통 지도원도 주님이 마음을  주관하는데 아 그사람의 마음이 씩 돌아 가지고서 차가 안 올 때는 이래 떡  가로막고 있다가 차가 오니까 가라고 이래 가지고 몰살시 킬 수도 있다  그말이오.

 우리 마음은, 마귀란 놈이 우리를 망하도록 하려고 지금 택한 자의 마음을  망하도록 하려고 야단지기고 하니까 주님이 우리 마음을 주관 안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교통 지도원 하는 그것도,  세우는 것도 다 주님의 도우심을 입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 뭐 하는 처 아니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해는 주님이 우리를 막아서 안보해 줘야, 주님이 안보해 주신 이  안보라야 되지 주님이 안보해 주시는 안보가 아니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세 가지. 연결돼야 된다, 주님과 아버지에게 서만  우리에게는 유익될 것이 오지 딴 데서는 오는 데가 없다. 우리가 자라는것은  깨끗이 우리의 실력이기 때문에 깨끗으로 자라가야 된다. 깨끗의 실력이 있는 것  만침 주님의 축복은 주신다. 주시는 거, 축복 주시는 거는 쉽고 더디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깨끗 준비가 문제라 그말이오. 요 세 가지. 한 가지 더 할려면  우리에게 오는 모든 해독은 농부인 아버지 하나님이 제거해 줘야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런 걸 제거하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래도 우리가 깨끗해져야 될 때에 깨끗해지지  안하면 깨끗해지도록 자꾸 이렇게 애를 먹입니다. 얼마 전에도 와서 그런 사람  말을 했는데 자기에게 재앙 오는 것은 자기가 깨끗해지면 그만 되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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