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1979. 11. 23. 금요일 저녁

 

본문: 출애굽기 12장 13절 ~14절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를 대대에 지킬지니라

 

이 절기는 유월절 절기입니다. 유월절 절기라는 것은 1월 2월 4월 5월 6월 하는  그 유월이 아니고, 넘을 유자, 넘을 월 자, 넘는다는 뜻입니다. 유월이란 말은  넘는다. 물이 넘는다 이렇게 넘어가는 것을 가리켜서 유월절이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 하나님의 장자 재앙에서  구원해 내신 그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애굽의 장자 재앙은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위에 처음 난 태생으로부터 모조리 죽어 나가는 그 재앙입니다.

그러면 맏 새끼가 죽으면 그 다음 새끼가 또 맏 새끼가 되겠습니다. 또 둘이  죽으면 셋째 것이 맏 새끼가 되겠습니다. 이래서 위에서부터 모조리 죽이는 이  하나님의 재앙을 가리켜서 장자 재앙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낸 그날을 기념해서 유월절로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넘는 절기가 되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양을 잡아  가지고 양 피를 자기 거처하는 문설주와 문지방에 이 피를 칠하고 그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장자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 양의 피를 보고 피가 있는 그 방은  넘어서 피 없는 방 피 없는 집 거기만 들어가서 장자로부터 죽이는 그런 재앙을  하나님이 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바른 그것을  인해서 이 재앙이 처소에는 들어오지 안하고 그 처소를 넘어서 피 없는 집 피  없는 방 거기만 들어가 가지고서 위에서부터 내리 죽이는 이런 재앙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힘입어서 이 재앙을 받지 아니하고 이  재앙이 넘어가서 이 재앙의 해를 받지 아니한 그것을 기념하라 하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이 유월절에 대해서는 지난주일 오전으로부터 계속 새벽에 인도하니까  여러분들이 거기에 대해서 얼마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유월절은  애굽에 많은 재앙이 내리다가서 마지막으로 큰 재앙이 내린 재앙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는데 열 가지 재앙은 물질적으로,  종교적으로, 지식적으로, 그들의 의뢰하고 욕망하는 이런 것으로 전체가 재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이 재앙이 큰  구원을 준 재앙입니다. 이래서 유월절에 일반인들은 큰 재앙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재앙으로 인해서 큰 구원이 되었기 때문에 이 구원을 기념하라  이 구원을 감사하면서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면서 늘 기억하고 이것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가지고 구원을 받는 길을 걸어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구원을 받았느냐? 첫째로 생명이  구출되었고 두 번째는 모든 학대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고 다음에는 이제까지  손해 갔던 모든 소유를 되찾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사는 은혜를 이 유월절로 시작해서 받게 된 것입니다.

신약에도 보면 유월절이 여러 번 나타났고 유월절 절기마다 거기에 나타난  사실들을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다 그는 유월절 적인 환난 중에  어떻게 우리가 모든 면을 단속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길이 되어  있습니다. 법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유월절 성질과 같은 이런 성질의 환난을 없기를  원해서는 안됩니다. 이 환난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열 처녀 비유에도  밤중에 신랑이 왔다 하는 그 밤중으로 비유한 것은 이 극도의 이 환난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유월절 환난을 유월절 환난과 꼭 같은 환난  하나님께서 그 환난에 외부적 형태는 여러 종류로 나타냈지마는 그 속에 이치는  꼭 같습니다. 그 속에 이치는 조금도 다름이 없이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많이 기다렸지마는 밤중이 오기 전에는 신랑 맞이하는 일은 되지 안 했습니다.

밤중에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이 환난이 있는 이 환난에서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됐습니다. 이 환난이 없는 데에서는 인 맞을 준비를 했고 이 환난 중에 하나님의  인을 맞아서 이마에 이 인을 맞은 사람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황충이의 해를 받지 안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환난 없기를 원해서는 안됩니다. 환난을 자기가 자꾸 원할  것은 아니지마는 오는 환난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는 환난을 자기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구원의 환난으로 잘 통과하도록 기도도 하고 노력도 해야  됩니다.

환난이면 좋은 것으로 알아서 환난만을 원하는 그것도 일종의 고행주의요. 또  환난을 피하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안일주의요. 우리는 오는 환난을 피하려고도  하지말고 오지 않는 환난을 오도록 소원할 것도 없고 환난이 오면 맞이하고 가면  보내고 이 환난으로 인해서 구원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기도도 하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왜? 환난은 내부 형태는 그 종류가 헬 수 없을 만치 많습니다. 사회 환난도 있고  가정환난도 있고 뭐 단독환난도 있고 집에 환난도 있고 국가 환난도 있고 민족  환난도 있고 교계 환난도 있고 여러 가지 환난들이 많이 있으나 그 환난을 질을  구별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이 되는 징계가 되는 환난이  있고 하나는 구원이 되는 환난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이 되는 환난도 있고  구원이 되는 환난도 있습니다.

멸망도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멸망이 안되고 구원도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안됩니다. 구원도 멸망도 다 환난을 통해서만 되는 것입니다. 졸며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와서 앉아 봤자 떨기만 떨지 아무소용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멸망을 피하지 아니할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려고 해도 이  환난에 대해서 크게 대비가 있어야 되겠고 또 구원을 얻으려고 해도 이 환난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환난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도록 기도하고 또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고 또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이 환난을 구원이 되도록 잘 통과할 이 일을  위해서 기도도 해야 되겠고 모든 예비도 해야 되겠고 또 노력도 해야 되겠습니다.

이 출애굽 환난에 그 원인을 찾아보면 창세기 30장 이하로부터 출애굽기  15장까지를 상고해 보면 대략 그 가운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 거기에 빠진  것이 다른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거기에 상고해 보면 대략은 알 수 있도록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 환난은 처음 야곱에게서부터 이 환난이 시작돼 가지고 그 뒤에 요셉으로  전달되고 또 요셉의 환난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말할 수 없는 큰 학대와  학살을 당하는 그런 환난으로 연결되고 애굽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학대 학살의  이 환난이 이 환난이 마지막에 열 가지 재앙 환난으로 이렇게 점점 연결이  되어서 정죄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 환난을 내리 상고해 보면 그저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의 환난이요 하나는 멸망의 환난이라. 간추려서, 요셉이가 부모  슬하에서부터 그 가정 안에서 형제의 환난이 쭉 계속해 내려온 그 환난이 애굽  나라에 총리대신이 되기까지에 그 환난은 계속했습니다. 그러면 그 환난이 아주  참 쉬운 환난이 아니고 모두 다 그 환난들이 생사에 관련을 가진 이런 아주  뜨거워 환난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은 요셉과 전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자신들에게는 영광과 구원이 된 이 좋은 결과를 맺은 환난이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그 환난은 다 학대 학살에 결과를 맺는 그런  환난이었습니다. 그 환난에는 이스라엘 남자는 완전히 하나도 없이 전멸시켜  버리고 여자는 남겨두고 여자는 남겨두고 씨 없으니까 저희의 이용물로 삼고  남자는 완전히 멸종을 하기로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놓고 그렇게 날 때부터  산파를 보내 가지고 죽이는 그런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게 될 때에 그때에 이스라엘 천지에는 다시금 열 가지  재앙이란 이 환난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기에서 구출해서 선조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이 소망을  달성시키는 해방과 자유와 하나님의 은택을 입는 그런 결과를 맺게 하는 환난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환난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구원에 이르게 환난이요 하나는  멸망에 이르게 하는 환난이라.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데에도 반드시 환난을 통해서 구원하시지 환난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구원을 할  수 없는 처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락되어 있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는 데에는 이 환난을 통하지 안하고는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려고 하면 반드시 이 환난을 통과해야  구원이 되지 환난 없이는 구원이 안 된다 하는 요것을 또 명심해야 합니다. 또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망하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것도  꼭 환난을 통해서 망합니다.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망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도 환난을 통해서 망하는 것도 사망도 환난을 통해서 오니까  이러나 저러나 이 환난은 우리에게 떠나지 않고 이 환난은 우리에게 부딪쳐  옵니다. 멸망의 환난이 오든지 구원의 환난이 오든지 이 환난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아야 이 환난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아무리  피하려고 해 보았자 피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어제 이 두 가지 환난에 대해서 그 내용 하나하나 실지로 이루어진 그런  것은 종류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는 들을 것이 못되고 거기에  대한 진리만 말할 때에 여러분들이 가서 보면 다 그것은 성경 읽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멸망되는 그 환난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그 환난이 오기 전에 환난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 받을 그 환난을 자꾸 청합니다. 멸망 받을 환난을  청하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을 받을라고 멸망되는 그 환난을 자꾸 청합니다.

이 환난이 오도록 이렇게 조성을 합니다. 환난을 오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시키는 환난이 오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되는 환난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그것을 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환난을 보면은 다 같은 순서로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순서로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전부가 같은 순서기 때문에 이 면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환하게 그 순서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앞세우지 안하고 자기를 앞세웁니다.

이러니까 둘째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보다 자기 뜻을  찾습니다. 그 다음에는 고난보다 안일을 찾습니다. 평안할 것을 찾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선물의 축복보다 이미 세상에 있는 이 모든 소유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을 버리고 이제 모든  인간으로 더불어 모든 것을 맺고 끊고 하는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시키는 환난을 초래하는 멸망시키는 환난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 맺어지는 결과가 어떠한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생각했는데  자기가 차차차차 못 써 집니다. 이제는 자기가 못 쓸 사람이 됩니다. 못 쓸  사람이 됩니다. 올바른 지능이 없어지고 올바른 인격이 없어지고 올바른 사상이  없어지고 올바른 참사람의 요소가 차차 희미하고 없어져서 사람을 이제 사람이  못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앞세워서 하나님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를 제일로 생각해서  이렇게 알뜰히 자기를 생각했는데 그 결과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을 통해서  자기는 점점 못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생각이 어두워집니다.

삐뚤어집니다. 자기 생각이 삐뚤어져 버리요. 또 자기 소원하는 소원이 삐뚤어져  집니다. 전부 삐뚤어진 것만 소원 하요. 자기 머리에는 삐뚤어진 지혜만 나옵니다.

자기 머리에서는 삐뚤어진 지혜만 나오고 소원은 삐뚤어진 것만 소원하고.

여기서 자기와 자기의 욕망과 모든 행동이 완전히 못쓰게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일이 잘 안되니까 고통이 이제 안일을 해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분망합니다. 분주하고 피곤하고 분주하고 되고 부족하게 됩니다. 노고가 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뭐이 잘되어야 될 터인데 이제는 자기의 모든 세상사가 모든  소유가 이것이 복을 받지 못해서 이것이 허다무실이 됩니다.

껍데기는 많은 것 같은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소. 허다무실로 사람들이 보면 가고  오고 주고 받고 모우고 미치고 아주 야단을 지기는데 허다무실이라. 껍데기는  많은 것 같은데 속에 알맹이가 하나도 없어. 허다무실이.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와 짓밟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든  환난입니다.

만든 환난. 자기를 알뜰히 위했는데 자기를 해친 결과가 되었소. 자기 의사와  주장을 유일한 절대성으로 이렇게 세워서 권위 있게 세웠는데 이것이 점점  무능해지요. 자기가 자기의 목적을 두고서 이 욕망과 이 목적을 달성할라 하는데  하나님이 법칙을 그래 나서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그렇게 되어 가지고 있소.

이러니까 이 소망하는 것이 좋은 것 소망하면 되는데 꼭 망할 것만 소망한다  말이요. 꼭 망할 것만 카미카미하면서 안 망할 것은 내비 두고 꼭 망할 것만  소망하고 소욕 하게 돼요. 그 소욕 전체가 망할 것만 소욕하게 돼 버리요.

이상합니다. 이제 일하는 것은 어짜든지 평안 할라고 하는데 평안 할라고 하는데  이제는 안 먹고 잠잘 시간도 없이 분주합니다. 분주하고 복잡 하요. 뭐 아주  분주하고 복잡해서 어디 주일 지킬 시간이 어디 있겠소? 주일날도 여기 앉아서도  머리 속에는 와글와글하면서 이걸 안 생각하면 안된다. 그 말이요. 정반대가  왔습니다. 이래서 세상에 자기가 모든 것에 소유가 풍성하다 했는데 껍데기는  얼마만한데 속에는 텅 비 있어.

이러니까 오늘 뭐 큰 거부가 내일 보면은 부도가 나 가지고서 감옥에서 같이  앉았소. 많은 몇 억대 재산가 지마는서도 그 사람이 현재 돈 천 만원을 빼낼라  해도 빼 낼 데가 없다 말이요. 못 빼낸다 말이요. 이런 분이 너희 속에 텅 비어  버렸소. 이제까지 노력하는 것을 모든 사람을 발아래 밟고 자기가 위에 올라  탈라고 했는데 정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와 짓밟힘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만든 이 환난이 저들이 만들었습니다. 저들이 이렇게  만들었소. 구약에 나타난 성경 역사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든 환난은 전부  요 순서를 만들어서 요렇게 요 순서로 만들어 가지고 환난이 왔고 그 환난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환난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멸망 받는 그  환난에서 저들이 못 견뎌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환난을 갖다 줍니다.

구원 얻는 환난을 줘야, 환난이래야 구출해 낼 수 있는데 구원하는 환난을 갖다  주면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자기를 믿고 의지하고 자유를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인데 이 환난을 구원의 환난인데 이 환난이 오면 환난  때문에 지껏지껏 하고 지금 죽을 지경인 여기에다가 또 하나님 때문에 또 환난을  더 만나게 됐으니 아야 할 수가 있겠느냐 하여 이 환난을 맞이하지 안 하는 자는  그 환난에서 끝까지 망하고 말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환난을 이제는 그들이  회개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 변질했던 것을 회개해서 하나님하고 시비를 해서  하나님을 이기기도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기어코라도 거역을 하고 이러다가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 멸망 받게 되는 이제 환도뼈를 치시고 그 다음에 내리칠  터인데 거기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이여 이제는 내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옆에서 나를 부인하고 자기를 비어 하나님에게  복종하겠습니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축복하신 그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해서 이김으로 거역하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으로 멸망 받게 된 여기에서 내가 회개하여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제는  다투지 아니하고 무조건 하나님에게 복종하기로 하여 이 죽음에서 죽음을 면하고  살게 된 요것이 내 이름인데 이스라엘은 회개의 이름인대 두 가지를 회개한 요  회개의 이름인데 요 이스라엘로 변질되지 않은 요 진실한 이스라엘로 저들이  다시 회개를 해서 회개를 하면 이 환난을 하나님이 구원으로 주시는 환난을  맞이할 수가 있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 환난을 맞이 못합니다.

이 환난을 맞이하는 것이 회개한 증거요. 이 환난을 맞이하지 않는 것이 회개하지  않는 증거라. 회개한 자는 이 환난을 맞이하고 회개하지 안 하는 자는 이 환난을  맞이하지 않기 때문에 그 환난에서 죽고 회개한 자는 이 환난을 맞이하여 이  환난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환난을 가리켜서  신약에서는 와 가지고 십자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라. 십자가로 구원된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긴다. 환난으로 환난을 이긴다. 멸망으로 멸망을 이기고 다시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 하는 그것이 이스라엘이  걸어가는 걸음이요 구원하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구원하시는 이 환난을 통과하는 것은 요런 순서로 통과하게 됩니다.

요것도 이스라엘이 만드는 환난입니다. 구원의 환난도 이스라엘이 만드는  환난입니다. 멸망의 환난도 이스라엘이 만드는 환난이요. 구원의 환난은 어떻게  만드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 요 두 가지를  받을려고 하면 여섯 가지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내어놓지 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지 안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 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 요 두 가지를 자기가 취할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여섯 가지 환난을 만나게 돼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요. 있는 자리가 그 자리인데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를 취하려고 하면 이 필연적으로 여섯 가지 환난을 안 당하고 안 돼. 귀가  어두워서 말귀를 못 알아 들으면 헛일이야. 바로 알아들어야 되지. 여섯 가지  무슨 환난을 맞이하게 되느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려고 하면 첫째로 자기와 맞지 않습니다. 자기를  버려야 되는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환난을. 주장을 꺾고 제  감정을 꺾고 제 생각을 꺾고 제 비판을 꺾고 제 평가를 꺾고 제 계획을 꺾고 제  경영해 놓은 걸 꺾고 하는 이것이 여간한 환난 아닙니다. 또 이 두 가지를  취하려고 하니까 자기가 이제까지 사귀어 놓은 모든 사람을 버려야 됩니다. 이  사람과 대립이 됩니다. 이 사람을 버려야 되겠소. 이 사람들 형님 동생 사촌 집안,  집안 친구.

구원의 환난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들어 가지고 그 환난에서 구원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멸망시키는 환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들어 가지고 그 환난에서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환난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자기가 여섯 가지  환난을 당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것을 삼을 때에 삼았을 때에  구원이 되고 멸망하는 환난은 여섯 가지를 자기가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리므로 오는 환난을 인하여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 이루는 순서는 먼저 환난을 취하므로 뒤에 구원이 되고 멸망하는  환난은 먼저 구원을 취하므로 그 다음에 변동 못할 멸망의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얻는 길은 먼저 고난이요 다음이 평안이요. 먼저가  내놓음이요 다음이 취함이요. 먼저가 죽음이요 뒤에 삶이요. 멸망 받는 환난은  먼저 취하고 뒤에 빼앗기고 먼저 평안하고 뒤에 고통 당하고 먼저 환영받고 뒤에  배척 당하고 먼저 살고 뒤에 죽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들어서 멸망할 환난도 만들고 구원  얻을 환난도 만드는데 그 만드는 순서가 주님과 주님의 뜻을 인하여 모든 환난을  자취할 때에 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취하려고 하니까  이로 인해서 자기에게 여러 가지의 환난이 옵니다. 환난이 와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환난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영접해서 동행할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잡기 위해서 만난 환난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오면 다 이 환난은 없어 버리고 그 다음에는 평강의  구원이 오는 것이고,  믿는 사람이 우선 자기에게 오는 환난을 물리치고 오는 모든 평강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선 그 현재에 평강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림으로 취한 구원과 평강이 하나님 떠나고  나면 하나님의 뜻 진리 떠나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겉 쫓아서 이제 그 구원이  돌변해 가지고서 멸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취해놓은 존귀가 멸시가 되어지고  부요가 가난해지고 평안함이 고통스러워지고 삶이 죽음이 되고 환영이 배척이  되고 요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기독자들이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자기가 스스로 멸망 받는 환난도 만들어 가지고 그 환난으로  멸망을 받고 기독자가 구원 얻는 환난도 자기가 구원 얻는 환난을 만들어 가지고  이제 그 환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데,  멸망 받는 환난을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과 진리를 팔아 가지고서 구원과 평강을  갈라고 구원과 평강을 인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버려서 버리고 평강을 취한 자는  그 취한 평강 그것이 나중에는 환난으로 바뀌어 가지고서 이제 멸망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기독자가 멸망하는 환난을 맞는 것은 좋고 평안하기 위해서  평안과 구원을 하나님 팔아 가지고 진리 팔아 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팔아  가지고 평강과 구원을 마련했는데 마련하고 보니까 이것이 나중에는 자기를  멸망시키는 환난으로 바꾸어집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진리를 잡기 위해서 자기네들이 이 둘 때문에  원치 안 하는 이 환난을 자기네들이 만나게 됐습니다. 이 둘 때문에 환난을  마련해서 이 둘 때문에 이 둘 내 놓으면, 환난 지금도 없을 터인데 이 둘을  내놓지 안 할라 함으로써 이제 환난이 생겨집니다. 이 둘 때문에 만든 환난이나  제 이 하나님이 변해서 구원과 존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이라나 저라나 환난을 만들고 있다. 자기가 만든  환난으로써 구원 얻고 멸망도 얻었다. 자기가 만든 환난이 당장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때문에 먼저 환난을 만난 사람은 어제 구원이 되고 자기가 이  환난을 취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려야 이 구원과 평강이  오기 때문에 이 구원과 평강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려 구원과  평강을 얻어 놨는데 이것이 변해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멸망이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모든 구원과 평강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높이 평가해서  이것을 더 보배로 여겨서 이 땅 위에 모든 구원과 평강 이것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더 귀중해서 구원과 평강을 다 내어 줄지라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취하는 사람은 이것을 다 내 주니까 이제 고통입니다. 고통이요. 이 세상이  좋아하는 이 보배를 다 내어 줌으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어 주지 안하고  취한 사람은 이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때문에 만든 환난을 통해서 자기가  구원하게 되고 구원받게 되고 존영하게 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보다 이  세상의 구원과 평강과 존영을 이것을 더 귀중히 평가하는 사람은 더 귀중히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것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버립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고 이것을 취했는데 취한 이것이 변질 돼 가지고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멸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순위를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안 내어 놓든지 둘 중 하나를 내 놓아야 되겠소. 자기를 부인하든지  하나님을 부인하든지 제 자유를 제 생각을 부인하든지 하나님의 생각을  부인하든지 둘 중 하나 밖에는 못 취한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뜻이 내 뜻과 나와 행위가 맞은 것도 있지마는  그럴 때는 구원이 안돼. 이미 이루어져 놓은 구원이지 거기에는 수입이 없어요.

반드시 하나님과 나와의 대립이 될 때에 거기에 구원이 되어집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가 버리지 안 할라고 하면 나를 버리게 돼요.

둘이 대립되니까 그때라야 구원이 돼. 또 이것만 맞으면 되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안 할라고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이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을려고 하면 내 앞에 있는  친구 친척 모든 인간 모든 인간과 대립이 돼요. 모든 인간과 대립이 돼요.

이래서 모든 사람을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뜻 때문에 부득이 내놓기 싫은 이  사람들과의 이제 정을 끊게 되고 환경을 끊게 되고 뜻을 끊게 되고 비유를 끊게  되고 생각을 끊게 되고 도모를 끊게 되고 경영을 끊게 되고 성질을 끊게 되고  성품을 끊게 되고 모든 것을 이제 그러니까 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를  버리니까 자기 깨어지는 환난이 이기 제일 큰 환난이요

둘째로는 자기와 관련 가진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다 파괴가 되어지니 이  환난이 큰 환난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위한 뜻을 취하려고 하니까  자기의 세상이 다 깨어진다 말이요. 이제 세상에 오만 꿈을 꾸고 오만 이기  깨어져. 이기 절단 나. 세상이 깨어지니까 세상이 안 깨어지도록 세상을 보호하고  세상을 취할려면 이 둘을 내 놔야 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놔야 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안 내어 놓을려 하니까 내 세상이 깨어진다 그기요. 자  세상이 깨지니 환난이지 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취할려 하니까 나에게 있는  모든 평강이 다 깨어집니다.

이거는 요러면 평안하겠는데. 아 다니엘이 기도만 안 하면 그만 평안하겠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려 하니까 이제 평강이 다 깨어진다  말이요. 넷을 잊어버렸소. 넷이 깨지는 이 환난을 만났습니다. 넷을 깨지면  하나님과 뜻을 취할 때도 있지마는 의나 값이 큰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취하려고 하면은 네 가지 가지고 안돼. 이 넷을 버리니까 여기서부터 오는 큰  고통이 옵니다. 큰 고통이 오요. 이제 그 큰 고문도 오고 고행도 오고 고독도  오고 매장도 오고 별별 고통이 옵니다. 이제 고통이 오요. 다섯 가지 그만  다입니까?  이제 하나님과 진리를 마지막에 내놓지 않을려 하니까 생명을 내놔야 되는 이  고통이 온다 그 말이요. 고통이 옵니다. 이래서 여섯 가지를 팔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사는 것이 이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만드는 환난이요.

 여섯 가지를 팔아 가지고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삽니다. 이제 이 여섯  가지를 팔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차지하는데 이 둘을 차지하는데는  이 여섯 가지가 깨어지니까 그 깨어지니까 그 깨어진다는 것이 참 말로는 쉬워도  굉장한 환난입니다. 성도가 만 구원의 환난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환난을 만들어놓으니 이 둘을 취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 대주재자  전능자 주권자 이분을 차지했으니 주권을 차지했지 주재를 차지했지 전능을  차지했지. 이제 뜻을 찾았으니까 전지를 차지했지. 전지 전능 주권 주재 차지하고  나서보니 그 다음에 팔았던 여섯 가지가 다 거기 있습니다. 팔았던 여섯 가지가  다 거기 있어. 그것이 상대가 안돼. 상대될 기 없어. 내가 차지한 이 분이 다 만든  건데 이분의 주 성품인데 그것하고 시비를 했지마는 이분을 차지하고 보니까 그  위에 쓱 탁월해서 이것들의 주격이라. 하늘에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됐어. 이것이 성도들이 구원의 환난을 만들어 이 환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요.

성도들이 멸망할 환난을 만들어. 멸망을 받는 것은 자 자기가 자기를 내어놓지  안하고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자기를 애껴 자기 위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위하지 못하겠고 이러니까 자기를 위해야 되겠으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 놓아야 되요. 원통하지만 내어놓아서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내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그만큼 붙잡을라고 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차지할라 하면 모든 사람을 다 내어놔야 될 터인데 모든 사람을 내놓을 수가  없다 그 말이요. 모든 사람을 내어놓을 수가 없소.

그 사람 비유 맞출라 하니까 하나님 비유에 거슬리지 그 사람 위할라 하니까  하나님 위할 수 없지 그 사람 좋게 할라 하니 하나님 좋게 하지 못하지 이래서  사람을 내놓지 않을라고 모든 사람을 내 사람으로 좋게 사람 좋게 이렇게 사람을  원통하지만 내놓은 것이요. 사람을 안 내어 놓고 사람을 내 사람으로 삼을라  하니까 부득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내놓아야 돼. 이제는 세상을 안 내줄라  하니까 둘을 내 놓아야 돼. 세상을 안내주기 위해서 둘을 내어 주어서 세상의  모든 형통을 위해서 이제 둘을 내어 주었소. 오는 환난을 이것을 물리치고  평안하기 위해서 내주었소. 오는 죽음을 물리치고 거기에서 살기 위해서 둘을  내주었소. 이것이 성도가 만든 환난으로 멸망을 하는 것인데 성도들이 만든  구원과 안일로 자신을 멸망시키는 환난을 초래케 해 가지고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갈라고 하면 고난을 많이 받아야 된다는  것을 성경에 행전인 사도행전에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전의 행전이라  이렇게 이름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 갈려고 하는 자마다 고난을  많이 받아야 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섯 가지 임시 좋은 것을 취하고 내주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좋은 것 마련한 그 끝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멸망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은 땅 위에 내가 좋아한 것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자기가  좋고 이웃이 좋고 세상이 좋고 안일이 좋고 평안이 좋고 사는 기 좋고 얼마나  좋소 다 좋습니다.

이러나 이기 좋지마는 이것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좋기 때문에 이 둘을  취하려고 하면 이 둘을 내놓아야 되겠고 이러니까 내놓아도 둘을 취해야 되겠다  이러니까 내놓는 이것이 성도의 환난이요. 성도들이 이 여섯 가지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뜻보다 더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이 여섯 가지를 자기가 안  내주기 위해서 여섯 가지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과 뜻을 내어놓고  안일을 취하고 세상을 취했는데 그 끄트머리 멸망으로 당하는 그것이 성도들의  멸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좋아. 하나님과 진리를 팔아서 좋은 것을 마련해 가지고  자기가 멸망하는 것이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샀고 진주를 산 거와 같이 자기의 모든 이 소유를 다 팔아 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사는 요 사람은 기독자로서 어디서든지 성공하고 땅 위에 좋은  것을 하나님과 진리보다 귀중히 여겨서 이것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 팔아  가지고서 이 좋은 것을 취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과로는 전체가 멸망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자기로 인해서 팔지 맙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은 자기보다 낫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를 부인할 줄  알아야 의인입니다. 이것이 참사람의 용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인하여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버릴 줄 알아야 됩니다. 끊을 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것이 와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인해서 이런 것도 다 내어놓을 줄 알아야 되고  모든 안일도 내어놓을 줄 알아야 되고 어떤 고생이라도 무릅쓰고 고생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취할 줄 알아야 되고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취할 줄 알아야 기독자로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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