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연결-말씀 묵상으로


선지자선교회 1983년 9월 20일 화새

 

본문 : 골 3:2-4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너희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 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여기  생명이라 말을 몇 번 했습니다. 여기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을 말합니다. 연결된 삶, 연결돼 가지고 사는 것.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우리가 연결될 때에 어떻게 연결됐느냐?  예수님을 인해서 연결이 되는데 연결될 때에 그리스도로 연결이 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 일반적인 사람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와  함께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믿는 사람을 보호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온갖 충만한 그  은혜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연결이 돼 가지고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 것도,  또 우리가 모든 행동하는 것도 다 그분과 접선이 돼야 됩니다.

 접선돼야 되는 것을 어떻게 비유했는고 하니 나무 접을 붙일 때에 이 나무와 저  나무는 딴 나무인데 이 나무를 저 나무에다가 접을 붙이든지 저 나무를 이  나무에다가 접을 붙이든지 접을 붙일 때에 처음에는 그것이 딴 나무로 돼  있지마는 그 접붙인 것이 얼마나 밀접하게 붙는고 하니 접붙인 그 뿌리로 인해서  위에 나무가 그대로 살고 또 자라고 그럽니다.

 저도 그 접붙이는 일을 좀 해 봤는데 접을 붙이면 시골서는 단단히 위에 짚으로  동여서 보호해 놓고 사람이 손을 못 대게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밑에 나무에  연결이 돼 가지고 움이 터 나옵니다. 눈이 터 나올 때에, 눈이 터 나와서  나중에는 어북 자라게 되면 그걸 벗겨 놓습니다 벗겨 놔서 자라면 주의하는 것이  그것이 접붙인 데가 떨어지지 아니 하도록 말뚝을 쳐 놓고 거기다가 이래 잘  붙들어 매서, 만일 맬 때 조금만 움직이면 헛일입니다.

 붙어 가지고 있는 것이 뭘로 붙어 가지고 있느냐? 물로 붙어 가지고 있습니다.

물로 붙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물만 조금 움직이면 그만 죽어버립니다. 어북  크기를 한 서너 자 이래 크고 난 다음에라도 아무 힘 없습니다. 물로 겨우 붙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요동되면 그만 죽어 버립니다.

 접붙인 것은 그 밀접해서 밑에 나무의 진액이나 모든 힘이나 그 나무의  신경이나 모든 것이 그 붙어야 되는 것 그러기에 붙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또 요새는 사람들의 피부도 이걸 이식을 시켜 가지고 이 살을 떼다가 저 살에  갖다 붙이는데 그것도 그 연결이 잘되면 그것이 살지마는 그만 그 결합이 잘 못  되면 썩어버리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과 결합되는 것이 꼭 그와 같다고 나무 접을  붙이는 걸 가지고 비유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나와 연결이 될 때에  연결된 그만치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또 연결된 그만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건너오고, 연결된 그만치 하나님의 원하시는 우리를 택할 때부터  무엇을 소원했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를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기를  목적해서 만물을 예정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하나님이 목적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목적을 정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지는  그것을 목표로 두고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접붙인 것같이 그 연결이 안 되면 헛일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해라, 목숨을 다해라, 뜻을 다해라, 힘을  다해라, 성품을 다해라.' 그것은 그밖에 여러 가지가 있어도 전부 포함하는  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 요렇게 접선이 돼야 나무 접붙이듯이 접선이 돼야  돼지지,  또 사람의 살을 떼다가, 이 자기 피부의 살을 떼든지 남의 살을 떼든지 떼다가  이 살에다가 이식을 해서 옮겨 심으면 그 연결이 잘돼야 되지 연결 안 되면 그만  썩어버리고 맙니다. 연결만 잘되면 그것이 본 살과 같이 되고 본 나무와 같이  그렇게 자라게 되는데, 그 접붙여야 된다, 접이 잘 붙어야 된다. 접이 잘 붙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기에 이 생명이라는 것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생명과 끊어지면 우리는  그만 전지체가 다 활동 못 하고 죽습니다. 생명이 돌아오면 활동을 합니다.

생명이 없는 장사가 움직일 수 없는 것, 생명 없는 장사가 움직일 수 없는 것,  생명 없는 맹수가 움직일 수 없는 것.

 성경에 보면 악어라면 참 대항력이 강하고 생명이 강한 것인데 악어를, 악어도  하나님이 기르실 때에 그렇게, 맹수요 강하지마는 그 생명이 딱 끊어지면 그만  그것이 축 퍼드러져 가지고서 썩어서 흙이 돼 버리고 맙니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이 없으면 그런 것과 같이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성자라 성녀라 뭐  사도라 뭐라고 해도 하나님과 연결만 딱 끊어지면 그때부터는 산 생활은 못  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것을 그에게 옮겨오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노아가 그가 참 위대했지마는 자기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후사로 선택함을 입었지마는 자기가 술 먹고 하나님과  연결하지 안하고 말 한 마디 한 그것이 그만 노아하고는 그 사이가 끊어져서  인류에게 큰 문제점을, 자기는 그때 잠깐 실수지마는 그 실수가 전인류에게 많은  해독을 끼쳤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생명입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이 있으면 수족도 놀릴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고, 감정도  가질 수 있고 이렇지마는 생명이 똑 끊어지면 그만 아무리 장사의 지체라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도덕가라도 사랑의 사람이라도 소용 있습니까? 그만  그다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그런 움직임이 없는 시체가 되고 말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 끊어지면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나 또 구원 우리는 가치 있는 생활을 하는 데나  하는 데는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되지 연결 안 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연결 안  되면 어제까지 성자로 살던 사람도 연결 끊어지면 연결 끊어진 그 시간은  송장노릇 합니다. 마귀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옥토에 뿌린 씨를 비유하시면서 길가 뿌린 씨, 또 돌짝밭에 뿌린 씨,  덤불 밑에 뿌린 씨 그건 다 헛일했다. 옥토에 뿌린 씨가 성공했다. 그러면  옥토에 뿌린 씨는 자기에게 심기워진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이 그 말씀이 자기  마음을 자기 인격을 먹을 때에 도가 자기 인격을 먹을 때에 길바닥에도 빼앗기지  안했다, 돌밭에도 빼앗기지 안했다, 덤불에도 빼앗기지 안했다.

 자기가 받은 바의 생명의 도를 이 세상 어떤 지식을 인해서도 그 말씀과  자기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안했다. 세상에 뭐 별별 말들이 있지마는 그 지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도와 자기와 끊쳐지지 안했다. 그것을 가리켜서 길가 뿌린 씨가  안 돼야 된다 하는 걸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로 인해서도 하나님의 이 진리 도와 끊쳐지지 안해야 된다. 뭐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의 무슨 비위나, 자기의 오기나, 자기의 욕심이나, 자기의  무슨 정서나, 자기의 몸으로 인해서나, 자기의 마음의 여러 요소로 인해서나,  자기의 목숨을 인해서나, 무엇이든지 자기로 인해서 주님의 도와 연결이  끊어지지 안해야 된다. 그걸 가리켜서 돌 밭에 뿌린 씨로 비유했어.

 돌밭에 뿌린 씨는 연결이 됐지마는 자기 때문에 뭐 자기 무슨 큰 병이 들었을  때에 그만 하나님의 이 받은 바의 영감 도리와 자기와 끊어졌습니다. 병 때문에  병만 생각하다 보니까 영감 도리와 끊어졌다 말이오. 끊어졌으면 그 사람은  돌짝밭에 뿌린 씨입니다.

 또 자기가 영감 도리를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나 저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사모하면, 하나님 말씀과 이렇게, 연결도, 연결도  말로만 연결 있고, 자기의 생각으로만 연결 있고,  처음에는 다 되는 게 아니지마는 자기의 무슨 소원면만 연결되고, 연결이 다 안  됐을 때에는 그것이 그만치 빈약하고 모든 자기 요소가 하나님의 요소와 낱낱이,  하나님이 다섯 요소가 있고 자기가 다섯 요소가 있다면 하나님과 하나만  연결되고 너이 연결 안 돼도 그만치 빈약하고 이 다섯이 다섯과 다 연결이 다  됐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기를 원합니다. 원하는데 무엇 때문에 고장이 나 안 되느냐?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이 끊어져 가지고 안 됩니다.

 연결이 뭣 때문에 끊어졌느냐? 연결이 끊어진 것은 이 세상에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지걸거려 놓은 아무 책임지지 못하는 것, 인생을 죽음에서도  구원하지 못하고, 죄에서도 구원하지 못하고, 모든 삐뚤어진 데서도 구원하지  못하는 그런 것인데 책임 없는 것이고 다만 하나님 떼놓고 하나님 밑에 있는 이  물질계, 물질계. 영계면 영계, 그것들끼리만 이래 작용하는 것이지, 절대자이신  그분과 연결이 돼야 사는 것인데 그분과 연결된 그런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인데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다.

 그러면 그 사람이 공부를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대한 가치관이라든지  비판이라든지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관이라든지 하는 그것이 공부를 하면서  점점 하나님과 연결이 더 밀접해지면 그 사람은 공부할 가치가 있고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면 그것으로 인해서 저는  죽습니다. 세상 지식을 다 통달해도 거게는 생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에서만 생명 들어 있지.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는 그런 것이 없어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데에  방해받지 않는 사람이 낫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지혜 있다 말은  선천적으로 요새 모두 아이큐가 뭐 백육십이니 백사 십이니 하는데, 뭐 우리  나라에 아이큐가 제일 높은 사람이 백육십이니 육십오라 하던가 이런데 백육십  아니라 예를 들면 이백이 돼도 소용이 없다. 이백이 돼도 소용 없다.

 '지혜 있는 자에게' 통달한 자는 인간의 지식을 전부 광문다학을 다 자기가  가진 자를 가리켜서 '통달한 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신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는 하나님의 도를 받지도 못한다.

 '어린아이에게 나타낸다' 어린아이는 그런 것들이 없는 깨끗한, 그런 것이  방해물이 없는 아이에게 인간이 모르는 영생의 도를 알게 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 알게 되고, 인생이 뭐라는 걸 알게 되고,  천하에 제일 큰, 만일 과학자라 합시다. 과학자라 할지라도 그 과학자가 자기의  연구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았다는 요것을 모르면 저의  지식은 다 죽었소. 결말이 다 죽은 것으로서 처리가 되고 평가됩니다. 그런 것  하나도 물라도 이 모든 것 하나님이 지었다 했으면 그 사람의 지식은  살았습니다. 능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지식에게 자기와 하나님과 연결이 꿇쳐지지 안해야  된다. 또 자기로 인해서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이 끊쳐지지 안 해야 된다. 또 이  세상 재리나 모든 사건들을 인해서 자기와 하나님과 끊쳐지지 안해야 된다.

언제든지 자기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치지 안하고 계속 연결된 그자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탁월해 계시고 무형의 존재기  때문에 그 무형의 존재를 우리가 연결하지 못하는데 무형의 존재와 우리와  연결되는, 가지와 나무를 접을 붙일 때에 연결된 것은, 연결된 것은 그 가지와  가지가 연결됐습니까 그 진액이 나와 가지고서 물이 나와서 밑에 나무에서  진액이 나와 가지고 물이 나와 가지고 물로 연결됐습니까 그 가지와 둥치가  연결됐습니까?  가지와 둥치는 이렇게 붙기만 붙었지 연결 아닙니다. 이래 붙기만 붙어 있소.

붙기만 붙어 있고 하나는 안 됐습니다. 하나된 것은 뭘로 됐습니까? 이 물이 저  가지로 지나가고 저 가지에서 그 호흡하는 것이 요구하는 것이 이 둥치에게  요구가 되어지고 그렇게 연결된 그 연결은 고체로 되어 있는 둥치와 가지의 그  나무가 연결됐습니까 물이 연결 됐습니까? 물이 연결됐지 나무 연결된 것  아니라. 나무는 이래 붙어 가지고 있소. 이래 붙어 가지고 있는데 물이  건너갔소.

 물이 건너가 가지고 연결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이시요 우리는  그분에게 지음을 받은 가지와 같은데,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는 그 사이가  초절해 있습니다. 끊어져 있습니다. 끊어져 있는데, 아무도 하나님을 볼 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앞으로도 볼 자 없소.

 모세에게 '네가 나를 바라면 지내간 데에 하나님의 이 허리를 봤다' 하나님의  등어리를 봤다 그말이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  뒤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역사를 인해서 피조물이 알게 되지 피조물이 접할 수  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은 탁월하고 그분은 완전하고 우리는 불완전한  자이기 때문에, 그분은 무한한 자고 우리는 유한한 자이기 때문에 연결이 안  됩니다. 연결이 안 되는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되는 그 연결은 뭘로 연결이  됩니까? 뭘로 연결되지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녜,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법적으로, 법적으로, 지성 지공법의 법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실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은 뭘로 됩니까? 뭐요?  나무 둥치와 나무 가지와, 나무와 나무가 연결이 되지를 못하고, 그건 한테  붙어 가지고 있는 것인데, 들어붙어 가지고만 있어. 들어붙어 가지고 있는데  실은 이것이 저것되고 저것이 이것되고 그 연결되는 것은 뭘로 됩니까? 진액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영감 도리로 연결됩니다. 영감 도리 외에는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합니다.

 이제 영감 도리로 연결이 되면 나중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 되고, 이렇게 연결된 것이 처음에는 진액으로 연결됐지마는  마지막에는 이 나무에 속통과 저 나무의 속통, 이 나무의 겉어머리 겉통과 저  나무의 겉통, 이 나무의 줄기와 저 나무의 줄기, 이 나무의 성품과 저 나무의  성품, 이래 가지고서 이 나무와 저 나무에 맺는 열매도 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접을 붙이면, 접을 붙이면 그것이 뽕나무에다가 다른 과실나무를 접을 붙여도  이제 과실이 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되면  하나님으로 우리가 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을  입으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되는 데는 접붙이는데 진액으로 연결되지 진액  아니고 딴걸로는 연결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감 도리로써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영감 도리 아니고는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연결을 빼앗기면  헛일입니다. 연결을 빼앗기지 안해야 우리에게 생명 생활이 있고 그리스도의  형상 생활이 있지 그러면 그리스도 하면 그걸 다 알아야 돼요. 그리스도의  생활이 된다 하면 제사장 생활이 되고 선지 생활이 되고 왕의 생활이 된다.

 하늘나라는 제사장들만 살고 선지자 왕들만 삽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게  하늘나라인고 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영계와 물질계가 통일되어 있는 그 통일된  그 통일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 그 사이에 위치를 잡고 있는 것이 우리가 갈  하늘나라입니다. 그것이 교회라고도 하고 천국이라고도 합니다. 또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성경에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는 그리스도만 가치 있고, 그리스도 생활만 하고, 그리스도  행동만 하고 그리스도로만 살고,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좋아하고 만물이  그리스도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를 진정 찬성하고 환영하고 주라고  시인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뭐라고 해도 제일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재산으로 복있는 사람은, 재산 많은 사람은 누가 재산 많은 사람인가? 재산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그 부요와 연결된 사람이요, 지혜 많은 사람도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요, 또 능력도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과 사람의 비교가 될 때에는 실력 없는 사람보다 실력 있는 사람이  위에 갑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준비할 때는 사람의 힘을 가지고 준비합니다.

사람의 실력을, 그 사람의 학문을, 그 사람의 과학을, 그 사람의 지혜를 배워  가지고 사람이 사람으로 자기의 실력을 갖추어서 성장합니다. 사람의 모든  연성한 통계해서 주 모아 놓은 사람의 모든 것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사람으로  실력을 갖춥니다.

 그러면 사람으로 실력 갖춘 것은 암만 해 봤자 사람의 그 평선, 사람의 수평선  거게 있지 사람의 수평선 위에는 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으로 천층 만층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만  실력을 가졌어도 사람은 사람이지 사람 이상 걸 못 가지는데 사람이 사람으로만  준비한 사람과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람은 그것은 인간을 탁월한  인간보다 하나님이 높은 것과 같이 보통 다른 사람보다 그 사람은 하늘같이  그렇게 탁월한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할 때에 결혼하는 그 결혼 상대를  구해도 그래 구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무슨 일을 경영할 때도 그렇게  경영합니다. 사람을 손을 잡을 때에 사람을 무슨 접촉을 할 때에 그때에 세  가지로만 평가하면 됩니다. '이 사람이 보자 물질의 실력이 얼마나 있느냐?'  물질의 실력을 그것을 계산합니다. '물질의 실력이 얼마나 있나?' 물질 실력이  암만 많아도 사람의 실력만 못합니다. 물질이 암만 많아도 사람의 실력이 없으면  그까짓 것 뭐 물질 많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사람의 실력 있는 사람에게 물질  그것에게 그 사람은 치여 죽게 하고 그 물질은 제가 다 이용합니다. 물질의  힘보다 사람의 힘이 탁월하다 하는 그것을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물질의 힘이 많아도 사람의 실력이 전혀 없으면 그것은 암만 많아도 접하면 접한  그 사람의 물질이 되고 말지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물질의 실력과 사람의 실력이 비교될 때에 물질의 실력은 사람의  실력에게 정복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위치를 만들어 놨습니다.

 또 '이 사람이 물질 실력은 없어도 사람 실력은 있다' 그러면 그만 안심하고  결혼할 수 있어. 이 사람은 자기가 이 물질에 모든 뭐 실력은 없어도 사람의  실력은 있으면 그만 그 사람 손 잡으면 물질 그런 것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래 평가하고, 그다음에는 '이 사람이 보자 사람의 실력은 얼마나  가졌느냐? 사람의 실력은 천하에 제일이다. 천하에 제일된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 사람이 사람의 실력뿐이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실력은 여게 하나도  연결이 안 돼 있다.' 그러면 벌써 그 사람을 참된 가치에 있어서는 가치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보고 영원 불변으 완전 실력에 있어서는 완전 실력은 털끝만치도  없는 사람으로 평가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미혹받는 것은 인간의 실력, 자기 실력,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실력 그 실력을 크다 해서 그 실력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접선되는 이 접선을 빼앗기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증거하려고 한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말며 죄인의 길에  서지 말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어짜든지 미혹 시키는 미혹하는 그 모든 미혹을 다  물리치고, 네가 너를 미혹하든지, 다른 사람이 너를 미혹하든지, 뭣이  미혹하든지 미혹하는 것을 다 이것을 배제하고 다 배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서 주야로 묵상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불변적이요 영원적이요  완전적이라. 그것이 그에게 움트기 시작한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니까 접이 붙는다 말이오.

접이 들어붙으니까, 접이 붙으니까 이제 이 나무의 진액이 저 나무와 연결이  되니까, 그 보면, 요새는 접붙이는 것도 발달이 돼서 눈을 붙이는 눈접도 있고  있지마는 옛날 우리 있을 때는 접을 붙이면 제일 감나무 접밖에는 붙일 줄  몰라요. 그저 감나무 접붙일 줄밖에 몰라요. 우리가 젊을 때는.

 감나무 접 붙이면 개엄나무가 적어도 요만해야 됩니다. 요만한 나무라면 얼마나  큰 나무입니까? 요런 나무에다가 아주 조그만한 가지 요만한 걸 끊어다가 딱  거기다가 접을 붙입니다. 접을 붙이면 당년에 크기를 얼마나 크느냐? 당년에  크기를 한 여섯 자 이상 커 버립니다. 당년에 여섯 자 이상 커. 그 밑에 거기다  붙여 가지고서. 또 삼 년이면 그만 감이 엽니다.

 감이 여는데, 그러니까 밑에 둥치가 실하니까 접붙인 건 어려도 속히 자란다,  그저는 그거 비유가 됩니다. 속히 자란다, 그거 비유가 되고. 이 나무와 저  나무의 물이 연결돼 가지고서 연결이 된다, 그것은 비유가 되고. 나무 접은 밑에  이런 나무라도 위에 접붙여 놓은 그 조그만한 가지 그 가지대로의 그 가지가  감나무면 감이 열고 단감이면 단감 열고 떨감이면 떨감 열고 여는 위에 가지를  따라갑니다. 크는 것은 밑에 걸 따라가고.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되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의  접붙인 밑에 나무가 돼 가지고서 그 모든 전지 전능의 만유주 된 주재됨이 전부  자기의 밑천이 되고 자본이 된다, 요거 맞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그걸로 가지고 그러면 하나님이 들어붙어 가지고 하나님께 붙어  가지고서 여는 열매는 접을 떼다가 붙인 그 나무의 열매가 맺는다. 그러기에 그  이치는 맞지 않습니다.

 비유를 말할 때는 하나님이 비유를 쓸 때는 그 비유로 사용한 그 부분만 맞지  그 비유로 하나 사용했다고 끝까지 다른 것을 다 그만 자꾸 이렇게 비유로  나가버리면 헛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그 뽕나무를 해석하다가 '그 뽕나무는  누에를 기른다. 누에를 기르면 거게는 비단이 나온다, 뭐 어짜다.' 그만  그다음에 나가면 헛일이라.

 뽕나무든지 뽕나무 아니고 감나무든지 그 실지를 증거한 것은 뽕나무 아니고  감나무에 올라가도 좋습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자기의 키 작은 것을 보충해서  비상 방법을 써 가지고서 주님을 만난 그것을 말하고 사람 따라가지 많은 그걸  말하는 것이지,  그러기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항상 있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거듭났다' 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났다. 거게는  접붙인 그 위에를 하나님을 말했고 영감 도리를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나무에 접붙인 것은 하나님의 영감 도리를 말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접선되면 하나님 노릇 한다 이렇게 말해 놨고 또 전능자의 하나님과 자기와  접선이 되면 하나님의 충만이 다 자기 것이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접붙인 비유로 하면 두 가지로 나눠야겠습니까 한 가지로만 말해야  됩니까? 언제는 하나님이 위에 둥치에다 접을 붙인 접붙임을 받은 가지로 그렇게  말을 했고 또 어떤 데는 하나님을 둥치로 말했고 그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그런  비유한 것에 모순이 된다 이래 가지고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쨌든지 하나님과 우리와 접선되는 데는 영감의 도리로 인해서 접선되지 영감  도리 아니고는 접선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접선이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접선이 되면 가속 도로 그 사람이 크게 됩니다.

 가속도로 커서, 하나님과 접선되면 그 사람이 전지자도 될 수 있고, 전능자도  될 수 있고, 만유의 대주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네것이 됐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어느 말씀이든지 그 말씀을 새김질하고 생각하고 궁구하는 것이 끊겨지면 안  된다. 이래서 이 말씀을 생각하면 거기서 연달아서 저 말씀이 생각나고 저  말씀이 생각나고 생각나서 자기 마음에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가득  채우면,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그다음에 자기 마음에서 뭣이 나옵니까?  뭣이 나옵니까? 생각이 나옵니다. 생각이 나오는 것이 하나님 생각이 나오고,  진리 생각이 나오고, 내나 성령 생각이 나오니까 한 생각이요, 하나님의 생각이  나옵니다.

 생각이 나오니까 그 생각은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뜻은  안 이루어질래야 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득 차야 되지 딴걸로 있으면  자기는 실수합니다. 그러면 요것을 자기 현실에 무슨 물건이나 일이나 사람이나  닥쳤습니다. 닥쳤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이 물건을 어떻게 하나? 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그러면 그렇게 자기가 '이 사람 만나 이 사람에게 대해 어떻게 할까?' 궁구하고  궁구하면 '하나님 말씀으로 말하면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된다 했는가?  영감으로 말하면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느냐?' 그렇게 자꾸 궁구를  하면 그 사람의 움직이는 행동이 살겠습니까 죽겠습니까? 죽습니까? 녜,  죽습니다. 여기 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말이오. 죽습니다.

 자기가 다 그래 산다 말이오. 무슨 일을 만났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그래  가지고서, 그때는 벌써 그 일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그 일에게 하나님 말씀이  소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소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돼서, 연결은 하나님 말씀과 자기와 연결되는데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그것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인데 그래 가지고  충만해 가지고 무엇이 닥치면 그다음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돼 가지고  그다음에 사람이든지 만물이든지 만나야 됩니다.

 그러면 그 순서로,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사람이 그러기  쉬운데,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하나님, '자기가 있고 하나님 있지' 그렇기  쉬운데, 하나님, 하나님 먼저, 그다음에 자기 그 다음에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세상이 있어야 됩니다.

 요 순서로 되어지는 요것이 잘못하면 물건, 그다음에 자기, 그다음에 하나님,  요렇게 꺼꾸로 가기 때문에 요것 생명 역사가 일어나지 안하고 그 폭발이  일어나지 안하고 그 사람이 아무리 해 봤자 제가 하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없다 그말이오.

 요게 바로 연결이 되면 일은 누가 합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도 시작만 하고 마는 사람, 조금  나타나고 마는 사람, 그것은 뭣이냐? 연결의 조화가 바로 되지 안하는 데에서  그게 중단되고 또 그것이 강하고 약하고 크고 작고 하는 많고 적은 것이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그러기 때문에 우리 연습은 먼저 하나님, 그다음에 나, 그다음에 모든 이  피조물, 그렇게 요 순위가 그렇게 되기를 우리가 자꾸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제일 처음에는 이 모든 세상, 나, 그다음에 하나님, 이랬는데  자꾸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할까?' 이렇게 아니고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나' 하나님부터 시작해서, 하나님부터 생각 하고, 하나님 말씀  진리부터 생각하라 그말이오.

 생각하면, '하나님' 이래 가지고 '하나님, 나는 뭣입니까?' 하나님하고 나하고  연결되고 난 다음에 '저것은 뭐입니까?' 요런 순서가 되지 안하면 안 되는데  요것을 사람들이 말하면 그 논리에 대해서 억설같이 생각합니다. 억설같이  생각하고 그것은 말로는 그렇지마는 실지가 아니라 그래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을 붙들려고 할 때는 그때는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려고  하는 것인데 연결을 가졌을 때에는 하나님이 먼저고 자기 그다음이 돼야 되고,  또 만물이 그다음이 돼야 되지 그 순서가 바꾸어지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로만 이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할 일은  뭣이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서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자꾸  새김질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말은 제가 그리스도를 이 하는 게 아니오. 그리스도가  주권으로 능등으로 움직이는 데 거게 기가 따라서 피동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그게 이루어져요.

 그러기 때문에 '네가 총독 앞에서나, 또 어떤 공회나, 어떤 강한 세력 앞에  끌려갈지라도 거기 가서 네가 어떻게 말할 것을 생각지 말아라 말씀하시는 이는  너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말씀하시느니라.' 그것 자기가 그럴 때에 경험을  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제사드리러 갔을 때도 이삭이 있다가 '제물 어디  있습니까?' '제물은 하나님이 예비하실 것이다' 그말 한 것 아브라함이 자기  주관으로 알고 한 말 아닙니다. 그 피동돼서 말했다 말이오. 피동돼서 말했는데  피동돼 말한 그것이 나중에 가 보니까 그대로 됐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피동된 말 그것이 가치 있고 그게 능력  있지,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가 설교를 하려고 할 때에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그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내일은 설교를 해야  됩니까?' 암만 기다려야 안 줘서, 시간이 되니까 강단에는 올라오기는  올라오지마는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줄런지 그 모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말이야 많지요. 이 말 할까 저 말 할까 많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말 하라고 주는 말씀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피동돼서 증거하지, 그러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한 번도 준비하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그 말씀을 그저 하나님이 이 말씀 증거하라 해서 증거하지마는 그  말씀을 증거할 때 무엇이 연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장 새 말 같이 새로 만들어  내는 말같이 그래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이오.

 이러나 그 말을 들을 줄 몰라 그렇지 그 말이 말한 자기도 자기가 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에게 있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셔서 그 말씀을 하셨다 하는  것을 신앙의 사람들은 많이 체험합니다.

 사소한 데서도 자기가 무슨 심방을 가서도 한번 설교를 한다든지 권면할 때에  자기에게 있는 게 나온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서 그 말에 피동된  말이 나가는 그때에 효과가 있는 것이지 제가 하는 말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조그만한 데서도 자꾸 경험과 체험이 됩니다.

 제가 6·25 때에 인민군이 점령하고 난 다음에 집회를 그대로 계속하니까  그들이 '저놈들은 우리 망하라고 지금 저거 하나님에게 하루 세 번씩 종치며  기도한다' 하면서 날마다 지금 오늘이 사형날이라 내일이 사형날이라 그래도 그  날이 자꾸 밀려 나가는데, 그게 하나도 뭐 상관 없었고 집회하는 그날 새벽에,  그날 새벽에 마지막 집회요.

 마지막 집회라서 할 설교 없어. 내가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들에게  준비되는 말씀을 다 이제 두 달 동안이나 해서 계속 두 달 동안 세 번씩 모여  가지고 집회를 해서 다 했으니까 할 말이 없으니 오늘 아침에는 아무 말씀  증거할 말씀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산상보훈 마태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이나 읽고  그칠까요?' 그래 말했어요.

 그래 가지고서 말씀을 떡 읽고 나니까 또 하나님이 거기 대해서 말씀을  주시는데 말씀을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는데 뭐 탈칵거리더니마는 문이 출입구가  서인데 그 세 군데 다 인민군이 총을 가지고 탁 누르면서 이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도 무슨 신강인지도 모르고 자꾸 설교를 이래 하니까 저쪽에  가서 무엇이 총을 들고서 무엇을 말을 해요.

 그때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앉아!' 고함을 소리 했어. '앉아!'  이러니까 그만 그 사람들이 거기 쭉발치고 앉습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의 말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 이만기 목사님더러 하도 조우면서 가서 나오라 하라  하니까 이만기 그때 집사가 못 견뎌서 이래 들어 오는데 또 그때 들어오면 무슨  말 할 건데 나도 모르게 내 속에 툭 튀어나오는 말이? '어데라고 들어와?' 안  가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그만 벌벌 떨려서 기어나가 버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떡 하는 말이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그때 갑자기 변해서, 잡아 죽이러 온 사람이 예배보러  왔다는 사람으로 변해져요. 떡 예배보러 앉더니마는 또, 또 뭐라고 한 삼 분인가  사 분인가 앉았더니마는, 아마 위에 지령을 받았던 모양이라. 앉았더니마는  '빨리 나오라 해라' 또 그 위에서 고함을 질렀어. 안 앉느냐고 이래 고함을  지르니까 암말도 안 하고 또 푹 쭈그려 앉아. 그뭐 그때는 참 그 뒤에 보면, 그  사람이 호령하는 명령하는 대로 복종이라. 그런 일 많습니다.

 그러기에 미워하는 것도 '그 사람이 왜 저리 밉노? 사람 미워하면 죄인데 왜 그  사람이 밉노?' 미운 사람 많습니다. 없는 게 아니오.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밉노?' 나는 그 사람을 미워했는데, 미워한 것을 회개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  사람 미워할, 그 사람을 미워해야 될 것이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결국은 그  사람의 행위를 미워한 것이지 사람을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가 그 말을 했는데 '무슨 무책임한 말을 그런 말을 했을까?' 했는데  말한 그대로 뒤에 돼 나갑니다, 말한 그대로.

 그러기에 우리가 똑 바로 될 때에는 하나님 계시고 하나님에게 내가 접이 붙어  가지고 있고 그리고 난 다음에 거게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가지가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요게서만  이루어지지 제가 수단 방법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 참 기쁘고 즐겁다 기쁘고 즐겁다 이렇게  기쁜 소식 즐거운 소식이라고 했는데 딱 만나고 난 다음에는 내 마음이 기쁘지  않습니다. 만날 때도 기쁘지 않습니다.

 왜 기쁘지 않느냐? 그분이 능동이 돼 가지고 그분에 따라서 피동되는 그 작용이  없고 인간의 작용 이것이 하나님을 붙들라 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이용할라 하는 거기 있고 하나님께 피동된 말이 나오지를 안하고 하나님께  피동된 무엇이 나오지를 안하더라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아는 대로는 내가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하는 것이 거기서 나오지 안하기 때문에 아무 거석이 없다  말이오.

 그래 가니까 누가 말하기를 '오늘은 왜 목사님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를 안하고  그렇습니까? 오늘 아주 기쁠 줄로 생각했는데 기쁜 사람을 만나면 기쁘실 터인데  어째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뭐 그럴 이유가 있다고, 이랬는데.

 사람을 만날 때에 내게도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이 나오고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이 나오고 이러면 딱 들어붙소. 그만 그러면 그 이상  좋은 게 없어. 그러나 보면 그 사람이 인본으로 그 사람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을  말은 많이 하지만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일이 아니더라  말이오.

 그것은 보면 대번 알아요. '이 사람은, 하나님께 피동된 말이다. 하나님께  피동된 행위다.' 아무리 등신이라도 그걸 압니다. 아무리 등신이라도 하나님에게  피동된 것인지 안다 그말이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만나 가지고 퇴박만 실컷  먹고 갔어. 퇴박만 실컷 먹고 갔는데 퇴박을 먹고 갔지마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하게 해서 말을 했기 때문에 나도 즐거웠고 아마 자기도 큰  즐거움을 누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 시간 만난 그것을 그 사람이 잊어버리지  못하고 항상 만난 그 생각이 자기 속에 떠올라서 자기의 마음을 충격 주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데서 하나님과 이렇게 연결되는 그 조화가 이루어지지  그 아니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요것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마음 속에 어느 말씀이라도 그 말씀 생각하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이 연결돼 가지고 모든 말씀이 다 자기 마음 가운데 다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속에 말씀이 가득 찬 인간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 인간이 무슨 행동, 인간이 어데 가는 것도, 어데 가는  것도 제 마음대로 가는 줄 압니까? 인간이 어데 가는 것을 인간이 오고 가고 한  행동을 무엇이 지배합니까? 지식이 지배합니다. 지식이 가라 하는 대로 가요.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은 뭣이 시키는 대로 하는 말이요? 기뻐하는 것은, 그  사람이 기뻐합니다. 그 지식이 들어서 기뻐하라 하기 때문에 기뻐하요. 그  사람이 '왜 오늘은 지금 새카마이 다 죽어가노? 왜 얼굴이 다 죽어가노?' 다  죽어간다고 이러는데 그것은 다 죽어갈 만한 그 사람에게 지식이 들어왔다  그말이오.

 지식이 들어와서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지식은,  인간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마련인데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의 지식에게 지배만 받으면 이제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이것이 우리 생애 중에는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 예배당에서 결혼식 상담이 있다 하는데 결혼식 상담 안  하겠습니다. 얼마 동안 안 하고 이제 광고를 해 가지고, 지난 주일에도 광고를  써내라 했는데 그만 그걸 안 써냈네. 어데 갔노, O ○O집사 어데 갔노? 왜 안  써냈어? 써내라 하면 써내야지. 써내야지. 그거 너무 써내는 과격하다 싶어서,  그거는 ○집사 혼자 주관이지 써 내야 돼. 다음 주일에는 써내요.

 내일이 추석입니까? 추석에 피동되지 말고 추석도 잘 이용해서, 추석에게  피동되는 사람 되지 말아요. 어떤 사람은 이산 가족 찾는 데 거게 피동이 돼  가지고서 그만 야단을 지기는 사람, 이산 가족이 있든지 큰 전쟁이 났든지  무엇이 나도 우리 믿는 사람은 아무것에게도 피동이 없어야 됩니다. 주님 한  분에게만 피동돼야 되지 아무것에게도 피동이 없어야 돼요. 그러기에 시대를  따라서, 시대의 풍조에 따라서 흔들리는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 안 됩니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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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성/ 호세아 2장 4절-23절/ 1984. 8.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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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10 하나님과 이질적인 요소를 버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1981. 1.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과 자기와 믿음 생각 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1987. 10. 2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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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4장 1절-3절/ 1984. 5.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00 하나님께 대해서 노력할 것/ 로마서 6장 23절/ 1985. 11. 8.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99 하나님께 받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8절∼12절 상반절/ 1987. 4.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98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4. 4.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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