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구속이다

 

1987. 10. 7. 새벽 (수)

 

본문: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장 7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또 제가 증거하는 것은 처음 사랑 이 사랑이 곧 행동이요 행위가 처음 사랑이라 그것을 한번 더 말하고, 이것을 도로 찾으면 하나님의 낙원에서 살게 되고, 말하자면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고 거하게 되고, 또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겠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돼 가지고 있는, 하나가 돼 가지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과 연결됐으니까 마치 저수지에 우리 수도 꼭지가 연결됐으면 틀면 그 저수지 물이 없어지기까지 다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충만이 하나님과 연결된 자에게 하나님의 그 충만을 다 주시기로 그렇게 약속된 하나님의 온갖 은혜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그 은혜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루고 또 자기에게 책임지고 분담된 그 모든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과 그 교훈을 다 지킬 수 있는 그 은혜를 받게 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찾지 못하면 촛대도 옮기고 하나님과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래서 곧 사랑이 행동이요 행동이 사랑이라는 그것을 잠깐 더 한번 더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신구약 성경이 예수 믿는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책에 기록된 것은 예수 믿는 이치는 아닙니다. 예수 믿는 이치는 꼭 신구약 성경만이 예수 믿는 이치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사랑이 뭐이며 또, 사랑이 행동이라, 행동이 사랑이라 하니까 그게 뭐인지 연구를 해야 바로 알게 되겠고, 또 거게 참고로 삼을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 둘을 줬는데 하나는 이 자연계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또 하나님이 이 섭리하시는 모든 섭리와 또 이렇게 천태만상으로 변해져가는 인간들의 그 마음의 모든 구조들, 변화되는 인간들의 심리들 이런 것이 다 자연계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수 믿는 도리를 알려면 첫째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뭐라 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지식이기 때문에 여게서 우리는 찾아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고, 그러면 거기 성신의 감동이 같이 해서 가르쳐 주시고 또 우리는 이 자연 만물을 통해서 자연계시를 통해 가지고서 우리는 연구를 해서 두 계시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면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거게 하나님의 성신의 감동이 돕는 역사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올바른 지식을 깨달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비유가 잘되지는 안 하지마는 비슷하기 때문에 말합니다. 어떤 남편이 아주 애용하던 것을 자기에게 보관시켰으면 그 남편이 사모될 때마다 남편이 애용하던 것을 그것을 다시 내 가지고서 볼 수 있고, 남편을 사랑하는 것만치 남편이 애용하던 그것을 잘 간직해서 잘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필연성이고, 남편이 아주 사랑하던 무슨 물건 하나라도 그 남편을 사랑함이 자꾸 뜨거워지면 남편이 맡겨 놓고 간, 남편이 사랑하던 그 물건이 자꾸 더 사랑하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더 보배로 간직하게 되고, 또 남편이 자기에게 해 준 것, 자기가 만일 벌로 날뛰다가서 팔을 뿌질랐는데 요새는 뭐 의료 보험이 있으니까 그거 잘 맞지 않습니다. 뿔랐는데 아무 그런 의료 시설도 없는 데에서 그 뿔라진 그 팔을 고치기 위해서 그 남편이 온갖 수고를 하고 고생을 하고 이래 가지고 참 아무 뭐 없으니까 그걸 약을 구하려고 애를 많이 쓰고 고생을 많이 해 가지고서 그 남편이 그 팔을 고쳐 줬습니다.

고쳐 줬으면, 그 고치는 데 남편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그 팔을 고쳐 주느라고 수고를 많이 한, 고생을 많이 한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이 팔은 남편이 사랑해서 나를 이와같이 이것 고쳐 주느라고 큰 수고 했다. 그것 자기 팔을 볼 때마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 것을 생각하고 또 그 팔을 쓸 때마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심으로 팔 때문에 고생한 것도 생각하고 곧 팔을 볼 때에 남편 본 게 되고 남편을 생각할 때 그 팔을 조심하게 되고 이렇게 하는 그것도 우리가 이 자연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자기가 뭐 그렇게 돈이 안 많다 많다 할지라도 어떤 좋은 선물을 하나 남편이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셔서 좋은 선물을 사 가지고 왔다면은 그 선물을 그것을 좋든지 나쁘든지 그 선물의 가치가 많고 적은 데에 있는 게 아니고 남편이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준 선물이기 때문에 그 선물은 돈이 많든지 적든지 남편을 사랑하고 존대하는 것이 있으면 그 선물에 대해서 존대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만일 그 사람이 ‘그까짓 것 뭐 선물도 몇닢푼치 되지도 안하는 그런 것 사 가지고 왔다’ 하면서 그 선물을 천하게 해서 버려 던지는 것은 바로 그 남편을 천하게 여겨 버려 던지는 것입니다.

그 선물 그 가치가 남편의 사랑에 있고, 자기 고친 팔이 팔보다도 남편의 사랑에 있고, 남편이 사랑한 것이 바로 자기 지금 병신된 그 팔을 고쳐 준 것이고 자기가 가진 몇닢푼치 안 되는 선물이지만 남편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준 그 선물이 되어 있고, 또 그뭐 물건이야 몇닢푼치 안 되지마는 사랑하는 남편이 쓰던 물건이고, 이러니까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남편이 사랑함으로 준 거와의 그 관계는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배반하고 다른 데 살러 가고 ‘그 남편 그까짓 거’ 하고서 이혼해 버렸으면 남편이 준 물건도 다 보기 싫을 것이고 다 그럴 것이고, 또 남편을 사랑함이 점점 짙어지고 뜨거워지고 뜨거워지면은 남편과 관련된 그런 물건이나 사건이나 뭐 일들이나 그런 것이 다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그거 필연성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이 곧 우리 구원이라 그렇게만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은 뭣이 구원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를 예택한 것, 우리가 그때 있기도 전인데 예택하신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예택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요 예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자요 무한자요 전지 전능자인데 그분이 당신의 총력과 총재산, 당신의 가진 전부와 당신의 기능 전부와 또 당신 자체까지를 다 투자해 가지고서 다 들여서 당신같이 온전한 것을 하나 만들겠다고 하셔서 당신의 소유를 다 들여서, 당신의 기능을 다 들여서, 당신 자체를 다 들여서, 다 투자해 가지고서 이제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나 만들겠다 하셔 가지고서 작정한 것이 하나의 목적이요 우리의 예택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택 받은 것은, 예택도 말할 수 없는 존귀한 것이요 하지마는 내가 예택 받은 이 예택이 하나님이 당신의 소유 전부와 기능 전부와 당신 자체 전부를 나를 당신 보기에 아름답고 좋고 그렇게 귀하게 이런 것을 이루기 위해서 전부를 다 투자하셔서 하시기로 작정하신 그것이 나를 예택한 것이요 하나님 목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이래 생각하면, 그것 그럴 때 그것 성경만 가지고는 생각하면 그러하지마는 만일 세상에서라도 어떤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함으로 나를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복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있는 소유를 다 기울이고 기능을 다 기울이고 자기의 자체의 뭐 생명까지 몸까지 다 기울였다고 하면 그 사랑에 대해서 감격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통 힘 없는 그런 사람이 그래도 거게 대해서 그럴 터인데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내게 대해 이렇게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을 자꾸 연구해서 하나님이 이 커질수록 나를 위해서 사랑한 것이 점점 사랑이 커지고, 또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했기 때문에 사랑하셔서 하신 이 예택이라는 이 예택이 어떻게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다운지, 그렇게 힘들여서 나를 사랑하셔서 예택하셨으니까 그 예택을 나는 그 사랑을 생각하니 그분으로 인해서 그 예택을 버릴 수가 없고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러니까 밤낮으로 예택을 보고 좋아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볼 때마다, 하나님이 전부를 다 기울여서 나를 당신 보시기에, 완전자가 보실 때에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이와 같이 하셨으니 그 사랑이 우리가 연구할수록 크고 뜨겁고 깊습니다.

결혼의 첫사랑이라 하는 그것은 저거들이 볼 때에 상대방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했지 더러우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마 첫날밤에, 안면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첫날밤에 가 보니까 문둥이가 돼 가지고 있다든지 얼굴이 막 얼칭이가 돼 가지고 있으면 당장 그만 첫날밤에 이혼하지 그 결혼의 첫사랑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거는 그렇지마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름다운 걸 보고 결혼한 남편이 자기의 전부를 자기에게 기울인다 해도 그 남편의 사랑에 대해서 감격해서 참 다 거게 쏟아 바칠 수 있는, 그게 필연성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무엇이 당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는 게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데에 당신이 이렇게 좋고 아름답고 온전하고 참 모든 평가적으로나 덕으로나 또 영광으로나 그 실력으로나 모든 생명으로나 모든 면에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온전하고 구비한 이런 나를 만들기로 작정하셨으니 그 작정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고,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 이런 것, 자연 만물, 인간 이치에서 이래 볼 때에 우리는 거게서 우리의 심령이 차차 차차 밝아져 가지고 양심을 써서 생각하면 하나님이 날 사랑한 사랑을 이걸 조금씩 차차 차차 짐작해서 파악해 나갈 수가 있고, 그것도 지식이 아주 어리고 얕은 사람은 조그만한 것만 해도 만족이 될 것이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부득이 자기에게 있는 지식을 다 가지고 자기가 자연계시도 아는 대로 다 인용해서 그런 것을 다 그 관계를 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거와 같은 그와 같은 비슷한 것이 이 세상에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꾸 인용을 해 가지고서 자기에게 있는 지식을 인용하고 해서, 그것을 자꾸 이와같이 인용해서, 내가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자꾸 감사하고 그런데 그러면 그 사랑이 감사한 것과 이 세상에서 또 뭐 그 사랑의 은혜에 대해서 못 견딜 무슨 그런 은혜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자기는 생명도 바쳐야 되겠다, 뭐 몸도 바쳐야 되겠다, 여생을 바쳐야 되겠다 그런 인간 사랑도 많습니다.

많은데, 그런 사랑과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과 그 어째? 인간 사랑으로 제일 최고의 사랑을 연구해서 발견하고 그 사랑과 주님 사랑과 이제 비교해서, 동기가 어떠며 동기도 비교해 보고, 또 투자도 비교해 보고, 또 가치도 비교해 보고, 또 장구한 시간의 수명도 비교해 보고, 비교해 보면 세상에서 이렇츰 이런 사랑이 어데 있느냐 해서 감격해 견딜 수 없는 그런, 세상에서, 제가 못 가졌어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은 많이 있다 말이오.

그런 사랑을 자기가 가지고 그 사랑을 생각하고 그 사랑과 주님이 날 사랑한 사랑과 비교를 할 때에 이것은 비교하지 못할 억억만 배도 더 돼.

그래서, 이런 걸 자꾸 인용을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깨달아서 사랑의 행동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이 모든 자연 만물이 뭐이냐? 이 모든 존재가 뭐이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 자연 모든 만물은 창조한 것입니다. 창조한 것은 달리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한 것은 나를 사랑하심으로 창조한 것입니다.

나를,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이 이런, 내가, 완전자가 보기에 완전타 하고 내가 영원히 권태나지 안하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영원한 완전자를 내가 만드시겠다는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만드시는 그 과정에 있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것도 나를 사랑하심으로 창조했고, 사랑하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창조했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선물이라 말이오.

나를 사랑하셔서, 이 모든 존재를 볼 때에 ‘이것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다. 이것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만든 것이요 바로 이것이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 지금 자기 아내가 무슨 병 들어서 죽고 다시는 치료할 길이 없는데 이것은 이걸 구하면 좋기야 좋지마는 이 약을 구할 수가 없다. 이러니까 그 남편이 생명을 기울여서 아끼지 안하고 이래 노력을 해 가지고서 참 그 약을 구해 가지고서 와서 그 약을 구해 가지고 왔는데 그렇츰 애써 가지고 구했으면 그 약이 곧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이라. 그 약이 곧 남편의 사랑이라.

틀립니까? 그 약이 남편의 사랑이라. 남편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큰 힘 들여서 구했기 때문에 이것은 약이 아니라 이것은 남편의 사랑이다. 남편이 나를 사랑함으로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것을 힘들여 구한 이것은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이다. 자기를 위한 주님의 사랑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이것은 약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남편이 나를 사랑하셔서 사랑하는 사랑인데 어떻게 사랑했느냐? 이 사랑에는 이렇고 저렇고 많은 그 애로와 굴곡과 시간을 거쳐서 당신의 생명을 바쳐 가지고서 나를 사랑하셔서 이것 구해 놓은 이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막바로 남편의 생명이요 남편의 사랑이요 남편의 선물이요 나를 당신 생명보다 더 애낀 사랑이라. 이렇게 아는 것이 필연성입니다. 그건 다 이 세상 자연계시에 다 그렇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는 것은 예를 들어서 하나 이 존재로 말하면 모든 존재 한 존재를 볼 때에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다’ ‘너 그거 뭐 그 존재를 보고 뭘 나타나?'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서 이 모든 존재를 창조했다. 창조한 건 주님의 사랑이다. 주님이 이 창조 이것으로써 나를 당신의 목적대로의 것을 만드시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창조했다.’ 이러면 모든 존재가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오. 주님이 그냥 나를 선물로 준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라. 나를 완전자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이요 모든 순서가 주님의 사랑이요, 날 사랑한 사랑이요, 또 ‘하나님이 사람되셨다’ 이뭐 자꾸 열여섯 가지 구원, 도성인신하신 것이나 양성일위로 사활하신 것이나 또, 하나의, 우리가 죄에서 해방된 것 인간이 해방될 수 없는데 당신이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해방을 하려면 해방을 할 수 있는 걸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우리에게 와서 왕노릇을 하지 못해. 마귀도 사망도 왕노릇하지 못해. 우리는 믿음으로 벗으면 벗어져 버렸고 다시는 사망을 보지 안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러면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어데 안 죽느냐? 이 죽는 것은 헌옷 벗어 가지고서 새옷 갈아 입을라 하는 것이고 이것 시공에 제한된 이 모든 혈육의 것을 시공에 모든 존재에 종류에 대해서 무한한 것으로,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으로, 사망에 속한 것이 영생으로 이렇게 이 바꾸어서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우리가 벗어 놓는 것이지 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아까운 육체가 죽는 게 아니라. 이게 죽는 게 아니고 이것이 더 신령한 것으로 억억만 배도 더 된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이와같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의, 죄도 자기가 보는 대로 이 자연계시에서 죄가 그것 있으면 그 죄에 대해서 사형을 당한다. 그 죄를 자꾸 엮어 대 봅니다, 자기 지식대로.

김재규씨가 그때 그런 일 했는데 그것 죄 아닙니까? 그 죄인데 대통령 죽인 죄라 말이오. 죄인데 그 죄에서 만일 누가 그 죄의 형을 담당하고서 해방을 시켜 줬다면 해방시켜 줘서 그 죄를 대신 죽고 거기서 그 죄에서 해방을 시켜 줌을 받았는데 그 받고 난 뒤에 자기 몸뚱이는 이와같이 죽어지고 내가 사형받을 터인데 그분이 대신 죽어, 나를 사랑함으로 대신 죽고 나를 생명 구출해 줬다면 자기의 그 생명과 몸은 나를 대신 죽어 구출한 그분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것인 줄 알고 벌대로 쓰지 안하고 그분을, 자기 몸을 볼 때마다 그분을 생각하게 되고 또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자기 몸을 보게 되고, 자기 몸이나 그분이나, 대신 죽은 그분이나 자기 몸이나 하나지,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역사하신 그것, 죽기까지 한 그것을 생각하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이 내게 필연적으로 그분이 나를 구출한 것을 생각이 되고 내 몸을 생각하고 보니까 그분을 생각하게 되고 그분과 내 몸이 남은 존재가 둘이 아니고 하나가 돼 가지고서 그렇게 자꾸 생각이 돼지고 느껴진다는 그것은 필연성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래서, 참 우리가 사망에서 해방이라 죄에서 해방 마귀에게서 해방이라 하는 그거 하나라도 이제 그 해방에 대해서 사망에 해방이라면 죄에 해방이라면 자기가 아는 지식대로 다 이와같이 하면 그 죄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그 죄를 형벌 받고 해방시켜 줬다 하는 그런 것을 자꾸 이래 생각해 보면, 자기 지식이, 지식을 다해서 느껴진다면 자기는 다른 미혹을 받지 안하고서 거게 전력이 기울어질 거라 말이오.

이러면 지식이 많은 사람은 자연 지식도 있는 대로 다 거게다가 활용을 해서, 계시, 특별계시 지식이 높 사람은 특별계시 지식을 다 활용을 해서 자꾸 이 지식을 많이 활용할수록 이제 연구하면 예수님의 대속이, 구속이 자기가 자꾸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실감이 되어진다 말이오.

실감이 되어지면 나중에 된 것만치는 당신을 볼 때에 내가 구속 받은 나를 보게 되고 나를 볼 때 당신을 보게 되니까 곧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내라. 내 구속 받은 나를 애끼는 것이 당신을 애끼는 것이요 이걸 사랑하는 것이 애끼는 것이요 이걸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당신을 대접하는 것이요 이걸 멸시 천대하는 것이 당신을 멸시 천대하는 것, 이 둘이 아니고 이것, 사랑과 행위가 하나라 그 말이오.

이것이 이렇게 돼서, 옳게 됐나 안 됐나 그 표적은 무엇으로 가지고 표적이냐? 표적은, 네가 그렇게 하면 “이기는 자는” 그것이 그렇게 되어지면 “낙원에 있게 된다” “낙원에 있게 된다” 낙원에 있게 된다는 것은 낙원은 주님 계신 낙원인데, 죽는 강도에게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그 낙원은 영원한 낙원이요 또 세상에서 시작된 낙원인데 그 낙원, 그 사람도 강도도 죽었지마는 그 말씀하고 난 다음에 그분이 사는 세계는 딴 세계입니다. 그분이 사는 세계는 죽을 때에도 그분이 죽는다는 것 그것 없고 기쁘고 즐겁고 감사가 굉장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때부터 말이지.

이래서, 지금 그분은 가 버렸지마는 오늘 우리는 세상에 있으면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오십 년이오 삼십 년이고 몇십 년이고 세상에 사는 동안 낙원 생활 하는 것은 주님과 동거 생활이라.

그래서 다른 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요 내 계명을 지켜서 나를 사랑하면 아버지께서도 너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와 가지고서 거처를 너와 같이 하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 와 가지고 거처를 같이 하겠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같이 하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게 다 계명 지키는 것이 뭐이냐 하면 성경 지키는 건데, 성경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성경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 어떻게 사랑하느냐?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이 네가 어데 있노?’ 이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으로 줬고, 또 사랑하기 위해서 줬고,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을 주셨고, 이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으로 가지고서 우리가 알 수가 있고 또 자연계시로 가지고 이래 알 수가 있어서, 하나님과 나와 동행하는 그것이 자기 나름대로는 알게 된다 말이오.

분명히 자기는 지금 주님은, 그 어린 신앙들도 볼 때에 이 사람이 지금 뭐 철이 없어 그런 게 아니고 옆에서 보면 ‘저 사람이 지금 주님하고 자기하고 함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함께 있는 걸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또 좋아하고 동거하는 그 표적이, 동거하는 그 표적이 그 사람 생활에, 그 사람 사상에, 그 사람 마음에, 그 사람 안면에, 그 사람 행동에 나타나.

‘저 사람이 하나님과 지금 같이 있는 걸 제가 믿고 있다. 같이 계신다.’ 같이 계시는 것을 다른 사람이 봐도, 제 삼자가 봐도 환하게 볼 수 있도록 보여진다 그 말이오.

그러고 ‘저 사람이 지금 - 무식하든지 유식하든지 - 그 동하고 정하는 그 모든 행동은 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피동된 것이지 제가 주관적인 행동이나 자율 행동은 아니다. 저거는 순전히 어릴지라도 주님에게 피동돼서 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 장성해졌으니까 그 어린 것을 보인다 말이오. 어린 것을 다 경험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나, 보인다고 해 나는 가졌느냐 하면 가지지 못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래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이요 행동이 사랑이라. 이 둘은 하나라는 것을 자꾸 이 생각해 가지고 그것을, 너무 세상에서 자꾸 거리 먼 것이기 때문에 말을 하면 그냥 그럴듯 하게 좀 이래 들려지다가 또 끊어버리면 그만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명상해야 돼요, 자꾸.

명상하는 데에는 이 특별계시를 다 자기 지식의 범위대로 다 활용을 하고 이 자연계시를 다 활용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주님의 그 사랑을 자기가 실감하고 또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자기의 행동이 생겨나고, 또 주님의, 이 모든 존재든지 예정이라든지 또 이 모든 하나님의 목적이라든지 당신의 그 도성인신이라든지 사활이라든지 사죄나 칭의나 화친이나 이 부활로써 중생한 것이나 우리에게 뭐 제사장 선지 왕직을 주신 것이나, 영광의 찬미가 지금 안 된 것 아닙니다. 영광의 찬미가 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새로 만드는 게 아니오. 영광의 찬미가 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부인하지 안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이미 그리스도가 다 해 준 것을 부인하면 부인해 버립니다.

버리면 버려져 버립니다. 또 가지면 가져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자면 그 사랑의 이 구속을 우리가 인정하고 가지고 있나 버리나 하는 그 문제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 표적은 낙원에 있는 것과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이니까, 그것 우리가 많이 느끼지 않습니까? ‘지금은 주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하는 일이 내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하고 있다.’ 주님이 하고 있으면 수월하고 그 일이 척척 형통해지는 것을 본다 그 말이오.

보고, 또 자기를 고난 가운데 되게 집어넣어 놓고 ‘주님이 나를 고난 가운데 집어넣어 놓고 지금 나를 시험하고 계신다.’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역사라는 것이 믿어질 때에 거게 대해서는 기쁘고 즐겁지 아무 염려나 다른 고통이 있을 수가 없는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 표적이 있느냐?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이 약속이 이루어진 표적이 있느냐?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우리는 처음 사랑을 찾읍시다.

이래서, 다른 모든 것보다도 그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모든 면으로, 그뭐 열여섯 가지를 말했지만 열여섯 가지도 한없습니다. 그게 우주에 충만하고 영계도 충만합니다.

이를 자꾸 생각함으로 거게서 연결돼서 사랑하다 보니까 이걸 사랑하게 되고, 그 열여섯 가지에 들지 안한 게 없어. 그러면 주님의 사랑 아닌 게 없어. 주님의 사랑 아닌 게, 이 땅위에 사랑 아닌 게 없어. 누가 나를 욕을 하고 주먹으로 쥐박는 그것도 주님의 사랑이라.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라.

그게 사랑이니 당신이 예정한 것이요 당신이 창조한 것이고 당신이 나를 사랑함으로 하신 그것이기 때문에 그게 주님의 사랑인 것이 확실히 깨달아지고 믿어질 때에는 그것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이렇지 거게 대해서 사망에 속한 것은 하나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부 생명과 영광과 평강의 것만 거게서 발동돼 나오지 딴것은 발동돼 나올 것이 없어.

이러니까, 이것이 온전해져 가지고서 우리의 언행심사의 모든 행동이 돼져야 그것이 생명에 속한 것이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된 것이고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 된 것이요 그것이 다 영생이 되어지고 완전이 되어지고 불변의 것이 되어지지, 그게 아닌 것이 주님은 배반해 놓고 하는 것은 악령 악성 악습이 공명심으로 하는 것도 있고, 또 자기 사욕으로 하는 것도 있고, 고집으로 하는 것도 있고 이건 전부 악령이 계획한 것이요, 우리에게 원죄가 들어서 이 모든 걸 도모하는 것이요, 우리의 그 모든 죄악의 악습 그 습성들이 뭉쳐 가지고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정 원수의 반대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있는 내가 안다. 이런 너거 보기에는 옳은 행동이 있지마는 나와는 끊어져 있다.” 그랬습니다.

“어디서 떨어진 걸 생각해라” 나와 끊어져 있다.

이렇게 이 중대한 걸 자꾸 우리가 느끼고 느끼는 것이, 느끼는 것이 어떤 사람은 아주 거리 멀게 그저 흐미하게 ‘그런가?’ 이래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 느끼는 것이 쌀내끼만치 느끼는 사람도 있고, 주먹덩이만치 느끼는 사람도 있고, 자기 몸이 다 싸여질 만치 느끼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그 속에 푹 파묻혀서 그 사랑의 그 가를 볼라 해야 변두리를 볼 수 없을 만치 중앙에서 암만 보고 보고 이걸 봐도 끝이 없고 저걸 봐도 끝이 없고 그 사랑 속에서 이와같이 지금 살아지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 이 성경의 증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다른 것 생각지 말고 주님의 이 사랑의 구속, 이 구속이 사랑이요, 구속 아닌 게 없어. 이것도 구속이요 구속 아닌 게 없어. 전부이 나를 사랑해서 구속하셔서 하는, 구속 아닌 게 없고 사랑 아닌 게 없어.

이렇게 우리가 자꾸 이 둘만 생각하는 데에서 모든 발동되는 우리 생활이 돼야 되지 이것에 끊어지고 난 다음에 하는 그게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그만, 이 세상에서 다른 것, 다른 사람 이목구비 그놈 맞출라다, 인간의 이목구비와 비위 맞출라 하다가, ‘이것 내가 기도해야 되지마는 명상해야 되지마는 그 사람 비위 맞추러 또 가 봐야 되겠다’ 또 ‘어데 결혼식에 가 봐야 되겠다’ 또 ‘장례에 가 봐야 되겠다' `그 사람이 오늘 우리 이석룡 목사님이 지금 출국한다 하는데 거기 가 봐야 되겠다’ 또 어데 ‘잔치에 가 봐야 되겠다' `아무것이가 오라고 지금 초대를 했는데 안 가면 섭섭할 터이니까 또 거기 가 봐야 되겠다’ 이놈의 인간들의 소원, 인간들의 체면, 인간들의 비위, 인간들의 이 인간들이라 말이오. 이것 다 맞출라 하니까, 이것 다 맞출라 하니까 뭐 언제 주님의 구속의 사랑이니, 깊이 연구해야 알아질 건데 연구하고 명상하고 기억하고 생각할 여지가 없어.

이래 가지고서, 그래도 저도 거창 있을 때에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 그 사람은 별스러운 사람으로 보고 그만, 그런 데 안 맞춰도, 안 맞췄을 때는, 안 맞추고 주님의 이 둘만 생각하고 살 때에는 모든 사람이 나를 존대했는데 이것들을 비위 맞춰 가지고 이래 하니까 존대할 줄 아는데 비위 맞춘 그것들이 전부이 나를 매장시키고 다 이렇게 막 짓밟고 처넣고 이렇지 하나도 존대하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 말씀은 참 모든 말씀이 그 천천 금은이라. 한 말 마디도 거짓말이 없어. 그 말씀을 믿는 것만치 자기는 행복이지 그 안 믿고 ‘이것은 이렇지마는’ 한 것만치 자기는 자살하고 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추석 명절에는 여러가지 과거에 구습이라 하는 것 구습 풍속이 있어 가지고서 문제들이 생겨지는데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그저 철없이 일방적으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단순히 하지 말고 자기 지식대로 다 활용을 해 가지고서 원만하게 될 수 있는 대로 마찰이 없고 충돌이 없이 잘 이기고 또 상대방에도 구원이 전달이 돼질 수 있도록 그렇게 지혜 있게 생각을 해 가지고서 어찌 됐든지 가급적이면 그 마찰 없이 무언중에 투쟁해야 됩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해라” 하는 것은 네가 얼마든지 맞고 있으라, 무저항으로 대항하지 말라 그 말 아니오. 그 오른뺨 치면 왼뺨을 때려도 내가 대항하지 않겠다 그것은 껍데기는 대항하지 안하고 속에는 네가 오른뺨을 때리면 그 사람이 너를 미워서 때렸으니까 너도 미워하는 그 미움에 피동돼 가지고 ‘너 왜 나를 오른뺨을 때리나? 이놈아, 나도 한번 때리자.’ 이리 돼지면 속에 악이 들어서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들어서 하기 때문에 그놈에게 네가 뺨을 맞아 네 뺨이 다 뿌사진다 할지라도 그놈에게 네가 종이 되지 말아라. 하는 그것입니다.

저는 지금은 그게 안 돼. 이러니까 왜정 말년 때 거창 있을 때는 그 6 5 때는 잘 승리했는데 내가 이 변화가 돼야 승리가 되지 승리를 못 하겠다.

제가 금식기도 하러 산에 가서 그랬는데 자기 여기 ○○○목사님의 아버지라.

믿는 것 자기 부인이 믿는 걸 거석하고 뭐 이랬는데 우리 집에 큰들 백 장로도 그때 거기 같이 갔었고 그뭐 갔는데 한 사십여 명이 가 가지고 기도하는데 내가 기도하러 가는 데 따라왔다 이래 가지고, 나는 저 위에 혼자 지금 돌 사이에 가 가지고서 금식기도 하고 이래 있는데 그분이 와 가지고서 그만 괭이로 가지고 마구 뚜드려서 여게 지금 요 어덴가 뭐, 여기로구만. 여기 터져 가지고서 피가 많이 났어. 온 뭐 우와기가, 양복 입고 갔었는데 그만 다 빨개지니까 그만 그분이 놀랬어. 그래도 그분에 대해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고 미운 마음이 없고 어찌 됐든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생명을 줄까? 또 이 사람을 이 기회에 구원할 수 있을까?’ 그 구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싶어서 내게는 어떻게 기쁘고 즐거웠지 그런 게 없었어. 아마 지금 같으면 누가 와서 그러면 ‘네 이놈의 새끼’ 주먹으로 쥐박고 울러메 꽂을 거라.

과거에 교역자회 때에 ○○○목사님이 자꾸 그렇게 해서, 그때 같으면 뭐 그 십 배가 돼도 내게는 문제가 없이 도로 그거 승리했을 터인데 그때는 말로만 그래도 못 견뎌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사십 세만 되면 저런 것 안 냅둔다’ 이 말 했다 말이오. 그 말을 했어. 그 말을 해서 내 속에서 그 말이 나와 가지고서 그래 뭐 이 서로 분쟁이 있어 놨는데 그걸 내가 ○○○목사한테 사과를 했어.

‘내가 사과한다. 그 사과 내가 그 죄값을 내가 물어야 되겠다.’ 그 죄값을 이백만 원을 물었어요. 이래 놓으니 돈이 있어야지? 이백만 원 못 물었는데 문 것 십일조 회계에서 이래 줬어. 내가 언제든지 갚을 수 있는 데까지는 갚을 것이고 못 갚으면 그것은 십일조 회계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쓰고 갚을 수 있으면 내가 그걸 갚으려고 지금 생각하고 거게서 우선 입체를 해 가지고서 그거 이백만 원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랬는데 거창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고 여유가 많이 있고 그 얼마든지 있어도 관계 없고, 일본 부장이 와 가지고 매일 신사참배 안 하느냐고 와서 조우고 조와도 내게는 유유하고 그 사람이 오면 뭐 저 오면 들어오라 소리도 안 했어. 저 우리 창문은 좀 마루가 높으기 때문에 이래 올라서면 창문이 요만치 보일 정도라.

와 가지고서 곤니찌와 하고 난 다음에는 거게 대해서 또 말해. 말하면 ‘나는 이해가 안 된다.’ 방에 들어오라 소리도 안하고 ‘이해 안 된다.' 그 말 한 마디 하면 나는 또 성경 보고 앉았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 섰거나 말았거나.

그 참말로 뭐 겐깡바레라 하더니마는 얼마나 그렇게 하는 일이지마는 그 사람이 한번도 내가 항거하지 안하고서 꼭 그대로 계속해서 하다가 다른 사람이 또 강한 사람 독한 사람이 와서 바꿔 가지고 와 가지고서 와다나베, 뭣이가? 거창 군내 제일 독한 일본 부장이 있어요. 조그만한 게 어떻게 독한 건데.

독하다고 유명한데 그 사람이 와 가지고서 황보유안 조사님을 그때 축하하러, 싱가파 함락할 때 축하하러 오라 했는 데 갔는데 강제로 사람들을 시켜 가지고 막 붙들어 가지고서 기어코 거기다가 절도 시키고 붙들어 가지고 제주를 먹여서 그 한 잔 먹었어. 막 붙들어 가지고 입에 대고 막 이래 가지고 지금 이랬어. 그 독한 인간이야.

이랬는데도 나한테 그때 와 가지고, 그 사람이 파송이 돼 와 가지고서 ‘내일 싱가파 함락 축하에는 오도록 하시이소. 오시이소.’ 이래서 ‘그래 내가 조금 기도해 보고 내가 그때 작정하겠다.’ 안 가 버렸어. 안 가고 나는 산으로 가 버렸어. 그것 그래도 그때는 그래도 유유해지고 이랬는데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여유가 없어.

그 여유가 없는 그걸 내가 지난번에 하고 그 모든 데 여유 없어. 이것 낙원 생활은 못 하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지 못하는 그 증거라, 증거. 그게 뭣이냐 하면 이 모두 다 인간들의 눈이니 뭐이니 비위니 인간 비위 인간 보고 사느라고 거기 맞춰 사느라고 하나님의 사랑도 구속도 입술로는 말해서 많이 증거했지마는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래. 능력이 실지로 없어.

이러니까 지금 도로 찾아 가지고서, 이제는 찾기가 처음에는 지식이 하나뿐이니까 요 하나만 하면 됐지마는 지금 지식은 그때 백 배도 더 넘으니까, 백 배도 넘으니 백 배도 넘은 이 지식을 가지고서 다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내나 사랑인 그 행동, 그 행동을 내가 도로 찾게 되면 처음에 거창서 하던 거 아마 찾은 것이 사랑도 백 배나 되겠고 행동도 백 배나 되는 이것을 찾으면 바로 찾으면 지금 ‘낙원에 있나 생명나무 과실을 먹나?’ 말은 그 표적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리 안 하면 안 돼.

언제 ○○○목사님이 설교할 때 내가 들으니까, 곰이란 놈이 그 겨울에는 들어가서 누워자는데 굴에 들어갈 때에 ‘내가 굴에 들어가서 삼동을 견디겠나 못 견디겠나?’ 하는 것을 나무에 올라가서 툭 떨어져 보고 아프면 ‘아이구 아직 안 됐다.’ 또 더 따먹고, 또 올라가 툭 떨어지며 아프면 또 더 따먹고, 툭 떨어져도 공 모양으로 툭툭 튀는 게 하나도 아프지 안하면 ‘인제 됐다’ 하고서 굴에 파 들어간다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표적은 뭣이냐 하면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 것, 또, 이것이 표적인데 이 지금 되다가 조금 될듯 해서 그 세계를 보면 기쁘고 즐겁고 뭐 몸도 좋아지고 그런데, 될듯 하면 이 또 세상에 모든 일이 이것 또 돼지고, 이래서 일찍부터 느껴지기는 ‘내가 있는 힘 전부는 성경 연구와 기도와 말씀 증거 요 세 개에만 전용하고 딴데는 쓰지 않겠다’ 이것을 내가 지난번에 팔십이년도에 아프고 난 그때부터 작정을 하고 내가 작정한 내가 지금 이 양산동 기도산에 이래 올라가 가지고 이래 해 가지고 올라가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용모가 변해진 것 모양으로 나도 그 용모가 변화되기까지 이렇게 살아보겠다. 내가 전부 죄투성이로 했기 때문에 살아보겠다 이렇게 작정을 해도 이 힘이 어만 데로 자꾸 빠져 나가고 이게 안 돼.

그래서 이게 될 대로 되면 인제 그게 회복이 될 것이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주님의 사랑 곧 주님의 구속 이것을 낱낱이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를 다 활용해 가지고서 연구해서 자기에게 느끼고 느껴 가지고서 주님이 만족할 수 있는 이제 이기는 자, 이기는 자가 우리가 되어지기까지 노력을 하고 거게서 발동돼 가지고 하는 것이라야 가치가 있지 거게 발동되지 안한 것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았어. 여러분들도 알기를 원합니다. 거기서 발동되지 안하고 한 것은 그것 다 자기도 속이고 남 속이는 전부 외식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어.

생명이 없어. 하나님과 연결 없는 건 생명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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