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구함- 요나의 표적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7일 월밤집회 

 

분문 : 마태복음 12장 38절∼39절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때는 육체의 이스라엘이 끝나는 때이요, 신약 교회가 시작하는 때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 끝날 때의 모든 이스라엘들의 형편을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서 이 문서 계시를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종교 말년과 또 신령한 이스라엘의 종교 말년과 또 노아 시대의  모든 종교 말년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신앙 형편 이 유사한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연히 그때에 돌발적으로 이런 문답의 형편이 생겨진 그런 것으로서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목적 곧 교회 건설을 위해서 영원  전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그 예정대로의 이 모든 형식들을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로 역사하셔 가지고 이 문서 계시에 나타난 이 형식 계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단순히 세상에 수많은 형편과 사정들이  있는 것처럼 그때에 그런 형편과 사정들이 있었는가 보다 하는 그런 우연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신약 교회의 말년에 처하여 있는 우리  성도들을 경고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종교 말년의 그런 형태인 것을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메시아, 구주가 오실 때에 육체의 이스라엘은 그것으로서 끝을  맺는 그 종교 결실 시기인데 그 결실시기에 그들의 신앙 형편이 어떠하였던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기록하셔서 신약 시대 신령한 이스라엘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령한 이스라엘의 끝마치는 그 시대에 신앙 형태들이 어떠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에 그들의 신앙 형편이 이렇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보고 깨달아 오늘 우리의 신앙 형태와 어떠한가 하는 것을 대조해서  깨달을 바를 깨닫고 고칠 바를 고치고 구원을 이루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서기관들이라고 하면 성경학자들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성경학자들이요, 또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신앙에 독실한 교파들입니다. 신앙에  독실한 교파에 속한 교인들 중에 명 사람과 또 성경학자들 그 많은 가운데에서  몇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말한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게 소원을 간청했습니다. 다른 성경에도 보면 표적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그저 예수님을 대적해 버리는 그런 사람들도 많았고, 또  표적을 구할 때에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가지고 표적을 구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진정 표적을 구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에 많은 신앙의  종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와 가지고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표적이라 말하면  이적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적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초자연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그런 흔적을 보여 달라는 그런  말이요, 또 표적을 보여 달라는 말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하늘나라의 도리를 아주 훌륭하게 유창하게 이렇게 전하는데. 그 전하는 그분이,  전하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참으로 하늘에서 오신 메시아인지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신이 같이 하시는 하나님의 종인지 그 여부를 알고  싶어 표적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때도 벌써 이스라엘 종교가 근 이천 년이나 그저 연단에서 연단을, 수련에서  수련을, 또 말을 꾸미는 수사에서 수사를, 연구에서 연구로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초림하실 그때는 육체의 이스라엘의 종교론이나 모든 종교 안에  있는 뭐 도덕론, 윤리론, 사회론, 정치론 모든 사상론 그런 것이 연마될 대로 된  때입니다. 연마될 대로 되어서 이 서기관도 저서 기관도 구별할 것 없이  서기관이라고 하면 말은 전부 청산 유수입니다. 또 말은 전부 천사와 같습니다.

또 바리새 교인들도 그때 벌써 오랫동안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형식에 제도와  의식을 가하고 가하고 연마하고 연마한 그 종교 의식과 제도를 갖추었기 때문에  뭐 사람들 보기에 참 흠이 없을 만치 다 훌륭하고 깨끗한 생활들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언제 시간 있으면 증거 하겠으나 모르겠습니다. 할는지.

거기에 보면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봐도 흠을 잡지 못할 만치 아주  종교 의식이나 제도나 또 그 종교 유전이나 풍속이나 성경에 있는 이런 저런  뚜렷한 그런 조문들이나 그런 것을 지켜 행하는 것이 누구를 봐도 다 성자들이요  다 성녀들이요 독실한 신앙가들이요 또 아주 위대한 서기관들이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러니까, 어느 사람이 참 제사장인지, 참된 신자인지 가짜  신자인지 이것을 도무지 구별하지 못할 만한 그런 세련이 되어 가지고 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내가 그 말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동경은 가면 여자들 얼굴이  전부 다 같은 얼굴로 됐는데, 전부 꼭 같은 미인이라고서. 왜 그런고 하니  얼굴이 뭐 울뚝불뚝 하든지 말든지 어쨌든지 의학을 가지고 그 재 제조를 해서  아주 전부 미인으로 다 돼 가지고서 있으니까 그 사람이 참으로 그렇게 과학으로  얼굴을 만들기 전 선천적인 그런 미인은 어떤 사람이 미인인지 어떤 사람이 아주  얼굴이 못난 사람인지 그것을 구별할 수가 없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종교 말년도 그러하였습니다. 서기관으로 말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교리와 신조에 능숙하고, 또 표현하는 그 방법도 아주  유력하고 또 거기에 다정 다감의 그 모든 가미를 붙여 가지고서 하는 것이 누가  낫다 누가 못하다 할 것 없이 전부 서기관은 서기관으로서의 참 흠점을 잡지  못할 만치 다 위대했고, 또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그 신앙에 대해서 저 사람이  진실한 신앙가인지 거짓부리 신앙가인지 어느 사람이 창 신앙의 사람인지  성녀인지 성자인지 그걸 모를만치 전부 그 의식과 제도와 형식과 모든 행위들이  다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 가운데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도요,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요, 그것이 참 이스라엘 백성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서기관들과  바리새교인들이 많았고,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외식은 겉을 꾸민 이 외식,  외모, 말, 꾸며 놓은 수사 모든 표현하는 방편 의식, 제도, 태도 이것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흠이 없다고 할 만침 온전하지만 이들이 다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역사가 이들과 같이 하는지 안 하는지 하는 그런 의심을 품은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면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오셨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하는 것을 좀 표적으로 보여 주옵소서' 하는 것을 간청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도 참 이 말씀에서 크게 경고함을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교역자회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증거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종교 말년과 꼭 같은 신앙 형태의 시대가 됐습니다. 교역자라고  하면 다 말 잘하고 설교 잘하고 교리와 신조에 밝고 또 모든 표현하는 것이 다정  다감의 인간 심리 이용까지, 다 해서 어떻게 능란하게 아주 유창하게 이렇게 다  설교하고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또 믿는 신자들도 그저 제대로 다 성경에 맞추어 가지고서 아무가 봐도 '저  사람은 비성경적이다.' 할 만한 그런 흠 잡을 것이 없을 만치 사람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모든 신앙생활들이 근 이천 년 동안세련을 받아서 나왔기  때문에 참 이 사람 보면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성자요, 성녀요 저 사람 보면 저  사람 하는 것이 성자요 성녀요, 이 사람이 증거 하는 것 보면 그가 선지자요 저  사람이 증거 하는 것 보면 그가 참 성경학자요 이래서 그저 사람들이 제각각 다  만족을 하고, 어느 교회 가나, 어느 교파에 가나, 누구를 맞이하나 그는 다  예수님의 신실한 종이요 또 분명히 독실한 신앙가라고 할 만침 그렇게  신앙생활들이 다 구비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실상이 어떠한지 그 면을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를  못했습니다. 그때도 보니까 '서기관과 바리새교인 중에 몇 사람이 말하되'  이랬습니다. 몇 사람이, 그 다대수가 아니고 몇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의심하는 그 번민을 가지고서, 여기 와 봐도 천사요 저기 가 봐도  천사요 여기 가 봐도 성녀요 저기 가 봐도 성자요, 다 이런데, 자기가 자기를  살펴보는 대로. '참 내가 나를 살펴보는 대로 나는 말 신자요 껍데기 신자요,  진정 내가 하나님과의 그 연결'된 연결이 없는 나를 보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가? 이러니까, 말 잘하는 사람 이 문제가 아니고,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사이 문제가 아니고. 종교 의식과 제도와 모든 그 생활을 꾸며서 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는가?' 자기가 자기를  알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그 사람들과 다 같지만 내가 하나님과 진정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역사하고 내가 하나님을 진정 그분을 찾아  가지고 그분과 연결되는 이런 자가 아닌 외식 행위를 나도 이렇게 잘 민첩하게  하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그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은 명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종교 말년의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이여, 껍데기만 꾸며 놓은 서기관과 바리새교 인들이여'  하면서 거기에서 일곱 번이나 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것을 어떤 사람은  보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저주받은 것은 주님이 저주를 하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나 주님이 저주하신 것은 아니고 저주받을 수 있는 그 원인 된 것을  그들에게 말할 때에 고치지 아니함으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다 외식하다가 멸망을 받고 마는 것이지 주님이 저주하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때에 그렇게 말로 형식으로 태도로  이렇게 꾸민 것이 순전히 인간 수단 방법, 궤휼. 외식, 모두 다 자기를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것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실은 다른 사람도 속이고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속이는 그런 모든 자타를 속이는 외식하는 그 종교인들이 되었던 것을  우리가 역사를 들어서 알 수가 있고, 다른 성경에 볼 때에 주님이 그들에게  대해서 지적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고, 또 그들이 대대로 오랫동안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가 오니까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을 보아서  그들이 또 얼마나 외식으로 가식으로 꾸며서 스스로 자기들이 자기들을 속인  자멸하는 자이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거기에서 보고 판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몇 사람은 이 모두가 다 껍데기로 꾸며서 인간을 속이고,  인간 노름이요 인간 단체로 전부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이용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이용하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지 참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의문이라서 그 의문에 대해서 마음에 답답하고 견디지를  못해서 주님 앞에 와 가지고서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말했고 여기에도 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깨달을 것은 오늘 우리는 이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 이 세대에 서기관들이 말 잘하고, 교리일 신조에 능란하고 교인들이 이  모든 의식, 제도, 형식, 외모의 신앙생활하는 이것으로서 족하다 하고 안심하고  이것으로 만족을 하고 뿍뿍 이대로의 나가는 이런 사람으로 지나갈 것인가?  여기에서 이 서기관 몇 사람과 바리새교인 몇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가 봐야 말은 다 천사의 말이요 말은 전부 다 선지자들의  말이요. 성경 말씀이요 능란하고 다 흠점 잡을 것이 없고 이 교파도 저 교파도  다 이러한데 이게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짜인지,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는 가짜로서 자타를 속이는 이 모든 연극 노름인지 이게 뭐인지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이 당신이 이와 같이 하신다는, 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 교파에서 혹은 이 사람에게서, 이 교회에서, 이 개인에게서 하나님  당신 이 함께 하신다는 이 증표를 인간이 할 수 없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그것으로 좀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요런 것을 요구하는 신자가 오늘  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느니라' 그렇게  예수님께서 표적 보여 달라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과연 그 대답은 참 정답이었고 거기에 대해서 꼭 올바른 대답이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속에는 악한 세대요, 세대라고 말하면 그때에 육체의 이스라엘의 전부를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속은 악한 세대요 껍데기는 음란한 세대라, 악한 세대라 말은 속은 이 선지자  저 선지자 이 제사장 저 서기관. 이 바리새교인 저 사두개교인 할 것 없이  모두를 다 주님이 오실 때에 가리워지는 것이 없이 그 속을 환하게 쪼개 놓고  들여다 볼 때에 그 속은, 입은 천사의 말을 하고 아주 그리스도의 참 신실한  선지자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악이 가득찼다, 악뿐이다, 전부는 다 자기  중신이야. 자기중심이라. 사람이 볼 수 없는 껍데기로 첩첩이 봉하고 봉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인간들은 볼 수 없어 보지 못하지, 그 속을 주님이 들여다  볼 때에는 그 속에는 전부 자기중심이라, 악이라, 자기중심이라. 부흥사도  자기중심 목회자도 자기중심. 모든 이런 열심의 사람들도 자기중심, 속에는  자기중심뿐이라. 이 악한 세대라. 예수님이 그때에 모든 종교가들을 '이 악한  자들만 모인 세대라' 말씀했으니 오늘은 그 말씀이 우리에게 어찌 되는지 우리가  고요히 자기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음란한  세대라는 말은 성경에 보면 요한계시록에는 여러 군데 그렇게 기록해 놨습니다.

아주 사치스럽게 아름답게 꾸민 음녀라 고렇게 말해 놨습니다. 음녀라. 또 모든  지식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거기에 음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과 상대하지  못하게 유혹해서 이 세상과 상대하게 하기 때문에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  유혹하는 그 면을 가리켜서 음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자주하는 자들이나 왕들이나 상고들이나 종들이나 모두가 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다 음행한다'하는 그 말은 하나님은 버리곤 이 세상을 탐해서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매력에 다 끌려 가지고서 '세상 매력에 끌려서 세상  매력과 합작이 돼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외식하는 세대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외식하는 세대야!'  속은 -전부라고는 말하지 못할런지 모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도매금으로  말씀했습니다. 속은 악이 가득 찼고 껍데기는 세상 번쩍거리는 이 세상 좋은  모든 세상에 이십 세기의 문화, 이십 세기의 모든 사치, 이십 세기의 편리, 이십  세기의 이 모든 화려한 이 세상에 있는 그것으로 더불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는 그것이 껍데기다. 알맹이는 악이요 껍데기는 음란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판정을 내리셨습니다. 판정을 내리셨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몰랐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전부 화를 받을 외식자만으로 되어 있는 그 세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외식으로서 이런 외식 저런 외식 전부 다 외식이라.

외식으로써 화를 받을 그런 이스라엘 종교 말년의 모든 종교가들이지만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도인 줄 알고 만족하고, 또 그것으로써 자신 있게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써 자기의 인기를 끌라고 하는 이것이  능하면 능할수록 그것이 권능인 줄로 이렇게 알고 그것이 하나님의 도라고 해서  백성들의, 어리석은 백성들의 눈을 이 면으로 기울이게 했다가 그 면으로  기울여서 거기에서 권태 나면 또 새로 한길을 발견해 가지고 저 면으로  기울여서, 이렇게 사람들의 눈을 이리 끌고 저리 끌어 가지고서 이렇게 매일  매일을 메꾸어 가는 것으로 능력인 줄 알고, 수단인 줄 알고, 그것이 종교인 줄  알고, 그게 하나님의 도인 줄 알고, 그것이 후원인 줄 알고 이렇게 지내 나갔고,  그중에 몇몇은 '아니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된다. 확신이 안 생겨진다. 이게  외식하는 껍데기가 아닌가?'해서 속으로 '뭐인가 이 외식의 껍데기를 벗기고,  하늘에서 온 분이라. 하늘의 도라. 이게 참 생명의 도라 하는 것을 무엇인가  인간이 할 수 없는 방편. 인간이 할 수 없는 방편, 인간이 꾸밀 수 없는 그런  모든 조작,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것으로 보여 주셨으면 안심을 하고  따라가겠다' 하면서 그 회의심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질문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질문할 때에 주님은, 다른데 보면 '심히 탄식하셨다.' 이렇게 표적을 구하는  거기에 대해서 주님이 '크게 탄식하셨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주님 말씀하시기를 '이 악하고 음란으로만 되어 있는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표적을 구하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표적을,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는 표적을, 소경과 귀머거리와 모든 벙어리를 보고 듣고 말하게 하는  표적이나 모든 문둥병을 고치는 표적이나 암병을 고치는 표적이나 그런 어떠한  표적 가지고도 이 세대는 구원할 수가 없다. 이 세대는 구원할 수가 없다.

'요나의 표적 외에 다른 표적 가지고는 구원할 수가 없다.' 하는 것으로서  주님이 결론을 지웠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에 이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 이 세대는 말할 것 없이 다 훌륭하고 구비한 서기관들과 열심 있는  바리새교인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신령한 이스라엘의 종교 말년이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요새도 보면 통지가 매일은 안 와도 며칠만에 한 장씩은 오는데! 전부  보면 무슨 선교회 무슨 몇 교회 운동 또 목양회 무슨 협회 전부 전도에 관한  것이 뭐 참 전국에 가득히 찼다고 할 만침 그렇게 가득 찼습니다. 또 천주교  교황 바오로 교황은 우리 한국에 왔는데 화평의 사도가 왔다고 전국이  울럭거립니다. 그분의 그 언행 심사의 모든 것은 참 덕을 세우고 아주 자비와  긍휼과 화목을 겸해서 대단히 화평의 사도라고 할 만침 그렇게 세계에서 호감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저 그런 기독자들이 가득 찼습니다. 찼는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과는 정 반대입니다.

 좀 이해를 할런지 안 할런지 모르지만 성경에 우리는 신앙의 그 표본 인물로  우리가 삼는다고 하면 아브라함을 신앙의 표본 인물이라 그렇게 우리가 삼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신앙을 가졌던가 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이나 모든  선지 사도들의 신앙이나 그들의 그 신앙을 우리가 연구하고 살펴볼 때에  아브라함 신앙적인 신앙과 모든 선지 사도들의 신앙적인 신앙은 지금은  켸켸묵은, 치우친, 시대에 떨어진 그런 신앙이라고 사람들이 저버리지 않는  시대인가? 지금은 아브라함 같은, 엘리야 같은 엘리사 같은 사도 바울 같은 이런  신앙보다도 참 매끈매끈하고 아주 보들 보들하고 버쩍 번쩍하고 굉장하게  아름다운 아름다움으로 장식해서, 이는 불교에서도 봐도 아름답고, 어떤  종교에서도 봐도 아름답고, 참 어디서 봐도 아름다운 이 종교로 이렇게 꾸며서  세계를 울리고 모든 사람들을 혹하게 하고 있으나 오늘의 기독교와 모든 그  기독교 아닌 이종교와의 그 마찰되는 마찰의 그 까끌까끌한 그 못대기, 마찰되는  그런 못대기는 다 갈아서 반들 반들하게 동글동글하게 만든 세대이니 이 세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떤 사람 말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오늘의 세상이 다 존대하고  위대하다 이렇게 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은데, 그 신자가 후란시스는 닮았고  산다씽은 닮았을지라도 성경에 있는 신앙의 위인들의 그 신앙과 비교하면 그  신앙과는 아주 외형은, 속은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지만 껍데기는 아주 다른  껍데기로서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좀 연구 할 만한 지극히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그들과 같이 오늘 세대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 때  세대는 그들은 다 안심하고 만족하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자 할 때에 한  사람도 이의가 없었고 '못박자!' 똘똘 뭉쳐서 단합해 가지고서 못 박는 게 옳다  하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에 단합이 되었지 거기에 이질적인 신앙은  별로 보여지지를 안했었습니다.

 그렇게 구비하고 훌륭했는데 실은 그 진상인, 실상인 예수님과 대조할 때에는  마찰이 되어졌던 것을 우리가 볼 때에 우리도 이 세대를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그때 세대는 알맹이는 악이요 외부는 음란이라. 속은 크나 작으나  전부가 다 자기중심이요 껍데기는 세상을 탐하고 있는 이것들이라. 속은  자기중심이요 겉은 세상을 탐하고 있는 것들이라. 이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와 영생과 하늘나라를 이제 자기의 악을 달성하기 위하고, 이 세상을 자기가  취해서 자기와 세상으로 더불어 좀 더 두껍게. 좀 더 밀접하게, 좀 더 부강하게  이렇게 음행을 하려는 이것으로 되어 있는 세대는 아닌지? 자기는 아닌지?  껍데기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아는 것이 내가 나를 보는 것보다 잘 봅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는 것을 껍데기만 보지 속에 알맹이는, 자기만이  자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냉정스럽게 살펴볼 때에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높은 성직도 가지고, 유력하게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가고  인정을 받아 가면서 은사 교권의 신앙생활, 혹은 기본 교권의 신앙생활 하고  있는데, 그 속이 내가 하나님에게 미용을 당해서 나는 죽어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은 커지고 그리 되는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은 까라 앉고  이용을 당하고 내가 이용하고, 내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는 내가 이용하여서 나는 키우고 하나님은 파묻히게 하는 이런 악인이 아닌지?  또 자기가 소원하고 있는, 마음에 바라보고 원하고 있는 모든 사모는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땅에 있는 이런 것 저런 것, 아름다운 것, 번쩍거리는 것 그것이  내 사모의 대상, 갈급의 대상, 내 소원의 대상이 아닌지? 이 거는 다른 사람이  누가 그렇다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가 자기를 냉정스럽게 비판해서 볼  것입니다.

 그 증거는 만일 악하고 음란한 세대와 같이 자기가 속은, 하나님 중심은  말뿐이고 하나님은 어떻게 어떻게 한번 생각하려고 애를 쓰면 주님 한번  불러지고 자기 속에는 밤이나 낮이나 자기중심 자기 위주는 떠날라 해야, 떠나  보낼라 해야 보내지지도 안하고 없앨라 해야 없어지지도 안하고, 삭울라 해야  삭우지지도 안하고, 자기 속에는 자기중심 자기 위주는 버릴래야 버리지 못하고  자기 속에 가득 찼고, 하나님은 불러서 찾을라고 해도, 역부로 해도 마쳐지지  안하고 생각이 나지지 안하고 이렇게 속이 악으로 차있지 않는지? 외부는  음란으로 이렇게, 음란, 물론 남녀의 음란 그것도 음란이지만 그것은, 이렇게  세상으로 짝되고 하나님과 합해야 살지 세상하고 합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그것을 깨닫고 세상하고는 합한 것을 다 버릴지라도 하나님하고 나하고 짝이  되어야 산다는 요것이 없이 하나님하고 짝이 못 되어도 세상하고 짝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요게 있으면. 그 다음은 음란 하나 안 하나 마음으로 전부 다 음행  다 해서 전부 음행자입니다. 아닌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리 되어 있으면 그 증거가 뭘로 나타나느냐? 그 증거가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로 나타나나니 하나는 일평생 동안 하나님 만나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감도 받아 보지도 못하고, 일평생 동안 세상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  보지도 못하고, 좋아해 보지도 못하고, 사모해 보지도 못하고 그분이 이 세상에  보이는 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보다 크다고도 느껴보지도 못했고, 인정해  보지도 못했고, 섬겨보지도 못했고 이렇게 하나님을 지식으로도 자기가 인식해  보지도. 또 접해 보지도, 영감해 보지도 못하고도 이게 예수 믿는 것이니까  열심히 예수 믿어 자기 욕심 이루고 예수 믿어 세상 준비하는 이것으로써 족한  줄 알고 이렇게 살고 있는 자기에게 이 의문이, 의문이 자기에게 생겨지지  안하고 이 세대에 악하고 음란한 이것으로써 만족을 하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그 증거요 그보다 낮은 사람으로서 이 모든 데 대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하나님이 무엇인가? 이 교회나 저 교회나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하나님이 좀 그에게 나타나서, 아버지가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기뻐하는 자니  너희들은 저의 말을 들으라. 딴걸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장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주님 계시게 하고 하나는 모세를 있게 하고 하나는 엘리야를 있게 하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할 때에 '예수는 나의 기뻐하는 자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너는 이것 저것 다 참관하지 말고 저의 말을 들으라.' 이렇게 주님이  변화산에서 그와 같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이 무엇인가 좀  우리에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인간 이 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좀 증거를 해  줬으면 좋겠다' 그 증거를 요청하는 그것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요, 악하고 음란 한 세대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오.

거기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느니라' 고 그렇게 대답하신, '너희들이 이 세대로써 만족하지 안하고  너희 마음 가운데에 의심이 들고 견디지를 못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이것이 생명의 도라 그렇게 뚜렷이 정해 줬으면,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신 그  메시아라 하는 걸 우리에게 알려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 회의심을 가진  자야 네가 내가 네게 어떤 표적을 보여 준다 해도 그 표적 가지고는 너를 그  모든 악하고 음란한 세대와 의심하는 그 세대에서 구출할 수가 없다. 내가  요나의 표적이라야 너희들을 구출할 수 있다.' 말씀을 하신 거와 같이 이렇게  이런 의문을 가지는 그 의문 가진 거기에서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요나의 그 표적을 자기가 증거 받아 가지고,  요나의 표적을 증거받은 요나의 표적이 표적한 그 실상, 요나의 표적이 표적한  그 실상. 요나의 표적의 그 실상을 자기가 받으므로 해결을 짓는 그 사람이  되어야 우리 구원이 될 것인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좀 아마 어려워서  자꾸, 좀 알아듣기가 어려울 것 같고, 또 제가 증거하는 것도 그렇게 민첩하게  증거를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호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모든 제사장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들의 그 모든 외식하는 그 외식하고 있는 그 외식에 만족하고 있는 그  사람에서. 거기에서 벗어나서 그 외식에서 의문을 가지는 의문을 가지고 번민  고민해서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의문에서 번민 고민으로서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그 찾는 데에서 주님에게 간 구해 가지고서 요나의  표적으로 나타내는 그 실상을 잡아야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요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잘 좀 새겨 보십시오.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 몇 사람이 주님에게 나왔습니다. 적어도 이  사람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는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안하고 화 있는 자리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이여, 나에게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하는 이 사람이 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따라갈 때는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따라가고,  이런 수단 저런 방법으로 가지고서, 이렇게 이런 도덕의 미를 가지고, 이렇게  정치의 미를 가지고서 이렇게 유물의 미를 가지고서, 이런 저런 모든 그런 것을  가지고 꾸미는 거기에 따라다니는 그런 방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거기에서 만족하지를 맙시다.

 자기가 자기를 살피면 알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야.'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아무 표적도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표적도 필요 없어.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 이랬어. 요나의 표적으로 보이는, 고 다음  해석하시기를 땅 속에 삼 일 동안 묻혀 있다가 살아 나오실 것을 요나의 삼 일  동안으로서 그렇게 나타내는 표적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밤에는 우리 각자들이 자기를 하나 살필 것은 주님이 정죄하신 그 이스라엘  종교 말년 세대인데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는데  오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지? 만일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는 멸망하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지 세대 아닌지 하는 것은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알 수 있어.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내 속에 알맹이가  뭣고? 내 속에 알맹이가 내 중심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냉정스럽게 비판하면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예수 믿는가 하지만 하나님으로 부요 하려는 그 소욕인지,  하늘나라 소욕인지, 천국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지만, 진리를 말하지만 진리야  가난해지든지 말든지, 하나님으로서야 가난해지든지 말든지, 천국이야  가난해지든지 말든지 어짜든지 이 세상이나 구비하고 부요해서 살기를 원하는  요런, 껍데기는 음란이 내 껍데기 아닌가? 속은 악이 내 알맹이가 아닌가?  이것은, 왜 이렇게 몇 사람의 의심이 나서 왔는가? 온 것은 자기중심이 이런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이 이런 사람이 돼 있어. 이 말을 들어도,  천사의 말인데. 들어 봐도 변화가 되지 안하고 내나, 자기 속에 자기중심을  자기가 알고 자기 외모를 자기가 아는데, 참 주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신 거와 같이 껍데기는 음란이요 속에 알맹이는 악이니 여기에서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하는 이 표적을 구하는 신자라도 돼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껍데기로 그저 사람들 따라서 줄줄 갈 것은 아닙니다.

 삭개오의 그 특기가 많은 사람들을 따라서 주님 앞에 갈라고 애를 썼지만 자꾸  사람만 보여지지 주님은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저리 둘러서 달음질 쳐 가지고서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고서, 찔러 가 가지고 주님 만나 본 그것을 주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했습니다. 암만 봐야 이 신학자 저 신학자 이 목사 저 목사 이  설교 저 설교 이것만 들었지 주님을 만나지 못 했으면 무엇인가 표적을, 여기  표적은, 이 표적은 뭐이냐?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좀 보여 달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좀 보여 달라고 보기 위해서 이렇게 소원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이것을 소원하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이여 당신이, 이  집회가 마귀 집회인지 하나님의 성령이 하는 집회인지 인간끼리 지금 날뛰고  있는 인간의 사기 협잡의 무슨 인간 노름뿐인지 뭐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신이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당신이 나에게 표적을 주시옵소서. 만일 당신이 이  교훈과 함께 하시면 당신이 나에게 있는 암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내게 있는  눈먼 소경 눈을 띄워 주십시오. 귀머거리 귀를 띄어주십시오. 벙어리 말을 하게  해 주시옵소서. 앉은뱅이 일어서게 해 주옵소서. 모든 피부병이 낫게 해  주옵소서.' 자기대로의 것을, '이러면 당신이. 여기에 계시는 것을 알고, 예수교  안에 정말로 당신이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을 알고 생명의 도인 줄 알겠지만 내가  사람들 말 암만 들어 봐야 도무지 내 마음에는 안심되지 안하고 항상 의문 중에  있습니다.' 하면, 그대로 그것을 만족하고 꾸벅꾸벅 갈 것이 아니라 '주여,  나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이 무슨 내게 병을 낫게 해  준다고 하면 욕심인지 모르니까 내게 당신이 거석하면 내게 병을 낫게 해  주시든지 그리 안 하면 조그만한 것을 크게 큰 병으로 만들어 주시든지 그거  없으면 나는 이 하나님의 도를 내가 믿지 못하겠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이 잘못됐거들랑 내 입을 벙어리가 되어서 말 못하게 해  주시든지 무엇이든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기적이 나타나 나에게 증거를  주셔야 되지 증거 아니면 나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이 사람으로라도  적극성으로 말세에 우리가 날뛰어야 되어지지. 그저 사람보고 따라가는 이런  외식의 신앙에서 우리는 게을박게 그래 가지고 하루 이틀 지나다가 주님 재림을  맞이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 봤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이 확실히 믿어집니까?  하나님 계시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면 말씀대로 죽든지 살든지, 사십시오. 안  믿어지거들랑 당신이 믿어지게 보여 달라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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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표준 각오/ 요한일서 3장 16절/ 1980. 3. 13. 목새벽 선지자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