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다음가는 영광스러운 구원

 

1986. 7. 22. 화새벽

 

본문:요한일서 2장 27절∼29절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우리의 영육의 구원과 영육의 축복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 주시는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이 되면 이 은혜를 받고 이 은혜를 받을 사람이 되지 못하면 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디까지나 우리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지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왜? 우리의 구원은 다 완전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며 영생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피조물을 무한히 탁월한 것입니다. 피조물 위에 아주 있어서 피조물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천하에 있는 인간의 힘을 다 모아도 이 구원은 털끝만치도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힘은 다 그 본질과 본성이 유한한 것들이요 다 피조물의 것이요 완전치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은 다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자가 아니면 완전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힘을 다 합해도 우리 구원은 털끝만한 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구원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완전자가 만든 완전이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가 첫재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영육을 받았습니다. 이 영육은 언제든지 그 영육입니다. 그 영육인데 이제 그 영육에 보탠 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완전한 것을 거게다가 보탰습니다.

보탠 것은 다 능력인데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순전히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과 지혜와 모든 움직임에 우리가 접선돼 가지고 순전히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의 영육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지혜도 능력도 생명도 모든 속성들도 모든 행동도 순전히 하나님의 그 능력에게 붙들려 피동돼 가지고 되는 것입니다.

마치 이 종이 한 장이 있는데 이 종이 한 장 이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육입니다. 이것을 종이 한 장 제대로 두면 종이 한 장 제대로 제가 가만히 있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이래 흔듭니다. 이랄라면 이라고 이랄라면 이라고 이렇게 마음대로 이래 하는 거, 이것 모양으로 영육은 이 종이 한 장과 같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영감과 능력과 진리의 능력은 내 힘이 이걸 거머쥐고 이리저리 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종이는 제 단독이는 이것이 조그만한 움직임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가지고 이래 흔들 때에 이거 흔들려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은 이 종이를 움직이는 거와 같이 하나님이 이 종이를 거머쥐고 역사하는 것이고 종이는 사람에게 붙들려서 흔들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만든 구원이지 우리 힘으로 되는 거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구원을 주시는 데에는 신구악 성경에 명확히 조건을 말했습니다. 조건을 말해 놨기 때문에 이 조건에 맞은 것만치 하나님의 그 구원이 은혜로 우리에게 와서 역사합니다. 역사하면 그거는 역사하는 것만치는 영원 무궁토록 변치 않는 그 역사를 하기 때문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은 제가 만들어야 됩니다. 제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거는 제가 만들어야 되고 마귀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멸망하도록 만드는 것도 제가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착각을 해 가지고서 제가 구원을 잘 이루었을 때에 제가 노력을 잘 해 가지고 노력을 잘하고 조심하고 노력해 가지고 이 구원을 잘 이루었을 때에 구원이 되어지니까 자기 힘으로 이룬 것같이 그렇게 여기기 쉽고 또 제가 이렇게 방탕하니까 제가 그렇게 방탕한 그런 아주 나쁜 행위를 하는 것같이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것은 다 마귀가 주장해 가지고 또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준비를 하든지 마귀가 멸망시키는 멸망을 받는 준비를 하든지 사람은 그 준비하는 것뿐이지 사람이 그것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 놨다 할지라도 그 만든 것이 제 힘으로 된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 교만치 말 것이고 또 어데까지 악해졌을지라도 악해진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악해진 게 아니고 악령이 그 사람을 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악하게 만드는 악령에게 접선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어 놓은 것은 자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을 조성한 것도 악령이요 의를 조성하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마귀에게서 멸망을 받든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든지 하는 것은 자기에게 매인 것입니다.

자기가 여기에 접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드는 수도 있고 마귀에게 접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수도 있으니 그것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는 말이요 모두 다 성경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런 것을 하지 말아라 해라 그런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구원, 보배로운 구원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그런 준비를 우리가 해야 되는 사람들인데 그 준비하면은 구원은 하나님이 와서 이룹니다. 전능을 하나님이 이룹니다. 전지를 하나님이 이룹니다. 우리는 전지가 될 사람이요 전능이 될 사람이요 완전이 될 사람이요 영생이 될 사람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와서 이루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모든 구원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는 받는 준비만 해야 되는데 받는 준비는 뭘 해야 되느냐? 받는 준비는 믿음 준비입니다. 믿음 준비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순종 준비라 그말입니다. 순종 준비라.

그러면 순종 준비는 어떤 순종 준비냐? 순종 준비는 두 가지 순종 준비입니다.하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알아라 할 때에 예 그렇습니까 하고서 그대로 아느 것,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대로 아는 것 또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 요 둘이 믿음입니다.

어떤 거는 알게만 하고 둬 두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또 행하게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알고 행하는 것, 아는 것이 마음의 믿음이요 행하는 것이 몸의 믿음인데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 이 두 가지 믿음이 합할 때에 그때에 온전한 믿음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건데, 하나님을 따라서 이렇게 움직이는 것인데 그 움직임은 어떤 일을 하느냐?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서 움직일 때에, 하나님의 지혜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나와 연결이 돼 버립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내가 연결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이래라 할 때에 내가 그대로 하는 이것으로만 하나님의 지혜와 나와 연결이 되지 딴걸로써는 연결이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과 나와의 연결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렇게 하라 할 때에 그렇게 할 때에 그것으로만 하나님의 능력과 나와 연결이 되지 다른 걸로는 연결이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나 진실이나 거룩이나 의나 주권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그게 다 하나님의 속성인데 하나님의 속성과 나와 연결이 되는 데는 하나님의 그 속성이 나에게 이렇게 하라 할 때에 내가 그와같이 하는 것으로만 연결이 됩니다.

딴걸로 연결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라 할 때에 내가 사랑을 하면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진실이 이렇게 하라 할 때에 내가 그대로 하면은 진실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 진실하라, 거룩하라, 의로워라, 지혜로워라, 능력이 있으라, 승리를 하라, 이렇게 모두 하는 것을 언제 그렇게 합니까? 그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언제든지 현실에서만 하지 다른 데 하지 않습니다.

여게서 하는가 저게서 하는가? 하는 것이 여게 저게서 한다고 하면 복잡한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거는 다 상관하지 안하고 꼭 현실에서 하는 것만을 하는 것으로 인정하시고 또 현실에서만 당신이 우리에게 요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 우리가 암만 읽어도 읽는 것은 현실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거 그걸 내가 바로 찾기 위해서 현실을 예비적으로 상식적으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지 성경 보고 그대로 한다고 해 가지고 되는 거는 아닙니다. 암만 해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성경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진실을, 하나님의 거룩을,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온갖 구원이 되는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것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그 지혜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바로 받아 가지고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대충으로 윤곽적으로 이렇게 범위적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이런 것은 하지 말라 하고 이런 건 하라 이렇게 했다’ 이라지마는 고거는 그저 한 울타리와 같이 이렇게, 울타리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고 바로 그 실상을 직면해서 그 실상을 딱 가르치며 ‘요거 해라. 조거 해라.’ 하는 그것은 현실에서만 하라 하지 다른 데서는 하라 소리 안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 지키는 것은 넓은 범위로 말하면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록한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이라 하지마는 이거는 울타리 믿음입니다. 그저 저 멸망에 빠지지 안하는 그런 정도의 믿음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끌어오는 믿음은 아닙니다.

구원을 끌어오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고 하니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그 시키는 그대로 해야 그때에 무한하신 하나님과 나와의, 나는 뭐입니까?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거는 멸망할 것이오. 이거는 멸망한 것이요, 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육을 가진 것인데 이 영육이, 우리 구원은 이 완전자와 접선이 돼 가지고 완전자가 동하면 내가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완전자와 연결됐기 때문에 내 움직임은 완전자의 움직임이 되고, 나는 완전자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나는 완전자가 되어 있는 것이니까 이거는 아무것도 사망이나 뭐나 그런 것이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이 돼야 되는데 연결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고 다 알고 배우라 하는 것이고 연결은 언제 되느냐 하면은 현실에서만 연결됩니다.

현실에서만 연결된 때에 그 현실에 하나님께서 요렇게 하라 조렇게 하라 가르친 대로 그대로 하면 연결이 되는 것인데 그 현실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가르쳐 주시는 그 가르쳐 주심은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시느냐? 고거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해야 되는데 고거 가르쳐 주시는 것은 오늘 아침에 봉독한 대로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 이랬습니다.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 그 말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우리를 중생시킬 때에 성령이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그러면 중생시켰는데 이 중생시킬 때에 그 성령은 벌써 우리 영을 중생시켰기 때문에 우리 영과 성령님과는 하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과 성령과는 하나가 돼 있습니다.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과 우리 영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돼 가지고 있는데 성령님은 몇이 합해서 성령님입니까? 성령은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셋입니다. 셋.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피” 하면 성령과 진리는 같이 있고 또 “진리” 하면은 피와 성령과 진리는 같이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요것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피를, 피는 대속인데 대속을 성령과 진리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과 합해 가지고 그 일을 이뤘습니다. 예수님 혼자 이루지 안했소? 겉으머리 나타나기는 예수님의 그 신인양성일위가 나타났지마는 배후에서 역사하기는 성령이 역사했고 진리가 역사해 가지고서 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 잡으면 서이 잡았고, 진리 잡으면 서이 잡았고, 예수님의 피 잡으면 서이 잡았고, 이러기 때문에 이 셋을 우리가 말하는 것은 셋으로 되어 있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에게 자꾸 그렇게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벌써 나눌 수 없도록 하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님은 누군가? 이 성령님은 몇이 합해 가지고서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까? 성령님이 몇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십니까?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는데, 여기 그렇게 말하지 안했소? 너희는 20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받은 바라 말은 기름 부음이라 말입니다. 중생이라 말이오. 「받은 바 기름 부음이」 여게는 하나만 말했습니다. 「기름 부음이」 그 너희에게 그 베푸신 성령의 은혜가 「부음이 너희 아래에 거하나니」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그러면 성령으로 중생된 우리기 때문에 ‘성령으로 중생된 중생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사람이 너희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하나님께서 너를 성령으로 중생시킨 그 성령 중생이 말이요, 성령 중생이, 「기름 부음이」 이 기름 부음이라고 하면은 성령님만이 아닙니다, 기름 부음이라면.

자, 기름이라면은 몇이 합하여 기름입니까? ○○○. 졸며 하면 소용 없어. 너 조는 거 그거 하지 마. 너는 큰 병이 하나 있어. 그저 기도하다가도 졸고 이래 자꾸 조는 거 말이요, 자는 그놈하고 싸워 가지고 절대로 잘 때 딱 자고 안 잘 때는 안 자고 고걸 딱 해아 돼. ‘나 요 시간 자겠다’ 하면 자고 그리 안 하면 `안 자겠다' 하면 안 자고 이래야 되지 이거는 뭐 밤이고 낮이고 기도할 때고 뭐 언제든지 자고 언제든지 깨 가지고, 그거는 자고 깨는 것이 확실히 구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 그거 고쳐야 돼요. 꼭 계속해. 계속하면은 큰 성공을 가질 건데 그게 없어 탈이야. 너는 말이요, 결혼할라면 말이지 뛴뛴하이 불도저 같은 그런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지 네가 얍살얍살하이 예쁜 여자하고 결혼하면 네 신세는 간다. 알겠나? 불도저 알겠나? 한번 작정하면 변동없는 뿍 밀고 나가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 네가 조절이 돼지지 그거 아주 뭐 참 아주 뭐 날카로운, 연약하고 날카로운 그런 사람하고 하면은 둘이 하나 돼 가지고 안 돼요.

「그의 기름 부음이」 그러면 기름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성령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라면 성령님을 말하면은 몇을 말합니까? 셋을 말합니다. 성령님을 말하면, 그 「기름 부음」 기름이라 말은 성령을 가리켜 말하는데 성령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을 가리켜 말합니다.

「기름 부음이」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피와 성령과 진리가” 그말입니다.

「기름 부음이」 “기름이” 기름은 그렇고 “부음이” 부음이라 하면 또 뭐입니까? 부음이라 하면은 부음을 받은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 영입니다. 우리 영입니다. 「기름 부음이」 “기름 부음이” 하면은 “기름” 하면은 셋이고, 피 성령 진리고 “부음이” 하면은 피 성령 진리와 결합된 영이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결합된 영이. 결합된 영이.

다시 말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네 속에 있는 새사람이 그말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가르쳐 주는데 새사람이 가르쳐 주는 거라. 그러면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데 새사람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

자, 여러분들, 중생된 영이 저 혼자 옳은 행동을 옳은 길을 알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생된 영이 저 혼자 옳은 길을 알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해 봐요. 옳은 길을 알 수 있습니까? 중생된 영이 저 혼자 옳은 길을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저 안 들지. 똑똑히 아는지는? 혼자 알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인제 배우기는 배워서 알기는 아는데. 혼자 알 수 없습니다. 혼자 알 수 없소. 혼자 알 수 없습니다.

혼자 알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 어데 기록돼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록돼 있소 없소? 로마서 8장 16절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러면 중생된 영이라도 제 영 단독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성령이 중생된 영을 붙들고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증거한다는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는 뭐입니까? 우리의 심신입니다. 우리의 마음에게 누가 증거하는가? 우리 마음에게 증거하는 것은 우리 영이 증거합니다. 그러면 영이 증거하면 영이 단독이 증거하는가? 성령이 우리 영을 붙들고 우리에게 증거해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라면 똑똑히 알겠지요? 우리 중생된 영이 성령과 끊어지면 죽습니다. 끊어지면 어찌 됩니까? 끊어지면 다시 뒤에 잇길 수 있습니까? 아니오.

끊어졌다고 하면은 영원히 죽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잇겨집니다.

왜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다 입고 다 들여 가지고서 연결된 거기 때문에 이 연결은 두 번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심신도 연결된 거는 살았고 연결 안 됐는 거는 다시 연결 안 됩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이 두 번 못박혀야 된다고 히브리서 6장에 똑똑히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름” 하면은 셋이고 “기름 부음이” 하면은 이 셋과 연결된 영이 그말입니다, 셋과 연결된 영이. 「기름 부음이」 기름이 아니고 “기름 부음이” 연결된 영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는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가르치신 그대로 거하라.

또, 「너희에게 가르치며」 요게는 “가르치며” 하는 데에 그 존경어를 쓰지 안했습니다. “너희에게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고 또 그다음에는 「가르치신 그대로」 “가르치신” 또 존경어를 썼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영을 말할 때에는 존경어를 안 썼고 성령님을 가리킬 때 에는 존경어를 써서 그렇게 해서 구별 있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기름 부음이 가르쳐 가지고서 가르친 그대로 사는 그 사는 것이 누구의 사는 것입니까? 기름 부음이 가르친 그대로 사는 것은 누가 사는 것입니까? 새사람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새사람.

이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중생된 영이 우리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는 그걸 우리는 껍데기, 고기덩어리만 하는 일도 외식이요 헛일입니다. 우리 마음으로만 하는 것도 외식이요 헛일입니다. 우리 영과 마음과 몸이 합해서 해야 됩니다.

영과 마음과 몸이 합해서 하는 것도 속에 성령과 같이 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다 외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름 부음이 가르친 대로 요대로 행하면 몇이 행하는 것입니까? 자, 이 기름 부음이 가르친 그대로 행하면 몇이 행하는 것입니까? 넷이 행하는 것이라, 또? 다섯이 행하는 것이라, 또? 다섯이 행하는 것이라 하는 사람은 뭘 말하는데? 말해 봐. 그러면 또 여섯이 행하는 것이라, 여섯이 행하는 것입니다.

여섯이 행해. 다섯이 행하는 것도 영육을, 그만 영육이라 그래 치면 다섯이라 할 수 있어요.

여섯이 행해. 뭐이냐? 피, 성령, 진리, 영, 또? 마음, 몸. 이래 가지고 하는 거 이래 가지고 우리 행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게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이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심을 우리가 받을라고 하는 데에는, 우리가 지금 구원 이루는 것은 우리 육이 구원 이룰라고, 육의 구원 이룰라 하는 것입니다. 육의 구원 이루는 것은, 영의 구원은 뭐입니까? 영은 지배를 육을 지배할 수 있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육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도록 받을 자격을 만들어야 됩니다, 받을 자격.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는 건데 받을 자격을 만들어야 돼. 받을 자격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면 우리에게 기름 부음의 구원을 주는 것은 몇이 줍니까? 기름 부음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몇이 줍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뻐뜩 들어 가리켜 보이소. 기름 부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쳐 주는 것은 몇이 들어서 가르쳐 주는 것인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저 ○○○? 그래 너이. 또? 너이 맞았어요. 너이 맞았어. 피, 성령, 진리, 또? 영.

이런데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 그대로 행하면 몇이 행했습니까? 여섯이 행했어, 여섯이. 이러기 때문에 우리 피, 성령, 진리, 영, 넷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라고 할 때에 가르쳐 줌을 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가르쳐 줌을 받는 자는 누굽니까? ○○○? 가르쳐 줌을 받는 자는 마음입니다. 마음. 이래 마음이 받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이제 몸이 받습니다, 그 순서가 그러면 마음이 받는데, 마음과, 넷이 가르쳐 줄라고 하니까 중생된 영과 가까운 것, 진리와 가까운 것, 또 성령과 가까운 것, 피와 가까운 것, 우리 이 마음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과 가까운 그 면이 있는데, 이건 좀 뭐, 그러면 이거 지금 이거 넷 말이요, 넷은 알지요? 피, 성령, 진리, 영, 이 넷 아닙니까? 또 여게는 둘 아니요? 둘과 이래 넷이 합해야 되겠는데, 이래 합해야 되는데 이거와 둘이 합해지면 이 뒤에 쭉 연결돼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 중생된 영과 내 마음과 합해지는데 제일 가까운 면이 뭐입니까? 이 가까운 면이 뭐이요? 양심. 가까운 면이 양심입니다. 가까운 면이 앙심이라.

이런데 여게서 이 건너올라 하는 데에는 양심이 아니면 건너오지 못하고 또 여게서도 양심이 아니면 받지를 못합니다. 영접하지를 못합니다. 큰 배가 와 가지고서 조그만한 배를 타고서 큰 배에 가 가지고 뭘 싣고 나와 가지고서 이래 연결하는 것처럼, 이 우리 마음 중에 제일 예민하고 똑똑하고 진실하고, 우리 마음 중에 제일 예민하고 진실하고 똑똑하고 정직하고 바르고 곧고 지혜롭고 한 것이 뭐입니까? 양심입니다, 양심.

그러기에 이 중생된 영에게 넷이 연결돼 가지고서 우리에게 바로 지도할라고 할 때에 우리 마음이 그 지도를 받아 가지고 마음이 살아나고, 또 마음이 지도하는 것을 몸이 받아 가지고서 몸의 행동이 살아나고, 또 몸이 받은 것을 이 사물에게 접해 가지고서 행동할 때에 그게 살아나는 것인데, 중생된 영에게 이 넷이 연결돼 가지고 우리를 바로 구원할라고 애를 쓸 때에 여기에 양심이 없어져 버리면 그 토막이 뚝 떨어져 가지고 있어 건너오지를 못합니다. 양심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끌어오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양심을 통하지 않고는 이 중생된 영의 네 연결이 여게 건너올래야 건너오지를 못해요. 건너오지를 못하는 건 건너오면 이게 죽어 버려. 또 이것도 양심이 없으면 거게 받을 수가 없어. 암만 줄라고 해도 받을 수가 없어요. 요걸 똑똑히 여러분들이 아시고 오늘 지금 시간 많이 갔으니까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양심이 아니면 절대 건너오지 못해. 제가 암만 행동해 봤자 소용이 없어. 암만 행동해도. 우리의 그 영생이 되는 행동은, 영생이 되는 행동은 몇이 움직이는 것이 영생되는 행동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이 여섯이 움직이는 행동이 영생되는 것이라.

혼자 고기덩어리만 하는 거 많습니다. 고기덩어리로만 하는 거 많아요. 여기 뭐 목사들 고기덩어리만 하는 거 많애. 그만 아는 사람 ‘저 고기덩어리만 움직인다.

그래도 마음하고 몸하고 둘은 합했다.’ 마음은 통 없는 것이 고기덩어리만 움직이는 것 있습니다.

그러기에 뭘 해도 그렇소. 식모가 밥을 해도 그렇소. 가정부가 밥을 해도 그렇고 자기 아내가 밥을 해도 그렇습니다. 뭘 대접을 해도 대접하는 그릇만 왔고, 과일만 왔고, 음식만 왔지, 그놈의 손만 오고 발만 왔지 마음은 없습니다. 그게 다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걸 못 먹습니다.

이제 이거 물건, 손, 또 그다음에 마음, 이것이 있으면 보통 대접이오. 이거는 안 믿는 사람들도 이거 있는 걸 대접하지, 배가 고파서 뭐 개걸이 돼 굶어 죽을 지경된 그런 사람은 뭐 아마 뺨을 때려도 밥 먹지마는 이게 없으면 안 돼.

어떤 사람은 물건, 몸, 마음, 요 세 가지가 있어도 잘 못 먹습니다. 못 먹어요.

자기는 모르는데 이상하게 우리 그 심령이라는 것은 민첩해서 어짠지 먹기가 싫습니다. 어짠지 맛이 있습니다.

내가 양성원에 가 가지고 밥을 한 끼 먹었는데 속으로 염려하기를 ‘이 양성원 학생들을 아무 찬도 없고 이렇게 뭐 이렇게 하니까 저거가 식사가 대단히 곤란치 않겠나?’ 이랬는데 그래서 언제 한번 가서 어째 먹는가 한번 구경할라 했는데 그날 어째 가 가지고 그만 딱 걸려서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식사를 해 보니까 물건, 또 몸, 또 마음, 또 그 위에 네 가지 연결이 돼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이거 먹고 살찌겠구나.’ 그래 뭐 그 날 나는 먹은 게 찍해야 밥하고 뭐 국은 뭘 끓였는데 그거는 뭐 거석하고 그저 된장, 어떻게 맛있는지 내가 뭐 근년에는 그렇츰 많이 먹어 보기는 처음이라.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보기는. 어떻게 맛이 있는지. 그래 내가 말하기를 ‘이 양성원 학생들 이 밥 먹고 살찌고 아주 영양에 충족하겠구나.’ 하는 거 했습니다.

그래 언제 또 예배당 지을 때에 모두 다 국수 먹어 보고 ‘이거 참 이상하다’ 하는 거 모양으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게 보여집니다. 성령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게 보여져요.

죄만 가득히 들어 가지고 있는데 그걸 그거는, 사람도 고기덩어리의 사람, 마음까지 둘이 합한 사람, 또 영까지 합한 사람, 하나님까지 합한 사람, 사람이 각각 달라.

그러기 때문데 저는 강사로 가 가지고, 뭐 내가 제일 곯기는 저 서울에 있는 무슨 교회고? ○○교회가? ○○○목사님 계시던 데가 ○○교회입니까? 어? 서울에 ○○교회, ○○○목사님이 계시던데? ○○○권사님 거게 다니지 안했소? ○○교회. 그 교회 가서 제일 곯았어.

순 뭐, 월남했는데 순 외식쟁이들이라. 내가 그렇츰 내가 믿음 없는 사람들, 그 외식쟁이들, 이래 놓으니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상을 차리는데, 지금은 또 부자가 돼 놔서 뭐 그런 상이라 놀라지 안해. 이만해요. 이만한데 마구 닭도 한 마리 통닭, 뭐 돼지도 뭐뭐 이렇고 소고기도 그러하고 이래 가지고 수북수북하게 이래 재 놨는데 그래 가지고서 이거 뭐 양쪽에 둘이 어른들 둘이 이래 들고 와.

영 구역질이 나고서 도무지 뭐, 한 내끼도 안 먹었어요, 그만. 안 먹었어, 뭐.

가기만 가느라고 괴롭기만 괴롭지, 나 지금 같으면 ‘나 안 갈란다, 그만.’ 이럴 건데 그때는 그거 지금 촌놈이 되고 말이요 또 그때는 처음에 시발이 되니까 그래도 꾹 참고 갔다 말이오. 참고 갔는데 그때 그 한 상 차리는데 뭐 일 원 들었다 하는, 일 원 같으면 요새 돈으로는 아마 한 십만 원 더 될 겁니다.

이랬는데 하나도 못 먹어.

그래서 나는 꼭, 거게서 안 먹고 저 노점에 가 가지고서 나중에 뭘 이런 과일 모두 쫑쫑 썰어 가지고서 컵에 넣어 가지고 주면 고거 한 컵씩 먹고 그래 집회 했었습니다. 하나도 못 먹었어요.

그래 내가 나중에 말했어. ‘너희들 이렇게 도야지 모양으로 고기덩어리로 되는 것은 이런 걸 먹지마는 못 먹는다. 너희들이 마음이나 성의나 뭐 있느냐? 안 들이고 어떻든지 제 자랑할라고, 우리집에 더 돈 많이 들이고 더 잘 한다, 전부 너거만 가득 차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어째 먹을 수 있노, 있기를?’ 그래 내가 좀 야단을 치고서, 그때 뭐 불은 떨어졌습니다. 그때 뭐 참 큰 변화가 일어나기는 났었는데.

이렇게 여러분들이 외식이라 하는 건 소용없어. 어쨌든간에 우리의 영생되는 그 행위는 몇이 해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여섯. 여섯이 해야 돼. 이게 아니면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새벽기도 전도하라 했는데 저래 안 나왔네. 새벽기도 자꾸 나오라고 전도를 많이 해요, 자꾸. 항상 나오는 사람만 나오고, 안 나오면 모릅니다. 모르면 뭘 행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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