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품꾼 비유

 

1984. 10. 17. 수새벽

 

본문 : 마태복음 20장 1절-16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는 다 하나님의 포도원 일군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일으키는  일군들입니다. 자기가 무슨 성직을 가지고 일을 하든지, 아무 성직 없이  평신도로 일을 하든지 어떻게 신앙생활 하든지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하는 일군들입니다. 천국을 건설하는 일군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곧 천국입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천국 건설하는 일군들 하나님의 교회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들의 그 모든 사람의 온갖 정신 상태와 또 역사하는, 일하는 상태와 또  그들이 대우를 소망하는 소망의 상태와 또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대우하시는  그 대우와 또 하나님의 대우에 대해서. 그 대우받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그 상태 이런 것들을 여기에 표현했습니다. 아주 알기  쉽게 해서 우리의 넓고 복잡한, 넓고 복잡한 수많은 사람들의 그 천태만상의 그  모든 상태를 간단 명료한 요 포도원 일군 비유를 가지고 잘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계시해 주신 이 계시를 우리가 준해서 연구를 하면 수많은 천태만상의 그  모든 상태를 우리가 잘 비판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보니까 아침 일찌거니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또  세시에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여섯시에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아홉시에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열 한시에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차례로 일하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아침 일찌거니 일군을 구하는 자리에 일하려고 늦게 나간  사람도 있고, 또 일찍 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찌거니 나와서 일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 일군을 데리고 일을 할라 할 때에 일군은 지금은  아무도 일을 시킬려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나오지 안한, 품꾼을 구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아니하는 그런 아주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이르기 때문에 그때에는  일군이 그렇게 갈급이 없고 좀 마음에 든든한 그런 뱃심이 있을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서 '오늘 우리 일 좀 해주십시오' 이렇게, 일찍부터  일군을 데리고 일할라 하니까 주인이 그 일군에게 머리를 숙여서 '일찍 좀 우리  일 좀 해주십시오' 이라니까 그 일군은 아직까지 일찍 하니까, 이르니까,  '그러면. 얼마를 줄랍니까? 무슨 일입니까?' 뭐 이렇게 얼마든지 주인하고 서로  대화해 가지고서 품꾼 자기가 아주 고자세 되어 있고 또 일 시킬 사람은 일찍  일을 시켜야 될 터이니까 일찍부터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킬 것이고. 그래도 하루  품은 하루 품이니까 저자세가 될 것이고. 아주 일을 할 그 쓰이는 사람은  고자세이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저자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처음에는 말하면 '나 그 일은 안 할랍니다. 그러면 그 대우가  어떻습니까? 간식은 뭘 줍니까? 또 일은 무슨 일입니까? 언제까지 끝마칩니까?'  그 까다로운 조건이 많을 것입니다. 왜? 그래도 아직까지 이른 아침이니까  얼마든지 일하기 좋은 곳이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품꾼은 고자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일찍부터 왔기 때문에 자기 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많으니까, 일군 편에 있어서 자기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지금부터 가서 일을 해 주면' 하는 그런  것으로써 자기의 일할. 그 자체의 일할 능력에 대해서 그 사람은 고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얼마든지 지금 가면 뭐 일군들 구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고 또 지금부터 일 해 주면은 뭐 하루 종일 일해 주면 뭐 품 받는  거 거기에 대해서 아주 좀 고자세 해 가지고 교만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할 수 있는 자기 일 할 수 있는 자기편의 자기 자격과 일할 수  있는 그 힘에 대해서 대단히 고자세, 교만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만성을 가진  사람이오.

 이런데, 그 교만이 차차 차차 깨집니다. 나중에 보니까 세시가 됐으니까 벌써.

일군들이 다, 일을 하려면 지금 와서 모두 일군을 구할 터인데 세시가 돼도  아무도 일군 구하러 온 사람이 없으니까 그 일군은 '오늘 일 못 하겠네. 오늘은  일할 데가 없겠네.' 이러니까, 그 사람 자기의 일할 시간이나 자격에 대해  가지고서 좀 부족해지니까 차차 차차 그 고자세가 조금 꺾어지고 교만이 차차  차차 좀 꺾어집니다. '어디든지 일을 해야 되지, 아까 무슨 일 하라 할 때 그때  그만 가서 일을 할 걸 이제 안 됐다 이거. 이 일 저 일 뭐 일 가리다가는 안  되겠으니까 무슨 일이라도 하라 하면, 이제 그런 갈 데가 있으면 일하러 가야  되겠다' 이랬는데. 인제 세시가 지나서 벌써 여섯시가 됐는데, 여섯시가  됐는데도 자기는 아무 데도 일 하러 갈 곳이 없습니다. 일하러 오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면은 '오늘 헛일이라.' 그 사람이 대단히 갈급 할 것이고 '이거  나는 오늘 일할 때에 헛일한다 이거 뭐 내 시간도 벌써 시간이 이만침 지났기  때문에 뭐 지금 누가 와서 품꾼을 쓰겠노' 이라면서 자기 일할 능력과 그 모든  실력,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실력이요 또 자기 노력할 수 있는 그 힘이 실력인데  시간적 실력 그런 실력이 그만 아주 그만 감해져 버렸으니까 이제는 그 사람에게  교만이라 하는 것이 차차 차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나중에 이홉시가 되니까 고만 더 갈급합니다. 그저 일을 시킬 사람은 와  가지고서 벌써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가 가니까 뭐 일을 못 하고,  이런 데서는 없지마는 시골에는 가면 그렇습니다. 저 장터에 가면은 지게를  져다 놓고서 누가 일하러 오라 할란가 싶어 이래도 벌써 하루해가 거의 다가  놓으면은 아주 갈급해서 뉘든지 저기 와 가지고서, 저기 사람이 척 오면 멀리  보면서 별써 일군을 구하러 오는 사람인 상바르면 앉아 있지 않습니다. 얼른  서로 좇아갑니다. 좇아가서 '뭐 할 일 있습니까. 할 일 있습니까?' 이래  묻습니다. '할 일 있습니까?'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있다가 그 사람이 있다가서  '아니, 나는 아무 할 일 없습니다. 할 일 없습니다.' 하면 '아, 예.' 또 뛰 하이  해 가지고 기가 차 옵니다. 또 저기 누가 하나 오면 뭐 서로 갈급해서 이랍니다.

그라다가서 '뭘 좀 할라 하는데' 하고. 주인 이 고자세 해 가지고 '뭘 좀 할라  하는데 당신이 뭐 일할 수 있오? 보니까 그런 일 하지 못하겠네. 힘도 뭐  없겠는데?'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힘이 있습니다.' '당신 뭐 이런  일 할 수 있오? 그런 일 못 할 것 같은데? 뭐 좀 일군 같지 않구먼.'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이제 겸손해집니다. 자기에 대해서 일할 실력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안해 주는 거기에 대해서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하면서 점점  겸손해집니다.

 나중에 열 한시에 가니까, 그때까지 일 못 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저 뭐 아주  그만 '나는 오늘 일은 틀렸다. 오늘은 할 일이 없고 나는 일할 수 없으니 오늘은  아무도 날 일군으로 써 줄 사람이 없다' 싶어서 자기는 아주 저자세가 됩니다.

(저 사람은 자꾸 조불라, 지금. 나오기는 잘 나오는데.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와 조불라 졸기를? 저 ○집사 딸 말이오, ○집사 딸. 그래도 몰라? 뭐꼬. ○  집사? ○○○이 어머니 옆에, 그래도 모르겠어?)  이렇게, 여기에서 일할 수 있는 자기의 일할 자격에 대해서 자기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모든, 나는 실력이 얼마든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에 그 평가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오늘 예수 믿으면서 자기가 복음 일을 하고 신앙 생활 하면서도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자기 실력을 인정하는, 자기 가치를 인정하는 인정에 대해서 아주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자기 실력의 인정을 많이 인정하고 적게 인정하고 하는 그  차이점이 있는 것을 여기에 나타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차이점에 대해서.

 또 그 다음에는 일을 해 달라 하니까 '무슨 일이오?' 이렇게 고자세로,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자기를 쓸라 하는데 대해서, 자기는 쓰여지는데 대해서  '내야 뭐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데, 오늘이 좀 일찍 하니까 무슨 일이라도 이  일이든지 저 일이든지 뭐 일할 거 많을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를 일군으로  써 주는데 대해서 쓸라면 쓰고 말라면 말고 자기가 입맛을 갖추어 가립니다.

'무슨 일이오?' '무슨 일 무슨 일입니다.' 그때는 주인이 머리를 숙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안 할랍니다. 나 그런 일 안 할랍니다.' 또 '무슨 일이오? 아,  그 일 힘이 많이 들더구만. 나 그 일 안 합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쓰여지는데  대해서 교만해지는 거, 쓰여짐에 대해서 교만. 자기 실력으로 인해서 교만한 거,  쓰여짐에 대해서 교만한 거.

 이러니까, 그 사람이 일을 합니다. 일을 하면서 '뭐, 내야 아침 일찍부터  왔으니까. 좀 늦게 왔어도 할 수 있는데 일찍부터 왔으니까 내야 좀 뭐 슬슬  해도 되지.' 일을 하면서 교만해집니다. 일을 하는, 일을 하는 그 노력에  대해서. 노력에 대해서 고자세요 교만입니다.

 또. 이러니까, 나중에 보수를 거석할 때도. 품을 줄 때도 '나는 아침에  일찌거니 왔는데, 다른 사람은 늦게도 왔는데 일찌거니 왔으니까 내야 좀 더  주겠지' 이래서. 보수에 대해서 자기는 많은 보수를 요구했습니다. 이러니까.

'나를 좀 대우를 좀 더 많이 해줄 것 아닌가? 대우를 많이 해 줘야 마땅하지.'  자기로서의 주인이 자기 일한데 그 대우를 많이 기대랍니다. 대우, 대우를  기대하는 데에 대우를 많이 기대합니다. 큰 대우를. 높은 대우를. 많은 대우를,  아주 참 훌륭한 대우를.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주인의 생각보다도 대우를 더  지나치게 바라는 대우에 대한 교만한 사람입니다. 대우에 대해서 교만한 사람.

 또, 그라고 나서 나중에 품을 줄 때에 주인은 정반대로 줍니다. 맨 뒤에 온  사람을 먼저 불러 가지고서 주고, 이 사람은 처음에 약속할 때에 '몇 시까지  일하고 몇 시에 내가 회계해 주겠다' 하는 고 시간, 뭐 일 분도 어기지 안하고  고 시간 딱 기다리고, 뒤에 온 사람은 척척 내주고 이 사람은 안 주고 이래  쌓아니까 '아, 나는 맨 뒤에 지금 있는 것 보니까 아마 많이 줄란 갑다'  이랬는데 내나 한 데나리온만 줍니다. 이라니까 뒤에 가서 '왜 나는 대우가  이런가?' 대우에 대해서 이제는 불만 불평이 있습니다.

 요것이 천국의 제일 뒤떨어진 사람이요, 요것이 들어서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나태하게 만들고. 신자들의 모든 행위로써 주님을 노엽게 만들고 주님에게  밉상스럽게 보이고 주님에게 대해서 아무런, 우리가 어제 아침에도 말한 거같이  우리의 실력은 뭐이냐 하면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감사하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거, 다시 말하면 주님에게 감화 감동을 줄 수 있는 이것이 우리  실력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감탄할 수 있는, 주님에게 감화  주는 이것이 끝없는 실력이지 제가 어떤 실력을 가질지라도 행함 가지고  나타나면 심히, 행함 가지고 말하면은 '네가 없는 가운데에 내가 너를 만들었어.

너 만든 값을 내놔.' 오늘까지 너 의식주의 모든 값을 내라 하면 저는 전부 빚진  것뿐이고, 그 주인에게 대해서 빚지고 도둑질한 거뿐이고 원망 불평뿐이고  이러니 지옥밖에는 갈 곳이 없다 그 말이오.

 이것이 천국의 뒤떨어지는 일이요, 천해지는 일이요, 무능해지는 일이오, 모든  힘을 잃어서 무력한 자가 되는 일이요, 모든 불만 불평의, 고통의 불안의  지옥에서 사는 길이 되는 것을 여기에서 가르쳐서 보인 것입니다.

 한 품꾼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아, 이제 나 같은 거, 나는 오늘 헛일이다.

나는 오늘 헛일이다.' 자기는 일할 자격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늘 나는 할 일이 없다.' 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자기의 그  시간적이나 모든 실력에 대해서 자기는 아주 쓸모 없는 오늘은 아무 할 일 없고  쓸모 없는 사람이라 하는 고것을 해서, 자기 자체의 자격에 대해서 아주 무능한  줄 알아서 자기 자체의 자격에 대해서 겸손한 사람이 됐습니다. 자기 자체의  자격에 대해서 겸손한 사람이 됐습니다.

 이런데. 일을 시키니까. 일을 시킬라 하는데 대해서 '뭐 이런 일 하겠습니까?'  '아이구, 예 무슨 일이든지 하지요.' '오늘은 우리 수왕 똥구덩이 똥구덩이 똥을  푸겠는데 이거 하겠습니까?' '아이구, 애. 뭐 무슨 일이든지, 하기를요.'  이라면서. 무슨 일이라도 자기의 일을 시키는데 대해서 거기에 대해서 고자세를  하지 안하기 때문에 일을 가리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아 나 같은 걸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에 조건이 없이 자기를 써줌에 대한 감사의  겸손이 있습니다. 써줌에 대한 겸손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것을 이렇게 일을  시켜 주다니' 그것이 있는 것이 천국에 앞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일을 할 때에 어떻겠습니까? 이 두 가지가 있으니까 일을  할 때에 다른 사람은 느른 느른 해도 자꾸 일합니다. 다른 사람이 '야 이 사람아  좀 놀며 해라.' '아, 나는 이거 아무도 안 써 주는데 날 오늘 늦게사, 시간도  없이 뭐 일할 때도 아닌데 날 늦게사 와 가지고. 그래도 일을 해 달라 하니까'  그저 마음에 감사해서, 자기의 무능한 것을 알고 보니 자기 써 주는 것이  감사하고. 자격 없는 걸 써 주니 감사하고. 보니까 그 일을 하는 데서 감사에 못  견뎌서 자기 있는 성심 성의대로 다해서 하면서도 '아 나는 이렇게 오늘 일할  자격이 없는 자인데'  자기 자격 없는 실력에 대한 겸손, 자기 등용에 대한 감사, 이러니까 그 일함에  대해서 겸손입니다. 일함에 대해서 그저 그 사람은 남은 시간 일하면서 항상  갈급입니다. 항상 갈급이요, 가난이요, '내가 이거 어떻게 해야 그래도 주인의  요구에 맞도록 일을 해 줄까, 시간을 채워서 해 줄까, 내가 시간은 뒤에, 내가  뒤에 왔으니까, 좀 늦게 왔으니까 오늘 이 늦게 온 값을 내가 해야지.'  일하면서도 자꾸 일을 하면서도 늦게 왔고 자격없는 그것이 자기를 독촉하기  때문에 항상 일을 해도 '모자란다 모자란다. 내가 좀 더 더 더' 좀 더 해야  되겠다는 그런 자기 노력에 대한 겸손과. 노력에 대한 겸손과 갈급과 가난이  있습니다. '아,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루 품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늦게  왔으니까 나는 이거 참 주인에게는 손해를 보이는, 손해를 보이는 종인데 내가  어쩌든지 손해를 덜 보이도록 내가 좀 열심히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그 갈급과  겸손.

 그러기 때문에. 죽도록 자기가 충성하고 순교하면서도 주님이 자기를 값으로 산  주님이 대속하신 그 사랑을 생각하니 베드로는 말하기를. 베드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모든 종들이. 죽도록 충성하고도 '주님이여, 참 무익한  종입니다. 주님은 큰 값으로 샀는데 내 일한다는'것이 값의 억억만분의 일의 종  노릇도 못 했습니다. 아무 무능한 것을 이렇게 큰 대가로 구속했는데 나는  주님에게 대해서 너무도 불충과' 불충에 대한 갈급과, 불중에 대한 갈급과  자기의 무익에 대한 갈급과, 가난이. 그것이 자꾸 있는 것은 자기와 자기를  구출해 준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그 느낌이 하루 종일 일하는 데에 그 사람에게  늘 갈급이 오고 부족함이 오고 정신없이 있는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서 일하는 그  노력에 대해서, 그날 일하는 그 노력에 대해서 겸손, 노력 겸손이 나옵니다.

노력 겸손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이러니까, '오늘 이래 했지마는' 나중에 모두 '고만 하시오. 모두  일 다 그만하고 오시오' 이래도 이 사람은, 일을 그만 하라 해도 뭐 뭐이라고,  보니까 좀 잘 보일라고 연장도 씻고 뭣도 하고 '고만 내일하지요. 고만  오십시오' 해도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그 말이오. 왜? 자기가 아는 대로  자기는 참 부족한 것이. 자기의 자격에 대해서 쓰여짐에 대해서, 모든 면에  대해서 그러니까 일할 때도 그렇지마는 나중에 간조 받으러, 오라 하니까 만만히  못 온다 말이오. '아이구, 내가 이런 것이 뭐 몇 푼이나 줄란가. 내가 먼저 가  가지고 간조 받으러 간다고서 떡 오라 한다고서 떡 가서 받을 듯이' 가기가  부끄러워서 못 간다 말이오. 부끄러워 못 가고 뒤에 얼친 얼친 거리니까 이리  오라고서. 이리 오라니까 '나는 아마 몇 푼이나 주고 이래 말란갑다' 이라고  가니까 보수에 대해서. 자기는 보수에 대해서 부끄럽고, 보수에 대해서 대우에  대해서 부끄럽고 대우에 대해서 바라지를 그렇게 크게 바라지를 못하니까 대우에  대해서 겸손합니다. 대우에 대해서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온 이를 먼저 하루 품을 주니까 '이거 어쩐 일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자꾸, 대우가 너무 많으니까 이 대우에 대해서 너무  과대하다고. 너무 많다고 이래 가지고서 자꾸 '이거는 내가 이래 하면 안  됩니다. 뭐 자기가 대우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많다고 해 가지고서 대우를  받는데 대해서 겸손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일 마지막에  갔지마는 앞서 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 '나는 일찍 왔으니까 대우가 이거 뭐입니까? 일찍가서  아주 대우를 바라는 대우가 많아졌고, 대우에 대해서 교만해졌고, 또 대우  소망에 대해. 대우를 바라는데 대해서 교만해졌고, 대우를 해 줌에 대해서  나중에 불만 불평으로서 이와 같이 된 이것이 모든 신자들의 아침 일찌거니,  세시에, 여섯시에, 아홉시에. 열 한 시에 온 이 종류대로의 그 속에, 뭐  아홉시니까 열시도 있을 거고 열시 반도 거기 있을 것이고 있겠지요. 이래서,  이것으로써 하나님 앞에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 비유에서는, 이거는 아홉시 열시 알기 쉽게 이렇게  말했지마는 하나님은 원하시는 그 원하심이 뭐이냐? 제일 원하는 것의 첫째로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 '주님이  아니면 내가 이 시간도 지금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데 실은 자기는 털끝만한  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고. 털끝만한 것도 움직일 그런 독단의 그런 힘이  없다는 그것이 자기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바로 알고 주인을  바로 아는 고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무신하지, '나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나를 이렇게  맡겨 주시니' 자기에게 맡겨 주신 그 일을 바로 깨닫고 마음에 감사함이 참 있을  대로 있을. 감사한 것을 참 바로 깨닫고 감사함을 가질 대로 가지는, 바로  정상적인 감사를 가지는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또 일할 때도 고 늦게 온  품꾼이 '아, 날 같은 걸 써 주다니? 내가 거 지금 어떻게 하면 될까?'  바울이 말하기를, 죽도록 충성하고도 바울은 말하기를 다른 이에게 '나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일하면 상급이 있지마는 나는 이렇게 일한데 대해서 상급이  있는게 아니라. 나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고 나는 주님을 많이 노엽게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안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큰 벌을 받는다. 큰  화가 내게 있다.' 큰 화가 있어 그 화, 화를 하나님께서 다소라도 감해 주고  화를 벗겨 줄 그것만 바랬지 자기에게 대우라 하는 것은 바라지 안한 것이 사도  바울의 정신이었습니다. 고것을 주님이 원 하십니다. 고것을 원하는 것은 고  실상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뭐 대속이 아니라도, 대속이 아니라도 창조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도 그분에게 상대하는 우리의 정상적인 상대를, 우리 의무와  책임을 못하는게 아닙니다. 창조적으로도 그렇지, 거기다 대속 해 놓은  대속적으로도 그렇지, 또 대속하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맷정을 쓰고 얼마나 주님을  노엽게 하고 얼마나 반역하고 얼마나 패역한 그런 것을 다 자기가 바로 깨달으면  거기에 대해서도, 뭐 하나님의 진노의 안면이나 지금 우리에게 향해 가지고서  무슨 벌이나 안 받을까 그런 것이지, 뭘 대우할까, 내가 이렇게 일을 했는데  나를 뭐 대우를 안 해 주는가. 내 환경과 주어지면 와 다른 사람이, 나에게는  행복스런 가정을 안 주는가, 나에게는 경제의 풍부를 주지 않는가, 나는 높은  존귀나 지위나 그런 걸 주지 않는가. 나에게 대해서 어떤 흥왕한 부강을 주지  않는가, 명예 영광을 주지 않는가, 형통을 주지 않는가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그게 모두 다 자기를 몰라서 자기를 과대평가 하는 데서 그러하고, 자기의 사명  감당에 대해서 너무 과충했다 하는 과대평가에서. 모두 다 과대평가의 교만에서  그런 것이 나와 가지고 사람들이 다 힘을 잃고, 기쁨을 잃고, 사람이 변질돼서  예수 믿으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지를 못하고 옛사람으로  살아서, 옛사람으로 생각하고 옛사람으로 말하고 이라니까 저 죽고 남 죽이고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 옛사람인 것을 모릅니다.

 옛사람은 간단합니다. 옛사람은 어떤게 옛사람이냐? 생각,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어떤 생각하는 것이 옛사람인가? 성경대로의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옛사람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성경  말씀대로의 생각할 사람이지 성경 말씀대로 생각지 안하는 사람은 다  옛사람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생각지 않는 사람, 소원도 그렇습니다. 소원도,  그러면, 어떤 소원하는 것이 옛사람인가? 성경 말씀대로 가 아니고 이 세상,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소원하는 대로 소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옛사람입니다.

 새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성경 말씀대로의 소원을 가지는 사람이 그 사람이 새  사람이오. 그러면, 자기가 기쁨을 가지는 거 기쁨도 그러면 세상 사람이 가지는  대로의 기쁨을 가지는 그 사람이 옛사람입니다. 바로. 그게 바로 옛사람이오.

성경이 기뻐하라는 성경이 기뻐하라는 그 성경대로의 기쁨을 가진 그 사람이  새사람입니다. 간단하요. 영감대로입니다. 그보다 더 높은 영감대로의,  영감대로의 생각하는 사람, 영감대로 비판하는 사람, 영감대로 평가하는 사람  영감대로 소원하는 사람, 영감대로 계획하는 사람 영감대로의 희로애락을 가지는  사람. 영감대로의 모든 가치 평가의 사리 비판을 하는 사람 영감대로 자기는  발언하는 사람, 영감대로 주장하는 사람, 영감대로의 소원 가진 사람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 위에는 주님의 피로 대속했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에, 사죄의  대속대로의 생각하고 소원하고 대속대로의 비판하고, 대속대로의 욕심을 가지고,  대속대로의 말하고. 대속대로의 경영하고 대속대로의 희로애락을 가지는 그것이,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옛사람으로 일생 동안 살면서 자기는 새사람인 줄 알고  삽니다. 우리의 어떤 일이라도. 죄를 회개할 때에 '아. 내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 해주옵소서.' 그것도 좋지마는 그거는 백 번 해 봤자  헛일입니다. 백 번 해 봤자 그 죄는 사함 받고 하지마는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죄를 지을 때에 이 죄를 누가 지었느냐, 자기가 무슨 말 한 마디  잘못했으면 말 한 마디 잘못한 거 '아이구, 예. 잘못했습니다.' 다 외식의  회개요. 말을 잘못했으면 이 말 한 자가 누구냐? 이말 한 자가 누구냐?' 거기서  말 한 놈 고놈을 찾아 가지고 고놈을 죽여야 됩니다. 여기에 내 원수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노가 풀리고 자기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껍데기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 나는 조브랍고 이렇게 모든 지식이나  시야가 좁은데 하나님은, 전체를 다 아시는 분이 그분이 전지하신 분이 예정하신  그 예정대로의 모든 순서가 진행돼 나가고 전개돼 나가는 것인데 이 예정은 뭐  하려고 했을까?' 범죄한 예정이든지 의를 행한 예정이든지 이 예정을 뭐 하려고,  주님이 했는데 이 예정이 내게 무엇이 필요해서 요 예정을 했는가 예정을 자기가  깨달을라고 더듬어서 장 그 예정을 찾아 가지고 '아, 요 때문에 주님이 요거  예정 하셨으니'고 예정한 고 주님의 예정하신 전지의 지혜나 자기의 비판 평가한  것이 일치가 되어질 때에 그때는 어디서든지 '모든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고 움싹이 나옵니다. 온전히 기쁜 거, 왜?  당신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 그렇지 감사 안 할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럴 때에 그것을 찾아 가지고서. 자기가 죄짓고 난 다음에  원통하고 내가 이거 참 분하고 하는 그것도 좋지마는 죄짓게 한 고놈을 찾아  가지고 고놈을 죽이는 것은 더 귀하고. 그보다도 더 귀한 것은 '주님이 나에게  와 이런 예정을 해 주셨을까? 아, 이는 내가 앞으로 미래에 영원을, 나는 이럴  수 있는 자인 것을 나로 하여금 알리기 위한, 나는 이럴 수 있다는 자라는 것을  평생 잊지 안해야 되겠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평생 잊지 아니하는  거기에서 베드로는 큰 능력이 나와 가지고서 항상 목마르지 안하고서 계속된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의에 대해서는 '와 이랬을까?' 의에 대해서, '내가, 이것이 주님이 날 붙들고  하신 것이지 내가 나 된 것 아닌데, 이로써 내가 교만해지고 우쭐해지고' 이래  가지고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가 될까해서, 요래 놓으니까 우쭐해져서 고게서  고 되는 데도 '내가 이리 했다.' 스스로 섰다 말은 제 힘으로 했다 그 말이오.

제 힘으로 했다는 여기에 '아, 요번에 요놈이 나왔다. 고놈 나오는 것을 죽여서  영원히 그런 자가 없는 것이 천국인데 그런 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했구나'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정의 그 광대하신 뜻을 찾아서 다소라도 이렇게  맞추어 나가는 그것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복종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이러면 자기가 성화되면 성화됨에 따라서 점점 깨달은 것이  달라지고. 자기의 모든 견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이 포도원의 일군 비유에 대해서 우리는 잘 찾읍시다.

그러기에, 일찍 온 사람이 제일 실력 있는 사람, 시간적으로 실력 있는  사람이오.  또 아주 자기 일을 선택하는데 대해서 실력 있는 사람이오. 또 자기  보수에 대해서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실력 있는 사람이 나중에 가서  보니까 구원에 천하게 된 사람. 천하게 된 사람입니다. 천하게 된 사람.

그런고로, 우리가 깨달아서 오늘에 우리가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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