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세상 사랑

 

1988. 7. 30. 토새벽.

 

본문: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강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저 지난 금요일밤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거게 계속해서.

들을 때에 잘 듣고 잘 구분을 해야 합니다.

 지난밤에 O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는 듣기는 좋고 그럴듯하지마는 속에  진짜 알맹이를 뺐습니다. 제가 그 설교 그전에 할 때에 죄악이라 말은 조금밖에는  안 쓰고 거게서 형체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사상 주의 또  과학 철학 종교 이런 것들의 해독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 무저갱에서 나왔고 또 모든 인간의 욕심에서 나왔는데 형체를 가지고  나온 황충이 같은 것이 나왔어요. 황충이가 거기 나왔는데 고것은 그런 거  가리키는 거니까 바로 그 황충이는 불교가 황충이입니다. 공산주의가  황충이입니다. 과학 만능이라는 과학이 황충이입니다. 또 모든 철학들이  황충이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의 능동적인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는 그런 모든  것들을 다 가리켜서 그렇게 상징한 것인데 그것을 하나의 죄로만 이래만 해  버리면 그런 것은 다 빠져버립니다. 그것을 죄로 만하면 곧 불교면 불교, 또  무신론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을 배격하는 것이 그게 그만 빠지기 때문에 외나  알맹이 싸움이 없게 됩니다. 그런고로 들을 때에 잘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과 해와를 상대할 때에는 어떻게하나님이  상대하셨는가?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으셨고 사랑으로 상대했습니다.

 상대했는데, 그때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신 사랑은 무죄의 사랑입니다.

무죄의 사랑. 죄가 없는 사랑입니다. 또 무의의 사랑입니다. 의도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죄가 없는 것뿐이고 또 의가 없는 것뿐이지 불의는 아닙니다. 또 하나님과  그렇게 그저 원수됨이 없는 그런 사랑이오.

 그랬는데, 그 뒤에 배암이 와 가지고서 아담 해와를 꾀워서, 꾀울때에 뭘로  꾀웠느냐 하면 제일 처음에 하나님을 훼방하는 훼방으로 꾀웠습니다. 훼방으로  꾀우고 그 다음에는 이간을 붙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헐고 깎는 것, 하나를 훼방함으로 자기를 높이려는 것, 하나를  훼방함으로, 하나님을 훼방함으로 그 아담 해와를 높이고 하나님을 훼방함으로 또  자기를 높이게 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과 아담 해와와 그 사이를 벌어지도록  이간을 붙인 그 간교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배암의 사랑은 속에는 자기를 나타내서 자기 것을 삼기 위해서 자기것 삼으려고  하는 그것을 치켜 올리고 근본 소속해 있는 하나님을 헐고 깎음으로 자기와  사람을 높이고 이래서 훼방하는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좋지 못한 일을 했다는 그런 것으로써 이간을 붙이는 그런 간교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한 그 사랑의 알맹이는 뭐였던가? 그것은  죄도 없고 의도 없고 하나님과 불목도 없는 그런 사랑이요, 또 배척을 당할 수  있는 사랑이요, 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배암이 훼방하고 이간 붙이는  그 간교를 가지고서 그만 변질이 된, 변질된 그런 배암의 사랑을 줬습니다.

 배암의 사랑은 알맹이가 어떤고 하니 배암의 사랑은 속에 알맹이에 죄가 들었고  또 불의가 들었고 또 하나님과 원수되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것이 속에 든 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배암의 사랑으로 바꾸어 가진 그것이 곧 인간의  사랑이요 오늘 세상에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사랑입니다.

 이러니까, 외형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 세상 사랑이 외모는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아주 다릅니다. 알맹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속에 사죄가 들었고,  무죄는 사죄가 아닙니다. 무죄라 말은 죄가 없다 말이요, 사죄라 말은 죄 있는  것을 죄를 없앴다 말이오. 그래서 사죄가 들었고,  처음 아담을 사랑하신 것은 무죄의 사랑이요, 또 무의의 사랑인데 둘째 아담에게  하나님이 주셔서, 둘째 아담에게 주셔서 둘째 아담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죄의 사랑이요 의의 사랑입니다. 의가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처음 사랑과  둘째 사랑, 첫째 아담이 받은 사랑과 가진 사랑 둘째 아담이 가진 사랑은  다릅니다. 다르고, 또, 사랑이 처음 사랑은, 버릴 수 있는 사랑이요 또 인간이 변질시킬수 있는  사랑이요, 둘째 아담의 사랑은 인간이 변질을 못 시킵니다. 버리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둘째 아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속에 알맹이가 뭐이  들었는고 하니 사죄가 들어 있고 또 칭의가 들어 있고 화친이 들어 있는 이  사랑입니다.

배암의 사랑은 서로 - 고린도전서 13장 1절 이하에 말하는 것같이 - 그렇게 오만  것을 다 희생도 하고 사랑도 하고, 상대방을 사랑도 하고 또 희생도 하고 또  주기도 하고 봉사도 하고 또 행복되기를 원하기도 하고 이러니까 껍데기는 꼭  같은 것같이 그래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껍데기도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주고 또 상대방이 진정  행복되기를 원하는 그 사랑이니까 껍데기는 같습니다. 껍데기는 같이 보입니다.

같은 거는 아니고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알맹이가 죄가 들어 있고 또 불의가 들어 있고 또 하나님과  절단된 그 절단이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배암이 준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버려서, 하나님의 사랑은 알맹이가 무죄였고,  의는 아닙니다. 요 말을 자꾸 이래 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같은 말로 이래 듣기  때문에 그만 한 그만 도매금이 돼 가지고 안 된다 그거야.

 그때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신 것은 사죄의 사랑이 아니고, 죄는 없는  사랑입니다. 죄는 없었는데 배암이 와 가지고서 속에 알맹이를 제것을 줘서 죄가  알맹이가 됐습니다. 또 그때 불의는 없었는데 그만 불의를 알맹이로  만들었습니다. 그 하나님 법을 어기는 불의를 알맹이로 만들었고 또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하나님과 절단이 돼 가지고 원수되는 그런 알맹이를 만들었습니다.

그 배암이 만들 때에는 어떤 방편을 가지고 만들었느냐? 훼방 가지고 만들었고,  또? 이간 가지고 만들었고, 간교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이거가지고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야 되는데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랑은 그 속에  무죄가 아니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무죄의  사랑입니까 사죄의 사랑입니까? 무죄 사랑과 사죄 사랑은 아주 틀립니다.

무죄 사랑은 죄가 없다 말이요, 에덴 동산에 있던 아담 해와는 그는 의도  없었습니다. 또 그가 그저, 죽었다가 살아난 그게 없습니다. 생명도 그저 살아  있는, 생기를 주어서 하나님과 연결됐지, 연결됐지 끊어졌던 것이 연결된 것  아니오. 또 살아난 생명 아닙니다.

 살아난 생명이 아니요, 끊어졌다 연결된 연결이 아니요, 또 불의가 됐다가 의가  된 것 아니요, 죄가 있다가 죄가 없는 사죄된 것 아닙니다. 그래서, 자꾸 그렇게  좀 듣기에 까다롭지 마는 첫째 아담이 가졌던 거와 달리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래서, 둘째 아담에게,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랑해 주신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외부가 있고 또 우리를 위해서 봉사한 봉사가 잇고 우리 위해서  희생한 희생이 있고 우리를 영원히 행복되기를 바라서 계속 노력하는 그 노력이  있는 이 사랑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이거는 변치 않는데, 그러면 이 사랑의 꺼풀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을 간단으로 말하면은 사죄,  칭의, 화친 요 세 가지 내용을 가진, 요 세 가지 본질과 본성을 가진, 요 세 가지  능력을 가진 요 사랑이 껍데기를 만들었습니다.

 요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진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서 내려와  가지고서 요 사랑이 들어서 꺼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껍데기가 생겨져 가지고서 알맹이가 생겨진 게 아니고 알맹이가 껍데기를  만들었습니다. 요것도 아주 잘 구별해서 깨닫지 안하면 헛 일입니다.

 모든 거는 다 껍데기가 생겨져 가지고서 알맹이가 생겨지는 것인데요 사랑은  알맹이가, 알맹이는 영원 자존한 사랑인데 영원 자존한 이 사랑이 껍데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서 도성인신 하셨고, 또 양성 대속을 하셨고, 또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부요를 다 우리에게 주었고, 또 영원히 우리로 하여금 생명과  평강을 누리도록 하려는 이 소망을 우리에게 가지시고 당신이 역사해 가지고 된  것입니다.

 이래서 잘못하면, 왜 이 말 내가 하는가 하면은 처음 아담 해와가 가졌던 그  껍데기 사랑에 하나님이 알맹이만 바꾸어 넣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나중에 생각하다  보면은 잘못하면 그리 탈선되기 쉽기 때문에 처음 아담 해와가 가졌던 그 사랑에  알맹이만 사죄, 칭의, 화친으로 바꾸어 넣었다.

이러면, 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 말하자면 혈육 사랑, 또 동류 사랑, 모든 이성  사랑 그런 사랑의 껍데기나 하나님의 사랑의 껍데기나 그 껍데기는 같이  보입니다. 같이 보이나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 알맹이가 들어서 껍데기를 만들었고 이제 세상  사랑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변질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했습니다.

버렸습니다.

버린 것은 그것은 처음에는 의는 아니지마는 또 죄도 아닙니다. 죄도 없고 의도  없고 또 그 영생하는 생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생명이-생명은 화친인데 -없었던  이것을 배암이 훼방과 이간과 간교의 작용을 가지고서 속에다 제가 가졌던 죄를  밀어 넣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배반케 하는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지고서 선악과 먹으라 이래  가지고서 죄를, 죄는 하나님께서 무죄 주셨는데 무죄를 버리고 제가 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쫓아냈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쫓아내고 배암의 것을 받아들여 가지고서 된 것인데 둘째  아담이, 오셔 가지고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내나 껍데기는 같이 보입니다. 저  사랑도 사랑하고, 정욕의 사랑도 사랑합니다. 그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또 희생하고 또 주고 또 진정 상대방이 행복되기를 원하고 이런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니까 뭐 이 세상 사랑이나 하나님의 사랑이나 껍데기는 꼭 같다  이렇게 볼 것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요 마귀란 놈이 자꾸 삐뚤어지게 만들라고  하기 때문에 처음에 아담에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랑에 그 알맹이만  변질됐지 껍데기는 그대로 있는 그것을 둘째 아담이 와 가지고서 껍데기는 그  껍데기 쓰고 알맹이만 딴 걸로 각각 바꿔 넣었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을  내가 말합니다.

그거 그게 아니고, 둘째 아담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이 사랑함으로  알맹이가 생겨지고, 또 희생을 함으로 생겨지고, 또 줌으로 생겨지고, 상대방이  행복되기를 원함으로 생겨지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인간의 사랑은 그것이  없으면 없는데, 그것을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이 차차 형성되어지고 또  희생을 함으로, 젖을 자꾸 먹이고 자꾸 이래 함으로 희생함으로 형성되어지고, 또  줌으로 형성되어지고, 또 그게 자꾸 두고서 이게 행복되기를 원한다, 행복되기를  원한다, 자꾸 행복되기를 원한다 이리 됨으로써 그것이 형성돼집니다. 이 세상  사랑은 말이오,  형성되어지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사랑인데 그 사랑이 뭐인가? 이 범죄해서 이제무죄가 유죄가 됐기 때문에  유죄를 이 사죄로, 유죄를 사죄로 만들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 또 이 모든 불의가  된 것을 그것을 대속으로 의를 만들려고 하는 사랑,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속으로 화친을 만들라고 하는 이 사랑 그 자체가 하늘에서 역사해 가지고, 그  사랑 자체가 하늘에서 역사했는데 역사했을 해에 처음에 무슨 역사를 했는가  하면은 그 역사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박한 그 역사하는 것이,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요 노력이요, 그 다음에 또 이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예정됐고, 이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창조했고, 또 이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도성인신 했고, 또 이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양성의 사활의 대속을 했고, 그러면  대속이면 사죄, 칭의, 화친을 줬다 그말이오. 대속을 했고, 이 사랑이 역사해서  중생하게 하고, 또 이 사랑이 역사를 해서 또 뭣하게 합니까? 녜, 이 사랑이 이제  진리로 영생케 하는 이 믿는 믿음 생활을 또 일으킵니다. 믿음 생활을 일으켜서  믿음이 우리에게 시작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이 시작될 때에는 믿음이 알맹이입니까 믿음 속에 알맹이가  또 있습니까? OO, 믿음 속에 알맹이가 있어 없어? 믿음이 알맹이야 믿음 속에  알맹이가 있어 없어? 뭐? 그거는 믿음의 대상인데. 그 속에 영생이 있습니다.

믿음 속에는 영생이 있어요. 중생된 영생이 있어요.

 우리가--요걸 잘 알아야 돼요-- 믿어서 노력을 해 가지고, O 목사님, 잘 들어요,  이런 거 잘못 들으면, 잘 듣고 책임을 지고 뒤에 전해야돼.

 사람이 믿음이 자꾸 생겨져서 믿음 행위로 말미암아 이제 중생도 하고 영생도  되고 된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결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감리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속에 알맹이부터 돼 나와요. 돼 나와서 저 하나님의 사랑이 쭉  내려와 가지고서 이제 대속을 우리에게 입혔고, 대속을 입힌 그것은 중생되기  전에 입혔습니까 중생 후에 입혔습니까? O목사님, 중생되기 전에 입혔습니다.

후가 아니고,  중생되기 전에 대속부터 입혀 놓고, 그거 안 입히면 중생을 못 시켜. 대속부터  입혀 놓고 그 다음에는 중생시키고 중생시킨 자를 이제 진리와 영감으로 신앙  생활하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부름을 입는다. 빼심을 받고 부름을 입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제,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사랑하라'이랬으니까 그 믿음이  먼저입니까 사랑이 먼저입니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하라고 했으니까  믿음이 먼저입니까, 사랑이 먼저입니까? 자, 내가 한번 손 들라 해 보지.

 그라면, 믿음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또 사랑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아마 좀 각도가 달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묻는  대로는 다 틀린 답을 했는데.

 우리 기독자들이 사랑하는 사랑은 사랑이 먼저가 아닙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사랑합니다.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사랑이 먼저 입니까  믿음이 먼저입니까? 사랑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열매요. 믿음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믿음을 통해서  사랑이 우리에게 옵니다. 이래서 속에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 대속 이  대속이 만든 사랑이,대속이 만든 사랑이 사랑이지 이 사랑이 대속을 만드는 것  아닙니다. 또, 이 대속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그에게 사죄를  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고 칭의를 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화친을 시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지 사랑함으로 사죄, 칭의, 화친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요거 아주 요것이 혼돈되기 쉬워. 이래서, 뭐 중생된 영은 범죄 안  한다 한다 하는 그것은 이 보다도 더 아주 밑에 일 학년 정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주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쉬우나 이제 이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구별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래서, 그러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이 우리 서로 성도끼리 사랑하는  사랑,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하는  이 사랑을 함으로써 대속이 이루어지느냐? 대속이 내것 되느냐? 대속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 대속 자체가 지금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도록 그렇게  역사하느냐? 어느 것이 먼저냐 그말이오. 어느 것이 먼저며 어느 것이 능동이고  어느 것이 피동이냐 그말이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모두 다 심령이 어두워  가지고서 있기 때문에 전부 혼돈이 돼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있어.

 지난밤에 O 목사님이 설교한 것도 그전에 내가 설교한 것을 그거 원고를 좀  봤으면 그 죄악이란 말은 내가 한두 번 밖에는 안 썼는데 안 쓰고 전부 지금  인간의 허망해진, 그거는 맞았어. 열쇠로 여니까 인간의 마음이 다 허망해지는 자,  로마서 1장에 있는 말씀같이. 허망해지니까 허망해지는 거기에서 인간들의 사욕이  생겨졌습니다. 허망한데 거게서부터 인간들의 사욕이 생겨지요. 그러면 사욕  속에서 나은 황충이라 그말이오. 사욕 속에서 나온 황충이.

 이 황충이는 뚜렷이 형체를 가지고 지금 능동으로 역사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게  지금 아주 그' 생기기가 전쟁의 말같이 용감스럽고, 또 그렇게 사자의 머리 같고  이래 모두 돼 가지고 있는 그게 뭐이냐? 거게서 나온 그 모든 사상들, 주의들을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그것이요, 곧 모든 이종교들이 다 그것이요, 철학이 그것이요, 과학이  그것이요, 모두 다 이런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망라해서 거게서  황충이가 나왔는데 황충이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는 그것 다 빼버리고 죄  하나로 말하니까 어린 교인들은 알아듣기가 쉽지마는 그래 가지고는 그 나머지기  모든 범위 넓은 그런 것들을 손을 대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대적해 싸우지를  못해요.

이러기 때문에, 이 황충이는 땅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안한, 이  사상에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사상, 성령의 인을 맞은 사상 그 사상 가지지 안한  사람들은 거게 다 절을 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안한 자가-안 할 수 없어, 생명책에 기록된 자  외에는 하지 안할 자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연결돼 가지고 하는 그런  것 아니면 안 돼. 그러기 때문에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모릅니다.

그거 범위가 넓어도 외부적이고 지금 이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주 내부적인데  그저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다 물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그 본성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뭐라 했소? 하나님의 사랑을 뭐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성이시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인데 하나님 한 분밖에는 가지지  못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가리켜서 사랑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윤 영원히 죄가 없어야 사랑이 되지 죄가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까?. 영원히 의로워야 되고. 그러기 때문에 삐뚤어진게 영원히 없고, 죄라는  건 삐뚤어졌다는 말인데. 삐뚤어진게 영원히 없고, 또 하나님의 입법한 그  공심판에 하나님의 입법에 완전이라 인정을 받고, 다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져서 하나님하고 조그만치도 사이 벌어진게 없고 하나님하고 아주 밀접한  친밀을 가진 이것이라야 사랑이라 그말이오. 사랑은 이 알맹이를 가져야 되고  사랑은 이 작용을 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배암의 사랑은, 배암의 사랑은 배암이 만든 것인데 땅에 있는 이  속에 알맹이가 없는 것이 배암 사랑이라. 배암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껍데기는 배암의 사랑이나 하나님 사랑이나 비슷하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  사랑이 껍데기를 만들었고, 사랑이 껍데기를 만들었고, 또 배암의 사랑은 껍데기는  같은데 속에 알맹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랑 가지고서 하나님의 사랑하고  이래서로 교체가 될라 할 때에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 배암의 사랑이 서로  바꾸어질 때에는, 바꾸어질 때에는 둘이 이래 오다가 속에 알맹이가 있으니까.

오다가서 배암의 사랑이 죽고 하나님의 사랑이 배암의 사랑을 잡아먹고서 이  사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같으니까 껍데기에 알맹이만 집어넣으면 된다 요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사랑도 껍데기를 사랑함으로, 네가 복음을 전할라고  하면은 그 사람을 네가 사랑해야 되고 또 희생해야 되고 친절해야 되고 줘야  되고 또 행복되기를 원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런 사랑을  가지고서 차차 차차 속에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그 대속을 그 속에 넣어 줘야  된다.

 그러면, 사랑을 가지고 그 대속을 넣어 줘야 된다. 그 대속이 거게 사랑을  조그매썩 차차 차차 형성시켜서 만들어야 된다.

그러면, 사랑을 먼저 만들어 가지고 대속이 들어가야 됩니까 대속이 들어가  가지고 사랑을 만들어야 됩니까? 사랑을 하고 대속이 차차 속에서 성립돼야  됩니까? 그러면, 이 세상에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 같은 그 사랑을 함으로써  그 다음에 차차 대속을 그에게 주입을 시켜 가지고 넣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이  사랑의 알맹이, 하나님의 사랑은 세 가지가 사랑인데,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사랑을 가지고서 껍데기를 차차, 사랑도  하고 희생도 하고 봉사도 하고 주기도 하고 행복되기를 원하기도 하고.

이 알맹이가 껍데기를 만들어야 됩니까 껍데기를 만들어 가지고서 알맹이를  만들어야 됩니까? 요것이, 껍데기를 만들어 가지고서 알맹이를 만들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은 나중에 알맹이를 못 만들고 맙니다.

알맹이를 가지고서 껍데기 사랑을 만들어야 돼. 알맹이 만들고. 사랑의 껍데기를  만들어야 돼. 껍데기 사랑이 아니고 진짜 사랑인데. 알맹이를 가지고 껍데기를  차차 차차 이렇게 성장시켜 나가야 돼. 그렇지 안하면 안 돼요. 좀 어려운 걸  했는데 가 가지고 돌아가서 잘 좀 연구해 가지고,  그러기에, 배암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아담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랑 또 둘째  아담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랑, 둘째 아담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 그러면,  하나님께서 첫째 아담을 사랑한 사랑, 둘째 아담을 사랑한 사랑, 하나님이 둘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러면, 우리에게는 사랑이 지금 어떤 사랑이  와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첫째 아담의 사랑이 와 가지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은 첫째 아담이 가진 그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랑인데  이 사랑과 둘째 아담이 우리에게 준 이 사랑과 이 사랑이 껍데기는 같고  알맹이는 다르냐? 또 껍데기까지 다르냐? 또 그러면, 사랑을 가지고 알맹이를 만들어야 되느냐 알맹이가 시작 해가지고  사랑을 껍데기를 차차 차차 만들어야 되느냐 이것을 구분을 하면은 여러분들이  잘 알게 될 터이니까 그걸 좀 구별해 보도록 하십시오.

이래서,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때에, 그 사람을 사랑할 때에그 사람을  친절히 하고, 또 화친하고, 또 그 사람에게 봉사하고, 희생하고 그걸 하면서 차차  차차 사죄, 칭의, 화친을 그에게 줘서 이루어지도록 그래하는 전도 방법이 있고,  전도 방법이 있고, 또 그 사람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그에게 주기 위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시작했고, 또 봉사하고, 희생하고, 또 그 상대방이 행복되기를  원하기를 시작했고, 그러면, 처음에 말한 거와 두번째 말한 것이 있는데 전도하는 방편을 처음에 걸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둘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첫째 방법을 사용해  가지고도 둘째 방법으로 교체되는 일이 있기는 있습니다. 마는 잘못하면 교체가  못 되고 탈선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둘째 방법을 취하는 것은 탈선되거나  실패되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거 좀 뭐, 그러면 지금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라, 효성해라, 부모를  공경해라 하는 부모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차차 차차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부모에게 전달이 되도록 그리해야 됩니까 대속이 부모에게 전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을 해야 됩니까? 사랑이 먼저입니까  대속이 먼저입니까? 그런데, 일반 교회들이 말하고 있기를 이걸 꺼꾸로 맞춰  가지고 이래있기 때문에, 꺼꾸로 맞춰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고 되는 것  같지마는 다 그것이 그만 끄트머리가 자꾸 탈선돼 속화되고 맙니다. 내나 그게  결국은 세상화되고 말아.

 왜 이 교회들이 왜 이렇게 속화가 돼 가지고서 이 세상 되느냐? 그거 이게  꺼꾸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시작할 때는 뭐 대속도 그런 것도 있지만  나중에 가서 하다 보면은 그만 그것이 돼 버리고 알맹이는 없어져 버리고 완전히  배암의 사랑으로 바꿔지고 만다 말이오. 배암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할 게 아니라 일단 배암의 사랑을 버려 버려. 버려 버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일단 버려 버려. 일단 버리고 사람 사랑하는 것을 사랑을 없애 버리라.

없애 버리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랑을 네가 가지고서 이 사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역사하는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 돼져야만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것 좀 아주 알쏭달쏭해서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 교계에 나가면은 많은 물의가 있고 평생에 못 깨닫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뭐 중생된 영 문제 그런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오. 그것은 법을  공부한 사람만 해도 그거는 저절로 다 압니다. 이 세상 법만 공부해도 세상 법에  모든 것을 구별해서 따져 들어가는 그것을 생각하면 알 수가 있지마는 이 중생된  영에 대한 것도 이 법을 공부하지 안하고 이 세상 모든 도덕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이런 걸 공부한사람들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잘 오릅니다. 법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말하면 대번 알아 듣소.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옳다 이라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요.

 그런데, 여게 있는 이 사랑 이거는 참 어려운 것입니다. 최고로 어려운것을 지금  요새 내가 말하고 있는데 혹 장생골 가 가지고서 나타나면 증거할란지, 하나님이  증거해 주게 하면 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먼저 꽉  견고히 잡고, 견고히 잡고 또 세상 사랑은 사랑함으로 속에 알맹이를 채우는데,  사랑함으로 알맹이를 채웁니다. 세상 사랑은 사랑함으로 알맹이를 채웁니다.

알맹이 채우는데 그 알맹이는 뭐입니까? 알맹이는 뭐이요? 알맹이는 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 그거 채웁니다. 그거 자꾸 그게 채워져요. 채워지고,  또, 하나님의 이 사랑은 그거 사랑함으로 알맹이 채우는 게 아니고 알맹이가  들어서 사랑의 꺼풀을 입게 됩니다. 알맹이가 들어서 사랑의 꺼풀을 입게 돼요.

 사죄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사죄 때문에 그 사람을 봉사하고 사죄 때문에  그 사람에게 희생하고 사죄 때문에 그 사람에 주고 사죄 때문에 그를 행복되게  하고, 칭의 때문에 화친 때문에 그 때문에 못 참을 것도 참고, 예를 들어서. 그  사람에게 참지 못할 것을 이 사죄, 칭의, 화친 때문에 참는 참음이 있고, 그것  때문에 참는 참음이 있고 사랑함으로 참는 참음이 있습니다. 알맹이 없이 그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참는 거와 이 세 가지 때문에 참는 것, 세 가지 때문에  참는 것은 마지막에 생명과 승리를 이루고 사랑하기 때문에 참는 것은 마지막에  다 죽어 버리고만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이 일을 아주 좀 세밀히 해야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런 것을 말해 놓으면 '좀 명상을 해야 돼요. 보면 아 설교한 거 있으면 노트만  가지고 가 가지고 노트만 자꾸 외우기만 힘을 쓰고 이 명상이 없어. 생각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자꾸 노트만 읽으면 지식만 만들기 때문에 그 사람이  교만해지고 속에 알맹이를 모르게 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명상을 많이  해야 돼요.

 이제 제목을 내 줬으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다르다,  인간의 사랑은 배암의 사랑이다, 배암이 이 사랑을 줄 때에는 훼방과 이간과  간교로 줬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사랑은 저걸 훼방하고 이거 있지 없는 게 없어.

모두 다 가족들도 뭐 다 '뒷집 봐라. 뒷집에 저 김가가 있지 않느냐? 우리는  이가고 그는 김가 아니가?' 김가를 헐어서 대적을 해야 이가 저희들이 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범위가 아주 좁아요.

그러니까, 그 세상 사랑은 방편이 전부 따지면은 훼방이 방편이고 이간이  방편이고, 저거 가족끼리 사랑하고 다른 가족하고는 이간을 붙여야 저거 가족끼리  하나 사랑합니다. 그래 갸처꾜 우리는 뭐 구대 동거니 우리는 가족들이 서로  화목이니, 그까짓 놈의 화목 똥같이 생각하고 아무 가치없이 생각합니다.

 그 화목이 뭐이냐 하면은 그것이 훼방과 이간과 간교 가지고 되어졌기 때문에  속에 이 세 가지 대속이 알맹이와 능력이 돼 가지고 이래 하는게 아니고 전부  인간에게 하기 때문에 저거끼리 자꾸 들어붙으면 죽습니다. 저거 뭐 혈통에,  혈통을 가지고서, 요번에 내가 뭐 어떻게 그거 중요한지. 혈통이 어떻게 중요한지  '진리 진리'해도 진리가 뭐입니까? 진리 그까짓 거는 중량이 한 근를 되면 혈통은  백 근도 넘소.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래 가지고 전부 피 따라가지 진리 따라가 피  따라가지 진리 따라가? 피 따라가지 진리 따라가? 진리 따라가는 게 아니라 피  따라간다 그말이오. 그런 거는 다 죽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거 구별하지 못하면 안 돼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면  제일 인간 가운데 제일 악독이 심한 것이 사랑이요, 인간가운데 생명과 평강의  축복이 충만한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정 대조라, 이 사랑은 제일 못쓸 게 이  사랑이요 제일 보배가 이 사랑이라. 이걸 구별할 줄 알아야 되지, 그러니까 오늘  교회들이 전부 사랑화친이라 하는 것이 배암의 사랑 가지고 전부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주니까 싫다고 다 원수가 되고 대립이  돼, 대립 돼.

 내가 총공회 이 위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줄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원수로 삼는데 마지막에 죽을 때든지 심판대 앞에 가서 보면 알 거라. 저희들이  가 가지고 나가면 어디로 갈 건가?  그런고로, 요 사랑과 사랑을, 뭐이든지 하나라도 똑똑히 알아야 되지 똑똑히  모르면 안 돼.

엊저녁에 그 O목사님 설교했는데 그거 그만 전부 황충이를 죄로만 이래 해  버리면 안 됩니다. 죄가 아니고, 모두가 죄이지마는 거게서 형체를 가지고서  능동적으로 역사할 수 있구로 나타난 것, 말하자면 사상, 주의, 또, 모든 인간의  욕심에서 사상, 주의 요 형체를 가지고서 그러면, 철학도 그게 하나의 사상이요  주의요 또 종교도 그러하고 또 과학도 그것이 하나의 사상이요 주의입니다. 그런  것을 다 망라해서지금 말한 것인데 하나의 죄라고만, 알아 듣기는 쉽지마는,  속에복잡하니까 알아 듣기는 쉽지마는 속에 알맹이 복잡한 거는, 외나 알맹이를  다 빼버려 안 돼. O 목사 그걸 한번 연구해요, 가서. 그게 아니라. 가서 좀 더  보고 거게서 나온 황충이 그것이 바로 뭐이냐 하면은 불교요, 또 회회교요,  마호멧드교 모든 종교들이요, 그게 황충이 그게 과학이요 그게 세상에 과학  만능이라는 과학 만능이요, 그것이 모든 세상에 있는 도덕이고 그 전체 형체를  가지고, 열 뿔, 그게 열 뿔이라, 말하자면. 열 뿔.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으면 앞으로 환난 못 이깁니다.

그라고 자꾸 심령을 밝게 해 달라고 해요, 밝게 해 달라고. 그 어리석은것은  말이지요, 제 꾀뿐인 줄 알고 이래 가지고서, 진실하면 다 이기는데 꾀를 내  가지고 요래조래 꾀를 내면 다 위에 사람은 알아요. 아니까 '저게 저 동기 저  목적을 가치고서 이렇게 사람을 이용을 해 먹고 설득을 시킬라고 저와같이 하고  있다' 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이용을 당할라 합니까? 이러니까 그러면  그만 그 사람에게 끊어버리고 말아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진실한 게, 무지하면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해야 되지 그 복술은 망해요. 이러니까 삼십 분 기도 이거  잃지 말고, 부장들은 계속 깨어서 자기에게 소속한 그 반사, 보조반사들을  기르도록 하십시오.

자꾸 복잡한 걸 피할라 하면 안 돼요. 아주 세밀하고 복잡한 그런걸 자꾸 가져야  돼요. 이러니까 이 설교는 듣기를 싫어해. OO목사가 전화가 왔는데 그것도 듣기가  싫어서 그만 쉽게 말한, 쉬워서 인본주의가 돼야 잘 들어요. '땅에 말을 하니까 잘  듣고 하늘에 말은 듣지않는다. 내가 하늘에 말, 본 걸 너희들에게 말하지마는  너희들이 듣지 않는다. 땅에 말을 하면, 잘 듣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안했소?  이러니까, 요 세밀한 것 자꾸 요걸 다 알아 가지고 확실히 다 알아서 밑구멍을 확  뚫어서 확 통과를 해 버려야, 도통을 돼야 되지 도통이 안 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쉽게만 할라고 하지 말고 복잡한 걸 배워야 됩니다.

공연히 복잡한 건 아니고 그걸 알아야 될, 있어야 될 복잡은 그걸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고 이 껍데기로 이래 하면 안 돼. 어찌 됐든간에 심령이 밝아야 돼요.

이러니까, OOO목사님이 컴퓨터가 뭐 천억인가 된다 하는데 천억이라 하는데 요새  통계에 나오기를 사람이 오 프로밖에는 쓰지 안하고 있답니다. 이 두뇌를 오  프로밖에는 쓰지 안하고 있대, 이 쓰면, 얼마든지 나와요.

그래 나는 또 며칠 전에 어떤 사람에게 말 듣기를 '이 참 이상합디다. 이 아이들은  이거 이게 지금 아이 때는 굳어지지 안하고 이래 있으니까 어른이 이거 성경 백  독 읽는 것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성경 한 번 읽는 게 낫대요. 그 말 놀랠 말  들었어. 어른이 돼 가지고서 백 독 읽는 것보다 어린 아이가 한 번 읽는 것이  낫다고서.

보니까, 어건 아이는 한 번 읽었는데 성경에 이런 거 있다 없다는 거 환하게 다  아는데 이 어른은 암만 읽어도 뭐 몇십 독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서. 이 컴퓨터에  자꾸 찍는 거라. 그런데 어른들은 이거 뭐 컴퓨터를 버려놨어. 전부가 물욕이면  물욕, 명예욕이면 명예욕 이런데 다 한 군데다 다 집중시키니까 다른 건 다  까뭉캐 버리고 그 하나만 발달시켜 놔서 딴건 다 까먹어 버렸어.

이러니까, 요새 성경 공부를 뭐 이백 이십이 명인가 성경 공부 학생들이 나왔는데  그런 학생들 이 컴퓨터 새 것이거든 자꾸 거기는 자꾸 집어 넣으면 돼요, 뭐.

천억이나 되니까 암만 집어 넣어봤자 그거 다 못 집어넣어. 그러니까 자꾸 이  어릴 때는 자꾸 배우면 되는데 이 학교공부 시키는 거 그거 여러분들 속지  말아요, 학교 공부시키는 것 아이들은 한번씩만 주입만 시켜 버리면 돼요. 주입만  시키면 되는데 그걸 하나 공부하는 거를 자꾸 복습을 해서 그것만 하니까 이  컴퓨터 찍 해야 세 개밖에는 안 쓴 놈의 걸 세 개 그걸 자꾸 이래 더 쓸 게  아니라 자꾸 딴걸 자꾸 이래 해서 그저 백 개 넣으면 백 개 컴퓨터 쓰고 만개  넣으면 만 개 쓰고 천억 쓰면 천억 쓰고 자꾸 쓰여져. 이 참 아주, 그러니까 어릴  때에 외우는 게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나이 많은 박사들은 모르는데 어린  아이들은 잘 들어.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러니까, 우리가 뭐 여기 그것도 아주 좋은 말 들었어. 오 프로밖에는 못  사용하고 있다. 그 컴퓨터를 천억이라 하니까 천억이 있으니까 기억을 몇 개 할  수 있어? 기억을 몇 개 할 수 있어? OOO. 천억을 기억할 수 있어. 천억을 기억할  수 있어.

이러니까, 뭐이든지 옳은 것만 집어 넣으면 되는데 또 이 배암은 거게 나쁜 걸  자꾸 집어 넣어 놓거든. 나쁜 거 집어넣어 놓으면 그거 뻐내지를 못해 빼내기가  어려워. 못 빼내. 이러니까 배암은 자꾸 이런 거 나쁜걸 집어 넣는데 어릴 때부터  성경 가르치고 이 교회 나온다는 것이 이거 뭐 얼마나 달라지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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