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1981. 3. 27 새벽 (금)

 

본문: 요한복음 14장 1절 - 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 하신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그 무한하고 영원하고  온전한 그 나라에 그 위치에 살게하려는 것입니다. 거게는 이 공간적으로  위치만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그 위치가 더 큽니다. 관계적인 위치라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그 위치 그 위치안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역사하는 그  역사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의 속성 다시 말하면 전지도 하나님의  속성이요. 전능도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인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실 하나님의 거룩 다 이거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된 연결된 그 안에 하나님과 친히 함께 사는 그 곳에  우리의 살 곳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위치입니다. 교회의 위치 교회는 모든  만물위에 하나님 밑에 하나님과의 그 사이에 위치를 잡고 있는 만물의 중보되어  있는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 하는 말씀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형벌 받아서 죽으시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될 그 순종을 대신 순종하셔서 죽기까지 순종을 하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를 당신이 화목의 제물이 되셔가지고 원수된 것을 화평을 일으키신  이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또 십자가에 죽으신지 삼일만에 죽음가운데서  다시 인성을 입고 살아나신 이로 인해서 우리가 속죄함을 받고 다시 새생명으로  중생하여 하나님과 결합되 살 수 있는 그 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둡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셨다. 상속받게 하셨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부활하시가지고 잠깐 아직까지 "내가 곧 나의 하나님 너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게로 올라가지 못했는고로 나를 만지지 말아라" 하시고 잠시 후에  다시 만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최종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이  공로를 완전히 설정하시고 예수님의 그 신인양성일위되신 예수님께서  신인양성일위로 하나님과 완전한 결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의 인성은 이렇게 역사에 위치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부활하신 후 아버지에게 올라가고 난 그때부터 하나님 아버지 우편을  찾이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위 하나님 밑에 그 위치를 예수님께서  가지게 되서 그 위치가 곧 주를 믿는 자들이 가서 있을 곳입니다.

히브리서 9장 1절 히브리 9장 1절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있었고 또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컬고" 그러면 성소가 있는데 성소에 거게 성소밖에 제단이 있고 제단을 넘어서  그 성소에 떡상이 있고, 일곱 등대가 있고 있으니, 그것이 성소요. 그것을  성소라 그렇게 하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이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이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그 지성소라 말하나니 거게 금향료가 있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금향료가 있고 또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법궤말입니다. 법궤가 있고 어제 아침에 내가 법궤라한 것 내나  법궤나 언약궤나 같은 말입니다. 있고 그 언약계 법궤안에는 언약계에는 신구약  성경을 상증하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은 그 만나 가루를 담은 금항아리가 있습니다.

만나는 있으면 썩어지고 없어지는 건데 법궤 안에 담은 만나는 썩지 않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고" 그러면 아론이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에 그때 썻던  그 지팡이 이 지팡이는 나무는 끊으면 죽는건데 그 지팡이는 싹이 나서 언제든지  얼마가 가도 그 싹이 마르지 안하고 있었습니다.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언약의 비석은 십계명을 기록한 그 십계명 돌비가 그 언약궤  안에 있었습니다. 있고, 그 위에 그 위에 법궤 위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 위에 또  만나 가루 위에 또 십계명 돌비위에 법궤 위에 거게 속죄소를 속죄소가 있고  거게 이제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를 덮은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영광스러운  그룹. 그룹은 천사를 천사같이 만들어논 것을 말합니다. 천사를 말합니다.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의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심히 깊고  복잡하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말을 언급하지를 못한다. 언급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있는 것은 언제든지 천사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는 홀로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왔을 그때도 아브라함에게 왔을 때도 그때다 하나님과 함께 왔기  때문에 천사로 나타났다가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요 하나님이든데 또 나중에  보니까 천사였습니다.

그러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천사를 통해서 신비하게 나타나신  것이지 하나님은 보지를 못합니다. 보지를 못한다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고 무슨 불교에서 말하는 것 모양으로 상상적인 어떤 존재인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못보는 이유는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무한한  자시요 무한 자시요 완전자시기 때문에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하나님도 이것을 목적을 삼으시고 좋아하시는데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녹아버립니다. 왜 그는 완전이기 때문에 이 완전성이 아닌 것은 거게 정죄를  받게 됩니다. 정죄를 받아서 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시면 멸해지는고로 인성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인성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접하지를 못합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에 보면 하나님이  나타나신게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도 모세가 거게 갈라할때에 "네가  신을 벗어라 신을 벗고 가까이 오지 말라" 말했습니다. 또 시내산에서는  하나님께서 빽빽한 구름 구름은 그 당신의 그 영광을 상대하는긴데 구름속에  불로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시내산 발치에 있고  시내산 밑에도 발을 디디지 못했습니다. 발을 디딘 자는 다 거게서 직사를  당했습니다. 짐승이든지 뭐이든지 직사를 당했습니다.

또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 회개해서 깨끗한 아론은 산턱까지 올라  갔습니다. 완전하시고 깨끗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치 흰기라고 보지만 조금 더  흰 것을 보면은 그것이 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검다. 또 이는 아주 참  눈과 같이 희다. 이렇게 보이는 것을 더 흰 것을 대면은 그것이 또 검고 더럽게  보이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 나타납니다.

금도 금, 금을 모두 어떤 거는 십금 십팔금 또 이십금 이십사금 이렇게 말해     ---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완전하시기 때문에 가까이 가면 정죄받아  죽습니다. 이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제일 깨끗한 모세는 산 절정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거게까지는 갔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신비하게  나타나시는 거게 천사를 통해서 말할 때에 같이 말을 하고 이랬으나 모세도 그  있기가 견디지를 못해서 떠날려고 애를 썻고 잠깐동안 하나님을 직접만나지  안하고 성경에는 하나님의 등을 봤다 말은 하나님께서 그 사이에 직접 대하면  모세가 죽는다 말입니다. 모세는 더럽기 때문에 당장 정죄받아 죽습니다.

그랬는데도 잠깐동안 하나님과 가까와 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다 기절을 해서 할 수 없어서 모세가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루고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짐승들도 그 시내산 가까이 가는 것은 다 직사를 당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32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가나안을 가라" 가나안을 가는데는 나는 너거와 같이  가지를 못하겠다. 왜 같이 못하는 것은 너희들이 패역한 족속이니 내가 너거를  가까이 해서 가다가는 도중에 너희들이 그런 패역을 하면은 너희들이 그 패역한  죄로 인해서 다 전멸을 당할터이니까 내가 너거를 어떻게 전멸할 수 있도록 그래  같이 갈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나는 같이 가지 못하고 내 사자들을 너희들과  함께 보낼 터이니까 내 대리로 능력의 역사를 해 가지고 너희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깨끗으로 무한하시고 능력으로 지혜로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이 가까이 오면 거게 대해서 모든 것을 총찰하게 되고  모든 것을 완전으로 비판하기 때문에 전부가 전멸되기 때문에 전멸을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멀리 계시면서 우리가 성화되는데  따라서 하나님과 가까이 접하게 됩니다. 이방인은 그때에 이스라엘 모이는 그  회중 근방을 못왔습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 모인 그 근방에 오면 죽습니다. 온  사람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냐? 모두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할례받지 안한  사람들은 오면 즉사를 당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그렇게 신앙으로 살았고 거게서 이스라엘을 자기 힘으로  해방시킬라 하다가 낭파를 당해서 자기가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거게서  망명해 가지고 미디안 광야에 와서 사십년 동안을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접하고 이런 수양을 받았습니다.

그랬지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구원하실려고 모세를 불으셨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나아갔는데 나아가는 그 길을 가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일라고 합니다. 왜? 모세가 부정하기 때문에 안 죽일 수 없습니다.

이래서 그 자리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차돌을 가지고 그때는 아무 의료기가  없기 때문에 의료 기구가 없기 때문에 돌을 깨서 차돌을 가지고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모세와 모세의 그 자녀와 일행을 남자들은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할례를 베풀어서 그래서 모세의 아내가 모세에게 대해서 당신은 나에게 대해서  피남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서 고통이 심하나 그걸 받지 안하면은 죽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는 좀 그만큼 가까이 접해야 되겠는데 가까이 접하려고  하면 할례 받지 안하면은 모세가 죽기 때문에 가까이 접하기 위해서 그 할례를  말하면 결례입니다. 깨끗케 하는 결례. 지금 내나 세례. 세례인데. 물 세례가  있고, 물 세례 이거는 한 형식이고 물 세례를 통해서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자는 이렇게 깨끗히 안하면 멸망을 받기 때문에 할례를 베풀고 난  다음부터 모세에게 이렇게 역사했습니다. 역사했으나 성경에 꼭 같이 말한 것  같지마는 보면은 내나 천사를 통해서 당신이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희들과 같이 가지 않겠다." 같이가면 도중에 너희들을  진멸할까 두렵다. 왜? 너희들이 목이 곧아서 패역하면은 하나님으로서는 즉시  진멸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게 법이요. 그게 지극이 거룩한  법이요. 지공법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평인이 죄를 범할 때에는 가난하면 비둘기  피로도 되고 또 양의 피로도 되고 이랬지마는 온 민족이 온 민족 전체가 어떤  범죄를 했을 때에는 그런 것 가지고 안 됩니다. 송아지 피라야 속죄 제물이  됩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은 한 사람이지마는 하나님 앞에 지금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제사장은 한 사람이 죄를 범해도  그 사람의 죄는 양이나 비둘기나 그런 피가지고 안 됩니다. 전 민족이 범함과  같은 그런 송아지 피라야 속죄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이 말에 대해서 혹 들은 사람들 가운데에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상상 인물인가? 또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거리가 멀어서 직접 대하지를 못하는가? 그렇게 그 생각을 가지는데 마치  그게 비유가 안 되지마는 예를 들면은 여게 큰 전력이 있습니다. 큰 전력이 와 있는데 그 전력으로 인해서  그 전기 힘이 이렇게 비추어 가지고 그것이 처음에는 몇 천마력을 돌리고 그거  돌리고 돌리는 것이 나중에 끝트머리 와 가지고는 우리의 손을 데면 조금  짜리할만치 그 전력이 역사하고 또 그 역사하는 것이 전구에 역사할 때에 그  전구가 아주 뜨겁습니다.

이러니까 이에 손을 검어지면은 데일만침 뜨겁지만 그 빛이 퍼져나가고 퍼저  나가서 이래 나오는 데에는 우리가 이 빛을 필요하게 씁니다. 이 빛을 필요하게  쓰고 접하지마는 이보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전구를 검어지면은 손이 데일 것이고  좀더 깊이 들어가 가지고 그 강한 전력에 대하면 바짝 타 버립니다. 우리가 바짝  타버리요. 어느 정도 됐을 때에 우리가 필요하지마는 그 이상이 되면은 우리가  감당할 그런 체력이 체질이 되지 못하여 있기 때문에 전기에 가까이 가면 타  죽는다 이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 비유가 잘 안 되지마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가까이 가면  멸해지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성 우리 중보자 우리의 대형 대행 대화친을  이룬 중보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접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안하고 직접으로 하나님을 접하지 못합니다. 접해야 접해지지 안하고 접해주지  않습니다. 접하면 즉시 죽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가 접할 때에  우리의 생명이 유지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대형을 해서 하나님이 멸하시는 이  죄를 해결 지었고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의를 우리에게 건설했고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을 댓가를 치뤄서 화친을 이뤘기 때문에 이뤘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위에 우리가 접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서 간접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아버지로  더불어 의논할 수 있고 또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고할 수 있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듣지  예수님의 중보자가 아니면 못 듣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이 사죄 칭의 새생명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 지은 우리의 중보자 에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니에게 상달되지 그렇제 않으면 상달이 안 됩니다.

그런고로 못만나게되는 것은 우리가 더럽기 때문에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유한한 자들이기 때문에 유한성이 무한성을 만나면 녹아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과 인성이 일위가 되었기 때문에 이  역사를 할 수가 있었고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종교에서 무엇이 좀 잘난 인간이 무엇이 창조 그 종교 종교 창설자가  되어가지고 구세주가 되겠다 하는 그거는 가증스러운 소리요. 성경을 몰라서  그들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석가모니가 하나님 앞에 안만 말해야  하나님이 대하지 않습니다. 대하면 죽습니다. 우리가 대하는 거와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와 상대하는 거와 같은 이 상대를 하면 석가모니는 대번 즉사  당해버립니다. 왜? 우리는 그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교제하기 때문에  되도 석가모니는 중보자가 없기 때무에 우리만하는 그런 접촉을 하면은 즉시  망합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중에도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어. 중생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옛사람의 양이 차차 차차 줄어져 감에 따라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까와집니다. 그렇기 때무에 부패성 옛사람이 옛사람이 여러모가 있는데 이모도  있고 저 모도 있는데 그 옛사람 그것이 죽어진 고만침 예수님의 이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접할 수가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옛사람이 제거된거만치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새사람화 된 것만치  가까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다 같이 믿는다 하지마는 주님과 가까운 거리도 사람  사람마다 전부 천층 만층 억만층도 더 됩니다. 그러기에 가까이 간것만치 보는  것이 다르고 듣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역사가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까운 것만치 깨닫음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르고 성신의 감화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모두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 더러운 것을 버리고 더러운 것이 없어져도 고것이 깨끗하면 이제는  깨끗함에 차이겠다 말이오. 조금 깨끗한 것 고보다 좀 더 깨끗한 것 더 깨끗한데  따라서 가까와 집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직접 그 본체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향해서 우리가 타락하고 있습니다.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그 무한자를 향해서 가기 때문에 어제보다 오늘 작년 보다  금년 가깝고 우리가 안 그렇습니까? 지난달 보다 이달이 더 좀 가까와 졌고 더  깨닫아졌고 더 회개해됐고 더 깨끗해졌고 더 가까와졌고 그런 것을 우리가  확실히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 가까와진 것 더 깨끗해진 것 더 온전해 진  것 더 고쳐진 것 그러면 죄와 더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와진 것을 우리가 자꾸  느낀다 말이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세례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가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인데 거게 대해서 잘못 알고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처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본체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본체를 만나지 못합니다. 먼거리에서 당신이  우리에게 접하고자 하는 마음을 원하고있지마는 우리가 깨끗히 못하기 때문에 그  도수를 넘지 못하고 자기가 깨끗해짐에 따라서 점점 가까와집니다. 깨끗해짐에  따라서 가까와져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깨끗해짐에 그 도수를 넘어서  하나님에게 접하면은 본체가 접하지 안해도 죽는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믿는 사람들을 기루는데도 그게 차차 차차 자라감에 따라서 그것을  기루기도하고 설교도 해주고 또 가르치기도 하고 시키기도 하지 그 되도 안한 걸  어떤 신앙 좋은 사람에게 시킨 것을 시킬 것을 신앙 어린 사람에게  시켜보십시오. 당장 그사람 절단나버리고 낭파되지 않는가? 네가 이 생활하라  하면은 낭파당하는 것은 낙심안해도 낭파됩니다. 낙심안해도 왜? 낭파되느냐?  낙심 안해도 그 생활이 디죽 박죽으로 전부다 헛일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고것을  순위있고 자라가야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차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이것도  이것이 목표를 향해서 자꾸 지금 자기 정도를 자꾸 다해서 이래 나아가져야  되지, 처음에는 다한다면 다하는 방식을 모르고 다하는 연단을 모르기 때무에  다하다가는 죽어버리고 만다 말이오. 절단돼 버리고 도로 악이니 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흠투성이가 되고 죄투성이가 되고 만다 이거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자라가지 않습니까? 그게 어릴 때에는 젓을 먹이고 그다음에는 무른 식품을  먹이고 그다음에는 딴딴한 식품을 먹여도 되고 그다음에는 식품 먹여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나두면 먹을 걸 찾아먹고 그다음에는 찾아먹는게 아니라. 제가  농사지가지고서 먹을 것을 만들어 먹지 않습니까? 그다음에는 남이 해논데 만들어 먹는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논 기름진 미국  같은데 사는게 아니라. 이제 장성하면은 제가 있는 곳을 옥토를 만들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 여게 새마을 노래에 뭐라고 말했더라. 살기 좋은 무엇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그 뭐이제 노래 있잖아? 뭐이제? 살기 좋은 뭐?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했지요. 그 좋은 말이요, 아주 좋은 말. 그것이 저  기독교국 저 스위스니 그런데에서 지금 그걸 주장하는 그것을 다 따온 것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 믿는 나라인데 그 나라는 우리 손으로 만들자 해 가지고 아주  약소국입니다. 아주 조그만한 나라요.

조그만한 나라지마는 아무도 그 나라를 침노를 못해요. 그 나라 사람들 문화  수준이 놓아서 공산주의가 암만 해봐야 안들어 그 나라에는 근방에만 가면  근방에만 가면 무엇이 탐지기가 와 가지고 사람 안해도 그만 중단을 해서 가들  못해. 깨끗한 사람들만 가지. 공산주의 침노를 해야 침노를 못해요. 중립국이라  해도 중립국으로 있으면서 바짝 힘을 써서 거게서 이 새마을 운동을 거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좋은 운동이요. 공연히 이걸 뭐 뭐 박 정권때에 이거 좋은 거  시작했습니다.

유신이라는 그것도 아주 좋은 것 시작했소. 그거 다 좋은 나라에 좋은 것을 보고  따온 것이라. '살기 좋은 내마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자기가 좋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그래 가지고 살라 하는 자들 있고  여게서 여게는 싫으니까 공산주의 있으니까 안 됐으니까 남이 맨들어논 그  나라에가서 살자 하고서 미국가면 그건 다 인간들 거서 전도 하러가든지 참 거서  할일하러 인간 구원위해서 특별히 가지 안하고 살기 좋아 피난가서 피난을 가는  그 인간들 아니요. 그거는 인간 축에 모지라는 인간들이라 그말이오. 응.

알겠소? 우리가 여서 자기가 차차 차차 자기가 ?????? 여러 가정을 좋게 만들어 사회를  좋게 만들어 국가를 좋게 만들어 민족을 좋게 만들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땅이 아주기름진 땅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어 살기 좋은 곳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살 수 있는 이것이 뭐이냐?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데 따라서 모든게  좋아진다 그말이오.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데 따라서 모든게 좋아져. 이런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참 몰라서 "너희들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인  또 나를 믿어라. "내가 가는 곳에 길을 너희들이 알리라" 살라면 죽으라  그말이오. 취하려면 내놓으라 그말이오. 올라갈라거든 네가 스스로 내려가라  그말이오. 내려가면 올라가져요. 이 생명법을 하나님이 가르쳤는데 사망법만  머리에 꽉 차가지고 있으니까 항상 이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여진다 이거요.

우리가 깨어서 참 도인이 되어야 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여 삼십 년 있었지마는  가르쳐야 만날 가르쳐야 몰라. 그러면 안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간접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접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접하고 하나님의 운동을 접하고 차차 차차 우리가 전기에 바로  닫으면 안되니까 이제 빛을 보고 그다음에 조금 들어가서 전력을 이용해서  선풍기를 돌리고 조금 더 가까이 가 가지고 기계를 돌리고 이제 큰 공장을  돌리고 이걸 가지고 우리가 모든 그 원자력 전자력 이런 것을 발행시키가지고  그렇게 유익을 보고 자꾸 그러는데 선진 국가에서 핵을 이용한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을 그만침 문화인이 됐기 때문에 이용하지 우리에게는 오면은 바싹 부셔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벌로 검어지면 다 터져버리면 다 죽지 않습니까? 이기나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도 이런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이런  분을 우리가 아버지가 됐고 얼마든지 가까이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을 두고 딴데  가는 것이 우리가 어리석은 일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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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16 하나님과 사람 사랑-계명지킴/ 요한일서 5장 2절-3절/ 1983. 9. 23.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5 하나님과 사람 위하는 방편/ 마태복음 5장 7절/ 1988. 9. 16.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4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성/ 호세아 2장 4절-23절/ 1984. 8.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13 하나님과 연결-말씀 묵상으로/ 골로새서 3장 2절-4절/ 1983. 9. 20.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12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1986. 5. 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10 하나님과 이질적인 요소를 버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1981. 1.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과 자기와 믿음 생각 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1987. 10. 2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7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1989. 6. 17.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6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출애굽기 12장 13절-14절/ 1979.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5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 창세기 6장 1절∼14절/ 1981. 1. 28.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504 하나님께 가까울 수록 거룩하라/ 민수기 20장 2절-13절/ 1983. 6.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요한복음 14장 1절-3절/ 1981. 3. 27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02 하나님께 감동 주는 사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1985. 9. 15.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501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4장 1절-3절/ 1984. 5.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00 하나님께 대해서 노력할 것/ 로마서 6장 23절/ 1985. 11. 8.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99 하나님께 받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8절∼12절 상반절/ 1987. 4.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98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4. 4.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497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계명생활/ 다니엘 6장 1절∼27절/ 1987. 3.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