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복받는 열쇠

 

1987. 12. 20. 주일오전

 

본문:요한복음 14장 1절∼6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차차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의 마지막 때가 가까와 옴으로 부득이 가르치는 것도  거게 따라서, 곡식으로 말하면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이삭이 나오고 열매가 익는  것처럼 그렇게 교훈도 그렇게 차차 하늘나라에 가까운 그런 도리를 증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듣는 여러분들이 성경도 많이 읽어야 하고 또  듣는 것도 아주 조심해서 듣지 안하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주님이 요한복음 8장에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보고 듣고 아시는 것을  말하지마는 주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듣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너희들은 너희  애비 마귀가 하는 말은 잘 듣는 것은 너희 속에 마귀가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마귀가 하는 말은 너희 귀에 쏙쏙 들어오고 이성 판단에 딱딱 들어맞고  이해가 되고 소망이 생겨지지마는 이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마는, 보이는  것은 없어지고 이 말씀대로 다 될 것이지마는 내 말은 너희들이 듣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와같이 오늘도 자기가 땅에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의 음성은 들려지지  않습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자기를 전적 부인하고 하나님만이 참되고 옳고 바르게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만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도 조금  어려운 말을 안 할 수 없어서 증거합니다.

이런데 이런 설교를 자꾸 하면 이제 교인이 자꾸 줄어질 것입니다. 줄어져도 아예  쭉정이가 줄어지지 알맹이는 줄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잘 들으면 알곡 될  것이고 잘 안 들으면 쭉정이 됩니다.

오늘은 14장을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집에 돌아가서 읽고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도록 그저, 그런 정도로 이중 삼중된 면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 있고 또 영안으로 마음의 눈으로 보는 눈이 있고  또 영감으로 보는 것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구비하게 차차 차차,  고기덩어리의 눈 그 눈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물질계밖에는 상관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 현실  속에 장차 나타날 것들을 보게 됩니다. 또 영안으로 보는 사람은 더우기  그러합니다.

귀도 이 육으로 되어 있는 이 귀로 듣는 그 청감이 있고 또 그 양심으로 듣는  청감이 있고 또 영감으로 듣는 그 청감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차차 보이는 데서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데를 향하여  자라가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그것만 확실한 줄로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입니다. 또 보이는 것은 다 없어질  것들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뒤에 생긴 게 아니고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있었습니다. 또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껍데기 사람으로만 항상 행사하고 살아서 껍데기 사람만 돼서  속에 참사람이 되지 못하는 그런 가련한 자리에 머물고 있으면 안 됩니다.

빨리빨리 자라가야 됩니다.

한 자리에서 꼭 같은 것을 보지마는 그 보는 것을 육안으로만 보는 사람 있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 있고 또 그것을 자기가 양심의 눈으로 또 보는 사람  있습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6장 19절 이하에는 그것을 잠깐 주님이  언급하셨습니다. 또 진리와 영감으로 보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빌라도가 한 자리에 있었는데 주님이 보시는 것과 빌라도가  보는 것이 영 판이해서 빌라도는 제가 본 대로 유리한 것을 취했고 주님은  주님이 보시는 대로 유리한 것을 취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빌라도는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부인하는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만치 하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씀은 모든 것을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알고, 잘못 발동을 하지 말아라. 잘못 좋아하는 것도 헛일, 잘못 두려워하는  것도 헛일, 잘못 욕심내는 것도 헛일, 또 잘못 만족하는 것도 헛일, 잘못 안심도  헛일, 잘못 염려도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일을  앞두고서 지금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육안으로만 보고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너희들은 이제 모든 게 다 끝장났고 다 헛일이다 그렇게 너희들이  껍데기로만 보고 듣고 알아서 너희들이 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그런 마음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희들이 도성인신해서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보지마는, 예수님은 보지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너희들이  보지 못하지, 보이는 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 확고하고 크시고 위에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주님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같이 보아라 하는  것으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희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위주를  하지마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육안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좀 더 정확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양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고, 양심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보는 것이 정확해서 그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을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너희들은 보이는 이 물질계, 보이는 물질계 이것만 보고서 물질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로 그렇게 너희들은 생각하지마는 물질계 이면에 신령한 영계가  있고, 영계가 있고, 영계 이면에 진리의 세계가 있고, 진리 세계 속에 영감 세계가  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하는, 거할 곳이 많다 그말은 장소가 많다  하는 그말만이 아닙니다. 공간적으로도 넓고 크다. 시간적으로도 넓고 크다.

생명적으로도 크다. 권위적으로도 크고 모든 활동적으로도 크다.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도 크다. 너희들은 이 물질 세계 이게 다인 줄 알고 이외에는 없는 줄  알아도 이것은 껍데기 중에 껍데기다. 이는 다 변해지지마는 들어갈수록이 변함이  적다. 들어갈수록 점점 온전하다. 완전하다. 거기에는 참 정확하고 생명과 평강의  자유 영광 모든 쾌락이 충만하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많다 말은 크다 말도 되고, 또 넓다 말도  되고, 길다 말도 되고, 어짜든지 좀 뭐 낫다 그말입니다.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말은 너희들이 보는 이 물질계 우주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세계다  그말이오. 더 좋은 세계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그러면 너희들이 이 물질계 현상 세계만  보지마는 이 현상 세계 위에는 많은 세계들이 있다. 점점 올라가고 올라가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네가 완전해지는 것만치 완전한 세계에 들어간다. 너희들이  육안으로 보는 이 세계만으로써 전부가 아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래서 쉽게 말하면, 보이는 이 처소 속에 보이지 않는 처소가 있다 그말이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처소가 있다. 보이는 처소만 상대해서 여게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줄로 아느냐? 보이는 처소에 있어도 그것은 다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차차 차차 나타나 가지고서 점점 보이지 않는 온전한 세계로 간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걸  위해서 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그말은 이 물질계 세계보다 더 호화 찬란한  세계가 있다, 더 광명한 세계가 있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 더 시간적으로도  영원한 세계가 있다, 도덕적으로도 무한히 높은 세계가 있다, 사랑으로도 뜨거운  세계가 있다, 화평으로도 뜨거운 세계가 있다, 진실로도 세상에서 진실 이것은  껍데기 진실이요 갈수록 더 진실로 충만하고 고차원의 진실이 있는 세계가 있다  그것을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만일  이 보이는 현상 세계, 보이는 현상 세계 이것뿐이고 이것 외에 딴 세계가 없다고  하면 “너희들에게 일렀으리라” 너희들에게 ‘이것뿐이니까, 이것 외에 딴게  없고 이것뿐이니 이것을ㅡ너희들에게ㅡ취해야 된다, 이것을 잡아야 된다.’ 말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안했으면 너희들에게 내가 와 가지고서 교훈하는 그런 교훈을 할  필요가 없다. 어짜든지 빨갱이 모양으로 치고 박고 해 가지고서 ‘죽이라, 너는  살고 빼앗아라, 너는 부요하고 그렇게 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세계 이것은 껍데기다. 그 안에 무한한 세계가 있고 참 좋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권위 있고 영광스럽고 변치 않는 실존, 실존, 실존의 세계가  있다.

“그렇지 안했으면 내가 너희들에게 일렀을 것이다” 만일 이 세계가 없다고  하면 이 세상 이것을 너희들에게 내가 주도록 노력하지 뭐하려고 이 세상 이것을  영원을 위해서 투자해라 희생해라. 빼앗는 자 되지 말고 주는 자 돼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다리가 되어지라 이런 소리 하지 않는다. 맞보기 사람 같으면 그래  살지마는, 얼마 전에 맞보기 우리 뭐 대통령 될 사람들이 맞보기로 사는 걸  우리가 잘 구경을 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구경을 여러가지를 했습니다. 여러가지 한 것은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 말씀을 설교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그렇츰 그런 줄은 몰랐는데 뭐 보니까 대구 사람은 대구 표가 많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표가 많고,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표가 많고,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 표가 많고, 모든 사람이 지방 정실 속에 파묻혀 있지 지방 정실을  초월해서 옳고 바른 정평 정가에서 살아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의 숫자가 심히  적은 것을 봤습니다.

이래서, 나는 서울이면 ‘사람은 나거든 서울로 보내라’ 했는데 서울이 제일  말단이라는 것을 봤습니다. 서울이 제일 말단, 제일 못난 사람들, 어두운 사람들,  그다음에 둘째로 부산이 어두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다 세계를 바꾸지 못했어. 보이는 현상 세계로 전부인 줄 알아.

이것은 없어집니다. 보이는 것은 없어지기 때문에 보는 것으로 살지 안하고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산다 이랬어. 믿음으로 산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  세계를 가치로 삼아서 상대해서 산다 그말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요. 여러 번  설교했지마는 땅에 속한 분들이기 때문에 이런 말은 들어야 제 말이 아니니까 안  들려.

안 들리는데, 어째 가다 자기에게 좀 훼방 하나든지 좀 섭섭한 말이 되면 고거는  딱 낚시를 가지고 꽁걸트려 가지고 평생 펴라 해도 안 폅니다. 꼭 그 사람으로  요래 가지고서 원수를 품고 악심을 품고 감정을 품고 요래 가지고서 딱 요래  가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인간은 보면 다른 말은 안 들려. 안 들려도 그말 조금 시기될 말이  있으면 고 말은 어떻게 잘 듣는지 팍 듣고, ‘이놈아 너 뒈진다, 너 뒈져.’ 그런  것 암만 들어봤자. 시기를 듣는 것, 시기를 보는 것, 그런 눈과 귀는 어떻게  밝은지 마귀가 주는 것만 전부 다 구비해 듣지 하나님 주시는 것은 없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이  세계가 없으면 지상 현상 세계로, 당신이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지 뭐하려고 당신이 이래 사랑하는 자녀에게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투자하고 다 네가 그렇게 하라 할  리가 없다 그말이오.

이제 참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앞에 있는 세계를 소망함으로 이 세계를  희생 투자함으로 앞에 있는 세계를 점령하고 그 세계에서 희생 투자함으로 그  위의 세계를 점령하고 이것이 조물주의 절대적인 계획이요 법칙인데 이것을 마귀  이놈이 모르게 해 놨기 때문에 인간들이 꺼꾸로 산다 그거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살 곳을  예비하러 가노니, 살 곳을 예비하러 가노니, 살 곳을 예비하러 간다 말은 물질계  우주를 말하는 것 아닙니다. 물질계 우주를 말하는 것 아니오. 쉽게 말하면  천국이오. 천국인데 천국은 층어리가 많고 천국은 무한합니다.

“예비하러 가노니” 어떤 곳에? 예비하러 갑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래 말씀하시니까,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알리라” 이러니까  도마가 있다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어찌 알겠삽나이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들이 살 곳을 내가 예비하러 간다. 너희들이 살  곳을 예비하러 가는데 내가 가는 그 길을 너희들이 알리라” 이러니까 “가는  곳도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면 주님이 예비하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라” “내가 곧 길이라”  너희들이 영원히 영원히 가고 가고 가도 끝이 없는 길, 관광객들이 가면 ‘하’  보고는, 가다가 보고는 ‘하이구, 좋다. 참 좋다. 그만 여게 살면 싶으다.’ 또 한  자욱 더 가니까 또 세계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새 세계 새 관광을 하면서 새  것을 보고 접하고 느끼면서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고 그렇게 관광인들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곧 길이다” 너희들이 영원히 사는 생애를 내가 준다  그말이오.

“내가 곧 길이다” 영원한 사는 생애를 준다. 살아보니까 좋고 살아보니까 좋고,  천 년 지나가니까 더 좋고, 만 년 지나가니까 더 좋고, 억만 년 지나가니까 더  좋고, 가니까 좋고 더 좋고 더 좋고 더 좋습니다. 그곳이 너희들의 살 곳이라.

어데? 너희가 사는 데는 죄악 투성이 똥구덩이 들어 가지고 살아. 너희들은 똥구덩이  속에 살아. 이런데 차차 차차 똥구덩이가 이제 맑아집니다. 맑아져서 차차 차차  죄가 멀어지는 세계, 죄가 없는 세계, 점점 깨끗한 세계, 사망에서 천리 만리로  점점 사망이 멀고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세계, 사망이 멀어지는 세계, 생명으로  점점 충만해지는 세계, 옳고 옳고 바르고 바르고 깨끗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진실하고, 껍데기 사랑에서 더 사랑, 더 뜨거운 사랑, 더 진실한 사랑, 더 뜨거운  사랑, 더 참된 사랑, 호호 양양해. 들어가면 무한해.

“내가 가는 곳에 길을 너희가 알리라” “어떻게 가는 곳도 모르는데  알겠습니까?” “내가 가는 이것이, 내가 가는 이것이 곧 너희들이 걸어오도록  내가 앞장 서서 지금 내가 걸어가는데 이것이 가장 행복된 길이다.” 땅위에서, 땅위에 모든 피조물이 많이 있는데 이 피조물 가운데에 누가 제일 좋은  길을 가고 있느냐? 제일 좋은 곳을 찾아가고 있느냐?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레가 낫고, 젊어서보다 늙어서가 낫고, 늙어서보다 죽을 때가 낫고,  죽을 때보다 죽고 나서 부활할 때가 낫고, 부활할 때보다 심판 때가 낫고, 심판  때보다도 영원 무궁이 갈수록 좋아. 갈수록 좋아.

“내가 가는 곳에 길을 알리라” 내가 곧 길인데, 내가 길인데 너희들이 인생의  정로를, 생명로를, 행복로를 걸어가도록 내가 지금 그 길 뚫느라고 애를 쓰고서  길을 만드느라고 애를 쓰는데, “내가 곧 진리라” 이것이 진리라.

조물주, 자존자, 주재자, 주권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영계나 물질계를 다  만들었는데. “진리라” 그분의 뜻이라. 그분의 뜻이라. 절대자 주권자 대주재자  그분의 뜻이 계시는데 그분의 뜻을 어겨서 어떤 자가 살아나? “그분의 뜻이라”  그분의 뜻에 딱 들어맞게 이렇게 “그분의 뜻이라” “진리라” 조물주 그분의 뜻이라. 그분의 뜻이 그러면 한 번 나오고 맙니까?  그분의 뜻이 천년 만년 억만년 줄줄줄 그분의 뜻이 나옵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뜻은 진리인데 그 진리는 다 산 것이요 무한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딱 연결시켜서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여서  조물주 대주재 그분과 뜻이 분열되지 안하고 그분과 이질이 되지 안하고 그분과  뜻에 딱 들어맞는 그 길을 지금 가도록 내가 하고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생명이라 말은 조물주, 자존자, 주재자, 주권자  이분하고 둘이 아니라 하나는 머리고 몸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분과 딱 하나되는  그 생애라. 이러니까 여게는 죽음이 없어.

“내가 가서 너희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리라” 이 속에는 무한하지마는 껍데기로  말하면 너희들이 죄없는 세계에서, 사망 없는 세계에서, 곡하는 것 아픔이 없는  세계에서, 마귀 없는 세계에서, 거짓이 없는 세계에서, 시드는 일이 없는 세계에서,  쇠하지 않는 세계에서 ‘아이구 좋아라’ 그까짓 것 암만 미인 미남 해도 그까짓  것은 며칠만 있으면 그만 쭈글쭈글하고서, 쭈글쭈글하고서, 뭐 안 늙으려고 애를  쓰지마는 그만 쭈글쭈글합니다. 그만 송장이요. 제까짓 게 암만 예쁘다 해도  송장이라.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거게는 장생 불로다, 늙지 않는다, 쇠하지  않는다, 생명이 다 하지 않는다, 청춘이 다 하지 않는다, 쾌락이 다 하지 않는다,  영광이 다 하지 않는다. 갈수록 점점 풍성하고 점점 충만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이런 세계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지금,  내일 준비는 오늘 있고, 다음 달 준비는 이 달에 있고, 늙어서 준비는 젊어서  있고, 내세의 준비는 금생에 있고, 영원의 준비는 현실에 있는 이 도리를  너희들에게 가르쳤다 하는 말입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예비하면”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 열여섯 가지 구속을 주님이 다 준비해서 이루시고 “내가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하는 이 예비하는 곳은 이제 말한 대로 그런 완전하고 영영하고  불변하고 생명과 평강과 진리와 사랑과 진실로 충만한 그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서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내가 가서 다시 와서” 간다 말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은 준비하는  것이요,  또 부활하셔 가지고서 다시 하나님에게 신인양성일위로 승천하시는 것은  이제 가시는 것이요,

이래서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니까 “나를  만지지 말아라. 내가 아직까지 아버지에게로 가지를 못했다. 제자들에게 가서  말해라.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내 아버지, 너의 아버지께로 내가 지금  올라간다고 가서 소식을 전해라. 갔다가 모든 이 대속의 일을 완료를 하고 난  다음에 내가 다시 오겠다.” 이래서 “세상은 나를 다시 보지 못하지마는 너희들은 잠깐 후에 나를 다시  보리라” 세상은 왜 보지 못하느냐? 세상은 그들은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산 것을 어떻게 봅니까? 그런데, 내가 오는 것은 “내가 살았기 때문에”  그말 무슨 말이요? “내가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신인양성일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는 공간의 제한을 받고  시간의 제한을 받지마는 이 길을 척 걸어서 고개를 넘고 난 다음에는 이런 것이  다 해제된다. 이러기 때문에 잠시 갔다가 내가 다시 오겠다. 너희들이 잠깐 나를  보지 못하나 좀 있으면 다시 보게 된다.

“세상은 보지 못한다” 세상은 죽었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내가 살았는데 죽은  자들이 어찌 보느냐?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들도 사는고로 나를 보게 된다.

그때는 아버지 안에 내, 내 안에 아버지, 너희들 안에 나, 나 안에 너희들 이렇게  서로 상호 내주하는 것을 너희들이 확실히 보고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살았으니까 산 눈이 있으니 보지 죽은 눈이야 볼 수 있습니까? 못 보지. 썩은  눈이 뭘 보요? 마음의 눈도 마귀로 꽉 찼고 그 마음에 양심이 죽었는데 뭐 마음의 눈으로 뭘  보겠습니까? 항상 썩은 것밖에는 못 봅니다. 마음의 눈이 양심이 살면 ‘이것은  망한다 흥한다’ 하는 걸 정평 정가할 수 있지만 양심 없으면 정평 정가를 못  하는 것입니다. 정평 정가도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지마는 영감을 받아서 알면  그는 영원한 것을 다 알아. 알게 돼. 그 아는 것이 주님과 하나가 돼.

“나 있는 곳에 너를 영접하여 다시 있게 하리라” 이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아버지의 집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것이오.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는 것은 진리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영감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참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의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거룩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사랑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모든 성령의 소욕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악한 더러운 마귀의 사욕 육체의 소욕 그런 것 다 벗고 헤치고  들어가서 이제 지금 우리를 데리고 영원히 멸망치 않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인도하시는 이 걸음을 안 따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안  따라가려고 발을 버투고 애를 씁니다. 발을 버투고 애쓰는 그게 뭣입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과 몸이 버투고 애를 쓰는데, 우리 마음과 몸이 주님 안 따라가려고  버투고 애를 쓰는데 마음과 몸 이게 악령, 악성, 원죄 악성, 악습 본죄 이놈에게  끌려 가지고서 이 마음 몸뚱이 이것이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꼬임을 받아 가지고  이렇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점점 악령 이놈을 물리치고, 원죄를 물리치고, 본죄를 물리쳐  살살 우리를 자꾸 벗깁니다. 우리를 자꾸 벗겨서 더러운 것을 벗겨서 차차 차차  벗겨지니까 여게서도 많이 벗겨진 사람 있고, 적게 벗겨진 사람 있고, 하나도 안  벗겨진 사람 있는데, 주님의 인도하는 데에 그놈이 하나도 안 벗겨진 사람은  정반대로 죽는다고 야단치고, 반 벗겨진 사람은 ‘가기는 가야 될 터인데 이 갈라  하니까 고난스럽다’ 이렇고, 다 벗겨진 사람은 그길 외에는 갈길 없어서 좋아서  원하고 원하고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데리고 가 가지고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런고로 세상에서 주님이 사시는 세계를 점령하는 것만치  점령하니까 이 세계를 빨리빨리 점령해서 지금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 안  들어가면 안 돼요, 지금.

지금은 얼마든지 들어가는 시기지마는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서 가는 그 세계는  들어간 것만치 있지 새 세계는 들어가지를 못해. 들어가는 것만치 있어. 그러기  때문에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 줄 몰라요.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알 리가 없지요. “어디로 가시는지”  아버지 집에 가지, 아버지 집에.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그 길은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예수님이 살아가시는, 예수님이  살아가시는 그 생애가 성도들이 걸어가는 길이요 또 예수님 그 대속의 공로가 곧  길이라. 진리라. 생명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는  아버지에게만 생명이 있고, 아버지에게만 진리가 있고, 아버지에게만 인생의  피조물의 영영한 대로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영영한 대로가 있어. 이 대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가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은 나무쪼가리를, 흙덩어리를, 이런 사상을 저런 사상을, 이런 주의  저런 주의,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모든 철학, 주의, 사상, 종교, 그걸로  가지고서 가지를 못합니다. 가지를 못해. 이 세계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해요.

그러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 없다” 그말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지 않는 자는 이 세계에 가지 못한다. 아버지의 집에  가지 못한다 그말은 조물주 대주재가 계시는 그 생명 세계에, 광명 세계, 완전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인데 왜 아버지 집이라 말했느냐? 이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돼. 이분이 근본부터 우리를 낳은 분이라 우리가 거기에서 지음을 받은  창조주였는데, 그분에게 지금 받은 창조주였는데 우리의 창조주였는데 이제  창조주가 우리의 아버지가 됐어.

아버지가 된 것은 첫째 아담은 피조물로 됐지마는 둘째 아담으로 된 것은 우리가  진리로 낳습니다. 영감으로 낳습니다. 하나님으로 낳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아버지라. 지금은 양부지마는 그때는 우리 아버지라.

양부지만, 양부는 상속권만 있는 걸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아버지는 상속권이  아니라 본질 본성 그 모든 것이 신적 요소로 우리가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신적 요소의 우리가 됩니다. 피조물의 요소가 신적 요소 창조주의 요소로 우리가  됩니다. 이런 큰 나라가 있기 때문에 땅의 것을 초개같이 버려. 하나님이 버리게  해 주셔야 버려.

나도 뭐 더러운 것이지마는 그까짓 것 세상이 좋아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그때는  술도가 사업이 조선 사람으로서는 사업은 제일 큰 사업이오. 그 외에 더 큰 것은  없었어. 요새 말하면 이병철씨 사업 하는 그런 것 뭐 금성이니 이런 것 하는 그와  마찬가지라. 이래도 보고 난 다음에 그런 것을 다 당장 포기했어. 왜? 이 세계가  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절대자로 더불어 결합될 수가  없다. 절대자가 계시는 그 세계 가지 못한다. 절대자가 계시는 완전 세계, 무한  세계, 절대 세계, 불변 세계, 참의 세계, 생명 세계, 노쇠가 없는 세계, 변함이 없는  세계, 이런 일이 없는 참 세계 그 세계를 명상해요.

그 세계에 못 가. 그 세계에 가는 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길이라. 또 예수님을 통해서 이 절대자는 우리의 아버지가 됐어.

아버지가 돼. 이런 부자 관계를 가지게 돼요. “없도다”

7절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그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이러니까, “알았고  보았느니라” 이러니까 빌립이 있다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를 참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이래 말했어. ‘아버지를 참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우리가 못 봐서 지금 마음에 지금 답답하고 항상 그저 마음에 짠한데 아버지를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알지 못하느냐” 그 알 리가 없지.

“나를 알지 못하느냐” 가르쳐 줍니다.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였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보이라  하느냐” “보이라 하느냐” 네가 육안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ㅡ이때는  서른세 살쯤 됐는데ㅡ서른세 살 먹는 예수 나만 너희들이 보고 육안으로만  너희들이 나를 보고 너희들이 영안으로는 나를 보지 않는구나. 더군다나 더  영감의 눈으로 나를 보지 않는구나. 지금 너희들이 벌써 진리를 봤기 때문에,  진리를 너희들이 들었기 때문에 진리로 나도 알았고 아버지도 알았고 이  진리에서 영감을 받는 자는 더 똑똑히 나도 보았고 아버지도 보았다.

그런데 너희들이 지금은 “보았다” 그말은 뭘로 봤다 말이요? 육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말이요 뭘로 봤다 말이요? 진리로 봤다 말이요, 진리.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이 참된 지식으로 봤다 말이요, 지식으로. 지식으로 봤는데 지금은  어째 봅니까? 우리가 육안으로 봅니까 지금은 이 진리로 봅니까? 주님을 지금  우리가 눈에 보입니까? 육안으로 봅니까 진리로 봅니까? 진리로만 봅니까  영감으로 봅니까? 영감으로도 보고 진리로도 봅니다.

이러기에 여게서 보이는 주님을 인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를 너희들이  봐라. 여게 또 이중의 이 존재를 보도록 그렇게 지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육안으로, 육의 귀로, 이 육신의 수족으로 보고 듣고  접하는 여게서만 항상 머물지 말고 여게서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음의  눈은 눈 감으면 더 잘 보이요. 마음의 눈으로 보는 데에서, 마음의 눈은 뭘  보느냐? 진리 속에 있는 주님을, 마음의 눈은 그러면 진리로 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계약으로 보는 것이지, 약속으로 보는 것이지. 또 그보다도 양심으로  보고 영감으로 보지.

이래서, 너희들이 육안으로 보이는 그 세계에서 좀 더 깨끗해지고 새로워져  가지고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그 사람이 점점 되어지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그  사람이 차차 자라서 깨끗한 양심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이 되어지고  양심의 눈으로 보는 그 사람이 영감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되어지고, 이러기 때문에 세계를 육안으로 보는 사람 육 귀로 듣는 사람 하지마는 조금 그  높은 차원에서 마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 마음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도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계약의 진리로 보는 사람,  진리로 보는 사람도 눈이 밝습니다. 뭐 진리로 보는 사람도 그거 다 ‘이것은  망한다 흥한다. 이것은 잠깐 있다 없어질 것이다. 저것은 속에 뭐이다.’ 환하게  다 본다 그거요, 다 봐. 영감으로 보는 사람은 틀림 없이 정확히 봐. 정확히  평가하고 정확히 봐.

이래서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믿지 아니하느냐” 이제 주님을 볼 때에 주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하도 가르쳐 놨으니까 볼 줄 알고 보니까 빌립이 보지  못하니까 책망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성경에 문서로 나타나신 주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실상의 주님을 우리가 보고  실상의 주님과 동거 동행해서 영감으로 주님을 만날 때에는 그분은, 저 지난밤에  ○목사 ‘주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는다’는 것, 그 사람이 그래도 좀 깨닫기에  나는 귀해서, 나는 귀해서, 모두 다른 사람 그 뒤에 ‘뭐 그 사람 뭐 누가 저만치  못 깨달았을까니 강단에서 교만하고 어짜고 뭐 큰소리 텅텅 치고’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그날 은혜 받았고 나는 생각하기를 요렇게 애쓰는 사람이 앞으로  계속하면 서부교회 내가 있는 그 강단에 후임을 맡겼으면 싶습니다.

왜? 보이는 이 현상 세계에서만 날뛰지 안하고 보이는 이 육안으로 보이는 그  이면에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세계, 진리로 볼 수 있는 그 고차원, 영감으로  상대해서 사는 그 세계, 그 세계를 그래도 어려도 쪼작거리며 뚫고 가려고서 애를  쓰고, 그곳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그곳을 조금 맛을 봤기 때문에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당장 청해서 두 시간 사경회를 했습니다.

그것 없이 앵무새 모양으로 자꾸 껍데기 보이는 세계, 인간 귀에 고기덩어리  귀에만 들리고 고기덩어리만 움직일 수 있는 거게 있지 안하고 고기덩어리 귀  속에 그 심령에 들려져야 되고 심령에 거게 들어가야 된다.

심령에 들어가는 그 속에 영이 좋아서 뛰놀고 그 영으로 말미암아 그 심신의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영이 능력을 얻고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세계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을 내가 하나 잡았다가 떨궈 버렸습니다.

내가 서 목사를 잡았고 그거 저거가 뭐라 하든지 내 다음에 후임은 이  사람밖이다 이래 생각했는데 그만 하나님이 불러가 데려가서 그만 떨궈 버렸다  말이오. 하나님이 그만 가져가셔 버려. 당신이 뭐 당신 것 가져가니 어떻게 할 수  없고. 도무지 사람이 없어.

사람이 없어서 나는 지금 조그만한 주일학생들에게 기대를 가집니다. 저것이 저런  것은 보면 저 좀 아는데 좀 뭣이 있는 것 같고 뭣 되는 것 같은데 조것들이 언제  자라겠나? 내가 그러기에 저것들이 자랄라 하면 내가 아무래도 십 한 이삼 년  있어야 되겠는데 십 이삼 년을 내가 있으면 그 인계할 수 있는데 그래 될까 이래  생각하는데 그런 종류라. 그런 종류기 때문에 ○목사를 내가 당장 청해 왔다  말이오. 다른 사람은 조롱하지만 나는 좋아합니다.

그런데 인제 거게서 탈선될 길이 아직까지 감감하요. 얼마나, 그렇게 다 나선  사람은 많은데 가다가 요리 삐끌어지고 조리 삐끌어지고 조리 삐끌어지고 그리  탈선돼 가지고서 그래 실패하는 사람 많아. 탈선은 “스스로 섰다고 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는데 하나님의로 말미암지 자기가 된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은 해도 겸손을 가지지 못하면 탈선돼서 그만 실패하기 쉽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 내가 이르는  말이ㅡ내가 하는 말이ㅡ내가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러면 주님 안에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이 주님의 말로 나오고,  주님의 생각으로 나오고, 또 주님의 수족으로 나오고, 이제 보이는 주님 속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계셔서 그 속에 아버지는 주님의 능력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모든 역사가 되셔 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사실을 빌립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도, 내가 보는 내 속에, 내가 건너다 보는 모든 사람들 속에 그 속에 주님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나와 함께 있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고,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고, 나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를 알았고, 나에게 은혜 받는 사람은 아버지에게 은혜를 받은  것인데 너희들이 이렇게 나와 같이 있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여게서, 보이는 주님 속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내주해서 일하신 이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고 요것을 영원 전에 예정하시고 요 일을 꾸며 가지고 요  역사적인 사실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보이는 사람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내주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  저는 장로인데 보이는 장로 속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들었다. 보이는 장로 속에  보이지 않는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 내주하고 계신다. 보이는 목사 속에 마귀  들어 있다. 보이는 목사 속에 하나님 계신다. 저  주일학생이 하는 말은 제 말이  아니고 그 속에 계시는 주님이 하시는 말이로구나. 저 아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제 말이 아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거짓말쟁이 마귀 그놈이 들어 가지고  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알아야지.

이번에 대통령 유세하는 데도 만일 누구든지 거짓말 하면 ‘그 속에 귀신이  들어가 가지고서 지금 역사하고 있구나’ 참말하면 그 속에 이제 ‘안 믿는  사람들이라도 하나님이 주관해 가지고 역사하고 있구나’ 그걸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 10절까지, 오전에는 10절까지.

이래서 여러분들,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으로  인하여서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육안으로 보는 것, 듣는 것, 잡히는 것 하는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에 없어질 것들을 가지고 없어지지  안할 것들을 바꾸어 가져야 됩니다. 없어질 모든 영광 속에 없어지지 안할 영광을  보고서 탐을 내야 됩니다. 없어질 부자 속에 없어지지 않을 부자가 돼야 돼.

이러기 때문에 제가 지금으로 부터 한 삼십년 전쯤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 부산  ○교회, 지금 ○교회는 예배당 팔아버렸어. 팔아버리고 지금 딴데로 갔는데 그  ○교회가 뭣 돼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뭣 돼 가지고 있소? 백화점됐어?  ○교회가 변해서 백화점 됐구먼요. 대구 동성로교회를 팔면 몇십억을 받는답니다.

이러니까 이것 받으면 저 조금 나가면 교회 여러 개를 세우고 몇백 평 사 가지고  세울 터인데 이것 팔아 가지고 가자고 저거 제직들 다 해. 그래 나는 반대했어.

‘하나님이 여기 세웠으면 이것은 이것으로 둘 일이지 팔아 가지고, 너거들이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게 아니라 장사꾼이로구나. 장사꾼은 돈 수지 계산을  맞추지마는 하나님의 영광의 수지 계산을 맞추지 안하고 돈 수지 계산을  맞추는구나.’ 이래 야단을 쳤더니마는 그 안 팔고 지금 현재 있어. 지금 아마  수십억 돼요.

그때에 제가, 하도 책을 써내라고 해서 조그만한 책 하나 써내놨어. 그랬는데  그것이 어데가 갔는지 지금 있는지 모르겠어요. ‘영광을 하나님께’ 하는, 그때  집회 제목이 그것인데 제가 거기 쓰기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양면을 그때  설명하는 그 책을 써놨어. ‘영광을 하나님께’ 그것 뉘가 책자 봤소? 본 사람  있어? 읽어 본 사람 있어? 이 모두 지금 요새 사람이 돼서 못 읽어 봤는  모양이라. 그게 어데 있는지 몰라요.

어짜든지, 없어질 것에서 없어지지 안할 것을 마련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거기에서  영광을 마련하고, 영광에서 영원히 봉사하는, 나 아니면 그들이 죽는 그것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이 왜 주님에게 영광  돌리느냐? 주님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평가적인 가치를 만들라 하는  것이오.

이래서, 다른 것을 없애 가지고 가치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부자를 때려 없애  가지고서 제가 일등 부자 되는 게 아니라 부자를 다 숭상하는데 보다 보다 나은  것으로, 다른 사람이 올라가는 것 끌어내려뜨려 가지고서 자기 올라가는 게  아니라 자꾸 올라가도록 만드는데, 올라가도록 만드는데 모든 사람보다 앞서 쑥  올라가니까 시기도 없고 쟁투도 없고 끌어내룰 자가 없어. 평가적으로 올라가야  돼. 비판적으로 올라가야 돼. 모든 사람이 가치를 따져볼 때 ‘과연!’ 비판해 볼  때에 ‘과연!’ 이래 가지고 가는 것이 우리의 세계입니다. 이런고로 보이는 데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래서, 모든 없어질 것, 약한 것, 더러운 것, 썩을 것, 혈육의 것 이런 것을 심어  가지고서 신령한 것, 없어지지 않을 것, 영원한 것, 온전한 것, 능한 것, 깨끗한 것  그런 것을 마련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가시는  걸음입니다. 오후에는 11절부터 또 증거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여러분들, 모르는 사람은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은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영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치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다. 이런고로 보이는  것을 투자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마련해라. 보이지 않는 데에서 또 더 높은  차원의 가치의 것을 마련해라.’ 하는 것이 주님의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로가 땅에 떨어지면 반드시 땅을 적시고야  돌아가지 적시지 않고는 돌아가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주의 말씀이 한번  선포되면 반드시 결과를 맺고야 끝이 나는 것인 것을 저들이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 불완전 데서 점점 완전한  데로 향하여 향상하고 전진하고 성장하여 가는 이 말씀을 주셨사오니 여기에  참가하고 듣는 남녀노소는 다 이 은혜를 받아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온전해지고  깨끗해지고 점점 강해지고 굳세져서 영원히 영원히 쇠해지거나 낡아지거나  더러워지거나 아프거나 곡하거나 죽는 일이 없는 생생함으로써 자라고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일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역사하셔서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이 은혜를  받아 보이는 거 없어질 걸 보고 상대하지 말고 없어질 것이 없어지기 전에  없어질 것으로써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마련하는 슬기로운 저희들이 다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성도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이 어지럽고 복잡하고 거짓된 세상에서 항상 근심 걱정하고  탐하고 살던 성도들 이제 아버지를 찾았사오니 아버지는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주를 찾았으매 주님의 그 나래  아래서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온 가족들이 주님의 슬하에서  살아 염려없이 평강 가운데서 금생도 내세도 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복을 담뿍  받아 가지고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을 만치 세상에 빛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속에 점점 불붙어서 강하여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다고 말씀하신 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피곤치 않게 일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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