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잊어버린 것

 

1985. 1. 27. 주일오전

 

본문 : 신명기 28장 1절-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목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본문 : 신명기 28장 15절-19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은 벌써 우리가 여러 주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주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이 없을까 해서 듣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그만큼 이 각도로 저 각도로 많이 증거할 대로 증거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함도 아닙니다.

 언제나 말을 지식적으로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아이들이 한번 가 져본  것은 싫증을 내는 거와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 버릇이 들어서 두 번 거듭  듣기는 싫어하는 줄을 저도 압니다.

 그런고로, 벌써 이 말씀을 읽으면 읽을 때부터 낙심이 되고 낙망이 되고  마음에 그 기분의 욕구에 차지 아니하리라는 것도 생각을 가집니다. 그런 데도  또 오늘 오전 예배도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우리가 듣고 알고 깨닫고 있는  그것을 보충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대로 실행을 해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온 피조물 위에 뛰어나는 영과 육과 금생과 내세의 하나님의 이  축복을 받아야 하겠다 하는 데에 설교하게 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요 전지 전능자요 창조주요 대  주재자시요 주권자가 우리 주님이라고 그렇게 알고도 있고 말도 하고 전도도  하고 그렇게 하지마는서도 이 하나님이 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서 우리 마음이 변화된 것이나 우리외 지식이 변화 된 것이나  우리의 감정이나 모든 욕망이 변화된 것은 거의 없고, 이러니까 다른 모든  이종교에서 말들 하는 거와같이 기독교도 그런 유사의 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종교든지 다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허영과 허욕자들  실상이 없는 그런 모든 거짓부리자들에게 하나의 위로를 주고 그저 하나의  속혀서 부랑이나 빼지 못하고 지나친 악독이나 죄나 범하지 않도록 그렇게  붙들어 매어 놓는 홀랑이에 지나지 못하다. 실상은 없고 실효는 없으나 그런  진실치 못하는 허영과 허욕자들, 외식자들 그런 거짓부리들을 붙드는 데에는 이  종교나 저 종교나 꼭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한 유력한  인생들아 인간 중에 천물 쓰지 못할 것 들 그저 허영과 허욕과 아무 진실이  없는 그런 인간들을 그런 종교라 하는 그런 종교에라도 붙들어 매어놔야 되지  만일 그렇지 앉으면 그것들이 더 큰 범죄를 지어서 사회를 문란케 할 터이니까  그것도 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에 하나의 거짓부리나마 효력 있는 방편이다.'  이렇게들 다 생각하고 종교를 평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으시요' 할 때에 좀 유력하고 아량 있고 좀 수양 있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그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 거짓부리입니다.' 하면  그 사람이 의례히 헛되이 소망하던 것이라도 절망이 되면은 탈선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애끼는 마음에서 '예, 감사합니다. 다 종교는 가져야겠지요.

녜 믿는 거는 좋습니다. 다 믿어야지요.' 하는, 것은 이 병신 등신 같은  어리석은 자식아 속히고 있지마는 그래도 이것을 버려서 못쓰게 만드는 것보다  그게 낮으니까 '예예 예예 예예 예 좋습니다. 믿어야지요. 잘 믿으십시오.'  이렇게 천대를 주고 있습니다. 천대를! 멸시를 주고 있습니다. 멸시를! 왜?  저거 눈에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아. 왜정 말년에서는 그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래도 뭐 박해를 당하고 지하  운동으로라도 '하늘나라가 있다. 어짠다.' 이렇게 말을 하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해방이 됐을 때에 '아, 그 사람들이 자꾸 뭐 기도한다고  쌓더니마는서도 참 그 사람들은 모르니까 기도한다고 쌓더니마는서도 그  사람들의 큰집이 되는 미국이 이겼고 일본이 패전을 했다. 아마 그 기도도  효력이 있는가 보다. 또 그들은 좀 이상하게도 확실히는 모르지마는서도  무엇인가 고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니까 참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인간 중에는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고 또 그들은 이 땅에서 티끌에 있는 이런  것들을 탐하는 그런 진토에 그 천한 인생들은 아니다.' 해서 이들이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를 건국할라 하는 그 초기에 '이 건국의 중요한 그런 자리는 그  사람들이라야 감당하지 다른 사람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일임을 해야 된다.' 또 속으로는 싫지마는 대중의 전 국민의 심리들이 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저 체면상 싫지마는 '그래도 그 사람들에게 이  전권을 가지도록 해야지, 이 국회의원도 당신들이 하십시오. 이 장관도  당신들이 하십시오. 이 모든 지사도 군수도 당신들이 하십시오.' 그 지방에 또  뭐 무슨 기관장이라도 '이 기관장은 당신들이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진심으로도 했고 체면상으로도 했고 모든 대중 여론이 그러니까 그렇게도 했고  했는데, 막상 말할 때에 '아마 저 사람들은 저거 뭐 하늘의 소망이 있으니까  사양하고 안 할 것이다' 이랬는데 주니까 넙쩍넙쩍 받아먹습니다. '그 사람들  뭐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다고 했는데 그 땅의 것을 받는 것 보니까 좀  이상하다' '아, 이상한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래도 우리 좀 민족과  국가를 사랑함으로써 잘해 볼라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네나 내나 다 도둑놈  아니가? 그 사람들은 다 양민이 아니가 아무 말도 말고 맡겨 놓고 보자.' 맡겨  놓고 보니까 건국 초기에 사기, 협잡, 위조. 뇌물, 매관매직 하는 도둑놈은  전부 예수 믿는 장로, 목사 사람들 이였습니다.

 이러니까. '아이구, 이거 아니로구나. 이놈들이 공연히 넓은 범위에서 하나  기만 술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속았다. 안 됐다. 이것을 일대  일로 달라 들어서 뺏아야 되겠다.' 이래서 처음에는 신구약 성경 만 가졌으면  무조건 통행 금지에도 통과를 시켜라. 떡 거석할 때에 신구약 성경만 가졌으면  통과시켰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진심으로 존경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런 죄를 짓고 차지하게 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루지 아니함으로써  '예수 믿는 것도 거짓부리다' 완전히 예수교도 하나의 미혹의 아편의 이 종교와  같은 그런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소망하는 것과 모든 행위를 보고 그렇게 되었고 과거역사에서  하나님의 사람. 허무한 하나님의 사람, 존재 없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존재가 뚜렷이 나타나서 만인간들이 다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예수교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렇게 보여준 것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그것이 그들의 행동에  나타난 겆을 보고 그들이 감탄되었고, 또 일부분은 '그 복이니 복이니  하더니마는서도 야, 그 참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니까 북해 해적  앵글로색슨족은 해적이지마는서도 믿으니까 그렇게 세계의 신사국과 부국이 안  됐느냐? 또 거게서 각처에서 구미 지방에서 쫓겨난 그 합중족 그 모든 그  합중의 민족들 그 중에 튜튼족 그런 사람들도 그 믿으니까 쫓겨 났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같이 하니까 또 그 사람들이 세계에 제일 부강국이 됐다. 이제 그런  것, 보자. 예수 믿는 것 보자 예수 믿는 것 보니까 그 사람들이 차차 차차 모든  사업이 잘되어 간다. 이렇게 들여 다 보고 잘 돼 간다. 예수 믿어야 되겠다.

잘돼 간다.' '야 이 등신아 자세히 봐라.' 보니까 전부 사기, 협잡, 횡령 뭐  ○○시장에 가면은 전부 죄짓는 아주 사기, 협잡. 모든 복술 이것에 제일  대가리가 전부 장로들이라.

 이러니까, '봐라. 그까짓 그 축복 가지고 그러냐? 도적질해 그렇지.'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가리웠습니다. 뭐 사업에서 직장에서 교육계에서  모든 문화가에서 정치에서 전부 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고 하나님을 덮어서 보자기로 가루고 가루고 싸고싸서 내 죄악이 네  죄악이, 내 사기가 네 협잡이, 내 범죄가 네 범죄가 이래 가지고서 전부 똘똘  뭉쳐 싸 놓으니까 주님을 세상이 볼 수가 없고 우리가 보여 주지를 못 하고  자꾸 보여 준다는 것이 한꺼풀 더 싸고 요새도 무슨 뭐 세계 선교 협회니, 뭐  백주년 무엇이니 이래 가지고 그 이름을 팔아 가지고 또 무슨 뭐 신앙 무엇이니  무엇이 믿음의 무엇이니 무엇이니, 뭐 성령 무엇이니 이름 붙여서 상호를  붙였으니까 처음에는 '이런 기독교 성을 붙였으니까 아마 쾌찮을 것이다'  보니까 고것이 전부 상술로 해 가지고 전부 도둑질하는 방편이더라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우리가 다 가리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뭐라고 쌓아도 남은 때는 올 거는 뭐인가?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 없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은 요것만 우리에게 오지  딴것은 올 것이 없습니다. 지금 소련과 이북에서 저렇게 자꾸 칼을 갈고 이렇게  울렁거리고 이라는 것이 다 주권자 워리 주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인데 '봐라.

이러니 너희들이 회개 안 하면 어찌 된다.' 하는 그것을 벌써 삼십여 년을 두고  지금 실락거리고 있습니다.

 이래서 갑자기 무슨 일이 드러나면 남한에 있는 기독교가 조금 정신 차려서  땅에 있는 욕심을 두고서 어떤 자는 '강대국으로 어서 도망가야 되겠다.' 이민  갈 그런 방면을 꾸미고, 이민도 가지 못할 그런 체궁은 거게 못 가니까 이제  아무래도 여게 죽겠으니까 이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되겠다. 회개하고  삼가하고 그라면 그 몽둥이가 조금 멈춤해서 놓여지고. 또 조금 평안하면은 또  달라들어서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안하고 어짜든지 세상을 제가 다 차지할라고  예수 믿어서 같은 시례로 가지고 살라 하면은 깨끗하게 살라 하면은 제가 그전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전에 몇 배나 지혜와 총명을 준 것은 그  지혜 총명 받았으니까 깨끗하게 살아도 의식주 과거에 의식주 그 분수 정도는  살 수가 있는데, 이거 주니까 그렇게 좀 죄 안 짓고 과거 그와 같은 그런 예수  믿지 안할 때와 같은 그런 정도의 생활을 죄 안 짓고 할라 하면은 이거는  지혜와 총명을 줘야 되겠다 해서 주니까 그 지혜와 총명 가지고서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고 미가서에 말씀한 거와같이 이 지혜와 총명 주니까 이  지혜와 총명 이거 가지고서 어짜든지 도둑질하는 데에 급급히 하고 있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날랩니다. 날쌥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기독교는 언제든지 이렇게 부패해 가고 있는 것이 기독교요  하나님도 그 하나님, 마귀도 그 마귀 인간의 원죄도 그 원죄, 본죄도 그 본죄,  인간의 타락성도 그 타락성, 그러기 때문에 뭐 저 나라가 곤란할 때에 신앙  지켜 가지고 쑥 올라가고, 올라가고 나니까 신앙 팔아 가지고 푹 내려가고  매장되고, 저 사람이 곤경하게 될 때에 신앙 지켜 가지고서 하나님께 매어  달려서 올라가고, 올라가고 난 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니까 신앙 팔고 내려가니까  또 망해지고 하는 그것이 나라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이런데, 이것이 무슨 연고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알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알고, 또 자기가 한 번 느껴서 눈물이나 한번 흘려서 한 번  느껴서 그 실감을 한번 느꼈으면 다 된 줄 알고 또 과거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못 산 데 대해서 후회의 눈물방울이나 흘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이나 하고 이나 갈아붙이고 이라면 다 된 줄로 이렇게 알고 실지로 고것이  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결심이 암만 소용이 없고 요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서  과거의 후회가 이 현실에 와서 효력을 내고 미래의 결심이 현실에 와서 효력을  내어서 현실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네가 믿음 있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몸이 있고 영혼이 없으면 그 몸이 죽어서  송장되는 거와 마찬 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렇게 많이  말씀했지마는서도 우리는 찍해야 지식하는 것으로 된 줄 아는 자, 어떤 자는  지시도 못하고 그저 예배당에 왔다 갔다가 일 주일에 한 번씩이나 한 달에 한  번씩이나 이름이 나 기록해 놓으면 된 줄 알고, 그리 안 하면 주일이나  대예배나 총총 참예 하면 된 줄 알고 하나도 알아듣지도 깨닫지도 못하면서 또  그보다 나은 자는 '아, 나는 다 말씀을 외우고 있다.' 외우고 있으면 된 줄  알고 또 자기는 깨달았으면 어떤 자는 된 줄 알고, 어떤 자는 깨달은 거 가지고  안 된다. 깨달은 말씀대로 과거를 생각해서 잘못 살았으니까 후회의 눈물이나  흘리고 또 앞으로 이대로 살겠다고 결심이나 하고 이라면 '후유! 후유! 됐다.

이제는 오늘은 할 일 했다. 과거 후회했고 앞으로 결심했고 됐다.' 하고  현실에서는 요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을 하지 앉기 때문에 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벌써 둘째 주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요번 주일이  넷째 주일 아닙니까? 넷째 주일이지? 예? 넷째 주일까지 계속하는 이것이 항상  이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내가 네게 명하는 '내가' 하는  하나님이요, '네게' 하는 것은 곧 나를 말한 것이요, 여러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이 시간에 명령하는 이 시간에 명령하는 이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네 몸 밖에 네 주위, 환경, 분위기 전체를 내가 조정해 가지고서 마구 너를  협조하도록 하겠다. 또 네 손으로 하는 데에도 내가 도와서 그 일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다 인간을 뛰어날 수 있는 그런 성공을 하게 하겠다, 네게 속한 모든  것의 다 내가 능력으로 역사해서 그 모든 것을 네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게  여호와라는 말이 자꾸 나옵니다. 계약의 하나님. 여호와라 말은 계약을  선포하시고 추호도 가감이 없이 계약대로 이행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그  말씀입니다. 이 계약의 하나님이 이렇게 계약하셨으니까 이 말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한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성경에 백 번 말한다고 권위 더 있는 것  아니요 한 번 말했다고 권위 적은 것 아닙니다. 백 번 말했으나 천 번 말했으나  한 번 말했으나 성경에 말했으면 권위는 꼭 같습니다. 책임도 꼭 같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또 본 것은 그저 간단하게 이제는 다 뭐 해석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하게. 택한 자로서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중생 된  자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어떤 형편에 처지에 있든지 현재라는 고 현실에는  현실에는 나를 사랑하셔서 대속하신 주님, 창조주요 전지 전능자시요  대주재자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주권 대소의 개별 섭리하시는 요  주님이 내 현실에 언제든지 밤이나 낮이나 내 현실에 함께 계시는 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봉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지마는 불택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  섭리로 그들에게 하나님 되시고, 이러기에 적극성 있는 구원의 하나님으로는  그들에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 이랬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택한 자라도 중생되기 전에는 구원의 하나님이 그와는 같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입히시고 이제  이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우리 죽을 영을 살려서 살린 영을 통해 가지고  우리의 심신을 살려서 우리 영과 우리 심신이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수족이  되도록 하나님의 몸이 되도록 진실로 하나님의 그 제사장이 되도록 선지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성전이 되도록 하나님 당신이 하시는 당신의 수족같이 당신의  하시는 데에 수족같이 쓰여지도록 요런 자 되도록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고 거룩하심같이 너도 거룩하고  성결하심 같이 너도 성결하고' 요렇게까지 만 드셔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시키시고. 통일 시킨 '그 나라에서 하나님 한 분은  우리 위에 계시고 그 밑에는 우리 성도 교회들이 그 밑의 위치를 잡고 천군  천사나 모든 피조물들은 그 밑에의 발등상 위치에서 우리의 통치와 우리의  관리와 우리의 보호와 우리의 그 시은과 우리의 모든 은택을 입어 그들이  영원히 충만해서 그들도 영원한 사망이나 멸망이나 그런 것이 없이 이렇게  그들을 봉사할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봉사하시고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이런 자가 되게 하실려고 주님이 이렇게 대속을 하셨고  중생시킨 우리들을 땅 위에 두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이 큽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이거 주실려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아닙니다. 온 천하를 차지해도 그것도 어느  모에는 쓸모가 있지마는서도 그것이 우리의 지상 기업은 아닙니다. 지상의  기업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은 무엇으로만 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크신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 중생된 나와 이 시간 같이 계신다 요걸 인정하는 것, 이 자리에  같이 계신다 내가 당면한 이 사실에 같이 계신다 요것을 당신이 믿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요것만 믿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가지시고 당신이 들고  바울은 요렇게 믿었습니다. '주의 손에 붙들려 있는. 주의 손에 들고 계시는  주의 손에 들고 계시는 고것을 바라본다.' 요랬습니다. 들고 계십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모든 것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다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전능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대주재위 그와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입니다. 전지자의 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발아래  밟을 수 있는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자격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영영히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시켜서 그들이 충만하여 주로 시인하고 우리를  위해 찬양하고 높이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이 자가 될 수 있는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받을 수 있는 자격 가진 내가,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의 대주재의,  주권 개별 섭리의 그 분의 은택을 내가 받는 고 받는 방편이 뭐이냐? 받는 방편  간단합니다. 무거운 짐 아닙니다. 무거운 짐 아니오.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확신하는 요 확신 위에서는 내가 이 시간에 네게 명하는 고 명령을 찾아  지키라. 지킬 때에 내 모든 이 능력은 네게 내 능력의 보호가 필요하면 너  능력을 너를 보호할 것이고 내 능력이 너를 모든 인류 가운데에서 높이 들도록  하는 게 필요하면 높이 들게 할 것이고. 내 능력이 네게 어떤 물질이나 지위나  권세가 필요하면 내가 그것을 너에게 줄'것이고. 모든 사람이 너희에게  오해하고 곡해하고 하는 그 모든 것을 내가 탄압해서 그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필요하면 내가 이해를 시킬 것이고, 네 원수에 대해서 내가 네  원수가 너 앞에 와서 절을 하고 화목을 청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면 하게 할  것이고. 네게 부도가 났으면은 그 부도를 내가 메워 주는 게 필요하면 부도를  메워 줄 것이고 너를 짓밟힐 매장 속에서 건져내는 게 필요하면 건져낼 것이고  네 무지한 네 소견대로의 필요한 것을 내가 따라할 것이 아니고, 요 두 가지만  하면 내가 너 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확실히 믿고 요 시간 너에게 명령하는  것을 네가 하면 전지한 내 지혜가 너를 위해서는 생명도 애끼지 안하고 너를  사랑하는 내가 네게 필요한 것을 어리석은 네가 선택하는 대로 따라갈 거  아니라 네게 필요한 것을 내가 알고 바로 선택해서 내가 너희에게 베풀겠다  말씀 하신 것이 주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죽 내려보면 인류 시조때부터 자 하나님의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 어디 있느냐? 해와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느냐?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잊어버린 고게서 실패했습니다. 아담이 실패 한 것도 고게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배암이 오니까 배암보다가 하나님 보는 눈이 돌려서 배암  보는 대로 옮겨겼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생각이 배암에게로 생각이  옮겨졌습니다. 선악과 보이니까 하나님이 생각하던 생각이 선악과로  옮겨졌습니다.

 가인이 그가 비참하게 가련한 조상이 된 것도 가인은 그는 하나님을 못  봤습니다. 제게 있는 농작물만 봤지 하나님이 어떻다는 하나님을 보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보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거게만 마음이 기울어졌지 하나님 못  봤습니다. 아벨은 아무리 이런 것 저런 걸 하고 있지마는서도 목축을 하고  있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그는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봤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명하는 그 명령을  생각했습니다. 주님보고 주님 생각함으로, 뭐 양 잡아 제사 드리기가 그렇츰  힘이 듭니까? 목축하는 양이 꽉 찼는데, 그 아벨이 성공하는 것도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을 확실히 믿었고 주님에게 대해서 생각을 했고 하니까 그것이  나왔습니다. 에녹이 죽지 안하고 승천한 것 전부 다 그렇습니다.

 에녹이 죽지 안하고 승천한 것을 성경에 표시하기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죽지 안하고, 다른 사람 다 낳아 가지고 크다가  장가 잘 갈라고 시집 잘 갈라고 미남 미인에게 시집 잘 갈려고 이래 가지고서  장가 가지고 하니까 좋다고 먹고 입고 자식 낳고 좋다고 움직여서 나중에 다  키워 놓고 난 다음에는 안 늙어 안 죽을라고 열심히 살고 이라다가 다 죽고 만  것이 창세기 5장에 있는 열거해 있는 모든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고거  다른거 뭐 있는 거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 했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봤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에게 대해서  생각했어.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니까 그 분이  사망에 이르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가지고 성공했습니다.

 그 신앙의 위인 아브라함은 신앙의 조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의  조상이지마는 별 수 없습니다. 벧엘에 가 가지고서 곤란당할 때에 배가  고프니까 배 고픈 것만 생각났지 하나님 생각 안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 걸 잊었습니다. 벧엘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 그때는  우리가 그걸 살펴 보면 아브라함이 완전히 하나님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와 함께 계시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잊었습니다. 안 봤습니다. 안 보입니다. 이라고  자기가 배고픈 것만 생각하고 애굽으로 내려가 가지고 실패했습니다.

 그가 실패하고 난 다음에 올라와 가지고 롯으로 더불어 둘이 시비할 때에 그때  아브라함은, 그 가족들을 많은 말이 있었고 시비가 있었지마는 아브라함은 그는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이 그 승리의 길을 걸었던가? 뭐 별 수 없오. 힘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나로 더불어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여게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자기 눈에 보이고 그분의  눈초리가 보이고 그분의 성품이 보이고 그 분의 뜻이 보이니 그가 땅에 있는  요단강 들을 탐해서 그 숙질간에 원수를 맺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눈초리 때문에 자기와 함께 계신 하나님 때문에 그 일을 못 하고 하나님 얼굴을  보니 그럴 때는 양보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고, 또 그것을 요단 들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것을 하나님을 대접하는 게 되겠고,  하나님을 보니 자꾸 하나님을 쳐다보니 나와 주님이 지금 함께 계신다.'  계신다. 보고 보고 생각하고 생각하니 아브라함이 그 길을 택하지 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이 안 보이고 요단 들만 보이고 인간들만  보여지니까 롯이 뭐 아브라함만 못한 사람이 아니고 별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  안 보이고 인간만 보이고 하나님 생각 안 되고 인간만 생각하니까 요단 들을  택하는 것은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별 사람이 없습니다.

 노아도 보십시오. 노아도 그가 일백 이십 년 동안이나 다른 사람이 조롱 하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 그는 비가 한번도 땅위에 오지 안했는데 오지 안했는데  어떻게 일백 이십 년을 지엽지 않게 그 배를 모았겠습니까? 다른 사람 장  손가락질 하고 조롱하고 천대하는데 그 노아가 일백 이십 년 동안 그 배를  어떻게 계속해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계약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노아 자기와 밤에도 생각하면 함께 계시고 눈만 뜨면 함께  계시고 자기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요 함께 계시는 요것이 확실히 자기가  믿고 있다 보니까 믿다 보니까 이 하나님을 아무리 저게서 욕을 하고 멸시를  하지마는서도 멸시를 하지마는서도 그 멸시 받는다고 배 모으는 것을 집어 치워  버리면 나한테 명령하신 주님을 멸시하게 되다 보니까 주님이 옆에 계시니 주님  멸시와 그 멸시와 둘 중에, 그들에게 멸시를 안 당할려면 주님을 내가  멸시하는게 되겠고 이러니까 그는 어짤 수 없어 필연적으로 배는 모으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그 명하시는 걸 자꾸 생각하고 주님 생각하고  주님의 전능도 생각하고 신실도 생각하고 거룩도 생각하고 대주재도 생각하고  창조주도 생각하고 그 전지도 생각하고 그 약속의 신실하심도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그는 일백 이십 년 동안 배를 모아도 조금도 피곤치 안했던  것입니다. 피곤치 안했던 것

 요셉이가 그 보디발 집에서 그 여인이 그렇게 요셉을 미혹시킬 때에 그 때에  만일 여인이 물론 요새도 보면은 다 뭐 그렇게 권세 있는 사람들은 다 미인  가지고 삽니다. 미인 가지고 살고, 또 얼마나 장식을 다하고 화장을 잘 했을  터인데 그때에 그 여인이 그 요셉을 얼마나 노략했으며 얼마나 애착했으며  얼마나 그 호의를 베풀었겠습니까? 그럴 때에 요셉이가 어떻게 그 청년의 그  불타는 정욕으로서 그 보디발의 아내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물리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거게서 물리치고 거게서 만일 물리치면 자기의 생명이  위험한데 그 할 수 있었을까? 녜, 그것을 주님이 그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요셉이가 보는 눈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자기가 믿는 믿음이  없다고 믿음을 떠나서는 이해가 못 됩니다. 그건 참 이해 가 못 되고 어떻게  그렇게 그렇게 했을까?  그러나 요셉이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보고 있고 믿고  있으니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니 믿으니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심을 요셉이 믿으니 함께 계신 그 주님만 보니 주님만 바라보니 주님을  생각하니 그 여인의 미에 미혹에 빠질 수가 없고 기울어질 수가 없었었고  거절하지 안할 수 없이 저절한 거는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주님을 자기가 믿는  고 믿음으로 함께 계신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함께 계시는 걸 자기가 봄으로,  함께 계시는 주님 때문에 거부되었고, 주님 때문에 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안했고, 감옥에 투옥될 때도 주님 때문에 주님이 계시는데 내가 앞서서 나서서  뭐 변명할 것 없이 주님이 원수 갚는 것 당신에게 있다 했으니까 주님이 계시니  주님이 계시는 걸 보니 견뎠고 참았고 감옥에서도 모든 일에서 요셉의 일생  생활의 그이의 걸음은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요 사실을 믿는 요 한  가지에서 모든 성공은 다 됐습니다. 모든 절제는 다 됐습니다. 모든 금할 것은  다 금해졌습니다. 모든 인내는 다 거게서 나왔습니다.

 이랬을 때에 일자 무식 요셉이가 애굽 나라의, 그때 그 시대는 애굽이 제일 그  세상 문화로서는 제일 앞섰었는데, 그 문화국의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었을  때에 그때도 모든 그 흠 없는 통치를 한 것도 요셉 자기와 함께 계시는, 함께  계시는 그분을 믿는 함께 계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함께 계시는 그분에게  물어서 그분이 오늘 네게 명하는 그 현실에서 그분이 그때 그때 자기에게  명하는 고 명령을 지키는 것을 연습했기 때문에 그 때에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 모든 처사는 전지하신 하나님이 요래라 하면 요라고 조래라면 조라고  그분에게 물어서 그분이 요 현실에서 나에게 명하는 것이 뭐인가 고 명령을  찾아 가지는 고거 하나 익숙한 거가지고 모든 일에 다 통치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말씀을 그저 지나 보내고 그렇게 하지 맙시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야 그가 담대하다, 담대하다, 그 담대가 어데 나왔습니까? 불미 속에  집어 넣는다 해도 벙긋벙긋 웃으면서 유유하게, 지금 왕은 분해 가지고서,  느부갓네살 왕이라면 그때에 세계를 제일 점령해 가지고 세계를 통일하다시피  다 주권을 가지고 있던 그 대왕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느부갓네살 왕이 제일  대왕이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통분해 가지고 분해서 불에다 집어넣는다  울분하게 해도 이 청년들은 뭐 조금도 자극이나 충격을 받지 안하고 그저  유유하게 말하기를 '아무리 말해도 왕은 우리가 그 우상의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 아십시오' '하나님이 널 구원하겠느냐?' 아, 불 아니라 아무데서라도  당신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가 죽는 것은 당신으로 인해서 세상에  있든지 가든지 하지 불이 우리를 멸할 수 없는 불보다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당신의 뜻이면 또 불에 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시는 것이지 불이 우리를 멸하지 못합니다.' 요럴  때에 그분들이 불에 들어갔습니다. 던지니까 들어갔습니다. 들어갈 때에 씨름은  그랬을 것이오. '아, 보니까 전능하신 주님이 불과 만물을 만드신 주님이  주권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함께 계신다. 이분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나  할일은 이분이 나에게 명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뭐 명할꼬?' '믿어라,  강하고 담대하라, 기뻐하라 안심하라.' 이게 그때 명령일 거라 말이요.

안심하라 이라는데, 옆에서 요 간교한 것이 살살 살살 꾀워서 '야, 야야 네가  이거 어데인지 아노?' '이 불구덩 이 속에 있다. 불구덩이 속에 있다.'  불구덩이 속에 있다고 아무리 해도 자기와 같이 계신 하나님만 봤지 불을 보지  않습니다. 불이 있으니까 '너 지금 이렇지마는서도 지금 곧 타서 죽는다' 해도  그 말에 피동되지 안하고 그저 주님만 보고 주님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움직이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요걸 기본 신앙으로  믿을 것 나와 함께 계신다. 나 할일은 뭐이냐? 내가 말을 어떻게 하며 행동을  어떻게 하며 할까? 나 할 것은 담대하라, 평안하라, 하나님이 너를 도우니 불이  너를 어떻게 하겠느냐? 담대하라. 평안하라, 믿어라. 요렇게 주님은 하시니까 '  믿사옵나이다' 만일 그러면 그게 좀 흐려질라 하면은 흐려질라 하면 뜨거움이  왔을런지 모릅니다. '주여, 나를 보호하시는 걸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서 믿음을 새롭게 하니까 불빛이 쑥 지나가고 또 '평안합니다. 담대하라  하시니 담대합니다.' 요것을 자기 주관이 전부 믿는 믿음 주님에게 복종하는  복종 요것으로 화해질 때에 불은 해하지 못했다 사자는 해하지 못했다 요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은 사도 바울이 주야 동안 바다 속에 있었다  했는데 바다 속에 있을 때에 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요런 시련을 했을 것입니다. 다 파산되고 다 죽었는데 드부렁  뜨고 있으니까 고럴때에 '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바다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물에 빠져 죽고 사는 것은 주님에게 매였지 물 네게 매였지 안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시간 내가 지킬 것 뭐이가? 내가 너를 보호하는 이  보호를 믿어라. 믿사옵나이다. 또 뭐하랍니까? 네가 평안하라. 내가  평안합니다. 네가 기뻐하라. 기뻐합니다.' 이라는데 기뻐하고 평안하는데 물이  출렁출렁하고 또 슬그머니 출렁출렁하고 빠져 들어 가니까 '아이구 물에 빠져  들어간다.' 또 '믿음이 적은 자야' '주여, 믿습니다. 당시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같이 계심을 믿습니다. 또 이제 이 시간에 평안하라 하는 걸 평안을  가집니다. 안심하라 하는 안심을 가집니다.' '또 네가 그러면 기도해라' '주여  나를 도우시고 같이 해 주옵소서, 또 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서  그가 일주야 동안 있었지마는서도 나중에 그 믿음이 시험 중에서 믿음이 주님이  함께 계시는 요 믿음이 조금 흐려지고 또 주님이 고 시간에 네가 담대하라,  안심하라 하는 요 계명 명령 지키는 것이 좀 빈약해겼을 때는 빠져들어가고  빠져들 때에 바싹 힘을 쓰니까 쑥 올라오고, 빠져들어오고 바짝 힘쓰고  빠져들어오고 바짝 험쓰고 이렇게 애를 쓰다가 마지막에는 달성해서 바짝  애쓰고 이제는 변동 없으니까 바다 위에 일 년 이라도 떠서 있었을 것이요. 백  년이라도 떠서 있었을 것이오. 이러니까 주님께서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 했어.

 요나서를 읽어 보십시오. 요나서 그 장 1절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이 눈에 안  보였어 안 보이니까 그 니느웨로 가라 했는데 고만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제  마음대로 갈 수 있었거든, 피할 수가 있었거든, 있어서 다시스로 가다가 고만  바다에 빠져서 고기 배속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가지고 배 속에 삼켜 가지고  하나님 찾았습니다. '여호와여. 여호와는 나와 함께 계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지금 바다 물속 고기 배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 나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바다 물이 내 위에 수십 길 창창히 채여  있지마는서도 이 물이 나를 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심을  알습니다.' 할 때에 주님께서 그 육지에 토해내치라 하시니까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을 죽 열람해 보니까, 제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여게 대해서 너무 부족해서 죽 성경을 열람해 보니까 전부 창세기 1장으로부터  죽 훑어 볼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패한 것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느냐?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데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잊어버릴 때에  마귀가 와서 삼켜서 실패를 했고. 마귀가 삼켜서 마귀 속에 들어갔다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신을 가졌을 때에 거게는 소망이 생겨졌고  같이 계시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나에게 뭐 명하시는 고 고때 명하시는  고 명령을 행 할 때에 툭 튀어 나왔습니다. 전부 다 그렇습디다, 보니까. 안  그런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실패자는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 요것을 잊어  버렸고 또 하나님이 명하는 것을 잊어 버렸고. 고게서 구출된 것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다시 깨닫고 확신했고 고게서 고 명령을 찾아 지킬  때에 확 튀어 나와 버렸어.

 이러니까, 주님과 주의 명령을 잊으므로 빠졌고 주님과 주님의 명령을 도로  찾아서 믿고 복종할 때에 솟아났고 한, 것이 이 신구약 성경에 모든  사람입디다.

 그 가인도 이 가인이 와 실패했노? 내 살펴보니까 가인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안했나? 보니까 하나님께서 '네 아우 어디 갔노?'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는 것 보니까 제 아우를 쳐 죽일 때에 죽일 때에 하나님이 거게  같이 계신다는 걸 그는 같이 계시는데 같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잊어 버렸었는데 잊어 버렸으니까 하나님이 몰랐을 줄 알았지. 만일 그때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걸 알았다면 가인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이 사실을 안 거게서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짜든지 내 현실에 내가 물에 빠졌을 때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합시다. 내가 어떤 억만 길 그 구렁텅이에  빠져서 다시 헤어날 수 없는 고게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함께 계십니다. 고게서 요게 대한  주님의 명령은 뭐이냐? 고 명령 찾아 가지고 고 명령 행할 때에 거게서  튀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기독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공산주의들도 만날 것이요 독침도 만날 것이요  우리는 앞으로 거짓 형제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그들이 몰려  가지고 우리를 시험할 때에 우리는 그때에 이 생명을 한쪽 바쳐서 승리를  할런지 완성을 할런지 질질 끌어서 승리를 할런지 모르나마 어쨌든지 우리가  평온한 때도 평온한 때도 환난을 자취하는 자멸하는 그 자멸을 끌어오지  아니하는 것이 그 멸망 속에서도 그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가 어떠한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거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어떤 낮은 자리에서라도  어떤 높은 존귀한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든지 그 전부는 자기의 구주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깨닫고 찾아서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요 사실을 자기가 확신하는 요 확신을 가지고 고때에 자기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명하시는 고것이 곧 주님의 모든 것을 다 끌어오는 고것이요.

고때에 인간 눈보고 체면 보고 환경 보고 주위 보고 그 자기 자율대로 생각할  때에 주님은 배반한 것이요 모든 피조물을 볼 때에 주님은 던져 버린 거라  그때부텀은 하나님의 능력 없는 불신자와 같이 제대로 나가다가 보니까 제대로  나가니 마귀 밥이 됐지 마귀 밥이 됐으니까 당장에 이제 조만간에는 말라  비틀어지고 떨어지고 말지, 그것이 오늘까지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은 간단한, 해방후가 몇 십 년 안 되지마는서도 다른 강대국에서  거게서 수천 년 겪어도 볼 수 없는 그 역사의 변동을 우리가 많이 봤습니다.

요것을, 낱낱이 살피면 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잊어버릴 때에 다 실수하고 망했다. 거게서 튀어난 것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알고 그분의 요구에 응했을 때에 세상 법이 상관하지  못했다.

 ○정권 말년에 그때 비서 실장이 누구입니까? 누구지? ○○○아니요  ○○○이가 장로입니다. 내가 사택에서 말했오. '그래도 ○○○장로는 모른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요 사실을 찾아서 이분 찾아 가지고  이분이 어떻게 하라 하느냐 하는 고 명령대로 하면은 이는 뭐 백번 이라도 이거  다 사형이지마는서도 거게서 튀어난다.' 그분 죽지 안하고 튀어 나왔어.

 여러분들, 우리는 요거 믿읍시다. 우리가 요것을 자꾸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이오. 자꾸 연습을 합시다. '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계신다는 것을  내가 내 지식에 가득 채우고 내 감정에 가득 채우고 내 정신에 가득 채우고 내  성질에 가득 채우고 내 모든 습성에 가득 채워서 이모든 악습이 다 물러가서 이  악습 속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서 채우고 내  성품에도 채우고 채워서 하나님이 어디서든지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이 나에게 명하는 고 명령을 바로 찾아 지킬  때에는 세상이 해 하지 못하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내 발등상에 대해서도  영원히 나를 그의 주로 모셔야만 하는 이 권위 있는 이 본질과 본성이 이것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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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하나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계명순종/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7. 5.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52 하나님 섭섭케 한 것 회개/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 1981. 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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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 15장 50절/ 1980. 3.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8 하나님 안에 감추인 성도/ 골로새서 3장 1절-3절/ 1979. 12. 12. 수새벽 선지자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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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잊어버린 것 / 신명기 28장 1절-6절/ 1985. 1. 27.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4 하나님 중심 위주/ 사무엘상 15장 9절/ 1985. 3. 9.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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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하나님 찾는 자-진리위한 투쟁/ 히브리서 11장 6절/ 1979. 1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38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자/ 마태복음 6장 23절-25절/ 1989. 6. 15.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37 하나님(크심,사랑,계약)을 믿자/ 베드로전서 5장 7절/ 1983. 9. 26. 월새벽 선지자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