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계명순종

 

1987. 5. 3. 주일오후

 

본문:창세기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게 여호와 하나님이라 이렇게 나타나셨는데 하나님이라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불러서 우리가 하나님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위는 셋이지마는 본체는 하나십니다.

한 하나님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성부의 격위를 가지시고 나타나서 역사할 때도 있고, 또 성자의 격위를 가지시고 나타나서 역사할 때도 있고, 또 성령의 격위로 나타나서 역사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성부나 성령의 격위로 나타나서 역사하실 때에도 성부의 역사에 성부와 성령과  성자 격위가 같이 계시고, 또 성자의 격위로 역사하실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가 같이 계시고, 또 성령의 격위로 역사할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격위가 같이 역사합니다.

혹 우리는 성부라고 이래 부르다가 생각하면 ‘아, 성자와 성령은 부르지 안하고 제외해 놨다.’ 해서 또 성자님 성령님 이렇게 삼위를 부르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성부를 부를 때도 삼위가 같이 계시고 성자나 성령을 부를 때도 삼위가 같이 계십니다. 그러나 역사하시는 데에는 성부가 주로 역사하는 그 사역이 있고 또 성자와 성령이 각각 따로 주로 역사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렇게 말하는 데에 여기 여호와 하나님을 대개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성부의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실은 제이위 우리를 대속하신 성자 격위의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여게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장에서부터 천지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이 물위에 운행하셨다“ 또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지을꼬” 그렇게 하실 때도 있고 또 그다음 이 에덴동산 역사를 시작할 때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그런 이름을 처음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물위에 운행하셨다고 하신 그 창조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이렇게 우리가 보는 것이 그것이 원만하고 또 그뒤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지을까”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지을까 하실 그때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역사하신 것으로 그렇게 보는 것이 순리고 또 2장 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하는, 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피조물과의 관계되는 그 계약을 선포하는 계약 선포가 그때부터 나타났습니다.

이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때에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기록됐습니다. 사람을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게 대해서 또 여러가지로 약속을 내리시고 명령하시고 하는 그럴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봉독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하는 이 여호와 하나님은 곧 제이위 성자 그리스도 예수 이 하나님을 가리킨 것으로 그렇게 우리가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면은 곧 제이위 성자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하고 또 예수님이라고 하면은 제이위 성자가 인성을 입어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나셨을 때에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늘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라고 나타났고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많이 있지를 않습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사람으로 나타나신, 도성인신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그 말씀은 곧 성자 제이위 성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제이위 성자가 육신이 되어,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실 때에, 우리를 선택하실 때에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제이위 성자인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는 언제부터 관계가 있기 시작했느냐 하면 천지 창조하시기 전에부터 우리와 관계가 있었는데 우리와의 처음 관계가 무슨 관계가 있었는가? 하나님이 선택하실 때에 그리스로 안에서 선택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이신데 그리스도이신 이 하나님 제이위이신 이 하나님이 영원 전에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를 내포하셨습니다.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를 그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포하셔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예정하실 때도 우리 구원을 다 예정 속에 넣었고, 또 창조하실 때도 우리 구원을 그 창조 속에 넣었고, 또 모든 것을 보존하실 때도 보존 속에 우리 구원을 넣었고, 또 섭리하실 때도 그 섭리 속에 우리 구원을 넣어서 우리가 출생하게 되었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중생하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골로새 3장에는 말씀하시기를, 3장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내나 여기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합니다.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옛사람은 죽었다 말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죽었다 말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었느니라” 4절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번 따라합시다.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제이위 성자를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제이위 성자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언제부터 책임졌는고 하니 창세 전 택할 때부터 그리스도가 책임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이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부활 승천 후 그 뒤에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별로이 쓰지 안하고 다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나타나서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이 그리스도는 제이위 성자이신 하나님인 곧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대속하신 하나님이요 또 이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가 되신 하나님이요, 우리의 중보라 말은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서로 중보 역사해 가지고, 중보라 말은 중매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양편을 다 책임지고 서로 화합시킨 것이 중보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사이에 중보자십니다. 또 대속하신 대속주십니다. 또 영원 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해서 우리를 책임지신 그리스도십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우리를 제사장 이 성직과 선지 성직과 왕의 성직 이 세 가지 성직을 가지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 성직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로 양육하시는 그 책임을 지신 그리스도십니다.

저 꼬박꼬박 조는데, 졸면 몰라요. 저 치과 의사. 이게 안 들리면 안 돼. 이게 들려야 귀신이 달아나, 귀신. 마귀가 달아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요.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삼위일체 중에 제이위이신 하나님이신데 이 그리스도는 우리와의 나타난 관계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창세 전 우리를 택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습니다.

또 그 후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대형으로 사죄를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주셨고 대화친으로 새생명을 주신 이 대속의 역사를 하신 분이 그리스도십니다.

또 그후에는 제사장 선지 왕직을 우리에게 입혀서 이 세 가지 성직을 실질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이 마련되어지도록 우리를 연습시키시고 연단시키시고 연성시켜서 완성케 하시는 그리스도십니다.

그래 가지고 또 무슨 일 하는고 하니 영원 무궁토록 그리스도와 우리와 함께 왕노릇 하고 함께 제사장노릇 하고 함께 선지노릇 하도록 영원 무궁토록 삼위일체 중에 제이위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요 또 잠깐 예수님으로 나타났다가 대속하신 후에는 또 그리스도로 나타나셔 가지고 계시는 제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는 영원히 동거하고 동행하고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게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하는 이 여호와 하나님이 곧 그리스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거 하나 잘못 알면 큰 이단이 됩니다.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쉬운 게 아니고. 이거 하나 잘못돼 가지고 모든 이단들이 생겨집니다.

에덴동산으로 인류 시조를 인도하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인도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인도했다 말은 벌써 그때부터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씀인데 계약을 선포한 것이 제이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약이 선포됐고 또 계약을 가지고 준행시키는 것이 제이위 그리스도가 이렇게 준행을 시킵니다.

이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게 했고 또 지키게 했고 또 다른 각종 실과는 임의로 먹게 했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해서 이렇게 네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네 가지 명령은 곧 지금 신구약 성경에 많은 분해를 해서, 많은 분해를 해서 분석을 해 가지고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신 그 모든 계약의 강령입니다. 이 강령이 십계명으로 열 가지로 갈라져서 열 강령이 돼 가지고 열 강령이 그 후 수많은 성구에 하나님의 곧 우리 생애 법규, 규범, 법칙으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여게 “동산에 있게 했다. 딴데 가 살지 말고 동산에 살아라.” 또 “다스려라” 또 “지키라” 또 “일반 과실은 임의로 먹어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이렇게 곧 명령은 네 가지요 그 거주처를 정해 준 것까지 하면은 다섯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사람들에게 이제 선포해 놓은 것이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선포해 놨습니다.

그랬는데 오전에는 그런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하고 사모하고 두려워하고 높이고 섬기는 이거 하나 할 일이 있으니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 둘째로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일 외에는 우리 할 일은 없다. 이 두 가지만 하면 우리는 족하고 이 두 가지만 하면은 하나님도 만족히 여기시고 우리도 만족한 행복을 다 누려서 영생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더 간단하게 말하면은 이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고 요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우리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 하는 일은 다 자멸하는 행위요 자살하는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족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소원이 뭐인가? 하나님의 소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바로 알고 그분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그것이 제일 소원입니다. 딴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왜 이렇게 하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저주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생명복을 주시면 우리가 살고 그분이 사망의 저주를 내리면 우리는 사망하고 맙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흥하는 것이나, 망하는 것이나, 쇠하는 것이나, 흥하는 것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기쁨이나 근심이나, 평강이나 고통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이분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을 사귈라고 애를 쓰고 이분의 비위를 맞출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왜? 그분도 또 이걸 원하십니다. 그분의 비위에 맞추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분을 잘 사귀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분이 그분과 잘 사귀는 자를 기뻐하신다 말은 그분은 참이십니다. 참이시요 완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완전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자를 기뻐하시고 완전을 위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완전과 친밀히 하나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진리와 하나되는 걸 기뻐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참과 하나된 것을 기뻐하시고 당신과 서로 삐뚤어지고 대립되어지는 당신과 원수된 자를 미워한다 그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참과 원수된 거짓을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깨끗을 기뻐하시고 깨끗과 반대인 더러워진 것을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온전을 사랑하고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다 미워하신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이 제일 크시기 때문에, 이분이 가장 권리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분이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이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기 때문에, 지금도 이분의 것이요 영원히 이분의 것이기 때문에, 이분이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기르시기 때문에, 이분의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은 다 죽이고 없애고 멸하시기 때문에 이런 분이시니까 우리는 이분을 두려워하지 안할 수 없고, 이분을 높이지 안할 수 없고, 이분 비위를 맞출라고 하지 안할 수 없고, 이분을 사귈라고 하지 안할 수 없고 이분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 두 가지 공부했는데 한 가지는 이분이 지극히 크시기 때문에 이러하다 하는 것 생각하고 또 그분이 크시면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요 두 가지입니다.

그분이 크시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만 사모하고, 그분만 생각하고, 그분만 위하고, 그분만 높이고, 그분만 두려워하고, 그분만 섬기고, 그분만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성미를 따라서 비위를 따라서 그분의 뜻을 따라서 어쨌든지 그분에게 거슬려지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그분과 화친을 이룰라고 애를 쓰는 것이 우리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분이 나에게 잘 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분이 내게 대해서 좋게 생각해서 나 좋도록 나에게 복되도록 나에게 모든 좋은 것을 애낌 없이 다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몰라라 하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도 그분이 내몰라라 하면 그만이고 또 그분이 짜르면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법을 공부하라 말은 인간을 공부하라는 말이고, 법을 공부하라 말은 인간을 공부하라는 말이고 사학을 공부하라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해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해라.

이래서 사학을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때에 크게 전성되는 크게 전성되는 것을 보면은 사람들은 놀라서 이거는 전무후무니까 이는 완전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많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큰 게 있을 때 컸다가 싹 무너져서 하나도 없어진다. 없다가 커진다. 이런 것을 종이 한쪼가리에서 여러 수천 년 동안 수백 년 동안이라는 그 역사를 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현실이라는 일시의 것에게 파묻혀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학 공부를 해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게 속한 자녀들은 딸이고 뭐 전부 다, 어리기 때문에 인간 공부하라 해 가지고 법을 공부시켰습니다. 사학 공부시키는 사람은 법을 공부시키고 난 다음에 좀 그다음에 실력이 자랐다고 보면은 사학을 공부시킬 건데 사학은 공부시키지를 안했습니다.

○○○목사님이 그때 미국 들어갈 때 나에게 ‘무엇을 가서 전공하랍니까?’ 하기 때문에 ‘너는 가서 사학을 전공하고 오너라’ 이라니까 내 앞에서는 어짤 수 없어 대답하나 불쾌하게 대답하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그 뒤에 가 가지고 한 반 년 있더니마는 ‘아무래도 전과를 안 하면 안 되겠습니다’ 해 가지고 `이제 조직신학으로 전과를 했습니다’ 그렇게 편지가 왔읍디다. 내가 그뒤에는 다시는 편지를 안 했습니다.

안 했더니마는 그 뒤에 한 일 년 지나고 난 다음에 ‘내가 다시 사학으로 전과를 해서 이제는 사학 공부를 하겠습니다’ 했기 때문에 그때 내가 사학 공부 하는 데에는 요 네 가지 강령을 가지고 공부해라 하는 네 가지 강령을 그에게 써서 보냈는데 지금도 그분이 아마 가지고 있기 쉬울 것이고 또 잊어버려도 그 강령이 강령이기 때문에 잊어버려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 참 없던 것이 있어지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큰 것이 작아지고 작은 것이 커지고 이것을 하나님을 모를 때에는 사람들이 통계 내기를 ‘이는 다 순환지이라, 순환의 이치라, 만당 있으면 골짝 있고 골짝 있으면 만당 있다.’ 모든 이 지리의 형태를 보고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사람들은, 조금 철학성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고진감래요 흥진비래라, 그것은 춘향전에 있는 말인데 고생이 다 되면 달콤한 것이 나오고 또 기쁜 흥이 다 되면 슬픈 것이 나온다 그렇게 모든 순환지이를 들어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볼 때에는 정확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 가운데에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를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게 공부해 보면은 어떤 위인이 나 가지고 이 년을 다스리고 죽어버렸다. 여덟 달을 다스리고 죽었다. 이십 년 삼십 년을 다스리고 죽었다.

이랬는데 다스렸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악했다, 죽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가 관영했다, 망했다. 그뿐입니다. 딴게 없습니다. 죄가 관영하면 망했고 악하면 망했습니다. 악이 뭐입니까? 악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악입니다.

이래서, 모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 이 모든 것이 이분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는 것을 그분의 법전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마는 그분의 법전인 신구약 성경 법전을 아는 사람은 그후에 법전이 나왔지마는 상고시대의 그 모든 성경 역사를 상고해 볼 때에 ‘이가 왜 망했는고?’ 그때는 모르지마는 그후 하나님의 법전을 우리에게 줬는데 그 법전을 볼 때에 ‘요거는 요것 때문에 망했다.’ 정확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흥하게 하시면 흥하고 망하게 하시면 망하고, 또 그분이 스스로 속아서 망하게 하면 스스로 속아서 망하고 그분이 옳고 바른 데에 아무리 참 주위 환경에서 마구 매장을 시킬라고 하지마는 또 솟아나는 것도 보입니다.

요셉의 일생의 전기를 본다면은 그분은 묻히고 묻히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다 파묻혀서 다시 그는 송장이 되고 헤고날 수 없는 일이지마는 그때에 주를 위하여 산 그 생활 보면은 묻혀서, 묻혔을 때에 주를 위해서 산 것이 더 묻혀지고 또 묻혀질 때에 주를 위해서 한 게 더 묻혀지고 이랬지마는 마지막에 결말로 계산을 댈 때에 묻혀진 것이 그것이 들어서 성공의 길이요 더 묻혀진 게 성공의 길로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찾아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가 상 주시는 자이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안 주면 안 되니까 그분의 비위를 맞춰야 됩니다. 제가 제 밑에 제자라 소리 하기는 부끄럽고 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하나 여성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세상을 떴는데 최기주 집사님입니다.

제가 그 개척교회로 개척교회를 거게 개설해 놓고 순회하러 갔을 때에 그가 말하기를 그런 말을 종종 했습니다. ‘이런데 주님이 우리를 내몰라 하면은 그만 아닙니까?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리는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 말마디가 주님에게 버림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 주님을 노여워할까 해서, 늘 말이 ‘이라면 주님에 노가 안 되겠습니까? 이러면 주님이 혹 우리를 싫어 버리지 안하시겠습니까?’ 그런 말을 말끝마다 썼는데 그때 그 말 끝마다 쓸 때마다 나는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마는 내가 그렇게 ‘주님을 섭섭하게 하면 절단난다’ 하는 그런 것을 내가 느낀 것은 최기주 집사님만치 내가 깨달아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신앙이 앞섰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의 생애에서는 그 흠과 점이 없다고 그렇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노경이 될 때에 잠깐 동안 암흑을 만났습니다. 저와 그때에 한 삼 년 동안 접선이 잘 안 됐었는데 그때에 좀 암흑을, 암흑에 빠져서 혈육적인 경향으로 기울어질 때에 제가 그때 한번 만나 가지고 한번 대책을 한번 한 일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다. 지금 집사님은 천국을 이루는 게 아니라 땅위에서 윤리를 이루고 있다. 윤리 혈육 계통을 이루고 있다.

잠자고 있다.’ 하는 것을 말할 때에 그분이 다시 돌아서고 난 다음에는 그뒤에 그 걸음을 걷지 안했습니다. 안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가만히 추억할 때에 그분의 연령이 그러니까 그때 잠깐동안 노망기가 지내갔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노망기가 안 지나가는 사람 없습니다. 오랫 동안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잠깐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권사님들 다 어떤 분은 노망기 지나갈 때에 ‘이거 노망입니다.

노망기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말 한 마디에 딱 회개하고 돌아선 사람들 많고 어떤 사람은 잠깐 몇 달 동안 가는 사람 있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래서 제가 접선하는 사람마다 ‘그분 비위를 거슬리면 우리는 볼일 다 봤다.

헛일이다. 그분 비위 거슬리면 안 된다. 어짜든지 그분을 기쁘시게 해야 된다.

그분 비위 맞춰서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해야 된다.’ 이래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물질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사건을 대할 때나 뭐 그것이 잘되고 못되느니 하는 그것보다도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의 비위에 거슬리지를 않나? 그분이 기뻐하신다면 뭐 죽어도 살아도 다다.’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붙들고 일했고 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아서 하나님의 후계자가 된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래서 오전에도, 이 두 가지 외에는 할 게 없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래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 공부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가? 내가 이 공부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이 공부를 우상으로 삼는 것이가 이 공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을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가?’ 이렇게 공부하는 시간 시간마다 장소 장소마다 토막 토막마다 그 공부하는 데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무시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존대할 수도 있고, 사업하는 사람도, 하루에 품팔이를 하는 사람도, 단 한 사건을 만나서 생각할 때도 우리의 전생활은 그분에게 내 모든 것이 달렸기 때문에 그분을 기쁘게 하고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하고 그분의 비위를 상하지 안하고 그분의 주장과 그분의 사상과 그분의 본질과 본성에 거슬리지 안할라고 어쨌든지 그분으로 더불어 화친을 이룰라고 하는 요 중심에서 요 위주에서 우리의 전생활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들에게 지혜요 우리들에게 생명이요 우리들에게 가장 실력 있는 능력 있는 방편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모하고 사랑하고 높이고 섬기고 좋아하고 하는 이것이 굴 안에서도 물론 그러하지마는 자기 현실에서 자기 사회에서 자기 그 무대에서 어데서든지 이것을 우리가 노력하고 이 생활 하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둘째로 그 계명을 순종하는 이 계명 순종하는 것은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시키는 것이 계명이요 우리가 그와 같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그 충만하신 거, 뭐 이 사람들이 그 가치를 감히 말할 수도 없고 또 그 평가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 그 무한하시기 때문에. 어쨌든지 생명과 평강과 영광과 존귀에 모든 좋은 것입니다. 그분의 가진 모든 좋은 것,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무엇으로 주십니까? 이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명령으로 주십니다. 딴걸로 주시지 안해. 명령으로.

‘이래라!’ 하는 명령 주실 때에 그 명령은 당신의 영광을 나에게 주시는 것이라든지, 권세를 주시는 것이라든지, 부요를 주시는 것이라든지, 사망에서 생명을 주시는 것이라든지 그것입니다. 그 명령은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명령으로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영과 육, 금생과 내세, 나와 모든 이웃, 모든 피조물에게 좋은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때에, 나도 좋고 모든 피조물도 좋고 모든 인류도 좋고 원수까지 다 좋을 수 있는 이 좋은 것을 당신이 나에게 주실 때 명령으로 주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의 명령을 기다리지 안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명령이 내게 끊어졌으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 단절됐습니다. 그분의 명령이 나에게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분이 나에게 주시기를 끊지 안하고 계속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네가 받는 방편은 뭐인가? 그분이 명령하는 것을 그대로 내가 순종하면 나는 받았습니다. 그분이 그러기에 나에게 주시는 그 방법이 명령이요 그분의 주시는 것을 내가 받는 방법이 곧 순종입니다. 이것을 오전에 말했습니다.

오후에는 요 15절로부터 17절까지를 봉독했는데 요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곧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알면 정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알면 정확합니다. 이래서 주님을 잊어버리면,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지 안하시면, 생명이 내 마음에 있지 않으면 뭣 됩니까? 생명이 떠나면 즉시 들어오는 것은 사망입니다. 생명이 떠나면 사망이 들어옵니다.

생명이 들어오면 모든것을 소생시켜서 점점 새롭게 하고 점점 온전케 하고 점점 깨끗게 하고 점점 성장하고 생명이 떠나면 즉시 사망이 들어옵니다. 사망이 들어오면 그시로부터 썩습니다. 사망이 들어오면 썩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망 들어오면 썩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서 없어졌을 때에 우리 마음에는 즉시 사망이 들어오는 줄 아십시오.

그리스도가 내 마음 가운데 내 생각 가운데에 들어와서 계셔서 역사하실 때에 내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거게는 생명이라 모든 것이 움터 오르고, 모든 것이 다 치료되고, 모든 것이 소생되고, 모든 것이 다 새로와지지마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든지 그리스도라든지 하나님이라든지 좋습니다. 하나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요, 그리스도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요, 예수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신인양성일위이신 대속주까지 다 합했기 때문에 주님 해도 좋고 다 좋습니다.

어쨌든지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내게는 모든 것이 다 새로와집니다. 점점 깨끗해집니다. 점점 온전해집니다. 점점 강해집니다. 점점 발라집니다. 점점 의로워집니다. 점점 사랑화되어집니다. 이분이 내 마음 가운데에 계실 때에는 절대로 사망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썩는 것은 못 옵니다. 이분만 잊어버리면 즉시 그시로부터 우리는 썩습니다. 생각도 썩었고 마음도 썩었고 소원도 썩었고 계획도 썩습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제가 어떤 행복을 꿈꾸어도 그 꿈꾼 거는 전부 썩는 것뿐입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제가 어떤 지금 무엇을 바로 해 보겠다고 건설 운동을 한다 할지라도 제가 몰라 그렇지 주님 잊어버린 그 마음과 생각에서 나온 계획은 전부 파괴요 파멸입니다. 하나도 건설은 없는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이래서 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그 명령 잊어버렸습니다. 하와가 하나님 잊어버리고 그 명령 잊어버렸습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 자리 있기는 있었지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명령 잊어버렸습니다. 만일 그분이 하나님을 생각했다면은 그분이 하나님 두고 그 배암을 화친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잊어버리고 계명을 또 그가 가지고 있었으면은 거게서 다스리라 했기 때문에 배암에게 피동될 리가 없습니다. 다스리라 말은 그를 통치하라 말입니다.

통치하라 말인데 그는 배암에게 벌써 그때부터 이용을 당해서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거는 다스리라는 것을 잊어렸습니다. 지키라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래서 오후에는, 우리 생각에 하나님의 명령만 생각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하나님 명령만 생각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하나님 명령만 생각하고 하나님 잊어버린 사람들은 다 외식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약 교회를 보면 그들이 왜 메시야를, 왜 기다리는 메시야를 왜 죽였느냐? 그들이 왜 그렇게 의인들을 왜 죽였느냐? 죽인 것은 그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그 명령만 그들이 가지고 있었지 명령 속에 생명이신 신격자이신 생존하신 인격자이신 그분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나오는 생수인 영감은 없어지고 하나의 제도로 규정으로 법규로 세워놓은 법규만 가지고 날뛰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법규 적용성을 그 감화시켜 주지 안했기 때문에 그들은 아는 법이 들어서 메시야도 죽였고 아는 법이 들어서 다 죽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 계명은 절로 나오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그 계명만 지키면 그는 그 율법을 산 적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율법은 사람을 정죄해서 죽이는 법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기가 가지게 되면 그는 영생법이요 하나님 떼 버리고 그 명령만 가지고 있으면 그 명령은 정죄해서 죽이는 율법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교회들이 다 그 명령만 가지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 오실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이기까지 하였고 그들은 메시야를 죽이고 지금까지도 꿈속에 있어서 메시야는 따로 인제 온다 생각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치 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없으면 썩는 것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의 율법을 말해도 썩고, 세상법을 말해도 썩고, 영이 들어와도 썩히는 영이고, 욕심이 나와도 자기 가난케 만들 욕심이고, 모든 선을 해도 자기를 수치스럽게 할 선이고 전부 사망뿐입니다. 딴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잊어버리지 않기를 우리가 연습을 합시다. 또 그 계명을 늘 생각하면서 그 계명이라는, 계명이라는 등불을 가지고 자기 앞길을 찾아서 갈 것입니다. 그 계명을 내가 작지로 잡고서 소경이 돌다리를 때려 보고서 건너가는 것처럼 우리가 그 계명을 작지를 삼아 가지고 두드려 더듬어 가면서 우리는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우리가 연습해 봐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잠깐만이라도 연습해 보십시오. 어데 길을 가든지 사람을 대하든지 만물을 대하든지 대할 때에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관해 주시옵소서’ 하고서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있을 때에,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할 때에 그 계명이 생각납니다. 그때 그때에 하나님의 계명이 생각납니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을 내가 모시고 잊어버리지 안할 때에 그 주님이 내게 대해서 ‘요게는 이렇다 저렇다’ 내 심령을 밝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똑똑히 알려 줍니다. 이래서 알려 주고 난 다음에는 흐미한 계명이 똑똑한 계명이 됩니다. 확고한 법이 됩니다. ‘요대로 하면 살고 요대로 안 하고 어기면 나는 죽는다.’ 확고한, 순종하면 영생이요 어기면 사망이라 하는 것이 우리에게 확고하게 단정이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자기 앞에는 모든 것이 얼른거립니다. 모든 것이 얼른거립니다.

물건이 얼른거립니다. 사람이 얼른거립니다. 동물이 얼른거립니다. 사건들이 얼른거립니다. 자기 앞에 이런 것들이 얼른얼른할 때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 잊어버리고 계명 잊어버리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명령 잊어버리고 그것을 보다 보니까, 그것을 보다 보니까 그거하고 나하고 단둘이 붙어버립니다.

단둘이 붙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앞에 있는 물건이, 내 앞에 있는 사건이, 내 앞에 있는 무슨 움직임이, 내 앞에 있는 폭우가, 내 앞에 있는 무슨 눈비가, 내 앞에 있는 바람이, 내 앞에 있는 좋은 것이 나쁜 것이 그것이 들어서 나로 하여금 내 생명이신 이 그리스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생명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생명 잊어버린 동시에 주님의 계명도 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잊어버리면 나는 내 앞에 동하고 정하는 그 사물이나 모든 인류나 어떤 것하고 나하고 둘이 단합돼 가지고 완전히 생명도 버렸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는 유일한 은혜의 그 법칙도 버리고 그거하고 나하고 둘이 돼 가지고 하나가 돼 가지고 십 분도 지내고 이십 분도 지내고 한 시간도 지내고 어떨 때는 하루 종일도 지내고 어떤 사람은 일생을 지냅니다. 일생을 지냅니다.

네 하나님 네 생명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너에게 유일한 은혜의 법칙이 되는 영생이되는 모든 영생적인 것을 완전적인 것을, 완전한 것을 받고 영원한 것을 받고 불변한 것을 받는 이 완전법 영생법이 되는 그것을 잊어버리도록 한, 잊어버리도록 한 네 지식, 잊어버리도록 한 네 사업, 잊어버리도록 한 네 출세, 잊어버리도록 한 네 공명, 잊어버리도록 한 네 모든 쾌락 행락, 그놈은 분명히 내 생명을 나로 하여금 내놓게 했으니까 나를 썩게 만들었고 생명의 법을 다 내놓게 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것 좋은 것을 하나도 받을 길이 없게 만들었고 한 그것은 분명히 원수지마는 그 원수를 갈수록 애착심이 듭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잊어버리게 한 원수인 그 권세에 애착심이 들어 가지고 그 권세에 일생을 바치고도 모자라서 마지막에 생명까지 다 바쳐서 하다가 끝나버리고 맙니다. 권세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물질도 그러하고, 명예도 그러하고, 가정도 그러하고, 행락도 그러하고 다 그러합니다. 다 그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 생명인 하나님과 네 영생의 유일의 은혜의 법칙인 하나님의 계명을 잊어버리게 한 그 원수를 원수인 줄 알고 그 원수를 죽여버려라! 그 원수를 죽여버려라! 그 원수를 네가 죽여버리지 안하면 네가 죽고 그 원수를 죽이면 네가 살아나리라. 원수를 죽여버리라.

에덴동산에서는 그가 하나님과 그 계명을 뭣을 인해서 버렸습니까? 하나님과 계명을 그 앞에 와 가지고 배암이 알랑알랑 하니까 배암 상대하다가 하나님도 잊어버렸고 진리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류 시조인 그 하와가 배암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우리 전인류가 이렇게 지금 사망하게 됐다 이렇게 쉽게 우리는 원망으로 한 말로 그렇게 하고 말지마는 오늘 너는 지금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본 지위 회복이 됐기 때문에 네가 이 시간부텀이라도 너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네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유일의 방편인 하나님의 계명을 네가 지니고 있는 너에게 무엇이 들어서 그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느냐? 너는 지금 뭐하고 섰느냐? 네가 무엇을 하고 앉았느냐?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무엇을 인해서 네가 분망하고 있느냐! 무엇이냐! 네 생명을 잊어버리게 하고 너의 영생의 유일한 법칙인 그 계명을 잊어버리게 한 돈이 아니냐? 인간이 아니냐? 권세가 아니냐? 행락이 아니냐? 네 가정이 아니냐? 이걸 가져야 너도 살고 네 가정도 살지 이 둘을 팔아 가지고 가정 사서 가정이 될 리가 없고 이 둘을 팔아서 권세나 지위나 세상에 있는 모든 영광이나 존귀나 승리 성공을 가져 가지고 될 리가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남의 입장에서 아담 하와를 원망할 게 아니라 오늘 우리는 다 회복이 됐기 때문에 오늘에 누구에게 네가 무엇을 지금 뺏기고 있느냐? 이들이  눈앞에 보이는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도 뺏겼고 계명을 뺏겼습니다.

뺏겼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거 뭐? 뭐인데? 그놈이 배암이라. 그놈이 배암이라.

배암 보고서 배암 보다가 하나님도 잊어버렸고 계명 잊어버렸어. 그라고 난 다음에 순전한 사망입니다.

배암 들어오고 나니까, 그 순서 다 냅두고 배암이 들어오고 보니 배암이 그 하와를 얼마나 악화시켰든지, 하와를 얼마나 악화시켰든지, 하와를 얼마나 자기 중심화 자기 위주화시켰든지 하나님이 이 선악과는 먹으면 네가 망하고 죽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얼마나 악화시키고 변질시켰든지 그 선악과 아니면 제가 죽겠으니까 ‘이 선악과는 아무래도 취해야 되겠다. 이 선악과는 하나님보다도 낫고 남편보다도 낫다. 하나님의 계명보다도 낫다. 이러기 때문에 먼저 일단 이것부터 취해 놓아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도 계명도 남편도 다 불구하고 일단 따먹었습니다.

왜? 너무 “보암직하고” 그걸 가져야 광채가 있고 문채가 있겠다고. 보암직이라 말은 그게 있어야 명예가 있고 지위가 있고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고 모든 권위가 서지고 “먹음직하고” 그거는 내가 참 취해야 내게 되겠다. 그건 내게 있어야 된다. 그거 내게 없으면 안 되겠다. 내게 필요하다. “지혜로울 만치 탐스럽기도 하다” 요것을 취하는 요것이 가장 지혜 있는 일이요 슬기 있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천물이 하나님 되는 일이다. 그렇게 오산 오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마귀가 우리에게 들어오면 이렇게 오산 오판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일을 연습합시다. 자기가 아무리 일해도 나중에 가 보면 다 허무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자가 말하기를 ‘명상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봉사도 많이 했고 인간도 많이 구원했고 하늘나라에 제일 수익이 많더라.’ 뭐 명상하는데? 하나님과 그 계명 자꾸 생각하니까 거게 벗어나지 안하니 그분과 합작되니까 그분과 합작되니 그분의 무한한 것이 다 그를 붙들고 했고 그분이 잊어버리고 계명 암만 지켜서 해 봤자 그분 잊어버렸기 때문에 순전히 생명 떠난 그것이 움직이면 뭐할 것입니까? 썩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생명 떠난 복음 운동은 사람을 죽이는 것뿐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성령이 주장하지 안하는 생명 운동이 들어서 한국 교회를 절단냅니다. 얼마 전에 한국 정부에서 ‘교단등록 하지 안하면은 그거는 다 교회를 없애버린다. 교단등록 해야 된다. 교단등록 안 하면 다 교회 문닫게 된다. 교단등록을 하는 데에는 십만 명 이상 교인이 돼야 교단등록을 할 수 있다.’ 그때에 십만 명 이상되는 교파가 셋 교파밖에 없었습니다.

‘이라니까 신학교를 서이를 세워야 된다. 이래도 신학교 질을 향상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신학 졸업생이 그래도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이 신학에 들어가 가지고 해야 되지 신학의 너무 질이 낮아서 안 되니까 이 질을 높여야 된다.

이러니까 신학을 신학 대학을 만들자. 이래 가지고 단일신학으로 해야 된다.’ 가속도로 신학대학을 만들었습니다. 교단등록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것은  문공부 자체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다는 적기독인 거짓 그리스도인들, 이런 사람들이 정치 앞잡이가 돼 가지고 ‘이렇게 교단등록 이 제도를 세우면은 천지만엽으로 갈라져 있는 이 교회들이 단일 교회가 되면은 얼마나 통치하기가 쉽겠습니까? 이러니까 교단등록 이것을 명령해 가지고 그렇게 하도록 해 주십시오.’ 말했고, 또 신학을 그래 가지고 모든 신학 다 없애고 단일 신학으로 해 가지고 질을 높여서, 질을 높여 무슨 질을? 그때 질을 높인다는 것이 이 세상 학문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지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신학교가 되자! 영감이 더 충만한 신학교가 되자! 하나님의 진리를 더 똑똑히 깨닫는 신학교가 되자!’ 하는 참된 질이 아니고 세상적 질을 높이자는 것으로 주장을 세워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누가 해도 옳은 것이 이기고 참이 이기고 하나님이 이기시지 하나님이 어떤 세력에게 꺾여지지도 안하고 진리가 죽는 법이 없다. 진리가 파묻히고 오무라져 말라빠지는 법이 없다.’ 하고서 그렇게 서로 시비해 나갔는데 오늘에는 교단등록이라는 말이 없어졌고 그뒤에 책임 추궁하니까 ‘우리가 자꾸 그라는 게 아니라 교회서 그래 해서 그래 한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말 한다 말을 내가 어떤 사람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문공부에 가 가지고 한다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후에 남은 여파의 압력이 뭐이냐? 교단등록 안 하면 외국 출입을 자유로 하지 못합니다. 교단등록이 안 돼 있으면 이 차 한 대를 사도 교회 이름으로 해서 면세 조처를 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이런 지저분한 이런 손해가 있으니 교단등록 하는 것이 편리하지 않느냐? 교단등록 하면은 돈 들지 않습니다.

돈 한푼도 안 들고 신고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이 어지러워져 가고 있어 하나님과 그 계명을 이런 것으로 잊어버리게 하고 저런 것으로 잊어버리게 할라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옛날도 적기독이 있었고 오늘도 거짓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서에 보면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한 대로 지금 이미 나타나 가지고 있다 했습니다. 과거에도 참된 기독교를 거짓 기독교가 불의한 교권 가지고 다스려서 개혁가들이 수십만 명이 순교당했습니다.

이러니까 들을 귀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똑바른 양심, 이것에 저것에게 속해서 화인맞은 양심 하지 말고 하나님과 진리를 냉정스럽게 두고 비판해서 판단하는 양심을 가진 자이면 오늘에 이 시기의 위기점에서 든든한 자리로 옮겨 설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그 방편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을 밝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그 명령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내 마음 가운데 모셔서 내가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그 명령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그 명령과 주님에게 배치되지 않는 그 범위 내에서 활동하려고 하는 요 연습을 각자들이 해 보면 알 것입니다.

요 각자들이 해서 거게서 생명이 있으면 소생될 것이고 생명 잊으면, 잃어버리면 썩고, 썩는 것 외에 딴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유일한 생애 법칙인 영생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과 이 두 가지를 내 마음 가운데에 모시고 떠나지 않도록 하기를 우리가 계속 연습하는 일을 해야 될 것이고 연단하는 일 해야 될 것입니다.

연단하는 일 해야 된다 말은 내 마음 가운데 모시고 그로 인해서 내가 동하고 정할라고 할 때에 내 눈에 보이고 접하고 하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해서 내가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한번 잊어버리면 그다음에는 두번째 잊어버리기가 좀 힘들고 세번째는 잊어버리지 안하고 네번째는 요동치 아니하고 이러구로 이러구로 자꾸 연단해 가지고 온전함에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을 들을 때라도 주님하고 동행해서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같이 듣고, 보는 것도 같이 보고, 말하는 것도 같이 하고, 움직이는 것도 같이 움직여 생명이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언행심사가 움직여지도록 하는 이것이 정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습니다.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로 인하여 움직이리라 했습니다. 이 별 법이 아닙니다.

별스러운 말이 아니고 이것이 주님이 처음부터 말씀하신 말이요 오늘도 계속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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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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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 하나님 섭섭케 한 것 회개/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 1981. 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51 하나님 아버지/ 히브리서 11장 1절-2절/ 1985. 9. 22.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1
550 하나님 아버지/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1980. 3.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49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 15장 50절/ 1980. 3.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8 하나님 안에 감추인 성도/ 골로새서 3장 1절-3절/ 1979. 12. 12. 수새벽 선지자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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