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비유

 

1988. 9. 11. 주전.

 

본문: 요 15:1-5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말씀했습니다. 이는 비유입니다. 비유는  실상보다는 흐린 것입니다. 비유로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로 설명을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와의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그 관계 그것보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더욱 그러합니다. 잘못하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는데 포도나무와 가지는 그러한  실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마는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그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지 그렇게까지 실상이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제든지 비유로  가르칠 때에는 가르친 비유 그것보다 그 실물은 더욱 실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서 여게 대해서 에누리하지 안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와의 절대 적인 그 관계  그것보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더욱 그러한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 포도나무 비유는 모두가 다 잘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 실은 이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로 이렇게 비유하신 데 대해서  사람들은 그렇게 실상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지나가는 이런 무슨  이야기처럼 그렇게 듣는 사람되기 쉽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로  비유했는데 포도나무와 가지의 그 밀접한 관계보다, 절대적인 그 관계보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더욱 그러합니다. 절대를 벌로 붙일 수 없으나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의 관계는 절대입니다.

 1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하신 것은 주님은 비유컨대 포도나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우리를 가지로 이렇게 비유한다면  주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참 포도나무 가지라.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내 아버지는 주님의 아버지 곧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존재를 홀로 주권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총 주권을 가지시고 주권으로  단독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때는 아직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그때에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뒤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 모든 직책을 예수님께서 다 인계받았습니다. 이래서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속을 베푸시기  전인 때에 말씀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농부는  포도원의 그 과실을 소탕해서 있는 힘을 다 포도 가꾸는 데에 기울이는 것이  포도원 농부입니다. 포도원 농부는 자기 온갖 노력의 힘이나 지혜의 힘이나 또  모든 경제의 힘이나 그런 것을 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기울여서 포도나무를  가꾸는 것을 비유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아버지가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홀로  주권 통치하시고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위해서만 전부를 다 기울여서 투자한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전부를 기울인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아버지의 하시던 일을  예수님이 다 인계 맡았습니다. 이 우주에 크고 작은 한 개별개별 그것의 전체는  예수님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인계했습니다.

 이래서, 1절에서 우리는, 영원 자존하시고 창조주시며 주권자시며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은 포도나무 위해서 전부를 기울이고 있다.

포도나무는 곧 예수님이신데 곧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예수님이 대속을 베푸시고 난 뒤에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성한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서 전부를 기울이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안 믿는 자에게는 이 능력의 효력은 가지를 못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 능력의 효력이 갑니다. 오늘은 오히려 안 믿는 자가 큰소리하고  있지마는 그 큰소리하는 것이 똑똑히 아는 사람이 들을 때에는 다 자살하는  아우성이지 하나도 산 소리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존자이시며 대주재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며  주권자시며 주권 개별 통치하시는 이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위해서 있다, 교회를  위해서 있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있다, 포도나무로 비유할 때는 예수님이 아직까기  대속하러 오셔 가지고 대속을 안 하셨고 대속하신 후에는 곧 구약 교회를  바탕으로 해 가지고서 신약 교회가 건설된 것인데 곧 예수님은 교회요  포도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 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다 주님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다  믿고 있고 교회가 이렇게 사람을 이간을 붙여서 교회가 잘못 갈라지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쪼개는 것이라 그렇게까지 말을 합니다. 잘못 갈라뜨린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1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셨고 그분이  아니면 버러지 하나의 생명도 유지하지 못하고 땅위의 이 모든 공간에 심지어 이  공기까지 바다에 있는 모든 것 전체가 다 그분이 아니면 존재할 수도 없고 또  움직일 수도 없는 대주재이신 개별 주권 섭리자이신 이분은 전적 포도나무인  주님을 위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있다 하는 요것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뭐 88 올림픽도 하나님의 교회 위해서 있는 것이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땅위에 있는 전쟁도 파괴도 건설도 이십세기의 자랑하는 과학도 그거  다 하나님의 교회 위해서 이용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될 때에,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는 말씀하시 기를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 이래서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예수님의 것이 되면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영원토록 그의 것이 됩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에누리해서 거짓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까짓 게 죽도록 일생 동안 날뛰어 봤자 이 지구 땅덩어리 중에도 손톱  한내끼만한 한 지역, 나라라는 한 지역을 차지하든지 그만 못하면 어느 지역에  부동산 얼마 가지고 무슨 건물이라도 빌딩이나 뭐 큰 거 하나 가졌으면 그거  제일인 줄 알고 그거 위해 전력을 기울이나 눈이 밝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데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거짓말이라고 허무하다고 어리석다고 하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생명과 사망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유일의 법칙인 그리스도의 것이 자기가  될라고 예수님의 것이 될라고 여기에만 전력을 기울입니다.

 땅위에 잡았던 것을 빼앗겨도, 놔도, 사람들은 등신같이 이해 못 하지마는 그는  가치를 엉뚱한 데 둬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여기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세상이 가치라고 하는 그런 것을 다 바울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똥오줌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이 환장한 게 아니고 신령한 눈이 뜨여서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에 근거한 참된 가치관을 가져서 그렇게 논평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대주재인 하나님은 예수님만 위해서 있습니다. 예수님만 위해서 있습니다.

포도나무 비유한 대로 예수님만 위해서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만 위해서 있습니다. 뭐 교회를  멸시하지마는서도 잠시 잠깐 후면 교회가 모든 피조물 위, 유일하신 하나님 아래  피조물의 중보 위치에서 모든 피조물의 은혜의 기관과 그들의 생명선이 되어  영원히 봉사하고 이 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땅위에 날마다 새로운 전개가 되고 별별 일들이 다 생겨져서 파괴되고 건설되고  심고 뽑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교회인 내 신앙을 위해서 있다. 내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예수님의 것이 되면 모든 피조물은 나 위해서  이용되고 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확실합니다. 자존자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인, 참된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전부는 역사하시고 모든 피조물은  그를 위해서 이용되는 것이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주장하는 비밀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습니다.

 2절에 '무릇 내게 있어' 예수님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곧 가지를 말합니다.

비유로 가지를 말한 가지 곧 우리 예수 믿는 개인 개인을 말합니다. '무릇 내게  있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것을  제해 버리시고, 과실이 뭐인가? 포도나무 과실입니다. 포도나무 과실이 뭐인가?  예수님의 과실입니다. 예수님의 과실이 뭐인가? 사활로 대속하신 대속의  구원입니다. 대속의 구원이 뭐인가? 죄가 없는 삐뚤어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으로 판단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걸리지 않고  의롭다 칭찬받고 통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행으로 칭의를 베풀어서  우리에게 주셨고 대형으로써 죄를 형을 다 받으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신 대형으로 다 도말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대주재로 더불어 원수되어 있는 이 원수를 화친케 하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이요, 창조주가 피조물을 영원히 입는 지극한 사랑의  희생으로 우리를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시켜서 과거에는 마귀를 향했고  자기를 향했고 땅의 것을 향하던 우리를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을  향하여 가는, 그분이 지으신 하늘나라도 향하지 안하고 대주재이신 그분을 향해서,  그분을 소망 삼고, 그분을 향하여 가는 이 영생으로 중생시켜 주신 이것이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이 구원입니다.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실상으로  만드는 자를 가리켜서 과실을 맺는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게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를 깨끗케 하신다,  과실을 많이 맺는 자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다. 이래서 이 과실은 맺기를  시작해서 하나 맺고 둘 맺고 차차 차차 맺어서 많이 맺는 그 중복의 우리의  결실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가 베어 버린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은 지극히 큰 대속이고 이것은 다 우주와  영계의 주인공이 될 자이며 통치자가 될 것이며 형언할 수 없는 지극히 큰  구원이요 깨끗한 구원이요 온전한 구원인데 이 구원을 입술로는 말하고 실행하지  안해서 실상의 실효를 거두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사죄의 실상을 이루고, 칭의의 실상을 이루고, 하나님과 부자된 이 실상을 이루어  실상의 효력을 제가 보면 죽어도 안 떨어집니다. 이 외에 취할 것이 없는데 뭐  탐하겠소? 그까짓 거 봐 봤자 오늘 없어질지 내일 없어질지 모르는 것인데 무슨  가치 있다고? 이 외에 다른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과실을 맺는 가지는  점점 과실을 더 맺게 됩니다.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해 끊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실상을 이루면 하나 해 보니까 실상이  이루어지고 둘 해 보니까 실상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상을 이루는 그 실상을 맛본 자는 땅위의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돕는  실상을 맛본 자는 천하 인간들이 다 쑥썩거려도 눈도 꼼짝거리지 안합니다. 천하  인간들이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너를 돕겠다 해도 그까짓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훼방도 하나도 눈앞에 속지 안하고 또 북돋우고 협조한다 하는 것도  그저 웃는 낯에 침 못 뱉기로 허허 이라지 피조물의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피조물의 훼방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치 바보 같고 미련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그 속에는 속셈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고로. '열매를 맺지 않는 자는 제해 버린다' 제가 낙심하면 옆에서 낙심 못  하도록 권면하고 하니까 제가 낙심하는 줄 알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끊어 버려  그런 것입니다. 끊어 버려서 점점 끊겨지는 것이라.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요  예수님과 멀어집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서,  말씀대로 실행해서 그 실행한 결과의 효력이 어떠한가 그 효력을 맛보지 못한  자는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대로 실행해서 효력을 봤든지 효력을 못 봤으면 끊어 버려서 아픈 꼴을 봐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든지, 순종해서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효력을 받든지  거역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아 분명히 이것은. 내가 이러쿵 저러쿵 뭣  때문에 실패했다 핑계를 해도 자기 깊은 속에 '이는, 내가 하나님을 거역해  이렇다' 징계를 받든지, 또 자기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다른 사람들은 '아, 참  자네는 실력 있네, 참 당신은 실력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치켜올리고  해도 제 깊은 속에, '아니다. 이거는 참 하나님의 은혜다. 이거는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되는 사람은 점점 나아가게 되고  깨닫지 못하고 끊김 받은 사람은 끊긴 아픔을 보고 난 다음에는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이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몇 번이든지 징계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꿔 주시고, 이래서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 가운데 그런 기도를 다 하는 것 같습디다. '하나님이여, 나와 한국  교회를 주님이 무한하신 사랑을 베푸셨으니 주님의 사랑으로 징계로 회개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시고 회개할 때에 또 사랑으로 축복해서 자타가 환하게 보게  빛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긍휼히 여겨 주석서 성신의 감화로 하시고 감화로 안 되면  사랑의 정세와 사랑의 축복으로, 거절하면 사랑의 징계로 또 회계하면 사랑의  축복으로 이 사랑의 정계와 축복을 빨리빨리 교체해서 빨리 지나가는 이 세월  허송하지 안하고 다시 못 오는 이 세상에서 영윈 장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여기에  매진할 수 있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성도들이 되게 해 달라고 자타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의 실행의 열매가 없으면,  실행의 열매가 있는 것은 행위보고 모릅니다. 실행의 열매가 있는 것은 실행의  효력이 나오는 그 효력이 실행이 가짜인가 진짜인가 하는 것을 효력을 보고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어도.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이렇게 구원 주신 이 구원을  장난삼아 예사로 입술로 실실 그저 말로 썩 그러며 전하면은 되는 것으로 또  이렇게 장난삼아 입으로 훼방하고 이렇게 하면은 그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을 찰 조심 있게 두려워 떨면서 대해야 됩니다. 안 대하면 저만 속습니다.

송곳에다가 뒷발질하는 말 뒷다리만 상하지 송곳은 아프다 소리 안 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뒷발질하는 자는 저만 상하지 소용없다는 걸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또 시온에 둔 반석이기 때문에 이 반석 위에 떨어지는 자는, 이  반석을 무시하는 자는 깨어지고 반석이 그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때리면 절단납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 과실을 맺지 안하면 끊깁니다. 과실 맺지 안하면 점점  끊깁니다. 끊기면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이, 불택자가 여기 나와 예수 믿을라고  해도 못 믿습니다. 그거 과실 안 맺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꾸 끊어 버리기 때문에  결국은 제가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가 없습니다. 택한 자는 열매 안 맺으면 끊는  것이 징계입니다. 열매 안 맺으면 징계받습니다. 징계 받으면 회개 안 할 자가  없습니다. 다 회개합니다. 회개하면 즉시 축복으로 바꿔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천하 사람을 발 아래 밟아도 하나님은 발 아래 밟을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을 무시하고 열시해도 하나님은 무시하고 멸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두려워하고 그분 앞에는 겸손한 것이 지혜 있는 사람이지 그분 앞에 큰소리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송곳에다가 뒷발질하는 말과 같다 했어. 시온의 반석을  멸시해서 그 위에 한번 뚝 떨어져 봅니다. 깨져. 반석이 그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돼. '너희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느니라.' 하나님이  그대로 보응하신다 했습니다.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제해 버리는 것.

불택자가 마귀 심부름꾼으로 와 가지고서 교회에 들어와도 죽은 교회는 그런  것들이 와서 판을 칩니다. 산 교회는 그런 것들이 들어오면 안 쫓겨 나갈래야 안  나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택한 자는 '열매 안 맺으면 제해  버리느니라' 끊어. 징계 받아. 다시 돌이키면 축복받아.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그 사람이 자기가 아는 대로 실행해서 실상을 이루어  실효를 거둬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실효, 실상의 효력 말이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효력을 자기가 하나 둘 이 효력을 받아 가지고 그 효력으로  살라고, 그 효력으로 살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전심 전력 기울여 그분에게  순종하는 생활함으로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순종한 효력을 나에게 줄 때에 그  효력으로 살라고, 그 분에게 순종하여 그분의 축복으로 살라고 이렇게 하는 자는  과실을 점점 더 맺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 가지고 자기가 뭐  성공도 되고 유명도 되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성공할라고 생각지 안하고 제 선천  후천의, 나기를 잘났고 후천의 또 수양을 많이 한 선천 후천의 제힘 가지고서  제가 무엇을 해 볼라고 하는 자는 다 넘어 집니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네가 네 힘으로 뭐 할라 하면은 네가 박살된다, 불택자들은  그들은 그래 하도록 뒀습니다. 불택자들은 그래 가지고서 그래 하는 그것이  신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맙니다. 이러나 택자는 다릅니다. 택자는 제힘으로 설라고  하면 넘어집니다. 깨어집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열매를 맺어서 실상을 이루어서, 실행해서  말씀대로 실상을 이루어서 그 실상의 효력을 누리는 그 사람이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열매 맺는 사람.

 예수 믿어서 열매 맺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 둘 말씀대로 해  나갑니다. 하면은 처음에는 답답함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길이라 말했습니다. 답답함이 있지마는서도 십자가 사흘 후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처음에 답답한 일이 있지마는 잠시 후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대로 실행하여서 답답한 것을  가리켜서 십자가라 말하고 답답한 고비를 견디고 말씀대로 끝까지 계속해서  지키는 자에게 그 다음에 사흘 만에 부활하신 이 부활의 효력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일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믿음의 길을 걷는, 먼저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서 어려움을  달게 받지 않는 사람은 좋은 결과를 맛보지 못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어려움을  달게 받은 사람 쳐놓고 뒤에 가서 존영한 그 금생 내세의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를 깨끗케 하느니라, 그 사람을 깨끗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그 사람을 깨끗케  하느니라. 그 사람을 깨끗케 한다 말은 깨끗한 것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본질, 본성, 본형대로 변질되지 안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깨끗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타락 이후 악령과 죄와 사망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만신창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만신창, 우리의 성질도 만신창, 우리의 지식도 만신창,  세상 지식을 통달하면 다인 줄 알아도 만신창이오. 전부가 다 꺼꾸로요. 지식에  만신창, 자기 계획에 만신창, 죽는 날까지 계획에 계획을 성공하고 가니까  제딴에는 성공했다 하지마는서도 마지막 숨질 때는 '아, 헛되고 헛되다. 내 한  일이 모두가 다 헛되다. 내가 이렇게 보아 놓은 재물 이거 뭐 할꼬? 내자 잡아  놓은 이 권세를 뭐 할꼬?' 탄식하고 울지 않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 같은  실패요.

 이러기에 과실을 맺는 자는 그를 과실을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순종하여 서 실상을 이룬 자는 더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

순종을 더 잘하고 많이 하기 위해서, 더 정확한 순종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실상의 효력을 더 많이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과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과실이요 순종함으로써 신구약 성경에 계약해 놓은 대로 계약에 달성된 그  실상의 영육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효력을 누리는 것을 가리켜서  과실이라고 말했는데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맺는 신자는 더 많이 맺기  위해서 이를 깨끗게 하느니라. 깨끗게 하느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본질, 본성, 자기의 본 생애 법칙, 본분, 자기의 참 자기 소망.

자기 의무, 책임, 자기 성공, 이 거짓부리들이 다 문둥병 모양으로 들어붙어  가지고서, 부스럼딱지같이 들어붙어 가지고서 그런 것들을 인해서 할 일도 못하지  갈 일도 못 하지 양심도 못 지키지 진리도 못 지키지 계명도 못 지키지. 이런데  하나 순종하면 둘 순종하도록 셋 순종하도록 어떻게 하는가? 순종하도록 깨끗케  한다 이랬습니다.

 깨끗케 한다 깨끗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이 되어져 가는 것이  깨끗해져 가는 것입니다. 깨끗한 것은 그의 안팎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안팎에 진실로 죄가 없게 안팎이 하나님의 공 심판에 자유로 통과할 수 있는  완전 의가. 하나님과 친밀한 부자간이 됐으니까 자식을 사랑치 안하는 애비가  없고 또 자식이 애비를 의지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와의 부자간이 되었으니까  모든 것이 제것이라. 이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 실상을 이루어지도록 깨끗케  하십니다.

 횐옷은 희어야 되고, 그러면 깨끗한 것이오. 흰옷은 희면 깨끗한 것이요 검은  옷은 새카매야 깨끗한 것입니다. 검은 옷이 꺼무충충 하면은 추한 것이오. 새카만  검은 것이오. 붉은 옷은 빨가이 진홍이 되면은 깨끗한 것이오. 숯은 새카매야  깨끗한 것입니다. 눈은 희어야 깨끗한 것입니다. 깨끗하다 말은 그 본질 본성대로  정질, 정성을 가져서 변질되지 아니한 참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  하신 것입니다.

 이런고로, 사람이 자기가 아무리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어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순서와 방법이 있으니까 그 방편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방편이 뭐인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주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놨으니까 다 지키지 못해도 하나라도 하나씩 지킬라고 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고 지켜서 하나 지켜 실상 이루어 실지의 효력을 자기가 맛보고 누려보고  둘 지켜 둘 실상 이루어 둘 효력을 누리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점점 과실도  많이 맺고 하나님이 그를 깨끗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서 점점 온전한  자를 만드는데 누가 방해하겠습니까?  그런고로, 기독교의 구원은 다 논리적이요 진실적이요 필연적입니다. 하나 하면  둘 하게 되고 둘 하면 셋 하게 되고 셋 하면 넷 하게 되고, 이러니까 여게는  교만이 용납 못 합니다. 교만은 헛일입니다. 여게는 전적 어데까지 은혜  받았더란대도 부인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받을라고 소망하는 것이  겸손이요, 자기가 어데까지 위대하든지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이 안 주시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매사를 주님에게 달라붙고 주님으로 인하여 살라고  하는 이것이 겸손한 자입니다. 기독교는 진실이 없으면 안 됩니다. 거짓부리가  있으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진실한 것보다도 제가 저를 볼 때에 '내가  참 의지하는데! 내가 참으로 바라보는데! 내가 참으로 힘은 내가 전력을  기울이는데!' 자기가 자기를 볼 때에 진실하게 인정될 수 있는 그것이 아니면 다  거짓부리입니다. 하나님은 속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열매를 더 많이 맺기  위해서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깨끗케 하시느니라' 말씀을 했습니다.

 3절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열매 많이 맺는 실력은 깨끗입니다. 열매 많이 맺는 실력은 깨끗이오. 사람에게  잡것이 없어야 됩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더러운게 없어야 됩니다. 세상  더러운 과학! 인간 지식! 그런 걸로 있는 게 없어야 됩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지식으로 되어져야 됩니다!  깨끗해야 됩니다. 변질되면 안 됩니다. 자기 중심의 악령, 자기 중심의 인간의  본성, 자기 중심위 모든 인간의 버릇 습성 이것이 들어서 사람을 더럽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하나씩 둘씩 다 제거해서 그저 기독교는 잘나고 못나고  상관없고 진실이 있는 것만치. 진실이 양이 있는 것만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잘나도 진실 없는 것은 그것은 다 악의 도구로서 악의 열매를 맺어지지  의의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이미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했다 그말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로 깨끗하였으니' 내가 너희들에게 계약을,  복음이라 하는 건 주님이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베푸신 이 대속을 오리의  것으로,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계약이요 주님의 대속은 내 것이라.

주님의 대속은 내것인 것을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계약이요 이 계약을 다른 말로  말하면 복음이요 아무 공로없는 것이 공짜배기로 하나님의 의를 받았기 때문에  이거는 공짜배기로 받은 참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요 다른 말로 말하면 은혜요.

 이런고로,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너희들이 아무 공로 없는 것이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친으로, 하나님과 우리와 뭐인데?  원수되었던 것이 부자간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아버지된 것을  여러분들이 경험했으면 알 것입니다. 크나 작으나 아버지가 내 기도의 소리를  들으시면 큰 것 들었다고 아버지고 작은 것 들었다고 아버지 아닌 것 아니오.

아버지는 밤으로 불러도 낮으로 불러도 그분은 부를 때마다 대답 안 할 때가  없고 그분에게 구할 때에 옳은 것은 주지 안한 것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구하고는 얼른 뒤에 '주님이여, 내 소견은 이렇지마는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해 주시옵소서.' 그 말을 즉시 덧붙히지 안할 수가 없어.

그분이 근심될까 해서. 왜? 즉시 모든 걸 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란다고 해서 안  들어 주시지 안해. 내게 필요한 것은 다 들어 주셔. 주님을 노엽게 하고 근심되게  하는 것만 제거하는 것이지.

 그런고로 '내 안에 거하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거하라' 뭐이요? 내 안에 거하라는 것. 여게 제일 중요한  것이 내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쭉 내려보면은 '내 안에 겨하면 과실  맺고 내 안에 거하지 안하면 과실 못 맺는다' 이랬습니다.

 내 안에 거하는 것.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일러  준 말이 뭐인데?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써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죽은  가운데에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공로 주님의  사활의 공로를 입고 있으라 그말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를 네가 입고 있고 이 사활의 공로를 네가 순간도 떠나지  말아라. 이 사활의 공로를 네가 입고 이 사활의 공로를 가진 자로, 너는 죄 없는  자로, 너는 의로운 자로, 하나님 공심판에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너는 영생을 가진 자이니 영생을 가진 자로 이 자로 네가 사는 것이 네  생활이니 이 자의 생활이 네 생활이요 이 자가 네라. 이 자가 네라. 이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요 이 자가 바로 네라. 참 네라.

 마귀란 놈이 어떻게 유혹해도 이 자를, 너 아닌 너, 원수인 너, 악령·악성·악습,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이것은 자기가 아닙니다. 이거는 마귀가 와 가지고 이렇게  가장을 해서 주격인 영은 죽이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 제 중심 하는 것은  전부 남의 생활하는 것이요, 그것은 제가 아닙니다.

 사죄, 칭의, 화친, 영생 가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니 '내 안에 거하라'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라. 무죄자로 살아라. 의인으로 살아라.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살아라.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영생하는 너로 살아라.

이것을 가리켜 내 안에 거하라 말한 것입니다. '내 안에'  우리는 믿고 이것을 벗지 안하면 됩니다. 믿고 벗지 안하면 됩니다. 벗지 안하면  만능이요, 벗지 안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요, 벗지 않고 입고 있는 자를 누가  해하겠소? 아무도 해할 자 없습니다.

 마귀 이놈이 벗으라고 죽일라고 협박하는데 죽일라고 협박하면 입고 죽으십시오!  죽이는 거는 저 할 일이요,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일 분 일 초도 일찍 죽이지를  못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입고서, 죽인다 하든지 살림살이를 뺏들든지 어짜든지  이것만 입고 벗지 마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해라, 억지로 송사해 속옷을 가지고 가거든  겉옷까지 줘라, 오 리를 가자거든 십 리를 동행해라,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는 물리치지 말아라. 뭣 때문에? 뭣 때문에? 주님 안에 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안에 살기 위해서, 거게 다 있는데 공연히 무가치한 것  가지고서 주님 밖에 나갈 필요가 없어, 그것에게 시비해서 피동해서 거게  피동되는, 주님 한 분에게만 피동돼야 사는 것인데 그것에게 피동되지 않기  위해서, 너희들을 자유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되지 마라.

자유. 사죄받은 자로 사는 것이 내 자유지. 칭의받은 칭의 가진 자로 사는 것이  내 자유지.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내 자유지. 영생으로 사는 것이 내 자유지.

이 자유를 뺏기지 말아라!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것 된 것이니까 나로 인하여 산 자는 다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생각하고 재독을 테이프를 사 가지고 가서라도 이런 말씀을 백 번 천  번을 들으십시오. 들으면서, 이복순 집사님이 오랫 동안 그 공을 들였습니다. 한  칠 년 동안 들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녹음 틀어 놓고 엎드려 가지고서 그 말씀과  자기와 틀린 것을 기어코라도 그 시간에 고치고 이래서 고치고 고쳐서 칠 년  동안 고쳤는데 그럼으로써 그는 완전히 사선을 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인데 최고의 죽음의 고통이 그에게 왔지마는서도 그에게는  고통 되지 못했어. 최고의 죽음의 고통을 이기고 남은 감사와 기쁨이 넘쳤고  이웃에게 생명의 사랑을 주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그것에게 종되지를 안 했어.

(기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들이 얼마나 존영한 사랑과 구원을  입은 자인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이는 창세 이후에 시작됨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구별되어 된 이 구원이 오늘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고  말씀한 것같이 지극히 큰 구원이 세상 멸시 천대받는 이 껍데기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무시하고 또 이를 도적질할 자들이 없고 자기 안에서 주님이  내주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지극히 크고 오묘한 주의 비밀을 찬양드립니다.

 구속받은 저희들이 이 구원을 점점 아는 가운데에서 이 대속을 어데서나 벗지  않고 대속을 입고 살고 대속을 입고 고난받고 대속을 입고 갇히고 대속을 입고  살고 죽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데서 든지 대속을 순간도 벗지 안하고  입고 대속받은 자 된 이 대속받은 자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어지러운 세상에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장중에 잡으시고 그들의 심령을 밝게 하사 세상 너머 무궁세계가  있는 것을 알게 하사 오늘에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영원을  마련하는 이 소망에 굳게 선 저희들 되게 하시고 범사에 크고 작은 것을  주님에게 기도하여 주님의 돕는 은혜로 살아 나가는 염려없이 평강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심정의 사랑이  점점 뜨겁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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