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버지

 

1987. 12. 30. 수저녁

 

본문:야고보서 1장 17절∼18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공과 읽어봅니다. 본문, 야고보서 1장 17절로 18절.

제목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요절은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49절.

서론은 성경 본문을 간단하게 해석을 해야 그다음을 본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입니다. 이래서 점을 두 점 찍은 그 안에 든 것은 성경 본문이고  그다음에 점 안 찍힌 것은 거게 대한 해석입니다.

서론.

“빛들의 아버지” 그것은 본문입니다. 빛들의 아버지라 말은 완전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빛들의 아버지라’ 빛이라 하는 것은 완전을 여게다가  나타내서 빛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가 그 조물 중에” ‘그가 그 조물 중에’ 한 이 말씀은 아버지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 하는 말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아버지를  가리켜서 말씀하셨고 ‘조물 중’이라 말은 모든 영계와 물질계의 만물을 지으신  그 지으신 물건 중에, 그러면 지으신 물건이라면 영계도 다 들어갔고, 물질계도  들어갔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도 사람도 짐승도 무생물도 다 들어갔습니다.

“우리로” 거게 ‘우리로’ 하는 말은 중생한 우리들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로'  하는 말은 중생한 우리들로.

요게 좀 어렵습니다.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한’ 하니까 잘못 하면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여럿 중에 ‘한’ 하는 것은 처음에 하나로 일호로 했다  요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게 ‘한’ 그말은 영원히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요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곧 말하고 하나님의  예택을 말합니다. ‘한’ 하나님의 유일 목적인 하나뿐인 구원을 가리켜서 ‘한’  그렇게 말했습니다.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여게는 다릅니다.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이거는 첫 열매가 있고 그다음 열매 있고 그다음 열매가 있고 자꾸 계속해  조성하는 일이 있을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뿐이지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종류대로 자꾸 이렇게 예정하셔서 지으셔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구비하십니다.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는 말은 일호 완성이 되게 하시려고, 일호 완성이  되게 하시려고, 그러면 우리 구원은 일호 완성이고,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 장소는  또 이호 구원 완성이고, 그다음에 무궁세계에서 우리가 가지고 누릴 것 그런 것을  구비하는 것은 삼호의 완성이 되겠습니다. 그런 순서를 가리켜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일호 완성이 되게 하시려고, “자기 뜻을 좇아” ‘자기 뜻을 좇아’ 그말은 주권 의지대로, 그러면 자기  뜻이면 누구의 뜻을 조그마치라도 간섭을 받거나, 협조를 받거나, 조그마치라도  상관하지 안하고, 자기 뜻이라 말은 자기 홀로 주권의 뜻대로 아무것에게도  침노나 간섭이나 조그마치도 상관하지 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주권  의지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는 말은,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그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출생하였다,  성령과 진리와 피로 우리를 낳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했는데 어떻게 피를 끌어대며 성령을  끌어대는가?’ 혹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은 곧 영감을 문서로 기록했을 때에 진리의 말씀이 됩니다. 또 영감과 문서에  기록한, 영감인 신구약 성경 문서에 기록한 이것은 무엇을 기록했느냐? 영감으로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것은 뭣을 기록했느냐? 기록한 그 신구약 성경에 알맹이가  무엇이냐? 알맹이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에 중심이 무엇이냐?  신구약 성경에 제일 주최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곧 예수님의 구속입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곧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라 하는  것은 세계 학자들이 다 공통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출생했다는 말입니다.

본론.

‘땅에 속한 첫 아담의 자손된 우리는 첫 아담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을 입은  것같이’ 그러면 첫 아담의 자손된 우리들은 첫 아담이 코 눈 입 팔 다리 또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이렇게 이빨, 꼭 처음에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와  꼭 같은 모양으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땅에 속한 첫 아담의 자손된 우리는 첫 아담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을  입는 것같이 하늘에 속한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는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형상을 입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 49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첫 아담의 자손, 첫 아담에게서 우리가 나왔기 때문에 첫  아담과 우리가 꼭 같습니다. 모양이 꼭 같습니다. 또 거기 말씀하시기를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속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자는 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과 꼭 같다” 그렇게 거게 말씀해 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9절에 그래  놨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들은 첫째 아담과 꼭 같습니다.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는 둘째 아담과 꼭 같습니다. 소에게서 나온 소새끼는  소와 꼭 같습니다. 또 개에게서 나온 개새끼는 개와 꼭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사람 새끼는 꼭 사람과 같습니다. 또 둘째 아담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  새끼는 꼭 예수님과 꼭 같습니다. 요것을 여게서 말합니다.

본론 둘째, ‘땅에 속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땅에 속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꾸 아담 하와에서 또 거게서 아들딸이 나고 거기 또 손자 손녀가 나오고 또  거게 증손이 나오고 또 고손이 나오고 오대손 육대손 자꾸 나오지 안했습니까?  이제 ‘땅에 속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적 요소인’ 사람의 요소 사람 재료  말이요, 사람 재료. ‘인적 요소인 부종 모혈로 우리를 낳았는고로’ 여게 부종  모혈이라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부종이 뭐야?' 부정 모혈인데 부종 모혈이라  한다고 좀 무식하다고 그렇게 말할란지 모르겠습니다.

주일학생들 가르치는 데에 요것을 ‘부정’ 정충으로 돼 그래 나왔다고 이름을  정충이라 해 놨는데 나는 정충이라 하지 안하고 종충이라 이래, 종. 종자, 씨 종자.

부종 모혈. 아버지의 종자가 나와 가지고 어머니의 피로 양육을 받아 가지고  나오는 것이 그것이 사람입니다.

‘부종 모혈로 우리를 낳았는고로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상이 꼭 같고’  ‘꼭 같고' 뭐 혹 이 피부나 그런 무슨 뭐 약간씩 좀 다르다 하지마는 꼭  같습니다. 아버지 팔 둘인데 아들이 만일 팔이 서이 같으면 그거 지금 기형이라고  참 걱정하고 놀라게 됩니다. 또 아버지는 눈이 눈이 둘인데 눈이 너이나 되면 그  좋은 게 아니고 병신입니다. 그와 같이 꼭 아버지의 종자를 받아 가지고서  어머니에게서 났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 자녀가 꼭 같습니다.

‘같고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어떻게 낳았느냐? ‘하나님  아버지는 양성의 요소인’ ‘양성의 요소인' 양성이라면 신성 인성, `양성의  요소인 보혈 공로와’ 예수님의 보혈 공로,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 ‘보혈 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요소를 우리를 낳았기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것은  보혈과 성령과 진리의 요소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이래서 오늘 여기 말씀에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를  낳았다. 우리가 그냥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또 무슨 법적으로 그게  아니고 실지로 하나님의 요소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요소로 낳은  것은 그거는 자녀라 이렇게 말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요소로 낳지 안했는데  아들 된 것은 양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데 ‘보혈 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요소로 우리를 낳았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꼭 같은 형상을 입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꼭 같은 형상을 입습니다.' 우리는  어려서 몰라요. 이래도 장성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입습니다.’ 셋째, ‘육신의 부모는 부종 모혈로 우리를 낳아’ `우리를 낳아 부모와 자녀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보혈 공로, 성령, 진리로 우리를 낳아 하나님과 부자가 된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육신의 부자간은 불완전한 것이요’ 좋기는 좋은 것이지마는 육신의 부모  ‘부자간은 불완전한 것이요 하나님과 부자간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이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으면 실상이 이루어져서 거게 권능이 오고 안  믿으면 권능이 안 옵니다.

그저 하나님 아버지라고 이래도 이렇게 무슨 억지로 말로 떼다 붙여서 그렇고  그렇게 그저 무슨 그런 제도를 세워서 공연히 아버지라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실지로 우리가 부종 모혈의 인적 요소로 우리가 이 육이 난  것처럼 우리의 이 신령한 인격이라는  존재는, 인격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요소인 이 보배피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났습니다.

영감과 진리로 말하면 모혈 같습니다, 모혈. 어머니의 피와 같애요. 우리의 중생된  새사람의 종자는 뭐인고 하니 보혈입니다. 보혈은 종자요. 보혈은 종자인데  하나님의 종자인데 이 보혈의 종자로 생겨진 것을 어데다가 둬 가지고 기르느냐  하면은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으로 길러서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사람된 인격은 ‘보혈의 종자’ 하나님의 씨, `보혈의 종자'  하나님의 씨로 됐는데 하나님의 씨는, 이 하나님의 씨는 어데서부터 시발됐는가?  하나님의 씨는 어데서부터 시발됐는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유일하신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이 씨는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만 된, 하나님의 전부를 당신의 유일하신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전부를 다 투자하시기로 이렇게 작정하시고 투자하시는  그 역사의 순서가 이제 말할 것인데 이와 같습니다.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자를 이렇게 내가 이런 이런 자를 만들겠다’ 하시고 예택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택하실 때에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 보혈 공로는 시작됐습니다.

예수님의 보혈 공로가 시작되기를 어데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하셨다고 하는 그리스도 거게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종자로 난  하나님의 종자, 우리가 하나님의 종자로 났는데 하나님의 종자가 시작되기를  언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은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했다” 하는  그리스도가 곧 예수입니다.  그리스도가 인성 없는 예수님이오. 인성 없는  예수님인데 이 그리스도가 그 뒤에 인성을 더 입었을 때에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이름을 이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씨종자인 우리가 어데서부터 생겨졌느냐? 하나님 자존하신  그다음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우리의 씨종자가 생겨지기 시작해 가지고  거게서부터 시발해 가지고 그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되니까 조금 뭉치고, 또  그다음에 예정이 되니까 좀 더 뭉치고, 그다음에 창조가 되니까 더 뭉치고, 또  그다음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도성인신 하시니 좀 더 똑똑히 뭉치고, 또 그다음에  신인양성일위로 사활의 대속을 하시니 뚜렷하게 뭉치고, 이래 가지고서 그다음에  우리를, 우리를 중생할 때 우리 속에 이 하나님의 씨가 들어와 가지고서 예수님의  보배피 공로가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이  씨종자가 들어오는데 그 씨종자가 들어와 가지고 그냥 있으면 죽어버립니다.

씨종자가 우리 속에 들어왔는데 그 씨종자를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잘 보호해서  기르고 진리가 보호해서 길러 가지고서 우리라는 이 중생된 자가 차차  차차  형상이 돼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종자마다 하나님이 만든 게 다르지마는 뭐 소니 개니 도야지니 다 그래요.

이런 짐승들도 다 그것이 부종과 모혈, 부종과 모혈로 이것 다 짐승들도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건 똑똑히 모르는데 또 고기는 달라요. 고기는 또 이것은 알밴  어머니에게 종자가 있어 가지고서 그 기르기는 수컷 애비가 길러요. 알을 이래  슬어 놓으면은 그 수컷이 와 가지고 거기다가 사정을 한다 하던가 하면, 이거  안개같이 품으면 그게 또 가 가지고서 덮어서 그걸 먹고 또 자라버려. 그라면  비로소 고기 새끼가 돼 가지고 나와요. 이 모양으로 다 있는데, 우리가 된 이 종자는 뭐이냐? 요걸 왜 말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피로 말하면  그 뒤인데?’ 예수님이 피가 먼저입니까, 성령이 먼저입니까, 진리가 먼저입니까,  무엇이 제일 먼저입니까? 먼저가  보혈의 대속이 먼저입니까, 영감이 먼저입니까,  진리가 먼저입니까? 피가 먼저입니다.

피는 언제?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딱 정하실 그때부터  이 피는 시발됐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우리 대속이 그때부터 시발됐어. 그때부터  시발된 목적이, 목적이 차차 어려 가지고서 그리스도 안에 예택이 됐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예택이. 그리스도 안에 예택이 이것이 예정으로 자꾸  성장됐습니다.  예정으로 성장됐어. 예정으로 성장되고 창조로 성장되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직접 도성인신 해 가지고서 땅위에 오셨고, 또 도성인신  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사활의 대속을 베푸심으로 더 굳어졌고 더 완벽하게  되어졌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부활하셔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킴으로 비로소  우리에게 이제 그 종자가 건너왔습니다.

이렇게, 목적, 예택, 예정, 창조, 도성인신, 사활의 공로가 씨가 돼 가지고 생명의  씨가 돼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키는데 우리를 중생시킬 때에 이 피공로와, 중생된  이 피공로와 피공로만 가지고 안 되니까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가 이 피공로를 싸  가지고, 피공로를 싸 가지고서 성령과 진리가 이 피공로를 우리에게 더 확고하게  확실하게 더 똑똑히 알도록 이 진리가 이 피공로를 우리에게 더 확고하게 전달을  시키고 영감이 전달을 시켜서 이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은 이렇게 말로 된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들을 낳았느니라” 이랬어. 낳았느니라 이 말은 생산했다  그말입니다.

이래서 마치 육신이 부종 모혈로, 부정인데 부종이라 한다고 다른 사람이 아마  웃을 거라. ‘이거 이 백 목사는 학교도 안 했다 하더니만 이거 원청 무식해  놓으니까, 누가 부정이라 말은 들었지만 부종이라 말은 생전 처음 들었다.’ 이래  할지 모르지마는 그래 그 부종이라, 부종. 알기 쉽게. 사람들이 정충이라 하는  별명으로 지은 것이지 부종이 맞습니다, 부종이. 아버지의 종자를 어머니가 이것을  잘 양육했어.

부종 모혈로 된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도 부종, 부종과 같이 보혈의 종자,  보혈의 종자, 모혈과 같이 영감과 진리 이 셋으로 우리들이 중생된 속에 새사람이  생겨진 것입니다. 새사람이 생겨져서,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해도, 이러기 때문에 무슨 똑  의붓애비 모양으로, 의붓애비 모양으로 생각하고 나는 공연히 남의 부모를  아버지라고 이와 같이 부르라 하니까 억지로 부르지마는 속에 믿어지지 안하는  것처럼 이래 된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런 게 아니고 이렇게 중생되면, 중생되면 아바 아버지라 부름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뭐 ‘하나님 아버지’  이게 처음에도 어색하지 안하고 그만  ‘하나님 아버지’ 이 말이 쑥 나오게 되는 것은 이것은 뭐이냐 속에 씨종자가  벌써 그래 가지고 중생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불택자가 다른 사람을 꼬우기 위해 가지고서 이렇게 ‘나도 하나님 믿는다’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이래 해도 옆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보면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에 어색하게 부르고 억지로 부르고 그 속에는 깊은  속까지는 다 하나님 아버지로 인정이 안 돼지고 껍데기만 그라고 속에는 안 되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래 가지고 본능적으로 자동적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는데 우리의 중생된 종자는 뭐이냐? 종자는 하나님의 종자인데 하나님의  종자 뭐이냐? 한 말로 말하면 보혈의 대속의 공로의 종자입니다.

그러면 보혈의 대속이 이것이 그 종자가 어데부터 줄기받아 가지고서 어데서부터  그 종자가 시발돼 가지고 왔느냐? 그 종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는  그때부터 이 종자는 시발돼서 이 종자가 차차 크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이라  하는 거게 와 가지고 더 확고하게 돼졌고, 그후에 예정으로 더 확고하게 돼졌고,  또 창조로 확고하게 돼졌고, 이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심으로 더 확고하게  돼졌고, 또 신인양성일위가 대속의 죽으심 대속의 이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는  확고하게 종자가 됐습니다.

확고하게 종자가 돼 가지고 그때부터 비로소 씨가, 씨가 우리 속에 들어올 때에,  그 씨가 우리 속에 들어올 때에 그 씨가 우리 속에 그냥 못 들어옵니다. 그 씨가  우리 속에 그냥 못 들어오기 때문에 그 씨가 영감으로 싸 가지고, 영감으로 싸  가지고 껍데기는 진리로 싸 가지고서 그렇게 이 씨가 영감이라는 그 보호를 입고  진리라는 보호를 입어 가지고서 피와 성령과 진리가 하나같이 요래 돼 가지고  비로소 우리의 죽은 영혼을, 죽은 영혼에게 들어올 때에 영혼이 살았습니다. 우리  죽은 영혼에게 들어올 때에 죽은 영은 산 영이 돼 버렸고 악령은 거기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문답에, ‘육신의 부모는 무엇으로 우리를 낳았느뇨?’ ‘육신의 부모는  무엇으로 우리를 낳았느뇨?’ 답에, `부종 모혈로 낳았습니다.' 또 둘째,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무엇으로 낳으셨느뇨?’ 답에, `보혈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낳았습니다.’ 그러면 보혈 공로와 진리와 영감은 사람의 요소입니까 하나님의 요소입니까?  하나님의 요소요. 하나님의 요소. 우리 아버지의 요소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요소요. 그러면 우리가 육체의 부모는 부종 모혈로 낳았는데 부종 모혈은 누구의  요소입니까? 누구의 요소입니까? 부모의 요소입니다, 부모의 요소.

그러니까 부모의 요소로 우리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땅에 속한 사람이 생겨졌고  또 둘째 아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요소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그냥 비유가 아니고, 비유가 아닙니다. 비유로  생각하면 안 돼요.

여게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5장 49절에 “우리가” 우리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  말을 했는데 흙에 속한 자는 누굽니까? 흙에 속한 자는 누구요? 첫째 아담. 흙에  속한 자는 첫째 아담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첫째 아담의 형상을 다 입었습니다. 첫째 아담이나  우리나 그 형상이 꼭 같소.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늘에 속한 자는 누굽니까?  둘째 아담, 곧 사람 같으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다 그렇게 각각 다 입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난 아이는 제가 있는 줄도 모르지요. 있는 줄로 모르지마는 차차  자라가면 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또 저를 낳은  부모를 알고 기른  부모를 알고 차차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서 거석한 것처럼 이제 신앙이 자라면  나는 하나님의 씨로 내가 난 것을 알고 하지만 처음 예수 믿을 때는 그걸  모릅니다. 그러나 장성해 가면은 나는 신적 요소로 새사람은 나 가지고 있다는 것, 신적 요소로 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뭘 먹고 삽니까? 하나님이 잡수시는  그걸 먹지 우리는, 새사람은 하나님이 잡수시는 그걸 먹지 다른 것 못 먹습니다.

하나님 잡수시는 것 뭐이냐? 하나님 잡수시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당신의  목적의 의로운 뜻을 행하는 것이 그것이 잡수시는 거라.

예수님은 뭣 잡수십니까?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당신의 양식인데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하나 둘 이루심으로서 장성해졌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러면 우리는 뭘 먹고 자란다 했습니까? “너희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으니까 우리는, 뭣 먹고 자란다 했소? 우리는 주님이 나를 보내신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것을 주님을 힘입어서 이 뜻을 하나 둘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나  이룸으로 자라고 둘 이룸으로 자라고 자꾸 이룸으로 자라갑니다.

이래서 권찰님들도 자기가 뜻을 이루어서 한 성도를 만들어 내고 두 성도를  만들어 내고 자꾸 이 만들어 내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 뜻으로서 인간 구원을  하나 둘 이래서 하나님의 뜻을 자꾸 이렇게 이루어 나아가게 되면은 뭐이  자랍니까? 고기덩어리가 자랍니까 뭐이 자랍니까? 뭐이 자랍니까? 백 목사는 목회는 잘하지 못했지마는 내가 인제 올 설만 새면 삼십칠 년이라,  여기 서부교회 온 지가. 그런데 삼십육 년 동안 자꾸 지금 자라가고 있습니까  지금 점점 늙어서 빠져가고 있습니까? 겉사람은 늙어 빠져가고 속사람은 점점  새로와지고 자라갑니다. 그게 새사람이라.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자꾸 자라갑니다. 뭐 자라가?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하나 이루고 하나  이룸으로써 자라간다 말이오.

어떨 때는 ‘내가 지금 가서 그만 좀 쉬어야 되겠다.’ 뭐 내가 양산동 가 가지고  거게서 한 달 쉬어도 우리 장로님들 불평 안 할 것이야. 한 달 쉬어도 ‘그거  천상 좀 쉬어야 안 되겠는가?’ 이라지마는, 당신들이 쉬라 해서 뭐 못 쉬라 해서  못 쉬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이거 자랄라고 말이지. 자랄라고 이라니까 자꾸 이  자꾸 뭘 먹어야 되니까, 이제 그만 음식 맛이 없으면 그건 안 자라요. 이러니까  ‘하루 새벽도 안 빼고 내가 꼭 이래 해야 되겠다.’ 이게 뭐이냐? 자라가는  거라. 자라가는 것.

그런데 여기 광고를 썼는데 여기 보니까 ‘12월 31날 12시에 송구영신하는  예배를 드리고’ 이라고 ‘그날 새벽예배는 안 드립니다.' 이랬는데 내가 요  광고를 읽을 때 또 이거 좀 먹고 싶어 먹어야 되겠다 해서 ‘안 됐다 이거, 또  그날 새벽예배 봐야 되겠다.’ 이랬다 말이오.

이라고 또 그날이 금요일날인데 ‘금요일날 권찰회는 어짭니까?’ ‘1월 1일인데  무슨 권찰회가 모이나 되겠나? 모이지 말자.’ 이랬는데 또 내가 여기 또 배가  고파서 안 되겠어. ‘안 됐다. 아무래도 하나가 모여도 또 1월 1일날 권찰회  모여야 되겠다’ 그래 인제 그렇게 광고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새사람과 옛사람을 똑똑히 구별해서 새사람을 자꾸 길러요.

그래서 여기 문답에 ‘육신의 부모는 무엇으로 우리를 낳았느뇨?’ ‘부종  모혈로 낳았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무엇으로 낳았느뇨?’ ‘보혈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낳았습니다.' ‘어느 것이 완전하고 영원하뇨?’ `하나님과 부자된 것입니다.' 이래 놨어.

이러니까 요걸 자꾸 읽고 해서 이걸 우리들도 확신을 가지고 또 학생들에게도  확신을 주도록 해요. 우리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씨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가리켜서 신이라 이랬어. 우리를 가리켜 신이라.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이 공과를 꼭 외우도록 해야 됩니다. 외우도록 하고, 또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잃지 말도록 하고,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좀 나와요. 새벽기도  나오면 이 심령이 좋아서 그런데 아마 새벽기도 못 나오면,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안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가 될 것이고 새벽기도 억지로 나와 놓으면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자, 새벽기도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되던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새벽기도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된 사람 한번 손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네. 새벽기도 그만  누워 자고 싶고 또 이것 저것 이것 뭐 이 사람 말 듣고 저 사람 말 들어서 그만  새벽기도 안 나오고, 새벽기도 안 나와서 후회된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것 봐,  이거 다 그러네, 뭐. 새벽기도 안 나오면 다 후회되지요.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되는 사람 없어요.

하고 난 다음에 후회되는 건 다 망할 것들이라, 다 없어질 것들이라. 무슨  일이든지 하고 난 다음에 잘 됐다, 안 하고 나서 후회되는 것은 해야 될 일이야.

지하철 공사 위해서도 우리에게 서로 화합하게 의논 좋게 잘되도록 그렇게  기도합시다. 또 내일밤 열두시 송구영신 예배가 열두시에 있습니다. 또 그라고 또  네시 반에 새벽예배 있습니다. 또 그라고 아홉시 반에 권찰회 있습니다. 계속해서  있을 것입니다.

‘일월 일일 금요일 지권찰회는 없습니다. 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저녁 예배  때에 다 내시기 바랍니다.’ 이랬는데 인제 고쳐서 지권찰회가 일월 일일 아홉시  반에 있습니다. 그라고 예배 후 일층 예배당에서 결혼식이 있사오니 많이  참석하셔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겨울 방학 일월 육일 수요일밤부터 일월 삼십일 토요일까지 오후  두시부터 세시 반까지 한 시간 반 매일 요 남반 삼층 기도실에서 주일학교  중간반 성경 공부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많이 참석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반사 선생님도 많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육신의 부모로 난 자는 암만 먹이고 길러봤자 나중에는 죽고 썩어집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기르면 늙어지지 않습니다. 쇠해지지 안해요.

갈수록이 창창해요.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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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하나님 생각을 끊지 말 것/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4. 12. 1. 토새벽 선지자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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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하나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계명순종/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7. 5.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52 하나님 섭섭케 한 것 회개/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 1981. 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51 하나님 아버지/ 히브리서 11장 1절-2절/ 1985. 9. 22.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1
550 하나님 아버지/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1980. 3.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49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 15장 50절/ 1980. 3.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8 하나님 안에 감추인 성도/ 골로새서 3장 1절-3절/ 1979. 12. 12. 수새벽 선지자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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