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다음가는 영광스러운 구원

 

1986. 8. 17. 주일새벽

 

본문:디모데후서 1장 8절∼9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기도합시다.

이 시간에 주님의 사랑하는 남녀 종들을 다 일깨워 주사 거룩한 주일날 맡은 생명 역사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사명의 이 지대함을 느끼는 그 영감으로 충만케 하사 있는 것을 다 기울여 이 생명 운동, 주님이 피로 세우신 이 역사에 충성되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 학생들이 모이고 헤는 데도 주님이 능력으로 지키시고,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이 말씀은 영원 무궁토록 요동치 아니할 영광의 것들을 건설하는 이 실상인 말씀이오니 이는 지혜있고 통달한 자로서도 깨달을 수 없고 다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로만 깨달을 수가 있음을 압니다.

오늘도 이 능력이 함께 하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저들이 깊이 깨닫고 확실히 알고 믿어 이 말씀의 능력이 각자 속에 역사하여 말세를 완전히 이용하여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성화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그 학생 한 사람도 저 혼자 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이미 속량하였사오니 저들과 동행하여서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된 구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또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기 전, 하나님만 홀로 계셨고 아무것도 없을 그때에 우리 구원이 시작됐습니다. 그때 우리 구원이 시작된 구원은 곧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입니다. 그 목적이 다른 말로 하면은 예택이라 선택이라 그랍니다.

하나님이 택했다, 하나님의 예택이라, 선택이라, 또 하나님의 목적이라 같은 말입니다.

이랬는데 그 목적인 우리의 구원인 곧 하나님의 선택을 위해서,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것은 그때부터, 목적을 위해서 예정을 시작하신 그때부터 앞으로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는 영원 무궁토록 우리가 살 터인데 그때까지의 것을 다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까지의 예정이 아니고, 영계에 가서는 영원 무궁토록 우리가 살 것까지를 다 예정하셨습니다. 이 예정을 하나님께서 단번에 예정하셨고, 또 당신의 홀로의 전지하시는 그 주권의지로 예정했지 그때는 뭐 간섭할 것이나 협조할 거 아무것도 없었고 당신 혼자 예정하셨는데 영원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전지하신 분으로서 어떤 분이신 것을 차차 연구하면 그분이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을 예정하시고 또 영원한 존재들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게서 뭘 깨달을 것인가? 하나님은 이렇게 한번 작정이면 변함이 없습니다.

혹 노아 때에 사람들을 홍수로 멸하고 하나님이 “후회하셨다” 이라니까 ‘하나님도 후회가 있는가 보다’ 그것이 영원전 예정이요 다 그대로의 미리 예정하셔 가지고 그와같이 된 것이지 그때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것 아닙니다. 그 후회했다 말은 하나님의 당신의 본의는 멸하는 게 본의가 아닌데, 당신의 목적은 파괴가 목적이 아닌데 건설을 위해서 있는 파괴라 그말입니다.

멸하는 것을 영원히 멸망받지 아니할 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멸망받는다’ 하는 그것을 보여 주고 알려 줘서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니 이럴 때는 이렇게 멸하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는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멸망할 것을 방어하고 다져서 멸망할 것이 당신의 건설한 나라에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 노아 홍수 때에 전멸된 그 전멸을 일으킨 것을 가리켜서, “후회한다” 그말은 그 말로, 우리 나라 사람 말로서 번역을 그래 했는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이것은 멸망시킨 이것이 목적이 아니고 멸망은 영원 멸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멸망시키는 건설을 위한 모든 파괴라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타락도 그것입니다. 인류를 타락을 먼저 시켜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타락한 것이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타락케 예정했기 때문에 타락된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을 뭐 때문에 타락케 하셨느냐? 하나님께서 타락케 하신 것은 앞으로 영원히 타락이 없도록 영원한 타락을 방지 위해서 하신 것이지 그 타락을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작정하신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영원한 구원 이 구원은 우리 사람의 행동대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을 정하셔서 이런 구원을 주시겠다 하는 그 목적대로 사람이 생겼고 생기고 난 다음에 구원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미만이지마는 벌써 작정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말은 그리스도 안에서라 할 때도 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 말은 도성인신할 것이 그때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기 전부터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존하신 것이 제일 처음이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목적을 정한 것이 둘째 순서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셋째 순서는 예정이요 넷째 순서는 창조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구원을, 바울이 이 구원대로 구원을 이루기 위한 법칙대로 살기 위해서 이 악으로 죄로만 되어 있는 세상에게 마찰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마찰이 돼서 “내가 지금 갇혀 있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너희들이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이 구원의 지극히 큰 것을 깨달아서 너희들도 이 구원을 네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 이 복음으로 더불어 고난받는 너희들이 되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전부가 다 악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 도와 정반대인 배치가 되어지는고로 자기 구원도 이룰라 하면은 반대가 일어나고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할라고 하면은 더욱 더 반대가 일어나는 것이 필연한 것입니다.

물이 자꾸 아래로 내려가는데에 위로 올라가서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 있으면은 뭉텅이가 작으면은 거슬리는 물결이 작을 것이고 크면 그 물결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데 도시 사람들은 그거 말해도 뭐인지 몰라.

글도 잘 읽지 않지 돈만 보면 벌라고 직장 생활만 하니까.

이 시골 가 좀 살아야 돼요. 시골에서 우리는 그런 일 장난을 많이 했어. 아마 ○집사님은 더러 했을 거라. 냇가에 가면은 이거 배 띄운다 하면서 이래 뭘 나무 쪼가리를 이래 실내끼에다 걸어 가지고 그래 당깁니다. 이래 당기면 물살이 거슬릴 거 아닙니까, 이래 위로 올라가면? 빨리 올라가면 물결이 출출출 거리며 벌립니다. 또 그걸 뭉텅이를 크게 달면 물결이 더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때 모르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거 하나님의 복음대로 살라고 하면은 세상은 다 아래로 내려가는 세상인데 우리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세상은 다 죽어가는 세상인데 우리는 사는 생활하고 정반대라 말이오. 그러니까, 거게는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거게는 여러가지 마찰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어.

이러니까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을 내가 이루기 위해서, 내 구원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라고 하니까 세상은 제 법대로 살지 안 한다고 마찰이 오고, 또 다른 사람을 이렇게 구원 얻도록 할라고 하니까 본인이 모르니 전도하는 나를 때리기도 하고 방해하고 이렇게 하고 또 그 사람이 어떻게 깨달아 예수 믿을라 하면 온 가족이 막 달라들어 가지고 예수를 못 믿게 하고 이렇게 마찰이 있는 것이 이거 필연한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마찰 뭉텅이가, 마찰 그 물결이, 마찰되는 물결이 작으면 무슨 증거입니까? 마찰되는, 그 마찰되는 물결이 크면 뭐입니까? 크고 작은 것은 뭐 때문입니까? 이거 몰라요? 이래 끌어올리니까 물결이, 그걸 모르면 참 탈이라.

도시 사람, 그러니까 도시 사람이 저 시골 사람에게 바짝 눌립니다. 시골 사람이 와 가지고 도시 사람을 다 통치하지 도시에 나 가지고 도시 사람을 통치하는 사람이 없어요.

일본에 동경을 그 통치한 사람은 역사에 동경에서 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답니다. 전부 시골서 난 사람이지. 이 시골서 다 그런 걸 배우기 때문에. 그거 사람이라 하는 것이 학교 배우는 그까짓 놈의 지식이야 몇 가지 안 됩니다. 이 자연 만물에서 배우는 거는 한정없어.

그러면 자, 실나끈에다가 뭘 달아 가지고 거슬려서, 역류를 거슬려 위로 끌고 올라가니까 물결이 조그만한 물결이 척척척척 나옵니다. 큰 물결이 콸콸거리며 큰 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일어나는 건 작은 물결이 일어나고 큰 물결이 일어나는 것은 그 무슨 증거입니까? 시험? 그 무슨 증거요? 뭐 때문에 그렇게 작은 물결이 되고 큰 물결이 됩니까? ○○○씨? 뭉텅이가 큰 거 아니라? 뭉텅이가 크면 물결이 크게 나오고 뭉텅이가 작으면 작게 나는 거 아니라? 그만 그라면 되지 안해요? 그렇지 안해요? 틀립니까? 끌어올릴 때에, 실나끈으로 끌어올릴 때에 요맨한 거 꿀밤만 한 거 달아 가지고 하면은 그 물결 해 봤자 그 선내끼 물결 일어나고 만일 이런 나무나 그래 가지고 이래 끌어올리면은, 잡아 당기면은 물결이 크게 일어날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안해요?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네가 이 세상에서 마찰이 있는 것은 속에 역류하는 뭉텅이 때문에 마찰이 있는 것이니까 역류하는 뭉텅이가 작으면 마찰이 작을 것이고 크면 마찰이 클 터인데 이 세상에서 마찰 있는 이것과 이 다음에 알맹이 만들어져 있는 그것이 하늘나라에 영광되는 것과, 그러면 이 만들어진 이것이, 만들어진 이것이 세상에서는 마찰이 되고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을 받는 것이니 이제 마찰과 하늘나라의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말이요. 이런 거 모르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몰라요.

이러니까 이 구원을, 자기 구원 이루는 사람들도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라 하는 사람은 더군다나 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 이 마찰이 있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 말이오.

그러면 마찰이 적으면 좋습니까 많으면 좋습니까? 마찰이 작아야 좋은지 커야 좋은지 마찰이 작아야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이 세상에서 예수 믿을 때에 거슬리는 모든 박해와 모든 그 반대 그 어려움의 시험이 적어야 좋습니까 커야 좋습니까? 적어야 좋다 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없어야 좋다 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커야 좋다 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커야 좋다 말이오.

없으면 세상과 반대되는 그것이 생겨지지 안했기 때문에 없는 것이고, 적은 것은 반대되는 그것이 조그만하게 생겼기 때문에 반대되는 것이 적은 것이고, 반대되는 것이 많은 것은 생겨진 것이 크기 때문에 지금 반대되는 것이 많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큰 게 좋지.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이거 마찰되는 것과 하늘나라에서 그 영광받는 그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 하룻밤 나그네 마찰이요 그것이 오는 하늘나라에서 영광받는 것은 영원함이니까 일시의 것과 영원한 것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일시에 요만한 마찰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요만한 영광을 받고 일시에 집채 무더기만치 마찰받으면 하늘나라에서 집채 무더기만치 영광을 받는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 위해서 갇힌 나를 너희들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희들도 이 복음, 이 지극히 큰 복음 이 구원을 한 번만 우리가 이루어갈 수 있는데 이 구원을 한번이라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 너희들이 이 구원을 열심히 이룸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에게도 여러가지 마찰이 있기까지 이 구원을 이루라 그말이오.

이거는 반사 선생님들이 알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이렇게 힘있게 가르치라는 그말이지 그 학생들에게 이런 거 말해야 안 돼요. 찍해야 가르치는 것이 십오 분 동안인데 뭐 이런 걸 가르칠 수 있습니까? 가르쳐야 또 그런 아이들이 못 알아들어요. 벌써 십오 분도 더 지나갔을 터인데 경험이 많은 여러분들도 이 일을 가르치면 잘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짧은 시간에 아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이들은 지금 어떤 시기인고 하니, 하나님이 이 두뇌를 만드실 때에 지금은 이 속에 컴퓨터를 하나님이 만들어 놨는데 그 컴퓨터에다가 딱딱 찍어서 지금은 기억하도록 해 놨다 말이오. 기억하도록 해 놨기 때문에 지금은 기억하도록만 자꾸 해 주면 돼. 기억하도록 해 주면 그 기억한 것이 이 다음에 자기가 ‘이래야 되냐? 저래야 되냐?’ 그 기억한 것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연구하는 시기가 와요, 연구하는 시기.

연구하는 시기는 어떤 시기냐 하면은 벌써 사람이 스물다섯 살 이상 먹어야 연구하는 시기가 나온다 말이오. 연구하는 시기가 나오는데 스물다섯 살 넘어 가지고 연구하는 시기에는 뭘 가지고 연구하느냐 하면은 자기 머리 속에 그 컴퓨터에게 딱딱 찍어 놓은 거, 기억되어 있는 그걸 내 가지고 연구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지금 그 머리 속에다 집어 넣어 놔 주면 그것이 거기 딱 찍혀 있으면 없어지지 안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나는 그 생각도 안 했는데 그런 꿈이 꾸이지?’ 그 꿈 꾸이는 것이 다 컴퓨터 속에 찍혀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자니까 이것이 조절이 잘 돼 가지고 회의를 해 가지고 ‘이거는 지금 내 나야 된다 안 내놔야 된다. 이거는 주장하면 안 된다.’ 이렇게 이 두뇌에 그 컴퓨터 천억이 회의를 해 가지고 나설 거 못 나설 거 이걸 조절하는 그 사람이 완전한 사람인데 그만 이거 자니까 다른 신경은 다 자고 있는데 하나가 그 엉뚱한 짓을 하나 푹 하면 그게 옛날 기억한 거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속에 언제 찍혀도 그 컴퓨터에게 찍히지 안한 것, 속의 두뇌에 기억되지 안한 그것은 꿈에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꿈은 세 가지 종류라. 하나님이 그때에 일시에 그에게 보여 준 영몽이 있고, 마귀가 꾸게 하는 거 있고, 이거는 드물어요. 드물고 대개는 꿈꾸는 것이 다 자기 컴퓨터 속에, 자기 두뇌 속에 옛날 말로 들을 때나 생각할 때나 볼 때나 뭐인가 접할 때 이 속에 들어 있던 그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거 말하기를 하나는 주사 야몽이라, 하나는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꿈으로 나온다, 그 심리 학자들이 말한 그것이 옳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런 때이니까 어짜든지 반사들이 힘쓸 것은 이번에는 열한 가지 조목이 있는데 이것은 뭐 한 가지도 평생 갑니다.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셨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자존하셨다.’ 이것도 생각하면 사람이 커지고, 생각하면 커지고, 생각하면 온전해지고, 생각을 하면은 땅에 있는 지저분한 그런 욕심들이 다 없어집니다. 자꾸 생각하면 욕심이 없어지고 거게 따른 온전하고 깨끗하고 완전한 그것만 자꾸 자기에게 소생이 돼지지 이 더러운 것들은 다 제거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바울 같은 그런 사람은 참 특수한 은혜를 받은 그런 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마는 그런 사람은 이 첫째 문제인 ‘영원 전 아무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은 홀로 계셨다’ 하는 이것은 그만 다 알았으니까 냅 둘 것인가? 그런 분들은 평생 연구입니다, 평생.

그러니까, 영원 자존하신,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하는 거게 대해서 알고 느끼는 것이 이 억억만 명이 느끼는 것보다 혼자의 느끼는 그 느낌이 더 크게 클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이 구원의 차이는 그거 뭐 뭘로 차이 있어? 어떻게 계수할 수 없을 만치 그렇게 차이가 큽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그 아이들에게 인식시킬 수는 없고 이라니까 여러분들이 그래도 깨닫고, 여러분들이 깨닫고 요 주먹덩이만치 깨닫고 그 아이들에게 말로 이래 익혀서 그 속에 주입을, 자루에다가 뭣을 집어넣는 것처럼 그 속에 집어 넣어 주는 그것이 주먹덩이만치 깨닫고 집어넣으면 그 아이들에게 이 주먹덩이만치의 영향의 효과가 그 속에 들어갑니다. 또 이 집채만치 깨닫고 하면은 그만치 크게 들어갑니다. 깨달음이 아무것도 없게 하면, 녹음기에 기록하면은 두 사람이 가르친 게 꼭 같아도 제가 깨닫고 느낌이 없는, 제가 깨닫고 느끼고 믿고 소망하고 이 구원의 영광의 가치를 아는 것이 집채만치 이만치 큰 사람은 꼭 같은 말로 한 마디해 도 그 아이들에게 배지고 들어가는 능력은 다르다 그거요.

왜? 반사가 자기가 알고 믿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의지하고 이 구원의 소망을 바라는 그것만치 그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거라. 그대로 들어가는 거라. 그러면 반사 그대로 들어가는 거라.

또, 목사도 제가 핑계할 수 없는 것은 목사가 설교할 때에 자기가 믿고 소망하고 맡기는 요 양이 있는 것만치 그 교인들에게 들어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을 말했는데 그 비밀은 내나 교인은 교역자의 사진판이라, 완전히 교인들은 교역자의 모형이라, 교역자는 원형이요 교인들은 모형이라, 반사는 원형이요 자기 가르친 학생들은 그 반사의 모형이라, 꼭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고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같아요.

어머니가, 예를 들면은 어머니가 푸른 채소를 먹지 안했으면 아이에게 푸른 채소의 영양이 안 나간다 말이오. 그러면 젖은 꼭 같은 젖이지마는 그 젖이 한 가지만 먹고서 낸 젖과 열 가지 먹고 낸 젖과 한 수십 가지를 먹고 낸 젖과 그 젖이 보기는 뽀야이 꼭 같지마는 분석을 하면 꼭 다르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반사들이 자기가 알고 믿고 소망하는 것만치 그 아이들에게 같은 말로 전해 줘도 그이에게 담겨지는 것은 각각 다르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학생들에게 그 말하지 말아요.

학생들에게는 여러분들이 이 믿고, 믿는 것을 꼭 이번에 열한 문제는 또박또박 읽어 주십시오. 해석을 할라고 달라들면은 한정이 없는데 그 해석을 할라고 달라들어서 하다가는 벌로 건드려 가지고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안 되기 쉽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는 이것을 여게서 불을 좀 늦게 끌터이니까 적어도 열 번 읽고 가요. 열 번 또박또박 그 읽으면서 자기가 읽으면서 믿어요.

그러면 그게 자기에게 배어 자기 구원이 됩니다. 열 번 읽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그냥 외어서 가르치면 틀리기 쉬어요. 외우지 말고 요걸 보고, 종이를 보고 한 자도 틀림이 없이 요대로 또박또박 가르쳐서 그 속에 한 번을 따라 읽게 하든지 두 번을 따라 읽게 하든지 그렇게 해서, 그러면 따라 읽으면 그 반사의 기도와 또 반사의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만치 그 같은 말이지마는, 같은 말로 그들에게 이렇게 따라 읽으라 하고서 그들에게 읽혀서 앞에 자기가 먼저 읽고 따라 읽도록 요렇게 해도 그 말의 중량은 천층 만층입니다, 알겠습니까? 그 말의 중량은 천층 만층이라. 녹음에 기록하면은 꼭 같지마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따라 읽는 게 꼭 같지마는 그 속에 역사하는 그 영감과 진리의 역사와 피의 역사는 천층 만층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반사가 믿지 않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소용이 없어. 반사가 깨닫고, 참 깨닫고, 믿고 소망하고 그 실지로 반사에게 그 말씀이 어느 정도 실상이 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만치 그 아이들에게 되지 실상이 하나도 없는 거는 말만 했지 그 속에 실상은 하나도 박혀지지를 않는다 그거요. 요것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여기에서 한 열 번 읽고 난 다음에 가르칠 때는 요것을 보고 한 자도 틀림이 없이 그렇게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여게 ‘살아 계셨다’ 살아 계셨다 하는 요 말은 얼토당토 안한 말입니다. 살아 계셨다가 아니고 ‘스스로 계셨다’ 스스로 계셨다 말은 내나 한자로 말하면 자존하셨다 그말이고 아무것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당신이 혼자 계셨다 그말이요, ‘스스로 계셨다’ 고거 틀리고, 육에 가서, ‘물계, 영계, 옥계,’ 옥계라 말은 옥세계라 말이요, 감옥. 감옥, 지옥.

지옥 세계를 가리켜서 옥계라 했다 말이오. 또 영계는 영물 세계, 우주라는 것은 물질 세계, ‘물계’ 하는 물질 세계라 말은 이 우주를 말합니다. 물질 세계, 물계, 우주. 또 영계라 말은 저 영적 영의 세계, 영적 세계. 또 옥계는 마지막에 이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에서 잘못된 것들 처리하는 곳이 뭐이냐 하면은 지옥이라, 유황불 지옥이라 말이오.

‘옥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인 택자들을 위해 존재되었고,’ 요거 내가 요걸 그때에 잘못 말한 것인지 요거 또 중간에 또 변해졌는지 모르겠는데 그 ‘존재되었고’ 하지 안하고 `창조되었고' 그래 말했어, 창조되었고. `존재되었고' 해도 되기는 됩니다. 그러나, ‘창조되었고’ 하면은 수입이 하나 더 있다 말이오.

지으셨다는 걸 한번 더 새겨서 수입이 더 있고, 존재했다 말은 창조했기 때문에 존재했지요. 그러나 좀 아이들에게는 창조라고 말하는 것이 좀 좋을 거 같습니다.

또, ‘이용 순종하고 있다’ 그 우리 구원을 위해서 구원에게 이용당한다 말이요.

구원에게 이용당하고, ‘이용 순종하고 있다’ 순종은 뭐이 순종한다는 말입니까?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용하시는데 지음을 받은 것들은 다 거게 이용당하고 있다 그말이오. 순종하고 있다는 말은 이용당하고 있다 말이오.

이용은 누가 하요? 이용을 우리 구원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지요. 또 순종은 누가 합니까? 순종은 지음받은 그것들이 순종하지요. ‘이용 순종한다’ 이 말을 알고 해야 되지 자기가 모르고 가르치면 이 학생들에게 안 간다 그거요.

또, 일곱째로 ‘양계 안에 있는,’ 양계라 말은 영계와 물질계 양계, 양 세계.

물질계라, 이 우주를 물질계라 하지 않습니까? 물질계. 우주를 물질계라 하고 영의 세계를 영계라 하지 않습니까? ‘이 물질계와 영계에 있는 억억으로 계수 못 할 무한의 것들은’ 몇억이 된다, 몇억억이 된다, 억 그런 거 가지고 계수할 수 없을 만치 종류가 많습니다. 그만치 많아요. 그렇게 많아.

하나님은 그런 것을 만드시는데 또 놀래요. 그러면 이 대하나를 만들었으면 이 대 하나 하면 뭐 하나겠는데 이 대 하나 속에는 세포가 몇억억억억억만이 들어 가지고 있는지 몰라, 이 대 하나에도. 그렇게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라. 전지하신 분인데 이분을 연구하면은 그분을 속일라고 그분을 멸시할라고 하는 사람이 안 돼. 하나님을 알면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계수 못 할 무한의 것들은’ 한정없는 것들은 `천태 만상으로' 천태 만상이라 말은 천태라 하면은 일천 태도라 말이요 만상이라면 일만 모양이라 그말입니다.

천태 만상이란 그말은 다 쓰고 있는 말인데 그거는 무슨 말이냐? 이런 모양 저런 모양 뭐 말할 수 없도록 별별 종류 별별 모양으로 생겨져 나오고 있다 그말이오.

‘천태 만상으로 나고’ `나고,' 생겨나고, 없는 데서 생겨나고. 또 `살고' 또 나 가지고는 또 ‘살고’ 보면 낳아 놓으면 막 살겠다고 죽자껏 발동을 해 가지고 또 ‘살고’ 또 ‘죽고’ 또 그라다가는 또 죽을라 하니까 안 죽을라고 애를 쓰고 죽고, `나고 살고 죽고 일하고 있으나’ ‘일하고 있으나' 그러면 이런 일 저런 일 하고 있다 그말이오. 일하고 있으나 ‘모두가 하나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물주에게 이용되고 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으라 말이오.

그러면 지금 제딴에는 산다고 야단지기지만 산다는 그것이 실은 택자들 위해서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안 죽을라고 또 발발발 떨고 이래 쌓는데 그것도 택자들 위해서 이용되고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고, 안 살래야 안 살 수 없고, 안 죽을래야 안 죽을 수 없고.

또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런 일 해라, 너는 저런 일 해라, 너는 깡패 노릇해라, 너는 개망나니 노릇해라, 너는 성자 노릇해라, 너는 노벨상 받는 노릇해라.’ 하는 그것이 다 뭐이냐 하면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조물주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요 이용당하고 있는 것인데 제 영광이 하나도 없다 말이요. 전부 다 택자들 위해서 있고 택자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고 요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것이 모든 존재들의 내적 실지의 조직인 것입니다.

요걸 자꾸 여러분들이 여러 수천 번 읽어요. 자꾸 읽어서, 나고, 살고, 죽고, 일하는 거 저거는 몰라요. 저거는 모르지마는 몰라도 실은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택자들을 위해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말하자면 ‘모든 종교’ 불교니 이런 거, 불교니, 뭐 유교니, 또 회교니 마호멧트교니 뭐니 뭐니 꽉 찼지요. ‘종교, 철학, 이 과학,’ 지금 과학자들은 저거가 과학 만능이라 떠들어 쌓는 과학, ‘정치, 또 사람들의 사상 이런 것은 이 중에 포함된 것들이다.’ 이 중에 포함된 것들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불교가 이 중에 포함된 것이라는 말이니까 이 중에 포함됐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한번 말해 봐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당하고 있는 그중의 것들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용을 당하고 있는 거와 그를 이용해서 만들라 하는 하나님의 이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같습니까? 이것을 알아야 된다 그거요. 이거 지금 대학자라도 몰라요. 여러분들에게 이거 지금 말하니까 뭐인지 몰라 그렇지.

이러니까, ‘기독교와 모든 이 이종교와 다른 게 뭐이냐?’ 말하면 그걸 몰라요.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것이고 거게는 석가모니 믿는 거 아니냐? 석가모니가 내나 예수고 예수가 석가모니다. 이름을 달리해 그렇지. 그렇다.’ 그라면 ‘그런가?’ 해 버리고 말아. 그러면 석가모니와 예수가 근본 다른 것을 모른다 그말이오.

다른 게 뭐이냐? 예수는 석가모니를 만드신 분이시요 영원 전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난 다음에 자존하신 분이 목적을 정할 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목적을 정했어. 이러니까 그때 계시고 그 다음에 목적을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실 때에 그때부터 예정 속에 비로소 시작으로 들어왔어. 불교 이런 거는 예정 속에 처음으로 예정 속에 생겨지게 됐다 말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창조에서 생겨지고 그 순서가 이걸 알아야 되지 이걸 모르기 때문에 종교 통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종교, 철학, 과학, 정치, 사상,’ 사상, 공산주의 사상이니 무슨 사상이니 민족 사상이니 안 많습니까? ‘사상 이런 것들은 이 중에 포함된 것들이다’ 이걸 지금은 이렇지마는 아마 이 세상이 보면은 막 갈아 마실라 할 거라. 이 지금 이런 것도 다 이거 설교록에 갑니까? 이 설교록에 이거 포함됩니까? 설교록에 다 요대로 공과가 들어가요? 공과가 들어가야 돼요. 이런 것 다 공과 하나만 해도 백 목사 저거 잡아 죽여야 되고 갈아 죽여야 된다 하는 거라.

어느 노회에서 모였는데 그 노회에서 내게 대한 말이 나오니까 한 사람이 자랑하기 위해서 이분은 참 이렇다고 이렇게 하니까 모두 다 결의가 돼 말하기를 ‘그런 놈은 잡아 죽어야 된다’ 왜 잡아 죽어야 되느냐 하니까 `우리가 이제까지 모두 대대로 전통으로 내려온 걸 전통을 깨기 때문에 잡아 죽여야 된다.’ 왜? 이제까지 모든 사람은 다 ‘이래 예수를 믿어야 된다' 하는데 `그게 틀렸다. 이래 믿어라.’ 이라니까 전통이 깨진다고 그래 분개해요.

이러니까, 이거 옳은 것을 증거했다고 뒤에 잡아 죽임을 받으면 참 순교가 돼도 영광스러운 순교가 되는데 이거 뭐 공산주의 앞에 가서 하면은 가치가 없고 믿는 사람들에게 참 순교당해야 참 가치 있는 순교가 됩니다. 예수님도 믿는 사람들에게 염병 같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자기네를 해한다고 그래 하지 안했소? 여덟번째, 하나님 목적이 예정으로 나왔고, 하나님의 묵적이 예정에 담겨 나왔고, 예정이 창조에 담겨 나왔고, 그 보존되고 또 섭리에 담겨 나왔고, 성취되어서 택자들의 출생이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셨고, 또 대속하셨고 중생하셨고, 신행이라 말은 믿음의 행동이라 말이오. 신행과 성화, 신행하면 성화되고 영화되고 부활하고 그리스도의 심판 거쳐 가지고 무궁의 생명 세계에 다시는 타락과 죽음과 변함과 아픈 것과 곡하는 것이 없는 사랑과 성결과 믿음과 화평의 기쁨으로 소망 중에 영생하는 나라라 그말이오. 이런 걸 본인이 깨닫고 느끼고 이래 가르쳐 줘야 돼요.

또, 아홉째로 ‘영생도’ 영생도 말은, 거기는 죽는 일이 없어. `영생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 더럽게 믿어서 간 사람도 먹을 거, 입을 거, 생명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있어. ‘얼마든지 있다. 다시는 배고픈 것도, 이별도, 시기도, 미움도, 시비도 영원히 없다. 자유의 세계이다.’ 얼마든지 자유로 살 수 있는 자유의 세계이다. ‘실력대로 산다’ 자유의 세계인데 실력 갖춘 것만치 살지 실력 없는 행위할 수 있습니까? ‘실력대로 산다. 마귀도 죄도 사망도 없다.’ 열째로, ‘한 가지 문제가 된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실력 차이' 열째로, ‘실력 차이, 영광과 대우 차이, 봉사 차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있게 이용될 수 있는,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 있고 전인류에게 필요있게 이용되는 사람도 있고 이래서 이용 차이가 있다 말이오. 이용 차이, 가치 차이.

이용 차이는, 자, 여러분들 물건은, 물건은 이용할 사람이 이용할 데가 많으면, 이용할 데가 많으면 가치가 올라가요 이용할 데가 적으면 가치가 올라가요? 시장에 있는 물건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 이용할 사람이 많으면 그 값이 올라가요.

이용할 사람이 하나밖에 없으면 값이 올라가요? 많으면 값이 올라간다 말이오.

그거라. 하늘나라는 평가적 나라라.

그러기 때문에 이용 가치의 차이라 그말은 하늘과 영계와 모든 존재들에게 이 사람은 전부에게 이용당할, 이용이 돼. 이거는 아무에게도 이 사람 없으면 안 돼.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수 있는, 만인에게 이용될 때, 억만 인에게 이용될 사람, 억억만이 이 사람 아니면 안 돼. 억억만에게 이용될 사람.

그러면 이용 당할 곳이 많으면 영광이 크겠습니까 적어야 영광이 크겠습니까? 많아야 영광이 커진 다 말이오. 그 영광 차이는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봉사 차이’ 봉사 차이는 내나 그걸 말해. 봉사 차이는 다른 사람에게 이용 가치가 다르다 그말입니다. ‘가치 차이 활동과 자유의 차이가 무한하다’ 그런데, ‘무한하다. 모든 제재는,’ 모든 제재라 말한 것은 얼마든지 다 가지고 하고 싶지마는, 다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거게서 ‘너는 하나만 해라, 둘만 해라, 셋만 해라, 넷만 해라, 너는 영광이 콩내끼만한 영광받아라, 너는 주먹덩어리만한 영광받아라, 너는 태산 같은 영광받아라.’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안 주는 거 아니오.

다른 사람이 너는 그와같이 조그매만 가지고 많이 가지지 말라 하는 게 아니고 다, ‘모든 제재는’ `모든 제재는’ 많이 받고 적게 받는 모든 제재는, ‘제재와 제한은 자기 실력에게 제재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리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실력이 없으니까 못 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오늘 이 기가 막히지.

지금 준비를 해야 되지. 제재 받는 거, 그 다음에 내가 하나 좀 써 넣었는데 좀 기억만 하십시오. ‘남에게는 아무 간섭받지 않는 양심보다 깨끗한 영감 세계다.’ 그러니까 양심 세계로 살아도 양심이 있으니까 제가 그 불량한 짓을 못 하지. 누가 뭐라 해 그런 게 아니고 양심에, 양심에 눌려서 못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영감대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간섭 받을 리가 없어. 이러니까, ‘남에게는 아무 간섭받지 않는 양심보다 깨끗한 영감 세계이다.’ 열한째, ‘오늘은 영원으로 영주처의 모든 것은 금일 언행 심사대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금일, 오늘이라 말이오. ‘금일 일 초라는 광음은' 일초라는 그 시간은 ‘영원을 좌우하고 있다. 악마는 없어질 세상을 가지고 우리를 꾀우고 있다.’ 일 초에도 영원한 것을 마련하고 있는데 마귀란 놈은 돈 좋다 뭐 좋다 해 가지고 꼬와 가지고 이것은 등한이 해 버리고 막 어만 데 기울어지고 있다 말이오.

이 공과를 여러분들이 백 번 천 번이라도 읽어 가지고 막 외어서 자꾸 느끼고 느끼면 얼마든지 이 속에 우리에게 사람이 커지고, 능력이 있어지고, 지혜가 있어지고, 밝아지고, 그 성화구원이 자꾸 이루어집니다. ‘속이고 있다’

문답에, ‘우리 구원은 어떠하뇨?’ `하나님 다음가는 영광스러운 구원입니다.' 둘째로, ‘셋 공간은 어데 있느뇨?’ `아무것도 없는 무에 있습니다.' 이런 거 지금 이 세계 문제입니다. 세계에 지금 이 문제에 난제라.

그러면 ‘이 우주가 있으면 우주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 우주보다 더 큰 거 있기 때문에 우주가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지금 논리하는 이것이 미혹이 얼마나 많은데 이거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것만 뚜렷이 있다 그말이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건 좀 알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 놓으면은 언젠간가 나이가 서른이나 마흔이나 돼서 그 사람이 위대해지면은 ‘아, 이 세 가지 큰 울이 있는데 이거는 어데 있느냐? 무에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에 있다 하더라.’ 하면은 그때에 그 사람들이 깨달아서 깜짝 놀라고 이제 크게 성화를 받을 거라 그말이오.

셋째로, ‘모든 존재와 움직임과 일하고 사는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답에, ‘자신은 모르나’ 자신은 모르고 있어. 살고 싶어서 살지요. 먹고 싶어서 먹지요.

죽기 싫은데 죽지요. 그러나, ‘자신은 모르나 택자 구원 위해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거 믿어집니까? 이라면 그 안 믿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우리 핍박한다고 괘씸해? 핍박 괘씸한 게 아니라. 불쌍하고 가련하고 그러니까 그를 위해 동정이나 하고 위해 기도나 할 일이지 감정이 날 리는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오늘은 무엇이뇨?’ `오늘은 영원 마련입니다.' 오늘은 뭐이냐? 영원 마련이라. 영원을 마련하는 것이 오늘이라.

이것을 여게서 여남은 번 읽고 가고 그래 이래 가지고 요걸 보고 또박또박 한 자도 틀림없이 그렇게 읽고 따라 읽으라 하고 그래 가지고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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