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거동행

 

1981. 5. 20. 삼일 밤

 

본문 : 창세기 6장 1절 - 22절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벱이라 때에 그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으로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시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노아의 때와  같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노아시대에 있는 모든 이방인들 또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다 멸망할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모두 각각 자기 좋아하는대로 분망하다가 홍수가 이르러 다  멸망한거와 같이 인자가 재림할 때에도 불신자는 물론이어니와 믿는 사람들도  노아시대와 같이 모두 다 자기 욕심에 분망하고 또 자기 생각대로의 좋아하는  대로 그 계획에 분망해서 멸망이 이르는 그 시간까지 멸망가운데서 허덕거리다가  멸망을 만나는 것이 노아 홍수때의 멸망과 같이 되리라"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그 후 사도들도 이와 같이 말씀으로 많이 우리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마음이 강팍하고 또 마음이 둔해진 생각이라 이 말씀이 그렇게 무섭게  들려지지지 아니하는 것이지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더 이상 없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 노아 때에 수많은 문화도 있었고 또 거기에 특별히 용사라  유명한 사람들이라 네피림이라 그런 사람들을 많이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온 세상은 지금만 못할런지 모르나 모두가 다 각각 자기 욕망을 두고 제  각각 그 욕망에다가 희망을 걸고 그것을 달성해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달성됐다고 좋아하고 또 새 계획을 세우는 사람, 또 달성이 다 되간다고 전력을  더 기울이는 사람, 그것이 다른 사람은 욕망대로 다 달성이 되는데 자기는  그것이 안 된다고 비관을 품고 참 슬퍼하는 사람 뭐 그런 일로 가득차기를 지금  우리가 눈을 가만히 감고 그저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모든 나라에 그 움직임,  모든 동리 거리의 움직임을 명상해 볼 때에 참 지금도 그때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분주하고 바쁩니다.

그들이 이 홍수로 멸망 받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말은 다 정신 없는 사람의  말로 듣고마는 하나라도 그 일이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은 그들의 염두에  없었습니다. 또 이런 생각이 그 마음에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  모두 다 자기 욕망과 계획이 자기 머리에 꽉 찼는데 빈틈이 없는데 뭐이  들어가겠습니까? 바짝 바짝 그저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니까 이제 거기에다가  욕망을 두고 모든 사람들이 분망하지, 또 같이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은  앞서가고, 다른 사람은 넓게 되어지고, 확대해지고 이래되지니까 뭐 거기에  분망해서 하나님이 경고하는 그 말씀은 자기네들 생각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홍수가 내려서 불가한 이삼십 일 안에 온 세계가 쏵 전멸이 된 그  얼마나 큰 일이며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뭐 그럴 때에 권세 있는 사람이 그  권세가 무슨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돈이 무슨 효력이 있었겠습니까? 유명한  사람이 또 아주 예민하고 명철한, 무슨 재주가 좋은 사람, 명철한 그 명철  그런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미인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소? 미남이 소용  이었겠소? 많은 사업을 세계다가 퍼트리고 배로 왔다 갔다 하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모조리 홍수 밑에 전멸됐습니다.

이 일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예수님 재림 때에 그때와 꼭 같이 된다고 말씀을  주님이 하셨으니 그 말씀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얼마나 큰 말씀이요. 얼마나  큰 문제인지 이는 참 땅위에 이보다 더 큰 일이 없는데 우리 개인에게도 이보다  더 큰 일이 없는데 왜 이 큰 일이 우리에게는 귀에 들어오지도 안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돈 몇푼만치도, 자기의 그 직장 하나만치도, 자기의 경영하는 어떤  경영 하나만치도 여기지 안하고 다 귀넘어 등한이 듣는, 이 우리 마음들이  고장이 나서 그렇지 그 사실이 그렇지 그 허무한 일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주의 말씀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을 하실  때에 내나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큰 일이 우리는 오늘 닥칠런지 내일 닥칠런지, 십 년이 남았다 이십 년이  남았다 일 년이 남았다 그 몇 달이 남았다 그래 못합니다. 막바로 오늘밤이 그  시간인지도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인간의  모든 역사는 다 불가운데서 소멸될 것이고 끝장나고 그의 준비한 구원만 다  가지게 될터인데 이렇게 큰 일이 우리 앞에 닥쳐 있지만 벌서 예수님이 재림  때가 가까왔다고 온 세계의 이종교들도 '말세다' '말세다' 그들이 말하는 그  시기도 보면 예수님의 이천 년을 보고 그들이 거기에 따라서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대게 유사종교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가 다 예수님의 천 년이라는 그  시기입니다.

이렇게 박도 하고 아주 위험한 이 무서운 선포를 받고 있는 우리들이 여기에  대해서 어느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한번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나는  노아때 그때에 홍수가 임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사업문제, 가정문제, 상업문제  이 세 가지로 나타냈습니다. 사업문제, 가정문제, 상업문제 이것으로 분주해서  멸망 받는 그날까지도 모르고 거기에만 분망하다가 멸망 받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자의 때도 그와 같을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우리 각자들이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지금 상업문제, 가정문제, 사업문제 여기에 하루종일  내 마음은 분망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될건가? 과연 내가  멸망을 벗어날만한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면 이 멸망과 구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건가? 하는 이점이 내 가정문제, 사업문제, 사업문제 이것보다 이  문제가 내 마음에 더 강한 자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각각  자기의 모든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어떤 사람은 학업을, 어떤 사람은 그 자기의  사회 사업을, 영광을, 명예업을 별걸 다 그 가운데 든 것들인데  그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또 내 관심이 거기에 기울어지고 하는 그 중량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이 구원 준비에 대한 관심의 중량과 이 중량이  어찌되나? 이 중량을 비교해 본 사람, 오늘이 아니라 언제든지 한번이라도  비교해 본 사람은 손 한번 들어봅시다. 한번이라도 비교해 본 사람은 손 들어  봅시다. 한번이라도 많이 말고 한번이라도 비교해 본 사람은 손을 들어 보이소.

네 정직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노아 때와 꼭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  세상살이에 마음이 기울어지고 붙들러지고 관심이 거기 기울어진 그 중량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주님을 영접하는 여기에 대해서 내가 어찌되나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 믿어 구원얻고 예수 믿는걸로만 생각했지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 비교해 보고 비판해보고 자기가 어느정도 어떠한 자인지 하는 것을  한번 반성해서 심사해 본 일이 없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정직하게  들으십시오. 없는 사람은 드십시오. 없으면 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까  거짓뿌리네 그러면 내 관심이 어느 면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여기에 대해서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이든지, 한 달에 한 번이든지, 하루 한 번이든지 하루 한번씩이든지 많이나  적게나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가 한번 계산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많이 생각했든지 적게 생각했든지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많이 생각했든지 적게 생각했든지 생각해 본 사람은 다 손들어  봅시다. 다들 생각해 본 사람들 다 손들어 보십시오. 여기에는 여기에 이  뿐입니까? 여기에 생각해 본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한 번도 그럴 수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를 못해 본 사람 정직하게 손들어 봅시다. 못해 본 사람들  여기에 대해서 중량에 대해서 내가 세상에 대해서 내 심신이 기울어지는 것과  주의 재림을 맞이할 이 준비에 대해서 기울어진 것과 이 중량이 어찌되느냐 하는  여기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안 해본 사람 손들어 봅시다.

예 이제 놓읍시다. 거짓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제가 생각한대로는  재림에 대해서 생각은 많이 했겠지만 과연 내가 기울이기를 어데다가 기울이며  어디로 기울어져 있으며 기울어져 내가 힘을 어디다가 기울이며 그 기울이는  중량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여기에 기울인 중량과 잊어버리고 세상에 대한  기울인 중량과 이 중량을 비교해 본 사람은 아까 손 든 그 사람들이 다 못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실되게 그만침 된다고하면 참 놀랠일입니다. 귀한  일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천하에 있는 성도들이 다 까막득이 잊어버리고 있다가  돌연히 멸망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 말씀하신 말씀이 허무치  아니할 것이라 이거요. 그대로일 것이라 이거요. 주님 말씀하신 말씀이 거기에  거짓이 없습니다.

이 큰 문제인데 우리는 이점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이 없습니다. 오늘 밤에  우리가 이것을 한번 깹시다. 오늘밤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건가?  내 마음이나 정신이나 힘이나 이것이 어데다가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할 구원 준비를 하는 데에 다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할 구원 준비를 하는 데에 다 기울여도 얼마든지 사업할 수 있고, 얼마든지  직장 가질 수 있고, 얼마든지 가정을 건설해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이 할 준비하면 그것 못하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게을해 가지고 여기에 대해서 비판과 평가가 없고 연구가  없기 때문에 다 절단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밤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후회없이 택자는 다 구원 얻지만 후회없이 맞이  하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실 줄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안하고  이렇게 했을까 하는 그런 후회가 없게 맞이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살지 못하는 그것을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보니 이것 전부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 그걸  보고서" 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취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육체가 됐다"  "멸망 받았다 "요게는 그렇게 기록하여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아름다움보고 거기에 일생이 기울어지는 사람도 있고, 남자의  아름다움보고 거기에 기울어지는 사람도 있고, 권세나 지위에 아름다움 보고  거기에 기울어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 돈에, 어떤 사람 명예에, 어떤 사람은  각각 제 전공하는 그 전공에 별별 것에 매력을 두고서 사람들이 거기에 다  심신을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망 시키겠다 하는 여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보니까 저거 좋아하는 대로 사람들의 딸들을 취해 가지고 자녀를  놓으니 뭐라 했습니까? "다 용사라" 용사면 다 대통령 대장 장관 그런 사람들이  다 용사입니다. 용사라 유명한 사람들이라 했지만 그들이 몰라서 좋아하고  부러워했지 홍수 멸망이라 하는 것이 딱 기다리고 있는데 홍수 멸망 보자기  속에서 마치 큰 그 물속에 고기들이 그 물한테 그 물에 쌓인줄은 모르고 뛰고  너울거리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 물심판 멸망이르고 멸망 속에 들어  있으면서 이걸 보지 못한 자 그들은 뭐 그걸 부러워하고 자랑하고 좋아하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오니까 전멸 아닙니까? 오늘 우리도 불로 멸망시키는 이 멸망이라는 큰 그물 안에 인생들이 있는데 이  그물은 벗어날 자는 어떤 자인가? 내나 그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같이 오늘도  그들과 같은 그 신앙의 사람들만이 그 그물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 그물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때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겠으며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 얼마나  있을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자랑할만한 권세도 있었을 것이고, 돈도 있을 것이고, 사업도 있었을 것이고,  용모도 있었을 것이고, 예술도 있었을 것이고, 기능도 있었을 것이고, 지식도  있었을 것이고 뭐 별별 영광 명예 감판 별것 다 있었겠지요. 있었지만 홍수의  멸망이라는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무슨 가치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좀 연상하고 명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지만  홍수 멸망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은 그거나 저거나 다 같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같습니다. 가치로 칠 것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앞으로 불심판이 와 가지고 모든 것을 멸하실터인데  자기의 일생 생애도 이 불심판에서 다 심판 받아 가지고 멸할 것이고 땅위에  있는 모든 것도 다 그러기에, 그때는 단시일 심판의 멸망이지만 우리는 이제  일생이라는 그 모든 생애가 행한대로 심판받는 이 심판이 같이 될 것입니다.

불심판, 이 멸망이 올 때에 이 멸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속에 있는거야  좋으면 무슨 가치 있으며 또 나쁘면 얼마나 나쁘며 좋으나 나쁘나, 크나 작으나,  뭐 영광스러우나 수치스러우나 꼭 같습니다. 이 멸망 속에 든거는 꼭 같습니다.

멸망이 오기 전까지 이러니 저러니 하지 멸망이 일단 와 가지고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꼭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새벽으로 제가 좀 말했지만 그말을 안해도 지금 하려고 하는데 노아가 그때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다 이랬어. "그러나 하나님이 한탄함이었더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8절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를 입으니까 다른이는 귀넘어 듣는 그 일이 은혜를 입은 자  노아에게는 '홍수로 멸망 시킨다' 하는 그 하나님의 경고하시는 그 예고의  말씀이 노아에게는 강하게 들렸습니다.

노아는 천하에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홍수로 멸망하니 이 문제가 제일 급선무고  자기에게 닥쳤기 때문에 다른 게 내나 보이지 안했어. 이러니까 '너는 방주를  예비하라' 하니까 그가 뭐 모든 사람의 조롱 회방 멸시 천대 피곤 이런 것이  하나도 그에게 피곤치를 안하고 그저 그 안에 이 방주가 다 조성되지 안할까  거기에만 극급하고 이 방주에만 전심전력 다 기울어졌지 딴데 마음이 기울어지지  안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뒤에 보니까 마지막 절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멸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의 하라 하시는 그 한마디도 어길 수가 없어서 고대로 준행을 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와 왔으니 '재림이 되면 이러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되면 이러하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하심이 자기에게 강하게 들려져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심판이 연상되지 않지를 안하고, 아무리 좋은 걸 봐도 그 심판이 함께 연상이  되고, 아무리 고생을 봐도 연상이 되고, 자기가 주를 따라 나가는 그 걸음이  한없이 외롭고 독보적인 그런 걸음이라도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이 연상이 되니까  이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떠나지를 못 해. 하나님의 그  예고하신 그 경고하심을 잠시라도 등한이 할 수가 없는 그 심지가 도고 그  심정이 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 입은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이것이 그 마음에 강하게 자꾸 느껴지고 자극이 되어지고 경고가 되어져서 이  일을 등한이 할래야 등한이 할 수가 없고, 이 일을 뒤로 두고 무슨 일을 할 수가  없고, 이 일에 관련된 이 일을 이루는 이 일을 이루는 역사의 사업이라면 역사의  무엇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이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아무리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이라 할지라도 여기에 비추어서 참 비참하면 그  비참한 것으로 보여지고, 여기에 비추어서 복되고 든든하다고 생각이 되면 보면  아름답게 귀하게 부럽게 보여지는 이 비판의 그 지혜가 우리 마음에 주장하는  그것이 은혜 입은 것이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고, 아무리  설교하든지 말든지 성경에 뭐라 하든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다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재림을 우리가 다 세상일 마치고 심판  앞에 지금 부활해 가는 것인데, 이 세상살이 끝마치고 예수님의 재림이 끝마친다  그 말이오. 세상살이 끝마치고 그 심판대 앞에 선다는 여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세상 일에만 극급해지는 그게 막바로 저주입니다. 그게 저주요. 그것이  하나님이 버린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어떤 그 일시의 성공을 하고,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떤 것이  형통했다 할지라도, 어떤 것 성공했다 할지라도 여기에 대한 마음의 감화 감동의  역사가 없고 예수님의 재림과 자기 세상 끝날이라 하는, 끝마침이라 하는,  자기의 세상 종말이라 하는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고 그런데만 분망한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 앞에 저주라는 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게 저주요. 그  이상 저주가 없습니다.

오늘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는 어떤 것인가? 예수님의 재림이면  끝이요 자기 개인이면 개인이 죽으면 끝인데,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자극이  자기를 주장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어. 아무리 좋은 걸 봐도 거기에 현혹해  가지고 이 중대한 문제를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고, 역부러 잊을래도 잊어지지  안하고, 너무 여기에 대해서 자극이 커지니까 마음에 충경이 크니 잊어버리  보려고 이렇게 해도 잊어버리지지 안하고, 좋은 걸 봐도 잊어버리지지 안하고,  고통을 봐도 잊어버리지지 안하고, 큰 걸 봐도 잊어버리지지 안하고, 어떤 걸  봐도 그 볼 수록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 앞에 설 자기의 세상살이에 끝장나는  이것이 자꾸 더 충경이 오고 더 자극이 오고 더 강해지지 이것을 없애고 그 무슨  그거 화 시킬 수 있는 그런것이 자기에게 없는 그 사람이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주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자기는 아무리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리지지를  안하고,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떠날래야 떠나지지 안하고, 자꾸 이것이 자기에게  강하게 되기를 바울도 말하기를 "무거운 짐진거와 같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무슨 이 세상 일은 그래도 처음에는 크게 충격이 되어서 세월이 지나가면 차차  차차 이제 그것이 다 옅어지고 참 해이해지고 참 이런건데 이 면에 대해서는  갈수록 자꾸 무거운 짐진거와 같이 더 자기에게 그 충격이 강해지는 그것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야 될터인데 이것이 없는 것이 우리가 노아 때 사람들과  같이 우리 마음이 모두 패괴되 그렇습니다. 따라 하입시다. '패괴' '패괴'  패괴라 말은, 우리 인품이나 마음이나 의지나 양심이나 결심이 다 부셔졌다 그  말이오. 깨어져서 부셔져서 참 다 부스러기가 됐다 그 말이오. 다 이렇게 됐다  그 말이오. 노아 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우리 마음이 모두 다 패괴가 되어서 부셔져서 여기에 가면 이것에게 자극되고,  저 가면 저 자극되고, 아무 주체성도 없고, 목적도 없고, 자기의 무슨 소망도  없고, 무엇인가 자기라는 사람이 어떤 하나에 잡혀있는 자기가 어떤 사상이면  어떤 주장이면 어떤 생애이며 어떤 목표인지 그 하나의 주체성이 없는 이 완전히  깨진 사람들이라 그 말이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때와 같이 내 마음이 깨져 가지고  있으면, 흐트려져서 깨져 가지고 파선해서 이렇게 아주 빠사 놓은 무슨 콩가루  모양으로 이렇게 마구 부셔져 가지고 헤어져 가지고 내 마음이 있어서 겉잡을  수가 없어. 아무리 무슨 결심할라 해도 결심이 가지를 안 돼. 뭐 한 번 마음에  긴장하려해야 긴장이 가져지지를 안 돼. 그저 질팡 갈팡 걷잡을 수가 없는 마치  바람에 광풍에 밀린 배와 같이 광풍에 밀린 배가 바람부는 대로 이래 되는  모양으로 주위 환경에 따라서 나붓거리지 하나도 자기 주위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이 동산을 다스릴 수 있는 이것이 우리 속에 없는 이것이 오늘에 탄식하지  못하면 참 우리가 비참하게 됩니다.

오늘 저녁에 설교는 시작하다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이렇게  패괴해졌으니 이 패괴한 것을 살려서 일깨워야 되겠는데, 우리가 이 문제는  등한이 여기고 그저 자기에 좋아하는 대로 자기 욕심에만 극급해 가지고  날뛰니까 뭘로 가지고 이 마음을 일깨울 수가 없습니다. 이 마음을 뭉칠 수가  없어. 이 누룩을 다 뽑아버리야 누룩 없는 떡이 되야 똘똘 뭉치겠는데 전부 이거  막 누룩이 들어서 버글 버글 켜게 만드니까 막 파괴가 되버렸어.

이 세상 이런 사상, 저런 사랑, 이런 설교, 저런 설교 별별 설교들이 와 가지고  우리 속에 누룩이 되어서 우리를 막 파괴시켰습니다. 이런 문화, 저런 문화, 뭐  테레비, 방송, 신문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과학 별별 것들 심지어 설교까지도  이래 가지고 우리를 마구 가루에다 누룩을 넣으면 버글 버글 겨는 것처럼 우리가  완전히 버글 버글 기어서 서로 아주 형편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자기가 이런 줄 알고 울면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얼마나 패괴가 되며 얼마나  깨졌는지, 자기가 지금 사는 생활은 전 중심이 어디 있으며 주체성이 있는지, 뭐  긴장하면 긴장할 수가 있는지, 욕망이 어디 있는지, 뭘 보고 사는 사람인지,  어디로 지금 어떻게 되 그 계산이나 되는지, 자기 정신이 몇프로는 어디로 가고  몇프로는 어디로 가고 지금 계산이나 되는지, 그저 세월이 가는 대로 여가서  닥치면 거기에 쏵 빠져 가지고 하루고 이틀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만 일  년이고 이태고 저게 빠지면 저게서 이렇게 해서 정신 없이 가는 술취한 우리들이  아닌가?  다 같이 기도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자기를 한번 반성하면서 정신 차려서 자기가 어떤 자이며,  자기는 성경 말씀대로 하면 성경 말씀이 맞는다고 하면 나는 멸망할 사람인지  어떠한 사람인지 그것을 좀 정평합시다. 계속해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고요히 자기를 냉정스럽게 정평정가합시다. 공연히 자기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36 하나님, 진리 사람을 위하는 생애/ 고린도후서 5장 15절/ 1984. 7.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5 하나님과 3가지 기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4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비결/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1989. 6. 4. 남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1
»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20. 수저녁 선지자 2016.01.01
532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01
531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3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1. 6. 20.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2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20절/ 1981. 6. 19.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28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9. 2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27 하나님과 동행/ 말라기 3장 10절-12절/ 1984. 10. 31.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6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3장 15절/ 1981. 5.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25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24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32절/ 1984. 11. 2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23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2. 1.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22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2. 4.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21 하나님과 동행/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4. 16.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5. 7.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6장 9절-12절/ 1988. 4. 1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8 하나님과 동행 열 가지/ 창세기 5장 1 절-32절/ 1984. 11.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17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유다서 1장 5절 상반절/ 1981. 5. 27. 수저녁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