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울 수록 거룩하라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25일 토새

 

본문 : 민20:2-13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이 말씀은, 진리를 좀 깨달으십시오. 여기에 나타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심히 견디기 어려울 그때에 모세와 아론을 공박했습니다.

공박하기를 '그전에 형제들이 애굽에서 죽임 받을 때 그때 그만 죽은 것이  차라리 좋지 여게 와 가지고, 죽는 것이 낫지 모세와 아론 너희들이 인도한  인도받아 가지고 더 좋은 것 하나도 없다.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해 가지고  여기에서 죽이려고 이렇게 인도했느냐?' 그렇게 공박했습니다.

 '여게는 아무 농작물도 없고 이러니까 우리가 광야에서 만나 그것 하나 가지고  이래 사는 그런 것 가지고는 우리가 족하지 않다. 왜 우리를 이런 악한 조건의  곳으로 인도를 해서 우리를 다 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고 이렇세 다 굶어죽게  하느냐?' 그렇게 공박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6절에 모세와 아론이 그 공박을 듣고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하나님의 그 성막 앞에 가 가지고 엎드렸습니다. 엎드려서 '이  백성들이 이렇게 물이 없어 백성들과 짐승들이 다 물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음으로 저렇게 지금 많은 소동을 하고 있으니 이거 어째야 됩니까?' 아마  그런 무슨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거기 가서 회중들이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는 이런 공박을  당하고 모세와 아론이 그들로 더불어 맞서서 갑론을박의 이렇게 시비를 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린 그것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 여호와의 영광이 거게 임했다고 하니까 영광으로  임했으니까 잘못 행동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어떻게 해결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셔서 이스라엘의 그 어려움의 해결 방편을  지도하신 것을 보면 거게 가서 엎드린 그 행동은 잘못이 없다 그렇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반석에게 명령해 가지고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의 그 어려운  시비 공박에 대해서 "네가 이렇게 해라' 하는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그건  지도를 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모세는 '그 명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여게까지는  모세의 그 행동에 대해서 흠을 잡을 것이 없습니다. 백성의 어려움에 견디지  못해서 지도자를 공박할 때에 그때에 같이 시비하는 그런 대항을 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하고 의논하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그것이 잘한  것으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게 임했고 또 하나님깨서  '너희들이 이리 이리 해라' 하는 그런 지도를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거게서는  불만스러운 일이 없었습니다.

 또 모세가 그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취했으니 그것도 모세에 대해서 잘못이  없습니다.

 이랫는데 l0절 이하에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여게까지도  그 모세와 아론의 행동이 잘못이 없습니다. 모으라고 하시는 대로 모았었기  때문에 잘못이 없습니다.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물을 한번  내 볼까?'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낸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l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뭘  어떻게 했기에 "믿지 아니하고" 안 믿었다고 하는지?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눈 앞에서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이거 여기 흠점이 둘이 생겼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어떻게 했기에 안 믿는다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했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지?  그러고 난 다음에 '아니한고로' 그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고  하니 '너희는' '너희는' 하는 것은 모세와 아론을 말합니다. '너희는' 지도자  모세와 아론 너거 둘은 그말이오. '너희는 이 총회를' 하는 것은 그때에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해 내온 그 무리들을 말합니다.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나의 거룩함을 너희들이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들이 내가  약속한 그 가나안 땅에 가지를 못한다. 이 무리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광야 생활을 같이  했고 하나님의 베푸시는 그 기적을 같이 참여했고 또 기적의 해택을 입고 이렇게  했지마는 그들이 믿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시비한 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못 가고  전부 광야에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 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예표요 거울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인도하심을 받아 가지고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기는 하지마는 그 정확한 신앙 생활이 안  되면 그들이 광야에서 다 멸망받은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 멸망받지  가나안에 갈 수 있는 성화의 구원은 받지를 못합니다.

 그 비유하시기를 집을 짓되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서 불타지 아니할 그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그 공로가 불탈  공적을 쌓는 사람들도 있고 불타지 아니할 공적을 쌓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를 건설하고 또 자기의 모든 행동을 건설하고, 자체를 건설하고 행동을  건설하고 그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인데, 그것을 너희들이 하기는 해도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으려 하면 양이 크게 짓지를 못할 것이고 짚과 나무와 이건  그런 것으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으려 하면 짓기 쉽기 때문에 집을 더  커단하게 지을 수가 있겠습니다.

 양이 커서 세상에서는 유명해서 '그 사람이 뭐 누구같이 누구 모양으로  유명하다 유명하다' 이렇게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 그런 사람은 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가지고 하나씩 둘씩 다 따져나가 보니까 하나도 남는 게  없이 다 불타버렸다. 그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확하게 하려고 하니까 사람 보기에는 그렇게  유명해질 수가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 유명할 수 있는 그 길이 있는데 또 말씀을  다 지키면 그 유명이 다 삭아지고 없어서 기어들어가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유명해지지를 안했지마는 그 사람이 자기 건설한 것이나 자기 행위 건설한 것이  다 하나님의 진리의 심판에서 암만 심판해도 정죄받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공적이 남아 있어.

 건설이 남아 있으니까 영광을 받을 것이고 그 공적이 건설한 것이 다 불탄  사람은 구원은 얻되 기본구원은 얻기는 얻지마는-저 O목사님? 눈은 감고 있네.

뭐 명상하는가?-기본구원은 얻지마는 건설 구원은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로 사십 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경험하고 체험했지마는  그들이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대우하지 안한 그것, '믿지  아니함으로 광야에서 다 멸망받았다" 이랬습니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저가 나를 안즉 높이리라' 했는데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그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안하는 것이 그것이 믿지 안하는  것이요 그런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안하고 알지 안하기 때문에 그분이 인도하는  인도를 제 주관에 맞을 때는 순종하 지마는 제 주관에 맞지 안할 때에, 그분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를 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창조주시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보존 하고 관리하고 계시는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인정하고, 인정하지 안 하면 믿지 안하면 순종할 수 없는 그런 순종이  있을 때에는 다 순종을 하지 안하고 버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광야  같은 이 세상을 뭐 오십 년 살든지, 칠십 년 살든지, 백 년을 살든지 얼마를  살든지 이 세상 살이를 하는 그것이 다 세상에서 멸망을 받고, 세상에서 받아  무궁세계 갈 때에 다 멸망받고 세상에서 말았다 그말입니다. 죽을 때에 멸망받지  안하고 그것이 부활 심판 남아 있을 것이 없고 다 세상 생활에서, 세상에 다  소멸되고 둘째 사망의 해로 다 없어지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이스라엘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셔 가지고 그렇게  사랑하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애타 하시고 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잔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잔소리를 땀이 했어. 잔소리라고 할 만치, 사랑의  말이지만 들으면 잔소리 같다 그거요.

 이렇게까지 했지마는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시체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이의 육체의 생활이 광야에서 다 멸망하고 말았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지마는, 육의 구원인데. 우리가 영의 구원이  아니오. 육의 구원입니다. 육의 구원.

 영과 육 요것을 분리를 바로 하지 못하고, 삼분설을 가지든지 이분설을  가지려면 육에 심신이 합해서 육이라는 그것을 딱 구별해 가지지 못한다면  이분설은 멸망입니다. 멸망이라 말은 기본구원이 없다 말 아니오. 전설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보다는 삼분설이 오히려 제 구원 이루기에 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라든지 외국에 유학을 해 가지고 신학교 공부한  그 모든 사람들 중에는 요 이분설은 강하게 주장을 합니다. 또 칼빈주의는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에 '그 마음이라는 것을 영으로 붙이나  육으로 붙이나?' 거게 구별한 것은 없습니다.

 칼빈은 영을 '이성적 영이라 도덕적 영이라' 이랬으니까 칼빈이 말한 그 영이  육에 속했는, 우리가 말할 때에 우리가 말하는 대로 말하면 육에 속했습니다. 그  영이 육에 속했소.

 그 이성이나 도덕은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짐승에게도 이성과  도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본능'이라  이렇게 말하고 사람들은 이성이라 구별을 이래 했지마는 내나 비슷한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 같은 것이 짐승에 없지 않소. 도덕 같은 것이 없지 않소. 오히려  순진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내가 뭘 말하다 그리 나갔지?-이스라엘들도 그들은 우리의 거울로  그렇게 보여 주신 것인데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지마는 광야에서 다 죽어  시체되고 가나안을 가지 못한 것으로 무지한 우리들에게 그걸 형식으로 계시해  가지고 우리의 거울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지마는  우리의 신앙 생활 한 그것이 전부 이 세상에 속해 가지고 세상을 멸할 때에 다  멸해지지 세상을 이기고 심판을 거쳐 무궁세계에 가서 존재할 것으로 되지를  않는다, 그게 다 믿지 안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모세와 아론이 므리바에서 된 이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아론은  거게서 산만당으로 끌어올려 가지고 아론의 옷도 벗겨서 아론의 아들에게  입혔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옷을 벗겨 가지고 그 아들에게 입히고 옷 벗은 그  자리에서, 그 산만당에서 죽었습니다.

 '목전에서 호르산에 오르니라' 27절에 '호르산에 오르니라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온 회중이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대단히 인정을 호감을 받은 아론입니다.

그러나 요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 한고로 너희들이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아론은 당장에 제사장  웃을 벗겨버렸고 그때 산에서 옷을 벗긴 그 자리에서 즉시 죽었습니다. 모세도  가나안을 못 갔습니다.

 이랬는데 여게, 모세같이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해서 순종한 사람이 없었고  겸손한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것이 됐는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이 됐는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l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툼으로 이름을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이  나타내신 거룩은 뭐인지?  모세와 아론이 나타내지 안한 거룩은 뭐이며 하나님이 나타내신 거룩은 뭐인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믿지 안한 것은 그 무엇인지? 그 댓가가 상당히 큽니다.

 그 댓가는 그들이 소망한 것이 가나안 가는 게 소망인데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버렸어. 우리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몇십 년을 하든지 신앙 생활 한 그것이 다 이 세상 망할 때에 세상에서  같이 망하고 그 신앙 생활 한 것이 하늘나라까지 가지 못한다. 세상에서 망하고  만다.

 그러니까 여게서 모세와 아론이 그렇게 약 사십 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했고, 참 충성도 했고, 수고도 않이 했고, 또 귀한 일도 많이 했는데  그들이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이 것을 뭘로 볼 건가? 이렇게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그런 신앙 생활을 많이  했지마는 모세와 아론같이 마지막에 그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에 제가 그걸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 뭐인고 좀 알아 보라는 것이오. 왜 믿지  안한다고 했는가? 왜 거룩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했는가? 더듬어 봐야 잘 표도  뚜렷이 나지 안하는데 그 벌은 지극히 큽니다. 그 벌이 아주 큽니다.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 받았으니까 그 벌이 얼마나 큽니까? 이것이 무얼  보이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목회도 잘하고, 연보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심방도 잘하고 이렇게 신앙 생활을 애써 많이 했는데 모세와 아론같이 이렇게  정죄받아서 자기의 일생의 생애라 하는 그것이 성공하지 못하고 다 실패돼서  광야에서 무리들의 멸망과 같이 멸망하고 가나안에 가지 못했으니 우리 생애가  세상에서 끝나버리고 남아서 하늘나라에 갈 것이 없게 되는 그 상징으로 볼  수밖에 더 있는가? 그러면 그게 뭐일까?  그것 내가 지금 말해 주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서 그것을 연구해서  알아내는 게 좋습니다. 왜? 말을 해야 귀넘어 듣고 도무지 속에 느껴지지 않소.

실감이 돼지지 않소. 이러니까 말을 구경이나 하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듣지도 안해.

 명령으로 들었으면 그 명령을 한번 말해서 자기가 바로 들었으면 그 명령을 다  이행하기까지는 어깨에 눌리고 짐이 되고 마음에 근심과 짐이 될 터인데 한 번  말해도 짐이 하나도 안 되고 그 명령을 구경만 했습니다. '이런 명령 했다.'  구경하고. 두 번 하니까 '한 번은 들어 구경했지마는 두 번 하니까 들을 재미가  없다. 맛이 없다.' 세 번 말하니까 '에 잠 온다. 또 한소리 또 하고 또 한다.'  명령으로 들었으면 한 번 했는데 또 두번째 오니까 진실하면 뭐이 오겠습니까?  '주여 내가 아직까지 이행하지를 못했습니다. 명령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두번째 오면 독촉이 오니까 이제 마음이 쫄려질 터인데 쫄리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세번째 오니까, '또 한다. 또 잔소리 한다.'  그러니까 올수록 귀찮게, 돼져 버렸지 그 명령이 자기에게 마음을 누르는 일이  없으니 얼마나 거짓 되냐? 그것이 앞으로, 사람이 죽기 전에 시험이라는 것은  제일 마지막, 무슨 시험 무슨 시험이 어려운 일생에 시험이 있다고 해도  죽음이라는 시험이 제일, 최고도의 시험인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시험이  최고도로 오는 시험이오. 이러니까 최고도의 시험에서 자기의 일생 동안 신앙  생활 한 것을 톨톨 털어버려서 세상에서 다 멸하고 하늘나라에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게 만들 수 있다 그거요.

 과거 왜정 말년에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지마는 그 신사참배로써 일생 동안  신앙 생활을 톨톨 털어서 다 팔아버렸고 다 뺏겨버렸고 다 양보해 버렸고 다  벗어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실은 그때까지에 살아 있는 사람은 구원이 그것으로써  다 소멸되고 말았어. 건설구원은 소멸되고 말았어.

 그러면 소멸되고 만 것을 자기들이 '신사참배 했지 딴거야 뭐 그리 됐겠나?'  하는데, 그리 아는 사람들, 또 소멸되고 말았다고 그래 아는 사람들.

 그들은 신사참배가 나타나서 다 세상에게 내줄 수 있는 그건 신앙과 그런  행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표시가 됐지마는 그런 신사참배의 그 시대에  참여하지 안한 사람은 다행이라. 그게 아니라 그말이오. 저는 알지도 못하고  간다 그말이오. 알지도 못하고 갔는데 하나님의 나라 가 보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서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그런 것을 보고, 시험은 자타가 자기를 모르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몰라서 그것 시험하시는 것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일생 동안 신앙 행위가 한 행위에서 다 불타버리고  만다는 이것을 여게서 하나 지금 우리가 참 심각하게 받아야 되겠습니다.

 뭣을 믿지 안했다고 믿지 안했다고 당장 그것 한번 안 믿었다고서 그만 딱  가나안에 가는 것을 다 제해버리고 '너는 가나안에 못 간다' 아론의 제사장 옷을  벗길 때에 모세도 벗길 것이지마는 아직까지 아론의 아들이 거게 대해서,  아직까지 유치하기 때문에 모세는 얼마 지난 후에 '모세 너도 이 광야에 죽어서  너거 조상에게로 가라. 가나안에 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뭣 때문에? 므리바에서 믿지 안하고 당신의 거룩을 나타내지 안 한다고 그랬어.

이것이 모세와 아론의 결론지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금 신앙 생활 한다고  뭐 기독교 전성시대가 돼서 남한에서는 예수 믿는 것이 자유로우니까 얼마든지  이래 많이 믿는다 하지마는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그때에 믿지 안하는 것으로  나타나련지 누가 알겠소? 그때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안하는 자 되럴지  누가 알겠소?  이러니까 일생 동안 신앙 생황이 마지막 추수에 가 가지고 다 뺏겨버리고  만다는 여기에 이 촛점이 있는 이것을 생각해서 아무래도 앞으로 공산주의가  오든지 안 오든지 우리는 와도, 우리 국가가, 민족이, 교계가 다 구원 얻으면  좋지마는 안 되면 서부교회만이라도 구원 얻어야 되겠고, 안 되면 우리  가정만이라도 구원 얻어야 되겠고, 안 되면 자기 개인이라도 구원을 얻어야  되는데 구원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존하신,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주권적  개별 섭리를 하고 계시는 그 분을 어떤 그 환경을 당신이 만들어 가지고 그를  믿는 사람이면 그 환경을 웃음으로 지내 통과할 것이고 믿지 안하고는 제가  녹아졌지 견디지를 못할 터이니까 내줘야 둬 거라 그거요.

 이러니까 최소한, '마지막에 소유와 몸과 생명 어떤 것을 다 그들이  빼앗을지라도 그것을 내줬으면 내줬지 주님의 이 삼대 구속은 내줄 수가 없다.

이렇게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겨우 이루어 놓은 이 화친을,  화친의 하나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 다시 하나님의 이 율법을 어기는 죄를 범할  수는 없다.' 다시는 내가 나를 주관하는 내 주관대로의 사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이제 이것이라야 합격이 될 터인데 오든지 안 오든지 이런 기회에 그런 사람이  되도록까지는 자기를 만들어야 될 터인데 거기 대해서는 얼마나 낙관시하고 생각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소.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이 두 가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안 믿는다고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들이 약속한 그 가나안 땅에는 가지  못한다. 산으로 올라오라. 호르산으로 올라오라.' 당장 아론의 제사장 의복을  벗겨서 그 아들에게 입히고 아론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까이 갈수록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이오. 콩팥을 세밀히  가립니다. 설교를 하면 인간이 아무리 거룩 거룩 아무리 구별 구별 아무리  세밀히 구별해서 한다고 해도 당신의 구별한 것의 근방에 가지도 못할 만치  그렇게 차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별도 듣기도 싫어하요. '잔소리 많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금정산에 제가 집회하니까 '목사님-그때 내가 조사님이야.-조사님, 이 무식한  교인들이 그렇게 뭐 하나님 말씀을 막 도마' 그 사람이 그래 말해. '도마 위에  하나님 말씀을 놓고 마구 난도질을 이래 해 가지고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막  쪼개서 이래 난도질을 하는 그래 가지고 해석을 하는 것을 그들이  알아듣겠습니까? 못 알아듣습니다. 그저 말씀을 대충 이래 말해 놓으면 성신이  그들에게 감동시켜서 다 알려 주시지요.'  자기도 지금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고 그렇게, 성신이 감동시켜서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을 너희들이 이리 이렇게 깨달으라고 분석해서 가르치는  것도 듣기 싫고 그게 좋지 안하고 그게 듣기 싫고 싫어하는 그 사람인데 일반  교인들이 그럴 것인가? 그래 내가 그때 말을 그래 했습니다. 나를 그때는 제일  좋아하는 목사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때는 동지가 몇 사람이 없었는데 동지  중에 한 사람이오.

 내가 말하기를. '목사님이 그게 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사님은 이렇게  구별하지 안하는 것 가지고 뒤에 실패를 할 겁니다. 목사님이 나하고 만나서  문제를 가지고 나한테 와 가지고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됩니까? 하는 것을  나한테 묻기를 한 아마 칠팔 가지를 물었는데 칠팔 가지 물은 그것이 목사님  처리한 것이 하나도 바로된 것이 없어서 내가 그때 이렇게 말하지 안해도 요것은  요런 길도 있고 요런 길도 있는데 어느 길이 옳겠습니까? 하니까 목사님이  아이구 그 길이 옳습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의 선택한 그 처리가 잘못됐다는 것을  그때 한 칠팔 가지를 알았지요? 이렇게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만나서 얼마 동안  같이 지나면서 칠팔 문제가 틀렸고 묻는 것마다 다 틀렸으니까 그 생활이  마지막에는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될 것 아닙니까?' 제가 그때 그런 말  했습니다.

 그런 말 했는데, 그분이 OO교회로 갔었어. OO교회 가 가지고 그때는 나를  그리 끌려고 책을 이렇게 가져왔어. OO교회 책을 이렇게 가져왔는데 계시록에  대한 해석이라, 주석이라. 그걸 한 절 보니까 해석이 정 틀렸어. 제맘대로  해석한 거라. 성경 해석한 게 아니고.

 '이게 틀렸소. 여기 가면 목사님이 죽습니다. 가지 마시오.' 아니라고, 와 봐야  안다고 이래 쌓더니마는 나중에 이뇌자라 하는 그 목사가 창설자인데 그 사람이  그만물에 빠져 가지고 자살을 했는지 뭐 빠졌는지 모르겠어. 이러니까 이제는  살아난다고 막 이래 가지고, 죽었으니까 살았을 때 말한 것처럼 죽어도 살아난다  말했으니까 살아난다고 막 저희들이 기도를 하고 찬송하고 야단을 지겼습니다.

암만 살아나야지? 나중에 시체가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도 모여 앉아 가지고  자꾸 그러고 있다 말이오.

 나중에 경찰에서 그걸 알고서, 벌써 거의 다 썩었는데 그 가에 둘러앉아 가지고  살아난다고 야단을 지기고 이래서 '살아날 것 같으면 무덤 가운데 넣어놔도  살아날 것 아니가? 예수님을 무덤 가운데 넣어 놨는데 살아나오지 안했나?  살아나올 터이니까 일단 무덤에 장사를 하자.' 그래 가지고 경찰에 가 가지고  장사를 했어. 안 살아났어. 썩어 버렸어. 이제는 아마 뼈도 거의 다 썩었을  거라. 그런 데 갔다 왔습니다.

 우리가 진실이 없으면 신앙 걸음은 걷지 못합니다. 이렇게 위급하고 다급한  이것을 가져도 마음에는 낙관하고 있습니다. 낙관하고 있는 그게 지난밤에 말한  것과 같이 뭘 믿어서 낙관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안보를 제가  믿음으로 그 안보로 인한 얻은 평강이냐 미군을 미군의 능력의 안보를 믿는  것이냐? 그거요. 꼭 그거라고는 할 수 없지마는 그게 아닌가 해서 염려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만일 미군이 이제 내비두고 철퇴한다고 다 미국으로 다  돌아간다고 '철수한다 철퇴한다' 이러면 아마 그 평안과 담대와 온유와 유유함이  다 깨지고 절단날 것입니다. 그것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이오.

 홍수 같은 철퇴가 온다, 공산군이 쳐들어 온다 이러는 그것이 바람 불고 창수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그런 조작배기 인본으로 가지고 인본의 안보를 가졌던  자는 그 안보가 다 넘어지고 다 깨져버리요. 그러니까 모래 위에 지은 집으로  비유한 그와 같이 되어지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은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급급한지 모릅니다. 여게서 아레  여기 O목사님이 서울에서 전국 주일학교 반사들 하기아동 강습회인가 있어서  전국 반사들이 다 모이는데 그 전국에 통지를 다 주고 해 가지고 거기 갔으니까  반사들도 많이 모였고 또 목사님들도 많이 왔더랍니다. 왔는데 보니까 온  반사들은 전부 녹음기 가지고 녹음을 다 해 가지고 가더랍니다.

 그것은 목사가 와 가지고 거게 와서 참여한다는 것은 자기 자존심상 걸리니까  뒤에 앉아 가지고 녹음기 보내서 기록하고 가는데 그래 가든지 저래 가든지  어쨌든지 지금 위급한 때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원치 안하는데 거기다가 '세계 제일 큰 어린이 교회' 라  하고서 '백영회 목사'라 이랬으니까 내가 하지 안하고 반사들이 한 것인데 내  이름만 써놨으니까 내가 이 허풍선이같이 공중으로 둥 떠 올라갔다가 이제 꺼질  것 아닌가? 나는 지금 떨어질 그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데 대해서는  지금 가슴이 딸랑딸랑하요. 이제 떨어져 언제 떨어져 깨질 건가? 그것 지금  방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이 자기가 오늘에 참 필요가 중요한 말이라도  그 말을 듣는 데에 값내지 안하고 그만한 거야 쉽게 듣고 뭐 그러지 비싸게 들을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할 만한 그게 없다 그거요.

 말은 녹음기에 가져오지마는 내가 느끼는 느낌이 그 녹음기에 가 가지고 같이  느껴지는 그 영감이 있지는 안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거기 대해서 느끼는 그  영감이 녹음기에 전달돼 가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영감은 자기에게 있는  영감으로 해야 되지 여기 내게 있는 영감이 거기 전달돼서 가서 역사하지는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신앙가들의 저서 해 놓은 것 글로 기록해 놓은 것을 글은  그대로 다 표현이야 못 하지마는 대충 강령적으로는 표현을 했지마는 그렇게  깨달은 신앙가들의 그 신앙과 영감은 전달하지 안했기 때문에 많은 문서를 남겨  놓고 간 그 신앙의 사람들의 후배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지 안하고 다 잡것이 돼  가지고 결국은 그것을 팔아먹는 사람만 되고 또 그것을 위주로 삼는 우상만  됐소. 칼빈주의가 우상 되어 있는 사람들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 년 전에 칼빈에 대해서 깨달음에 대해서 '이렇다'고 그  말을 한 마디 청도교회 가 가지고서 집회할 때 그말을 했더니마는 그것이 언제  고발이 왔는지 이게 고신에 고발이 와 가지고 제가 칼빈보다 낫다 한다고 그래  가지고 그때. 모두 다 칼빈이면 제일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단단히 당했습니다.

 이러다가 나를 그 해방시켜 준 사람이 누군고 하니 OOO목사님이오.

OOO박사인데 OOO박사가 미국서 돌아와 가지고서 '칼빈은 지금으로부터  사오백 년 전 그 미개한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내신 하나님의 종이요 그  시대를 감당케 했고 오늘은 벌써 이십세기라 그때 생각도 못 하던 이런 모든  원자와 수소들이 지금 뭐 활동을 하고 있고 사람들이 저 별에니 달에니  날아올라가고 하는 이건 시대에 이 세상이 이렇게 발달됐는데 발달된 오늘의  시대에는 그 깨달음 가지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오늘은 오늘의 깨달음으로써  칼빈이 깨닫지 못한 것 깨달아야 되고 칼빈보다 나은 깨달음이 있어야 되겠고  오늘 세대를 감당하는 이 깨달음이 우리 교회들에게 있어야 된다. 그런  선지자들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O교회서 설교했다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박사가 와서 그렇게 설교를 하니까 그 다음에 그게 그만 무너져 싹  없어져 버려.

 그만 그래 가지고 나를 자꾸 정죄해서 모니까 약자가 돼 놓으니까 이렇게 자꾸  정죄해 몰더니마는 커다란 그 박사가 와 가지고 그렇게 말하니까 그만 그뒤에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안해. 그 뒤에는 보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종종 많이  있어. '칼빈은 그 전 시대를 감당한 것이니까 오늘은 지금 이십세기를 감당할 수  있는 무엇이 돼야 된다.' 그렇습니다. 그게 옳소.

 뭐 사도들 다음에 속사도 교부라고 하니까 속사도 교부들이니까 그때 사람들이  지금보다 깨달음이 나은 줄 압니까? 아니오. 세례요한은 구약에 제일 큰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오늘 주일학교 학생들이 깨달은 것을  세례요한이가 어림도 없어.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이보다 크다" 그래 말한 것은 신약 시대는 예수에 대한 지식이  세례요한보다 다 앞서고 뛰어났다 그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리석지 말고, 참 정승 정가라는 것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진실이 아니면 당신이 가루니까 몰라. '이미 믿는  유대인들에게 주님 따라다니면서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또 제자가 되고 난 다음에, 제자가 돼야 "진리를  알지니" 그래 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대로 그대로 살 수 있는 자  되게 하리라. 말했으니까 단계가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헛되이 생각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참 어제밤에도 안보에  대해서, 안보를 회개를 하는지? 소망을 회개를 하는지? 감사의 기쁨을 회개를  하는지? 환난을 회개해 가지고,  시험 치게 됐으니까 기쁘고 즐겁지 다 시험칠 그 수험 자격이 없어 가지고 지금  하고 있는데 수험 자격 얻으니까 좋다고 합디다. '하, 오늘은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어째서? 대학교에 입학할 시험칠 수 있는 자격 얻었다고서.

 그것도 기쁜데 하나님께서 '네가 내 배우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시험에서 통과됨으로 하나님의 배우자가 되는 이것이 결정 되는 것이니까 그  시험이 기쁘고 즐겁지. 그러니까 성경에는 '네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래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환난을 시험으로 바꾸는  것, '이건 환난이 아니라 지극히 큰 희망이 있는 희망을 절고 하는 지금  시험이다. 여게서 합격돼야 되겠다.' 모든 환난이 이것이 내체 있는 잡것을 다  제해서 치료하는 것이라. 잡것을 제해서 치료하는데 치료할 때에 잡것을  떼내버릴 때에, 떼내 버릴 때에 떼내버리니까 나는 온전해지고 내가  온전해짐으로 나 때문에 내가 온전해지는 나의 온전 때문에 떼내버려진 그  희생된 그 물질은 만물을 새롭게 할 때 다 새로움을 얻습니다. 이러니까 만물이  그 구원 얻으려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 진리대로 이렇게 사는 아들들이 되기를  고대하고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난이 자세히 보니까 그 환난 그것이  칭찬이요 영광이요 존귀의 면류관이라. 그게 없으면 그게 안 돼. 그게 막바로  그거라, 그게 막바로. '이게 칭찬이다. 무궁세계의 칭찬, 주님 앞에 갈 때에  이게 칭찬이다. 이 칭찬이 여기 와 있다. 영광이 여기 와 있다. 그때에 나에게  면류관 씌울 면류관이 여기 와 있다.' 이러면 그 환난이 반갑겠소 안 반갑겠소?  어떻습니까? 어때요? O조사님? 반갑지. 얼마나 반갑소? 그런고로 네 가지를  바꾸어 가지는 그것을 쉽게 우리가 되는 것 아닙니다.

 OOO목사님 밑에 따라다니는 사람들, 이래 설교 말씀 듣고 난 다음에는 '털  뽑으러 가자' 이런다는데, OOO목사님은 거기 많이 다녔으니까 털 뽑는 것 잘  알지? 털 뽑는다는 게 뭐입니까, 그거?  그 말씀을 받아서 내가 내것 삼는 데에는 거게 잡탱이가 들어가 다 안 되니까,  잡탱이 그놈 먹으면 병나. 안 되니까, 말씀을 들어 가지고서 그 말씀대로의 내가  사람이 되고 그 말씀대로의 행위가 되려고 하는 데에는 거기에 따른 잡것이  많으니까 잡것 그것을 다 제하는 데는 눈물과 애통으로 고통의 기도로 다 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받아 가지고 그 말씀대로 내가 행하려 하면  무엇이 방해할 거라는 그것을 다 미리 알아 가지고 그것을 기도로 다 회개로써  제거하는 그런 노력을 가리켜서 털 뽑는다 그래 놨다 그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설교 말씀 듣고 나면 '가자, 또 털 뽑으러 가자.' 그 사람들  말이 이북 말이기 때문에 '가자, 또 털 뽑으러 가자.' 그래 나는 처음에 '털  뽑으러 가자' 가 무슨 말인고 이랬더니마는, 내가 물어보지는 안했어. 안 해도  아마 털 뽑으러 가자 하는 것 보니까 그런 말 같애요.

 그래 가지고 다 모두 방석 들고 저리 모두 가 가지고 밤도 새우고 이래 가지고,  만나면 '털 다 뽑았나?' '아이고 털이 안 뽑혀. 안 뽑혀서 죽을 고생해도 다 못  뽑았어. 또 털도 못 뽑았는데 또 이 말씀 들으면 어떻하노?' 이렇게, '다  뽑았나?' '나는 이번에 털을 다 뽑았어.'  그렇게 자기에게 있는 잡것을, 먹을 음식을 주는 데에 그 먹지 뭇할 것이 다  섞여 붙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놈을 다 제거해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요대로 내가 믿을라 할 때에 믿지 못하게 하는 잡탱이 있는 그것을 다 기도  가운데서 명상 가운데 묵상 가운데서 다 제거해야 된다 그거요.

 그런 노력 없이 됩니까?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시험해서  확증해라' '아이구, 나는 이래 보니까 참 안 믿는구나. 요거는 좀 반 믿는구나.'  이것을 네가 스스로 시험해 가지고 확증하고,  그러니까 그러던 사람은 고 사건을 닥치되 '사건 한번 닥쳤으면, 보았으면  좋겠다. 한번 실험해 보면 좋겠다.' 사건이 닥치니까 '요번에 내가 믿는지 안  믿는지 하나님 믿고 안 믿는 것이 여게서 이제 판명 된다.'  그래 가지고 자기가 그때 부들부들 떨림이 있으니까 '내가 요게 안 믿는 건데.

안심이 되고 기쁘고 담대해야 될 터인데 내가 왜 여기 떨리기는 왜 떨려? 요게  안 믿는 것이로구나. 이러다가 억지로 두 주먹을 거머쥐어 가지고 믿음으로  통과하면 이제 합격이 되어지는 것이라.

 그래 내가 OOO장로님을 그 뒤에 나뉘어서 벌써 수십 년 나뉘었지마는 내가  그분이 그렇다는 걸 '좀 와서 듣기라도 들어라'하는 것은 그분을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전우라 그말이요, 전우. 전쟁할 때 전쟁한 친구라. 전우라.

 전국에 국기 배례 때문에 시비가 나 가지고 이래 할 때, 하느냐 안 하느냐?  그렇게 할 때에 OOO목사님 아들도 그때, 그거는 그 뒤에요. 뒤에인데 그 전에.

이것 때문에 시비가 나고 이럴 때에 OOO 그때 주일학교 부장인데 그때  부장노릇 할 때에 요 진리를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고 이러니까 그 학생들이 국기  배례 안 할라 하다가, 다른데서는 전국에 그런 광경이 있은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경찰서서 전부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와 가지고 그 학생들 다,  학교하고 단합을 해 가지고 학교 선생들도 단합이 돼 가지고 그와 같이 거게까지  오는데는 여러가지 경우가 많았습니다. 많이 맞아서 피도 흘리고 많이 뭐 고생도  많이 당했소. 어떤 학생은 짚동 가운데 숨어서 열흘을 굶어서 학교를 다녔어.

부모들에게 통지해 가지고 '도무지 학교 시키는 대로 안 하고 국기 배례 안  하니까 그 학생은 안 되겠다'고 자꾸 부모네에 하니까 집에 가면 야단 날  터이니까 가지도 못하고 짚동 가운데 숨어서 밤으로 자고서 또 굶어 가지고  학교를 가고 그렇게 많은 애로를 거쳤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경찰서에서 모든 경관들이 총 메고 이래 와 가지고 와서  '자, 여기 예수 믿는 학생들은 다 이리 나서거라.' 이러니까, 그때는 그 교회가  거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뭐 주일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뭐 쪽 다 나섭니다. 다  나서.

 이러니까 '이제 국기 배례 안 하는 학생들은 전부 다 잡아가 가지고 지금  처벌할 터이니까 지금이라도 국기 배례할 학생들은 도로 들어 가거라.' 안  들어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쩔 수 없어서 '요거는 이 부장놈을 요래야 되겠다.' 하나님이 그때  나는 건드리지 안해. 나는 건드리지 안하고 부장만 잡아 가지고 갔다 그거요.

부장하고 또 부부장하고-그래 OOO, 목사 됐습니다. 그때는 그는 부부장이라.

병아리라. 원부장은 O장로라.

 이랬는데 잡혀가 가지고 경찰서 갖다 놓고서 굶기고 뭐 고문을 하고 오만 일 다  해도 요동이 없으니까 할 수 없어서 쫓아내 보냈다 말이오.

 그랬는데 그때에 중앙청에서 국기 배례를 가슴에 손 대고 묵도하는 젓으로써  그때에 변개를 했습니다. 바로 그때요, 바로. 그날인가 그 이튿날인가 이삼 일  안에 그것이 변동이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뒤에 전국이, 제 하고 싶은  사람은 국기에 절하지마는 안 할 사람은 이래 가지고 다 주목만 했습니다. 다  가슴에 손 대고 주목만 했어. 그뒤에 보니까 OOO대통령도 보니까 가슴에 손  대고 주목하데요, 국기에 대해서 보니까.

 그때 그렇게 그 싸운 전우기 때문에 그래 제가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도 6·25  때는 얼마나 혼이 났던지, 친구가 그 지방에 있으니까 많으니까 '오늘은 다  잡아다 죽이기로 딱 작정을 하고 지금 그렇게 내무서에서 작정했으니까 함부레  오늘 너는 거기 가지 말고 피해라.' 이래도 참여하러 왔다 그거요.

 와 가지고 덜컹덜컹거리니까 그만 그때 O장로는 좀 수치스럽지마는 O장로님은  문을 뛰어넘어 가지고 그만 도망을 가 버렸다 말이오. 그래 인제 그래도 그  뒤에는 국기 배례 대해서 승리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 앞인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그랬는데,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는 그대로 예배봤습니다. 여기 OOO조사님  그때 조그만한 어릴 때인데 그래도 어북 고등학생인가 그래 됐습니다.

OOO목사님? OOO목사님? 그때 들어오다가 혼났지? 고함을 지르며 어데를  들어오느냐고 내가 고함을 지르니까 그래 할 수 없어, 저기 가면 또 이리 쫓지  또 여기 오면 여기서 쫓지 이래 가지고서, 그 참 재미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면 그렇게 기쁜 것이고, 시험은 뭐이냐? 나를 정말로  전능하신 네 아버지로 아느냐? 전능하신 아버지 품 안에 네가 안겨 있느냐?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느냐? 모든 걸 창조하신 아버지 품에  안겼느냐? 아버지를 정말로 이런 아버지로 믿느냐? 이것 시험하는 것이오.

 그러니까 그때는 시험에는 뽈끈 잡고 놓지 안하면 '믿습니다!' 믿으면 이겨.

시험은 믿음으로 이겨. 시험은 믿음으로. 딴걸로 이기지 못해. 시험은 믿으면  돼.

 또 연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걸 깨뜨릴 때 깨뜨리거나 말거나 '네 생명도  깨뜨리겠다' 깨뜨리거나 말거나 '명예와 친척과 재물과 생명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뭐이냐? 내 주께 영영한 것으로 있다.' 그거 내놓으라 할 때 뭐 내놓으면  돼.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 돼 버려. 그러면 연단은 이깁니다.

 그러면 그것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앞으로 참 좋은 기회가 왔는데, 남한 교회가 기도를 많이 하면  그들이 오지도 못하련지, 왔다가 믿지 안하는 자들은 안 하는 자로 한번 놀라게  해 주시고 또 믿는 자들은 믿는 자로 한번 드러내시고 이렇게 당신이 멋진 일을  하시련지, 그만 회개를 하면 니느웨성 모양으로 그것들을 그래만 둬 버리고 오지  못하도록 하련지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기회는 좋은 기회입니다.

기회는 좋은 기회요. 좋은 기회를 만났어.

 그러니까 이 기회에 우리가 믿음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되지 아직도 지금 돈을  탐하고, 뭐 지위를 탐하고, 이런 저런 헛된 허욕에서 시기 질투 쟁투 이런 거나  하고 있을 그런 때가 아닙니다.

 좀 있으면 실력이 드러날 것이고, 또 이 세상에 안 드러나도 주님의 심판 앞에  가면 광명하게 들어나니까 뭐 지금 좋다고 드러났다가 그때 오그라지면 어찌  됩니까?  잔치에 가 가지고 상좌에 앉았다가 '어, 거기 앉을 자리 안 되니까 미리 내려와  저 말석으로 가십시오.' 하면 얼마나 수치요? 저 말석에 가 앉았는데 '거기 앉지  말고 이리 높은 자리로 오십시오.' 올리면 얼마나 영광이냐? 그렇게 말했어.

세상이 몰랐는데 이다음에 심판 앞에 가니까 이렇게 존귀해지면 그게 영광이지  세상에 명예 영광 다 가져 가지고 유명하게 됐다가 그때 뚝 깨지면 그거 낭파지.

 나는 이 유명해지는 걸 싫어했는데 얄궂게 자꾸 이래 지금 와서 찾아오니까,  왔다 하면 가슴이 딸랑딸랑합니다. 그들에게 '왔다가 실망을 줄까?' 유명한 것은  좋은 것 아니오. 세상에서 좋은 이름 온 것은 좋은 것 아니오. 참 다니엘이 그래  사자구덩이 살아나오고 난 다음에는 그는 남은 그 전기가 기록이 안 돼 있지만,  세밀하세 안 돼 있지마는 그는 심히 고통 했을 것이고 무슨 흠점이 있었는지 참  잘 싸워서 끝 맺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좀 충분히 기도를 해서 작정을 하고, 모세와 아론이 그때 뭐 말 몇 마디 안  하고 뭐 행동했는데 뭣을 안 믿었다고 당장에 줄을 딱 그어 버렸는지? 무슨  거룩을 나타내지 안했다고 줄을 딱 그어버렸는지? 줄을 딱 그어서 그들은  가나안에 못 갔습니다. 모세도 아론도 가나안에 못 갔어. 이것이 우리에개  거울입니다.

 이번에 남침되는 이런 전쟁의 이런 시기로 인해서 우리가 줄을 그일런지 거게서  합격으로서 돌변해서 '이는 만점이라' 하는 합격점을 받을런지? 우리는 니느웨에  있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를 생각할 때에 '의심스럽다. 염려스럽다.

자신이 없다. 확신이 없다.' 하는데 실상에 가면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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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하나님과 사람 위하는 방편/ 마태복음 5장 7절/ 1988. 9. 16.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4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성/ 호세아 2장 4절-23절/ 1984. 8.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13 하나님과 연결-말씀 묵상으로/ 골로새서 3장 2절-4절/ 1983. 9. 20.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12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1986. 5. 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10 하나님과 이질적인 요소를 버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1981. 1.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과 자기와 믿음 생각 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1987. 10. 2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7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1989. 6. 17.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6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출애굽기 12장 13절-14절/ 1979.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5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 창세기 6장 1절∼14절/ 1981. 1. 28.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께 가까울 수록 거룩하라/ 민수기 20장 2절-13절/ 1983. 6.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3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요한복음 14장 1절-3절/ 1981. 3. 27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02 하나님께 감동 주는 사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1985. 9. 15.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501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4장 1절-3절/ 1984. 5.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00 하나님께 대해서 노력할 것/ 로마서 6장 23절/ 1985. 11. 8.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99 하나님께 받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8절∼12절 상반절/ 1987. 4.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98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4. 4.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497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계명생활/ 다니엘 6장 1절∼27절/ 1987. 3.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