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일군 비유

 

1984. 10. 15. 월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마태복음 20장 1절 이하에 보면 포도원 일군 비유가 기록돼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아침 일찌기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한 일군들이 있었고, 오후 세 시 벌써  해가 다 된 저물게 들어와 가지고 일한 일군이 있었습니다, 그 일군들에게  약속하기를 하루 품 한 데나리온씩을 약속을 하고 일군을 데려 세웠습니다.

그날이 다 되고 주인이 와 가지고 품을 회계해 줄 때에 제일 뒤에 들어와서 불과  일을 얼마 하지 못한 그 일군으로부터 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군들에게  하루 종일 일한 일군의 품 한 데나리온을 주인이 주니까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들은 '아마 약속은 한 데나리온으로 했지마는 많이 줄 것이다' 그렇게  기대를 했었는데 나중에 회계할 때에 꼭 같은 한 데나리온씩을 줬습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일찍 들어온 그 일군들이 주인에게 대해서 이의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들어와서 하루 종일 일을 했고 저 사람들은 해가 다  넘어갈 때에 와 가지고 조금 일을 했는데 어떻게 그 품삯을 같이 주느냐' 그렇게  이의를 달았습니다. 이의 달 때에 그 주인이 말하기를 '내 것을 가지고 내야  누구에게 얼마를 많이 주든지 적게 주든지 네게는 상관없지 않느냐? 너와는 한  데나리온으로 약속한 그 한 데나리온만 너는 받으면 되고 네가 일한 대로 내가  그 품을 주면 되지 내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고 또 내가 얼마 일하지 안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후하게 선하게 하는 그 일에 대해서 네가 이의를  달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라고 마지막에 결론짓기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자 많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포도원 일군 비유의 그 뜻이 무엇인가? 아침에 일찍 들어온 사람은  '내가 일찌거니부터 와 가지고서 일을 하니까 내가 오늘 한 데나리온을 받는  데는 당당한 내가 일을 해 주고 일의 값을 받는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가득  차 있고, 주인에게 대해서는 뭐 은혜나 그런 것은 없고 감사할 것도 없고 그저  '정당한 일해 준 품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뒤에 들어온 사람은 이  사람과 좀 다른 거 있는 것은 하루 종일 '누가 일군으로 써 줄까' 이렇게  기다려도 해는 넘어가는데 아무도 일군으로 써 줄 사람이 없으니까 마음에  답답해 있다가 그저 와서 '지금이라도 와서 일하라' 하니까 그 일찍 온 사람과  다른 것이 자기는 아무 데도 할 일이 없는 쓸모없는 일군이라 일할 데 없는,  일할 곳이 없는 일군이라 하는 것이 저 사람과 달랐고. 그 사람을 아침 일찍이기  때문에 뭐 지금 뭐 얼마든지 이 사람 안하면  저 사람 일 할 것이고 하니까 그  품삯에 대해서 만일 한 데나리온을 안 줄라 하면은 적으니까 좀 더 내라 이렇게  신강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자기는 아무도 써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참 답답하고 마음에 자기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기는 참 아주  쓸모없는 작은 자로 여긴 그것이 이 아침에 일찍 온 품꾼과 달랐고. 또 자기를  그렇게 늦게나마 일군으로 써 주니까 마음에 감사한 그 마음의 감사가 달랐고,  자기에 대해서 깨달음이 달랐고, 자기를 평가함이 달랐고. 주인에게 대해서  감사함이 달랐고, 또 일을 하면서도 감사와 기쁨에 넘쳐서. '이제 내가 늦게  들어왔으니까' 자기는 성심 성의를 다해서 일한 그 일이 달랐습니다. 일하는  데에 성심 성의가 달랐고 감사가 달랐고 자기에게 대한 그 인식이 달랐고  달랐습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품을 줄 때에 그 사람부터 먼저 불러가지고 꼭 같은 한  데나리온을 주니까 그 품을 받을 때에 그 사람은 감사할 뿐만 아니라 '이거는  이거 당치 않습니다. 내가 행한 대로 갚아 주셔야 되지 나에게 이렇게, 어떻게  제가 받을 수가, 이런 대우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하는, 그 대접에 대해서  마음에 너무 감사하고 너무 과다하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일찍 들어온  품꾼과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래 대우 해 주면서 마지막 결론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데에는 근본 우리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당신의 것입니다. 근본 우리가 지음을 받은 당신의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창조적으로 당신에게 지음 받아서 내가 있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나는 당신의  것이요, 또 당신이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보존한 그 보존 성장적으로  우리는 또 당신의 것입니다. 이런 것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망령되었을  때에 주님이 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의 방종 방탕을 인하고 하나님 배반하고  제 마음대로 사는 그 죄값으로써 영원 멸망 속에 영원히 빠져 있는 것을 주님이  또 대형 대속으로써 거기에서 구출 해 주셨으니 우리를 대속으로 또 사서 우리는  대속적으로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적으로 주님의 것이요.

우리는 보존적으로 주님의 것이요 대속적으로 주님의 것입니다.

 대속적으로 주님의 것이니 이렇게 이 주님의 것인 것을 깨달아서 그 대속의  은혜에 감격한 사람이 있고, 또 거기에 감격하지 안하고 자기의 행한 대로  갚으니까 자기 행함이 행함이 너무도 옳고 깨끗하고 완전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뭐 행함만 해도 넉넉히 되니까. 자기는 자기에게 대한 일찍 들어온 품꾼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한 평가하는 것도 당당하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관계도  자기 행함에 대해서 당당함을 바라고 이렇게 사는 자와 자기의 그 모든 참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알고 그분의 은혜로 순전히 된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 감사, 그 감사가 다른 거기에 대해서 주님의 대우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을 일반적으로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받았으니까, 대속을 일반적으로 받아서 받고 난 다음에 신앙 생활 한 사람  가운데에서도 각각 참 천층 만층으로 다를 것입니다. '나는 대속의 은혜를  받아서 나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의 은혜를 범하지 안하고 그대로 입고  보존하고 나는 살았다' 하는 그런 자신 있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나는 주님의 피의 대속으로 죽기까지 가난해지기까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나를  대속했는데 나는 주님에게 대해서 요런 사소한 이해로 내가 주님을 배반하고 판  일이 많고, 나는 내 주장 내 욕심대로 주님을 판 일이 많고, 나는 주님을  거슬리는 일이 많았고. 나는 참 대속을 입은 자로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이런  깊은 반역과 배은의 죄악에 빠져 있었던 자인 것인 것을 깨달아서, 또 주님에게  대해서 참 죄송하고 황송하고 미안하고 죄인되고 무지 무능하고 이렇게 거슬린  그 죄인의 면이 어떤 사람은 많아서 그 죄인의 면이 많고.

 이러니까, 주님의 것이 끝 것이 다른 사림은 창조로만 됐고, 보존으로만 주의  것 됐고, 또 타락한 이것이 주님의 대속으로만 주의 것 됐는데, 그 외에 자기는  과연 주님이 아니면 이럴 때 나는, 이런 궁지에서 나를 살렸다, 이런 타락에서  나를 살렸다, 이런 반역에서 나를 살렸다, 이런 실패해 가지고서 나는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감옥 가운데에 들어 있는 나를 살렸다, 나는 모든  활동적으로 내가 재를 저질러서 내가 아주 헤고날 수 없는 그런 매장 가운데에  든 나를 다시 살렸다, 내가 이런 흉측한 죄악 가운데에 빠져서 이런 만고에 설  수 없는 이런 죄악에서 나를 다시 살렸다, 이래서, 주님 앞에 그 은혜의 빚이  많이 지고, 주님 앞에 많이 거슬려서 많이 죄인 되었고 이런 데서 주님이  구원하셨기 때문에 많이 주님의 것이 되었고. 주님의 것이 많이 되었고 많이  주님을 거슬렸고 주님을 많이 근심 걱정을 시키고 고생을 시키고 욕을 돌리는  이런 면이 많은 사람, 그 많은 사람은 주님에게 대해서 자기에게 대한 평가가  아주 허무하다고 평가하는 그 평가의 자기의 평가의 그 허무에 대한 것을 느끼는  것이 차이가 있고, 또 자기를 그런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함에 대한 감사에 대한 차이가 있고, 또 자기는 그러니까 주님에게 대해서  믿음 생활 하되 자기는 너무 이런 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도 자기는  충성하고 성심성의를 다 들이면서도 항상 모자라는 것으로 아는 그 성심성의에  대해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 주님의 대우에 대해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 나는 이만해도 족하다. 나는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안보를 받을  수 없고, 이런 평안을 받을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의식주를 이렇게  넉넉하게 받을 수 있을까' 주님이 자기를 대우하는 대우에 대해서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이래서 바울은, 그는 다른 사도들이 가지지 못한 것,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은  나는 주를 위해서 많이 죽을 뻔도 했고. 많이 고생도 당했고, 많이 헐벗고  굶주리기도 했고, 바다의 위험 이방의 위험 광야의 위험 본 족속의 위험 이런  많은 위험들과 남보다도 많은 박해를 받았지마는 나는 당신에게 거슬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무리 죽도록 나는 충성해도 나에게는 상이 있으리라 내가  바라지 않는다. 죽도록 충성했지마는 나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벌이, 내가  이렇게 충성하면 혹 하나님이 나에게 진노에 대해서 벌을 주지 아니하실까,  잘되면 내가 벌을 면했지 당신에게 칭찬이나 무슨 상급이나 대우가 있으리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생각지를 아니했습니다. 그가 더욱 더 성신의 충만한  사람이요, 참 그 사람이. 이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 비유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그를 제일 앞세워서, 제일 나중 된 사도이지마는 앞세워 그분에게  대한 주님의 만족과 허무와 더 불만이 없는, 만족해서 얼마든지 그에게 대해서  대우해 주고 싶은 그런 주님으로 상관이 되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궁한 나라에서 주님의 대우를 받는 것은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자기의 평가함에 대해서, 자기의 단점. 자기의 더러운 점,  자기의 그 허무한 점, 자기의 방종한 점, 자기의 진실치 못하고 변질되고 이렇게  참 아무리 봐도 쓸모 없는 자기의 그 단점 이것을 보는 그것과 또 주님에게  대해서 감사하는, 이 모든 자기에게 대한 베푸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이  감사의 양과 또 자기가 이런 자이니 주님에게 대해서 감사에 넘쳐서 성심 성의를  다 기울인 그 양과 주님에게 대우를 바라지 않는 그 양과 이것이 변하여서 그  나라에 가서 당신이 대우해 주는 이 대우의 원인이 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은 참고고.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제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나를 사랑한다 말은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에 감격해서, 그 대속에 감격해서 암만 해도 그  대속을 생각하니 나는 불중한 종이요 무익한 종이요 나는 큰 값에 팔린 자라  너무도 나는 그 값에 해당치 않는 이런 불충한 자인 것을 깨닫고 그 대속에.

삼대 대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감격한 그 마음을 가지고 그저 부족하나마 주님이  자기에게 부탁하신 그 제명대로 살려고 애쓰는 자 그자에게 당신이 네가 이렇게  힘썼으니 갚아 주겠다, 갚아 주겠다, 네가 이렇게 힘을 썼으니까 네가 힘쓴 대로  내가, 네가 힘을 열 냥어치를 썼으니까 내가 열 냥어치 대가를 준다, 백  냥어치를 썼으니까 백 냥어치 대가를 준다 그게 아니고, 이 대가를 떠났습니다.

이 대가를 떠나서 대가를 상대하지 안하고, 너희에게 너 행한 대로가 아니라,  너희에게 내가 값으로 주는게 아니고.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킨 그  정당한 대가로 주는 것 아니고, 네가 나를 사랑했으니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가  너에게 은혜로. 값없이 공짜로 내게 있는 것을 너와 네 자손의 천 대까지 베풀어  주겠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이 조물주시요, 이분이 주재자시요, 이분이  주권자시요, 이분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 이분이 우리의 상대가 됐으니까  우리는 안심하고 믿고 그분을 사랑하는 거, 그분을 사랑하는 거, 그분의 대속을  내가 감사해서 느끼면서 그 대속을 벗지 안하고 주 안에서 살라고 애를 쓰면서  그저 연약한 힘 가시고 주 안에서 살라고, 네가 주 안에서 살라고 네가 돈  문제도 생각지 안하고. 사업 문제도 생각지 안하고, 외판 문제도 생각지 안하고,  모든 사교 문제도 생각지 안하고 네가 어짤라고 자꾸 죄 문제만 생각하고 의  문제만 생각하고 하나님 모시는 이 문제만 네가 생각하고 살려고 하고 있느냐  모든 세상이 다 그렇게 말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걸을지라도 우리의 전 생활은  주님의 대속만 생각하고 그저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법칙을 하나라도  어기지 안하려고. 그분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 법칙을 어기지 안하려고  여기에만 전심전력을 다 기울입니다.

 여기에만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는 그자에게. 네가 행한 대로 갚으면 네가,  사교가, 사교가 네가 허무했으니까 네가 사교적인 손해를 볼 것이고, 네가 그  기능으로, 행위로 말하면 네 기능이 모자랐으니까 불구의 기능적인 네가 보응을  받아야 될 것이고 네가 네 모든 일 하는 데에 알뜰히 물샐틈없이 하지를 못했고  너는 죄, 의, 하나님 모시는 이것만 위주로 하고서 그저 '하나님의 법칙 어기지  안하려고만 애를 쓰고 거기에만 네가 전심전력 기울여 가지고 행했으니 너에게  정당하게 보응한다면 너에게는 이런 보응이 갈 것인데, 그런 자에게는 그 정당한  보응을 떠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은혜로, 당신의 모든 것을 은혜로 네 행한 대로  갚아 주는게 아니라, 대가 보고 주는게 아니라 당신이 감동돼서 당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당신의 있는 모든 것을 공짜 베기로 은혜로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생활 할 때에 우리가 과학적으로만 살라고 하지  맙시다.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은혜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과학적으로만 살라고 하지 말고, 정당성으로만 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당성에  보면은 모순되고, 합리성에 보면은 모순되고, 과학성에 보면은 모순되고, 또  자기의 인과 보응성에 보면은 모순되고, 자기가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처리성의  그 이치에 대해서는 합당치 안할지라도 주님 사랑하고 그 대속에 감격해서 그의  뜻 하나를 받들고 그를 섬길라고 하는 이 자에게, 인간이 볼 때에는 그는 참  모순이고 도무지 불쌍하고 가련하지마는 이 한 가지에 사는 그 사람을 주님이  높이 대우하시고 영원히 대우하십니다.

 왜? 그분이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지었습니다. 다 그분의 것입니다. 제기, 아리  똑똑하게 잘했다 할지라도 그분이 자기를 만들었고 자기에게 모든 것을 해 줘서  그 분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것이 아닌 것이 없는데 그것 가지고서  제 것인 줄 알고 이렇게 하는 그자보다 그분의 것인 것을 알고 그분의 대속한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분 한분을 보고 사는 그 걸음이 미련하고 어리석고 낭패되고  실패될 일로서 그렇게 되는 그때라도, 그걸 당해도, 내게 속한 그것을 당해도  나는 당신만의 사랑만은 잊을 수 없고 대속만은 잊을 수 없고 당신이 나에게  부탁하신 그 부탁만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해서 여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그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자에게는 행한 대로 갚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루어 놓은 모든 그이의  행한 대로 그이의 모든 활동 대로 갚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활동의  행함이나 그 수지 계산을 맞추는 계산을 초월해서. 초월해서, 그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에 그런 걸 다 초월해서 주님으로 더불어  사랑의 연결과 사랑의 연결과 사랑에 연결되니 여기에는 무조건 하고서 은혜의  연결로써 베풀어지는 것이 우리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면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너무 조브랍게 수지 계산을 따지지  말고 타산적인 신앙을 가지지 말고. 그분의 사랑에 우리는 감격해서 그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이 부탁한 이 한 가지만을 우리는 신실히 지킬라고  전심을 기울였을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대해서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계적으로 당신을 감동시킬라고 하면은  가증스럽지마는 나의 하는 일이 그분에게 감동이 되는 여기에서 만사는 형통되는  것입니다. 만사는 형통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에게 대해서 거슬려서 힘이  쥐이면 만사가 거슬립니다. 우리가 하루를 일을 시켜도 일군에게 대해서 그 일군  일 시키기가 힘드는 일군 있습니다. 힘이 드는 일군 있습니다. 마음에 정신에  부담이 되고 힘이 드는 일군이 있고, 만만한 일군이 있습니다. 만만한 일군 일을  못 해도 그 주인이 부자라면 만만한 일군을 택해 가지고서 모든 일을 시키지, 그  힘들고, 아주 힘들고 무겁고 마음에 부담되는 그런 일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다, 내나 여러분들이나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입니다. 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의 모형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는 것으로써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우상을 버립시다. 우리 앞에 당할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를 우리가  내다보면서 그때에 당하는 그 어려움과 같은 어려움으로써 오늘 기도해야 될  것이고 오늘 회개해야 될 것이고 오늘에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마에 서기관의  먹통 먹물로 이마에 그린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에 천인 만인이  엎드려져도 그 징계에게 그 이마에 먹물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마라 가까이  가지 마라, 가까이 가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고로 두 전도지를 우리는 힘 있게 전하고, 우리가 점점 전도지를 주고받는  데에서 점점 진실한 사람이 되어 집시다. 실상의 사람이 되어 집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지혜롭고 슬기로운 그런 사람들을 지으신 분입니다. 한 사람에게, 우리가 그걸  다 쓰지 못해서, 한 사람의 머리에 컴퓨터 천억을 한 사람 머리에 베풀어 놓고  계신다는 그 세밀하신 분이십니다.

 그라고, 장로님들, 오늘 아침에도 안 나오신 분들 있는지 모르겠는데 다 나와야  됩니다. 나와야 됩니다. 나와야 됩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또 뭐  있는 줄 아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탁 털면 아무것도 없이 톨톨 털려서  먼지뿐이요 송장뿐이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고 경고하실 때에  우리는 떨면서 회개해야 되지, 그분에게 뭐 내 놓고 뭘 배짱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우리나라도 아무 일 없습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미국 같은  대국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존재도 아닙니다. 뭘 가지고  우리가 배짱을 냅니까? 겸손히 회개하고 그분에게 굴해서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됩니다. 그거 아니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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