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상대의 2가지 바른 방편

 

1988. 09. 06. 화새.

 

본문: 요 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  어떤 것이 대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어떤 것이 만홀히  여기는 것인가? 대우하는 일도 많고 만홀히 여기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을 하셔서 이 대속의 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고 또 이 구원을 입어 누리는 그 유일한 법칙으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기가 이 구원을 참되게 믿고 이 말씀대로 자기가 힘써  살아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비밀 없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대하는 일이나 또 순종하는 일이나 믿는 일이나  그 모든 일을 참되게 할라고 하는 요 진실히 할라고 하는 요 진실 요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만홀히 여기는 것 중에는 우리가 자기가 알기에 참되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아는 대로도 거짓부리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서 섬길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아주 하나님을 자기보다 무지한 그런 하나님으로 대우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아주 많이 업수이 여김을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지극히 큰 구원은, 자기가 연약하고 인간이 부족해서 진실되이  하나님을 상대하고 이 구원은 진실되이 자기가 믿고 바라보고 요 진실히 할라고  해도 자기가 연약해서 안 된 것은 허물과 실수로 알고 하나님에게 또 잘못된  것을 자복하고, 그렇게 사람이 대번에 완성되는 거는 아니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분은 진실히 대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이것은 알고도 진실한 행위를 할라고  애를 써도 안 되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잘못됐다고 사과할 것뿐이고 또 용서를  구할 것뿐이고, 늘 부족한 것밖에 없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바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벌써 자기대로는 진실히 할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그것과 할라 해도 보니까 안 돼졌으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고  황송해서 늘 하나님 앞에 그저 잘못된 것을 가지고서 두려워 떠는 그것,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아는 거짓부리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해서 뭣을 되리라고, 하나님이  들어 주시리라고, 또 하나님의 이 구원은 하나님만이 하시지 피조물들로는 할 수  없는 이건데,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다  말은 진리와 성령의 능력,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그 대속의 공로의 능력 이것이  아니면 우리 구원은 털끝만한 것도 이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이요  영원이요 불변의 존재들이요 또 능력들이요 지혜들입니다. 그런고로 그것이 하지  안하면 안 되는 구원인데 이 구원을 제가 조작배기 생각 가지고서 사람도, 사람  속이듯이 그렇게 진실없이 거짓부리로 이리저리 꾸며 가지고 이 구원이 되리라고  생라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 중에 제일 업신 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가 대우하는 것은 자기는 참되게 할 라고, 지금  진실되게 할라고 노력하는 것과 또 보고 거짓부리 많으니까 자복하는 것,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진실되게 상대할라고 애쓰는  것과 자기가 진실을 표준하고 사니까 잘못됨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된 걸  주님에게 자복하고 사과하는 것, 이 두 가지만 하나님을 상대하는 바른 상대가  되지 그 외에 자기가 무슨 이거 꾸며 가지고서 하나님도 속이리라 생각하고 그게  또 하나님을 복잡하니까 많으니까 넘어가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우리가 그  거짓된 마음을 가지지 안해야 됩니다.

 여게 보면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라니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유케 한다고  말하느냐?' 항상 거리가 머니까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들이 진실이 없고  자기 주관을 부인하지 안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교훈과 대립이 돼 가지고서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팔고야 말았습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된다.

내가 자유한다 말은 사람이 삐뚤어진 데에 거게 피동되지 안하고 종이 되지  안하고, 삐뚤어진 것에게 종되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 자기가 신앙을 지키는  그것이 진실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자유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그것이 어기게 하는 그것들에게 종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것이 그것이 다가 아니라 믿는 것이 초보요 믿는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단계로 올라가야 되고 암만 믿는다 해도  예수님의 제자 안 되면 소용없습니다. 제자는 주님의 형상을 입어가는 것이  제자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자라 할지라도 또 죄와 피조물에 대해서 자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종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느냐  피조물의 종이 되느냐? 마귀나 뭐 돈이나 사람이나 그거 다 피조물인데. 하나님의  종이 되는 그것이 우리로서는 자유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됐고  하나님의 대속으로 값에 팔린 바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종이 됐으니 지금 우리  자유는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것이 우리 자유요, 우리가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종되지 아니하고 다른 피조물들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종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믿는다 해도 믿는 그것이 차차 소망이 어데 있는고 하니 믿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 실상이 이루어져야 되고 믿는다는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그 결과가 맺지 못했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고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할지라도 자유하지 못하면 그것이 가치 없습니다. 그뭐 암만 제자 돼  봤자 그것을 당장에 다 팔아먹고 말고 다 헛일되고 마는 것이니까. 또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할지라도 자유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자유는 죄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인데 피조물에 대해 자유하는 것인데 우리가 자유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형상을 입었다 하고 예수님을 닮은 그 모든 걸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유하지 못하면 그거 가짜요 거짓부리입니다. 자유하는 것은  모든 이 피조물과 죄악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그런 것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따라서 살 수 있는 그것이 자유하는 것인데 종되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또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의 최고의 목적과 성공은 이미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그것만으로가 다가 아니고 믿으면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그 단계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은 사람들은 아주 존귀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할지라도  자유하지 못하는 자면 언제 예수님의 제자된 그것을 오용을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가리우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그런 결과를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최고는 자유하는 것입니다. 자유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로 살고 칭의로 살고 화친으로 살고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  것이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걸로 살아야, 그렇게 살아야 돼지지 그렇지 안하고 뭐  피조물, 마귀든지, 마귀에게 순종하는 것이나 인간에게 순종하는 것이나 어떤  피조물에 순종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거스려 그것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다 죄요  그거는 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성화돼서 성자라 성녀라 이렇게 칭호를 받을 만치 그런 단계에  나아간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기회에 마귀나 죄나 이 세상  무엇이 와 가지고서 저에게 복종하게 할 때에 거게 복종하면은 단번에 자기  신앙의 일생은 다 팔아 버리고 마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에 최고 절정은 뭐이냐?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유하는 것.

 이번에 제가 이복순 집사님이 세상을 떴는데 그참 귀한 자유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분이 주사도 놓을라 하니까 주사도 그뭐 바늘도 안 들어가고 또 암만  억지로 거석해 봤자 피가 돌지 안하니까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도 한 방울도  먹지는 못합니다. 먹지 못하니까 바짝 말라서 똑 참. 이런 무슨 꼬쟁이에 종이  발라 놓은 거와 꼭 같습니다. 뭐 피부는 있지마는 근육이라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프기가 뭐 굉장히, 속에 식물이 안 들어가면 육체라 하는 것은 바로  썩는 것입니다. 이 산소 안 들어가고 식물 안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 그만  썩어집니다. 사람들이 뭐 성한 사람이라도 아침으로 새로운 그 물질이 들어가지  안하면은 그만 속에서 썩는 내음 납니다. 또 속에는 벌써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산소가 들어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이 굉장하고 고통 중에는  아무리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죽음의 고통이 최고의 고통입니다. 뭐 자기가  고문과 고형을 어떻게 당한다 할지라도 죽음만치는 고통스럽지는 않은 것입니다.

죽음이 최고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렇게 심한 고통이 있지마는 자기는, 진통제를  놓을래야 놓을 수도 없고 또 진통제를 놓지도 안할라 하고서. 이랬는데 그렇게  최고의 고통이지마는서도 그 고통이 그 사람의 기쁨이나 그 사람의 감사나 그  사람의 그 사랑을 억누르지를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게 아주 옆에서도 보면 참 못 견elf 만한 고통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 얼굴에 기쁨과 감사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이  요동치를 안했습니다. 옆에 사람이 보고 너무 되게 아픈 것 같고 아프다 소리 안  하고 안면은 그렇지마는서도. 이럴 때는 아마 진통이 심한가보다 이라면은  웃으면서 그거 참 뭐 굉장한 그 속에서 그 기쁨과 감사가 뭐 막 충만해서  겉어머리 나오는, 주름살 하나 또 피부 하나에서 어떻게 기쁨과 감사가 넘치면서  주님이 나를 칠보단장시킬라고 그란다고 하면서 그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을  봤습니다. 또 어떤 뭐 사람이 많이 복잡해도 온 사람마다 그에게 자기의 그  신앙으로 기쁨을 나눠주고 감사를 나눠주고 주님 한 분으로써 만족한 그것을  나눠 줄라고 애를 쓰고 또 그 부탁을 하고, 그분 말하기를 그 옆에 사람이 모두  기뻐하는 걸 보고서 부럽다는 그런 말 어떤 사람이 하니까 '부러우면 됐어요.

부러우면 이 기쁨은 주님의 기쁨이요 곧 나의 기쁨이요 여러분들의 기쁨이기  때문에 이거는 부러워하면 다 돼요. 좋아하면 돼요.' 이라면서 또 나중에 말하기를  '부러워하기만 하면 안 됩니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 것을 만드는  것은 평소에 만든 대로 됩니다.' 그라고 또 '기쁨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감사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소망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것을 뺏기지 말라고 부탁을 하더라고.

 그 죽음이 내가 보기에는, 제가 성자의 어떤 전기에서 보고, 그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잡아서 물소 가죽에다 넣고 꿰매 가지고서 나무에다 달아 놨는데 그래  물소 가죽은 그게 나중에 오무라지면 딱 오무라져서 속에 뭐 아무것도 빈 데가  없이 딱 오무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안에서 자꾸 햇볕이  쪼우니까 그 물소 가죽은 아주 그 굳센 것이기 때문에 넣어 놓으니까 사람이  차차 차차 조여서 피가 다 나옵니다. 자꾸 피가 다 조여서, 이 햇볕에 조여서 피가  나오는데, 나오는데 그 밑에 가서 이 사람들이 들어 보니까 감사와 기뻐하는 그  기쁨에 넘치는 감사, 또 만족하고 그와같이 되는 것을 어떻게 기뻐하고  '하나님이여 나에게 어떻게 날 이렇게 대우하십시까?' 하는 것으로써 기뻐하는  그것을 그 들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렇게 기뻐하고  감사하다는 그것을 옆에 본 사람들이 기록해 놓고 그 사람들이 다 거게서 감화  받아서 예수 믿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것이 고통에 자유.

고통에서 자유하는 사람.

 뭐 신사참배 그런 것은, 그런 것도 내나 그 신사참배에서 안 하고 있는 그  사람이 자유하는 사람이지 그 신사참배가 오니까 어데로 피해서 도망간 사람도  자유한 사람이 아니요, 또 아무리 고생을 해서 육 년 동안인데 육 년 동안 있다가  마지막에 다섯 달 남겨 놓고 그만 항복하고 나온 그 사람도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오.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크고 작은 모든 악령의 역사, 죄악의 역사 그 역사에게  피동되는 것은 그것은 종되는 것이요 그거 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자유라는 이것은 벌써 피조물의 통치권을 가지는 것이요, 그 피조물의  중보자의 권세를 가진 것이요, 또 피조물의 그 중보자 곧 하나님의 시은의 기관이  되어지는 그 증거인데 이 자유는 우리가 자유할 수 없어. 우리는 범죄하지 안할  수 없다 말입니다. 이거 자유하는 것은 다만 진리가 자유케 해 주면 자유하고 또  주님이 자유케 해 주면 자유한다. 이 자유하는 것은 진리와 주님 이 둘의 능력이  아니고는 자유 못 합니다.

 이 두 가지, 둘의 능력이 도와 줘야 되는 것이니 두 가지 능력이 도와 줘야 되는  그 도움을 받는 데에는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되겠고 진리가 뭐인지  진리를 진리로 대우를 해야 됩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도 알아야 되겠고 진리에  대한 권위도 알아야 되겠고 진리에 대한 역사도 아는 그것이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이 진리는 지극히 작은 진리라도 영계나 물질계 모든  피조물보다 무한히 큰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에 지극히 작은 진리 그 진리와  모든 피조물 전부와 그 비중이 같을 수 없고 그 세력이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 진리를 진리로 알고 모든 것 속에는 진리가 역사해서 그 김일성이도  진리가 그 속에 역사해 가지고서 하고 있고 모든 건 진리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의 자체의 능력과 진리의 활동의 범위와 진리가 주관하는 그 모든 것을  볼 때는 '나는 만유시요 곧 만유 안에 계신다' 나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는  말씀, 그대로 주님이 발표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알아야, 진리를 진리로 대우해야, 또 진리를 진리로  상대해야, 그분이 그것이 제일 큰 그 능력을 가지고서 계신 분인데 그 인격은  없습니다. 계신 존재인데 그와 나와 동행할 때에 피조물은 거게 지음받은  것들인데 그와 나와 하나되어 하는 그자를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인자가 너를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그러니까 진리가 자유케 하는 이 자유를 얻은 자에게 인자가 또 도와서 자유케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여게는 거짓부리라 하는 거는 용납을 못 합니다.

거짓부리는 안 됩니다, 모두 우리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그분을 향한 생활이기  때문에 거짓부리라 하는 것은 그분을 그렇게 매수할 수도 없고 유혹할 수도 없고  이용할 수도 없고 이러니까 거짓부리는 주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그 은혜를 자기  은혜로 이렇게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 생활에는 거짓부리가 제일 어리석은 일이요 자살하는  행위요 무지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진실과 주님 앞에 용서받는 것, 진실과  용서받는 그 둘로 걸어가지 그 외에 딴걸로서는 걸어가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장례 지냈는데 비가 오다가 어제는 뭐 내가 직접 안 들었고 누가  태풍이고 폭우 온다 했는데 그 비가 그때는 마침 장례 할 때 안 와서 장례를 잘  지냈습니다. 이랬는데 어제 장례 지내는 데에 아마 하나님 보내니까 사람 많이 올  것 같아서 우리는 그 버스는 열다섯 대를 하고 도시락은 천 개를 맞췄는데 아마  천 개가 거의 다 되고 모자라지 안했나 그런 생각 듭니다.

 시월부터는 기도록에 기록되는 것이 구역별로 기록되기 때문에 기도록에 등록한  사람은 자기 이름 옆에다가 구역장 이름을 기록하기를 부탁합니다. 기록해야 이제  시월달부터는 그 구역별로 해서 구역장이 그래 좀 권유하고 해 가지고서 더  힘쓰도록 그래 할 것입니다.

 이라면 누가 말하기를 구역별로 해 가지고 경쟁을 시켜서 이렇게 한다 그거  조롱하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그 조롱은 하나님 조롱입니다. 선을 격발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을 격발케 하는 거는 좋다 했습니다. 너거 구역에서는 다섯  명이 기도했는데 이 구역에서는 여섯 명이 기도했기 때문에 이거는 일등이다  그래 표창을 하고서 이래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데 제가  어떤 존재라고 '에, 그거 목회하면서 사람을 이렇게 시기심, 또 적개심, 이 무슨  서로 투쟁심, 비교심, 뭐 이런 것을 충격해 가지고서 목회를 한다.' 하는 그  조롱하는 자는 내가 내 조롱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이기 때문에 어서  회개를 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떻게 할 터이니까 자기 이름을 다 기록하고 어쨌든지 우리는 횡으로  종으로 양사방 자기를 걸어매서 자기를 간섭하고 자기를 걸어매서 꼼짝하지  못하게 걸어매는 것을 많애야 요동치 안할 터이니까 자기가 걸어매는 일을 자꾸  만들어서 그 참에게, 바른 것에게 걸어매도록 애를 써야 되고 또 자기의 잘못은  필연 이런 것이 조롱하고 조롱할 그 모든 비를 지적할 것들을 많이 자기가 자꾸  만드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비를 지적할 걸 안 만드는 게 지혜 있는 게  아니고 만드는 게 지혜 있고 또 비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그것을  많이 만드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걸 피할라 합니다. 그게 자기  유익되게 하는 것이요 좋게 하는 것이요 나쁘게 하는 것 아닌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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