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1987. 10. 4. 주일오후

 

본문:요한계시록 2장 4절∼7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오전에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처음 사랑의 처음 행위라, 처음 사랑이요 처음 행위라.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네가 버렸느니라” “네가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네가 버렸느니라” 그랬는데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버리려면 버릴 수 있고 가지려면 가질 수 있는 처음 사랑이요 처음 행위라.

이랬는데 그 아래 7절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는”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구를 보면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제가 그저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린 것이 아니고 버리게 하려고 하는 모든 그 대적들과 환경이 있어서 그것을 못 견디고 못 이겨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렸다 하는 것을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버렸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또 이걸 보면 그 본인이 버릴 수도 있고 버리지 안할 수도 있고, 또 회개하여 찾을 수도 있고 찾지 아니할 수도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보여집니다. 그러면 이 버리는 것이나 찾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 자신에게 부담이 되어 있고 책임이 지워져 있는 것을 또 볼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 처음 사랑 이 처음 행위가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 행위에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라.

그러면 주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셔서 이것을 버리면 우리에게 중요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또 촛대를 옮겨서 우리 건설구원이 다 헛일이 되고, 또 버렸던 이 사랑과 처음 행위를 찾아서 가지게 되면 우리에게 중요한 하나님의 낙원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같이 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진리와 내가 함께 사는 이 큰 축복과 또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로써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주님이 원하시고 맡기신 모든 것을 잘 감당해서 구원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하나님과의 연결된 연결을 주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버리려면 버릴 수 있고 안 버리려면 안 버릴 수 있다. 물론 버리는 데에는 여러가지 자기 현실 환경에 버리도록 하려고 방해하는 그런 것들이 있기는 있지만 그래도 안 버리려면 안 버릴 수 있고 또 다시 찾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물이 있기는 있지마는 찾아 가지려면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가질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 이것을 버리면 하나님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건설구원이 되는 교회 곧 촛대를 옮겨버리고, 또 이것을 도로 찾아서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진리로 동거 동행할 수 있고 또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되어져서 그 연결된 결과로써 자기의 그 신령한 양식 인격의 양식 곧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다 감당할 수 있고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다 응할 수 있는 완전 구원을 이룰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처음 사랑을 안 버리려면 안 버릴 수 있고 또 잘못돼서 버렸다 할지라도 다시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이 가능성 있는 것을 여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우리만 노력하면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아주 장성한 후, 몇십 년 예수 믿고 그 사람이 많은 노력을 하고 많은 수양을 한 그 끝에 이루어진 그 결과라고 하면은 그 결과는 대단히 어렵겠습니다.

그 사람이 믿고 난 다음에 성경 공부를 얼마나 했으며 또 성경학교 신학교를 얼마나 했고 또 신앙 생활 하느라고 산기도를 얼마나 했고 또 그 신앙에 온갖 직분을 감당하느라고 오랫 동안 노력을 했고, 이래서 아주 위대하고 장성하고 훌륭한 그런 신앙 생활을 네가 가지라 한다고 하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겠고 또 많은 수양을 해서라야 될 터인데 그것이 아닙니다.

네가 지금, 한국으로 말하면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상동 목사님, 또 주남선 목사님 같은 이런 네가 신앙을 가지라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참 우리에게 힘이 들겠습니다. 그 일을 이루는 데는 원하는 마음만 가지고 되지 안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힘이 들겠습니다.

그런데 여게는 그렇지 안하고 제일 처음 사랑, 신앙의 초보, 예수 믿는 제일 초보 때에 이 제일 처음 믿을 때에 한 행위를 버렸다 그 행위를 가지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뭐 어려운 것이 아니고, 힘드는 것이 아니고, 높은 것이 아니고, 처음 예수 믿을 때에 가졌던 사랑이요 가졌던 행동이기 때문에 이거는 아주 어렵지 않고 쉬운 것은 쉬운 것인데 우리가 버렸다는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는 이 처음 사랑을 버렸고 곧 처음 행위를 버렸다 했는데 요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예수 믿던 초보에 되던 일이니까 아주 쉬운 일이라고 우리가 단정을 지울 수가 있습니다.

또 이것은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다 처음에 가졌던 것이요 행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뭐 희귀한 것도 아닙니다. 아주 드문 것도 희귀한 것도 아니고 꽉 찼는 것입니다.

천 명이면 천 명이 다 예수 믿을 때에 다 처음 사랑을 가졌고 처음 행위를 가졌던 것이기 때문에 이는 뭐 귀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힘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실력이 있어야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실력도 없는 유치한 때에 하는 것이고, 유치한 때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실력이 필요가 없고 또 누구든지 다 가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희귀한 것이, 드물고 귀해서 아주 희귀한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열 명이면 열 명에게 다 있고 백 명이면 백 명에게 다 있던 아주 흔한 것, 아주 흔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것이 이렇게 중요해서 이것 가지면 그만 하나님하고 나하고 한 덩어리 되고 이거 버리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그만 그 절단이 돼서 끊어져서 관계없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이거 가지면 성화구원이 잘 이루어지고 이거 버리면 성화구원이 다 절단나고, 이것을 가지면 하나님에 연결되어 연결로써,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에 연결되어서, 하나님께 연결되어서 그분의 은혜로 다 완전히 내가 걸어갈 길을 다 걸어갈 수 있다.

“생명 과실을 먹으리라” 이래 말씀했기 때문에 이는 참 믿는 사람에게 제일 보배요 제일 가치 있는 것이요, 또 제일 흔한 것이요 - 귀한 게 아니라 - 제일 흔한 것이요 또 제일 약자라도 무지자라도 다 가질 수 있는 것이오.

흔한 것이지 초보에 가진 것이기 때문에 아주 쉬운 것이지, 이런데 이것이 내 구원에 모든 것을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이요 이거 없으면 다 실패되는 것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우리가 안 버리려고 해도 못 견뎌서 버린 것이 아니라 안 버리려면 안 버릴 수 있는데 조금 어려움 있다고 다 이 사랑을 버려버리고 또 마귀에게 이리 꼬여 저리 꼬여 가지고서 버렸다.

이러니까 지금이라도 찾으면 된다. 찾으려고 할 때에 불가능한 절대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찾으려고만 하면 누구든지 다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데 찾으려고 할 때에 약간의 방해물이 없는 것은 아니고 찾을라고 힘을 안 써도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힘을 쓰면 찾아진다.

그런데 찾기만 찾으면,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니까 뭐 만사가 다 형통이요 성공이지 문제될 것이 없고 또 하나님과 연결의 결과를 가지고서 신앙 생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울 것도 없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 참 흔하고 가지기 쉽고 보배는 지극히 큰 보배니까 요것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혹 별스러운 것인가 생각하는데 처음 예수 믿을 때에, 처음 예수 믿을 때에 가졌던 사랑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전도를 받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될 때에 자기가 믿으라고 해도 믿을 마음이 없을 때는 그렇지 않고 ‘나도 예수님을 이제 한번 믿어봐야 되겠다’ 믿어봐야 되겠다는 생각 가지고 믿기로 딱 마음을 작정을 하니까, 작정하는 데에 내게 와 가지고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하나님, 참 우리가 과거에는 알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고 뭐 유교에서 하나님 말하고 다른 데도 말하지만 그 하나님은 성경이 가르친 하나님이 아니고 그것은 다 범신론의 ‘하나의 지존자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은 ‘뭣인가 제일 크신 분 지존자가 계시지 않겠느냐? 모든 것의 주인되는 분이 계시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것으로 하늘님이라고 말했지. 하늘님 한문에서 말한 것은 한을님입니다. 클 한(韓)자 한나라 한(韓)자, 새 을(乙)자 한을님입니다.

또 거게서 조금 내려와 가지고서 이 모든 이종교들에게서 말하는 것은 한울님입니다. 큰 울타리. 이 큰 울이 있는데 이 큰 울 이것의 주인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한울님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그들은 천우중 주신입니다. 하늘에 있는 지극히 큰 주인된 그 신이라 이래서 아마노 미나까노 누시노가미라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래서 세상에서 하늘님이라 하느님이라 천주님이라 이렇게 여러가지로 말하지만 신구약 성경에서 가르쳐서 예수 믿는 전도를 통해서 가르치신 하나님은 참 하나님입니다.

이래서 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뿐이신 신이라고, 영원 자존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표해서 하나,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하는데 지금 천주교에서는 이제는 하늘님이라, 천주교에서 뭐라고 말해요? 하느님. ‘하느님’ 하는 게 내나 하늘님을 인제는 또 차차 변해 나가느라고 하느님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이래서 제일 처음 믿을 때에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인 이 구원을 주셨다 하는 이 전도를 들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다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에 대해서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변화가 되어지고,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왔느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대로 열여섯 가지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사랑 곧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지식을 네게 줬다. 하나님의 지식 준 그 지식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인 영감을 너에게 줬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영원 전 하나님이 홀로 계시면서 당신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이 유일하신 분, 전지 전능의 완전자이신 그분이 ‘내가 요거 하나 해 보겠다’ 요거 하나 해 보겠다 하는, 그분이 유일로 목적을 정한 그 목적이 곧 너를 사랑하기로 정한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소국이라도 그 나라에 가서 고적을 보면 그 고적에 그 조그만한 나라지만 그 나라에 정권을 가진 그 정권자가 전력을 기울여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면 후세에도 크게 볼 만한 그런 웅장한 것이 있습니다. ‘그 왕이 이 성을 쌓았다, 그 왕이 이 탑을 하나 만들었다, 그 왕이 하나 궁전을 지었다.’ 그래, 우리 나라 같은 나라에서도 만일 어떤 대통령이 하나 즉위해 가지고 그 대통령이 자기가 대통령으로 지나는 그 임기 중에서 자기는 무엇을 하나 만들겠다 하고 무엇을 선택해서 작정했다면 그 일은 참 사람이 볼 때에 굉장하게 어렵고 큰 일이요 웅장한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개인도 그 개인이 심히 빈약하지만 자기 일생 동안에 ‘나는 요거 하나 해 보겠다’ 하고 뭣을 작정해서 했다고 하면 아무리 잘난 사람들이 봐도 야, 그거는 참 큰 힘 들였겠고 대단히 큰 공작물을 만들었든지 큰 무슨 역사를 만들었든지 그렇게 위대한 것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전지 전능의 완전자이신 그분이 무엇을 하나 만들어 보겠다 당신의 목적으로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의 전력을 다 기울여서 했다고 하면 그 일이 얼마나 큰 일이겠습니까? 이런데 하나님이 유일로 목적을 정하신 이 목적이 곧 나의 구원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그 사랑하는 것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당신의 사랑의 발동이, 사랑의 그 모든 지능과 계속의 뜨거운 열심이 하나 목적을 두고 만드려고 한 그 목적 그것이 내가 됐다는 거, 목적 그것이 내가 됐다는 거, 그 목적 그것이 내라.

지금은 우리가 벌써 지식으로 장성해졌기 때문에 처음에 ‘예수 믿어 구원 얻읍시다.’ ‘예수 믿으면 어찌 됩니까?'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생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되어서 천국 갑니다.’ 간단한 이 말만 들었지 그렇게 세밀한 것을 교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우리가 들어서 안 것 아닙니다. 이래도, 이것으로써 우리가 듣고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굉장한 흐뭇함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을 주셨다.’ 구원이 뭐인데? 이분은 자존하신 전지 전능자신데 그분이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당신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고 영광의 찬미가 되고 참 모든 존재들이 볼 때에 아름답다 귀하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광의 찬미가 되는 이 귀한 보배로운 영광스러운 우리로 당신이 만드시기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만드시려고 우리 구원하시는 것을 당신의 유일하신 목적으로 정하셨다.

이 한 마디 한 마디 자기가 성경 보고 들어서 깨달을 때에 뭐 깜짝깜짝 놀래지고 ‘어데 이럴 수가 있느냐?’ 이래서, 성경을 우리가 보든지 한 마디 두 마디 들을 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하나님이 크심을 한 마디씩 들어서 읽어서 볼 때에 우리는 놀래지고 그분이 크니 내가 큰 것이고, 그분이 위대하니 내가 위대하고, 그분이 모든 것의 주재되니까 나도 주재의 아들이니까 내가 주재되고, 그분이 한없이 완전하니까 나도 그 완전에 연결로서 완전의 그 존재가 된다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한없이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고 기쁘고 즐겁고, 그분이 또 우리를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곧 나를 영원 전 당신의 목적으로 삼으신 것,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곧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예정하신 예정,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예정을 베푸셨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 곧 나를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당신이 사람되어 오신 것이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라 그 말이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사람되어 오셨고, 그분이 나를 사랑함으로 그 사랑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그 사랑이 죽고 부활하신 이게 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 진리를 나에게 주었고 영감을 주었고, 그분이 나를 사랑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을 나에게 주셔서 이 참 형언하기 어려운, 그분이 나를 사랑하여 이 무서운 죄에서 완전히 해방을 주셨고, 죄에서 해방시킨 것은 그분이 나를 사랑한 사랑입니다.

죄에서 해방시킨 것도 그분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요, 마귀에게서 나를 해방시킨 그것도 그분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요, 사망에서 나를 해방시킨 것도 그분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오.

그러면 이 사랑이, 쉽게, 완전자요 전능자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나 그런 것 한 것 아니고 친히 내가 범한 모든 죄의 형을, 사망의 형을, 마귀의 이 형을 이것을 당신이 대신 죽음으로 고난당하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이 일을 이루신 이 사랑, 또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기까지 내 대신 행하셔 가지고서 공심판 통과의 의를 주셨고, 하나님과 나와의 완전히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부자간의 완전 결합의 이것이 다 하나님이 나를 말로 사랑하고 그저 능력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체를 친히 죽는 데 천한 데에 이렇게 다 고난의 죽음에 던져 가지고서 나를 사랑하신 이 사랑, 그분이 조물주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조물주가 영원히 피조물로 부활한 그 사랑, 그래 가지고서 그분이 나를,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자가 하나님과 등지고 원수된 자를 하나님을 상대해서 사는 완전한 생명으로 중생 준 그것이 그분이 나를 사랑함으로 줬는데 사랑함으로 준 그 사랑의 선물이 중생의 생명인데 중생의 생명 그것을 당신이 그저 권세로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영원히 당신이 사람되심으로 보증을 하시고, 보증금, 돈으로 말하면 보증금 내시고, 당신이 보증을 하시고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생명으로 중생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우리로 하여금 진리로 사는, 진리로 영생하는, 이 말이 쉽지 어떻게 우리가 진리 생활하며 진리로 영생이 됩니까? 이거 참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기본구원은 얻었지마는 하늘나라 가면은 벌받을 일이 굉장할 것입니다.

영생을 말하지마는 영생에 대해서, 요새 뭐 무슨 버섯이라 하더라? 불로초 버섯이 뭐이지? 영지 버섯? 영지 버섯이라고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라 해 가지고서, 그 영지 버섯이라 해 가지고서 요새 뭐 그 세월이 나니까 그걸 씨를 가지고 길렀는지 저 구포장에 가니까 막 전부 이 영지 버섯 뿌스러기뿐이더랍니다.

어떤 교인이 하나 영지 버섯이라고 저 남해 있는 분이 우리 백 목사님이 불로초를 먹어야 된다 하고서 그것을 가져 왔어요. 가져와서 도로 보냈는데 잘 전달해서 갔는지 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생을 말해도 우리 영생을 믿는다면 이만해도 얼마나 좋아할지 모릅니다.

만일 돈을, 요새 돈이 뭐 헐하다 해도 천만 원 돈을 주면 아주 급할 때에 하루는 더 살 수 있다 이라면 천만 원 주고 그거 다 사 놓을 것입니다. 급할 때 말이지요.

하나 사면은 하루, 일억을 주면은 열흘 살고 삼억이면은 한 달 살고 삼십억이면 일 년 살고 이란다면 아마 이거 돈 있는 사람은 다 살 것이오. 그리 될까 안 될까 해 그렇지 그리 된다면 다 살 것이오. 안 살 사람 있습니까? 다 살 것입니다.

사실 그러면 다 살 것이오.

이런데 우리에게 이거 무슨 그런 것으로서 장수하는 것보다도 진리로 장수하니까 이 장수야 참으로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장수입니다. 영감으로 장수하니까 이 장수야 해할 수 없지.

영감으로 영생한다 진리로 영생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주신 선물이 이것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이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바로 이 영생 이것이라.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이 영원히 피조물되신 것으로서 보증을 내고, 보증금을 내고 이 담보를 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라 말이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유업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이 중보자인 제사장직을, 이 선지직을, 왕직을 이렇게 영광스러운 이 직을 당신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이 준 거라. 당신의 사랑을 준 그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서 곧 이 제사장직이 됐고 선지직 된 것이 전부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제 이것을 알지마는 이제 지식으로만 커서 지식으로 많이 자랐습니다. 지식으로 자랐고 실지로 믿는 그 믿음은 자라지를 안하고 실지로 실감으로 느끼는 느낌은 자라지를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가진 것은 다 교만만 되고 말았습니다.

여게 처음 사랑이 뭐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나에게 구원 주셨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거는 영생이다, 천국 간다.

이 복음을 듣고 자기가 본능적으로 기쁘고 즐거워, 기쁘고 즐거워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고, 하나님을 좋아하게 됐고, 하나님과 정이 붙게 됐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됐고,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게 됐고, 믿게 됐고, 그분에게 순종하고, 그분이 주신 구원에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 이거 뭐 철도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 그분의 사랑이 내게 구원으로 온 이 구원인 그분의 사랑, 그분의 사랑과 구원 이것을 인해서 우리들이 마음이 변해지고, 행동이 변해지고, 기쁨이 변해지고, 모든 욕심이 변해지고, 이제 이 도를 들어서 처음에 자기가 듣고 믿기로 하고 난 다음에 그때는 ‘거짓말이다’ 하면은 그것이 없고, 믿을 때에 자기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나도 이제는 믿어야 되겠다’ 믿는 마음이 생겨지는 동시에 우리에게 이런 작용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안 일어난 사람이면 그 사람은 택자가 아닙니다. 택자면은 양은 다를지라도 다 자기에게 그 마음이 변화되는 것과 행동이 변화되는 것 사람이 일시라도 변화되는 그 변화가 양적으로 많든지 적든지 자기에게 작용이 있었다 하는 것을 우리들이 다 택한 자라면 다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있어서, 말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주신 구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인한 말이 우리에게 나오게 됐고, 또 이 사랑과 구원을 인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게 됐고, 또 기쁨이 있게 됐고, 뭐 소원이 있게 됐고, 여게 이로 인해서 우리에게 없던 그 생겨진 성질이 있게 됐고, 이래서 사람을 대할 때에나, 또 이 모든 만물을 대할 때에나, 뭐 산천 초목을 대할 때에나, 저 혼자 가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아무 딴것 아니고 그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이렇게 구원해 주셨다’ 하는 이것으로 인해서 혼자 좋고 기쁘고 이 변화된 이거, 이것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가장 이것을 당신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당신이 기뻐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는 한국에 재벌가가 돼 가지고서 한국에 재벌가는, 지금 큰 재벌가는 나는 몇 백억이나 가졌는지 몇 천억이나 가졌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한국에 제일 큰 재벌을 이 복음 운동을 위해서 다 바친다 할지라도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이요 다 당신의 것이지 당신의 것 아닌 것이 뭐 있습니까? 그 수백 수천억을 바친 그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귀한 구원 주셨다’ 하는 이걸 인해서 속으로 찰나라도 기뻐 즐거워하는 고거 당신이 가치로 보십니다. 그것이 수천 수억보다도 더 귀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 이 사랑으로 나에게 이 귀한 구원 주셨다 하는 이 사랑,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주신 구원을 인하여 엽전 한 푼이라도 바쳤을 때에 하나님은 그 밖에 있는 이 지구 땅덩어리에 있는 재벌 전부보다도 당신은 그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또 그 사람이 앉은뱅이고 누운뱅이라 걸음 걷지 못하는 그자라도 이 사랑 이 구원 인해서 ‘내가 아무데 구불러 가야 되겠다’ 하면서 구불러 가 가지고서 이 사랑을 증거하고 이 구원을 증거하는 그 심정, 그 소원, 발동되는 그 감정, 발동되는 기쁨, 그 힘, 그것이 천하 인간과 용사들이 움직이는 그런 것보다 주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이걸 귀하게 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처음 사랑 버린 것을 당신이 이렇게 분히 여기시고 이것을 제일 좋아하셔서 “이것을 가져라. 그러면 나는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네게 줘 가지고서 내것 전부 가지고서 네게 대한 필요 있는 대로 다 해서 너의 구원을 완성시키고 네게 소속이 작정된 거 천 명이나 만 명이나 다 구원의 완성을 주겠다.” 이렇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벌써 지식은 자라서 교만해졌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나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으로 나에게 구원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나에게 구원 주셨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을 아무리 해 봤자 우리에게는 벌써 길가밭이 돼서 감각이 없습니다. 강퍅할 대로 강퍅하고 완패해질 대로 완패해졌습니다.

그 지식에 따라서 지식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이 강퍅해졌을 거고, 예수 믿어서 목사가 된 사람은 더 그럴 것이고, 장로된 사람은 그 다음일 것이고, 권사 집사된 사람은 그 다음 될 것이고 이래서 강퍅해졌습니다.

강퍅해졌는데 지금 요는 문제가 뭐이냐? 자기가 하나님의 이 사랑을 연구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와 있는데 뭐이냐? 그 사랑이 내게 와서 있는데 뭘로 와 있느냐? 그 사랑이 내게 와 있는데 아! 이 성구 이 성경이 그 사랑이 내게 온 그 사랑이 이 성구로구나. 이 성경이로구나. 성경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이 사랑으로 나에게 줬는데 그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 성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고 내게 주신 이 구원을 이렇게 저렇게 자꾸 생각하고 연구해서 이로 인해서, 내 마음에 온 세상 것 다 없어도 이 구원으로 인해서 중심으로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 구원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인해서 만족되고 흐뭇해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이렇게 하나님이 보실 때에 ‘네가 내가 너를 사랑한 그 사랑으로 네가 웃고 있구나.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인해서 그 사랑으로 네가 만족하고 있구나. 네까짓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인데 네가 지금 뭐 천하 제일 부요한 척하고 있는데 내 사랑을 인해서 네가 부요한 척하고 있구나.

네가 지금 천천 원수 만만의 원수가 가뜩 둘러싸고 있는데 네가 거기서 천지를 모르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격과 마찬가지로 네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담대하고 뛰노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구원한 이 구원을 인함이로구나.’ 요 행동이 우리에게 발동될 때에, 마음의 행동이나 몸의 행동이 발동될 때에 그 발동이 내게 대해서 발동될 만한 양이 발동이 됐느냐? 그만한 양이 발동이 됐느냐? 발동이 됐으면, 열매를 보아 알지니 발동이 됐으면 발동된 그 증거는 뭐이냐? 내가 지금 낙원에 있으면 발동된 증거라.

당신이 요구하시는 사랑의 온전을 이루었고, 처음 사랑의 온전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주신 구원에 대해서 내가 온전히 믿는 믿음을 이루었고 사랑에 대해서 믿음을 이룬 그 증거는 뭐이냐 하면은 내가 낙원에 있는 것이 이룬 그 증거라.

아무리 내가 논리적으로 해석을 해서 어떻게 제가 뭐 말을 한다 할지라도 네가 지금 낙원에 있는 것을 네가 믿어지느냐? 네가 낙원에 있느냐? 네가 분명히 지금 낙원에 있나, 세상에 있나, 네 주관 속에 들어 있나, 네 이성 비판 속에 들어 있나, 네 욕심 속에 들어 있나, 네가 네 속에 들어 있나, 낙원에 있느냐? 네가 지금 하나님이 너와 동거 동행하고 있는 그것을 네가 확실히 보여지느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냥 상상으로 논리가 아니고 실지로, “알리라” 말은 보아 이래, 보고 알리라.

이것이 자기대로에 이게 바로 됐으면 증거는 뭐이 증거냐? 낙원에 자기가 있어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을 자기가 보고 함께 있는 것이 자기가 확실히 믿어지고 느껴져서 그분이 함께 있음으로써, 과거에는 염려가 많고 두려운 거 많고 굉장한 게 많았는데 염려 두려움 하나도 없고, 과거에는 일대 일로 네까짓 거 네 자랑하면 나도 내 자랑하지 했는데 아무런 교만이 다 간 곳이 없고 겸손으로 가뜩 차게 됐고, 원망이나 불평이나 시비나 시기나 쟁투나 허영이나 허욕이 아무것도 없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고 진리가 함께 있음으로 자기가 어짠지 만족이 되고, 다른 것 아무것도 없고 다른 것 찾을 것 아무것도 없어.

주님과 진리와 내 구원 가졌으니까 만족하고, 만족하니까 내가 부강함으로써 교만한가? 만족한 부강에 안 있고 겸손으로 찾아 들어가니까 더 평안하고 더 좋고 더 좋고 더 좋아.

이래서 분명히 내가 말하고 봐도 하나님에 연결돼 가지고 당신의 말이 내 입을 통해서 나왔고, 내 소원이 당신에게서 나왔고, 내 감정이 당신에게서 나왔고, 내게서 나온 그것이 과거에는 다 유한해서, 유한하고 제한이 되어서 자꾸 환경에 따라서 변해지고 썩어지고 상해졌는데, ‘이상하다. 이제는 내 속에 나오는 것이 환경이야 이렇든지 저렇든지 뭐 어쨌든지 환경을 정복했지 환경에게 정복당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과연 생명나무의 과실을 내가 먹고 이 힘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이것이 이루어졌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을 네가 새기고 새기고 깨닫고 깨달아서 네게 네 정도의 정당하고 합당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을 네가 확실히 알고 믿는 그 믿음이 바로 서 있는 증거로 네가 낙원에 있는 것과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그 결과가 표시가 돼, 표적이 될 것이고, 아직까지 너는 어떤 교인의 십 배 더 해석을 하고 십 배 더 구비하게 알아도 그 사람은 너보다 십분지 일도 모르지마는 그 사람은 네가 건너다 봐도 그 사람은 철이 없든지 어쨌든지 낙원에 있는 것이 분명하고 하나님이 저와 같이 동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에게서 나오는 희로애락과 지정의 모든 것이 이제 하나님으로 인해서 발동된 것이라는 것이 환하게 보여지는데 나는 없다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고, 자기는 그것이 발동될 때까지 돼야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올바로 깨닫고 믿음으로 느껴져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 구원을 주신 당신이 만족해서 우리로 하여금 기뻐 즐거워할 수 있는 이 단계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는 과거에 이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연구하고, 하나님이 날 사랑한 사랑을 연구하고 하나님이 날 구원하신 이 구원을 연구하고, 이 구원 주실 때 당신이 어떤 사랑으로 줬으며 어떻게 고난을 당했으며 고난 하나하나도 당신이 나를 사랑함으로써의 그 사랑이 나타난 것이니까 그분이 나를 사랑하니 뭐 딴거 찾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가 자기가 지식의 범위를, 지식의 깊이를, 지식의 높이를, 지식의 넓이를, 지식의 길이를 이것을 다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주신 구원을 찾고 찾고 보고 보고 찾아 들어가서 자기가 보아야 할 대로 보고, 자기가 깨달아야 할 대로 깨닫고,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을 믿을 대로 믿고, 느낄 대로 느끼는 그 정도에 도달했다고 하면 그 표적은 무엇이냐? 내가 낙원에 있는 것과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그것이 자기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그와 나와 하나돼서 ‘이상하다. 내 희로애락이 전부 그분으로 말미암은 그 희로애락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딴것으로 말미암은 희로애락은 아니고 내게 있는 힘도 그분으로 말미암은 힘이고 심지어 껍데기 말하는 것도 나는 말을 했는데 따져보면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온 말이고, 내가 또 어떨 때는 생각하고 말도 안 하고 어떨 때는 생각도 안 하고 말을 했는데 말 나온 것이 전부 그분으로 말미암은 말이 나왔고, 나는 몰랐지마는 말하고 난 다음에 오래 지나고 나면은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당신 말이 아니면 아닐 것이라.

이렇게,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확실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자기 정도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인 실상,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실상이 우리에게 와서 부딪쳐졌으니 하나님의 사랑의 실상이 뭐인가? 실상이 곧 우리에게 온 구원이요, 그 실상이 우리에게 와 있는 성경이요, 실상이 우리에게 와 있는 영감이라.

이래서 우리가 여게 대해서 지금 정도가 다르니까 어쨌든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여 이제 이 구원만 보이고, 이 사랑만 보이고, 이 사랑과 이 구원만 보이고 다른 거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이 사랑 이 구원으로써 아무것도 없어도 만족하고 못 할 일 없고 절망이 없어. 이 사랑과 이 구원이 옴으로써 절망이 없어. 그거는 희망 없다 했는데 이 사랑과 이 구원이 오니까 희망 없는 게 없어.

이 사랑과 이 구원이 떠나 버리고 나면은 나는 튼튼한 반석 같은 그 소망을 가졌던 사람도 이거 떠나고 나면은 ‘아이고 그거 되겠나? 그거 참 그게 희망이 있나 없나?’ 위험성이고 소망이 같이 끊어지고 모두 다 절망이 되어지고, 사랑도 끊어지고, 소망도 끊어지고, 믿음도 끊어지고, 만족도 끊어지고, 기쁨도 끊어지고, 평안도 끊어지고, 담력도 끊어지고 모든 거 다, 땅위에 모든 것이 두렵던 것이 다 없어져 버리고, 미웠던 것이 다 없어지고, 이것도 다 내가 사랑하니 그가 나를 사랑하리라 믿고, 그러기에 사랑되지 안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자기 정도대로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을 자기가 바로 알아서 어누리 하지 말고 거짓부리 하지 말고 진실되이 자기가 사랑을 알고 믿고 바라고 느꼈다면은 이 표적으로 이 두 가지가 나타나고,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린 증거는 표적이 뭐이냐?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어. 공연히 이라지마는 암만 기도해야 저 혼자 기도하지 연결이 끊어졌어. 또 자기에게 분명히 촛대에 등불, 금촛대에 빛이 자기에게 가리워져서 빛이 어두워져. 그런고로 이 일을 우리가 깊이 깨달읍시다.

한 가지만 더 주의할 것은 이 처음 사랑은 다 가졌는데 이 사람들이 어짜다가서 어데서 이 처음 사랑을 버려 버렸는지? 버린 이유를 여게 아홉 가지를 말해 놨습니다.

다 말하지 못해도, 2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행위를 아노니 했습니다. 이 그만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 이 둘만 보고 좋아 기쁘고 못 견뎌 이래 살았는데 그만 이 둘만 보던 이 시선을 딴데로 옮겨버렸어.

에덴동산에서 배암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만 보고서 만족하고 살았었는데 배암 이놈이 와 가지고 자꾸 속살거리는 바람에 그만 선악과를 봐서 하나님만 보던 시선이 선악과로 돌려버렸어. 선악과로 돌려버려서 이 선악과만 보게 돼.

선악과만 보니까 거기서는 전부 죽음만 나옵니다. 하나님 볼 때에는 거기서 생명만 나왔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귀란 놈들이 말하기를 ‘예수 예수 말하면 소용 있나? 행함은 뭐 개차반으로 하면서.’ 자꾸 이래 쌓으니까 그만 이 행위에 우리 시선이 돌려졌더라 말이오. 그만 돌려졌어.

행위에 시선이 돌려져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하고 있었다가는 도로 하나님에게 욕을 돌리고 복음을 가루게 된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주신 구원 자꾸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미치괭이라 하고서 광신이라고 알고 이러니까 이 행위를 좀 내가 이제 조심해야 되겠다.’ 행위 이놈 할라고 자꾸 하다 보니까 차차 차차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던 것이 떠지게 되고, 두 번 생각하던 게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백 번 생각하던 게 구십 번 생각 팔십 번 오십 번 나중에 가서는 그만 행위만 하루 종일 생각하고, 또 수고, ‘주를 위해서 수고해야 되겠다. 지금 내가 어떤 환자에게 방문하는 수고를 해야 되겠다, 내가 누구를 봉사하는 수고를 해야 되겠다.’ 이 수고에 자꾸 이러니까 그만,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악한 자들을 구별하는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것을 드러내는 것과 또 네가 참는 것과 주의 이름을 위해서 견딘 것과 부지런히 열심히 게으르지 안한 일” 이거 하는 데다가 네 눈을 돌려버렸다 말이오.

이거 하는 데다 눈을 돌려버리다 보니까 그만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서 아무런 감동시키는 어떤 충격을 주는 것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도 내가 논리적으로는 알고 있지마는 이 구원이 나를 충격시켜서 내가 이 구원에 충격받고 이 사랑에 충격 받아서 이 사랑에 피동되고 이 구원에 피동되고 한 이 작동이 내게 없었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도 이래 가지고서 다 실패가 된 것입니다.

저는 제가 부산 와 가지고서 버렸다 그 말은 부산 오니까 이거 행위니 뭐 고난이니 악한 자들이니 이단이니 뭐 이런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단 싸움 싸우다가, 예배당 소송 싸움 싸우다가, 인본주의하고 싸우다가, 이 모든 신신학주의들하고 싸우다가 원수 다 맺고 또 이 공산주의를 용납하는 용공주의를 또 반대하고 이라다가 또 그만 주님의 사랑도 팔고 구원도 팔고, 지식적으로야 잘 가지고 있지요.

이러니까, 내게 와 가지고서 그 사랑이 나를 충격 주고 그 구원이 나를 충격 줘서 그 사랑과 구원에 충격돼 가지고 거게 피동적인 생활이 아주 없어졌다고 할 만치, 이래 놓으니까, 교인은 뭐 수천 명 모이고 유치반까지 다 말하면 수만 명이 되는지 뭐 얼마가 되는지 해도 그것은 있지만 그것이 내 구원 아닙니다. 그게 내게 상급은 될지라도 내 구원 되는 것 아니오. 내 자체 성화되는 것 아니오.

통통 속은 것뿐입니다.

제가 그래도 거창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사람 없는 한적한 산이나 그 첩첩 산중이나 사람들이 낮에도 무서워서 못 간다는 그런 데 가 가지고서 가서 있기를 좋아했고 또 밤이면 개울가나 산이나 언제든지 한적한 곳을 좋아하고 길을 가도 언제든지 주님과 같이 동행했고 이렇게 하던 이 주의사랑, 참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구원만 보고 사는 그 생활이 되었었는데 부산 오고 난 다음에 완전히 변해졌어.

이래 가지고 그거 하던 흔적을 그 형태는 가져서 제 오고 난 다음에 삼 년 동안은 한 번도 방 안에서 누워 잔 적은 없었고 대님을, 한복 입었으니까 대님 끄른 적도 없었고 대개는 또 제가 산에 가니까 모두 권찰님들도 다 보따리 싸 이고 다 산에 가서 산에 가 가지고서 밤에 저녁 먹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또 새벽에 내려와 가지고 새벽기도 하고 이렇게 하기는 한다고 해도 은연중 이 행위 보고, 이 세상에 인간들의 눈에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귀를 맞추고 이 노릇 할라 하다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어! 이거는 눈이고! 귀고! 입이고! 그까짓 거 하나도 안 보고 이제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구원만 보고 천인 만인이 찢어도 내가 이 길만 가서 가는 것이 내 길 갈 일이지 내가 인간의 입 맞출라고 귀 맞출라고 눈 맞출라고, 그들의 입이 뭐라 하노, 그들의 눈이 뭐라 하노, 그들의 소리들이 뭐라고 하노? 이래 가지고 통통 외식한 자가 된 것을 여러분들한테 자복을 합니다. 내가 외식한 자가 됐어.

그 걸음 걸어갈 때에, 그 걸음 걸어갈 때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존대하고 귀중히 봤는데 부산서는 나를, 거창 있을 때는 훼방한 사람이 없었고 나를 다 좋아하고 존대했는데 이놈의 인간들 입을 맞춰서 입에 좋은 입 나오도록, 입에 좋도록 그 입에 맞춰서, 좋은 말 나오도록 입에 맞추고 눈에 맞추고 저들의 성미와 마음에 맞출라고 했으니까 그것들이 나를 존대할 줄 알았는데 나를 존대하지 안하고 그것들이 나를 매장시킵니다.

매장해서, 내가 이제는 이런 것들하고 완전히 끊고 주님 한 분으로 살겠다 하고서 작정하고 출발한 것이 제가 머리를 삭발한 때입니다. 그거 작정하고서 머리를 깎았을 때 우리집 아이들은 다 울고 왜 깎느냐 다른 사람이 말하라 해도 내가 말하지 안했는데 지금 내가 말을 합니다. 그때 내가 머리를 깎았고, 깎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그 모든 것이 다 완화되고 다시 머리를 길렀습니다.

길렀는데 이제는 ‘내가 오늘까지 신앙 생활 한 것이 외식하는 신앙 생활 했다.’ 나는 외식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 서부교회 백 목사는 외식자요. 외식 신앙 생활 했습니다. 참 신앙 생활하지 못했어. ‘어짜든지 이 교계에서 교계에 욕 얻어먹지 안하도록 해야 되겠다. 교계에 칭찬받도록 해야 되겠다. 교계에 이름 있도록 해야 되겠다.’ 그것도 좋지마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고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만 보고 거기에 들어붙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 발동되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발동된 그것이 나도 구원하고 그것이 건너가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돼지지 그것이 아닌 이성 판단으로 하니까 여러분들도 받고 배운 것이 전부 지식으로만 받고 배웠소.

그 지식은 못쓸 건 아니지마는 이제 그 지식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만을 생각해서 여러분들 속에 낙원에 있는 표적이 나타나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이 표적이 나타나기까지 할라고 하면은 더 힘을 써서 더 구비하게 장성하게 그 사랑과 그 구원을 찾고 느껴야 이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 변화가 돼야 여러분들의 구원도 바로 되고 내가 전한 것도 헛되지 안하지 그렇지 안하면 다 헛됩니다.

이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완전히 변화를 받읍시다.

이제 할 일은, 뭐 할 일 많아. 할 일 많아. 아담 하와가 타락하고 나니까 할 일이 어떻게 많은지? 등골에 땀이 찼어. 할 일이 많아.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만, 하나님만, 하나님의 구원만 보고 딴거 없어. 그만 보고 그만 아니까 만족했고 족족했고 부족한 게 없었어.

이러니까 이제는 이 사랑과 이 구원을 우리가 자꾸 새기고 느끼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인해서 우리가 완전히 전환되고 완전히 변화가 돼야 됩니다. 완전히 변화가 됩시다.

변화되면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리라” 하는 그것이 내나 그 약속의 축복이라. 이것만 되면 하나님이 축복으로 우리를 부강케 하는데 누가 우리를 가난케 할 것입니까? 그러기에 제가 거창서 예수 믿기 시작하고 나서 삼 년 동안 콩잎파리죽 먹었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어째 됐는지 어데서 돈이 오는지 모르게 어찌 됐든지 그 골짝에는 제일 부자가 됐던 것입니다. 제일 부자가 됐어. 어데서 돈이 오는지 몰라.

나는 돈벌이 하지 안했어. 나는 일주일 동안에 월요일날 하루만 집에 일하고 나머지기는 내나 복음 위해서 살았고 그 다음에 나중에는 전도사 되기 전에 한 달 동안에 세 주일은 다른 지방 교회 가서 내나 가서 전도하고 심방하고 설교해 주고 한 주간만 내 본 교회 있었었어. 이래서 어데서 왔는지 하나님이 축복 주시니까 그래. 그거 다 나중에 교역자로 나오면서, 유급의 전도사로 나오면서 다 털어서 없애버리고 빈손 들고 나왔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어짜든지 이제 우리가 눈을 바로 떠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주시할 것이 뭐인가? 우리가 밤낮으로 바라볼 게 뭐인가? 우리가 바라볼 것이 뭐이며 우리가 노릴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마음 먹을 게 뭐인가? 우리가 연구할 게 뭐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곧 구원입니다. 내게 신구약 성경으로 오신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 이 성경이 됐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이제는 주시하고 이것을 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돼야 되겠고 전공가가 되어졌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소원을 다 이룰 것을 가리켜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너에게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만족히 이룰 수 있게 된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이로 인해서 여게서 발동돼서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고, 여게서 발동이 돼서 이것 저것을 하는 것은 지극히 고귀한 것이요 결과가 좋지마는 이것이 아닌 것은 다 바람을 잡는 것뿐인 것입니다. 전부 겨와 같이 다 날아갈 외식이요 껍데기뿐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96 하나님의 사랑- 자녀됨/ 요한일서 3장 1절/ 1989. 1. 30.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395 하나님의 사랑,소망,능력/ 에베소서 1장 17절-19절/ 1987. 8. 5. 수후집회 선지자 2016.01.03
394 하나님의 사랑,소망,능력/ 에베소서 1장 17절-19절/ 1987. 8. 5. 수후집회 선지자 2016.01.03
393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0. 10. 14. 화새벽 선지자 2016.01.03
392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0. 10. 13.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391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 사랑/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1988. 7. 30.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90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1987. 7. 15. 수저녁 선지자 2016.01.03
389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6절/ 1987. 8. 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요한계시록 2장 4절-7절/ 1987. 10. 4.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387 하나님의 사랑에 굳게 서라/ 로마서 8장 30절-39절/ 1982. 7. 1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386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기도할것 3가지/ 요한복음 14장 13절/ 1988. 4. 4.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385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에/ 베드로전서 1장 20절-23절/ 1979. 7. 7.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8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구속이다/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1987. 10. 7. 수새벽 선지자 2016.01.03
383 하나님의 선지/ 열왕기상 22장 21절-23절/ 1980. 1. 12.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82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4. 5. 29.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81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23절/ 1983. 8. 27.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380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6. 9. 30.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79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4. 7. 24.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78 하나님의 성전(완전자 영접-회개)/ 로마서 8장 30절-39절/ 1982. 7. 11.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
377 하나님의 속성/ 베드로후서 1장 3절-11절/ 1986. 5. 23. 금저녁 김반석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