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하고 아는 것

 

1984. 7. 7. 토새벽 

 

본문 : 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선지자선교회  어제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어제 아침에 ○○○장로님이 여기 와서 참석을 했는데 그분은 신앙이 살았어.

새벽에 여기 오면서 벌써 세수하고 단정하게 그래 가지고 나왔는데 아주 마음의  허리를 딱 동이고 나와서 그렇게 나온 것을 봤습니다. 아마 그분이 평소의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분이 오래 동안 믿으면서 늘  말하기를 '참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아직까지 확신이 없고 또 내가 택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없는 것 같다. 그것이  학실히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 뭐 예수 믿는 데 다 기울여서 믿지 그보다 좋은  게 없는데, 안다는 것이 나와 같은 줄 알고 거짓부리인 줄 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하다면 그 일 외에 딴것 할 일이 있겠느냐' 이랬는데, 그분은  의학 박사입니다. 다 내놓고 지금은 뭐 신앙생활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어제 나는 설교하고 오층으로 올라가려고 왔는데 열쇠를 안 가지고 내려와서  시간 한 삼십 오 분이나 근 사십 분 기다렸습니다. 그 사람이 온 데를 다  찾아다니면서 권사님들 만나려고 찾아다니다가 만났는지, 또 그러다가 오층으로  그때 올라옵니다. 내가 오층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만나 고 가야 되겠다 싶어서  와서 그래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이 서부교회 장로님들은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그렇게  성의 있게 믿는 장로들이 없는 것 같아요. 그만 너무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까 속담에 돈이 몇 푼 빚져야 갚으려고 애를 쓰지 옛날 돈으로 천  냥이라면 사람이 못 갚는, 그만 사람 하나 생명값인데 '아이구, 천 냥이나  빚이졌으니까 천 한 냥 지나 두 냥 지나, 못 고친 것이 천 가지나 넘어 되니까  하나 고쳐 봤자 그까짓 것 하나 못 고치나 둘 못 고치나' 이래 그런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이 진리대로 믿어 보려고 하는 장로들 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장로들이 허무합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까짓 것 장로가 암만 '어험' 하고  돈이니 얼굴 버틀이니 의복이니 안경이니 그까짓 것 가지고 암만 꾸며 봤자  똥이오. 그까짓 것 누가 하늘나라에서 알아줍니까? 하나님이 그 속에 계셔야  되고 믿음이 있어야 되지.

 이러니까, 새벽에 나오지도 안해. 이제 장로님 한 분은 목사가 돼 버렸고,  이러니까, 장로님으로서 오늘 새벽기도 참석한 분 손 한번 들어 보이소.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분, 네 분뿐이라. '다른 장로님들은 다 죽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이라면, '하 목사가 들어서 장로' 다른 교회는 장로면 하늘같이 그렇게 모시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면 내가  하나님 다음으로 모십니다. 아무리 위대한 목사고 유명한 목사라 해도 벌써  하나님과 삐뚤어졌으면 나는 멸시합니다.

 왜? 시편 15편이 그래 말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은혜를 주셔서 그렇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머리 숙이는 그런 사람은 우리  서부교회 유치반에 있지 중간반에 많이 있지 않습니다. 중간반에는 벌써 머리  숙였던 그런 학생들도 '아이구' 이렇지 별로 그렇지 안해. 장년반은, 네나 내나  죽어야 된다. 있어 봤자 밥이나 없애지 아무 소용없다' 이렇게 보여지지 그렇게  뭐 존대하게 보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 가운데는 참 존경이 되고  또 참 아름답게 귀하게 보이고 그 깨끗한 인격과 인품을 섬기고 싶고 높이고  싶고 애모하고 싶고 이렇지만 이 외에는 없어.

 좀 구역장들이 가 가지고, '듣든지 안 듣든지 내 말을 전해라.' '듣든지 안  듣든지 내 말을 전해라.' 뭐 때문에 자기 구역에 장로들을 두고 못해 못하기를?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해라. 그들은 강퍅해서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해라' 말씀했습니다. 전하십시오. 끙끙 앓고 있지 말고, 어떤  일이라도 옳은 것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이렇게 노력해서 전할 것이요, 제가  책임지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뭐 이렇게 밥맛이 없고 피골이 상접해지고 하는  그것도 망령입니다. 망령. 제까짓 게 하나님 인가? 옳은 건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우리는 말씀을 전할 것뿐이지 기르시고 만드시고 고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 제가 말했으니까 되리라고 생각할 그런 망령 부리지 안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집사님은 나왔는데 우리 ○장로님은 안 보이네요. 안  나왔습니까? 어디 갔노? ○○○집사님 어디 보이더라. 어디? 손들었습니까? 한번  새로 들어 봐. 그러면 아까, 또 한 번 들어봐요. 장로님들. 하나 둘 셋 넷,  그래서 넷이가? 나는 ○장로님 아니고 다른 이로 너이인가 알았는데, 거봐.

장로면 양무리의 본이 되라 했으니까, 새벽기도 안 나오는데 장로 보니까  새벽기도 나온다.

 이래서 성경에, 그라면 목자장이 나타날 때에 시들지 안하는 면류관을 저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데, '아. 장로 보니까 새벽기도 나을 필요가 없다.' 새벽 기도  안 나오는 본 보이는 것이 장로인가? 그것 좀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돼.

앞으로 환꽐 때에 개 가죽 오그라지듯이 오그라져 가지고 비참한 꼬라지 하지  말고 지금 기도해야 돼.

 그래서 이거 설교를 자꾸 이래 하니까, 그만 감당 못 하는데 자꾸 설교만 해  쌓아니, 감당도 못 하는데, 아예 못 하니까 '하나 못 지키나 둘 못 지키나 백 못  지키나 뭐 천 못 지키나 한 가지 아니겠느냐' 이래서 '도리어 설교를 해서  알리는 이것이 손해가 아니가, 분명히 예수 믿는 걸 알리기는 뒤 떨어지지  안하게 알려 주는데 와 이런가?' 이래서. 김현봉 목사님은 새벽 설교는 한 번도  안 했고 그저 대예배 설교만 이렇게 했었는데 나도 이 새벽 설교 하나도 하지  말고 대예배 설교만 할까, 또 그렇지 않으면 가끔 가다가 한 번씩이나 설교를  할까? 너무 말씀에 그만 실행하려 하지 안 하고 이러니까. 들어 버리고 들어  버리고 자꾸 들어 가지고 버려 버리고 이래 놓으니까 도로 이렇게 시들어지고  죽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종종 가져 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지금은 귀중한 때입니다. 뭐 땅의 것 그거는 염려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땅의 것은. 왜? 하나님께서 아시고 우리 구원에 적절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에게 맡겨 놓고, 왜? 우리는 그거 할 여가가 없고  시간이 없어. 우리의 전심전력은 예수님이 입혀 주신 대속을 벗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죄를 벗지 않도록, 칭의를 벗지 않도록, 화친을 벗지 않도록 이것을  노력해서 그것 안 벗으면 행위가 온전해져. 그 공로만 안 벗으면 사람이  온전해져. 사람 온전하고 행위 온전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구원도 다  온전해지니까 그만하면 안 됩니까? 그것만 해도 우리는 전심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라는 데 딴 데 기울일 수가 없어.

또 의식주를 담당하시겠다고 하신 분이 '여기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마음도  여기에 다 기울이고 목숨도 여기에 다 기울이고 힘도 여기에 다 기울이고 뜻될  다 여기에 기울이고 성품도 여기에 다 기울이고 다 여기에 다 기울이라. 딴 데  기울이지 말고 여기 다 기울여서 이 구원에 다 기울이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은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인 것을 너희 천부께서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런 것을 구하는 자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하시겠다'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잘해 주실  터인데,  저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이 서부교회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이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모든 면이 축복 받고 경제 축복도 가난해서 구원 이루는 데 지장  없도록, 지장이 될까 두렵사오니 지장 있을 가난을 닥치지 안하도록 하시고, 또  구원에 지장 있을 부요도 오지 안하도록 하시고 그저 구원 이루기에 합당한  경제도 주시고 건강도 주셔서, 부요하지도 말고 가난하지도 말아서 안심하고  안정한 가운데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나는 기도하지.

 또 교인들은 어쩌든지 죽자 살자 하고 먹을 것 입을 것 세상 것이나 잘해서  다른 사람은 가구 하나 들여 놨는데 저는 가구 둘들이 놓으라고만 애를 쓰는 이  일만 노력을 하고 하니까 목사의 기도하고 교인들의 기도하고 서로 이렇게  스파크가 돼. 부딪쳐 가지고. 이러니까, 내 기도가 강하면 여러분들의 소원이  깨져 버릴 것이고 여러분들의 기도가 강하면 내 소원이 깨져 버릴 것이고,  ○○○씨, 내 소원이 뭐인데? 내 소원은 '세상 것만을 위주로 해서 어쩌든지  부요하려고 애를 쓰는 그자의 애쓰는 것은 통통 헛일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이 내 기도라 그거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내가 기도를 그래 합니다. 어떤  집에 대해서는 '콩 가루같이 바싹 부숴 주시옵소서, 바싹 부숴 주시옵소서.'  내가 그렇게 기도합니다. 왜? 그거는 바싹 부셔져야 되지, 뭐이 바싹 부셔지도록  기도할까? 그것 한번 알아 봐요. 무엇을 내가 바싹 부셔지기를 기도하겠습니까?  한번 누가 알아 봐요. 뭐 이겠지? 교만이라, 교만. 교만. 교만. 교만 그게  들어서 다 망쳐요. 교만해서 망치지, 교만하려고. 교만하려고, 남이 날 알아주고  내가 우쭐해지고, '남이 날 알아 줘야 될 건데' 이라기 위해서 노력을 하니까  그것은 바싹 부셔져야 되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은 커 가지고 자꾸  세상으로 이러려고 자꾸 애를 쓰고 있고 나는 그거 바싹 부셔지라고 기도하고  이라니까 참 못 할 일입니다. 또 그까짓 게 돼 봤자 아무 가치 없소. 이러니까.

아예 목사 기도와 교인들 기도가 하나가 돼 가지고 '어쩌든지 부요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고 이것은 구원이루는 데에 적절하게 해 주시옵소서. 다만 내  전심전력 다 주님의 대속을 벗지 일고 입고 대속을 나타내는, 기념하는 이  일에만 전심전력 기울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빨리  들어 주시고 빨리 이루어 주실 터인데 이렇게 서로 상충이 되니까 일이 자꾸  더디다 이거요.

 그러면, 이렇게 어떤, 지금 서부교회 교인들은 어떤 단계에 있느냐 하면 자꾸  그래 싸니까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고 그만 중간에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그만 가만히 있습니다.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고 얼떨떨해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그만 그렇게 정신 빠진 사람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있어. 와 할일이  없습니까? 그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것으로서 뿍뿍 나아가면,  지난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환난은 뭐하는 환난 뭐하는  환난이라 했습니까? 자, 대답해 봐요. 첫째, 환난은 치료하는 환난.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무슨 병이 들었는지도 몰라요. 병이 몇 가지나 있는 지도  몰라요. '나는 병이 몇 가지나 들었는지 모른다. 주님이 이것을 다 치료해  주시옵소서.' 나는 교만병이 들어도 모르지, 의심병이 들어도 모르지, 백지  두려워 떠는 공포병이 들어도 모르지. 또 겁쟁이, 비겁병이 들어도 모르지, 이런  욕심 저런 욕심 모든 병이 들어도 모르지, 이런바, 무슨 병이든지 환난은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온 환난입니다.

 그러면, 그 환난을 내가 믿음만 지키면 그 환난에서 모든 치료될 것이 다  치료가 됩니다. 그러니까, 환난이 오면 보배가 온 것을 알고 먼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될 터인데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안하고 그만 두려워 떨어서 이  환난을, 자꾸 환난을 피합니다. 환난을 피해서 없이 합니다. 또 그리 안하면  환난에게 피하든지 그리 안하면 환난에게 머리 숙여서 환난의 종이 되든지,  환난의 종이 되든지 환난을 피하든지 이라니까 치료가 안 돼. 어떤 어려움이라도  어려움만 왔으면 됐습니다. 어려움 왔으면 보배가 왔습니다. 무슨 보배?  치료하는 보배. 또 하나는 뭐입니까? 육성시키는 것. 성장시키는 것 지위도  높아지게, 권세도 높아지게, 지능도 커지게, 모든 것이 영광도 존귀도 높아지게,  자꾸 성장시키는 환난. 얼마나 보배입니까? 치료하는 환난 성장하는 환난,  그런데, 환난이 오면 어째야 됩니까? 믿으면 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 명령대로 순종만 하면 변화됩니다. 이러니까, 처음에는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너희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근심하는 환난이 왔는데 믿음을  지키니까, 믿음을 지키고 보니까 그 환난이 변해서 큰 치료가 되었고 환난이  변해서 큰 성장이 됐으니까 '오! 주여, 감사합니다.' 크게 기뻐하지. 그걸  지난밤에 말씀하지 안했소?  이러니까, '환난아 오너라.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는 예수 향만 드러낸다.' 그래 뭐 '공산주의야 오너라, 왜정 말년아  오너라. 우리나라든지 어느 나라든지 정권아 오너라. 종교 단체야 오너라.

무신론자들아 오너라.' 이래서, '어떤 경제 환난에서도 그것을 내가 삼켜서  이용하고 거기에 정복당하지 않게 하시고 그것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거기에서  내가 변질되어서 그것의 것이 되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경제 환난 국가 환난,  사회 환난, 가정 환난, 자기의 심령의 환난, 몸의 환난 어떤 환난이든지 오라,  다 이용해서 받을 치료 다 받고 받을 성장 다 받아서 할렐루야 흠 없는 자로  주님 앞에 서도록 우리는 이 한 가지를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데, 먼데서 모처럼 온 사람들이, 교역자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아침의  말씀을 봤습니다. 교역자들이 모두 교만해요. 교만하고 게을해요. 안 믿어요.

자기 주관을 버리지 안해. 애써 열심히 하는 사람들 같은데 보면 제 주관대로  열심이라. 제 주관을 부인하지 못해. 하나님을 믿지 못해요. 이러니까, 조금  있으면 삐꿉니다. 조금 있으면 삐꾸요. 어떻게 삐꾸기는 잘 삐꾸는지. 삐꾸기는  잘 삐꾸는지. 거뜩거리면 삐꾸고, 거뜩거리면 고만 푹 죽어서 땅속에 파묻히고.

거뜩거리면 그만 하늘같이 올라오고 이거는 뭐 참 생명 없는 존재와 같아. 자기  주위와 환경 신체적인 자기의 경제적인 자기의 사회적인, 자기의 가족적인, 모든  사물적인 이런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지 환경을 극복하는 역항 생활 하는 신앙이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것 뭐 담대하다고 담대하는 그것도 그까짓 것 볼 것도 없고,  환경이 좋으니까 담대하다는 것. 환경은 언제 깨져도 깨질 터인데. 담대도  환경으로 인해서, 열심도 환경으로 인해서, 감사도 기쁨도 환경으로 인해서,  담력도 그까짓 거 볼 게 없어. 아무 가치가 없어. 환경이 아닌 불변자이신 우리  구속주이신 우리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서야 되겠고 강해야 되겠고 자라서,  '주님이 변하지 안하시니 내 환경이야 변하든지 말든지, 내 몸이 변하든지  말든지, 욥과 같이 어떻게 될지라도, 변하든지 말든지 주님 변하지 안하니까, 내  몸 밖에 어떤 게 변해도, 내 몸이 어떻게 변해져도 믿음만이 변치 않는 이  믿음을 주여 주시옵소서.' 밤낮 이것을 소원해야 되고, 이 사람이, 자기 몸도 다  점령했고 자기 몸 밖에 있는 모든 것도 점령한 그 사람이 영원무궁토록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통치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참 중보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거 위해서 환난 옵니다.

 이런데, 환난만 오면 다 울고 있어. 환난이 오면 그만 다 근심되고 있어.

거기에는 우리가 믿음 지키면 되는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 딱딱하고 답답한 것 있으면 주님에게 또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라면 얼마  안 가서 그 가정은 녹아져 버립니다. 녹아져 버려요. 자기에게는 피해가 하나도  없어.

 오늘 아침에는 이 봉독한 말씀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알고' 하는 이 두  가지 가지고 성공이 다 돼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이것은 치료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는 건 치료요.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거는 성장입니다. 내나  꼭 같은 거라. 성장이라. 말만 그렇게 표시했지 꼭 같은 거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알면 돼요.

 이러니까. 우리는 오늘 아침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을 아는 것이 두  가지인데, 두 가지인데. 두 가지가 한 가지가 둘씩으로서 이이는 사, 네 가지만  단단히 기억하고 갑시다.

 하나는, '네가 시험해 보라.' 됐나 안 됐나 내가 시험해 보는 것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을 내가 아는지 이렇게 아는가 모르는가 시험해 보고, '또  하나는 뭐이라 했지? 예? 잘 알고 있네. 나는 아롱아롱해서 물었는데, 제자가 더  잘 아는구먼. 하나는 연습, 연습. 하나는 연습.

 하나님을 내가 사랑 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한번 시험해 봐요. 내가 정말 그  내가 지금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인가 이 태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인가, 이 행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인가, 이 말과 행동과 이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며 아는 행동이며 아는 모든 말이냐? 뭐이냐?  이래서, 첫째는 시험해 보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스스로 네가 믿음에  있는가 없는가 시험해서 확정해라.' '아. 나는 믿음에 있다. 아이구, 이 면은  믿음에 없다.' 스스로 시험해 가지고 네가 확정을 해라. 공연히 얼떨떨해 가지고  하지 말고. '아, 요거는 믿음이 없다. 요거는 믿음이 아니다. 고쳐라. 요거는  믿음이다.' 요렇게 시험해서 확정을 해라. 여기 시험해서 확정하고,  하나는 뭐이라고요? 하나는 뭐입니까? 성장하는 것? 내가 두 가지 말한 것  중에는 틀렸는데. 하나는 뭐입니까? 이거 참 모두 마음은 다 빼 놓고 나와 있는  가베. 아, 여기서 대답했는데 그걸 몰라요? 또? 그래도 몰라요? 연습! 연습  연습해야 돼. 연습해 나가면서, 그라면 나중에 자꾸 연단이 돼. 연단해도 계속  연습하면 나중에 연성이 돼요. 이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연습을 합니다.

자꾸 내가 사랑하려고, 내가 말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사랑하는 행동을 하려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사랑하는 일을 하려고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또 하나님을 아는 연습을 해요. '요렇게  하면 하나님을 내가 아는 것이다.' 아는 연습 하고 또 사랑하는 연습 하고. 또  사랑하는지 아는지 내가 심사해 가지고 알고 요 두 가지만 해 나가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 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고 입고  있는 것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이걸 자꾸 시험도 해 보고 또 연습을  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알아서, 알면 두려워해요. 그분보다 큰 분이 없어. 그 분보다 큰  분이 없기 때문에 그분보다 두려워할 것이 없어. 그분을 알면 두려워하게 돼요.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할 자가 어디 있느냐? 암만  두려워해도 그분이 아직까지 그런 두려움이 아니고 그 분은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지 몰라.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지. 왜? 그분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자존자시요. 당신이 모든 것을 목적하시고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분이요, 창조하신 분이요, 모든 것의 주재라 주권자라. 이러니까 그분이 지극히  커. 그분의 크심을 자꾸 내가 아나 모르나 그분의 크심을 내가 아나 모르나 이걸  시험해 보고 '아. 내가 그분의 크심을 참 모르는 것이다. 그분의 전능을 모른다.

그분의 전지를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날 모르지' 해서 망령을 부리지.

또 그분을 아는 연습을 해요.

 그 다음에 둘째로는 그분은 지공 지성하신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평되게 모든 것을 정확무오하게 그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니까, 내가 그분의 정확한 지공  지성의 심판을 아느냐? 이라면 제가 심판에 걸릴까 싶어서 잘못 된 거나 걱정할  일이지 그것 눈꼽재기만치 옳은 일 해 놓고 여기에 대해서 안 알아주는가.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가? 이래 가지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이것을 뭐 광고를 하려고, 참 말하자면 정신 빠진 자가 아니고 미친 자요.

우리가 미친 사람이라. 우리가 전부 보면 다 미쳤소. 내가 저 아래도 언제 그  사람이 정신이, '정신 이상 아닌 사람이 있는가? 다 미쳤어.' 이 시간도 우리가  얘기하면서 안 미치면 다행이지만 미친 말 많이 해. 미친 말 미친 생각.

 이렇게 하나님이 세밀하시고 철두철미하게 모든 것을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신데 자기가 벌 받을 거나 생각해서 고칠 것이나 주력할 일이지  뭐 내가 의를 행했는데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상을 안 줄까 싶어서 염려할 게  뭐이야? 받을 상은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리 장변(邊)해도 뭐. 고리대금 해도,  달러변(邊) 해도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는 뭐 수백 배 수천 배로  자라갑니다. 수천 배로 자라가. 모르드개가.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행한 의가  숨겨져 있으니까 그게 자라갔소 안 자라갔소? 그때 요긴한 때 하나님이, 요긴할  때 어떻게 쓰는가? 오십층 나무 위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는 그때 하나님께서  그걸 딱 내다 쓰도록 딱 해버렸다 그 말이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의를 행해  놓은 것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효력이 있도록, 가장 효력이 많도록 그렇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니까. 그분이 전지전능하시고 지공 지성의 심판자이신 것을 알  때에 자기의 의에 대해서 뭐 누가 알아 달라고 뭐 광고하는 참, 물론 이 세상의  정치가들은 자기를 선전하고 광고합니다. 광고하는 그거는 인제 해석을 잘하면  자기가,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전부를 희생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가  희생 할 자인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르니까 희생할 자인 것을 알아서 자기가 희생  할 길을 찾는다고 해석을 하면 좋은 사람이고, 그 사람은 민족에서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게 아니라면, 자기를 광고해서 다른 사람이 인정해 달라고  하면 말짱한 미친 소리입니다. 미친 소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분의 지극히 크심을 알아서 내가 그분  앞에서 떨고, 그분의 지공 지성의 심판을 알아서 내가 발발 떨면서 조심하지  안할 수 없고,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사랑과 계약을 알아서 모든 것 맡겨 놓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 하나 복종 복종으로 착착 이렇게 이루어 나가는 건설  여기에만, 그분의 사랑과 사랑의 계약을 알면.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사랑의  계약을 알면 믿음 외에는 할 것이 없는 사람이 돼요. 이러니까,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자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나를 안즉 저를 높이리라' 이 길은 필연한 일이기 때문에 이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설교 다 했습니다. 지난밤 설교 재독했고, 또 오늘 아침  설교 또 했고, 이거는 어제 아침 설교 재독이고.

 이러니까, 굳게 섭시다. 굳게 서야 돼요. 누가 있다 말하기를 그래. 저  기도하러 가면, 나는 그 새 이름을 내가 지었어요. 짓기를 성조라 지었어요.

거룩한 새라, 성조라 지었어요. 보면 내가 기억하는 대로는 꼭 참 은혜 있을  때에 와 가지고 그 새가 밤이고 낮이고 우는데, 하나님이 희생을, 원하는  모양이라. 꼭 혼자 외롭게 참 비를 맞든지 밤잠을 안자든지 이라고 기도할 때에  그 성조가 와서 울어요. 그 새가 와서 울어. 내가 이름을 성조라 했는데, 요새는  수원지 가도 그 새우는 소리를 못 들어. 암만 가도 '아이구! 너거 뭐 하고  있는데' 저 아래 언제 하루아침에는 '아, 오늘 아침에는 성조가 그렇게 심하게  웁디다.' '언제인데?' 이라니까,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왔는데. 비 올 때  가서 기도하고 우비 쓰고 가서 기도 하니까 그렇게 성조가 울어서, 하나님이  기뻐 하셨던 모양이라, 그런 것도 그걸 다 성경처럼 믿고 선전하면 안 돼요.

자기 주관의 깨달음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렇게 우니까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거요.

 저 대구 기도원에는 성조가 없었어. 없었는데, 제가 언제 한번 거기에 기도할  때에 이상한 새가 우니까 그 사찰이 있다가 '아. 저 새가 밤새껏 저렇게 울고  있는데 저거 무슨 소리입니까?' 내 속으로는 짐작하고 '네, 그거 좋은 새입니다.

좋은 새입니다.' 이래 놨다 말이오. 나중에 내가 올 때에 '그 새가 내가 이름을  짓기를 성조라고 지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무슨 일이 아마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라고 왔다 말이오. 그 뒤에는, 저 나오고 그 뒤에는. 그  뒤에는 한 번도 우는 일이 없습니다. 한 번도 우는 일이 없어. 그랬는데, 지난  대구 집회 때에는 어떻게 우는지 뭐, 그 새가 얼마가 와 가지고 떼를 지어  가지고 울어서, 밤새껏 울고 낮에도 울고 그렇게 울더라고. 나는 거기서 못  들었는데 거기들은 사람들은 그렇게 들었다고. 그때 성조 소리 들은 사람 손들어  봐요. 대구 가서 들은 사람. 하나뿐 인가베? 그렇츰 많이 울었다는데. 안 들리는  사람에게는 또, 그것도 안 들리는 모양이지.

 오늘 아침에도 지금 비가 뭐 폭우로 많이 왔어요. 많이 왔는데, 하나님이  듣든지 안 듣든지 '주님. 이 네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주님이 비 주시려면  주시지만 약하고 어리니까 혹 좀 멈추어 주셨으면 좋기는 좋겠는데 우리  사욕인지 모르니까 사욕대로 마시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나 폭우가 와도  폭우를 이기고 올 수 있는 이 신앙만큼은 꼭 줘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 했어요.

보니까 비가 아마 좀 멈춘 것 같아. 소리가. 멈춘 것 같지?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도 성조가 울도록 또 기도하러 가요. 양산 쓰고.

시골에서는 양산도 없어 삿갓 여기에 말이오,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또 쇠고삐  들고 또 성경 들고 이래 읽으면서 소 먹이고 그래 그래 거기서 다 기이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안 돼요. 환난이  왔느냐? 십자가 질 때가 왔다. 환난이 왔느냐? 십자가를 져라. 그 다음에는  '잠시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크게 기뻐하도다. 크게 기뻐하도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기독교요. 절망을 통과해야 희망이 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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