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27일 토새

 

본문 : 고전 3:16-23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만물과 달리 창조하신 부분은 몸과 마음이  아니고 영입니다. 동물도 몸도 있고 혼도 있습니다.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 시험하고 통계해서 동물과 사람과 같으나 사람은  고등동물이라 말을 하고 모든 철학을 간추린 결론은 사람의 상부는 영생하나  하체는 죽는다. 또 사람 중에도 위인 들은 영생하나 그 위대함을 따라서 그  존재의 수명은 결정된다. 그렇 게들 말하는 것은 모르는 소리를 하지마는 현재에  보이는 그 실상들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달리 영과 육을 겸해 가진 존재로 지음받은 것이 사람뿐입니다.

천사는 영은 있으나 물체가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물체는 있으나 영체가  없습니다. 사람만이 영육으로 되어 있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영원히 내주하시기 위해서 당신만이  거처하실 수 있는 당신의 보좌를 사람에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는 그 사람에게, 피조물의 유혹을 받은 후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일이  되어 하나님이 배반을 받으신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고 하나님은  떠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영은 하나님과 끊겨져서 단번에 죽었고 또 심신으로 된 육도  죽은 것이 어느 기간 동안을 절쳐서야 완전히 죽는 그 죽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받은 인간이 출생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출생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정죄에서 정죄받아 그 영이 죽어 있는 그것이 거게 소속한 육이  따라서 완전히 죽는 그 죽음의 완성을 하기 위해서 나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산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점점 줄어져 간다는 것이요 또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것은 그에게 육에 대한 산 부분은 하나도 없이 다  없어졌다는 사망으로 종결을 지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의 심신의  요소에는 산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만이 내주하실 수 있는 것으로 창조된 것인데 사람의 영이  범죄 후 죽었다고 해서 사람의 영 속에 악령이 와서 거처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또 악령이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주하실 수 없는 타락한 것을 하나님께서 내주하실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세 가지 대속을 이룬 것입니다. 유죄에서  무죄로, 무죄에서 의로, 의에서 하나님과 화친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내주하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으시고 이 닦아 둔 예수님의 공로의 길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영 안에 내주하실 수 있게 됐습니다.

 그것이 내주하시게 된 모든 설정된 공로가 예수님의 대속이요 또 내주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입혀서 그 공로로 말미암아 영에게 있는 온갖  더러운 것이 다 제거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의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내주하시게 된 그 시기가 곧 중생된 그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의 영 안에 와서 내주하시게 될 때에 그 영은 타락한 본  위치에서 하나님이 근본 지을 때에 목적하신 대로의 그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택자의 그 영 안에 내주하시기 전, 죄의  문제가 깨끗이 다 해결되고 또 의가 완전히 건설되고 난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내주하실 수 있어 내주하게 된 것이 곧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하나님이 계실 성전될 수 있는 하나님이 내 주하실 수  있는 마음과 몸은 악령이 점령해서 내주하게 됐고 하나님만이 내주하실 수 있는  영에는 진공입니다. 그는 완전히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는 있으나 없는 것과  꼭 같은 영 곧 죽은 영입니다.

 하나님과 끊겨져 있는 생령이 되지 못한 죽은 영으로서 영원히 그 육과 같이  있기는 있지마는 속에 능력이 있어 심신을 통치하는 그 일은 안 되고 그 영 안에  아무 능력이 없으니까 영은 있어도 없는 것 한가지고,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계실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의 심신에만 악령이 와서 저의 집을  삼고 내주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악령의 전이 되어 악령의 원대로 이용당하다가  세상을 떠나 무궁세계의 지옥에서는 악령이 그 안에 내주한 그 심신으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무슨 고통인고 하니 하나님과 끊겨져서 하나님이  없는 고통이요 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그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는 그 피조물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도 거게는 계시지 않습니다. 순전히 거짓말 하는 자의  아비가 되는 거짓부리, 아니면서 그렇다고, 제가 하나도 하지 못하는 것이 다  제가 했다고, 불한당, 이것이 그 안에 내주해서,  하나님 싫어한 그 인간, 하나님 필요 없다고 한 무신론자 그 인간,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소용 없고 제것만 가지고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인간 그 인간들을  영원히, 자기네들이 소원한 그대로 영원히 이 루어서 변동 없는 저들의 소원  저들의 주장대로 이루어 놓으신 것이 그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세상에 살 때에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만치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하나님이 되시고 또 하나님의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만치  그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기에 제가 자존자로 아는 그것이 완전한 멸망이요 제 힘으로 제것 가지고  산다는 그것이 완전한 가난입니다. 자기는 자기로서 스스로 자존한 것처럼 또  독존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 멸망이요 자기의 소유  멸망이요, 하나님의 처소를 싫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마귀가  말하는 것 원하고 마귀의 주장대로의 것을 원하는 그대로의 세계를 만들어  그들에게 준 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참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이렇게 지은 것이 피조물 가운데에 특수 창조입니다. 거게서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죄의 문제를 해결지으시고 또 의의 문제를 해결지우셔서 무죄자로  죄 없는 자로, 또 의로운 자로, 이렇게 만드신 그 다음에 하나님이 화친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와서 내주하실 수 있습니다. 이래서 영은 단번에 예수님의  공로의 사죄를 입히셨고 칭의를 입히셨고 그 다음에 화친으로 내주해 들어온  것이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그 영에 내주하시고 난 다음에는 그 영이 살았기 때문에 영이 그  심신의 주격의 그 본질과 본성을 갖추었고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후는 하나님이 중생된 자의 그 심신에게 직접 관리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지 못하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치 월권하지 아니하십니다.

 왜? 그에게 하나님이 지어서 분담시켜 준 주격이 있기 때문에 그 주격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무시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이 '성령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그 심신에게 증거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후는 하나님은 무슨 역사를 하시는고 하니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이 대속해 놓으신 공로를 그 사람에게 완전히 입히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니 일차적으로 영에게 입혀서 영을 중생 시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중생한다고 합니다. 또 그 다음에는 심신을 중생 시킵니다. 심신을 중생시키는  것이 심신을 새것으로 변화시켜서 성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은 이 역사를 하고, 또 성자는 대속의 공로를 설정했고, 또  성부는 경영한 것을 성자와 성령을 파송해서 이 일을 이루시고, 이루심으로써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영 안에 내주하시고 그 다음에는 이 마음과 몸 안에  내주하시려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전을 지금 건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너희들이 하나님의 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또 그러면 중생된 영은 무엇하고 있는가? 중생된 영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심같이 그 육 안에도 자기와 하나님이 내주하시기를 원하여 역사합니다.

그러기에 영은 자기의 심신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자기가 심신의 주격이 되어  심신은 그 영에게 절대 복종하는 영원 불변의 복종자가 되고 그는 주격 행사를  하고 하나님은 저의 사람이라는 그 사람 안에 영원히 주격으로 내주하셔 가지고  영생하게 하려 하여 영의 소원과 성령의 소원이 하나되어서 싶사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일차적으로 성령이 내주하시고, 그러면 그 다음에  이차적으로 성자가 내주하시고, 그 다음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가 내주하셔서  하나의 위만 그런 것이지 한 하나님이신데 비로소 이런 순서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모든 피조물은 다 너희 것이 된다'는 그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그 신성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성자를 말합니다.그리스도는 성자입니다. 성부가 아니고  성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중생한 영도 우리의 심신 안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하고 이 역사를 위해서 도성인신 십자가의 대속을 하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  하시고 예정하셔서 이 지극히 큰 공사를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은 주격은 하나님이  벌써 내주하고 계십니다. 또 이 심신도 하나님이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 처음 창조를 받았고, 되기 위 해서 영 절단난 것을 다시 대속을  하셨고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말은 성령이 너희  마음 안에, 마음 안에 영 영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게서 하나 알 것은 뭐이냐?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러면 여게 지금 성전 건축은, 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하는 아직까지 미준공된 이 성전을 가리키는 것은 영을 가리킴이  아니고 이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이건 아직까지 미준공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공사를 하시는데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 처음에는  성령님이 들어오시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가 들어요시고 그 다음에는 성부가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완전히 내주하시게 되는데 이러기에 내주하시려고 성령이  들어오시는 데에 밀고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왜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밀고  들어오시지 못하는가? 그 비유는 우리가 강해 그런 게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의 부분 부분 또 우리의 몸의 부분 부분에 그 부분에 죄가  있는 데는 하나님이 들어오시지를 못하십니다. 그러기에 먼저 들어오시는 공사를  하시는 것이 사죄의 역사를 하시고 칭의의 역사를 하시고 그 다음에 이제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안에 어느 부분이든지 거기에 예수님의 두 가지 공로가 적용돼서  두 가지 공로가 그 심신에게 효력 있게 와서 역사를 한 뒤 에라야 하나님이  내주하셔서 화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내 주하시면, 왜? 멸해집니다.

죄가 있는 데는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멸 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 당면한 심신의 요소도 있고 또  현실에 당면한 하나님의 그 뜻도 있습니다. 보면 그 현실에서 거게 해당된  요소가 거게 해당된 하나님의 뜻과 결합이 됐으면 죄는 멸해졌습니다. 또 의는  건설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완전히 효력있게 거게서 역사하시게  됐습니다. 그러면 거게는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들어와서 점령하시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나가라 할 자가 없고 나 가지도  아니하십니다. 왜? 그 요소는 하나님을 모셔 보니까 마귀를 모신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간부를 사귀었다가 그 뒤에 간부 맛을 보고 난 다음에  본부를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 과거에 간 부보다 본부가 낫다고 해서 다시는  간부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그것이 이 성화된 요소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성화된 요소들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주하시면 어떻게 내주하시는가? 그는 무형의  존재십니다. 무형의 존재로서 무형의 전지요, 무형의 전능이요, 무형의 완전이요  무형의 사랑이오. 무형의 존재가 자기 안에 계셔서 자기 안에 자기가 되어,  무형이니까 유형으로서는 자기뿐입니다.

 무형으로 내주하신 완전자가 자기 안에 유형한 자기 안에서 유형적인 모든  활동을 하니까 그것이, 무형의 존재가 유형 안에서 유형적으로 완전 행동을  하니까 그것이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 이라고 말씁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 안에 부분적으로 계셨으면 그 부분 부분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부분은 전지자입니다. 전능자입니다. 완 전자입니다.

피조물에게 대한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것이 창조주라 말 아니오. 피조물인데  피조물 안에 창조주가 무형의 존재로 내주하셔 가지고 그를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니까 그 피조물의 행위는 창조주의 행위요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창조주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또 세밀한 것은 시간 없으니까, 깨달으면 깨닫는데 깨닫지  못하는 자는, 깨달으면, 휘장만 열면, 휘장만 열면 환하게 다 보입니다. 뭐 하나  하나를 대다가 말할 필요 없어. 휘장 안에 있는 것을 그 휘장이 열리지  안했으니까 그 휘장 안에 하나를 들고 와 가지고 '봐라,이게 이렇다.' 했지마는,  아무리 들어서 아멘 하고 했지마는 휘장이 딱 가리워지면 그만입니다. 휘장이  뭐입니까? 자기입니다. 자기. 어리석게, 자기.

 자기만 부인하고, 자기 부인하는 그게 자기 아닌 자기라. 자기는 하나님으로  존재했고, 하나님에게 속했고, 그를 위해서 있고, 그를 높이고, 그를 증거하고,  그의 것을 받아서 피조물에게 전하는 그게 자기인데 어리석게 그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것이 휘장이고 그것이 모세가 낮을 가룬 수건입니다. 그것만 열면 뭐  볼 것 없어. 자기만 부인하면 다 하나님과 다 그만, 자기 부인하면, 자기  부인하고 주를 믿으면 사죄 다 받았어. 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면은 칭의 다  가졌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역사하시면 돼. 그 역사 그게  영생 이오. 흠없는 역사입니다.

 이런데 믿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시기를 원하지마는 죄와 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죄는 자율을 바꾸는 것이 죄를 사함받는  것입니다. 죄는, 죄는 타율인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인간 저거 대가리 속에서  나온 자율 그걸 주장하는 그것이 죄입니다. 자기의 모든 챈위만 버리면 자기의  지능과 모든 것, 활동만 부인하면 당장 사죄로써 무죄자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자기라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오. 자기의 소산,  자기에게서 나온 소산을 부인하는 그것으로써 사죄가 이루어지고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칭의가 이루어집니다. 자기 아닌 자기를 부인해 버리고 참사람  자기, 곧 하나님의 전인 자기, 하나님께 속한 자기,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사는  자기, 자기만 바꾸면 그만 칭의의 역사는 이 루어집니다. 자기만 바꾼다 그말은  하나님 그분이 주격되어 그분에게 내가 피 동되는,나는 주격이 아니오.나는  그분에게 피동된 자요.내가 피동되면 칭의는 이루어집니다. 칭의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내주 하셔서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율을 원하고, 내가 어떤 사람에게 '혈육 정실을 끊어라' 한다고  고것을 반대를 해서 혈육을 주장해서 그 죄악이 뻗쳐 나가 차차 뻗쳐 나가서  차차 차차 어데까지 뻗쳐 나가는지? 가까운 데서부터 먼데까지 뻗쳐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내가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그때에  심판은 내가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시킬 것이오.

 '혈육 정실을 버리라. 아브라함에게 네 아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는  그 말씀이 첫 명령인데 혈육 정실은 크거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실이 아니라.' 이랬는데 얼마든지 가르쳐서 해도  그걸 반대해서 나갔으니까 부득이 그때 심판할 때는 '백 목사 네가 와서 이걸  심판해라. 네가 이렇게 가르치지 안했느냐?' '나는 그렇게 안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가르쳤 느냐?''나는 혈육 정실에 속하지 말라고 내가 가르쳤습니다.'  '왜 그렇.게 가르쳤는데 네가 반대했노? 네가 몰라 그런 것 아니지 않느냐?  여게서 가르친 증거자가 있지 않느냐?'  에녹이 예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성도들로 더불어 성인으로 더불어 함께  와 가지고서 심판하는 그것이 뭐이냐? 꼭 같은 현실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자  지킨 자 있을 때에 꼭 같은 현실에 지킨 그자가 나와서 그 현실에 지키지 못한  그자를 심판합니다. 꼭 같은 지식을 가지고 신앙을 가졌는데 그 지식 때문에  신앙 가지지 못한 그자를 심판합니다. 학자는 신앙가의 학자가 심판할 것이오.

어리석지 맙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가지고는, 죄는 무슨  죄? 세 가지 죄입니다. 세 가지 죄. 하나는 무슨 죄요? 하나는 하나님을 말씀을  어긴 죄요, 그건 다 자율로 어겼습니다. 어긴 죄요. 하나는 또? 자기가  주장하는, 자기가 주장하는 자기 주장, 자기 주관, 그 죄요. 하나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제가 왕이 되고 주인된 그 죄요, 그 전부는 자기에게서 나왔습니다. 그  전부는 자기에게서 나왔 으니 그 자기가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자를 위주해서 날뛰는 그 사람, 이 세 가지가  해결되기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번에 할라 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수많은 현실을 큰힘 들여서 만드셔 가지고 한 현실 한 현 실에서 한 부분 한  부분을 이것을 중생 성화시켜 하나님이 내주하시도록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역사하시는데 그 한 현실에 해당된 그 한 심신의 요소도 그것도 완전히 사죄  칭의 화친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인데 사죄 칭의가 이루 어지는 것은 그때에  해당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느냐 긍정하느니 꾀우는 간부들이 많아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말라고 많이 꾀우지만 이 간부들아 물러가라!  간부들아 물러가라! 나는 주님을 영접한다 해서 그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이행할 때에 그때에 나는 그 진리와 하나되고 그 진리 안에 역사하시는 영감과도  하나되어 성령과 진리는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치 않고는 기독교의 구원은 털끝만치도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절에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말은 너희들을 인도하는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을 인도하는. 너희들에게 전도하는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을 인도하는  자리에 앉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인도도 하고 전도도 해서,  "모세 자리에 앉았다" 그말은 모세가 크게 위대하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모세가 인도자입니다. 너희들을 인도하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모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말은  행하고 지키되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러면 행위와  그들이 말하는 말과 다릅니다. 말은 네가 지켜 행하지마는 행위는 네가 따라가지  말아라 그말은 행위와 말과는 다른 것을 말했습니다.

 '본받지 말아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러면  구원은 이게 뭐이요? 무거운 짐이라 말은 무거운 짐이라 말은 인간이 볼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짐입니다.그러나 지난밤에 설교에 '아주 가볍고 내 짐은  가볍다.내 멍에는 쉽다. 이랬는데 사람들 보기에는 무겁습니다. 져 보면 가볍지.

 이러니까 이 실상 구원은 다른 사람의 구원은 이루어도 제 구원은 못 이룬다  그말이오.무거운 짐 안 지고 간 자가 좋은 줄 압니까? 지고 가는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 보기에 무거운 짐인데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인간으로서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하고 나서 보니 이루어지니까 초 자연의 능력이 와서 한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이 자들은, 서기관은 성경 잘 아는  사람들이요 바리새인은 열심히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남의 구원이 되는 필요한  말씀도 바로 증거했고 또 구원에 실행이 되는 무거운 짐도 가지고 씌워 가지고  지고 가라고 독촉해서 지고 가고 그러니까 남의 구원 시키지마는 제 구원 이루지  못 한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좌와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러니까 사람은 순전히 예수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인 자기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된  그 사람이요 행위는 너희들이 따라가면 큰일나는 행위요. 행위와 사람은  너희들이 하나도 가까이 하지 안할 사람이요 다만 그들의 말은 지켜 행하라, 또  그들이 명한 것은 행하라. 그 짐지고 가는 것이 너희들의 구원이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전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꾼 노릇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서도  될 수 있어. 당신의 복음 운동을 하면서 저도 제 복 음으로 받으면 되는데 제  복음으로는 안 받고 남에게 전달만 해 주는 자는 전달만 되지 제 구원은 하나도  안 됩니다.

 그것이 안 된 증거가 뭐이냐 하면 그 중심이 제 중심입니다. 내나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하나님이 하나님 중심으로서 선악을 결정지우는  것, 하나님 좋아하면 선 싫어하면 악 하는 것처럼 인간이 저를 제 중심해서 하는  그것이 원죄인데 그들은 원죄 그대로 있는 자들이요 다만 하나님이 이용해서  말만 쓸모 있지 행위도 쓸모 없고 사람도 쓸모 없으니까 사람과 행위는 네가  가까이 하지 말고 다만 그 전하는 말만 너희들이 들어서 너거 구원을 이루라  했으니 오늘에 목사가 됐다고 구원 이루어졌다고 생각지를 마십시오. 오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됐다고 해서 구원이 된 걸로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에 있으면 안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멀하시리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멸하면 그뿐이오. 멸하면 그뿐 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해서 멸하지 아니하시고 저들이 악령으로 더불어 멸해집니다. 현실에서  악령으로 합작돼 멸하지 하나님이 들어 가셔 봤자 멸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이 완전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되는 것인데 무형의 존재의 모든 완전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완전은 유형으로서는 내가 나타나는 완전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의 완전인데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들어오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오실라고 하기 때문에 '주여 내 안에  오십시오' 간구할 필요 없어. 우리는 그 길만 닦으면 됩니다. 그 길이 뭐 이요?  내가 길이요 진리라' 주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놓으신 그 사죄로 죄만  멸하면 즉시 들어오십니다. 칭의만 건설하면 즉시 와서 일을 하십니다. 화친만  가지면 하나님은 안에 내가 되고 나를 주장하시는 나는 당신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나의 주가 되십니다.

 "-18절에 아무도-자기를 속이지 말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어떻게  하는 게 자기 속이는 것인데?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하나님의 지혜 외에, 하나님의 지혜 반대 지혜 말이요,  하나님의 지혜는 지혜 있는 건데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성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 지혜의  정반대자가 되어라. 그러 며 이 지혜가 무슨 지혜인가?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미련한 지혜라 말이오.

 세상 지혜는 무엇입니까? 세상 지혜는 타락한 인간이 타락한 그 때부터, 하와가  배암을 만날 때부터 하나님에게 대한 감사가 떠나갔고 또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무오성이 차차 흐려졌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다  부인하고 나니까 그렇게 나쁜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쁜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어.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든지 요거 하나님 말씀 어겨도 요거는 안 하면 안 되겠다,  하나님 말씀 어겨도 요건 안 가지면 안 되겠다, 안 하면 안 되겠다. 안 잡으면  안 되겠다. 놓으면 안 되겠다 하면 벌써 그것은 네 현실이 그것 하나에게 전부  집중 집결됐다. 집중 집결됐다.

 하와야, 그 과실 밖에 하나님이 먹기 좋은 과실이라고 하신 수많은 과실이 있는  그것 하나도 안 보이고 네가 그것만 보이는구나. 이제 그것이 자기에게는  선악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레 아침에 제가, 목요일 아침인가? 그날 아침에 내가 설교할 때에  말했습니다. 하도 가르치는 것이 너무 배우는 사람들이 둔하고 거리가 멀어서  그저 설명을 하다 하다가 마지막에 말하기를 '마귀는 우리를 점점 좁힌다.

하나님은 우리를 점점 넓힌다. 그거나 기억해라.' 말하고 그쳤습니다.

 공간으로 좁힙니다. 요 자리만 보게 하요. 이 감옥 밖에는 안 보이게 합니다.

자기 침실 밖에는 안 보이게 합니다. 자기의 가정 밖에는 안 보이게 합니다.

사회 밖에는 안 보이게 합니다.

 사회 보고 사는 사람은 가정만 보고 살도록 만들고, 가정 보고 사는 사람은  자기만 보고 살도록 만들고, 자기만 보고 사는 사람은 자기의 속에 하나의  욕심이나, 하나의 감정이나, 하나의 무슨 그 기업이나 그 한 가지 거기에  집중하게 합니다. 거게 집중하게 해서 그것만 보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을  표준해서 하니까 전체에 대해서는 막 사망이오. 그것만을 끝으로 말하고  마쳤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이것은 그만 영감 도리 밖에 것은 다 이 세상 지 혜입니다.

제가 어느 박사의 학설을 통달했어도 그것도 다 밖의 것 이오. 어느 또 권력가의  주장을 통달했어도 그것은 신구약 성경 영감도리 밖에 것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지혜 있는 자라  말은 하나님의 영감 도리를 무시하고 하나님 영감 도리에는 머리를 싸 짜맬  이유가 없다 그말이오! 하나님 도리에는 머리 싸 짜맬 이유가 없어. 그까짓 거야  졸며 봐도 되고 안 봐도 되고, 백 독 하라 하는데 한 번도 안 하고 '했다' 하면  되지. 네가 네게 속아서 너를 망쳤다. 천하에 어떤 서적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더  권위 있고 네게 유익을 준다.

 그런데 인간의 서적은 가치 있는 줄 알아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저서는 손에 턱  품고 다니면서 어데 가면 자랑삼아 책상 위에 턱 이렇게 놓습니다. '나는 이런  외서를 봅니다. 이 원서를 읽습니다. 이런 높은 공부를 합니다.' 성경은 갖다  놓기가 '아이구 저거 어리석은 인간, 저 켸켸묵은 성경, 한글로 써놓은 성경  저거 보는구나.' 네가 못나 그렇지 하나님 말씀이 그떻게 권위 없는 거는  아니다.

 어리석어, 어리석어. 여기서도 박사들이 많이 있지만 박사 다 회개 해야 돼.

박사들이 다 회개해야 된다 말이오. 무슨 박사나 모조리 도 매금으로 다  회개해야 돼. 무슨 가치 있어? 왜? 박사의 지식이 왜 가치 없어? 그건 어데서  나와?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왜 가치 없어? 박사의 지식이 가치가 없는 것이  그것이 왜 잘못됐느냐, 가치 없느냐? 그것을 내신 이를 부인했기 때문에 그걸  내신 이를 부인하고 보존하신 이를 부인하고 그것이 존재 목적을 부인했기  때문에, 모든 과학을 누가 냈느냐? 네가 냈느냐?  오늘 어떤 과학자, 과학자 너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과학을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내신 목적이 당신을 나타내 증거하려는 것이오. 그것을 보존하고  생장하는 것이 당신이신데 당신 한 분으로 인하여 그 모든 이 세상 지식의  원인이 하나덤이신데 원인을 버려 버리고 원인을 부인한, 마귀가 돼 가지고  원인을 부인하고 원인 아닌 자를 원인을 삼아 가지고, 원인 아닌 자 마귀를  원인으로 삼고 제가 원인이 돼 가지고, 모든 과학은 저 위해 있는 것 아니고  하나님 위해 있으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요 또 그것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요전번에 언제 양성원에 과학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 내가  그분에게 말을 했습니다. 거기 대해서 좀 주의를 해서, 그 어떤 과학이든지  과학을 말할 때에 그 과학의 창조자, 그 과학의 조성자, 그 과학의 원인자, 그  과학이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지식입니다. 그 런데 그분을 부인하면 그 과학이  죽었어.

 또 모든 인간 지식이 다 그 지식의 목적이 뭐이냐? 그 지식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 나타내는 것이 그 지식이 목적이요 존재 목적이요 가치인데  그분을 나타내지 안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증거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 아닌 다른 걸로 말미암아 생겨졌다고 하니까 완전히 멸망이 아니냐? 나쁜  것 아니오. 그래서 주인을 하나님으로 삼아라. 그러면 모든 지식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 말인데 그말을 암만 해야 안 알아듣는다 그말이오.

 뭐 여게 학박사 있지만 학박사들의 지식이 요만합니다. 요만해. 나는 거기  비교하면 이 예배당보다 큽니다. 내가 장담할 수가 있어. 어리석지 말아요.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나는 요 지혜가 아니오.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가 모자라고 틀린 게 있어도  당신의 지혜로만 지혜를 삼고, 당신의 지식으로만 지식을 삼고, 당신으로서만  주권자를 삼고, 당신으로서만 원인자를, 삼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보존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하나님을 증거하는  이것을 나는 성경에 그렇게 가르쳐 준 것으로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론  심판받을 것이 있겠지마는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그래도 원 강령은 바로  됐다고 하는 확신을 가집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자기 궤계, 자기 꾀, 자기 꾀 자기를  속이는 꾀, 자기를 속이는 꾀, 이 세상 지혜가 자기를 속이는 꾀가 됐다  그말이오.

 이 세상 지혜가 하나님이 조물주시요, 하나님이 근원자시요, 또 그 모든 지혜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으로서 그  결론을 지우면 그것이 자기 속이는 게 아니라 있는 것만치 자기를 지혜롭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 이루어 가는데 제일 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아주 높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 중에는 이 세상 지혜가 많이 있는 사람 가운데에 그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걸 만일 그것이 구원에 방해가 되면,  자기의 수많은 지식이 자기 구원을 돕는, 구원을 돕다니? 하나님을 아는 일에  돕는 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에 돕는 일, 하나님의 일하는 일에 돕는 일, 돕는  게 되면은 줘지마는 그것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음행의  포도주라,하나님 앞에서 간음하게 하는 만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간부 이  피조물로 더불어 하나되게 하는 그 음행의 포도주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데도 지식이 뭐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몇 가지 알아 가지고 자꾸, 예를  들어 인문과학이나 무슨 자연과학이나 어떤 뭐 물질과학이나 허 이나 하나  증거하면, 어리석소. 그것만 증거해 가지고 그 시간 되면 그것만 역설해 가지고  '이게 필요하다. 필요하다.'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어떤 과학을 증거하면은 그 과학 증거에서 '이 과학은 하나님의, 이 과학은  조물주를 이 면으로 증거한다. 이 면으로 조물주를 나타낸다.' 조물주의 근본을  가르치고, 목적을 가르치고, 그것이 과연 땅위에 있는 어떤 과학이라도 어떤  지식이라도 그것이 그것으로 독립할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것으로서 역설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에 역설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역설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역설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과 하나님으로 인한 것과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걸. 그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 어지는 결과를 맺는 요것이 안 되면 죽은 것입니다.

 뭐인지도 모르고 자꾸, 아무것도 모르고 편견된 지식 그것 가지고서, 눈에는,  눈에 무슨 세균이 들어 가지고 눈이 아프니까 '세균은 어떻 하든지 독약만  찌르면 세균은 죽는다. 세균이 들어서 눈을 아프게 하는 것이니까 세균 죽이는  독약 찌르면 되지 않느냐?' 세균 죽일 독약을 눈에 넣으니까 눈에 있는 세포가  어느 정도 독을 견딜 수 있는 그것도 정도도 모르고 그 세포가 다 죽어버릴 그런  지나친 독을 넣으니까 눈이 당장에 소경돼 버립니다. 그게 일방적 지식이오.

일방적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뭐 누구는 말하는데 '여게는 거석하니까 이제 고려신 학교에 가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된다'고. 고려신학교에 거게 있는 교 수들도 내가 다 알고,  다른 지식은 몰라도 성경 지식은 내가 그 정도를 다 압니다. 다른 거는 나는  모르요. 이제는 여게도 할 수 없어 이제는 진리만 먹여 가지고 안 되겠다.

이래서 내가 어제도 교수 두 분을 데리고 앉아서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꺼부지  기, 이제는 뿍시미를 좀 먹여서 헛 배를 채워야 되지 이거 참것만 먹이니까  소화를 못 시키고 만홀히 여기니까 이건 다무시해 내트려 버리니까 못쓸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뿍시미를 태워야 되겠다 그렇게 말했어.

 이제는 일반신학교서 가르치는 조직신학에 대가리가 터질 것이고. 성경신학, 또  계시학, 또 무슨 인문하, 속죄학, 또 구원론, 말세론, 뭐 변증학, 뭐 주경신학  별것 별것 다해서, 책이 한정 없소. 한정 없어. 그러나 옳은 것 하나 알면  삐뚤어진 거야 천개 만개야 배울 것도 없고 옳은 것 한 개만 알고 옳은 것 한  개와 다르면 '틀렸다.'  옳은 거는 하나뿐이고 삐뚤어진 거는 억만 개도 넘으니까 억만 개 '이것은 삐  뚤어졌다 삐뚤어졌다' 그것 배울 필요 없어. 억만 개 넘은 것 그걸 배워 가지고  '자, 이것도 삐뚤어졌다 이것도 삐뚤어졌다.' 억만 개 배울라 하면 상당히 아마  일 년은 걸리겠는데 그것 배울 필요 없다. 옳은 건 한 개뿐이니까 옳은 것 한  개만 배워라.

 그러면 이것 다 어떻하라 말이냐? 그것 배울 필요 없고 옳은 것 하나 배우고  요거와 틀렸거든 '틀렸다.또 가져오라.' 요것 보고,요거와 틀렸거든 '틀렸다.'  요 하나 옳은 것 가지고서 틀린 것은 억만 개라도 틀렸다고 정죄를 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첩경을 가도록 한 것인데 첩경을 받을 만한 그런 가치가 없는  목사들이요 교역자들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뿍시미를 많이 먹일 것이라.

 이래 가지고 성경도 머리가 갈라지도록 해도 합격이 안 되도록, 이제 암만,  지난번에 안수를 할라 하다가 좀 연기한 그 사람들은 그 과거에 속했기 때문에  그분들은 그렇지마는 앞으로 공부하는 사람들로는 전 국에 목회자 양성원에  졸업해 가지고 목사되는 일이 제일 어려울란지 모릅니다. 제일 어려울란지 몰라.

그 뿍시미 다 외워야 되지 또 업수이 보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대해서 공부한  것을 내가 세밀히 시험을 치러야 돼지지 이러니까 '참 어렵다 누가 이 공부해  내겠노?' 이래야 양성원 가치를 좀 알아주지 그리 안 하면 헐본다 그말이오. 참  어리석어.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무슨 지혜? 세상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세상 지혜가 자기 꾀워서 죽이는 궤계라 그말이오. 궤계라 말은 꾀우는  꾀라 말이요, 꾀우는 꾀. 꾀우는 꾀. 이 세상 지혜가 자기를 멸망시키도록 하는  자기를 꾀워서 멸망시키는 '궤계라 그맣이오. 알고 해야 돼.

 내가 보기에도 '저 사람은 지식이 들어서 저렇게 믿지 못하게 되는 구나.'  지식의 궤계에 빠져 가지고 있거든. 조금 높아보면 그게 세상으로서도 조금  높아서 학교 선생만 해도 하나님도 받기가 어렵소. 또 만일 대학교수가 되면 더  어렵소. 대학교수 그까짓 게 뭐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게. 인간 이치를 하나도  모르는 게. 제일 큰 분이 자존자 조물주신데 그분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것이,  멸망시키는 몽둥이도 하나도 모르는 것이. 그 뭐 안다고? 저 죽는 것도 모르고  사는 것도 모르고 그저 술취한 자와 같이 다만 자기 조부라운 주관에 파묻혀  가지고 날뛰는 그 어리석은 자라 말이오.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절에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그러면 지혜가, 지혜가 자기에게 무슨 작용을  합니까? 지쎄가 자기에게 무슨 작용합니까? 자기에게 지혜가 세상 지혜가  태산같이 있다 할기라도 그 지혜가 자기에게 역 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생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알겠습니까?   자기에게 지혜가 산더미같이 세상 지혜가 있어도 그 지혜가 자기에게 활동할  때의 그 지혜를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생각이라고 했어, 생각. 그 많은  지혜가 네게 활동하는 활동은, 생각은 말이오.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그게 다 헛일이라, 헛일. 그 생각이 헛일한다 그말이요, 헛일.

 이러기 때문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제 생각대로 아주 지혜롭게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어리석어. 자기 주관 안 빼버리면 안 됩니다. 죄도 부분적인 죄가 있고 자기의  전체를 주관하는 죄가 있어. 자기 전체를 주관하는 죄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예수 믿는 구원은 어림도 없습니다. 제가 이용물만 돼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저는 증거는 합니다.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 구원 역사를 할라 하니까 저를 줬지마는 저는 '나는 이 구원  싫습니다.'했으니까 저는 멸망하나 그 구원은 전달시키기 째문에 제가 전달 안  할 수가 없어. 안 할 수가 없어. 목사 시키면 목사 안 할 수는 없어. 전달 안 할  수 없어. 전달하지마는 제게는 소용이 없어. 거게 보니까 행위도 못쓸 것이고  사람도 못쓸 거라. 그것 뭐인데? 제 소원대로 제 주장대로 제 중심으로, 원죄로  산다 그말이오. 어리석지 말아요. 지혜로웁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세상에서 조금 무슨 문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사업적으로,  사회적으로, 활동적으로 조금 뭣하다 하는 것은 세상 지혜가 많은 건데 있는  것만치 하나님과는 멀어집니다. 있는 것만치 자기 우상을 만들어서 자기를  스스로 멸망을 시킵니다.

 이 학자들, 이 세상 존귀한 자들, 세상에 지혜 있는 자로 아는 자들 다  회개해서 죽기 전에 회개를 하십시오. 죽기 전에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 안 하면  자기만 속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건지 안 할 건지 앉아서  계산해 봐서 알아야지. 그때 가면 뭐 알면 소용 있는가? 다 불타버리니까 제  중생된 영만 남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는데.

 그러기 때문에 저 지난번 아침에 십계명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자 했습니다.

십계명. 십계명으로 자기를 깨끗게 하자. 그저 우리가 둔하기 때문에,  십계명이라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십계명을 해석하면 신구약 성경이 다  들었소.그러나 십계명으로부터 해결하고 회개를 할라고 하면 차차 모든 것이  뻗쳐서 온전함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 그거는 강령으로 말했기  때문에 일계명도 지키고 이계명도 지키고 뭐 해석 다. 삼계명도 지키고, 삼계명  지키는 것은 자기 현실을 만족하고 에덴동산에 거처하는 것이 삼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삼계명 지키는 것이.

 사계명, 주일도 이제는 주일 범하지 말아요, 주일날, 궤변자가 있다가 '그러면  물도 안 먹어야 되는구만. 전기불도 안 써야 되는구만?' 그 양심에 '전기불 쓰는  것도 남한테 일 시키는 것이라 안 써야 되겠다.' 그 안 쓰는 그 사람이 그만치  양심이 장성해서 안 쓰면 전기불 안 쓰고도 살 수 있지. 못 살 건가?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더 깨끗한 사람이지.

 그러기에 주일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양심에 따라서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니  그것이 뭐이냐? 자기의 자유의 율법대로 행하는 자요.

 자기는 주일을 다 지켜도 양심에 가책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대로 지키나  구원에 대해서 허무하지. 구원에 허무해. 주일날 시험 칠 것 아니고 주일 범하지  안하고, 주일 범하느냐 안 범하느냐 하는 데에서 하나님에 다 연결돼 있습니다.

연결돼 있어.

 또 오계명, 오계명도, 지금 자, 사계명도 거의 다 버렸지, 우리 교회도 그만 이  주일학교에 대해서 그런 것이 이제는 주일날 차타고 다니는 것을 예사라. 주일날  차타고 다니는 것.

 물론 자가용으로 자기가 같이 예배보러 간다든지 그런 거는 할 수 있지마는  그래 하는 것은 그거는 안 됩니다. 남이 하면 안 돼 나도 그만 여기 와 가지고서  속화가 많이 됐어. 주일날 어데 차 타는 것도 있지만 주일 지키는 것이 많이  속화됐어 회개를 나도 해요.

 그전에는 제가 원남에서 자고,○○교회 원남에서 자고 저 사직동까지 자가용  가지고 온 것을 안 타고 걸어갔습니다. ○○교회를 가면서 걸어갔습니다. 몇  시간이나 걸렸느냐 하니까 그때 내가 잊어버렸는데 몇 시간 걸린다 해서  일찌거니 출발해 가지고 거기까지 걸어서 그 시간 안에 도달해 가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예 꼭 갈 길아 아무리 멀어도 주일날 차타고 가는 일은 안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면이 주일날 그런데 이제는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라고 합니다. 주일을 철저하게 지켜서 성경에 기록한 대로 지키고 그 안에  성령이 감동시키는 대로 지켜서 철저하게 지킬라고 하고 있어.

 우리가 이제는 때가 가까왔으니까 철저한 회개를 합시다. 오계명도 지켜야  되겠고, 오계명 뭐 부모에 대해서 너무 참, 그게 자기 망하는 거라. 은혜의 줄  끊으면 은혜가 없어져. 오계명은 은혜의 줄을 대우하라 말이오.은혜의 줄을  끊으면 은혜가 끊겨집니다. 이상하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그말은 성경을  배웠으나 배운, 나를 가르친 내가 배운 그 사람을 배반하면 그 진리는 가지고  있는 줄 알아도 그 진리를 절대 자져지지 안해. 껍데기만 가지고 있지 알맹이는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알맹이는 못 가져.

 그러므로 육계명도 지키고, 육계명은 이상하게 이 배암의 사랑이 들어서 막  육계명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거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정반대입니다. 살인을  하면서도 그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랍니다. 그 사람 죽도록 그 사람을 자꾸  죄짓는 것을 용납하고 관용해 가지고 얼마든지 그 사람을 미워서 죽이는 일  하면서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식이 바꿔져야 될 건데.

 또 칠계가 제일 더럽힙니다. 칠계가 제 일 더럽힙니다. 칠계의 범죄는, 다른  범죄는 다른 죄는 자기 몸 밖에 있지마는 그거는 자기 몸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칠계도 우리가 범한 것을 다 회개하고 깨 끗이 합시다.

 팔계도 여덟째 계명도, 여덟째 계명으로 자기를 깨끗게 하고 아홉째 열째  계명으로서 자기를 강령적으로 깨끗게 해서 강령적인 그 계명은 다 지켜야  되겠고 그 안에 들어가서 지키고 지켜서 죽는 날까지 더 지키면 마치 주일에  대해서도 '나는 그까지는 못 지키겠다.' 어떤 사람은 '전기불도 안 쓰겠다.'  좋습니다. '나는 수도물도 그날은 받아 놓은 물 먹고 받아 먹지 않겠다.'  좋습니다.그만큼 그 사람은 자기 양심의 정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날은  '누구에게든지 수고스럽게 안 하겠다' 하면 그만치 양심으로 을라서 그 수준에서  모든 것을 지켜 나간다면 하늘에 제일 높은 자리가 그 사람의 것일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거기까지 자키지 못하니까 물은 먹고 전기는 쓰고 그저 그 정도  이하에서 자기 신앙 되는 대로 거게서 지키나, 되는 대로 지키나 그것이  하나님의 법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법은 행한 대로 갚아지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이 준비할 때입니다. 어리석을 때가  아니오.

 모두 요새는 칠계가 제일 범람합니다. 인류 시조가 칠계로 죽었습니다. 인류  시조가 칠계로 죽었고, 소돔 고모라 성도 칠계로 망했고, 또 노아 홍수도 칠계로  망했고, 또 말세도 칠계로 망한다고 그렇게 요한계시 17장 18장에 보면은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충 하나씩 둘씩. 있는 대로 큰 것을 하나씩 둘씩  회개하면 회개라는 것은 참 한없이 기쁩니다. 평안합니다.

 저 먼저 ○목사님이 회개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데 증거를 매우 잘했어.

잘했지마는, 잘했지마는 ○목사님의 말만 쓸모 있고 행함과 사람은 쓸모가 없게  되면 탈일 것입니다. 말과 행함도, 말과 사람과 행함도 쓸모가 있어야 되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말만 쓸모가 있었지 행함도 쓸모가 없었고 사람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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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하나님의 사랑,소망,능력/ 에베소서 1장 17절-19절/ 1987. 8. 5. 수후집회 선지자 2016.01.03
393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0. 10. 14. 화새벽 선지자 2016.01.03
392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0. 10. 13.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391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 사랑/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1988. 7. 30.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90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1987. 7. 15. 수저녁 선지자 2016.01.03
389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6절/ 1987. 8. 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388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 요한계시록 2장 4절-7절/ 1987. 10. 4.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387 하나님의 사랑에 굳게 서라/ 로마서 8장 30절-39절/ 1982. 7. 1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386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기도할것 3가지/ 요한복음 14장 13절/ 1988. 4. 4.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385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에/ 베드로전서 1장 20절-23절/ 1979. 7. 7.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8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구속이다/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1987. 10. 7. 수새벽 선지자 2016.01.03
383 하나님의 선지/ 열왕기상 22장 21절-23절/ 1980. 1. 12. 토새벽 선지자 2016.01.03
382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4. 5. 29.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23절/ 1983. 8. 27.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380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6. 9. 30.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79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4. 7. 24.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78 하나님의 성전(완전자 영접-회개)/ 로마서 8장 30절-39절/ 1982. 7. 11.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
377 하나님의 속성/ 베드로후서 1장 3절-11절/ 1986. 5. 23. 금저녁 김반석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